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라이즈-5화
본문
00005 특전을 사용하다. =========================================================================
홀 플레인은 힘,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 정보’가 최우선으로 우대받는 세상이다. 연차, 성향, 능력치, 능력 등 한 명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 그것으로 가치 판단을 내리는 세상.
그렇기에 더욱 예민하게 구는 건지도 모른다. 확실히 특전을 부여 받을 줄은 몰랐고, 짧은 시간에 완벽한 설정을 짜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게는 10년이라는 경험이 있다.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면 힘이 있어야 했다. 생존을 갈망하는 마음은 곧 힘을 추구하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어떤 능력을 올려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지. 나는 수없이 고민했고 연구했다. 고작 48포인트라는 마력 능력치로 Master의 경지에 이른 것은 그냥 딱지치기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설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부여 받은 특전들은 그 동안 연구해놓은 지식을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무작위로 선발된 잠재 능력들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비어있던 두 슬롯에 들어온 능력의 이름을 읽자, 다행히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고유 능력 1슬롯, 특수 능력 1슬롯, 잠재 능력 2슬롯이었다.
그리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고유, 특수, 잠재 능력의 선택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유. 다 골랐다.”
“…….”
그때, 미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소환의 방에는 둘밖에 없는 상황.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게 누군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라프와의 마지막 이별은 애틋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쌓인 앙금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젠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눈앞의 천사를 곱게 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난 일부러 세라프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한동안 시선을 돌린 채로 딴청을 피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결국 세라프의 불편한 시선을 이기지 못해 말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뭘 봐.”
일부러 불퉁거림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지만 시선은 더욱 은근해졌다. 세라프는 잠시 나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약간 상기된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용자 김수현의 능력치. 그리고 특전에서 선택한 고유, 특수, 잠재 능력. 이 두 분야로 나뉜 설정과 검술 전문가의 설정을 종합해보았습니다. 그러자 한가지 추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도우미 마음대로입니다.”
바로 받아 치는 세라프를 보며 약간은 황당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지금 천사가 농담을 한 건가? 아니면 진담인 건가? 어쩌면 반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해보니 어떻든.”
“능력치, 능력 분야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깊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홀 플레인이란 공간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용자처럼 느껴집니다.”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순간 속이 심하게 따끔거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태연히 되묻자, 세라프는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조금 특이한 성격인건 인정해.”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특전을 사용함으로써 뽑아낸 효율은 천사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홀 플레인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그런 선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무르기 있기 없기.”
“없기. 거듭 말씀 드리지만 특전에 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사들은 인간과 다릅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습니다. 뭐, 아무튼. 사용자 김수현이 노리는 바를 대강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그뿐입니다.”
세라프의 목소리엔 진심으로 감탄한다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아까부터 따끔거리던 속마음에 마냥 우쭐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연구를 했다고는 해도, 지금 노리고 있는 건 예전 최고의 명성을 떨친 여러 사용자들 중 한 명이 가진 클래스를 토대로 잡고 있었다.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나와 이름이 똑같은 탓에 더욱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검술 전문가 진수현. 해당 시크릿 클래스는 마법사들한테서 악몽이라 불릴 정도로 대 마법사전에서 발군의 위력을 자랑했다.
진수현은 나보다 홀 플레인에 늦게 입장한 사용자였다. 차이를 계산하면 약 1년 정도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노력이라는 단어로 1년 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좁혔다. 그리고 재능이라는 단어로 나를 순식간에 추월했다. 나 또한 나름대로 노력한걸 생각해보면, 당시 느꼈던 상실감은 아직도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지금 당장 진수현의 정보를 그대로 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그는 나와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본인의 정보를 남한테 알려줄 정신 나간 사용자도 아니었다. 기본적인 꼭 필요한 요소들은 그대로 계승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결국 2할의 비중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8할은 내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을 섞어 뼈를 만들고 살을 붙여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내 10년간의 경험과 노련함을 믿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런 시선은 관두라고.”
대놓고 불편하다는 얼굴을 드러내자 세라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검술 전문가는 내가 가져갈게.’
미안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어서, 나는 잠시 진수현을 위해 기도했다. 너 정도면 검술 전문가가 아닌 다른 클래스를 골라도 충분히 성공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그렇게 기도 아닌 기도를 마친 후, 바로 다음 특전으로 생각을 돌렸다.
네 번째 특전.
