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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본문

쿵푸벳

***

봄밤은 그윽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세정은 벽에 기댄 채 커다란 창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창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벚나무 꽃잎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구름에 달이 숨어 어두운 밤이었지만 시야는 깜깜하지 않았다. 부풀어 만개한 벚나무에 달린 꽃잎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잘 보였다. 그녀를 위해 지훈이 나무 하나하나마다 조명을 달아 준 덕분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으니, 차를 달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잉.

지훈에게서 온 전화인가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상대는 다른 사람이었다. 세정은 한숨을 쉬며 지훈의 누나인 지민이 건 전화를 받았다.

“네, 안세정입니다.”

- 그 새끼, 갑자기 왜 지랄인데?

“무슨… 일 있으셨나요?”

인사도 없이 날카롭게 톡 쏘는 목소리에 세정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되물었다. 전화기 너머 클랙슨 소리와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걸로 보아 지민은 차 안인 듯했다.

- 우리 도경 브랜드 모델 알지? 강재준이라고.

“아, 네….”

모를 수 없는 이름을 듣자마자 세정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듯 작아졌다. 불안한 예감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소리 없이 입술을 가로로 늘였다.

- 뜬금없이 전화해서 강재준 전속 계약 당장 취소시키라고 개 짖는 소리를 하잖아. 그 자식 네가 광견병 주사 맞힌 거 아니었어? 무슨 헛소리냐고 묻는데 끊기 직전에 그 새끼 파묻어 버릴 거라고 살벌하게 지껄이던데.

“아… 죄송합니다. 지훈이가 조금 이상한 오해를 한 모양이에요.”

휴대폰 너머로 지민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담뱃불을 붙이는 소리와 함께 입술 새로 발음이 어설픈 목소리가 이어졌다.

-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아니 지금 우리 브랜드 얼굴이 된 애를 대체 어떻게 잘라? 그게 말이야 개똥이야, 또라이 같은 새끼!

기승전결의 단계를 밟듯 점점 높아지는 지민의 말투가 귀여워 세정은 그 와중에 쿡 웃음이 나는 것을 애써 참았다.

“죄송해요, 괜히 신경 쓰시게 해서.”

지민이 휴대폰 너머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피우며 조금 진정한 듯한 목소리가 흘렀다.

- 네가 죄송할 게 뭐 있겠니. 내가 그 자식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 봐도 훤하지. 아무튼, 네가 고생하는 건 알지만 앞으로도 쭉 고생 좀 해 줬으면 해. 너 아니면 그런 미친 종자를 대체 누가 감당하겠니?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서슴없는 말투로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것도 지훈의 가족답다는 느낌이었다. 10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무척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만남이 한두 번씩 늘어 갈수록 이유 없이 친근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녀와 지훈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훈이한테 제가 잘 이야기할게요. 걱정 마세요.”

- 걱정은 무슨. 그나저나, 너. 필요한 건 뭐 없어? 생일 선물로 회원권 끊어 준 건 왜 안 써? 피부 관리 안 해? 아님 거기 맘에 안 들어?

“아뇨, 그게 시간이 별로 없어서….”

- 나 지금 그 호텔 주인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불만 있으면 다 말해. 아아. 열받아, 진짜. 지가 뭔데 감히 사람을 오라 가라야?

지훈은 아무래도 지민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타이밍에 그녀를 건드렸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하나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지민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아, 이런 날에는 꼭 차도 안 막히지.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세정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뚝 끊긴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길게 한숨 쉬듯 웃었다.

“하아….”

바람이 불어와 창밖의 벚나무에서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축축해지는 느낌에 세정은 몇 번이나 확인한 휴대폰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지훈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도지훈. 진짜, 철 좀 들어라. 응?”

휴대폰 배경 화면을 보며 세정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한 팔로 끌어안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지훈의 표정은 오만함과 고집스러움 그 자체였다.

웨딩 사진을 이렇게 제 맘대로 찍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랑과 신부의 물리적 거리는 30센티 이하. 신부의 시선 처리는 항상 신랑에게로. 물론 지훈 역시 드레스를 입은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문제는 손도 떼지 않았다는 데 있었지만.

“그렇게 신랑 신부님이 서로만 껴안… 바라보고 있으면 웨딩 촬영이라기보다 스냅 사진의 느낌이 강해요.”

