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47화
본문
47화
-격뇌검문의 두 아가씨
쌔액!
검이 날아들었으나 신아는 여전히 왕약성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귀찮다는 듯 한쪽 팔을 휘둘렀다.
지이이잉!
그녀의 손바닥이 쾌속으로 들어오는 검의 옆면을 살짝 밀어붙이자 왕약성의 자세가 흐트러져 버렸다.
“아!”
그가 놀라 신음을 내뱉었으나 달려들던 기세를 바로 멈추기는 힘들었다.
균형이 무너진 채 몇 걸음 신아에게로 다가서는 왕약성의 검은 이미 목표를 비껴 나간 상태였다.
퍼억!
신아의 일장이 다시 왕약성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아앙!
그대로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왕약성이 자신의 검마저 놓쳐 버렸다.
관객석에서 엄청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와하하하하!
와아!
“비무 중 검을 놓치다니, 저 애송이가 종남의 제자가 맞는 것인가?”
“창피하다! 들어가라! 들어가!”
“그건 그렇고, 저 소저의 무공이 참으로 놀랍구나!”
검운이 감탄하며 외쳤다.
“우와! 사매가 정말로 대단하군요.”
만운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그런데 말야! 갑자기 들게 된 생각인데, 만약 화운 사매(신아)와 연운 사매(여혜)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검운이 짐짓 진지한 표정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화운 사매가 조금 더 앞서지 않겠어요?”
듣고 있던 여혜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제운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외모는 조금 떨어질지언정 무공은 연운 사매가 더 앞설 것 같은데?”
만운도 가세를 했다.
“사나운 정도로 생각한다면야 연운 사매의 성정은 검문에서… 아니, 강호에서 이길 소저가 없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얌전한 사람이 실력을 숨기면 더 무서운 법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화운 사매가 종남의 제자를 거의 아이 다루듯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무서운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제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지가 않아. 종남이 대단한 무문(武門)이라 하지만 무당에 비할 바가 아니지. 너희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첫날 화운 사매가 무당 제자가 일초도 시전하기 전에 쓰러뜨렸던 것을 말야.”
그러면서 제운이 여혜에게 말했다.
“그렇지, 화운 사매? 난 언제나 화운 사매 편이라구.”
여혜가 화난 표정에서 입꼬리만 올리며 말했다.
“호호호, 당연하지요. 그러나 외모가 조금 떨어져서 무척이나 죄송하네요.”
여혜의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제운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냐! 아냐! 사매! 오해라구. 난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야.”
만운이 상황을 파악하고 여혜를 달래는 데 끼어들었다.
“그래. 우리 연운 사매야 꾸미질 않아서 그렇지 화운 사매처럼 단정하게 꾸미기 시작한다면 아마 눈이 부셔서 감히 아무도 쳐다보지도 못할 거야.”
여혜가 더욱 화가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호호호!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러니 얼마든지 생각하시는 대로 말씀하셔도 돼요. 그리고 지금 전 들은 대로 말한 것뿐이구요.”
진가보는 이런 작은 소란에도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듯, 지금은 종남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객석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개립을 쓰고 있길 잘했군. 신아 사매가 대단한 무위를 보이니 저들도 이쪽을 살펴보고 있잖아? 그들이 나를 알아봤다면 귀찮을 일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뭐, 하지만 언제는 한 번 거쳐야 할 과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종남파 쪽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나온 이는 과거 진가보에게 혼쭐이 난 적이 있는 정후였다.
물론, 그는 규월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중 하나였다.
진가보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 그럴 수 있을 때 편히 지내거라. 때가 된다면 과거의 모든 죗값을 물게 될 테니까 말이야.’
[아!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군요. 충격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주최 측에서 진퇴를 결정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비무의 진행을 관할하는 맹의 심판관 두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잠시 후, 왕약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이미 공포로 물들어 있어 더 이상 싸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일어나긴 했으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아 보입니다. 저래서야 더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정후는 물론, 종남파 제자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돌이라도 씹은 듯했다.
종남파도 이미 일차시를 거쳤으나 왕약성은 오늘이 첫 출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이처럼 추태를 보이니, 정후를 비롯한 종남파 인사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왕약성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주워 들자 신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히익~!”
왕약성은 그대로 검을 집어 던지고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격뇌검문의 만운 못지않은 추태가 연출되는군요. 어째서 올해는 이처럼 함량 미달의 제자들이 영웅 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일까요? 그래도 격뇌검문은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리기라도 했습니다만…. 과연 이대로 끝이 날 것인가요? 아! 종남파에서 기권을 선언했습니다. 이것 참 보기에 안쓰럽군요.]
와아아아!
수많은 갈채가 신아를 향해 쏟아졌다. 신아가 그런 관객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만운이 도취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오! 화운 사매의 자태는… 여신이 따로 없구나! 황홀하다. 정말로 황홀해. 저런 여신과 동문지간이라니…. 만운아!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없구나. 우리 격뇌검문엔 우관제, 좌여신이 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않은가!”
두둑!
여혜가 들고 있던 부채가 손아귀 힘에 의해 박살이 났다.
제운이 깜짝 놀라 만운에게 입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
“쉿! 이런 미친놈! 너 지금 연운 사매…한테 관제와 같다고 한 거야?”
“네?”
만운이 눈을 끔뻑이며 여혜 쪽을 돌아보았다.
