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2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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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무당-화산 동맹 (16)
한참 거나하게 술에 취한 이들이 누각을 나왔을 때였다.
“엥? 이게 어떻게 여기에?”
바로 없어졌던 마차가 떡하니 누각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장물아비는 기쁜 마음에 마차를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물건들은 이미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겠는가!
“아이구. 망했네. 망했어.”
거구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마차라도 건졌으니 다행인 거 아닌가!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으하하하!”
“우린 이제 돌아가야겠으니 다음에 보자구. 오늘 술 잘 얻어먹었네.”
그들이 사라지자 장물아비가 어금니를 깨물며 투덜거렸다.
“개 같은 놈들! 뭣이 어쩌고 어째?”
어두운 밤길을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지회종 패거리들은 자신들의 뒤를 여혜가 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놈들 중 거구가 말했다.
“아! 이렇게 술기운이 오르니 며칠 전 잡아 온 그 계집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그년은 지류 형님 거라잖소. 괜히 그딴 소리 하다가는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습니다.”
“뭐야? 네놈은 내 밑이 아니라 지류, 그 개 잡종의 편이었던 것이냐?”
“아니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지류 형님은 우리들보다 따르는 자가 많지 않습니까?”
“흥. 그래서 그깟 놈이 무섭단 말이냐? 내 일대일로 맞붙어서 놈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보여?”
“일대일이야 당연히 형님이 이기시죠. 그러나 예전부터 아무리 항우 같은 괴력을 지녔다 해도 떼거리로 덤비면 답이 없다 하지 않습니까? 지류 형님은 거느린 자들이 많으니 우리가 어찌해 볼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며칠 전에 꼴랑 검 하나만 차고 쳐들어온 놈이 있었잖아요?”
여태까지는 별다른 표정이 없던 여혜의 얼굴이 바뀌었다.
‘이건 분명 검운을 말하는 것이다.’
여혜가 감각의 예민함을 바짝 끌어 올려 귀를 기울이자 거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골빈 놈 말이군?”
“네. 놈이 지류 형님 쪽 애들은 반이나 넘게 작살 냈다지 않았습니까? 그럼 우리도 어찌 비벼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자 처음 거구를 만류했던 자가 대뜸 호통을 쳤다.
“이 미련한 놈아! 결국 그놈이 어찌 되었느냐?”
“풍작의 독술에 쓰러져 버렸죠.”
“그래, 바로 그 말이야. 지류 형님 쪽은 애들 머릿수만 많은 게 아니라고. 그런 요상한 놈들이 곁에 붙어 있으니 어찌 함부로 덤빌 수가 있겠냔 말야.”
풍작 이야기가 나오자 거들먹거리던 거구도 더 이상 이 일을 거론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 참, 독이라는 게 참으로 무서워요. 그쵸, 형님들?”
“그렇지, 그러니까 강호에서 독술가들이 높은 대접을 받는 것 아니겠어?”
그때, 여혜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에게 독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 줘야겠군.”
깜짝 놀란 여혜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자신의 뒤에 육청화가 바짝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깜짝이야. 육사제, 너는 언제 여기로 온 거야?”
“놈들을 정탐하는 중 사저의 모습이 보이길래 냅다 달려온 거지.”
“제기럴, 네가 무공이 많이 늘었구나.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다가오다니.”
“그건 아니고, 약간 약물의 힘을 빌렸지.”
“네 무공을 늘리는데?”
“아니, 사저의 무공을 줄이는데.”
“이런 미친!”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구. 놈들의 본거지가 코앞에 있으니까.”
진짜로 육청화가 가리키는 곳에서는 어둠 속에 전각들의 그림자가 스쳐 보였다.
다시 지화종의 한 놈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지류 형님은 어째서 놈을 바로 죽이지 않고 살려 놓았을까요?”
“그거야, 지류, 그놈이 물러서 그런 거겠지.”
“아니라고 하던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아! 정말 화만 내지 말고 잘 들어 보세요. 형님은 언제나 지류 형님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신다니까.”
“이 새끼가, 내가 언제 발끈했다고 그래?”
“지금 그러시는 거잖아요.”
다른 놈이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고, 왜 놈을 살려 놓은 거래?”
“그게, 형님 쪽 애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보니까, 쳐들어왔던 놈이 명문 무가의 제자라는 것 같더라구요.”
“겁을 먹은 겐가?”
“지류 형님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몸값을 받아 내려는 거죠. 적어도 명문이라면 자신들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꺼릴 테니까요. 우리에게 몇 푼 쥐여주고 입을 막는 것이 그들로서도 남는 장사겠죠.”
“그러다가 패거리로 쳐들어오면?”
“그깟 비천한 계집 하나를 구하고자 단신으로 들어왔다가 사로잡힌 건데 우리가 입만 뻥끗하면 소문이 나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놈들이 쳐들어오겠어요?”
“음.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문제가 있나 보더라구요.”
“문제?”
“네. 놈이 어느 문파에 속해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죠?”
“그 미련한 놈이. 그래서야 몸값은 어찌 받으려고?”
“놈이 입을 열지 않으니 지금으로서는 방도가 없지요.”
여기까지 듣자 몸을 숨기고 있던 육청화가 작은 소리로 여혜에게 말했다.
“어쨌건 놈들의 말에 의하면 검운이 살아 있는 건 확실하구먼.”
“잘된 일이야. 오면서도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그건 그렇고, 진가보도 돌아온 건가?”
“진가보라니? 장문 사형이라고 똑바로 부르지 못하겠어?”
“허~! 난 그의 오랜 친구인데 이젠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군.”
“어쨌건, 육사제는 언제 도착한 거야?”
“아까 저녁에.”
