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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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네가 섬서 최고란 말이지? (2)
소년이 자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음을 큰 소리로 외치자 관중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만운과 제운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아니….”
사색이 된 제운의 뒤에 줄을 선 이는 다름 아닌 진가보였다.
“사, 사형이 어떻게 여기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보니 본인도 잘못한 것은 알고 있는 것 같구나?”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객잔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너무나 답답해서….”
“알겠다. 그 일은 이따가 이야기하도록 하지.”
군중들 사이에 있던 만운의 어깨를 진가보와 함께 나갔던 검운이 툭 쳤다.
“사형!”
“아이고 놀라라! 너도 왔구나.”
“도대체 두 분 사형은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답답해서 그랬지.”
“하긴 그럴 만도 하죠. 여기까지 왔는데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해요.”
“그래. 그렇다니까. 그나저나 영운 사형은 화가 났을까?”
“아뇨~! 전혀요.”
“휴우! 살았네.”
“사형이 말했어요.”
“뭐라고?”
“밖에 나가 구경들을 하고 싶을 것인데 어째서 안에 틀어박혀 있겠다고 하는 거지? 그래서 제가 말했죠.”
“뭐라고 말을 했는데?”
“그야, 검문은 언제나 무림 각파의 경계를 사고 있어서 예전부터 출행을 나가게 되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 해 왔었다구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랬더니 사형이 껄껄대고 웃더군요.”
“그래?”
“네. 그러고는 말했어요. 굳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지만 격뇌검문의 제자들이 그렇게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에요.”
만운은 걱정이 사라졌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휴우! 살았다.”
안심을 하던 만운은 눈을 깜빡이며 검운에게 물었다.
“너와 영운 사형은 사람을 찾으러 나간다 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검운이 손가락으로 거구의 사내를 가리켰다.
“우리가 찾던 이가 저기 있잖아요.”
“저 사람이 사형이 찾던 자라고?”
“그래요. 아침부터 저자를 수소문하느라 근방에서 안 가본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별다른 정보가 없어 포기를 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발견하게 된 거죠.”
“그랬군.”
곧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인원이 찼으니 오늘의 마지막 놀음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줄을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야! 꼬마야! 주먹으로 치든, 아니면 발로 차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냐?”
“물론이죠. 검처럼 칼날이 있는 무기만 아니라면 다른 것은 어떤 것을 사용해도 괜찮아요.”
“정말이지?”
“그럼요~!”
오오오!
그러자 관중들이 다시 한번 갈채를 보냈다.
소년이 외쳤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처음 나선 자는 평범해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는 온갖 자세를 다 잡고 촐랑거리더니 거구의 배에 주먹을 질렀다.
찰싹!
주먹이 그의 복부를 때렸으나 거구의 사내는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괜찮소?”
“물론!”
“정말로 괜찮은 거요?”
“괜찮소이다.”
“정말로?”
소년이 사내를 끌어내며 말했다.
“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실패하였다면 어서 비켜주시지요.”
관중들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모기가 와서 때려도 그것보단 낫겠군.”
“자! 이번엔 내 차례요.”
다음에 나선 자는 주먹이 솥뚜껑만 한 사내였다.
그가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나의 주먹을 한 번 맞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며 쓰러지지. 혹시 죽는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원망하진 마시오. 흐하하하.”
그가 큰 동작을 하며 권을 내질렀다.
부웅!
철퍽!
보기에도 위세가 대단해 보였으므로 관중들 중 많은 이가 이번에야말로 그 거구의 사내가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명을 지른 이는 의외로 바로 지금 주먹을 내질렀던 자였다.
“으으윽!”
세찬 주먹질을 배로 받아낸 거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자리에서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아이구! 어이쿠야.”
반대로 그를 때렸던 사내는 자신의 팔목을 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와아아아!
“대단하다! 정말로 대단해.”
“정말로 소림 금강공을 익혔나 보군!”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줄줄이 도전을 하였으나 여전히 그들 중 성공한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개중에는 쇠몽둥이로 후려치거나 철봉을 사용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모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체구가 크고 주먹이 단단한 이들은 역으로 팔목이 꺾이거나 주먹이 부러져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만운이 말했다.
“괴물이네. 괴물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제운 사형이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요?”
“그러엄! 우리가 검문의 밥을 먹은 지가 몇 해인데~! 바로 쓰러뜨릴 테니 두고 보자고.”
진가보가 제운에게 말했다.
“마음껏 장을 질러보거라.”
“그러다가 죽으면 어찌하라구요?”
“하하하.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배운 것을 써먹어 보라니까.”
“알겠어요. 사형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제운은 내력을 돋은 뒤 거구의 사내를 향해 삼매권법의 제십 초식 일장압호(一掌壓虎)의 동작을 전개했다.
그 동작이 매우 간결하고 아름다웠기에 관중들이 갈채를 보냈다.
“오오! 드디어 무공을 배운 자가 나왔군!”
“멋지다!”
퍼엉!
쿠웅! 주르르륵!
와아아아!
“사, 사형!”
만운이 깜짝 놀라며 달려 나왔다.
제운의 일장이 거구의 배에 닿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그가 튕겨 나와 나자빠지더니 서너 장을 미끄러져 밀려난 것이었다.
