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2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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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화
-무당-화산 동맹 (31)
청룡이 새하얀 백발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광 좌사! 네놈이 어리석은 주인을 끝까지 섬기려 하는 점은 도화교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
이 말에 광 좌사가 발끈하였다.
“우리가 비록 인의예지신을 배운 것은 아니나 자신을 거두어 주고 은혜를 베푼 은인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마음속의 양심이 알고 있는 것! 오히려 너희같이 이익에 따라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가증한 자들을 증오할 뿐이다.”
이번엔 주작이 말했다.
“호호호. 광 좌사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순진한 티를 벗지 못하셨군요. 어떤 수를 써 현무를 제압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우리들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어리석은 계집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번엔 범소가 화를 버럭 내며 외쳤다.
“싫다는데 왜 자꾸 추근거리는 것이야? 어서 한판 붙어 보자구!”
백호는 연이어 밭은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청룡이 쌍장을 발출하며 외쳤다.
“좋아! 이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퍼엉!
콰과광!
동시에 장풍을 피한 단주와 범소, 그리고 광 좌사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삼방으로 흩어졌다.
진가보는 기색을 숨긴 채 그저 팔짱을 낀 채 관망하고 있었다.
드디어 단주를 비롯한 각자는 설영단의 광호사강 중 삼인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진가보가 보기에 그나마 단주가 주작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을 뿐, 나머지 둘은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광 좌사와 범소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상대가 이들을 농락할 마음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가보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결국, 차 한 잔 마실 시각도 되지 않아 먼저 범소가 어깨에 큰 상처를 입으며 나자빠졌다.
“크헉!”
백호가 그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가할 생각으로 연자추를 날리자 단주가 원형검을 던져 그것을 튕겨 냈다.
카캉!
“단주님!”
광 좌사의 외침에 범소가 돌아보니 단주가 범소에게 주의를 돌린 틈을 타 주작이 단검을 들고 그녀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쒜에엑!
퍼억!
범소는 차마 단주가 다치는 일을 보지 못하여 눈을 감았으나 광 좌사의 탄성에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곧 자신의 시야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주작은 물론, 백호와 청룡까지도 마치 귀신이라도 만난 듯한 표정으로 수 장을 물러난 채 진가보를 보고 있었다.
단주를 향해 날아들던 단도는 반동강이 난 채 저 멀리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주작은 자신의 우수의 손목을 움켜쥔 채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지?”
진가보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별건 아니야. 그저 바닥을 뒹굴고 있던 작은 돌멩이지.”
“흥! 그깟 돌멩이로 나의 화영도를 반토막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주작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룡이 말했다.
“놈의 무공이 상당한 것 같으니 주의하여라!”
그러나 주작은 콧방귀를 뀌며 품에서 말려 있던 붉은 채찍은 꺼내 들고 진가보를 향해 돌진했다.
“네깟 놈에게 두려움을 느낄 성싶으냐?”
촤아악!
채찍은 마치 붉은 용처럼 진가보를 향해 맹렬히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이것이 웬일인가!
진가보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껴 채찍을 피한 후 순식간에 의수로 그것을 낚아채 버렸다.
“으윽!”
주작은 너무나 예상치 못한 일이라 크게 당황하며 진가보에게 끌려 들어갔다.
퍼억!
동시에 진가보의 좌수가 그녀의 어깨에 일장을 날려 버리니 주작은 그대로 채찍을 놓은 채 대여섯 장을 날아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백호와 청룡의 눈빛이 변했다.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 동시에 진가보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버벅!
어찌 된 것일까?
분명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단주를 비롯해 광 좌사는 타격음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살짝 늦게 귀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미 백호와 청룡은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진가보가 청룡의 손에 있던 성화봉을 집어 들었다.
그 난리 속에서도 청화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였으니, 이 불꽃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진가보가 성화봉을 단주에게 던졌다.
단주는 기쁜 표정으로 공중에 뜬 성화봉을 향해 내력을 실어 소매를 털었다.
치이익!
불꽃이 사라진 성화봉을 광 좌사가 받아드니, 이제 성동을 나서기만 한다면 단주인 송화가 교주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진가보가 물었다.
“그러나 나가기 전에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소.”
“무엇입니까?”
단주의 대답에 진가보가 말했다.
“내가 그대의 배우자가 되길 거절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것이오?”
광 좌사가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무효가 되고 맙니다. 그뿐이 아니라 이는 도화교의 규율을 어긴 것으로 멸문의 처벌을 받게 되겠지요.”
“흐음.”
단주가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욕심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귀하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진가보가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성동을 나서는 순간, 모든 이에게 내가 당신의 배우자가 아닐뿐더러 중원 격뇌검문의 장문인이라는 것을 밝히시오.”
진가보의 말에 광 좌사와 범소가 깜짝 놀랐다.
