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2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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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화
-무당-화산 동맹 (32)
상문에서 파견 나온 자가 말했다.
“만일 교도가 교주를 살해하였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아무런 증좌도 없이 단주의 말만으로 조사를 시작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광 좌사가 말했다.
“그러니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소?”
상문의 교도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하지만 교주가 살해된 일은 상문에서 감문(監問)을 파견해야 할 중차대한 일입니다. 이는 상문의 교주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는 것인데 어찌 결정적인 증좌도 없이 움직일 수 있단 말입니까?”
매설단 신지가 외쳤다.
“저 계집은 자신이 불리한 지경에 처하자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뿐이오. 그러니 헛된 망언 따위에 신경 쓰실 필요는 없소이다.”
송화가 말했다.
“규율에 따르면 도화교의 각 단주는 필요한 사항에 대해 조사권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상문 또한 같지 않습니까?”
“분명 그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조사를 시작할 수야 없지요.”
상문의 교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단주의 말처럼, 그녀가 조사 발동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 우리 이렇게 하도록 하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삼 일의 말미를 드리리다. 그러니 그 안에 교주가 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물증을 가지고 오시오. 그렇게 한다면 상문에 보고하여 감문관을 파견토록 요청할 것이오. 어떻소?”
송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광 좌사는 걱정이 가득했다.
사실 교주가 독에 중독된 이후 송화는 그것이 매설단주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밝혀내지 못했던 것을 고작 삼 일 만에 어떻게 증거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전에 오늘 일에 대한 처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동의 의식에 외부인을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매우 중대한 규율 위반이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에는 교주의 사망 사건이 있고 그 의심의 대상이 매설단이라면 오늘 성동의 의식은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의식이 무효가 된다면 오늘 단주의 일은 죄를 물을 수 없게 되는바, 이 일에 대한 판결은 교주 사망 사건이 해결된 뒤로 미루도록 할 것입니다.”
어쨌든 약간의 말미가 생긴 것이라 설영단의 교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매설단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결국, 상문의 교도는 전체 단주들의 의견을 묻게 되었다.
“좋소. 각 단의 단주들은 오늘 이 결정에 대해 찬반의 의견을 표하십시오.”
진가보는 이때 각 단주들의 표정을 유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시간차는 있었으나 매설단을 비롯한 세 곳의 단주들은 반대를 남은 곳의 단주들은 찬성을 표했다.
광 좌사가 송화에게 말했다.
“찬성을 표한 곳의 단주들은 이번 일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범소가 말했다.
“그러나 세 개 단의 단주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것은 추후 일이 해결된다 하여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상문의 교도가 말했다.
“이것으로 찬성이 반대보다 높으니 내가 말한 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는 삼 일 뒤 이곳에서 다시 모이도록 하지요.”
* * *
성동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송화를 비롯한 이들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회의를 하였다.
“우선 시간을 얻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매설단의 소행인지를 어떻게 밝힐지가 막막할 뿐입니다.”
단주가 말했다.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말아라.”
범소가 진가보에게 물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영웅께서는 우리를 돕기로 하셨음에도 어찌도 그렇게 매몰차게 우리를 궁지로 모신 것입니까?”
진가보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단주가 진가보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아니다, 범소.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맞다.”
범소는 수긍을 하기 어려운지 아직도 얼굴에는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만일 진 장문인께서 우리의 요청에 응하였다 하여도 이는 문제를 뒤로 미룰 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주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범소, 자네도 알고 있듯이 아무리 교주라 하여도 각 단주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지금 매설단의 세력이 강력하니 다른 단주들은 그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여 오늘 반대를 표한 세 개의 단을 제외하고도 다른 단주들 또한 적극적으로 우리를 옹호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셈하려 할 뿐, 도화교에 대한 충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다. 만일 자네의 말대로였다면 그들이 어찌 매설단의 눈치를 보면서도 찬성을 표했겠는가? 그것은 그들 또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것에 분명 암수가 개입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광 좌사가 말했다.