제운은 이미 입에서 거품을 내뿜은 채 기절해 있었다.
두드득!
진가보가 속히 그의 팔목을 맞추고 기해혈을 주무르고 나서야 숨소리가 제대로 돌아왔다.
“사형? 괜찮을까요?”
검운이 묻자 진가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그저 내력이 상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되튕겨 나와 약간의 부상을 입은 것뿐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깨어난다 해도 어질거리고 한동안 움직이기 불편할 테니 너는 어서 가까운 객잔으로 데려가 머리를 높인 채 눕히고 소금물을 먹이도록 하여라.”
“예! 사형!”
만운과 검운이 제운을 안고 사라지자 진가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가보의 날카로운 눈빛을 접한 거구가 움찔하는 모습을 본 소년이 말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쯤 해두는 것이 좋겠군요. 돈은 돌려드리겠어요.”
그러나 진가보가 웃으며 말했다.
“이미 체결된 거래를 일방적으로 되돌려서야 안 되는 법이지.”
소년이 당황한 듯 거구를 보며 말했다.
“괜찮겠어?”
거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물러섰다.
진가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켜본 바로는 참 대단한 재능이군요. 그럼. 내 공격을 받아 보시지요.”
진가보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동시에 일장을 내뻗었다.
퍼억!
그러나 진가보는 그의 장이 닫기 전에 손바닥을 오므리더니 적의 배를 타격하는 순간 다시 그것을 활짝 폈다.
촤아악!
발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며 어느새 진가보의 일장이 거구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동작이었음에도 관중들은 이번엔 다른 이들이 공격했을 때와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진가보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으며 거구 또한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버티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거구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구역질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소년이 거구를 부축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여러 차례 헛구역질을 하더니, 급기야 시뻘건 선혈을 토하고 난 후에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와아아아!
감탄하는 자들도 있었고 거구의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소년이 안절부절못하며 거구를 깨우려 하자 진가보가 말했다.
“기혈이 역류해서 출혈이 발생한 것이니 반 시진 정도 자고 나면 본래로 되돌아올 것이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소.”
소년이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지요?”
“내가 그를 쓰러뜨렸으니 어디가 어찌 손상을 입었는지 의원이 아닌 이상 내가 가장 잘 알지 않겠소? 자! 우선 그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말을 마친 진가보가 거구를 등으로 받쳐 들었다.
“우아아! 저 덩치를 단번에 둘러업다니….”
소년도 별수가 없었는지 짐을 정리해 어깨에 메더니 진가보를 따라나섰다.
“같이 가요!”
한쪽에는 제운이, 그리고 다른 쪽에는 거구가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만운이 말했다.
“사형이 이 괴물 같은 자를 쓰러뜨린 거예요?”
진가보는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년이 말했다.
“당신이 형을 쓰러뜨렸다는 건 인정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린 은자 삼십 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당연히 당신에게 줄 돈도 없어요.”
“돈은 필요 없소.”
소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돈이 필요 없다구요?”
진가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그렇다면 당신도 그저 헛된 명성을 얻으려 참가했던 것이군요.”
그러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돈을 받지 않겠다 말했으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아요. 무공을 배우는 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죠?”
“나는 격뇌검문의 이대 제자 영운이다. 본명은 진가보라 하지.”
“그런데요? 굳이 이름을 밝히는 이유가 뭐죠? 우리가 서로 통성명을 할 필욘 없을 텐데요?”
만운이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참 버르장머리가 없는 꼬맹일세.”
따악!
순식간에 만운의 코가 부어올랐다.
소년이 어느새 들고 있던 동전 하나를 쏘아 보냈던 것이다.
“나에게 함부로 이야기한 벌이에요.”
만운은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고 코에서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야! 피잖아?”
“사형! 코피가 많이 나요.”
검운이 급히 손수건을 꺼내 그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검운이 화가 나서 주먹을 쥔 상태로 소년 앞으로 나섰다.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런 검운을 진가보가 만류했다.
“그만하거라.”
“아니, 사형도 보셨잖아요? 저 녀석이 만운 사형의 코를 부러뜨렸다구요!”
진가보가 소년에게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 싫다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
소년이 잠시 시선을 회피하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대체 뭐 하자는 건가요?”
“격뇌검문에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린 너희들을 인재라 생각하고….”
소년의 표정이 변했다.
“하하하 인재라구요? 우리가? 하하하하하. 정말로 재밌는 말을 하네요.”
“꿈을 꾸고 싶다면 찾아와라! 언제가 되었든 두 팔 벌려 환영하마!”
그러고는 사제들에게 말했다.
“자!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도록 하자.”
검운이 말했다.
“저들을 입문시키려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냥 가자구요?”
“그럼 너는 저들을 강제로라도 입문시키라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어서 가자.”
만운과 검운이 제운을 둘러업고 진가보를 따라나서자 소년이 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객잔으로 이동하는 동안 검운이 물었다.
“그런데 영운 사형은 그 철벽같은 괴물을 어떻게 쓰러뜨린 거예요?”
만운이 말했다.
“그걸 말해서 뭐 해. 대단한 내력을 사용했겠지.”
“나는 제운이 사용한 것보다 더 적은 내력을 소모했을 뿐이야.”
“네?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