“어차피 앨범은 나만 볼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벨벳 소파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포토그래퍼에게 반문하던 순간 찍힌 사진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중에는 포토그래퍼도 그의 고집에 두 손 두 발을 다 드는 바람에 그녀의 웨딩 사진은 배경만 바뀌었을 뿐 포즈는 온통 지훈에게 끌어안겨 뒹구는 것들뿐이었다.

“못 말려, 정말. 넌.”

세정은 피식 웃으며 손톱으로 그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사진 속 지훈의 표정이 조금 더 심술궂게 변하는 것 같은 기분에 이내 손끝으로 살살 어루만져 주었을 때였다. 휴대폰이 손 안에서 부르르 강하게 진동했다.

“어.”

세정은 서둘러 지훈에게서 온 파일을 열었다. 다운로드가 끝난 PDF 파일은 강재준을 모델로 한 광고 기안에 광고주의 사인이 된 최종 서류였다. 그를 닮아 선명하고 날카로운 필체의 도지훈, 세 글자를 바라보며 세정은 웃으면서도 치, 하고 입 속으로 작게 내뱉었다. 그가 고집을 꺾어 준 것이 그로서는 최대한의 양보라는 걸 세정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달랑 서류 한 장이라니. 이왕 메시지를 보내는 김에 적어도 세정아 미안해, 라든지 세정아 보고 싶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하긴. 내가 너한테 바랄 걸 바라야지.”

세정은 기쁜 표정으로 휴대폰을 소중히 붙들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만개한 꽃잎들이 휘날리는 벚나무 뒤에는 가을이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드는 단풍나무들이 주르륵 심겨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어느 계절에 와도 늘 아름다웠다. 세정은 그것이 그녀를 생각한 지훈의 배려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이곳은 수년 전, 지훈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그녀와 함께 요양을 했던 별장이었다.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세정은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쓸모없었는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녀가 지훈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솔직하게 그를 받아들였던 시작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에 오면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이 들었다.

그녀에게 약한 모습은 죽어도 보이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재활을 하던 지훈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미간이 시큰거리며 콧등이 간질거리는데.

“바보.”

세정은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노려보며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지이잉.

손에서 다시금 강력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지훈이었다. 그럼 그렇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메시지를 확인하던 세정의 예쁜 이마에 주름이 확 잡혔다.

「너 없었으면 다리 박살 나고 깨어났던 그날, 난 바로 병원 창문 열고 뛰어내려서 자살했어.」

휴대폰을 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떻게 말을 해도 이런 끔찍한 소리를 할 수가 있을까. 아직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손이 떨리고 차가워지며 심장이 아플 정도로 거칠게 뛰는데. 이건 반칙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반칙이다.

세정은 입술을 잘근 세게 깨물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은 행동이었다. 지훈은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야, 도지훈!”

- 사랑해.

휴대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마자 지훈이 낮게 내뱉었다. 사랑 고백의 타이밍이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되었다. 지금 이렇게 나온다고 해서 그녀의 분이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세정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씩씩거리는 채로 말을 이었다.

“넌 정말 나이를 허투루 먹었지? 어떻게 말을 해도 그딴 소리를 해? 내가 그런 메시지 받고 도대체 무슨 기분이 들 것 같아?”

- 열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당장 나한테 전화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겠지.

세정이 인상을 찌푸린 채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지훈이 눈앞에 있다면 정말 그 얄미운 면상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런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

- 협박 아니고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팩트라고.

지훈은 차분했지만 오히려 불안해서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은 세정이었다. 그녀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휴대폰을 귓가에 바짝 붙였다.

“뭐, 뭐라고?”

“나는 너 없으면 죽어.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미친놈처럼 밟다가 저번처럼 차 안에서 개박살 날지도 몰라. 운이 좋아서 즉사하면 적어도 네 앞에서 추한 꼴은 더 이상 안 보이겠지.”

“야… 너 지금…!”

그가 조용히 내뱉는 폭탄 같은 말에 세정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성격 뻔히 알면서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카드로 날 협박하니까 기분 좋아? 이제 만족이 돼?”

