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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본문

쿵푸벳

2

 

편지를 다 읽고 셋이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게 뭐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쇼타였다. “왜 이런 편지를 여기에 보낸 거야?”

“너무나 고민이 되어서 그랬겠지.” 고헤이가 말했다. “그렇다고 써 있잖아.”

“그건 나도 알아. 왜 고민 상담 편지를 잡화점 우편함에 넣었느냐는 거야. 게다가 망해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잡화점에.”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고헤이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말해본 것뿐이라고. 대체 뭐냐, 이게.”

두 사람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면서 아쓰야는 봉투 속을 들여다보았다. 반으로 접힌 새 봉투가 들어 있고, 받는 사람 칸에는 ‘달 토끼’라고 사인펜으로 적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마침내 그도 입을 열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닐 테고. 이거, 진짜로 상담을 하는 거잖아. 게다가 상당히 심각해.”

“혹시 집을 착각한 거 아닐까?” 쇼타가 말했다. “어디 다른 곳에 고민을 상담해주는 잡화점이 있는데 거기하고 착각한 모양이네. 틀림없어.”

아쓰야는 손전등을 들고 일어섰다. “가게 이름을 다시 확인해보고 올게.”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가게 앞으로 돌아갔다. 흐릿한 간판을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다. 골똘히 시선을 집중해서 확인했다. 페인트가 벗겨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잡화점’ 앞에 있는 글씨는 분명 ‘나미야’인 것 같았다.

다시 안으로 돌아와서 그 얘기를 두 사람에게 해주었다.

“그럼 이 집이 맞아. 하지만 이런 빈집에 상담 편지를 넣다니, 그러고도 답장이 올 거라고 생각할까, 상식적으로?” 쇼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미야라는 잡화점이 어디 다른 곳에 또 있나?” 그렇게 말한 것은 고헤이였다. “어딘가에 진짜 나미야 잡화점이 있는데 간판 이름이 똑같아서 착각한 거 아닐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저 간판의 흐릿한 글씨는 ‘나미야’라는 걸 미리 알지 않고서는 절대 못 알아봐. 그보다…….” 아쓰야는 조금 전의 주간지를 다시 꺼내왔다. “나미야, 나미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봤다고?” 쇼타가 물었다.

“‘나미야’라는 이름 말이야. 분명 이 주간지에 그런 이름이 실려 있었던 거 같아.”

“진짜?”

아쓰야는 주간지의 목차 페이지를 펼쳤다. 쓰윽 시선이 내달렸다. 곧바로 그 눈길이 한 곳에서 멈췄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인기 폭발! 나야미悩み (‘고민’이라는 뜻의 일본말—옮긴이)를 척척 해결해주는 잡화점」이었다.

“바로 이거야, ‘나미야’가 아니라 ‘나야미’지만…….”

그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 실린 것은 다음과 같은 기사였다.

어떤 고민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잡화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 시에 자리한 ‘나미야 잡화점’. 혼자서는 해결 못할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밤중에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으면 그다음 날에는 가게 주인이 집 뒤편의 우유 상자에 답장을 넣어준다.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72세) 씨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한 것은 이 근처 아이들과의 말장난 때문이었어요. 나미야라는 우리 잡화점 이름을 짓궂게 ‘나야미, 나야미’ 하면서 놀리더라고요. 간판에 ‘상품 주문 가능. 상담해드립니다’라고 써 있는데, 아이들이 그럼 나야미(고민) 상담도 해주느냐고 자꾸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야 물론이다, 어떤 것이든 다 받아주겠다, 라고 했더니 정말로 아이들이 고민을 상담하겠다고 찾아오더군요.

