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4.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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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화 〉 124. 모인다.
* * *
“뭔 소릴...”
느닷없이 소름 돋는 말을 하는 한지아의 발언에 당황하고 말았다.
갑자기 죽이긴 뭘 죽여.
....
솔직히..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심지어 아까 담배를 사러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정말 최후의 최후로 간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아직은 때가 이르다.
“내가 그 년들을 죽여버리면 태양이 네가 나를 믿어줄 거고, 너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어. 만약 내가 그 년들을 죽이고 잡혀가게 된다 한들 태양이 너에게 손해는 전혀 없잖아.”
“그게 무슨...”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어차피 한지아가 강서연과 박아영을 죽여버리고 그대로 잡혀가 버린다고 해도,
나에게 오는 손해가 무언가 있는 것도 아닌 매력적인 제안.
...
이라고 겉으로는 보였다.
하지만 그 조건으론..
“잠깐만.. 한 대만 더 피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니, 강한 담배가 땡겼다.
그렇기에 나는 당장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그대로 입에 물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인데.”
“일단 담배 좀 피고.”
재촉하는 한지아의 말에 그런 대답을 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우....”
그래도 한 번 폈다고, 약간 익숙해진 느낌이다.
잠시 담배를 물며 눈앞에 나를 지켜보는 한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래. 겉으로는 나에게 전혀 손해가 없어 보이는 매력적인 제안.
그냥 네가 나머지 애들 다 죽이고 감방 갔다 오면 모든 게 쨘~ 하고 해결.
하지만, 그 제안에 조금 걸리는 점이 하나 있는데.
....
결국 내가 생각하는 얀데레들이라고 한다면, 한지아 너도 포함이란 말이지.
그래. 지금 나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점에서만 보면, 아직 그렇게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너희 셋 전원 다 별로란 말이지.
만일, 한지아가 그 둘을 죽인다는 가정을 해보자.
과연 한지아가 순순히 잡혀가려고 할까?
내 생각으론 전혀.
내게 숨겨달라고 하던, 같이 도망가자고 하던 일단 절대로 죽인 후 순순히 죗값을 받으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둘이 오순도순 같이 살자는 그 제안은 모순이다.
매일매일이 도망자 생활.
그런 와중 끝내 잡혀간다 치자고.
그런데 네가 과연 잡혀간 뒤 조용히 형을 다 받고 나오려 할까?
만약 정말 무슨 방법이 없어서 그냥 옥살이를 한다고 치자고.
그때 이미 나는 이 빌어먹을 공략을 전부 해치우고 돌아 가버릴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한지아 너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
만일 지금 상황이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들, 옥살이 중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라며,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난리를 피우거나 각성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이게 말이 쉬워 그때까지 공략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거지.
만일 공략을 하지 못했다면?
그럼 결국 지금의 나와 강서연 사이의 관계랑 뭐가 그리 다른 건데?
“후우...”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한지아를 바라본다.
솔직히 그 제안은 거절이다.
하지만, 지금 또 여기서 대놓고 거절한다면....
“대답, 안 해줄 거야?”
이런 나의 고민에 대답을 재촉하는 한지아였다.
기다려봐. 나도 지금 엄청난 고민에 휩쓸려 있으니까.
계속되는 한지아의 재촉에 나는 강력한 기세로 담배를 빨아들였다.
하... 미치겠군.
이럴 바에 그냥, 채아의 말이나 듣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게 맞는 거였는데.
계속해서 밀려오는 후회였다.
이걸 지금 어쩌면 좋을까...
2.
“........”
일단은 원래 오빠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여기로 돌아온다고 그 년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
하지만, 역시 여기 아니면, 학교가 그 얀데레년들이랑 만나기 가장 좋은 장소였으니까.
“....빨리, 만났으면, 좋겠, 는데.”
이미 결심을 마친 상태였기에 주머니에 있는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후드를 눌러쓴다.
아무리 살인을 결심했다곤 하지만 조금의 두려움이나 주저가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전에 조금 하긴 했었는데.
이상하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뭐, 평소의, 상태를, 보면.”
그런 자신도 모를 침착함에 작은 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지.
