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2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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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무당-화산 동맹 (30)
석편이 낙하하는 곳을 벗어나자 수없이 많은 얇은 석주가 솟아 있는 공동이 나타났다.
석주가 솟아 있는 곳은 밑도 끝도 없이 시커먼 절벽이니 건너편으로 가려면 별수 없이 발조차 얹을 수 없을 정도로 얇은 석주를 밟고 건너뛰어야만 했다.
범소가 일착으로 건너려 할 때 광 좌사가 만류했다.
“잠깐, 기척이 느껴져! 적이 있다.”
이는 진가보는 물론 단주인 송화 또한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단주는 다만 적의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범소가 건너려 할 때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면 손을 쓰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작은 꼽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매설단이 내세운 광호사강 중 현무였다.
“낄낄낄. 역시나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내 건너는 놈을 그대로 황천으로 보내려 하였는데.”
광 좌사가 험악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어림없는 소리! 네놈은 내가 저승으로 보내 주겠다!”
광 좌사가 도를 치켜들고 석주로 뛰어들자 단주가 외쳤다.
“범소! 어서 가서 그를 도와라!”
“예! 단주님!”
광 좌사가 범소의 뒤를 따르자 현무는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며 시커먼 부채를 하나 꺼내 들었다.
“와라! 하나가 되었든 둘이 되었든 전혀 무섭지 않다. 킥킥킥.”
진가보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현무는 작은 몸을 이리저리 튕겨 광 좌사와 범소의 공격을 피했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현무는 회피술만 사용할 뿐 아무런 공격도 가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범소와 광 좌사는 크게 지치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내력이 소진되어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으니, 약간만 몸을 비튼다 하여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크크큭! 이 정도 실력으로 호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사실 광 좌사의 능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무가 압도적으로 강했을 뿐.
“이제부터는 내 공격을 받아 보시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부채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광 좌사는 간신히 도약을 하여 그것을 피해 냈으나 범소는 발이 삐끗하여 석주에서 떨어지려 하였다.
“총관!”
광 좌사가 그를 구하려 하였으나 거리상 뜻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으음!”
송화가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가려 하였으나 진가보가 그녀의 앞에 서더니 그대로 범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가 석주를 한 번 건너뛰더니 떨어지는 범소의 뒷덜미를 낚아채고는 그를 뒤로 집어 던졌다.
범소는 그대로 단주가 서 있는 곳으로 날아갔으니, 그녀는 범소의 팔을 잡아 그를 멈춰 세웠다.
“단주님!”
범소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이야.”
송화는 이렇게 말한 후 다시 진가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무는 자신에게 돌아온 부채를 움켜잡은 후 진가보를 향해 쾌속으로 회전하며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가보는 그저 냉소를 지은 채 평온하게 의수를 휘둘렀다.
카캉!
의수와 부딪힌 현무의 부채가 박살이 나버렸다.
현무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부채를 통해 전달된 충격으로 입에서 부왁 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을 토해 냈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소개가 늦었군. 격뇌검문의 장문인 진가보다!”
“진가보?”
이것은 송화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놀란 그녀에게 범소가 말했다.
“격뇌검문이라면 중원의 문파로 그 악명높은 화산파의 기해봉에 의해 멸문당한 곳이 아닙니까?”
“그래. 나도 그리 들었다.”
현무가 말했다.
방금 진가보의 실력에 압도되었던 탓인지 말투가 공손해졌다.
“격뇌검문이 어찌하여 관외 마교의 일에 관여한단 말이오?”
“나의 필요에 의해 관여하는 것인데 어찌 네놈이 상관인가?”
현무가 단주를 보며 말했다.
“흥! 너 어린 계집이 생각 없는 짓을 저질렀구나. 애초에 교도가 아니면 성동의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법! 저자가 교도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단주들이 알게 된다면 설령 우리를 이긴다 해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야.”
그러나 단주가 단호히 말했다.
“교도가 아니더라도 배우자는 의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었단 말이냐?”
이 말에는 현무는 물론 진가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으하하하. 우습군, 우스워! 우리 도화교는 본래부터 중원의 위선자들을 극도로 증오해 왔다. 그런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중원인을 배우자로 삼았단 말이더냐?”
“그것은 네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현무가 석주를 뛰어넘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 현무는 광호사강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명심해라. 다음에 마주치게 된다면 그 목을 조심하고. 하하하!”
어느새 꽤나 거리를 벌린 데다가 진가보가 미동도 없이 뒷짐을 진 채 석주 위에 서 있었고 현무는 그 자신의 속도에 자신이 있었기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자 진가보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현무는 경악을 하며 몸을 돌리려 하였다.
“으헉!”
그러나 이미 진가보의 의수가 그의 뒷덜미를 낚아챈 상태였다.
현무는 욕을 하며 입에서 무엇인가를 토해 냈다.
“염병할 새끼! 이거나 먹어라!”
그것은 극독이 발라진 은침이었다.
