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환생-48화

48화

-관제 여혜

여혜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니 그쯤 해두도록 하죠.”

손세경이 조롱하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채를 펄럭였다.

“그쯤 해두라고…. 아하하하! 이거, 정말로 무서운걸?”

손세경이 웃기 시작하자 그의 수하들도 낄낄거리며 따라 웃기 시작하였다.

그쯤에 점소이가 차를 가져오더니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차를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손세경을 향해 말했다.

“이곳은 맹에서 관할하는 곳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겁니다요.”

말을 들은 손세경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뭣이라?”

손세경이 점소이의 멱살을 움켜쥐자 그가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렸다.

쨍강!

점소이가 양손을 들고 벌벌 떨며 말했다.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구요. 이런 짓을 한다면 맹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요.”

손세경이 멱살을 바짝 잡아당긴 후, 점소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붙인 후 말했다.

“내가 맹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그가 멱살 잡은 손을 내치자 점소이가 꽈당 소리를 내며 탁자에 나가떨어졌다.

그가 겁에 질린 채 간신히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가자 손세경의 시선이 다시 여혜에게 향했다.

“고 년이 반반하게 생겼으나 성깔은 고약하구나. 어떠냐? 나와 함께 주루로 가 술이나 한잔하는 것이?”

여혜가 냉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늘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지난번 만운 사형에게 저지른 일까지 한꺼번에 혼쭐이 나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꺼지세요.”

촤르릉!

수하 하나가 검을 뽑으며 일갈했다.

“꺼지라니, 이 건방진 년이!”

손세경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오오! 좋아! 좋다구. 이 패기! 여느 처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것이지. 나는 이렇게 관제처럼 우람한 패기를 지닌 처자에게 끌리거든!”

부르르르!

돌연, 크게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나기 시작했다.

다들 깜짝 놀라 살펴보자 여혜가 앉은 탁자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감히 나보고 관제라고?”

퍼억~!

콰앙!

수하들은 엄청난 살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았을 때, 객잔의 벽에 손세경이 처박혀 있었다.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입에는 조금 전 그가 펄럭이던 부채가 쑤셔 넣어져 있었다.

눈을 뜬 채 부들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미 실신해 버린 것 같았다.

여혜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하들을 돌아보자 그들이 움찔하며 두 발 더 물러섰다.

여혜는 속이 상한 듯 한 번 발을 구르며 신경질을 내더니 들고 있던 찻잔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쨍강!

박살이 나 튀어 나간 파편 하나가 수하들이 들고 있던 검을 때렸는데 그 진동이 엄청나서 그의 손아귀가 대번에 찢어져 버렸다.

검을 놓친 수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여혜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괴, 괴물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진가보가 들어섰다.

그는 난장판이 된 객잔의 대청을 둘러보고는 대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이 여혜의 성질을 건드린 것이 분명해.’

수하들은 진가보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서둘러 손세경을 부축한 후, 문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어쨌든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군.’

사실 진가보가 여혜를 따라나선 것은 단순히 그녀가 걱정이 돼서만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개립을 쓴 채 종남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저녁 무렵이 되어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진뢰가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만운이 진가보에게 물었다.

“사형! 사매는 좀 화가 풀렸나요?”

“그녀는 성격이 직설적이기는 하나 뒤끝이 없으니 곧 풀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휴우! 그것참 다행이네요.”

진가보가 검운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건 비무일 뿐이야. 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해할 필요는 없어.”

제운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사형은 어떻게 아셨어요? 검운이 패했는지 말이에요.”

“그래도 거의 대등하게 싸웠을걸?”

만운이 말했다.

“맞아요. 화평을 상대로 사제가 그 정도까지 선전을 하다니, 정말로 놀랐다구요. 그런데 사형은 마치 이번 비무의 승패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칠검문의 화평은 뛰어난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성정이 침착하고 성실하여 쉽게 실수를 하지 않는 자이니까. 짧은 시간의 수련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은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지. 사제가 그를 상대로 거의 대등하게 대전을 하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승리만큼이나 값진 결과라 할 수 있어.”

검운이 말했다.

“맞아요. 검운이 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성원이 대단했다니까요.”

검운도 말했다.

“이번 비무를 통해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열심히 수련해서 다음 영웅 대회에서는 좋은 결과를 낼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뢰가 말했다.

“검운이 듣던 중 반가운 말을 하는구나. 하지만 이차시까지 통과하는 문파는 강호 전체 문파들 중 겨우 삼 할에 불과하다. 너희들이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내고야 말았어. 격뇌검문에도 곧 소식이 도착할 테니 아마 모두 기뻐할 게야.”

만운이 말했다.

“삼차시는 열흘 뒤부터 시작하잖아요?”

진뢰가 답했다.

“그렇지!”

“그 기간 동안 지난번처럼 빡세게 훈련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진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이번차시까지를 끝으로 검문으로 돌아간다.”

제운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지금 파죽지세로 결과를 내고 있는데 삼차시를 포기하고 검문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허허허! 이 녀석! 영웅 대회가 검문의 일보다 중하단 말이더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검문의 일이라뇨?”