분노는 갑작스레 꼬리를 감추고 그 자리에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들며 초조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뭐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강재준 일로 전전긍긍했던 것이 하등의 쓸모도 없는 일로 여겨졌다. 늘 예상을 뛰어넘는 짓만 하는 지훈이었다. 불안은 삽시간에 무게를 늘려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지훈이 그녀에게 보이는 감정의 형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소유욕이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으니 타고난 성정을 쉽게 바꿀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매번 쓸데없는 갈등을 겪는 것이 싫어서, 해도 해도 너무한 지훈의 고삐를 붙잡기 위해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훈아.”

세정은 대답 없는 그를 기다리며 불안함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일에 관한 건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설득했어도 됐을 일이었다. 휴대폰 너머로 지훈이 짧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길지 않은 숨소리에서도 그가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정은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지훈아. 왜 대답 안 해….”

미간이 시큰거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후회와 미안함이 짙게 밀려들었다. 진심이 아닌 무리수를 두면서 지훈을 제 손안에 통제하려 한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녀는 말라붙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땀이 나는 손에서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바꿔 들었다.

“나 사라진 거 아니거든?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하겠어. 너 설마 운전 중인 건 아니지? 있잖아, 나 지금 여기 어디냐면….”

- 어디긴 어디야.

재빨리 설명하려는 세정의 말을 지훈이 가볍게 잘랐다.

“도지훈 눈앞이지.”

“뭐?”

너무나 가깝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정이 쇳소리를 내며 뒤를 확 돌았다. 문 앞에 서 있는 지훈의 모습에 창밖에서 환하게 비쳐 오는 꽃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너, 진짜…. 야!”

지훈이 그녀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걸 보며 세정 역시 그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가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기곤 힘주어 품에 안았다. 탄탄한 가슴에 얼굴이 닿자 두근두근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세정의 얼굴을 타고 번졌다. 오래전부터 그녀의 코끝을 사로잡았던 특유의 향수 냄새, 그리고 지훈의 체취가 섞이자 기분 좋은 안정감이 들었다.

“놀랐잖아…!”

“눈물이 글썽해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버벅거리는 거 보니까 아직 남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긴 한가 보네. 안세정 부장님.”

지훈이 그녀를 마주 보고 선 채,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혹시나 지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걸 보면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못된 말만 내뱉는 게 얄미워서 그의 딱딱한 등을 아프게 꼬집어 보았지만 지훈은 별 반응도 없었다.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다고 생각해?”

지훈이 그녀의 뒤통수를 쓸어내리며 귓가에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세정은 그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빠져나온 후, 그를 올려다보며 말간 얼굴로 물었다.

“너, 혹시 나 미행했니?”

지훈이 유백색 치아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내가 그렇게 더티 플레이를 할 것처럼 보여?”

“응. 그렇게 보여.”

세정이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훈이 짙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민망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제스처였다.

“요즘 블랙박스도 잘 나오는데 내가 뭣 하러.”

그럴 줄 알았다. 본인이 자동차 사고를 당한 이후로 지훈은 세정이 타는 승용차에 끔찍하리만큼 신경을 썼다. 한 달 전, 그녀의 생일날 차를 바꿔 주더니 비밀스러운 옵션도 확실히 달아 놓은 모양이었다. 그가 이제껏 한 짓을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라 세정은 그저 탄식하듯 웃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속력 낸 거 아니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자 지훈이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체취를 들이마시듯 숨을 크게 쉰 후, 그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내가 밟았을까 봐 두려워?”

“너… 너 사고 났을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떨린단 말이야.”

“그럼 이제 공평하네.”

세정이 촉촉해진 눈동자를 두어 번 깜빡였다.

“뭐가 공평해?”

“네가 이혼 소리 들먹이면서 협박했을 때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줄 알았어. 나한테는 사고 난 것보다 솔직히 그게 더 충격적이야.”

두 사안이 어떻게 비교가 가능하냐고 내뱉으려다 그만두었다. 지훈이 진심이라는 것은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죽거나 다치는 것 따위는 하등의 상관도 없고, 삶에 대한 격정적인 애착이나 치열함도 없지만 딱 하나 원했던 여자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남자.

세정은 눈앞에 있는 특별한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정. 네 말대로 이제 공평해졌으니까 화해하자.”

