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일 집착남주가 이상해졌다-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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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둘러 한스에 대해 설명했다.

“칼릭스 님, 한스는 그러니까… 음, 한스는 저를 구해준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칼릭스의 얼굴빛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마음이 절로 급해졌다.

칼릭스의 저런 얼굴과 상태가 나를 향한 것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스를 향한 것이란 뜻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나 이유가 뭐든 최대한 빨리 한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는 건 분명했다.

“제가 다커스 제국에서 도망쳐 나올 때,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한스에요. 그때 메리도 제가 다커스 제국에서 데리고 나왔거든요.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한스는 에버레티안 사람도 아닌데 메리를 위해서 나라를 떠나서 여기서 정착을 하려고….”

나는 순서도 없이 한스에 대해 늘어놓았다.

칼릭스가 한스에게 화가 날 이유도 없지만, 화가 나서도 안 됐다.

다행히 칼릭스의 표정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막고 물었다.

“한스라는 자가 황후를 탈출시킨 사내고, 그대의 하녀와 결혼을 한다는 말이지? 그럼, 그대는 그 이전에 그자를 만난 적은 없는 건가?”

아…!

있지!

그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지요.

지금 다시 떠올려도 무서운 납치범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한스가 다시 나를 탈출시켜준 것은 사실이었고 이제 그는 내 소중한 하녀 메리의 남편이 될 터였으니까.

“아…! 그렇죠. 제가 한스를 어떻게 알았겠어요. 소렐 왕국 사람인데. 제가 얘기했잖아요. 소렐 왕국 출신 백작 부인 덕에 탈출했다고. 물론 그 부인이 월든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긴 했지만. 아무튼, 그 부인 가문의 고용인이었는데, 제 메리와….”

난 나중에서야 다커스 제국에서의 탈출이 납치 살해로 잘못 전해진 전말을 알게 됐었다.

스털링 부인의 독자적인 조작이었다는 것을.

에버레티안이 다커스 제국에 쳐들어갔을 때, 이미 스털링 부인의 행방이 묘연해진 모양이었는데, 이후로도 그녀는 소렐 왕국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 이후에 스털링 부인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지도 못했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를 흘렸던 어쨌든 내가 그 부인 덕에 탈출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칼릭스도 그 부인을 따로 추적하지는 않았다.

칼릭스는 한스에 대해 설명하던 내 말을 자르고 물었다.

“그 한스가 에버렌으로 온단 말이지?”

“네, 그렇…죠.”

자꾸만 오늘따라 내 말을 가로막는 칼릭스가 참 이상했다.

유난히 한스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궁금해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대의 하녀인 메리라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네.”

“왜, 메리라는 여자가 소렐 왕국으로 가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아, 그거야, 제가 메리를 너무 아끼니까 한스가 여기에서 자리를 잡기로 한 모양이에요. 메리도 저를 떠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얼마나 다행인지.”

“메리가 그렇게 소중해?”

어쩐지 다시 칼릭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 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그가 왜 이렇게 예민한 걸까?

“메리는 제게 소중한 하녀예요. 메리 덕에 제가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다커스 제국을 떠나서 저를 따라와 줬으니까요.”

“그대는 소중한 사람이 참 많군.”

그렇게 말하는 칼릭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왜 예민해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그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싫었다.

“칼릭스 님, 소중한 사람이 많아도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칼릭스.”

내가 그를 안으며 말했다.

내 말에 칼릭스는 비로소 이상하게 날카롭던 표정을 풀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는 보통 낮 시간에 내 침실을 들렀을 때보다 훨씬 긴 시간 머물렀다. 결국 밖에서 시종장이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닦달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마지못해 침대에서 나를 풀어주었다.

밤에도 올 텐데….

낮에도 이러면 곤란한데?

그가 방을 떠나고 나서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침대에 늘어졌던 나는, 아무래도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메리가 한스와 결혼하고 황궁 출퇴근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황후 마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결혼하고 부쩍 더 예뻐진 것 같은 메리가 얼굴에 슬픔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필요할 때만 가끔씩 입을 여는 그녀가 또 지난번처럼 흔치 않게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다.

“그래, 메리. 무슨 일이야?”

“황후 마마,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제 하녀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만두다니?

갑자기 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생겨도 내 곁에 머무르며 내 시중을 들고, 하녀 일도 계속하겠다던 메리가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뀐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아무래도 소렐 왕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남편의 고향으로 말이냐?”

“예.”

“하지만 남편이 소렐 왕국에서의 일을 접고 이곳으로 와서 빵집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었지 않나?”

