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라이즈-768화
본문
00768 장비 나와라, 뚝딱! =========================================================================
『소망의 망치(Hammer Of Wish)』
(설명 : 미젯 스미스(Midget Smitht)와 일생을 함께하며 성장한 신비로운 힘이 깃든 망치입니다. 충분한 광석만 있다면, 단 한 번의 망치질로 사용자가 강력히 소망하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동시에 만들어진 물품에 망치에 잠재된 마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비록 공격력은 전혀 없으나, 미젯 스미스 일생의 경험과 노력이 녹아 든 이 망치는 그 어떤 신기(神器)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한 번의 사용으로 소멸해버리니 신중한 사용을 권합니다.)
“이야, 이것 좀 봐봐! 소망의 망치라는데?”
“우와, 클랜 로드는 좋겠다.”
주변은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원거리 계열들이 괴물이 소환되는 족족 처리하니, 상대적으로 나설 일이 없는 근접 계열들은 살금살금 모여 성과 품평회를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여든 클랜원 중 일부는 시키지도 않은 의자나 음료를 갖다 주는 등 극상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 여하튼 덕분에 편하게 앉아 구경할 수 있었다.
쾅! 세 번째 폭발한 굉음이 고막을 울리고 번쩍이는 빛무리가 어둠을 밝혔다. 남다은은 내 시야가 걱정됐는지 손수 눈을 가려줬다. 이내 차분히 손을 치우고 쳐다보니, 역시나.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진수현은 연기 사이로 촐랑대며 뛰어들어가더니, 이윽고 얼음 빛을 뿜는 무언가를 품에 안은 채 뛰쳐나왔다.
“형님! 나왔어요! 이번에도 나왔다고요!”
『프라가라흐(Fragarach) – Ver. Rapier』
(설명: 광명의 신 루(Lugh)의 축복이 깃든, 빙하의 전설이라 불린 기사가 사용하던 검입니다. 얼음 섞인 칼날은 무엇이든지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며, 사용자가 원할 경우 저절로 칼집에서 빠져 나오거나 혹은 스스로 되돌아오는 등 귀속 기능이 있습니다. 이명으로는 앤서러(Answerer), 즉 ‘맞받아치는 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프라가라흐(Fragarach) – Ver. Armor』
(설명: 광명의 신 루(Lugh)의 축복이 깃든, 빙하의 전설이라 불린 기사가 착용한 갑옷입니다. B 랭크 이하의 적이 이 갑옷으로 접근할 경우 흡사 관능적인 여인을 본 것처럼 힘을 잃어버리며, 착용자는 유혹하듯이 적을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강력한 냉기를 품고 있는 갑옷은 얼음 계열 마법에도 강한 내성을 지닙니다.)
시릴 듯한 냉기를 풀풀 날리는 길고 가느다란 레이피어 한 자루와, 반투명한 얼음 빛을 띤 경(輕) 갑옷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빛깔이 이래서야 속살이 살짝 비칠 것 같지만, 외관상 보기에는 예쁘다. 빙하의 전설이라는 기사는 아마 여인이 아니었을까?
“와….”
누군가 감탄 섞인 숨결을 토해냈다. 흘끗 눈을 돌리니 남다은이 입을 약간 벌린 채 정신 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남다은은 한 번도 챙겨주지 않았던가? 조금이지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 검이랑 갑옷은 우리 다은이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네?”
조용히 운을 떼니 남다은이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받아주겠어?”
“네…. 네? 정말이요?”
“응. 나보다는 우리 다은이한테 걸맞은 장비 같아서. 어때?”
“오, 오빠….”
남다은은 무척 감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난데없이 자신의 품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이 여인은 가슴이 빈약한 편이라 속으로 아쉬워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힘없이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세, 세상에…. 우리 다은이라니….”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은 고연주였다.
“누구는 사용자 고연주…. 누구는 우리 다은이….”
그렇게 말한 고연주는 양 무릎을 모아 앉은 정하연의 허벅지로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그리고 흑흑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노력해도 죽어라 호칭을 고수하더니…. 하연 씨한테 밀린 것도 아니고, 한참 후배한테 밀렸어요….”
“그래요, 그래요.”
“하연 씨. 춥네요, 너무 추워요…. 꼭 패배한 개가 된 기분이에요….”
“괜찮아요. 파트, 아니 연주라슈. 자, 이대로 저와 눈을 감고 잠들도록 해요. 그리고 아름답게 떠나는 거예요.”
등을 슬슬 쓰다듬어주는 정하연과, “끼잉…. 끼잉….” 강아지 앓는 소리를 내는 고연주.
그나저나 연주라슈라. 어느 사이 고연주 테리어에서 품종이 변경된 건지 당최 이해하기 어려우나, 나는 느릿하게 한 손을 뻗었다. 강아지 부르듯 혀를 차니 뚝 그친 고연주가 흘깃 나를 쳐다본다.
“이리 오렴.”
“끼잉?”
“착하지? 우리 고연주 테리어.”
