검존환생-2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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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화
-무당-화산 동맹 (21)
진가보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다. 이것은 백발진인의 명으로 행하는 일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낱 지화종 따위가 어찌 무당의 제자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만일 그것이 백발진인의 명이었다면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멀쩡한 자신의 제자를 살해하라 명한 것만으로도 장문인으로서의 자격은 상실된다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그것을 백발진인이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진가보가 면사포 밖으로 만면에 웃음을 짓고 흡족해하는 지화종의 대전주를 보았다.
‘멍청한 놈! 네놈들은 백발진인이 목적을 달성한 후 반드시 지탄을 피하기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살인 멸구 당하고 말 것이다. 제 발로 죽을 자리로 기어 들어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니.’
“내일 장한풍이 도착하면 묵을 곳은 정리가 끝난 것인가?”
“그렇습니다.”
“후후후! 좋다! 좋아! 너는 백발진인이 전해 온 약물을 차질 없어 그 방에 풀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장한풍의 무공을 우리는 도저히 막아 내지 못할 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놈은 이곳에서 잠이 들고 난 후 아침나절이면 모든 무공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 이번에 내가 백발진인에게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니 우리 지화종의 앞날에도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니라.”
“그나저나 이 방법이 성공하게 될까요?”
노인의 물음에 대전주가 노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지화종에 대대로 내려온 비법이다. 비록 그동안은 강호를 휘어잡는 귀환자가 나타나지 않아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여태껏 실패한 적이 없단 말이야. 보음령에 천양각까지, 이 두 가지 약물이 진하게 배어든 여인들의 음기를 모조리 흡수한 건장한 사내의 피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귀중한 약물이거든. 각 약물의 제조법부터 의식을 수행하는 방법은 오로지 우리 지화종에만 전해지는 비법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새어 나간다면 너는 물론 나까지 백발진인의 노여움을 피할 길이 없을 테니 입조심하여야 할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내일 장한풍을 맞이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자.”
진가보가 생각했다.
‘음. 이놈들은 지금 귀환자를 위한 의식을 치르려 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지?’
그러나 생각해 보면 화산파의 기해봉 또한 천갱의 보주를 얻어 무엇인가를 꾀하고 있었다.
그것이 영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것이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짜 화신이 죽고 난 후 고삐가 풀린 것을 계기로 지금 양측이 겉으로는 동맹을 맺은 모양을 보이고 있으나 암암리에는 상대를 누르고 천하를 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먼저 목적을 달성하는 자가 남은 자를 누르려 할 것이다. 그때엔 다시 강호에 큰 환란이 일어나리라.’
다음날이 되자 지화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와 전각에 있던 여인들을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붉은 기와가 올려져 있는 화려한 전각이었는데, 방안에는 금으로 장식된 가구와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복색으로 보아 이자가 무당의 장한풍인 것 같구나.’
그는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는데, 얼굴은 청아하고 준수하게 생겼음에도 눈에는 음탕함과 탐욕이 가득해 보였다.
“으하하하! 너희들이 대전주가 말한 그 여인들이로구나. 오늘 내가 너희들의 음기를 모조리 빨아내어 주도록 하마.”
진가보는 백발진인의 방법이 토가 나올 정도로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배부르게 먹인 후 가축을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지? 어찌 자신의 제자를 그렇게 이용해 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장한풍이 진가보의 앞으로 왔다.
“오호~ 이것 봐라? 제법 키가 큰 편이군. 좋아! 나는 본래가 키가 큰 여인을 좋아하지. 어디 내 너를 먼저 품어 볼까 하는데?”
진가보는 어이가 없었으나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좋아! 기왕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겠지.’
장한풍은 그대로 진가보를 안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진가보가 만근추의 수법을 이용해 꼼짝도 하지 않자 장한풍이 놀란 듯 눈을 끔뻑였다.
“아니, 체격이 조금 큰 편이구나 싶었는데 어찌 이리 무거운 게지?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너무 많이 취했단 말인가?”
장한풍으로서는 상대가 지금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옆에 있던 탁자를 한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아닌데? 이거 정말로 이상하군.”
장한풍은 양팔을 걷어붙이고는 다시 진가보를 끌어안았다.
“좋아! 내 너에게 무당의 만근항경추(萬斤抗擎抽)의 수법을 보여 주도록 하지. 자아~! 잘 보거라! 으하하하!”
몸을 밀착하고 있었던 데다가 장한풍이 별다른 방어를 하지 않았기에 진가보는 그의 혈도가 열리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여 동시에 진가보는 흡력신공의 내력을 개방하였다.
온몸을 쏜살같이 회전하던 거대한 마기(魔氣)는 즉시 온몸이 혈도로부터 장한풍의 내공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온몸에서 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장한풍은 술이 만취되었음에도 깜짝 놀라 손을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으….”
하물며 목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 피부가 쪼그라들어 가는 것을 본 진가보가 즉시 자신의 체내에 있던 마기를 봉했다.