우스갯소리처럼 시작된 일이라서 그런지 처음에는 장난기 가득한 상담만 들어왔어요. 공부는 하기 싫은데 성적표에는 모두 ‘수’를 받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는 식이에요. 하지만 나도 고집이 있는지라 그런 상담에도 진지하게 답을 써서 벽에 붙여줬죠. 그랬더니 차츰 진지한 내용이 많아지더군요. 아버지 어머니가 자꾸 싸워서 힘들다든가, 하는 것이었어요. 나중에는 상담 내용을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도록 했습니다. 답장은 가게 뒤쪽 출입문에 달린 목제 우유 상자에 넣어줍니다. 그러면 익명으로 상담하려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편지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언제부터인지 어른들도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넣어주더라고요. 나 같은 평범한 노인네한테 상담을 해봤자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떻든 내 나름대로 열심히 궁리해서 답장을 써드리고 있어요.”

어떤 고민 상담이 가장 많으냐고 물었더니 압도적으로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연애 상담이 나한테는 가장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나미야 씨. 그것이 나미야 씨의 가장 큰 ‘나야미’라고 한다.

기사에는 작은 사진이 딸려 있었다. 틀림없이 이 잡화점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자그마한 몸집의 노인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이 주간지는 그저 우연히 남아 있었던 게 아니라 일부러 챙겨둔 거였어. 자기네 잡화점 기사가 실렸으니까 보관해둔 거라고. 와아, 이건 진짜 특이하다.” 아쓰야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고민을 상담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이라……. 아니, 근데 아직도 상담을 하겠다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 벌써 사십 년이나 지났는데?”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달 토끼’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쳐다보았다.

쇼타가 편지지를 집어 들었다.

“이 편지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혀 있어. 나미야 잡화점이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이 편지글만 보자면 바로 얼마 전에 들은 듯한 느낌이야. 그렇다면 아직도 그런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건가?”

아쓰야는 팔짱을 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좀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치매 걸린 노인네한테서 우연히 들은 거 아닐까?” 고헤이가 말했다. “치매 노인네가 나미야 잡화점이 이 꼴이 난 줄도 모르고 달 토끼한테 그런 얘기를 해준 모양이지.”

“아니, 그렇다고 쳐도 자기가 직접 와서 이 잡화점 꼴을 봤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감을 잡았을 거 아냐.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라는 걸 한눈에 척 알아봤을 거라고.”

“그럼 이 달 토끼라는 여자가 머리가 좀 이상해진 모양이네. 너무 고민하다가 노이로제에 걸린 거 아닐까?”

아쓰야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이 쓴 편지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글쎄 지금 내가 그걸 생각하고 있잖아.”

그러자 쇼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아직도 하는 건가?”

아쓰야가 쇼타를 보았다. “뭘?”

“고민 상담 말이야. 이 집에서.”

“이 집에서? 대체 무슨 얘기야.”

“지금 이 잡화점에는 아무도 살지 않지만 상담 편지는 계속 받고 있다는 얘기야. 주인 할아버지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가끔 편지를 가지러 오겠지. 그리고 답장은 가게 뒤편 우유 상자에 넣어둔다. 어때, 그러면 앞뒤가 맞잖아.”

“그야 앞뒤가 맞기는 한데, 그렇다면 그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얘기가 돼. 진즉에 백 살하고도 십 년이 더 지났단 말이야.”

“그럼 대를 이어서 하는 건가?”

“하지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전혀 없어.”

“굳이 집 안에 들어올 것도 없어. 셔터 문만 열고 편지를 가져갈 수 있잖아.”

쇼타의 주장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일단 확인해보자고 셋이서 가게로 내려갔다. 하지만 셔터는 안쪽에서 용접을 해서 열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제기랄, 하고 쇼타가 내뱉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세 사람은 안방으로 돌아왔다. 아쓰야는 ‘달 토끼’가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어떡하지?” 쇼타가 아쓰야에게 물었다.

“에이, 신경 쓸 거 없어. 아침에는 어차피 이 집을 떠날 건데.” 아쓰야는 편지를 봉투에 넣어 방바닥에 휙 던졌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촛불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 어떻게 할까?” 고헤이가 우물우물 말했다.