‘4. 단 1회에 한해서, 신체 개조 시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개조 시술이라고 해도 특별한 건 없다. 물론 몸 일부를 기계로 대신하거나 또는 이공간의 존재를 임의 소환, 일부러 자신의 일부를 대신하는걸 본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팔다리를 완전하게 잃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사항 이었다. 건강하고 사지 멀쩡한 신체를 가진 이상, 몸의 일부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바로 문신 시술이었다. 이 과정은 계획의 완성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만에 하나 문신 시술이 없었다면, 계획의 성공률은 3할도 채 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다. 내가 5번째 특전 때 요청할 물건은 그만큼 강력하고 위험했다.
3번째 특전을 거치는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기에 바로 문신 시술을 요청하기로 했다.
“음. 어디 보자. 거창한 개조 시술 보다는 그냥 간단한 문신이나 시술 받고 싶은데.”
“가능합니다. 문신 목록 차트를 띄워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 괜찮아. 이름은 알고 있거든. 고대 무녀의 각인이라는 문신으로 부탁해.”
“문신을 각인할 위치는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나는 태연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세라프의 시선이 내 오른손을 따라가는 순간, 손가락으로 내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심장.”
“심장 말입니까…?”
“왜?”
“…….”
세라프의 얼굴은 고요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속으로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계산을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내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게 안쓰러웠지만 당연히 아직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일반적인 문신은 피부 위로 새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대 마법을 이용한 마력 각인을 통해 심장에 시술을 한다는 게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마력의 중추를 담당하는 기관은 심장과 회로이다. 마력 반응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신을 심장에 각인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무녀의 문신은 다르다.
아마 일반적인 문신을 말했다면 난 세라프와 한동안 설전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문신들, 즉 마력 증폭이나 양에 관여하는 시술이라면 문제 삼을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무녀의 각인은 일반적인 문신들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그것에는 총 2가지 기능이 있다. 첫 번째, 마력이 폭주했을 경우 자체적으로 안정시켜준다. 두 번째, 마력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이끄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순기능이 있는 고대 무녀의 각인인 만큼, 세라프도 지금 무척이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살짝 긴장된 기분을 느끼며 그녀의 입술을 응시했다. 이 시술만이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한 내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유일한 최종 열쇠였다. 이윽고 세라프의 고운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Yes.”
빙고.
“사용자 김수현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정확히 5분 7초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Okay.”
그 순간 눈앞 허공으로 밝은 푸른빛을 뿜는 고대 문자들이 생성되더니 이내 타원형을 그리듯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위로 무녀들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리는듯한 환청이 느껴졌다.
5분 후. 천천히 주변을 돌던 고대 문자들은, 심장 부근으로 하나씩 스며들었다.
심장이라고 해도 딱히 아픈 느낌은 없다. 오히려 문자 하나가 들어올 때마다 조금이나마 활력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끝 줄에 있던 문자가 들어오는걸 마지막으로 시술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뭐가 변했는지 바로 체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력을 운용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일. 나는 곧장 마력의 점검을 시작했다.
‘오호.’
처음에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마력으로 인해 운용하는데 약간 애먹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회로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마력들.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예상외의 만족스러운 성능에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네. 세라프? 남은 시간 좀 알려줘.”
“통과의례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48분 39초 입니다.”
48분 39초라. 나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별다른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세라프는 시간이 충분하다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빠듯하다. 남은 다섯 번째 특전은 도박성이 짙은 모험이었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크나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정.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섯 번째 특전을 떠올렸다.
‘5. 사용자 김수현이 원하는 장비를 한가지 선택할 수 있으며, 종류에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EX등급의 장비들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지가 상당히 광범위한 특전이었다. 검, 방어구, 영약, 액세서리 등등.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것들을 선택해버린다면 고대 무녀의 문신 시술을 받은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그만큼 다섯 번째 특전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화정, 불의 화정이 낫겠다. 다섯 번째 특전은 그것으로 하겠어.”
“사용자 김수현의 요청을 승인합니다…?”
끝맺음이 묘하게 올라갔다. 세라프는 끝말을 의문형으로 바꾸더니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설마 걸린 건가?’
내 의도를 알아챘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래도 승인 요청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세라프의 오른손에는 붉은빛이 피어오르는 작은 구슬이 쥐어져 있었다.
“…….”
“…….”
서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라프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내게 구슬을 건네줄 생각이 없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는지 세라프는 엄한 표정을 짓더니 질책하는듯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표정을 딱딱히 굳히며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사용자 김수현.”
“Tanay.”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Tanay라도, 사용자한테 해를 입힐 수 있다면 조언할 수 있습니다."
