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50화

50화

-진가보 기본을 세우다

검운의 질문에 만운은 두 가닥 내려온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말했다.

“너는 화운 사매가 영웅 대회에서 나를 향해 뜨거운 눈길을 보냈던 것을 잊었나 보구나?”

제운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어휴. 그건 네가 무릎이나 꿇고 엉엉 울어대니 한심하고 걱정돼서 그런 거지. 그런데 사제는 지금 그런 식으로 시선을 끌고도 어떻게 그렇게 연결할 생각을 할 수 있지?”

“사형은 모르는 겁니다. 그게 바로 모성애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만 봐도 화운 사매는 모성애가 느껴지는 사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

“허튼소리 말고 일찍 자두는 것이 좋아. 내일부터 다시 수련에 들어갈 테니까 말이야.”

진가보의 말에 만운과 검운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사형!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출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수련을 한답니까?”

제운이 그런 그들을 나무랐다.

“너희들은 정신을 못 차렸군. 수련을 하루라도 멈춘다면 그간의 성취가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사형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말이야.”

“그게….”

제운은 진가보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사형! 저는 내일부터 사형의 밑에서 수련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진가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일부터 오전은 내가, 오후에는 사부님께서 수련을 진행하실 것이다.”

만운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정말요? 사형이 수련을 진행하다니? 정말 사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진가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운이 말했다.

“그야말로 사형의 탁월한 능력을 사부님께서도 인정하신 것이군요?”

제운이 만운과 검운을 그들의 침상으로 몰아내며 말했다.

“자~! 자~! 사형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서들 잠자리에 들자. 내일 수련에서 흐느적거리면 내가 먼저 혼을 낼 테니.”

* * *

그때, 장문전에서는 장추와 송야흔이 일대 제자 중 셋째인 상뢰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검문을 이탈한 자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송야흔이 물었다.

“그래? 그들이 어디에 있었더냐?”

“창운을 제외하고는 예하의 객잔에 머물고 있더군요.”

“흠! 중원을 벗어나려 했던 것이군. 창운은?”

“상황을 듣자 하니 경쟁 문파에서 모두 그를 받아들이지 않자 크게 실망을 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흠….”

“격뇌검문의 위상이 아무리 바닥에 떨어졌다 한들 강호의 규율이 있는데 그들을 받아들여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문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중원에서는 그들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니 창운 또한 관외로 나가려 했겠지요.”

송야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처리했는지 보고하여라.”

“그들은 모두 되돌아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규정대로 한번 검문을 벗어난 자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그들은 향후 검문에서 배운 무공을 평생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조와 함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측 손의 지굴근(指屈筋)을 스스로 잘랐습니다. 그러고는 사지근맥을 자르는 처벌을 면하게 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거듭 감사를 올렸습니다.”

장추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안타까우나 어쩔 수 없는 일. 어차피 그들이 배운 것은 입문 무공에 불과한 것. 이 정도면 충분한 대가를 받았다 할 수 있다.”

송야흔이 말했다.

“사제! 수고하였네. 이제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상뢰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럼 창명의 행방을 찾는 대로 다시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나간 후, 장추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송야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님!”

“내가 어린 나이에 검문에 입문했을 때, 이곳은 중원 무공의 정점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쇠락하여 위세가 사라지고 이제는 내부적인 기강마저 땅에 떨어져 버렸구나. 참으로 슬프고도 통탄할 일이야.”

송야흔의 표정에도 슬픔이 어려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인원들이 한솥밥을 먹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문하를 정리해야 할 일이 생길 줄이야.

송야흔이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영운, 너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너로 인해 비롯된 것은 분명한 사실. 앞으로 너의 행보가 기대와 어긋난다면 나 스스로부터가 너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송야흔은 배분 대련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일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인데, 결국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장추는 호운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으므로 차마 그 청을 져버리지 못하였다.

사실 그 또한 호운이 육신은 검문을 떠나 있으나 그 마음이 아직 검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일은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검문을 떠나려 할 자들이었다면 더 늦기 전에 떠나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게야.’

* * *

“네? 검술이 아니라 권각술을 배운다구요?”

진가보의 말에 사제들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 검술은 사부님께서 가르치실 테니까.”

“왜죠? 우리 문파는 검술로 유명한 것이지 권각술로 유명한 것은 아니잖아요?”

“권각술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어요?”

진가보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권각술은 검법과 비교해 실전성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 같은 경지라면 검을 들고 있는 편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말이야.”

검운이 말했다.

“그래도 소림의 금강불괴와 같은 무공은 검으로도 쉽게 어찌할 수 없잖습니까?”

“옳은 말이야. 어찌 되었건 모든 무공은 결국 적을 제압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강호에 숱한 무공들이 있는 것처럼 모든 무공은 생존이라는 목적하에 각자의 강점과 특기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건 그래요. 그래도 굳이 검문에서 권각술을 배울 필요까지는….”

