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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말고 어머님R-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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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벳

〈 172화 〉 171화. 확인(7)

* * *

톡­

침대 위로 살포시 병이 착지한다. 그 병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어 위니가 모니카에게 물었지만,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내게 용서받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고 했잖아? 안그래?”

“으응, 그, 그렇지….”

“모니카. 저건….”

“당신은 가만히 있어.”

꿀꺽.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이걸 나한테 왜 준거지? 무슨 의미지? 온갖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대뜸 찾아와서, 이 정체모를 병을 던져주는 이유가 뭘까.

혹시 그는 알고 있을까 싶어 에드워드를 살짝 바라봤지만, 그러기 무섭게 눈쌀을 찌푸리는 모니카 때문에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그는 고개만 숙이고 있어, 그녀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원래 위니의 성격이라면… 설마 먹고 죽겠어? 모니카가 그런 걸 줬을 리가 없잖아. 만약 독약이라면… 그만큼 잘못한거니, 죽어야지 뭐 하면서 그냥 마셨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뱃속에 있는 또 한 명의 생명 때문에, 그냥 넙죽 받아마시기가 망설여졌다.

그녀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 그녀의 아이. 그녀만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상한 걸 먹었다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 갈까봐… 함부로 먹기 두려웠다. 물론 모니카가 그걸 노리고 그녀에게 지금 이런 상황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위니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왜? 먹기 싫어?”

“그게 아니라… 먹기 전에 뭔지만 알고 싶어서….”

“하?”

움찔.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하는 모니카 앞에서 위니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약병을 강제로 그녀의 입에 꽂아버릴 것 같은 흉흉한 기세에,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원래는 걸린 그날 바로 성에서 내쫓아버리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저 남자 얼굴 한 번만 보게 해주려고 기다린거야.”

전장에서 돌아오고 쉬지도 못했는지, 명백하게 피곤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위니 그녀가 일으킨 문제 때문에 마음고생도 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함에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냥 쫓아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기회를 주기로 했어.”

그 기회가 저 약병이라는 건가. 그녀가 모니카에게 줬던 수많은 약들 중, 저런 모양의 병에 담겨있던 건 없었다. 무슨 색의 약인지, 아니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혹시나 하며 자꾸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그녀가 한 솥을 끓였다가, 에드워드가 전부 갖다 버렸던 그 약이 생각났지만. 겨우겨우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태어날 때부터 같이 지냈던 친구… 네 말에 따르면, 배다른 자매이기도 하고. 거의 이십 년이 다 되도록 지낸 정이 있는데. 그건 너무 매정하잖아, 그지?”

“모, 모니카….”

지난 세월의 정을 이야기하는, 매정하다기보다는 무심한 모니카의 모습이 더 양심을 찔렀다. 멜버른 자작가가 대대로 율스타인 가의 씨앗을 받아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해했다며, 무슨 사정인지 알겠다며 그녀를 오히려 타일러 준 모니카였기에 조금 마음이 괜찮아졌나 했는데…. 오늘 그녀의 친구의 모습은,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정 반대로 마음을 완전히 닫은 듯 차갑고 냉정해 보였다.

“그리고 위니 네가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지. 약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네가 워낙 중요한 인물이어야 말이지. …그걸 믿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는데. 지금까지 그녀가 열심히 했던 일들이, 모니카가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 유용성으로 평가받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러니까, 이것만 마셔. 이걸 마시면, 내쫓지도 않고. 자작위도 그대로. 전부 다 용서하고, 예전처럼 여기서 지낼 수 있게 해줄게.”

“여보.”

“당신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그리고 여보라고 부르지 마.”

에드워드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 모니카에게 제지당했다. 우선 먹고 나면 율스타인 성에 남을 수 있다는 걸 보면, 그녀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그런 종류의 약은 아닌 듯 했다. 설마 시체가 남을 수 있다 이런 얘기는 아닐 테니까….

조건만 들어보면, 모니카가 상당히 많이 양보한 상황이었다. 모든 걸 용서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저 약만 마신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약이야…?”