“난 아직 안 끝났어.”

“뒤끝 길다, 도지훈. 쿨하지 못하게.”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지훈은 웃지 않았다.

“아까 그렇게 나 버리고 가 놓고 왜 전화 안 했어?”

그녀를 품에 가둔 채 책망하듯 묻는 그에게 세정이 기가 찬 얼굴로 대꾸했다.

“그게 어떻게 버린 거야.”

“버린 거지.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게 갔어, 너. 먼저 전화하면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일곱 시간 반 동안 메시지 하나 없었고.”

“네가 제대로 된 사고가 안 되는 것 같아서, 뜨끈한 머리 좀 식히라고 자리 피해 준 것뿐이잖아. 그리고 전화를 하고 싶으면 네가 하면 되잖아. 넌 손 없어?”

“맘에 들지도 않는 광고 모델 컨펌해서 호구 인증한 걸로도 모자라서, 전화해서 싹싹 빌기까지 해야 하지, 내가.”

툭툭 내뱉는 날카로운 말투와는 달리 커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뺨에서 떼어 내는 손길은 지극히 다정했다.

“하여튼 사람 마음 짓밟는 데 뭐 있어, 안세정.”

세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를 나직하게 불렀다.

“지훈아.”

“사람 초라하게 만드는 데 뭐 있다고, 너.”

“도지훈.”

지훈이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무표정하던 그의 잘생긴 입가가 좋아서 움찔거리는 것을 세정은 놓치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어 그에게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가벼운 키스는 순식간에 농염한 입맞춤으로 변질되었다. 그녀를 번쩍 들어 안는 지훈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대신 늘씬한 다리로 그의 허리를 휘감으며 가벼운 입맞춤을 그의 얼굴에 흩뿌렸다.

“하아….”

지훈은 그녀를 들어 안은 채, 성큼성큼 움직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관리인을 보내 말끔히 청소하는 침실의 문을 발로 걷어차자, 힘 조절을 못 한 발에 의해 문손잡이가 벽에 퉁, 하고 부딪혀 경쾌한 소리를 냈다.

“집 다 부술 작정이니?”

“네 남편이 정력이 워낙 좋잖아.”

“그때는 그냥 힘이라고만 해도 돼.”

지훈은 작게 웃는 세정의 엉덩이를 꽉 한 번 주물러 준 후, 그 사이로 스스럼없이 손을 내렸다. 잠옷으로 챙겨 입은 얇은 면 반바지 아래로 쑥 손을 집어넣은 후 손바닥만 한 실크 팬티 위를 중지로 마찰하자 축축이 젖어 드는 음부가 얇은 옷감을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근데 너, 왜 그렇게 강재준 일에 예민하게 군 거야?”

“너한텐 일이 가장 중요하잖아. 그 자식 때문에 네가 기획한 광고 대박 난 건 사실이니까. 네가 그 자식을 특별한 눈으로 보는 게 싫었을 뿐이야.”

“바보.”

“게다가 그 말도 안 되는 통계, 너도 인정한다며. 너한테도 그 새끼가 1위라는 말 아냐. 물론 내가 그 유치한 통계를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그녀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내뱉는 그의 뺨에 키스를 퍼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 사이가 간질거리며 속옷이 더욱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너 진짜 바보다.”

세정이 그를 향해 약하게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 유치한 통계 선택지에 도지훈이 없었다는 건 생각 못했어?”

침대 앞에서 걸음을 우뚝 멈춘 지훈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팽창해서 단단해진 가슴이 그녀를 기분 좋게 압박했다.

“네가 스무 살 때부터 하도 유전자 타령하면서 날 세뇌시켜서, 이제 내 눈에는 네가 젤 잘나 보인다고, 이 바보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풀썩.

지훈이 그녀를 눕히자 세정의 머리칼이 새하얀 시트 위에 흩어졌다. 그녀의 마지막 속삭임에 폭발한 지훈은 처음부터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헐렁한 바지를 단번에 끌어 내리자 매끄러운 피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양다리를 잡아 벌리고 허벅지를 핥고 깨물며 유혹적인 체향을 풍기는 음부에서 팬티를 벗겨 냈다.

“으응….”

