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일 집착남주가 이상해졌다-106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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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내가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그 1여 년간 내 가족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납치되었을 때, 실신해버렸었다는 에이비는 그 당시에 임신한 상태였었다.
의사의 진찰을 받고서야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던 에이비는, 내 실종으로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내가 고모가 된 것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아이크’였다.
아직 너무 작아서 칼릭스의 주먹만 한 크기인 아이크를 황궁으로 데려오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종종 브록버크 가로 놀러 가곤 했다.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도무지 황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두 시간만 지나면 칼같이 라지프가 나타나 나를 황궁으로 데려가곤 했다.
“라지프 님, 왜 자꾸 이렇게 빨리 오세요? 저는 좀 더 있다 갈게요. 한 시간 후에 다시 오세요.”
“죄송합니다. 황후 마마. 황제 폐하의 명령에 불복종할 순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라지프는 내 죄책감을 이용하곤 했다. 억지로 그를 아올리움에 데려가 칼릭스의 명령에 불복종하게 만든 일을 주구장창 우려먹곤 했으니까.
“아니, 무슨 명령이 그래? 두 시간 만에 황후를 황궁으로 데려오라는 게 말이 되는 명령인가?”
나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고 생각했지만 라지프는 매번 꿋꿋했다.
또다시 두 시간 만에 라지프가 나를 데리러 온 날, 나는 마침내 칼릭스의 집무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칼릭스 님, 아기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요. 어떨 땐 아이크가 두 시간 동안 잠만 자기도 한다고요. 아이크가 깨면 안아도 보고 볼살도 만져봐야 하는데, 두 시간 만에 저를 데리러 오란 명령을 내리시면 어떡해요!”
“그래? 난 딱히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데?”
칼릭스는 정말 그런 적이 없는지, 무슨 말이냐는 듯 눈까지 크게 뜨고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
이상하네. 그럼 라지프가 왜 그런 거짓말을? 그것도 매번?
“그래요? 그럼 왜 울프 님은….”
“울프가 누구…. 아, 라지프….”
칼릭스가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한 게 생각나서 울프 님이라고를 불렀더니 칼릭스가 헷갈려 했다.
아니, 자기도 울프가 어색하면서, 왜 나보고는 울프라고 부르래.
“왜 라지프 님은 매번 두 시간만 지나면 저를 데리러 오죠?”
“일전에 라지프가 그대를 놓친 적이 있지. 그러니 라지프는 그대가 황궁 밖에 있는 걸 불안해하는가 보군.”
“아…!”
그런 거였어?
세상에! 라지프가 그때 내가 납치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느끼고 있었구나.
라지프 정도의 책임감이라면 그가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됐다.
그렇지만 아기는 너무 예쁜데….
아기….
!!!!!!!!!!!!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바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칼릭스 님, 우리도 아기를 가져요!”
아기는 정말 예뻤다. 그렇지만 그 아기는 내 아기가 아니었다.
내 아기가 아닌 조카이기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쁜데, 내 아이이면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아니, 칼릭스를 닮은 아이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말을 하고 보니 아이를 갖는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여태 왜 임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지?
나는 내가 떠올린 기발한 생각에 너무나 기뻐 잔뜩 들뜬 얼굴로 칼릭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어쩐지 좀 얼굴이 굳어버린 것 같은데….
“아, 린. 미안하지만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칼릭스가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태연하게 말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렇군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러다 다행히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를 안 좋아한다고? 아이를 안 좋아해? 왜?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난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칼릭스는 여전히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놀랄 말을 했냐는 듯이.
“칼릭스 님, 아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니…. 그럼 혹시 아이를 낳지 말자는 그런 뜻인가요?”
“응, 그런 말인데?”
허어얼!
완전 어이가 없네.
“칼릭스 님, 저는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요? 아주, 아주 좋아해요!”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나도 내 아이를 낳고 싶다고.
“미안하게 됐군.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반응에 너무나 황당해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이를 만드는 일에는 세상에서 가장 열심인 사람이, 정작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니!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그러다 중대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고 마침내 나는 할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칼릭스 님, 아이를 낳지 않으면 누가 에버레티안 제국의 후계자가 되죠?”
넌 황제잖아. 아들이 있어야지!
“반드시 황제의 핏줄이어야 하나? 황후의 핏줄이어도 되지 않을까? 그게 안 되면 양자를 들여도 괜찮겠지.”
내가 이런저런 소설을 많이 읽어 봤지만, 황후의 핏줄이 후계자가 된다는 말은 처음 듣네!