“예, 그랬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소렐 왕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게 됐다고 하네요.”

“갑자기?”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메리를 보내기는 싫은데….

“예. 언제까지고 황후 마마의 시중을 들고 싶었는데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나야 너무 아쉽고 헤어지기 싫지만, 남편이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지. 그렇긴 한데, 여기서 자리를 잡은 빵집 일은 어쩌고? 거기서 일도 관두고 왔다면서. 남편이 돌아가면 다시 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메리가 떠난다는 사실도 매우 섭섭했지만, 그것보다도 이미 소렐 왕국에서 일을 그만두고 왔다는 그들의 생계도 걱정이었다.

저런 말을 꺼낸 것을 보면 메리는 이미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내가 말린다고 해서 될 상황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부가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도움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동기와 과정이 어떠했든, 두 사람은 내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걱정하는 내 얼굴빛과 달리 메리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며 그녀는 흔치 않게 조잘조잘 대답했다.

“황후 마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소렐 왕국으로 가면 귀한 분이 한스에게는 빵집을 차려주시고, 제게는 꽃집을 차려주신다고 하셨답니다. 귀한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꽃집이라니요. 게다가 꽃집의 종업원도 아니고 제 꽃집을 가지게 된다니요!”

!!!!!!!!!

세상에!

놀랠 노자군.

정말 그 한스와 메리가 얘들인가?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어?

귀한 분은 도대체 누구야?

돈이 넘치는 자선 사업가인가?

“메리! 정말 잘됐네. 나를 떠난다는 사실 말고는, 너에겐 오히려 잘된 일 같은데?”

“예, 사실 정말 잘되긴 했어요. 한스도 빵집에서 박봉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제 자기 빵집을 가지는 거니까요. 황후 마마와 헤어지는 건 슬프고 죄송한 일이지만요.”

메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다.

“그러면 언제 가는 거야?”

“아…!”

갑자기 다시 메리의 표정이 어둡게 변하고 말았다.

설마 당장 간다는 건 아니지?

그녀의 표정을 보자 나는 또다시 불안해졌다.

“왜 그래? 언제 가는 건데?”

“그게, 일주일 안에 당장 떠나야 한다고. 그래야만 빵집도 꽃집도 주시겠다고 하셨다고….”

“어머! 메리….”

듣다 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빵집 한스와 꽃집 메리인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무슨 자선 사업가가 이렇게 촉박하게 사람을 보내버려?

사기꾼 아니야?

“메리, 그런데 말이야, 그 빵집, 꽃집, 좀 이상하지는 않아? 갑자기 그렇게 해 준다는 게.”

“아, 그건…. 한스가 아무런 의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실하다고 했어요.”

“그래도 모르는 거야. 자기의 비밀스러운 목적을 이루려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무 이유 없이 빵집도 꽃집도 다 내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무조건 빨리 가야 한다는 조건도 수상하고.

“한스 말로는 절대적으로 믿어도 되는 사람이랬어요. 황후 마마, 한스는 생각보다 확실한 사람이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메리의 얼굴엔 한스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하긴, 나도 겪어봐서 알지.

한스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끝까지 내 위험한 탈출을 도와준 책임감 강하고 믿을만한 사내였다. 물론 납치도 잘했고….

그래, 메리도 야무지긴 하지….

나는 별수 없이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만약 소렐 왕국으로 가서 일이 잘되지 않으면 나는 언제든 메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주저하지 말고 돌아와. 잘 살면 더 좋고. 알았지?”

나를 보험으로 생각하라고, 메리.

“예. 황후 마마.”

내 말에 대답하는 메리가 어느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내가 메리의 손을 잡아주자 메리는 더욱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연거푸 말했다.

“감사합니다. 황후 마마. 감사합니다.”

잘 살아, 메리.

하긴 잘 살겠지.

메리와 한스의 끝도 없는 낮과 밤이었잖아.

아주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나는 울어도 예쁘게만 보이는 메리를 보며 오랜만에 한참을 잊고 있던 책이나 읽어야겠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워낙 충실한 실전을 하루가 멀다 하고 겪는 터라 책에서 손을 놓은 지도 한참 됐었다.

그렇지만 고전은 언제 읽어도 고전이지.

가끔은 활자도 봐주며 교양도 쌓아야 하고.

그나저나 메리와 한스에게 가게를 준다며 이주를 권한 자선가 얼굴이 궁금하네, 정말.

그 소설의 작가인가?

묘하게 이름이 일치하는 커플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소설로 번 돈을 이 커플에게 베풀어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한 자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