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라이즈-7화
본문
00007 특전을 사용하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간신히 눈을 뜨자, 잿빛 벽돌의 소환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통과의례에 들어갈 시간은 오지 않은 모양. 이대로 눈을 감으면 푹 자버릴 것 같아, 나는 끙 차 허공으로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허공에는 확인 전 메시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누운 상태기는 해도 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다시 바닥에 머리를 기대곤 메시지를 읽어 들였다.
『몸 내부에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10포인트 하락합니다.』
『축하합니다. 몸 내부의 노폐물과 불순물을 모두 태웠습니다. 활력이 돌고, 마력의 흐름이 가일층 높아집니다. 체력 2포인트, 마력 6포인트가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영원히 불타오르는 염화. 심장에 화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화정과의 동화율은 현재 100%입니다.』
멍하니 하나하나 읽던 도중이었다. 체력 능력치가 하락했다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지는 메시지들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자, 세라프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었다.
“사용자 김수현. 정신이 들었습니까? 몸은 좀 괜찮으신 겁니까? 사용자 김수현!”
일단 청각은 회복됐다. 자꾸만 생각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내 몸 상태는 너도 알 수 있지 않냐고 쏘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 ───. ───.”
‘뭐, 뭐야? 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목소리는 나오지만 쉰 소리만 샐 뿐이었다. 목이 완전히 나가버린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해도, 여전히 바람 빠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결국 온 몸이 회복될 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사용자 정보창을 불렀다.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특전이 섞인 정보창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 사용자 정보(Player Status) >
1. 이름(Name) : 김수현(0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술 전문가(Secret, Sword Specialist,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자격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 자, 예비 사용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3)
7. 신장 · 체중 : 181.5cm · 75.5kg
8. 성향 : 질서 · 혼돈(Lawful · Chaos)
(변경 전) [근력 94] [내구 92] [민첩 98] [체력 78] [마력 90] [행운 88]
(변경 후) [근력 94] [내구 92] [민첩 98] [체력 70] [마력 96] [행운 88]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 업적(0) >
< 고유 능력(1/1) >
1. 제 3의 눈(Rank : S Zero)
(설명 : 일반적인 눈의 개념을 벗어난 비상식 범주에 해당하는 제 3의 눈(The Third Eye). 굳이 말한다면 본인의 직관력과 연동되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단순히 ‘본다’라는 범주를 벗어나, 현재에 발동하는 모든 현상을 고차원적 사고로 통찰해버린다. 원래는 현재를 벗어난 이상 차원의 현상도 고찰이 가능하지만 본인의 수련 또는 깨달음이 아닌 알 수 없는 힘으로 강제 발현됐기 때문에 2랭크 하락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순수한 불의 기운을 품은 화정의 영향으로 다시 1랭크 상승 보정을 받았다. 사실상 현재의 어떤 것도 사용자 김수현의 눈을 속일 수 없다.)
< 특수 능력(1/1) >
1. 신검합일(Rank : Extra)
검술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이 검이 되고 검이 사람이 되는 경지. 검을 드는 순간 검을 휘두르는 모든 행동에 대해 긍정적인 추가 보정을 받는다. 검의 극한을 깨우치긴 했지만 사용자가 아직 검술의 최고 경지에 이른 건 아니다. 그러나 다년간의 노련한 경험과 수많은 업적 그리고 직업 보정으로 2랭크 상승 보정을 받았다.
< 잠재 능력(4/4) >
1. 백병전(Rank : A Plus)
(설명 : 근접 무기를 다루는 사람에 있어서는 이미 극한을 넘어선 능력. 이쯤 되면 단순 전투 능력이 아닌 인간으로서 획득 가능한 최고봉의 상승 경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근접 전투에 한해서는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 다년간의 노련한 경험과 직업 보정으로 1랭크 상승 보정을 받았다.)
2. 쓰러질 수 없는(Rank : A Plus)
(설명 : 전투를 포기할 줄 모른다.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는 설령 빈사에 이르는 부상을 입었더라도 전투를 가능케 한다.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었을 경우도 전투는 가능하지만 전투력 유지 효과는 그만큼 반감된다.)
3. 심안(정)(Rank : A Plus)
(설명 : 있는 그대로의 외형을 보는 게 아닌, 대상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자신을 관조하고 만물을 살피거나 감지하는 능력 또는 비슷한 작용을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극한으로 다스려진 마음은 S랭크 이하의 정신 오염 마법 아래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4. 전장의 가호(Rank : Extra)
(설명 : 평화를 수호하는 전장의 여신 아테나. 오직 전장 한정으로 발동하며 전장 내 한 명의 병사로서 누릴 수 있는 여신의 축복. 가호를 받은 사용자는 전장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으며, 위기에 몰린 아군의 위치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신성이 담긴 가호를 받았기 때문에, 전장 외 발동으로도 포함해 마법적 행사에 의한 피해를 무조건 감소시킨다.(이는 능력의 랭크와 사용자 본인의 행운 능력치를 적용한 수치로 적용한다.)
