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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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네가 섬서 최고란 말이지? (4)
“이번엔 또 어디로 가시는 거죠?”
진가보가 말했다.
“여기서 멀지 않다. 장강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인물인데 빠르기가 그야말로 제비와 같다고 하더군.”
만운이 퉁퉁 부은 손을 어깨에 짊어진 채 투덜거리며 말했다.
“사형은 무슨 유람단을 만드실 작정입니까? 차력사에 어린 돌팔이 의원도 모자라 이번엔 물고기 잡는 어부란 말이에요?”
“재능이 있으면 쓰는 거지 그 직업이나 나이가 무슨 관련이지?”
“그,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환경에 따라 격이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진가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말해 봐라. 너의 격은 어떠한지?”
“저야, 뭐 격뇌검문에 전혀 부족함 없는 인격을 갖추었죠. 사형은 지금 내가 격이 떨어진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아니,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인물들도 격에 있어서는 너에 못지않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느냐?”
만운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게 날 칭찬하는 거래? 아니면 욕하는 거래?”
검운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은 그걸 몰라서 묻는 거예요? 하하하.”
목적지인 어가촌으로 향하는 소로에는 어쩐 일인지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만운이 이상했는지 행인 하나에게 물었다.
“여긴 늘 이렇게 사람이 많이 왕래합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근래 부근에서 산적들이 출몰하여 가까운 산길을 놔두고 별수 없이 이쪽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거랍니다.”
“산적이라구요?”
“네. 아주 흉악한 자들이라 걸리면 재물만 빼앗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난도질해 버리니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에요.”
행인이 가고 난 후 제운이 말했다.
“산적이나 해적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이 정말인가 보군.”
“그러게 말이에요. 지역의 무관이나 관청에서도 완전 손을 놓고 있나 보네요.”
반나절을 더 걸어 도착한 어가촌은 일곱 채의 가옥이 모여 있는 작은 곳이었다.
앞쪽으로는 장강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울창한 산이 있으니 그 풍경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했다.
특히 만운은 이곳의 경치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쉴 새 없이 칭찬과 감탄을 연발했다.
진가보가 마을 어귀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이곳에 만진홍(萬眞紅)이라는 사람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어디에 가야 그를 만날 수 있을까요?”
노인이 잠시 무엇인가를 떠올리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더니 이내 허벅지를 탁 치며 대답하였다.
“아하! 고홍(橋鴻)을 말하는 거군?”
“고홍이요?”
“그렇네. 이곳 사람들은 모두 그를 고홍이라 부르지. 만진홍이라니, 하도 예전에 들어본 이름이라 기억을 떠올리는 데 애를 먹었다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고홍은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날 수가 없네.”
“만날 수가 없다뇨?”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났거든.”
“그가요?”
“그래. 벌써 일 년이 넘었지?”
“도대체 왜 고향을 떠난 건지 아십니까?”
노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이곳에 사는 이들 중 마을을 등지고 싶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세.”
“어째서죠?”
“뻔한 거 아니겠나? 고기는 점점 잡히지 않고 세금은 늘어가니 어찌 이곳에서 살 수가 있겠어?”
그때, 마을 어귀로 걸어 나오던 장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작년에 장강이 넘쳐 물난리가 크게 났었지. 하여 모아놓은 식량이 전부 사라지고 고기마저 잡히지 않으니 집집마다 하루 끼니를 걱정할 지경이었다네. 게다가 새로 부임한 지현은 워낙에 고약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라 이런 상황에도 세금은 꼬박꼬박 걷어갔지. 고홍은 가족이라고는 누이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녀가 물난리 후 퍼져 나간 역병에 걸리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누이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뛰었지.”
사내가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그러나 뭐 뾰족한 도리가 있겠는가? 결국, 누이가 죽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도 세금을 내지 않았단 이유로 그를 끌고 가려던 관원을 그는 한 주먹에 때려죽였다네. 그러고는 그날로 마을을 떠났지. 지금 아마도 고홍의 머리에 적지 않은 현상금이 걸렸을걸세. 쯧쯧쯧!”
진가보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랬군요.”
사제들과 돌아오는 길에 제운이 말했다.
“아까 그 고홍이라는 자 말입니다.”
“그래.”
“저는 어쩐지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검운도 말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관원을 때려죽인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겠으나 오죽하면 그런 비극이 벌어졌겠습니까? 저도 그 고홍이라는 자에게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만운이 말했다.
“이 근방에서 산적들이 많이 출몰한다는 것도 아마 그런 사정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가보가 말했다.
“타고난 악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들은 반드시 목을 끊어야 할 해로운 존재들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만운의 말처럼 대다수의 산적이나 해적들은 그저 가혹한 삶을 피해 모인 자들일 뿐이야. 아무리 산적들을 소탕한다 하여도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은 없어지지 않겠지.”
오후 무렵이 되자 갑자기 큰비가 내려 모든 길이 막혀 버렸다.
결국, 진가보와 사제들은 가까운 산으로 올라가 적당한 동굴을 찾아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나무의 허리까지 잠겨버리니, 격뇌검문의 인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운이 말했다.
“장강이라는 것이 멋진 풍광을 자랑하며 삶의 기반을 제공하지만, 이처럼 두려운 면이 양재하고 있었군. 그래도 이곳이 바위산이라 숨을 곳이 있어 다행이었어.”