“저녁? 그제 떠났다 하던데?”
육청화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혜가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렇지, 넌 어린아이였지?”
“그래. 뭐, 알아낸 건 없어?”
“검운이 단신으로 쳐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독술에 당해 사로잡혔다는 것! 아무리 고문해도 내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
“아니, 그건 방금 들은 이야기잖아.”
“물론, 나도 그게 아는 전부야.”
“…….”
* * *
“여기가 그 풍작이라는 놈의 거처인 것 같군.”
“사저는 그걸 어찌 바로 알아챘지?”
여혜가 화난 얼굴로 전각의 현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풍작거각(豐作巨閣)’이라 쓰여 있었다.
“이놈도 역시 관심 종자인 것 같아. 독술가들이란….”
“게다가 누군가의 사저인 것 같기도 하구. 사저들이란….”
“뭐? 풍작이라는 자가 여인이란 말야?”
“물론. 잘 맡아 봐. 분향이 느껴지지 않아?”
여혜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런 것도 같네.”
“나의 코는 일반인에 비해 수십 배는 예민하다구.”
“그러나 남성들 중에서도 분을 쓰는 자들이 있잖아?”
“아니, 분명 여성이야. 사저는 모르겠지만 남자와 여자는 분명 그 풍기는 체취에서부터 차이가 있거든. 이는 거세된 환관들조차 숨기지 못하는 냄새지.”
여혜는 육청화에게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징그러우니 그렇게 바라보지 말라구. 난 시끄러운 여자는 질색이니까.”
“허 참. 네놈이 이젠 망발을 서슴지 않는구나.”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외향으로 보건대 그는 전혀 풍작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사내는 작은 함을 들고 있었는데 부리나케 걸어가더니 중문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안에는 아무도 없군.”
“그것도 냄새로 아는 거야?”
“방이 하나밖에 없는 작은 전각인데 안에 아무런 그림자도 비치지 않잖아? 사저는 그런 뻔한 것도 모르는 거야?”
“아냐.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육청화와 여혜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빼곡하게 여러 가지 약병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육청화는 그것들을 살펴보며 껄껄대고 웃었다.
“이놈은 오독교에서 독술을 배운 것이 틀림없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어서 해독제들을 모두 챙겨야지.”
육청화가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챙길 필요도 없어. 그저 이놈이 어떤 독들을 사용하는지만 알면 되니까.”
잠시 후, 육청화가 말했다.
“이젠 완료! 나가도 된다구.”
“뭐? 벌써?”
“물론!”
“너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걸 이제야 안 사저야말로 아둔한 거지.”
“정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아! 실수!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군. 내 이 풍작이란 놈에게 진짜는 어떤 것인지 본때를 보여 주지.”
그러고는 품에서 작은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그것을 펼쳐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것은 눈에도 띄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가루였는데,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무엇이 뿌려졌는지도 알기 어렵게 변하였다.
“됐다고. 이젠 나가지.”
“대체 뭘 한 거야?”
“차차 알게 될 테니 일단 나가자구.”
그들은 풍작거각을 나온 후 지붕으로 올라가 이곳저곳을 살폈다.
바로 검운이 사로잡힌 곳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전각들의 대다수가 불이 꺼져 있어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야 모든 곳을 하나씩 다 확인하는 수밖에 없잖아?”
“쉿! 잠시만!”
육청화는 이리 말하며 사방을 살폈다.
“저기야!”
“뭐가?”
“검운이 갇혀 있는 곳!”
“거짓말!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지?”
“난 일반인들보다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다고 말했을 텐데?”
“후각이라고만 말했지, 언제 청각이 예민하다고 했어?”
“어쨌건, 저쪽에서 검운 사형의 체취가 느껴져.”
“정말야? 이렇게 먼데?”
“가보면 알겠지. 따라오라구.”
육청화는 잽싸게 아래로 내려가더니 마당을 가로질러 중문 옆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었다.
따라가던 여혜가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다람쥐보다 날쌔잖아? 저러면서 육신이 어린아이의 것이라 늦게 도착했다구? 대체 중간에 어디서 놀다가 온 거야?’
외진 곳에 위치한 전각에 도착했을 때, 그곳 또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킁킁거리던 육청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바로 이곳이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갑자기 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댕댕댕!
“아뿔싸! 문에 기관이 장착되어 있었구나. 육사제, 피해! 함정이야!”
순간, 천장에서 수많은 은침들이 발사되었다.
다행히 빨리 알아차린 덕에 둘 다 무사할 수 있었지만 부서진 문 안으로 드러난 내부의 정경은 이 둘을 분노케 했다.
방의 중앙에는 사람 형체의 무엇이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검운의 옷을 입은 인형이었다.
육청화가 검운의 체취를 느낀 것이 바로 그 옷 때문이었으리라.
사방에 횃불을 든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 가운데에 있는 자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놈을 닦달해도 어느 문파인지 토설하지 않아 답답했는데, 이제야 그 답을 찾게 되었군.”
여혜가 입술을 씹으며 분한 듯 말했다.
“이놈들, 우리가 구출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어쩐지 일이 쉽게 진행된다 했더니.”
“오! 아리따운 아가씨로군, 명문 무가의 소저들은 외모까지 아름다운 듯해.”
“개소리!”
“예쁘다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닥치고! 사제는 어디 있느냐?”
“이봐~! 이래서 내가 명문 무가를 좋아한다니까. 고작 사제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오는 의리~! 이건 명문 무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너는 네 동생이 납치되어도 손 놓고 가만히 있겠군? 명문 무가가 아니니까 말이야.”
육청화의 말에 지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애새낀 또 뭐지?”
“애새끼라니?”
“하핫! 설마 너희들 달랑 이렇게 둘이 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