사용자 김수현의 행운 능력치는 준수한 수준 이지만, 최고에 이른 가호의 능력으로 적용된 수치보다 1랭크 높은 마법 행사에 대해서는 일부 방어 판정을, 2랭크 높은 마법 행사에 대해서도 감소 방어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잔여 능력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사용자 정보를 모두 읽자 탄성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무작위로 얻은 백병전과 쓰러질 수 없는 은 어차피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능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고 랭크도 괜찮게 나왔다. 무엇보다 예전에 사용하던 능력들인 만큼 익숙한 게 좋지 않겠는가?
단 하나 예상을 벗어난걸 모자라 빵 터진 문제는 체력 능력치의 감소였다. 체력은 모든 능력치를 지탱해주는 기둥역할을 해주는 능력치이다.
체력 70포인트. 기존에 의도했던 출력을 그대로 뽑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탱하는 체력이 70포인트라는 점은 확실히 고민할만한 문제였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자동차로 비유할 수 있다. 설계상 조건은 무척 뛰어나지만, 엔진의 내구도가 굉장히 불안정하다. 만일 엔진이 과열됐을 경우 리 타이어 또는 폭발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세라프와 내가 했던 예상은 각각 절반씩 들어맞은 셈이다.
체력에 대한 고민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지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대한 그러모아 여유 포인트를 확보해야 한다.
‘0년 차이긴 하지만 10년 차 육체를 불러왔으니…. 수련으로 올리기는 어렵겠지.’
어차피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대충 한구석에 밀어 넣고, 지금 당장은 몸을 회복시키는데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라프의 눈총이 점점 더 따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 능력만 봐도 호화찬란한데 여기서 더욱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 ……. …….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약 20분 정도 지난 것 같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었다. 물론 세라프가 알아서 챙겨주긴 하겠지만, 모든 특전을 받은 이후 우리들은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화가 단절된 상태였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서서히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화정의 영향으로 차 올랐던 열기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느낀 기분이었다. 내부를 가득히 메우는 열기가 줄어들수록 몸의 감각도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사용자 정보창은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차분히 몸 내부를 관조했다.
확실히 불이익은 있었다. 그러나 목숨은 붙어있으니 어쨌든 계획은 달성한 셈이다. 그리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만큼, 고비를 넘고 나서 보이는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몸 내부에 구석구석 퍼져있던 노폐물과 불순물을 깡그리 제거했고, 꽉 막혔던 혈도는 모두 뚫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의 흐름이 닿지 않던, 손가락과 발가락 끝의 미세한 경혈 구멍까지 뻥 뚫린 것은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활력이 예전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으며, 마력 흐름의 속도와 운용 효율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동급의 사용자와 전투를 할 시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는 비장의 무기를 몇 개 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후유.”
몸의 감각이 어느 정도 돌아온 것을 느끼자 나는 온 몸 구석구석으로 마력을 보내보았다. 손발 끝까지 쭉쭉 흘러 들어간다. 그에 자신감을 얻어 살며시 오른팔을 움직여보자 이전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마디마디가 결리고 쑤셨지만, 아까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던 상태와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이윽고, 난 끙 차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면으로 고개를 들어 세라프를 응시했다. 그녀 또한 별 감흥은 없는지 고요한 시선을 유지한 채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옷은 이미 넝마라 부르기도 민망할 수준 이었지만, 딱히 부끄러운 감정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앞의 여성은 이성으로 볼 수 없는 천사였으니까.
어깨를 한 번 으쓱인 후, 오른손으로 왼 손목 부분을 톡톡 건드렸다. 시간을 알려달라는 뜻이었다.
“통과의례에 입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세라프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그 순간, 방금 전 나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나는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괜한 말싸움을 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어차피 얻을 것은 모두 얻은 상황이었으니까.
“준비 완료. 전송해줘.”
“사용자 김수현. 몸 상태는 괜찮으신 겁니까.”
“응. 나쁘지 않아.”
“…그럼 바로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한 상태이니, 준비의 방으로 들어가면 최대한 빠르게 행동하는걸 권합니다.”
“네, 네.” 무성의한 대답에 세라프는 훤칠한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곧 가녀린 손가락을 들더니 가볍게 튕기었다.
딱!
손가락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흡사 지우개로 지우는 것 같다고 할까?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언제 어디서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통과의례를 무사히 통과하고,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건투를 바랍니다.”
“세라프. 더 이상의 잔소리는 금물입니다. 다음에 볼 때는 입을 다물길 바랍니다.”
끄긍, 끄그긍.
살짝 빈정댄 순간,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당황하지 않고 시선을 내리자, 다리서부터 어느새 삼분지 이 이상 희미해져 가는 몸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다가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10년만의 재 시작. 이제는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개척할 미래. 그 누구도 잃지 않고 그 누구도 절망하지 않는, 김수현이 바꾸어나가는 미래. 그것을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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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현 체력 언급 내용 삭제.
2. 오타 및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