“사실을 밝혀낼 수만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사실 나는 오늘 어느 단이 매설단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입을 열었던 것인데 생각했던 대로 모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군. 하지만 매설단의 세력이 남아 있는데 내가 규율을 어겨 가며 교주의 자리에 오른다 한들, 신지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들은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진 장문인에 대한 것을 밝혀내고 말겠지. 이는 나의 교주로서의 지위에 대한 정당성을 잃게 되는 것이니, 그때 가서는 수습할 길조차 사라지고 말겠지. 이런 나를 깨우쳐 준 분이 바로 진 장문인이다.”
그러고는 진가보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가보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한 문파의 최고 자리는 그저 실력만으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과정에서의 정당성이 없다면 그 누구도 명을 듣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단주와 혼인을 할 것이 아닌데, 어찌 거짓을 말하여 권좌를 차지할 수 있겠소? 그것은 결국 칼날이 되어 스스로에게 되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범소는 진가보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주가 말했다.
“어쨌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지언정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매설단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명분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 찬성을 취한 단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범소가 물었다.
“그러나 교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교의 의원이 세 차례나 검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삼 일 동안 대체 무슨 수로 증좌를 찾는단 말입니까?”
진가보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요? 영웅께서는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신 것입니까?”
단주가 말했다.
“사실 우리가 성동의 의식을 치르기 전날, 진 장문인께서는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지.”
“제안이라뇨?”
“성동의 의식을 치르기 전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살필 것을 상문에 요청하는 것이었지.”
“아하! 오늘 일이 사실은 영웅께서 미리 알려 준 방법이란 말이군요?”
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나는 교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더 우선이라 생각하여 일단 성동의 의식을 먼저 통과하자 하였던 것이지.”
“아!”
“그러나 성동에서 매설단의 실력을 보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의식을 통과한다 해도 인력이나 실력에서 매설단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 아니더냐. 게다가 각단의 단주들 또한 이런 매설단에 마음이 기운 상황인바, 결국 교주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여도 그것은 껍데기일 뿐, 매설단이 실력으로 반기를 든다면 지금과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주의 죽음이 매설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대의와 명분을 얻어 각 단의 단주들이 마음을 바꿀 것이니 충분히 매설단을 상대할 수 있다고 보신 것이군요.”
“그렇다. 진 장문인께서 형식적인 배우자로 교에 알리자는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범소가 탄복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진가보를 향해 포권을 하였다.
“영웅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진가보가 손을 저었다.
“지금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오. 그러니 그런 예는 나중으로 미룹시다.”
광 좌사가 물었다.
“그런데 영웅께서는 어떻게 증거를 찾아내려 하시는 것입니까?”
진가보가 웃으며 말했다.
“이미 전갈을 보냈으니 삼 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쯤 나의 사제 하나가 이곳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사제라구요?”
“그는 의신이라 불릴 정도로 의술이 고명하며 세상 모든 독물에 대한 지식을 통달하고 있으니 이번 일에 대해 반드시 그 진실을 밝혀낼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범소와 광 좌사는 기쁜 나머지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단주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진 장문인에게 너무나 많은 신세를 짓게 되었다. 이는 모두 수많은 분쟁과 습격으로 설영단의 인재들이 안타깝게 사라진 것 때문이니 단주로서 너희들을 볼 면목이 없을 뿐이다.”
“아닙니다. 단주님! 단주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이 설영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단주가 진가보를 보며 말했다.
“비록 우리는 중원인들이 마교도라 부르는 도화교라 할 것이나, 앞으로 격뇌검문의 일은 우리 설영단의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여 추후로는 격뇌검문과 생사를 함께할 것이니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진가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광 좌사와 범소 또한 매우 밝은 얼굴로 웃었다.
“자고로 어려운 일을 함께할 벗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설영단과 격뇌검문이 형제가 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라도 손잡고 헤쳐 나가도록 하지요. 하하하!”
* * *
진가보의 말대로 상문의 교도가 말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육청화가 천양정에 도착하였다.
그는 진가보를 만나자마자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니, 자네는 어찌 나를 빙궁에 혼자 남겨 둔 것이야? 내 그리 부탁을 했음에도.”
“미안하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네.”
“그리고 중독된 시신에 사용된 약물을 구별해 달라니? 그것은 또 무슨 소리고?”
진가보는 육청화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큰 호기심이 생겼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혼잣말을 했다.
“으음. 흔적이 남지 않는 독이라?”
그러고는 진가보에게 요청했다.
“지금 그 시신을 볼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 미리 자네가 검시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