“에에? 뭐라구요?”
광 좌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범소가 물었다.
“그리한다면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영웅을 단주님의 배우자라 한 것은 그저 우리 도화교 내부에서만 알게 될 것이니, 이는 형식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영웅께서는 여태껏 우리를 도우셨으면서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진가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란 말인가?”
그러자 범소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웅께서 기분이 상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단주가 말했다.
“되었네. 범소! 애초에 진 장문인이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동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네.”
그러고는 진가보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진 장문인께서 이른 대로 하겠습니다.”
진가보가 물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해도 말이오?”
“어쩔 수 없지요. 우리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었으니…. 진 장문인께 폐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범소는 아쉬움이 남은 듯했다.
“분명 진인께서는 영웅께 도화림에 대해 듣기 위해서는 단주님을 교주의 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나에게 있어 분명 중요한 일이오. 그러나 반려를 정하는 일 또한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일.”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저 형식적인 일입니다. 영웅께 진짜로 단주님의 반려가 되시라는 말씀이….”
“그만하여라! 범소!”
단주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범소가 입을 다문 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단주가 말했다.
“진 장문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 저희와 함께 이곳을 나가시지요.”
단주가 성큼성큼 걸어 출구 쪽으로 걸어가자 광 좌사 또한 길게 한숨을 내쉰 후 그녀를 따랐다.
범소가 진가보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단주님께서 지금 저곳을 나가 모든 것을 밝힌다면 교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범소마저 단주를 따라나서자 진가보는 잠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 발걸음을 옮겼다.
출구가 열리자 그곳은 제단의 바로 옆이었다.
동굴 내부는 길게 산을 한 바퀴 돌아 입구의 옆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승리자가 누구일지 기다리고 있던 교도들이 함성과 한숨을 내쉬었다.
함성을 지른 것은 설영단의 교도들이었고 한숨을 내쉰 것은 매설단의 교도들이었다.
매설단의 단주 신지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눈빛으로 송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상문에서 파견 나온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오! 설영단이 성동을 통과하였군요. 이제 마지막 시련이 남았습니다. 송화가 교주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단에서는 사람을 내어 그들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오시겠습니까?”
그때, 단주인 송화가 큰 소리로 외쳤다.
“굳이 대결을 진행할 필요가 없소.”
상문의 파견자가 물었다.
“그것은 또 무슨 소리지요?”
송화는 제단으로 올라 모든 교도들을 보고 말했다.
“본인은 한 가지를 여러분들게 말하려 합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상문에서 파견 나온 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설영단의 단주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들어보도록 하지요.”
그러고는 송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화가 입을 열었다.
“나의 아버지이자 이십여 년간 도화교를 위해 헌신하였던 전 교주님께서는 우리가 변방으로 밀려나 이처럼 세력이 약화된 것은 서로 간에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반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셨소. 하여 그분은 각 단의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려 평생을 노력하셨지요.”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기에 반발하는 자들은 없었다.
송화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나의 능력이 부족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것이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진가보를 보며 말했다.
“이분은 중원 격뇌검문의 장문인으로, 그는 정양진인의 부탁으로 나를 돕게 되었소. 그러나 성동의 의식은 도화교의 교도만이 행할 수 있는 것! 나는 불가피한 상황을 벗어나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 성동의 의식을 통과였으니 이는 천여 년간 이어진 도화교의 규율을 정면으로 어긴 셈이 되었소.”
단주는 목이 메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내가 규율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처벌에 대해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오. 그러나!”
“죄인이 뭔 말이 많은가!”
“얼굴이 두껍구나!”
교도들의 비난 속에서도 송화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아직 실마리가 잡히지 않은 또 다른 일에 대해 해결을 해야 할 것이오.”
상문에서 파견 나온 자가 물었다.
“실마리가 잡히지 않은 일이라니, 그것이 무엇이오?”
“그것은 바로 전임 교주께서 갑자기 쓰러지고 결국엔 목숨을 잃게 된 일에 대한 것이오.”
“흐음. 설영단주는 전임 교주 송지상이 누군가의 독수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오?”
“물론이오. 도화교의 규율은 지엄하고 절대적이며 모두에게 공평해야만 하는 것이오. 그러니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는 순순히 처벌을 받도록 하겠소.”
교도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매설단주 신지가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흐흐흐. 반교도인 주제에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교주의 자리를 탐내는 자가 교의 규율을 어겨 놓고 엄한 자들을 끌어들이려 해?”
광 좌사가 외쳤다.
“네놈이 간사한 수를 써 교주님을 중독시키지만 않았던들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신지가 그 말을 듣고 검을 뽑아들었다.
“너! 이 반교도가 감히 나를 모함하는 것이냐?”
단주가 말했다.
“어떻소? 나는 교주의 자리와 내 목숨을 걸 것이니 그대들은 어찌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