“왕왕.”
그러자 휙 상반신을 일으킨 고연주는 엉금엉금 기어와 갖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잘했다는 의미로 턱을 슬슬 간질여주니, 숫제 혀까지 내밀고 핥으며 재롱을 부린다. 그러자 이번에도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군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두 눈을 한껏 치뜬 하승윤이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 말도 안 돼….”
“……?”
“거, 검후 님과 그림자 여왕 님이…. 어떻게 저런 하찮은 모습을….”
“응?”
아니, 하찮다니. 이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가볍게 어루만져주니 두 여인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한층 달라붙는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개의치 않고 여기 보라는 듯 계속 농락하자, 하승윤의 눈동자로 눈물이 넘칠 듯 그득하게 고이더니, 결국에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검후를 동경해서 우리 클랜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던가? 그런데 이렇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충격을 받은 거고. 이거 참, 의도치 않게 동심(?)을 파괴한 기분이다.
쾅!
그 순간이었다. 잠깐 장난치는 사이 상자를 개봉했는지 네 번째 굉음이 귓전을 울렸다. 허나 반사적으로 중앙을 쳐다본 순간, 한껏 들떠 있던 기분이 갑작스럽게 가라앉았다.
흙먼지가 섞인 허연 연기가 올라오는 정원에는, 어스름한 그림자가 이리저리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수현!”
가장 먼저 대응한 사용자는 고연주였다. 언제 강아지 흉내를 냈느냐는 듯 한순간 자세를 바로잡고는 번개처럼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쐑!
이윽고 공기를 가르며 쏘아진 번쩍이는 단검은,
탱강!
연기 속 존재까지 닿지 못하고 가볍게 퉁겨졌다. 그걸 확인한 순간 나는 바로 무검을 뽑아 들고 상단으로 세웠다. 시끌시끌하던 정원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그시 정면을 노려보니 흔들리던 그림자가 천천히 연기를 헤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고요하다. 마력 감지에 걸리는 기척은 한 놈.
- 헤, 저 상자 재미있네. 오벨로 기사단도 소환하잖아?
이윽고 화정의 음성이 들린 찰나, 비로소 그림자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였다. 괴물치고는 썩 큰 덩치는 아니었으나, 두꺼운 흑색 갑옷과 거대한 대검을 들고 걸어 나오는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살짝 트인 투구 중앙에는 끝없는 어둠 속 시뻘건 안광이 켜져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약한 놈은 아니구나.
‘오벨로 기사단?’
- 응. 사후에도 멸망한 왕국 주변을 배회하는 놈들이지. 그런데 말을 타지 않은 걸로 보아 기사 단장급은 아니야. 에이, 아쉽네. 기사 단장이 나왔으면 꽤 좋은 상대가 됐을 텐데.
‘그렇게나 강한가?’
- 그럼. 생전에는 한 명 한 명이 영웅이었는데. 너 정도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강하지. 특히 영웅 중의 영웅인 기사 단장급은, 각성한 쿠샨 토르와도 겨룰 수 있을 정도니까.
기사 단장급이 각성한 쿠샨 토르와 겨룰 수 있다고 한다. 허나 눈앞의 놈은 오벨로의 기사 단장이 아닌 아래 급에 해당하는 놈. 그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정리한 생각을 낮은 음성으로 지시한 후, 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시를 받은 클랜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척이 잡혔다.
오벨로 기사는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다. 차분히 주변을 돌아보는 게 아마 이렇게 소환된 것 자체가 어리둥절한 듯했다.
허나 내가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 순간, 곧장 나를 돌아보고는 천천히 무릎을 숙였다. 선공인가 아니면 방어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오벨로 기사가 가볍게 땅을 박찼다. 그리고,
카앙!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 바로 내 눈앞까지 들이닥쳐 검을 휘둘렀다. 미리 무검을 뽑아둔 터라 반사적으로 방어는 성공했으나,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힘껏 박찬 것도 아니고 가볍게 뛰었는데, 한 번에 25 미터 거리를 줄였다고? 뒤늦은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그 정도로 쾌속한 속도였다.
그때.
웅웅웅웅웅웅!
문득 무검과 대검이 맞부딪친 지점으로 묘한 검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손으로 웅혼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무검에서 강렬한 적의가 물씬 풍겼다. 내가 아닌 상대방을 향하는 적의.
“Krrr?”
이윽고 대검을 부여잡은 오벨로 기사가 주춤주춤 물러난다. 어찌 보면 놀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현상일까?
“…Sovereign?”
놀랍게도 투구 안에서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기회였다. 나는 곧장 허리를 숙이며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 허벅지 부근을 베어 들어갔다.
깜짝 놀란 오벨로 기사가 대검을 한껏 치켜들어 그대로 내려찍는다. 빠른 반응이기는 했으나 이형환위로 가볍게 회피. 옆으로 이동한 후, 숙인 자세 그대로 힘껏 발차기해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퍽, 발목 부근으로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오벨로 기사의 신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원래는 아예 눕혀버릴 생각이었으나 어쨌든 균형을 흩트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왜냐면….
