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51화
본문
51화
-검술의 목적
송야흔 또한 삼매심검은 개조였던 진가보가 단 한 번 그의 제자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시연을 하였을 뿐인 검법이라는 것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수제자였던 정성보가 기록했던 내용에 의하면 다음과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삼매검법을 시연해 보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릇 권각의 연장에서의 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검법이나 검법으로 기능하지 않고, 검법이라 말할 수 없으나 검법의 기본을 잘 갖추고 있느니라.]
본래부터 한 번 이상 시연을 보이는 법이 없던 진가보였던지라 제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사부가 전수한 무공을 복원하여 검보로 만들고 수련을 거치는 데 매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는 삼매검법도 마찬가지였는데 요상하게도 이것만큼은 검문 최고의 재능을 지녔던 정성보조차도 검의 말식(末式)에 대해 정확히 기억을 해 내지 못하였다.
재능이 없는 자를 혐오하는 진가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정성보로서는 더 이상 그에게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개는 후일 진가보가 제자들의 성취를 가늠하는 자리에서 호된 꾸지람과 함께 잘못되거나 빼먹은 부분에 대해 보충하여 주었기에 그럭저럭 무공이 전수될 수 있었으나 삼매검법에 대해서 진가보는 그 이후 아무런 언급이나 성취의 확인이 없었다.
하여 삼매검법은 미완인 채로 남게 되었으며 결국, 근래의 재정리 때 교범에서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송야흔 또한 입문했던 시절 이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하여 삼매검법의 검초나 검식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검법을 배우면서 도대체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진가보가 가르치는 것을 보니 예전에 그가 배웠던 것과는 세밀한 부분에서 작은 차이를 보였다.
그뿐인가?
그 작은 차이와 지금 검을 내려놓고 검법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깨달았던 것이 있었다.
굳이 검초에서의 합리성과 목적성을 따지자면, 송야흔이 과거에 배웠던 것이 아니라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됐다.
그것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전혀 오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야흔은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삼매검법의 초식이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만일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제대로 된 삼매검법이라면 도대체 영운은 어떻게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지? 설마 이것도 호 사숙에게 배웠다 말할 것인가?’
결국, 송야흔은 진가보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검보를 정리한 정 사숙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호 사숙이 알 수는 없는 일이야.’
* * *
“그래?”
장추의 물음에 송야흔이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너는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권법은 어때했느냐?”
“검문에 남아 있는 검보에 적힌 삼매검법은 그것을 배우면서도 의아함이 많았으나 영운이 가르친 것은 적어도 제가 보기에 흠잡을 곳이 없어 보였습니다.”
장추의 눈이 빛났다.
“오!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찌 이것을 영운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호숙에게 배운 것을 스스로 개선을 한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사부님!”
“왜 그러느냐?”
“호숙은 문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검문검법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장추의 표정이 안쓰러워졌다.
“호운 사제는 문외인이 아니다.”
“사숙 스스로 검문을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검문을 버렸다면 그때부터는 문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호숙이 문외인이 아니라 하십니까? 벌써부터 일전 검문을 이탈한 제자들을 처벌한 것과 비교할 때 형평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막을 모르는 상황에서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
“사부님!”
“하지만 대뢰야!”
“네. 사부님!”
“호운을 내보낸 것은 바로 나와 사형들의 부탁 때문이었다.”
“부탁 때문에 호숙이 검문을 나간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너는 호 사숙을 제외한 다른 사숙들을 만나본 적이 있더냐?”
송야흔이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테지.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송야흔이 무척 놀란 듯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추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우리는 하룻밤 제대로 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잦은 외적들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하여 정 사형께서는 다른 두 사형을 소림으로 파견해 지원을 부탁하게 되었지. 그러나 우리를 찾아온 이들은 강호의 도적들이었다. 소림을 찾았던 두 사형의 시신과 함께 말이다.”
장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송야흔 또한 분기 어린 눈빛으로 바닥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놈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였기에 정 사형과 우리는 결사 항전을 결의하였다. 그러고는 수많은 동문들이 다시 피를 뿌리게 되었지. 살아남은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송야흔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장추가 등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멋대로 검문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송야흔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장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래. 우리는 막내였던 호운을 설득해 그를 검문에서 내쳤지. 그 후 일대 제자는 모두 파문시킨다는 무림 각파의 결정에 우리가 반발하자 사형들이 연달아 실종되거나 의문사를 당했다.”