여혜의 등이 가녀리게 떨리고 있었다.
“으휴! 멍청한 놈!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다 큰 소저에게 관우와 같다니. 넌 그걸 칭찬이라고 한 거야? 네가 그러면 연운 사매가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 설령 사실이라도 상대의 기분도 생각해 가면서 말을 가려야지.”
여혜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형들! 귓속말을 하려면 제대로 하세요. 전부 다 또렷이 들리거든요!”
“아! 미안, 사매!”
그러나 곧 까먹고 말았는지 신아가 객석으로 돌아오자 만운의 호들갑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운 사매! 사매가 그처럼 대단한 무공을 펼칠 줄이야. 그것도 종남을 상대로 말이지. 난 하늘의 여신이라도 강림한 줄 알았지 뭐야.”
벌떡!
참다못한 여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운이 다급히 물었다.
“사, 사매! 어딜 가려고?”
여혜가 불퉁거리며 말했다.
“그럼 못생긴 관제는 이만 퇴장하도록 할게요. 여신과 함께 재밌게 좋은 시간 보내시구요.”
그러고는 진뢰에게 말했다.
“사부님! 저는 속이 좋지 않아 먼저 퇴장하겠습니다.”
진뢰도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여혜가 이곳에 있어 봐야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몸이 좋지 않다니, 먼저 객잔으로 돌아가 있거라.”
검운이 물었다.
“사매! 나의 비무는 보지 않고 갈 거야?”
“여신으로부터 가호가 충만할 텐데 저 같은 관제가 뭐 필요할 일이 있겠어요?”
그녀가 퇴장하고 난 후 제운이 만운을 나무랐다.
“만운! 너는 상황 파악을 그렇게도 못 하는 거야?”
“저는 생각한 대로 말한 것뿐인데….”
“그러니까! 좀 말이라는 것이 상황을 파악하고 좀 걸러져서 나와야지, 너는 아무 거름막 없이 그냥 배설을 하잖아. 입에서 배설을!”
“뭐라구요? 배설을 한다구요? 쳇! 그런 사형은 뭐 저와 다른 줄 아세요?”
“다르지. 너와는 한참 다르지.”
진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차시도 통과하여 맛난 요리를 사주려고 했는데, 계속 싸우면 저녁밥은 없다.”
만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이구, 사부님! 왜 그러십니까? 오늘 저는 승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말입니다.”
“승리한 이라 해서 먹을 입이 없더냐? 안주면 못먹는것이지.”
싸늘한 진뢰의 말에 곧 만운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아이고! 헤헤헤! 사부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을 때리며 말했다.
“언제나 요놈의 입이 문제입죠. 그러니 이제 입을 봉하겠습니다. 자아, 하압!”
검운이 물었다.
“그나저나 연운 사매를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어도 될까요?”
진가보가 일어나며 말했다.
“연운 사매에게는 내가 가보도록 하지.”
검운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제 비무는요?”
진가보가 말했다.
“이제 두 번의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차시도 통과한 셈이다. 그러니 사제는 마음에서 부담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면 돼!”
“제,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승패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어. 그저 실전에서 사제가 배운 것들을 올곧이 펼쳐 낼 수 있을까만 고민하라고.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지금 우리 격뇌검문에 부족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니 말이야.”
“알겠어요. 사형!”
만운이 말했다.
“사형!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실전 경험을 살려 검운 사제를 잘 지도하도록 하지요.”
진가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운과 신아에게도 부탁했다.
“검운 사제를 잘 살펴줘!”
“당연하죠. 아무래도 만운보다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가보가 진뢰에게 말했다.
“사부님!”
진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수고했다. 어서 연운에게 가보도록 하여라. 한창 예민할 나이인데 저 무식한 소도적 같은 놈들이 함부로 입을 놀려댔으니 속이 상할 게야.”
* * *
여혜는 이미 비무장을 나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녀가 만운을 흉내 내며 혼잣말을 했다.
“여신이 따로 없구나! 황홀하다! 어이구 웃겨! 정말!”
그러나 곧 그녀는 고개를 젓고 나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여혜도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화를 낸 자신에 대해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객잔으로 돌아온 여혜는 검을 찬 채 성큼성큼 대청으로 걸어들어 왔다.
영웅 대회가 한창이라 그런지 대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혜의 눈에 이 층 난간 앞에 자리 잡고 앉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얼마 전 만운에게 창피를 주었던 보화령의 손세경이었다.
‘흥!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저놈과 마주칠 것은 또 뭐야? 저놈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여혜는 냉랭하게 그를 모른 척하고 대청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점소이에게 말했다.
“여기 압화차나 한 잔 주세요!”
점소이가 굽실거리며 오더니 여혜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요리는 안 시키시고 압화차 하나면 되겠습니까?”
“그래요. 그것이면 충분해요.”
“예! 바로 대령하도록 합죠.”
점소이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하하! 이것이 누구요? 격뇌검문의 당돌한 여제자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손세경이 부채를 펄럭이며 계단을 내려왔다.
여혜는 그를 본 체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세경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자 그의 호위를 맡은 무사 다섯이 함께 따라와 여혜가 앉은 탁자를 둘러쌌다.
그중 하나가 여혜를 보고 일갈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는데 대꾸조차 하지 않다니! 이 건방진 계집이!”
“워워! 소저에게 그런 거친 말은 실례라는 것을 모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