젖은 속살을 단단한 혀로 벌리며 깊게 내벽을 쑤시자 세정의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아랫도리를 애무당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지훈이 이렇게 급하게 나올 때면 늘 평소보다 빨리 젖어 들었다.

“흣, 지훈아… 하응….”

이제 그는 애액이 잔뜩 묻은 혀끝으로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굴리고 있었다. 강렬한 자극에 몸을 뒤틀라치면 어김없이 그녀의 허벅지에 감긴 팔에 힘이 꽉 들어가며 치덕거리는 혀에 힘이 붙었다.

“아아…. 아…!”

혓바닥 전체를 써서 그녀의 길쭉한 음부를 마찰하듯 쓸어 주자 세정의 입술에서 커다란 신음이 터졌다. 지훈이 욕망에 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얼굴에 비벼 봐.”

잠시 망설이던 세정이 수줍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훈은 그녀가 그의 얼굴에 스스로 문질러 주는 것을 좋아했다. 허벅지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어 주자 세정이 늘씬한 다리로 그의 머리를 압박하듯 고정한 채,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였다.

콧날이 짓눌리도록 파고들자 지훈이 흥분을 참지 못해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보드라운 질구에서 애액이 터지듯 흐르며 그를 반기는 향을 풍겼다. 흘러나오는 애액을 모조리 핥아 먹으며 지훈이 그녀의 질구를 춥, 춥, 젖은 소리가 나게 핥고 빨았다.

“으으응!”

그가 클리토리스를 본격적으로 핥으며 작은 쾌락의 핵을 입 안에 넣고 굴리자 세정의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허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의 혀가 질구 안을 쿡쿡 쑤시며 보드라운 내벽을 음미하자 세정이 빨개진 얼굴로 숨을 할딱거렸다.

“지훈아….”

그녀의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륵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녀의 몸은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뜨거운 그녀의 내부를 단단하게 꽉 채워 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에 붉어진 얼굴을 한 그녀를 보며, 몸을 일으킨 지훈이 셔츠를 천천히 벗었다. 수영과 테니스로 단련된 탄탄하고 훌륭한 상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해 달라고 말해 봐.”

바지를 벗은 후, 지훈이 드로어즈를 천천히 내리자 발기한 물건이 툭 튀어나오며 자유를 찾았다. 항거하듯 꺼떡거리는 물건을 손으로 잡은 채, 지훈이 그녀를 응시하며 성기를 손으로 훑었다. 지훈은 늘 그렇듯 그녀를 바라보며 자위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매번 얼굴이 벌게지는 것은 세정 쪽이었다.

“또, 왜 그러는데.”

아직도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세정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훈은 굽히지 않았다.

“자지 넣고 흔들어 주세요, 서방님. 해 봐.”

이것은 지훈의 악취미 중 하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꼭 이런 식으로 침대에서 민망한 복수를 하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싫어. 안 할 거야.”

듣기도 민망한 말을 어떻게 직접 내뱉으라는 건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싫어?”

짐승처럼 느릿느릿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왠지 징그러워 보여 세정은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확 그녀를 덮치려는 지훈을 피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옆에 딸린 욕실로 도망가려 했지만 무리였다.

“어디 가, 여보?”

휙 날렵한 짐승처럼 침대를 뛰어 넘어온 그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지훈이 헐렁한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맨젖가슴을 주물럭거렸다. 그가 그녀를 안은 채로 걸음을 옮기자 세정은 어쩔 수 없이 욕실 안으로 이끌렸다.

“하지 마…. 좀…!”

핏줄 선 그의 팔뚝을 찰싹거리며 때려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뭘 하지 마.”

벌떡 세운 성기를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에 묻고 문지르는 움직임에는 주저함도 없었다.

“진짜, 흣…. 이럴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와 허벅지 사이로 문질러지는 그의 페니스가 뜨거웠다. 비벼지는 피부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마치 마주 닿는 살이 성기가 된 것만 같은 이상하고 민망한 기분이었다.

“네가 속에 넣어 달라는 소리 안 하니까 바깥에다만 하고 있는 거잖아. 충분히 신사적이잖아. 안 그래?”

“너 이럴 때마다 내가 진짜… 하아…. 남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세정이 욕실 벽에 붙은 거울을 보며 울먹이듯 중얼거렸다.