어차피 평소에도 별다른 감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나였다.
어차피 나의 목표는 오빠가 그냥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그게 전부다.
오빠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이롭다.
이런 병신같은 세계에 오빠가 계속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내가 어떻게 해서든 오빠를 돌려보내고야 말겠다.
“.....”
그런 생각을 하며 우중충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가?
뭐, 차라리 비가 내려서 그년들의 피가 씻겨 내려간다면 오히려 좋았다.
“...오빠. 이번엔, 반드시.”
지금까지 계속해서 실패만 해왔던 내 계획들이었다.
솔직히 오빠가 트롤링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곤 하지만.
그런 것보단 오빠가 무슨 짓을 하던, 항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려는 이 세상이 나쁘다.
“....일단,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으, 려나.”
그런 굳은 결심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솔직히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광경이었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계획을 짜서 무언가 만날 확률을 높여보려 할 테지만.
그렇게 틀어박힌 상태에서 강서연, 그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학교에 다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설마 아직도 이 집으로 확인을 하러 올지 어떨지.
단순히 운에만 맡겨버린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믿고, 있어.”
지금 그년들의 상황이 어떤지,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그런 전혀 알지도 못하고, 생각대로 할 것이라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게 있다면.
강서연..
강서연 이 년이 오빠에게 집착하는 미친년이라는 사실 하나였다.
그렇기에, 언제가 될지 어떻게 될진 몰라도.
결국에 이 집을 다시 찾아와 확인해보려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니까 오면 죽인다.
솔직히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괜히 그냥 그 상황만 어떻게든 넘기고 공략을 하고 싶다는 오빠를 도와주려 빙빙 돌아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이다.
증오스럽다.
밉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집 앞을 괜히 서성거려본다.
누가 보면 수상한 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선 따위 상관없다.
어차피 이쪽은 지금 당장 살인을 저지르려는 살인미수자.
수상한 게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후드를 눌러쓴 채 주변을 둘러보자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
강서연... 이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그 년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시간에 이런 곳을 지나갈 인간이 없다.
역시 내가 그 셋 중 유일하게 믿고 있는 여자, 강서연이었다.
어쩌지? 속으론 웃고 싶은데 웃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분명 나는 지금 기쁘고 실소라도 짓고 싶은 심정인데 왜?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좀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이 집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3.
“분명히 여기 근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알려준 장소로 찾아온 나는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왜 보이지 않는 거야? 왜?”
이럴 리가 없다.
며칠 만에 얻어낸 정보인데.
왜? 어째서? 그럴 리가 없잖아?
보통 이런 전개에서는 끝끝내 정보를 얻어서 찾아왔다면 결국 극적으로 만나게 돼 있는 거잖아.
물론, 보통 그런 식의 전개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이뤄지긴 하지.
그리고 여긴 시궁창인 현실이고.
하지만..
그래도..
원래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미쳐버린 전개를 보이는 게 현실이잖아?
그게 현실의 재미있는 점이잖아.
“걱정마. 태양아. 내가 어떡해서든 널 찾아내 만날 테니까.”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이 근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없다.
태양이는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혹시나 어디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거라고 한다면.
만날 때까지 여길 돌아다니면 결국엔 만나게 되겠지.
금발의 태닝 모습인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스타일의 너를 내가 놓칠 리 없어.
우린 결국 만나게 되어있는 거야.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왜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았는지.
왜 힘든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는지.
왜 나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는지.
전부 오해였다고, 무슨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한 번 다시 시작해보는거야.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직 늦지 않았어.
태양이 네가 마음대로 도망갔으니 나도 내 마음대로 태양이 너를 붙잡을 거야.
그렇게 서로 마음대로 했을 때 누가 이기는지 승부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
마음대로 승부.
그러니까 누구의 마음이 더 큰지에 따라 결정 나는 거지?
그러면, 내가 태양이 널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 내가 이길지도?
“흐후훗..”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 스스로를 달래는 다짐과 함께 나는 조금 더 이 근처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왜? 어째서!”
그렇게 근처를 더 둘러보던 와중, 갑작스럽게 들리는 고함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