“흐읍!”
“하앗!”
두 남녀가 좌우서 동시에 치고 들어왔으니까. 긴 검을 꼬나 쥔 허준영이 힘차게 내지르자 오벨로 기사의 몸이 우뚝 정지했고, 차소림의 창이 섬광처럼 갑판을 꿰뚫자 벼락에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그 두 번의 공격에 이어, 홀연히 공중으로 솟은 남다은이 얼음 빛을 번들거리는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눈부신 검광이 달빛에 번뜩였다.
콰드드득!
탄탄한 금속이 힘차게 갈라지는 소리. 그 결과, 오벨로 기사는 정수리에서 두 다리 사이까지 깨끗이 절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깔끔한 합동 공격이었다.
“후. 다행히 물리 저항은 높지 않았나 보네요. 마법 저항은 상당히 높은 것 같던데.”
“그것보다는 네 분이 너무 세신 게 아닐까 싶은데.”
남다은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니 정하연이 쓰게 웃으며 되받는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오벨로 기사가 쓰러진 자리를 탐색했다. 성과가 급하다기보다는, 아까 나한테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던 능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 3의 눈을 활성화하자, 역시나 찾을 수 있었다.
『오벨로 기사 부츠(Obello Knight Boots)』
(설명 : 현재는 멸망한 오벨로 왕국은 한때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로 이름 높은 국가였습니다. 오벨로 기사 부츠는 커다란 공을 세운 영웅에게만 지급되는 장비로, 왕국의 비술인 4중 금속 압축 기술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부츠입니다. 4면에는 보호의 마법이, 3면에는 경량화 마법이, 2면에는 크기 자동 조절 마법이, 1면에는 고대 마법 ‘급 가속’이 새겨져 있습니다. 급 가속의 경우 발동 시 사용자의 돌진 속도를 1초 동안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며, 하루를 기점으로 충전됩니다.)
설명을 확인하자 하나 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쓰로스 부츠에 ‘래피드(Rapid)’라는 패시브 마법이 걸려 있다고는 하나, 민첩 능력치가 101포인트로 오른 이상 이제는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이다. 이것보다는 속도를 ‘직접적으로’ 상승시켜주는, 액티브 마법이 내재된 오벨로 기사 부츠를 사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리라. 마침 새 부츠가 필요한 참이기도 했고.
“오라버니. 또 나왔어요?”
잠시 후, 쫄랑쫄랑 다가온 안솔이 살며시 고개를 빼며 묻는다.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나서, 나는 두어 번 손뼉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이제 상자 두 개 남았으니까, 끝날 때까지 모두 집중합시다.”
그때였다. 느슨히 풀어진 분위기를 환기한 찰나, 느닷없이 품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소음의 근원을 꺼내보니 통신용 구슬이 말간 빛을 흘리는 게, 연락이 온 것 같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일 가능성이 높다. 저번에 돌아오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방금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하여 고연주에게 잘 지켜보라고 일러둔 후, 나는 정원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현재 연재하는 파트는 주인공 장비 획득 +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복선이 있으므로 휙 넘어가기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괴물 소환 상자 파트는 정확히는 다음 회 초반 ~ 중반에서 끝날 예정이오니, 이 부분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
또 오늘 쪽지를 답신하면서 느꼈는데, 전에 4개까지 줄여서 좋아했던 게, 하루 지나고 20개 넘게 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7통이 장난 쪽지였네요.
…이것도 부탁 드립니다. 장난 쪽지는 웬만하면 지양해주세요. 정상적인 쪽지를 보내시는 독자 분들은, 정말 날카롭고 깊이 있는 질문을 해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저도 가볍게 답변할 수 없는 것도 있어, 하루 날 잡고 답신해도 10개 ~ 14개 정도가 한계입니다.
가령 ‘로유미 사랑해요~. 하트 뿌잉뿌잉!’ 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데, ‘로유미 임신시키고 싶다~. 데헷!’ 이런 쪽지는 저도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어찌 답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또 한 번 부탁 드립니다. 그래도 손수 쪽지까지 작성해주셨는데, 보고 그냥 휙 넘기는 건 마음에 걸려서 어찌어찌 답변은 드리는 중입니다. 허나 계속 장난 쪽지가 쌓이면 다른 독자 분들의 정상적인 쪽지 답신에 차질이 생기니…. 이렇게 네 번째로 부탁 드립니다. ㅜ.ㅠ 아이 빌리브 독자 님입니다.
그리고 원하시는 사용자 정보는 곧 정리에 들어가겠습니다. 한 명씩 수정해서 올리든, 날 잡고 한꺼번에 올리든 우선은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단 현재 여러 사용자가 클래스나 능력치, 장비가 변화하는 중이니, 이러한 부분들이 전부 나온 후, 변화 사항을 기입해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의 접근성을 생각하면 어디에 올릴지는 또 고민이네요.
그럼 독자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