“사부님께서 소집을 명하셨다. 오늘 맹에도 보고를 하여 허락을 받았으니 별문제는 없을 게다.”

“그런데 소집을 하셨다구요?”

“그래! 자세한 것은 검문에 돌아가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제운을 비롯한 모두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진뢰가 진가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차시까지만 참여하겠다는 것은 영운 너의 생각이었지. 그때 나와 사부님은 너의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번번이 단 한 차례의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던 격뇌검문이 삼차시 참여를 걱정하다니 말이야.’

진뢰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러나 결국 지금에 와서는 모두 너의 말대로 되었다. 그리고 강호의 모든 문파들이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검문의 처지로 보았을 때 이쯤에서 빠지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적기일 것 같구나. 더 관심을 받았다간 검문에 대한 맹의 경계가 한층 심해질 테니 말이야.’

진뢰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주문하였다.

모든 제자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승리와 성취의 기쁨에 도취되어 그야말로 빛나는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여혜도 어느새 화가 풀어졌는지 밖으로 나와 여느 때와 같이 사형들과 티격태격하였다.

* * *

“그러니까 그 손세경이라는 놈이 사매에게 찝쩍댔었단 말이잖아?”

만운이 묻자 여혜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사형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점소이가 말해줬지. 그런 놈은 아주 혼쭐을 내줘야 하는데 사매가 아주 통쾌하게 해결해줬다고 말이지.”

검운이 말했다.

“그 보화령이라는 곳은 뒤끝이 작렬하기로 유명한 마교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교주의 아들을 그렇게 만들어놨으니 혹시라도 놈들이 해코지를 하면 어찌하죠? 놈들하고 엮이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 텐데 말이죠.”

제운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놈들이 사매에게 집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나라도 두 동강을 내버리고 말았을 거야. 막말로 제 놈들이 잘못한 것인데 누구에게 보복을 해!”

여혜가 말했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쉴 곳을 찾는 것이 좋겠어요.”

“쉴 곳? 저 산만 넘으면 이제 격뇌검문인데 뭔 쉴 곳을 찾는다고?”

여혜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곧 폭우가 올 거기 때문이지요!”

만운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깔깔대고 웃었다.

“아하하하. 말도 안 돼! 이렇게 날이 맑은데….”

* * *

“엣취! 으이구, 추워라! 사제! 그 불을 좀 잘 붙여봐! 추워서 네 사형이 돌아가시겠어.”

만운이 흠뻑 젖은 채 오들거리며 끝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와중에도 불을 붙이려는 검운을 재촉했다.

“사형은 좀 닦달 좀 하지 말아요. 젖은 가지밖에 없어 불이 잘 안 붙는다구요.”

진뢰가 옷을 탈탈 털며 말했다.

“갑자기 폭우라니. 그나마 연운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구나.”

제운이 물었다.

“그런데 사제는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 맞춘 거야?”

여혜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되죠.”

“하하하! 그렇겠군.”

간신히 불을 피우고 어느 정도 옷을 말리자 제자들은 솥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 짓는 냄새가 낡은 폐사찰에 가득해지자 모두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만운이 말했다.

“이처럼 즐겁게 검문으로 돌아가는 건 처음이네요.”

제운도 말했다.

“우리가 돌아가면 모두들 영웅대회에서의 무용담을 기대하고 있겠지. 암. 분명히 그럴 거라고.”

“그런데 이 비가 언제까지 내릴까요?”

검운의 질문에 진뢰가 문밖으로 하늘을 살피며 말했다.

“글쎄.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구나.”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모두들 마른 짚에 의지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만 진가보만이 사찰의 처마 밑으로 나와 떨어져 내리는 비를 보며 앉아 있었다.

“왜 안 자고 나와 있는 것이냐?”

진뢰였다.

진가보가 웃으며 답했다.

“오랜 옛날 일이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그때도 비를 피해 이곳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었지요.”

백 년도 넘은 옛날의 일이었다.

진가보는 전생의 그 옛날, 이곳에 터를 잡기 위해 처음으로 구주를 찾았던 어린 시절의 일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때엔 나 혼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구나.’

진뢰가 진가보의 옆에 털썩 앉았다.

“나는 요즘 들어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드는구나.”

“무슨 생각이 말입니까?”

“왠지, 네가 격뇌검문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더구나.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우스운 일이지.”

‘아니요.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니외다. 격뇌검문은 나에게서 비롯되었고 나로 인해 몰락하였으니 말이오.’

“어쨌건 네가 검문에 들어온 후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것은 검문의 식구들이 조금씩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대 제자들만이 아니다. 나도 너로 인해 검문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되었거든.”

“과거의 격뇌검문은 어땠습니까?”

“글쎄다. 내가 제자로 들어온 때에도 이미 검문은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진 호랑이 신세였다. 하지만 사부님께 들었던 과거의 검문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위세를 자랑했다고 하더구나.”

‘그랬지. 그랬었다. 그때엔 정말로 격뇌검문의 세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모두들 의욕을 잃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