“그건 안 알려줄 건데. 근데… 대충 예상이 되지 않아?”

…정말?

정말로?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모니카를 쳐다봤지만. 모니카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설마 그것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그 약이라고?

“모니카. 다, 다른 건….”

“그것만 먹으면 된다니까? 뭐, 내 눈 앞에서 에드워드랑 붙어먹는 건 참기 힘들 거 같기는 한데…. 또 나 피해서 몰래 만나면 되잖아?”

“흑… 흐윽….”

날카롭게 가슴에 꽂히는 단어들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니카의 말도 그녀를 가슴아프게 했지만.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그 상황을 그녀가 자초했다는 게 눈물이 난다.

“그러다 보면, 애야 또 생길 수도 있는 거지. 나보다 먼저 생길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아이를 잃게 될 거라는 공포심이, 그녀의 숨을 옥죄었다. 사랑하지 않아야 할 남자를 사랑한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그녀의 아이, 아니면 아이를 제외한 그녀의 모든 것. 어느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둘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그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이미 그녀의 안에서 커져 있었다.

“그게 싫으면, 당장 이 성에서 나가.”

“아니, 아니야….”

“안 먹을 거면 이건 가져간다.”

탁.

아무것도 없이, 저 성 밖으로 나가 살 수는 없다. 정말 쫓겨날거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모니카를 붙잡았다. 그녀에게서 약을 다시 가져가려던 모니카의 팔에 양 팔로 매달려 그녀를 멈춰세웠다.

“하….”

이걸 먹지 않으면? 그대로 끝난다. 멜버른 저택도, 그녀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도.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가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잃는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야 남겠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이 아이를 밴 여인이 저 험난한 바깥세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영지 밖에서, 모니카도. 에드워드도 보지 못하고. 혼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아니, 늙어 죽는 것도 사치인 삶을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약을 먹는다면? 그게 말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모니카는 옛날처럼 그녀를 대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계속 이곳에 남아,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에드워드의 얼굴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의 아이가 사라진다면. 그녀와 에드워드 사이의 아이. 이 아이가 없어도, 에드워드는 그녀를 사랑할까? 위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에드워드가 책임지겠다며 끌어안던 그 날. 그 때는 정말 구원의 빛 같아서. 동화 속 왕자님 같아서 좋았지만….

그 말은, 아이가 없다면 그녀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만약 아이가 사라져,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흥미를 잃는다면? 남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물론 아이와 에드워드를 제외하고도 율스타인 성과 멜버른 저택은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었지만. 아이와 에드워드, 그 중에서도 에드워드는 그녀에게는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흐으윽… 모니카아….”

“…결정했어?”

끄덕끄덕.

뽕­

밀봉되어있던 병의 마개가 열린다. 각오는 했지만 차마 그걸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걸 쳐다보다가는. 그리고 자꾸 의식했다가는, 그녀가 방금 내린 결정이 후회될 것 같아서. 아니, 벌써 후회하고 있어서. 그리고 벌려진 그 입 사이로. 쪼르륵. 한 줄기의 약이 흘러들어갔다.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그 약은 쓴 맛이 굉장히 강했다. 그녀의 혀를 덮칠 그 강렬한 쓴맛에 대비해 잔뜩 몸을 움츠렸지만… 혀를 뒤덮는 건 시원한 단맛이었다. 상당히 익숙한 이 맛은. 그녀가 모니카를 위해 날마다 만들었던….

“…자양강장제?”

“흥.”

알 수 없는 소리를 낸 모니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가 있는 방을 빠져나갔다. 용서받았다는 생각에. 잃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탁 풀리며. 위니가 침대 위에 완전히 주저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흑, 미안해… 미안해애…. 으허엉….”

“위, 위니. 왜 그래….”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던 에드워드는. 위니의 몸상태를 걱정해 그녀를 살피고. 위니는 이 눈치 없는 남자를, 빨리 모니카에게 가보라고 밀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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