“뭘 어떻게 해?” 아쓰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올림픽 말이야. 포기할까?”

아쓰야는 어이없다는 듯 내뱉었다. “내가 알 게 뭐야?”

“포기하지 않을 거 같은데?” 널름 대답한 것은 쇼타였다. “연인이라는 남자는 이 여자가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잖아.”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암에 걸려서 곧 죽을 지경이야. 그런 판에 아무렇지도 않게 훈련을 받을 수 있겠어? 어쨌든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게 좋지. 그 남자도 사실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거야.” 웬일로 고헤이가 강경한 어조로 반대 의견을 펼쳤다.

“난 그건 아니라고 봐. 이 남자는 여자 친구가 멋지게 경기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필사적으로 암과 싸우고 있어. 최소한 그날까지는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거야. 근데 여자 친구가 덜컥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 더 이상 살맛도 안 나겠지.”

“근데 이 편지에도 적혀 있지만 여자가 훈련에 집중을 못하겠다잖아. 그럼 결국 올림픽 대표로 뽑히지 못할 거야. 남자 친구도 못 만나고 올림픽 대표도 못 되고, 그거야말로 설상가상이잖아?”

“그러니까 이 여자는 어떻게든 열심히 훈련에 집중해야지. 괜히 이래저래 고민할 때가 아니야. 남자 친구를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훈련을 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에이, 하고 고헤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 그렇게는 못할 거 같은데.”

“너한테 하라는 게 아니야. 여기 이 토끼 씨한테 하라는 거지.”

“아니, 난 내가 못하는 걸 남한테 하라고는 못해. 쇼타, 너라면 어떨 거 같아? 할 수 있겠어?”

고헤이의 질문에 쇼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부루퉁한 얼굴을 아쓰야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아쓰야, 너는 어때?”

아쓰야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너희들, 지금 뭘 그리 심각하게 따지는데? 그딴 거, 우리가 고민할 필요 없다니까.”

“그럼 이 편지는 어떡하고?” 고헤이가 물었다.

“어떡하기는, 뭘?”

“그래도 뭔가 답장을 해줘야지.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뭐야?” 아쓰야는 고헤이의 둥근 얼굴을 쏘아보았다. “답장을 해?”

고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답장은 해주는 게 좋지. 그게, 우리 마음대로 편지를 뜯어봤잖아.”

“뭔 소리야, 지금? 이 집에는 원래 아무도 없었어. 그런 곳에 편지를 넣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 답장을 못 받는 게 당연하다고. 쇼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쇼타는 턱을 쓰다듬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렇지? 그냥 내버려둬.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고.”

아쓰야는 가게로 내려가 창호지 통을 몇 개 들고 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

“이거 깔고 어서 자라, 자.”

생큐, 라고 쇼타는 말했고 고헤이는 고마워, 라고 말하고 창호지 통을 받아 들었다.

아쓰야는 창호지를 바닥에 펼치고 신중하게 그 위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고 자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전혀 움직이는 기척이 없는 게 신경이 쓰여서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창호지 통을 껴안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함께 갈 수는 없나?” 고헤이가 중얼거렸다.

“누가?” 쇼타가 물었다.

“남자 친구 말이야, 병원에 있다는. 이 여자가 합숙 훈련이나 원정 훈련을 갈 때 남자 친구하고 함께 가면 내내 곁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고 시합에도 나갈 수 있어.”

“에이, 그건 어렵지. 환자잖아. 게다가 의사가 반년밖에 못 산다고 선고한 암 환자야.”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건 아직 모르잖아. 휠체어를 탈 정도만 되면 데려갈 수도 있어.”

“그럴 수만 있다면야 이렇게 고민을 하겠어? 아마 내내 누워만 있고 돌아다니지는 못할 거야.”

“그럴까?”

“그렇다니까. 틀림없어.”