“조언을 빙자한 간섭이겠지. 헛소리 말고 내놔. 난 불의 화정이 필요해. 내가 미쳤다고 다른 좋은 시술 놔두고 엄한 고대 무녀 시술을 받은 줄 알아?”
이래서 세라프가 싫다. 어차피 줄 거 꼭 한바탕 싸우고, 서로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서 일을 매듭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가 떠오르자 습관적으로 거친 말들이 목구멍 끝까지 차 올랐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 애틋이 나를 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일단 말이라도 들어볼 요량이었다.
“당신의 창의성에 경의를 표합니다.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해냈다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
“사용자 김수현. 불의 화정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 정도?”
“비슷합니다. 불의 화정의 다른 이름은 영원히 타오르는 염화. 세간에 알려진 가장 파괴력이 높은 불은 지옥의 겁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순수한 불의 집합체, 화정은 그와 동급으로 견줄 만큼 위험한 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파괴를 위한 불입니다.”
“알고 있어. 다 알고 있으니 달라는 거야.”
“내구 수치 92. 마력 수치 90. 예상 성공 확률 21%. 고대 무녀의 각인을 포함한다면 예상 성공 확률 42%. 바꾸어 말하면 절반을 넘는 58%의 확률로 실패한다는 말입니다.”
세라프는 필사적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특전은 결국 Tanay등급이었다. 그녀 말대로 조언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결정을 막을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오른손을 쫙 펴고 내밀며 당당히 화정을 요구했다.
“성공하면 되잖아.”
내가 말하긴 했지만 참 속 편하게 하는 말이었다. 아마 세라프는 지금쯤 복장이 뒤집어지고 있지 않을까? 실컷 얘기해놨더니 씨알도 안 먹힌다. 그녀는 이제 거의 매달리는 수준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실패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공해도 문제가 됩니다. 실패하면 모든걸 잃고 폐인이 됩니다. 성공해도 분명 예상할 수 없는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분명 EX등급 빼고 모든 장비를 지급한다고 읽은 것 같은데. 화정이 EX등급이었던가?”
“원래 불의 화정은 EX등급이었습니다. 홀 플레인에 존재하되 등장할 수 없는 장비란 말입니다. 다만 얻기가 요원하고, 균형 작업을 통해 S등급으로 하락하긴 했지만 위험성이 사라진 건….”
이대로 가면 분명 끝이 없을 것이다. 무척 피곤한 기분을 느꼈기에,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멈췄다. 웬만하면 끝까지 들어주고 싶지만 지금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아니면, 세라프가 이대로 시간을 끌어 통과 의례까지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더는 얼굴 붉히고 싶지 않은데.”
“90이 넘는 내구와 마력 능력치로도 힘든데 체력은 78에 불과합니다. 자신감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보길 바랍니다.”
물론 세라프가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 간곡한 설득에 마음이 약간이라도 움직일 만큼 그녀의 걱정은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차라리 다른걸 양보하면 양보했지 이것만큼은 벼르고 벼르던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화정을 포기한다면….
“회복 시간도 만만치 않은데. 시간 더 끌면 반 시체 상태로 통과 의례에 들어갈걸?”
“사용자 김수현.”
“더는 말 안 하련다. 불의 화정, 확실히 요청하겠어.”
결국엔 사늘히 일갈하고 말았다. 심상찮은 기류를 읽은 건지 아니면 더는 Tanay에 거부할 수 없는지는 몰라도, 세라프는 천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 찬 상태였지만 이윽고 그녀는 내 쪽으로 화정을 내밀었다. 하지만, 곱게 주지는 않았다.
“성공한다고 해도 분명히, 후회하실 날이 올 겁니다.”
“알았어….”
두둥실.
불의 화정. 순수한 불의 집합체. 영원히 불타오르는 염화.
준비과정은 필요하지 않다. 마음을 먹은 지는 오래고, 후 폭풍까지 계산한다면 남은 시간도 별로 없다.
화정은 가느다란 진홍빛 궤적을 그리다가, 그대로 내 입 속으로 쏙 들어왔다.
꿀꺽.
드디어 화정을 얻었다. 비로소 화정이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솟구치는 안도와 희열을 다스리며 나는 빠르게 내부를 관조했다.
쭈룩.
목 울대를 한 번 꿀꺽 움직이자,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동그란 구슬이 느껴졌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고비의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1. 홀 플레인과 진수현에 대한 내용 일부 삭제.
2. 오타 및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