만운이 말했다.
“설마 산사태가 나진 않겠죠?”
진가보가 동굴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곳은 안전한 것 같아 보이는군.”
늦봄이라고는 하나 온몸이 비에 젖은 상태이니, 밤이 되자 미친 듯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산속의 모든 것이 젖어 있었으니 불을 피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만운이 검운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사제! 감기라도 걸린 것 같아.”
검운이 그런 만운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무리 추워도 왜 이러세요!”
진가보가 말했다.
“잘되었다. 몸을 움직이면 열기가 발생하는 법! 우리 수련을 시작해 보자.”
만운이 고개를 저었다.
“추워 죽겠다구요. 지금 몸을 펼 수도 없을 지경인데 어떻게 수련을 하란 말이에요?”
그러나 진가보가 노려보자 그는 투덜대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가보는 지금 사제들이 배우고 있던 운기법과는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조식법보다는 행공법에 더 가까웠는데 그 방식이 매우 특이했다.
또한 내력을 많이 소모하지도 않았으니,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기발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행공을 할수록 온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진가보가 말했다.
“이것은 열기를 냉기로, 냉기를 열기로 바꾸는 방법으로 내력이 강해질수록 그 효과는 더욱 뛰어나진다. 내력 고수와 상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실전에서 이것을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예외라 할 수 있겠지.”
만운도 어느새 추위가 사라지고 미미한 열이 단전에서부터 치솟아 오르자 매우 기뻐하며 수련에 열중했다.
아침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비가 심하게 내렸다.
“조만간 이곳을 나가기는 힘들겠는걸?”
만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가보는 전혀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말했다.
“무공 수련을 하면 되는 것이지 뭐, 딱히 이곳에 오래 머문다 하여 아쉬울 것도 없지.”
“그래도 사형! 육포만 먹으면서 매일같이 이곳에서만 지낼 수는 없잖아요.”
“수련을 하려고 일부러 산에 오르는 자들도 있는데 그깟 며칠쯤이야.”
만운이 정색하며 말했다.
“어쨌든 싫어요. 전 검문 체질이지 이런 동굴 체질이 아니거든요.”
다시 하루가 지났음에도 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지난밤보다 더 거세게 퍼붓는 것이 아닌가!
산 아래로 보이는 들판은 물로 가득 뒤덮여 이곳이 땅인지 강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시 삼 일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자 만운이 소리를 지르며 동굴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어서! 어서 폭죽을 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해!”
검운이 그를 붙잡아 말렸다.
“아니, 검문 식구가 얼마나 된다고 이 먼 곳에서 쏜 폭죽을 알아채고 구하러 와요? 제발 좀 진정하세요.”
“아냐! 날 말리지 마! 난 나가야 한다구!”
퍼억!
누군가 그의 견정혈을 누르자 만운이 쓰러졌다.
진가보였다.
“깨어날 때쯤 되면 진정이 되어 있겠지.”
제운이 말했다.
“사형! 육포를 비롯해 챙겨 왔던 식량이 모두 바닥났습니다. 이제 정말로 어쩌죠?”
“어쨌건 이곳을 벗어나긴 해야겠군.”
진가보가 제운에게 말했다.
“검운아! 너는 여기서 만운을 살피고 있거라. 그리고 제운! 너는 나와 함께 동굴 안쪽은 어떤지 들어가 보도록 하자. 동굴 안의 고인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도 있다고 들었으니 혹시 그것들을 찾으면 임시적으로 요기할 거리는 될 수 있겠지.”
불이 없는 상태에서 동굴로 들어서는 것은 사실 누구나 꺼리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인데, 이곳에 고립되어 식량마저도 떨어진 지금은 무엇을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은 점점 좁아졌다.
천정에 붙어 있는 종유석에서는 쉴 새 없이 물이 떨어졌다.
제운이 안쪽으로 한 발 더 내디디는 순간, 무엇인가 허공에서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푸다다다닥!
“으아악! 사형! 이게 뭐예요?”
“놀라지 마! 박쥐다!”
“으히힉!”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신비하게도 동굴 안쪽 곳곳에는 빛을 발하는 암석들이 박혀 있어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우와! 여기는 정말로 멋진데요? 저 보석 같은 호숫물 좀 보세요.”
그가 호수로 가까이 가더니 즐거운 듯 소리쳤다.
“사형! 있어요! 있다구요. 물고기가 있어요.”
제운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이내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진가보가 깜짝 놀라 뛰어들어 갔으나 제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무엇인가 물을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회전하며 아래쪽으로 끌려들어 가는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아직 내력을 되찾지 못한 진가보로서도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력은 운행하여 호흡을 참을 수 있었던 그가 빠르게 판단을 하였다.
‘굳이 전력을 다한다면야 이곳에서 벗어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제운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절대 그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진가보는 몸의 방향을 바꾸어 오히려 물살이 빨려들어 가는 방향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빨려들어 가던 그가 어딘가로 패대기쳐졌다.
철퍼덕!
‘응? 이곳은 뭍인데?’
마른 흙이 만져지자 진가보가 일어섰으나, 약한 빛 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두워 대체 어떤 곳에 떨어진 것인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척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제운이 내는 소리라는 정도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