야야 하고 아쓰야가 목청을 높였다.

“대체 언제까지 그런 쓸데없는 소리들을 할래? 그냥 내버려두라잖아.”

두 사람은 그제야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곧바로 쇼타가 얼굴을 들었다.

“아쓰야, 네 말도 물론 잘 알겠는데, 왠지 이대로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어. 이 달 토끼라는 여자,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잖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지 않아?”

아쓰야는 흥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우리 같은 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돈도 없지, 가방끈 짧지, 백그라운드도 없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쩨쩨하게 빈집이나 털고 다니는 정도야. 아니, 그것도 원래 계획한 대로 하지도 못했어. 어렵게 돈 되는 물건을 털어 왔나 했더니만 도주용 자동차는 고장이 나고, 그 바람에 이런 먼지 구덩이에 누워 있는 거 아니냐.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고민을 상담해주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아쓰야가 줄줄이 쏘아붙이자 쇼타는 목을 움츠리듯이 고개를 숙였다.

“빨리 잠이나 자. 날 밝으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야. 그 틈에 섞여 도망치자고.” 그렇게 말하고 아쓰야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윽고 쇼타가 창호지를 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작이 한없이 느렸다.

“쇼타…….” 고헤이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아무튼 뭔가 좀 써볼까?”

“뭘 써?” 쇼타가 물었다.

“그러니까, 답장 말이야. 이대로는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바보냐, 너?” 아쓰야가 말했다. “그런 게 마음에 걸려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흥 하고 아쓰야는 내뱉었다. “정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 애가 왜 저렇게 띨띨한지.”

고헤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글씨 쓸 만한 거 없나.”

“가게에 문구류가 있었던 거 같은데.”

쇼타와 고헤이는 가게로 내려가 잠시 부스럭부스럭하다가 돌아왔다.

“쓸 거, 있어?” 아쓰야가 물었다.

“응, 사인펜은 모두 말라버려서 못 쓰지만 볼펜은 잘 나와. 그리고 편지지도 있어.” 고헤이가 기쁜 표정으로 대답하더니 옆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 편지지를 펼쳐놓고 의자에 앉았다. “자아, 뭐라고 쓸까.”

“방금 네가 말했잖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렇게 쓰면 되겠네.” 아쓰야가 말했다.

“달랑 그것만 쓰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

아쓰야는 쯧쯧 혀를 찼다. “그럼 네 맘대로 해.”

“아까 그건 어떨까? 남자 친구도 함께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거.” 쇼타가 말했다.

“그게 가능하면 이런 식으로 상담도 안 할 거라고 한 건 쇼타 너잖아.”

“아까는 그렇게 말했지만, 일단 확인은 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고헤이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아쓰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난 모르겠다.” 아쓰야는 얼굴을 홱 돌려버렸다.

고헤이는 볼펜을 들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다시 아쓰야와 쇼타를 쳐다보았다.

“편지 첫인사, 어떻게 쓰지?”

“그래, 뭔가 있었어. 계절이나 날씨 인사 같은 거.” 쇼타가 말했다. “야, 근데 그런 건 쓸 필요 없어. 여기 상담 편지에도 그런 인사말은 없잖아. 그냥 메일 보내듯이 하면 돼.”

“그렇구나, 메일이라고 생각하고 쓰면 되겠네. 첫머리는, 음, 메일, 이 아니라 편지 잘 받았습니다, 라고 써야겠다. 편, 지, 잘, 받, 았, 습, 니, 다…….”

“소리 내서 읽으면서 쓸 거 없어.” 쇼타가 주의를 주었다.

고헤이가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소리가 아쓰야의 귀에도 들어왔다. 상당히 꾹꾹 눌러쓰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다 됐다면서 고헤이가 편지지를 들고 다가왔다.

쇼타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으이그, 어떻게 글씨가 이 모양이냐.”

아쓰야도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정말 악필이었다. 게다가 한자는 전혀 없었다.