황제가 아이를 낳기 싫어서 양자를 들인다는 말도 처음 듣고!
“무조건 폐하의 아들이어야 하지요. 안 되면 딸이라도!”
“그건 내가 정하는 거야, 황후.”
갑자기 칼릭스의 목소리가 근엄해졌기에 나는 순간 움찔했다.
저렇게 황제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는 남의 자식으로 하겠다고?
이 사람이!
아니, 왜!
내가 멀쩡히 이렇게 아내로 있는데!
“전 폐하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후계자를 칼릭스 님이 정하든 말든, 저는 제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어요!”
“미안하지만 아이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
나는 납치되고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칼릭스가 재수 없고 뻔뻔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낮이고 밤이고 열심히 만들고 있었던 거 같은데요?”
그러고도 뻔뻔하게, 아이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니?
“뭐… 그렇다고 아이를 꼭 가지는 건 아니니까.”
아, 뒷목!
어쩐지 너무 열심히 피임을 하더라니.
아주 필사적이더라니!
나는 순간적으로 열이 확 뻗쳐올랐다.
그렇단 말이지?
그래! 그럼!
“그럼, 저도 폐하와 별로 한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네요. 오늘부터 제 방에 오지 말아주세요.”
나는 기세 좋게 질러보았다.
이래도 그딴, 아이를 갖기 싫다는 소리를 할 거야?
“그래? 흐음….”
칼릭스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기세등등해진 나는 그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던 말을 철회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내가 정말 큰 벽에 부딪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았어. 그대가 원한다면.”
“!!!!!!!!!! 칼릭스 님….”
“난 그대가 원한다면 뭐든 들어줄 수 있어. 그 정도쯤이야.”
그 정도쯤이야?
그 정도쯤?
저게 낮과 밤, 시도 때도 없던, 빵집 한스에 빙의한 것 같던 칼릭스가 할 수 있는 말일까?
나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먼저 질러버린 말이기에 수습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
이거야말로 혹 떼려다 하나 더 붙인 격이잖아!
아이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는커녕 금욕까지 해야 하다니!
뭐 이런!
*****
그래도, 오겠지?
그래, 올 거야!
안 올 리가 없잖아?
나는 칼릭스가 홧김에 말만 던졌을 뿐, 그래도 밤이 되면 내 방으로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정말로 오지 않았다!
그래, 어제는 첫날이니 어찌저찌 참았겠지.
오늘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야!
올 거야.
꼭 올 거야.
이틀째 밤도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오늘은 올 것이다! 계속 이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일주일째 내 방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의 협박성 도발에 그저 맞대응한 것이라고 믿으려고 했지만, 일주일이 넘어가자 마침내 그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내 방에 다시 오게 하려면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왜?
사태를 깨닫자, 나는 정말 궁금해졌다.
칼릭스는 정말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게 말이 돼?
내가 칼릭스를 이렇게 사랑하고, 칼릭스도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걸 아는데, 어떻게 아이는 갖기 싫을 수가 있지?
낳아보지도 않았는데 왜 싫다고만 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만큼은 도저히 그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내 아이를 원했다.
내 사랑하는 남편, 칼릭스의 아이를.
생각지도 못한 굳건하고 높은 벽에 부딪힌 나는 슬픈 마음에 조카인 아이크를 보기 위해 브록버크 가로 향했다.
아이크는 마침 낮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아기가 깰 때까지 에이비와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래서, 황제 폐하가 너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거니?”
“응, 아이를 정말 원하지 않나 봐.”
“음….”
에이비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한참을 말이 없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얼마 전에 루크에게 들은 말이 기억이 났어. 그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어.”
“?”
“얼마 전에 폐하가 아이크의 대부가 되어준다며 선물을 하사하셨거든.”
“그랬어?”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부라니….
어쩐지 칼릭스가 했던 말, ‘황후의 핏줄이 후계자가 되어도 좋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랬어. 그리고 그때 너희 어머니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셨다고 했어.”
“어머니?”
어쩐지 조금 불안해졌다.
“널 낳은 직후에 돌아가신 거로 알고 있다며, 원래도 몸이 약하셨는지, 출산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인지 물어보셨대.”
“…….”
케일린의 어머니라면….
그래, 내가 그렇게 설정했었다.
몸이 너무 약해서 출산 후 사망하고 말았다고.
!!!!!!!
그래서인 거야?
내가 아이를 낳고 혹시라도 죽어버릴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