“말해도 상관없는데? 와이프한테 발정하는 게 잘못이야? 그러지 않는 게 잘못 아닌가?”

지훈이 속삭이며 더욱 빨리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음모 사이로 불쑥불쑥 그의 성기가 고개를 치켜드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아래가 미끈하게 젖어 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의 귀두 끝, 갈라진 부분에서도 투명한 선액이 흘러나와 그의 움직임이 더욱 수월해지고 있었다.

“지… 지훈아….”

“응.”

세정이 울먹거리며 거울에 비친 그를 보았다. 지훈이 가늘어진 눈으로 그녀의 양 젖가슴을 꽉 붙잡았다. 세정은 흥분할 때 찌푸려지는 그의 눈을 좋아했다.

“이제…. 흣….”

“응, 말해.”

“넣… 넣어 줘.”

눈을 질끈 감고 속삭였지만 그녀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지훈이 아니었다.

“세정이 거기가 도지훈 대표님 좆을 따먹고 싶어요, 해 봐.”

지훈이 혀를 길게 내밀어 그녀의 목덜미를 핥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세정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뻔하면서도 자신을 놀리는 그가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너 재수 없어. 저리 가.”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순간 허리가 꽉 붙들리더니 뒤로 빠졌다. 동시에 그녀가 그렇게 원했던 딱딱하고 굵은 살덩이가 부어오른 비부를 가르며 안으로 진입했다.

“으응!”

중심을 잡기 위해 세정은 세면대를 붙들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째려보려 노력했지만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흥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보일 뿐이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상을 찌푸린 채 씩 웃는 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긴 어딜 가.”

흠뻑 젖어 쫀득하게 자신을 빨아들이는 세정의 비부를 푹푹 쑤셔 대며 지훈이 쉰 목소리로 내뱉었다. 퍽퍽 박힐 때마다 세정의 하얀 엉덩이가 그의 치골에 부딪혀 붉어졌다. 페니스와 질벽이 마찰하며 연신 젖은 소음을 냈다. 애액과 선액이 뒤엉켜 벌써부터 크림 같은 점액질이 그의 성기에 묻어나고 있었다.

“도지훈 자지는 여기가 집인데. 응? 안 그래?”

세면대를 붙잡고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그녀에게 상체를 숙여 귓가에 속삭이자 세정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훈은 민망하고 더러운 말을 못 견뎌 하면서도 흥분하는 그녀가 귀여워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힘들어?”

“응…. 으응! 하응…!”

“아직 가지 마.”

한 번 절정에 오르면 힘이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세정을 잘 알았기에 지훈이 낮게 중얼거렸다. 세정이 허리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래서야 곧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그를 밀어낼 게 분명했다. 지훈은 낮게 욕설을 씹으며 한 번 세게 박아 넣은 후, 안간힘을 쓰며 미끄덩한 성기를 질벽에서 뽑아냈다.

“좀 쉬자.”

“하아…. 뭐, 뭐?”

격하게 섹스하다 말고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세정은 대학 때 그녀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순진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지훈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욕실을 빠져나간 후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에 뉘었다.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항거하듯 선액을 질질 흘려 대며 꺼떡이는 페니스를 그녀의 허벅지에 문지르며 세정에게 입술을 묻었다. 영문을 몰라 살짝 벌어진 입술을 삼키고 깊숙하게 혀로 안을 훑었다. 입 안이 바짝 말랐던 세정이 그의 타액을 꼴깍꼴깍 삼키며 입맞춤에 반응했다.

“으응….”

마치 재촉하는 듯 그의 탄탄한 등을 더듬는 세정의 손가락이 유혹적이었다. 지훈은 당장 그녀의 다리 사이에 파고들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 내며 키스를 이어 나갔다. 생리 전이라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가슴을 손안에 넣고 뭉근히 주무르며 손가락 사이로 유두를 끼워 자극했다.

“흣….”

그를 끌어안는 세정의 손길에 힘이 붙었다. 가느다란 허벅지가 가로로 길게 벌어지고 그에게 애원하듯 그녀가 허리를 위로 올려붙였다. 지훈은 그녀의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 입술을 내려 쇄골에 얼굴을 박았다.

춥, 춥.