하지만 진기의 일부까지 빨려 나간 장한풍은 이미 정신이 나가 버린 직후였다.
‘놈의 내력이 별 볼 일 없군.’
진가보는 그 후 여인들의 혈을 짚었다.
여인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이틀이 지나면 깨어나게 될 것이니 미리 사과드리도록 하겠소.’
그다음 진가보는 바닥에 추욱 늘어져 있는 장한풍을 침대에 눕혔다.
‘어차피 약물에 의해 내공을 잃으나 나에게 진기가 빨려 내공을 잃으나 매한가지니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다음 날 아침, 문이 열리고 어제 대전주와 함께 있던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여인들이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보고 만족한 듯 낄낄거리고 웃었다.
“한둘만 취해도 성공이었을 텐데 젊은 놈이라 그런지 정력이 대단하구나. 크크크크. 우리로서야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
그러고는 그대로 침상에 누워 있던 장한풍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그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노인은 다시 장한풍의 오른쪽 손목을 잡고 맥을 살피는 듯했다.
진가보가 생각했다.
‘육청화가 아닌 이상 그 차이를 네놈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가보의 생각대로 노인은 잠시 맥을 짚어 본 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공이 모두 사라져 버렸군.”
그러고는 큰 소리로 문밖에 명했다.
“어서 들어와 이자를 제단으로 옮겨라! 어서어서 움직여! 정오가 되기 전까지 천공산에 가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그러자 서너 명의 장한이 들어와 장한풍을 둘러업고 나갔다.
진가보는 어이가 없었다.
‘저들은 무공이 없는 자들 아닌가! 아마도 외부에서 일꾼을 데려온 모양이군.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숨기기 위해 제자들이 아닌 다른 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죽여 일을 묻어 버리려는 심산이야.’
그러나 한편으로 진가보는 똑같은 악인지만 그래도 지화종의 대전주는 백발진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놈은 자기 제자들은 아낄 줄 아는군. 며칠간 지화종에 인적이 뜸하고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지화종의 대전주가 다른 이유를 들어 제자들을 모두 내보냈기 때문인 것 같군. 나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노인이 밖으로 나간 후, 다시 명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안에 있는 시신들을 모조리 끌고 나와 불태워 버리도록 하여라!”
“예!”
잠시 후, 장정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게 눈앞에 불이 번쩍하며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바로 진가보가 손을 썼던 것이다.
진가보가 밖에 나와보니 시신들을 운반하려 했는지 작은 짐마차가 들어와 있었다.
진가보는 즉시 부적으로 뒤덮인 옷을 찢어 버리고 면사포를 벗어 던진 후 여인들을 마차에 실었다.
그러고는 텅 빈 지화종을 나왔다.
진가보는 그길로 가장 가까운 성으로 들어가 의원을 찾은 후 큰돈을 주고 여인들의 응급처치를 부탁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자 진가보가 생각했다.
‘아까 놈이 천공산으로 간다 하였지?’
진가보는 의원에게 천공산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자 의원이 사색이 되어 만류했다.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셔서 천공산에 가시려 합니까?”
“위험하다니,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천공산은 벌건 대낮에도 귀신이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니 당연히 위험하고 말구요.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천공산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나는 지금 그곳으로 가야만 하니 길을 자세히 일러 주시오.”
진가보가 이렇게 나오자 의원은 마지못해 천공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진가보는 급히 말을 몰아 천공산으로 향했다.
* * *
진가보가 천공산의 산정에 도착했을 무렵, 그곳에서는 한창 의식이 진행 중이었다.
지화종의 사람이라고는 대전주와 노인뿐이었으며, 단지 그 주변에 이 일을 하고자 고용한 듯 보이는 장정들만 삼사십 명 서 있을 뿐이었다.
“인간의 생과 사를 주관하시고 삶을 관장하시는 토룡의 신이시어! 부디 이자를 거두시고 영생의 기운을 허락하소서!”
곧이어 대전주는 열두 가지의 짐승이 음각된 거대한 제사용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 묶인 채 벌벌 떨고 있는 장한풍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대체 무엇 하는 짓이냐? 사부님께서 아신다면 너희들의 목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장한풍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으나 대전주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이 모든 일이 너의 사부인 백발진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장한풍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개소리!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놈들은 나를 죽인 후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너의 목을 자르고 피를 받아 바치고 난 후, 우리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인데 무엇이 무섭단 말이냐? 으하하하!”
이미 대전주의 검이 장한풍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워낙에 끔찍한 모습이라 둘러 서 있던 장정들이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엎어져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대전주는 절단된 장한풍의 수급을 한 손에 들고 제사용 검에 꽂더니 그것을 그대로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노인이 불이 붙은 나뭇가지로 그것을 열여덟 번 두들겼다.
대전주가 명했다.
“끌어 올려라!”
그러자 장정들은 저마다 쇠사슬을 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한풍의 발목에 묶여 있던 사슬이 도르래에 의해 위로 끌려 올라갔다.
거꾸로 매달린 장한풍의 목 없는 시신으로부터 피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