진가보가 말을 이었다.

“실전을 겪다 보면 언제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과 싸우게 되는 건 아니야. 실전에서 검법을 시전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검이 훼손되는 일이다.”

제운이 말했다.

“맞습니다. 진뢰 사부님도 적과 검을 부딪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셨지요.”

진가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옳은 말씀이지. 전투 중 검의 이가 빠지거나 혹은 부러지거나, 검신이 흔들리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이는 호 사숙의 경험을 통한 것이니 사실이라 할 수 있지. 때로는 백결문처럼 상대의 검만을 파괴하는 무공을 지닌 문파들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사형께서는 혹시 검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권각술을 익히란 말씀이신 건가요?”

진가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주된 이유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본시 강호의 각 문파들이 각각 내공을 더 중시하거나 외공을 중시하는 곳으로 나뉜다는 사실은 모두 알 것이다.”

“맞아요. 천라문은 외공을 중시하는 편이지요. 반면에 무당은 내공을 중시하구요.”

“격뇌검문은 무엇을 더 중시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

“격뇌검문은 내공을 중시하지 않나요? 대다수 검을 사용하는 문파들의 특징이잖아요.”

진가보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중시한다고 해서 그것만 배우라는 말은 아니지. 외공을 중시하는 천라문에도 대단한 내공비전들이 존재하지 않더냐!”

“그건 그렇죠.”

“근력과 속도만으로 주먹을 사용해 바위를 격파하거나 범을 때려잡는 따위의 일들만이 외공을 수련한 결과물은 아니야. 사실 검이라는 것도 사실은 손발의 연장인바, 권각술을 익혀두는 것은 반드시 검술과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격뇌검문에 권각술이 있나요?”

진가보가 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있지. 다만 제자들이 나의 검술만 익히는 것조차 버거워했기 때문에 가르치지 못했을 뿐이야. 한 가지가 완벽해지지 못하면 다른 것을 가르치지 못하던 나의 완벽주의도 그것에 한몫을 하였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코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사형! 권각술이 없는데 무슨 수로 가르친단 말이에요?”

진가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격뇌검문도 권각술을 가지고 있다.”

모두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권각술이 있다구요?”

“그래.”

“그런데 왜 사부님께서는 저희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거죠?”

* * *

“뭐? 권각술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은 진뢰가 깜짝 놀랐다.

“사형!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진뢰가 송야흔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아침에 영운이 작성해 올린 수련계획서를 가져와 보거라.”

그는 진뢰가 가져온 계획서를 읽고 난 후 신음성을 내뱉었다.

“진짜로 수련 계획서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구나. 너는 어찌 이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

진뢰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사형! 오전에 급히 맹에서 파견을 나온 관시(館視)를 접대하느라 미처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중요한 일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다니….”

진뢰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할까요?”

송야흔이 한숨을 내쉬었다.

“검문의 교범은 일개 제자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영운, 그 아이가 수련을 함에 있어 공을 세운 점을 인정하여 오전 수련을 그에게 맡기자는 너의 청을 수락했던 것인데 그 처음부터 큰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하지만 그가 이미 수련 계획서를 제출했다면 형식적으로 문제가 없는바, 정말로 일이 난처하게 되고 말았어.”

진뢰가 말했다.

“제가 지금이라도 가서 영운에게 사정을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송야흔이 만류했다.

“아니다. 이미 계획서를 제출하고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무슨 명분으로 그를 막는단 말이냐. 하지만 너는 당장 나를 따라오거라.”

“네? 사형께서 직접 연무장으로 가신단 말입니까?”

“영운이 아무리 공을 세웠고 재능이 탁월하다 하여도 개조께서 세우신 분 문의 교범을 이처럼 뒤집는 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는 일. 수련에 있어 추호의 문제라도 있다면 내 그를 바로 잡을 것이다.”

그러나 연무장에 도착한 송야흔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가보의 명에 따라 이대 제자들이 수련하고 있는 것은 권법이 분명한데 그 보법이나 권술이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진뢰가 신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 저것은!”

“삼매심검이 아니더냐? 저 아이가 어찌 저것을….”

송야흔이 이렇게 말하자 조마조마했던 진뢰가 안심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저 삼매심검에서 검만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본 문의 무공이 맞습니다. 오히려 십여 년 전 교범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검법의 목적이 애매하고 완성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정에서 제외된 것이 아닙니까? 원칙대로라면 개조님의 교범에는 포함이 되어 있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운이 이것을 가르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셈이죠.”

그러나 송야흔은 이미 무엇인가에 정신이 몰입된 상태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며 끊임없이 얕은 탄성을 질렀다.

“저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