“간악한…. 노, 놈들의 짓이었군요?”
“그래. 그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잠시 정적이 있었다.
착잡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자 장추가 말을 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대여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뿐이었으니, 그들은 별수 없이 그나마 나이가 있는 나를 장문인으로 두어 자신들의 통제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나 또한 검문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이나 호운 사제의 부탁이 없었더라면 이 수치스러운 삶을 스스로 끊고 말았겠지.”
“이럴 수가….”
“만일 호운이 검문에 남아 있었다거나 그가 다리를 잃은 불구가 아니었더라면 그 또한 이미 산목숨이 아니었겠지.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문적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무공을 가르친 이 또한 이미 검문에 입문을 예고한 그의 여식과 영운뿐이었다. 이 둘이 검문에 들어왔고 호운은 사사로이 검문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가 여전히 문적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겠느냐?”
송야흔은 그제야 모두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미처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추는 슬픈 과거가 떠오르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네가 가지고 있는 영운에 대한 의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송야흔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자는 두렵습니다. 영운이 쓰러져가는 검문을 되살릴 영웅이 될 것인지, 그나마 실낱같은 목숨마저 무참히 앗아 버릴 화마가 될지, 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장추가 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시게.”
송야흔이 깜짝 놀랐다.
“호 사숙께서 와 계셨습니까?”
장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운에 대해 묻기 위해 내가 불렀다.”
곧이어 호운이 들어왔다.
그는 밖에서 이미 둘 사이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송야흔이 호운에게 인사를 올리고 난 후 그가 자리에 앉자 장추가 물었다.
“사제! 조금 후에 영운도 이곳으로 올걸세. 나는 자네는 믿으나 대뢰는 그로 인해 마음의 불안이 큰 듯하군.”
호운이 말했다.
“검문에 연이은 비극만 있었을 뿐이니 대뢰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비단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영운이란 아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호운이 잠시 감정을 추스른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평생을 그리워하던 이입니다. 저는 그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장추의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대체 그것이 무슨 말이야?”
그때, 문이 열렸다.
모두 바라보니 진가보가 비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호운아! 너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나와의 약조를 지켜주었구나.”
호운이 진가보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자 장추와 송야흔은 너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추의 눈에 핏발이 섰다.
“네 이놈! 너는 대체 누구이길래 나의 사제를 농락하고 이제는 우리마저 농락하려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내 장추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해 갔다.
“이럴… 수가…. 대체…. 이럴 수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니야. 이것은 말이 되지 않아.”
장추는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진가보의 표정과 눈빛이 바로 그 옛날 자신을 바라보던 사부, 진가보의 것과 완전히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송야흔은 불같이 노기를 뿜어내던 자신의 사부가 이처럼 무너져내리자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사부님!”
송야흔이 장추를 부축하자 그가 팔을 내밀어 그를 만류했다.
“아니다. 아니야.”
그러고는 호운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사실인 것이냐?”
호운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형! 바로 사부님이십니다!”
송야흔은 이 말을 듣고 기절할 것만 같았다.
‘호 사숙이 사부님이라 부르시다니. 그럼 영운이 개조님이시란…’
진가보가 말했다.
“장추야! 저는 언제나 나에게 물었지. 사부님! 저는 언제나 적을 앞에 두면 두려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저는 훌륭한 검사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아아!”
장추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진가보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때 차마 너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그저 품에 안아 등을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해서는, 특히 너처럼 두려움을 타고난 아이는 좋은 검사가 되기 힘들단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사부님!”
장추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줄 수 있다. 너는 두려움을 잘 이겨 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덕분에 검문이 그 실낱같은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장추야! 너는 이미 훌륭한 검사이자 장문인이니라!”
그 말을 들은 장추가 오열을 했다.
그뿐인가? 곁에 있던 호운은 물론 송야흔까지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송야흔은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어찌 이런 일이…. 어찌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진가보가 장추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많았다. 내 너와 네 사형은 물론, 호운에게도 너무나 많은 빚을 지었구나.”
“빚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흑흑흑.”
“내 반드시 검문을 일으켜 그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무리를 짓밟고야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