편지 잘 읽었습니다. 힘드시겠네요. 당신의 고민은 충분히 잘 알았습니다.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는데, 당신이 전지훈련을 받으러 갈 때 남자 친구분도 함께 데려가면 되지 않을까요? 별로 좋은 충고를 해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어때?” 고헤이가 물었다.

“뭐, 이만하면 괜찮은데?” 쇼타가 대답하면서 아쓰야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지?”

“아무렇게나 해.” 아쓰야가 대꾸했다.

고헤이는 편지지를 정성껏 접더니 봉투 안에 들어 있던 반신용 편지 봉투에 넣었다.

“지금 가서 우유 상자에 넣고 올게.”

고헤이가 뒤쪽 출입문으로 나갔다.

아쓰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우리가 지금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의 고민거리나 상담해줄 때냐고. 쇼타, 너까지 한편이 되어서 대체 뭐하는 짓이냐?”

“그런 소리 하지 마.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

“뭐야, 가끔은, 이라니?”

“아니, 언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줄 일이 있겠냐고. 누가 우리한테 그런 상담을 하겠어. 아마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얘기야.”

흥 하고 아쓰야는 다시 코웃음을 쳤다. “이런 걸 두고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뛴다는 거야.”

고헤이가 돌아왔다.

“우유 상자 뚜껑이 뻑뻑해서 잘 안 열리는 통에 힘들었어. 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거 같아.”

“당연하지. 요즘 세상에 누가 우유 배달을…….” 누가 우유 배달을 시키겠냐고 말하려다가 아쓰야는 중간에 멈췄다. “야, 고헤이, 장갑 어쨌어?”

“장갑? 저기 있는데?” 식탁 위를 가리켰다.

“너, 장갑은 언제 벗었어?”

“글씨 쓸 때 장갑 끼고 쓰기가 힘들어서…….”

“야, 이 바보야!” 아쓰야가 벌떡 일어섰다. “편지에 지문이 찍혔으면 어쩌려고 그래!”

“지문? 왜, 그러면 안 돼?”

태연한 얼굴로 되묻는 고헤이의 동글동글한 얼굴을 아쓰야는 찰싹 때려주고 싶었다.

“이제 곧 경찰에서 우리가 여기에 숨었던 걸 알게 돼. 우유 상자에 넣어둔 답장 편지를 달 토끼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가져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래? 거기서 지문을 채취하면 우리는 한 방에 날아간다고. 너, 교통 위반으로 지문 채취당한 적 있잖아.”

“아차, 깜빡했네.”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들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쓰야는 손전등을 들고 큰 걸음으로 주방을 가로질러 가게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우유 상자는 뚜껑이 꽉 닫혀 있었다. 고헤이의 말대로 분명 뻑뻑했다. 그래도 낑낑거리며 열었다.

아쓰야는 안을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뒷문을 열고 안을 향해 물어보았다. “야, 고헤이, 편지 어디다 넣었어?”

고헤이가 장갑을 끼면서 나왔다.

“어디냐니, 거기 그 우유 상자에 넣었지.”

“없는데?”

“엇, 그럴 리가…….”

“넣는다면서 밑으로 떨어뜨린 거 아냐?” 아쓰야는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나무 상자 아래 땅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럴 리 없어. 내가 틀림없이 넣었다니까.”

“그럼 어디로 사라졌어?”

글쎄 하고 고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우당탕하는 발소리가 나더니 쇼타가 뛰쳐나왔다.

“왜, 왜 그래?” 아쓰야가 물었다.

“가게 쪽에서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우편함 밑에 이게 떨어져 있었어.” 쇼타가 새파래진 얼굴로 내민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아쓰야는 숨을 헉 삼켰다. 손전등을 끄고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 옆으로 돌아 나갔다. 그늘 뒤에 숨어 살짝 가게 앞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인적은 없었다. 누군가 지나간 기척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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