뜨겁게 핥으며 입술 자국을 낸 후, 꽉 붙들고 있던 유방의 선단을 입 속에 넣어 빨아 버리자 세정이 못 참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애원했다.

“지훈아….”

“난 오늘 너랑 오래 하고 싶어. 하루 종일 힘들었으니까.”

“응,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넣어 줘…. 으응?”

세정이 이 정도로 간절히 매달리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당장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채, 지훈이 그녀를 보며 확인하듯 내뱉었다.

“내일 연차 써.”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각오를 하라는 소리였다. 찰나의 망설임 끝에 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 내내 일이 많았으니 그동안 밀린 연차 중 하루쯤은 써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알겠어.”

“한 번 갔다고 밀어내는 거 안 돼. 내 양에 찰 때까지 할 거야.”

“으응. 네 맘대로 해. 그러니까…. 흐윽…!”

원하는 대답을 듣자마자 지훈이 예고도 없이 뜨거운 내벽을 꿰뚫었다. 세정이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몸을 떠는 걸 보며, 그가 강한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푹, 하고 세게 들어갔다가 끝까지 빠져나오며 수축하는 내벽을 샅샅이 긁었다.

“핫, 읏, 으응!”

격한 각도로 내려찍으며 손에 쥔 그녀의 양 가슴을 번갈아 빨았다. 공중에 들린 세정의 두 다리가 하염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애액과 선액이 뒤섞여 접합 부분에서 허벅지로 거칠게 튀었다. 지훈은 그를 끌어안으려는 그녀의 손을 깍지 낀 채, 만세 하듯 위로 쳐들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마음껏 그녀를 유린했다.

“아, 아아…!”

단숨에 절정에 올라 바들바들 몸을 떠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쑤셔 박았다. 새된 신음을 내뱉으며 오르가슴의 끝에서 비명을 지르는 세정의 몸을 끌어당겨 침대 위에서 마주 안았다.

“키스.”

입술을 마주 대며 낮게 속삭이자 세정이 할딱이는 입술을 벌렸다. 삽입한 채로 엉덩이를 꾹 누르며 그녀를 제 위에 올라타게 한 후, 지훈이 세정의 혀를 쭉쭉 빨았다. 골반을 휘어잡은 손을 앞뒤로 강하게 움직이자 그녀의 속에 삽입된 성기가 내벽을 따라 움직이며 성감대를 마구 휘저었다.

“흐음…!”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신음이 지훈의 입술을 타고 번졌다. 입술을 살짝 떼어 주자, 세정이 그제야 살았다는 듯 숨을 가쁘게 쉰 것도 한순간이었다.

“응! 아읏! 흣!”

지훈이 그녀를 아래에서 위로 박아 올리듯 올려 치자 그의 위에서 세정의 여린 몸이 춤추듯 흔들렸다. 내려찍는 힘이 반작용으로 거세지며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비부를 때려 댔다. 세정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지훈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싼 채 자신을 보게 했다.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몰라.”

“알아… 흣… 알아…!”

“너 없으면 나 뒈져도 상관없는 거 알아 몰라.”

“응… 안다구… 지훈아…. 흣….”

“알면 됐어.”

산뜻하게 답한 지훈이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눕혔다.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여린 등을 쓸어내리며 강하게 그녀의 내벽을 푹푹 쑤셨다. 날카로운 콧날을 세정의 귀 뒤에 문지르며 그가 열아홉 살 때부터 원했던 유일한 여자의 체향을 흡입하듯 들이마셨다.

“사랑해. 지훈아….”

그녀의 한마디에 꽉 붙잡고 있던 한 줄기 이성이 흩어지며 손쓸 새도 없이 정액이 터져 나갔다. 여전히 말 한마디로 자신을 천국과 지옥에 빠트리는 상대를 꽉 끌어안은 채, 지훈은 길게 사정했다.

“흣…!”

아름답게 일그러지는 그의 뺨에 세정이 입을 촉, 촉, 맞추었다. 해면체에 다시금 피가 몰리며 성기가 발기했다.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지훈이 손을 내려 접합 부분을 중지로 어루만졌다.

“어떡하지?”

“뭐가?”

“쉬는 시간 없이 한 판 더 뛰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바로?”

“약속은 약속이지?”