그러나 진가보가 의수를 조금 움직이자 현무가 진가보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 동작이 어찌나 빨랐던지 현무는 자신이 발사한 은침에 그 스스로가 맞고 말았다.
“커억! 이럴 수가…. 이게 말이 되는….”
당연히 현무는 그 자신이 사용한 극독에 내성이 있었으므로 육체적으로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 압도적이니 더 이상 진가보를 상대로 손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른 놈들은 어디에 있느냐?”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소?”
파파파팍!
진가보는 순식간에 좌수를 이용해 자신의 의수에 붙잡힌 채 매달려 있는 현무의 열네 개 혈도를 짚었다.
현무가 경악을 했다.
“자, 잠깐! 내 말을 하리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진가보는 이미 그를 붙잡고 있던 의수의 손을 풀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현무는 석주 사이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으아아아악!”
광 좌사를 비롯해 범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화교 내에서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광호사강 중 일인을 이처럼 개미 한 마리 다루듯 하는 이 진가보라는 자는 대체 그 무공이 어느 정도의 경지란 말인가!’
단주가 말했다.
“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다음 공간은 널따랄 뿐 아무런 장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광 좌사가 말했다.
“돌아가신 교주님께서는 과거 성동의 의식을 치를 때 말씀하셨던 적이 있지요. 성동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가장 무서운 곳이라구요. 이곳은 특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범소도 이미 한 번 목숨을 잃을 뻔했던 터라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진가보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성큼성큼 공동의 중앙을 향해 걸어나갔다.
쿠쿠쿠쿵!
곧이어 바닥이 반응을 보이더니 크게 흔들리며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갑옷을 입은 듯 보이는 석상들로, 기관으로 움직이는 것들처럼 보였다.
석상들은 기다란 창을 내지르며 진가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가보가 그것들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피하니,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잔상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진가보 스스로도 그 자신의 몸속에 있던 내력들이 충돌하거나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삼성의 내력을 사용하여 석상들에게 반격을 가했음에도 그것들은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흠. 제법이군.’
광 좌사가 말했다.
“저것은 흑암석으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범소가 물었다.
“흑암석이라면 어떠한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고 내공마저 흡수해 버리는 요상한 암석이 아닙니까?”
“아니,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은 아니오.”
“저것을 박살 낼 수 있는 것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소. 흑암석은 오로지 운철로 만든 병기를 사용해야 깨뜨릴 수 있다고 들었소. 하지만 그 귀한 것이 지금 어디에 있겠소? 저것들은 운철로 만든 병기를 제외하곤 아무리 고강한 내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그럼 영웅께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단 말이군요?”
광 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강력한 것들이 삼십 개나 덤벼드니 이번엔 영웅이라 할지라도 쉽진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단주에게 청했다.
“제가 영웅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단주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이 나선다 해도 짐만 될 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을 거야.”
그러고는 두 개의 원형도를 꺼내 든 채 발을 튕겨 앞으로 튀어나갔다.
부우우우웅!
어느새 달려 나가는 그녀가 원형도 하나를 집어 던졌다.
그것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가보에게 덤벼드는 석상 하나를 강타했다.
콰과광!
다음 순간 광 좌사와 범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형도에 맞은 석상의 머리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범소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광 좌사가 말했다.
“아하! 과거 교주께서는 태백산에서 운철을 얻은 적이 있었어. 단주님의 원형도는 바로 그것으로 만든 것이었군.”
그제야 범소도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석상은 크게 금이 갔음에도 멈추지 않고 진가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가보는 자신의 내력을 칠성까지 올려 그것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그러자 석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단주가 외쳤다.
“또 가요!”
이번엔 두 개의 원형도가 사선으로 날아가더니 각각의 석상을 때렸다.
쩌저적!
그 후에는 여지없이 진가보가 달려들어 그것을 박살 내어 버리니, 한 식경도 되지 않아 그 많던 석상들이 모조리 부서져 버렸다.
원형도를 회수한 단주의 곁으로 범소와 광 좌사가 달려왔다.
“단주님의 무공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송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은 운철로 만든 병기에 힘입은 것이지 결코 나의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오. 게다가 진 대협이 없었던들 내가 어찌 이들을 처리할 수 있었겠소?”
광 좌사와 범소가 이번엔 포권을 하며 진가보에게 말했다.
“영웅께서 우리 모두를 구해 주셨습니다.”
진가보가 말했다.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니, 그런 말은 밖으로 나간 후에 하도록 하지요.”
진가보가 단주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도도하던 그녀는 슬쩍 그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녀의 뺨이 옅게 홍조로 물들었다.
석상을 깨부순 공동을 나서자 좁고 긴 통로가 나타났다.
진가보를 비롯한 모두가 그곳을 따라나가자 어느새 커다란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 끝에 보이는 문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어느새 마지막 관문에 도달한 듯 보였다.
광 좌사가 말했다.
“이제 매설단 놈들과 청화를 놓고 한바탕 겨룰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쪽의 다른 통로에서도 광호사강 중 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청룡이 말했다.
“현무 대신 네놈들이 나타난 것을 보니 그가 실패하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