지훈은 눈을 커다랗게 뜨는 세정을 똑바로 눕힌 후, 그녀의 살결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세정의 온몸에 그의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귀여운 겨드랑이, 우묵한 배꼽, 납작한 아랫배를 지나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으응…?”

음모에 쪽, 하고 키스한 후 그 아래 깊숙한 곳으로 향하나 싶었던 그의 입술이 허벅지를 지나자 세정이 달뜬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음부는 정액과 애액이 엉망진창일 게 분명했지만, 지훈이 그런 걸 딱히 신경 쓸 위인은 아니었다.

“아아….”

그가 간질이듯 혀끝으로 무릎 뒤에 키스하자 온몸이 짜릿하게 떨렸다. 멈출 줄 알았던 그의 입술은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발목이 지훈의 손에 붙들렸다.

“지훈아…!”

“얼굴 발로 차려는 거면 그만둬 줘.”

이렇게 생긴 얼굴은 돈으로도 못 사니까. 지훈이 오만하게 내뱉으며 혀로 게걸스레 그녀의 발을 핥았다. 발바닥을 핥는 것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지만 그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민망함과 부끄러움이었다.

“지훈아… 제발… 그만. 그만. 응?”

“왜, 나 미치게 흥분되는데. 너 발가락 너무 작아. 발톱도 그렇고.”

지훈이 당연한 말을 지껄이며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붙잡았다.

“더럽잖아. 응? 응?”

“더러울 것도 많다, 넌.”

귀여운 발가락에 하나하나 키스하며 지훈이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세정은 그의 얼굴을 혹시라도 발로 찰까 조심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 그만. 응? 너무 간지러워.”

“그럼 또 넣어도 돼?”

“응.”

“날 원해?”

“…응.”

“그럼 보여 줘. 얼마만큼인지.”

지훈의 의도를 알아챈 세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순순히 자리에 누웠다. 정액과 애액이 범벅이 된 채, 수직으로 우뚝 선 그의 성기를 손에 잡은 후 세정이 천천히 자신의 젖은 비부에 문질렀다. 뭉툭한 선단으로 클리토리스를 둥글리듯 자극하며 세정이 스스로 몸에 불을 지폈다.

“…예뻐 죽겠어.”

지훈은 양손을 뒤통수 아래에 집어넣은 후, 마치 감상을 하듯 그런 그녀의 모습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침내 준비가 된 듯, 세정이 하아,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길쭉하고 뜨거운 질구로 페니스를 서서히 집어넣었다.

늘 그렇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고 지훈에게는 고통스러울 만큼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퍽, 하고 내벽까지 뚫어 버리고 싶은 폭력적인 충동을 자제하며 지훈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내뱉었다.

“좋아서 미치겠어.”

“응. 나도 좋아….”

세정이 스르륵 그를 집어삼키자 온 세상이 그의 것 같았다. 그녀의 안에서 그는 더 이상 참아 내지 못했다.

“이리 와.”

봄밤, 벚꽃이 휘날렸다. 세정은 그의 위에서 아찔하게 신음하며 커다란 창밖에 휘날리는 분홍빛 꽃잎들을 시선에 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네가 누군지 알면. 뭐가 어떻게 바뀌기라도 해?”

옛 기억 속의 오만한 남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손톱만 한 꽃잎이 눈처럼 펄펄 날리던 봄날, 학관 앞 계단에서 그를 마주했을 때의 그녀는 이런 미래를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어딜 보는 거야.”

“…도지훈.”

“창밖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라도 있어?”

“여기 2층이거든, 바보야…. 아흣…!”

“섹스할 땐 눈을 보라고 말했던 건 너야. 제주도 처음 놀러 갔을 때, 소파에서 쫑알거리면서 직접 한 말인데, 기억 안 나?”

지훈은 그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그녀를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의 장소도 정확하게 짚었다.

마치 머릿속에 그녀에 관한 폴더가 따로 있는 것처럼, 그녀는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을 되짚는 그를 볼 때면 가슴 한구석에 몽글몽글 따스한 열기가 피었다.

세정은 보란 듯이 깊숙하게 그녀의 안을 비집는 그의 품 안에 쓰러져 다시금 밀려드는 쾌락에 허덕였다. 아무래도 내일 연차는 확실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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