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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집착남주가 이상해졌다-3화

본문

쿵푸벳

- 3 -

꼭 그런 사랑을 하길 바란다고?

그게 무슨….

아하! 그 얘기야?

그럼 그렇지.

너를 사랑하라는 얘기구나!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었으나 다행히도 금세 칼릭스의 숨은 의중을 읽어냈다.

그때였다.

“린.”

칼릭스의 말과 행동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낸 내가 칼릭스를 향해 다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내던 그 순간, 내 옆에 다가온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린?

린이라니….

아버지와 오빠인 루크 외에 케일린을 ‘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눈앞에 나타난 이가 리온 대공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내 소설 속에서 케일린이 사랑한 그 리온.

그러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철저히 거리를 둬야할 바로 그 리온이었다.

그는 금발 벽안의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미남이었다.

미남인데, 이렇게 감흥이 없을 수가….

그가 나를 죽음으로 이끌고 갈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유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리온에게 조금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

“대공 저하.”

깍듯하지만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절을 했다.

어떤 친근감도 느껴지지 않도록.

그러나 나의 깍듯함과 굳은 표정에도 리온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린, 내가 좀 늦었지?”

그의 눈에서는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말투와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오래되어 익숙하고 편안해졌음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태도였다.

미안… 리온.

그렇지만 어쩌겠니.

나는 지금부터 너와는 철저하게 멀어져야 한단다.

“아, 저는 황태자 전하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서 대공 저하가 늦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리온의 얼굴엔 의아함과 당혹감이 떠올랐고, 루크를 포함한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칼릭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옆얼굴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칼릭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내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경직돼 있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표정으로 자신의 와인 잔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계속 주시하는 것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그는 시선을 와인 잔에 고정한 채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다.

칼릭스를 보고 있는 내게 리온이 다시 말했다.

“린, 우리 춤출까?”

리온은 내 차가운 태도를 일시적인 자신의 기분일 뿐이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거 아니야, 리온.

앞으로 너와 나는 춤은커녕, 말도 섞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리온의 말에 대한 칼릭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다시 칼릭스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와인 잔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숨기고, 감정이 드러날 것 같은 눈동자는 와인 잔으로 피난을 갔단 말이지?

그렇지만 지금 네 가슴엔 나를 향한 집착과 리온을 향한 질투가 이글거리고 있다는 거, 내가 다 알아.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어.

네 마음속의 결핍과 가질 수 없는 이에 대한 열망으로 쌓인 집착, 그리고 쌓여가는 애증을 내가 말끔히 없애줄 거니까.

나는 칼릭스에게서 시선을 거둬, 리온에게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말했다.

“리온 대공 저하, 죄송합니다. 저는 칼릭스 황태자 전하와 첫 춤을 추고 싶습니다만.”

리온에게는 기가 막히고 황당할 내 반응이었겠지만 난 목표가 뚜렷했기에 거침이 없었다.

어찌나 목표만을 생각했는지, 말을 뱉고 나서야, 내가 춤을 출 수는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칼릭스 너 들었지?

난 너에게 마음이 활짝 열려있단다.

리온 말고 너!

처음의 내 냉담함에는 흔들리지 않던 리온의 얼굴이 이번에는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빨개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고, 그들끼리 교환하는 눈빛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계속 제 감정을 숨기고 와인 잔만을 주시하고 있던 칼릭스도 더 이상 내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커다래진 눈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칼릭스는 날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3초쯤이나 흐른 후에 내게 물었다.

“브록버크 공녀, 지금 뭐라고 했지? 나와 춤을 추겠다고?”

“네, 황태자 전하. 저와 첫 춤을 춰주시겠어요?”

춤은 추면서 배우면 되지.

까짓거 칼릭스와 리듬에 몸을 맡기는 거야!

춤을 출 수 있건 없건 일단 말을 던진 이상 전진뿐이었다.

그러나 내 말에 칼릭스는 또다시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역시, 약 3초쯤 흐른 후,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난 춤추는 건 즐기지 않는 편이라.”

“!!!!!!!”

뭐?

남주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니?

나를 거절한 거야?

네가?

나를?

칼릭스가 나, 케일린 브록버크를 거절한 거야?

지금까지 당당하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분명 내 글에서는 리온과 내가 춤추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심기가 불편해지는 그였다.

그런데 내가 알아서 리온을 거절하고 자기와 춤추겠다고 말하는데, 나를 거절하겠다고? 감히 짝사랑 중인 네가?

내가 의아해하든 말든 그렇게 말한 칼릭스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뭐야, 쟤….

나는 어처구니가 없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는 그는, 나를 보는 대신 옆에 있던 사내와 국경 지역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말 왜 저러지?

원래대로 좀 하라고!

짝사랑에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집착남주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내 호감에 감격해도 모자랄 판에 왜 저렇게 무심하고 평화로워?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나는 그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워 그의 얼굴을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칼릭스가 마침내 말을 멈추더니 나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당황한 것처럼도 보였고….

저 굳은 얼굴과 경직된 표정….

아… 혹시 지금 나 때문에 극도로 긴장한 건가?

그거네.

태연한 척하지만 내가 갑작스럽게, 호의적으로 다가가니 너무 황송하고 급작스러워서 당황한 거야.

얘는 감정 표현에도 서투르잖아.

지금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나한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는 거지.

난 그의 굳은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그의 복잡한 심리를 해석해냈다.

내가 작가라 정말 다행이었다.

내 남주라, 나는 얘 성격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는 거지.

그래, 소설과 달리 내가 너무 돌변해서 친근하게 굴긴 했다.

당황할 만해.

이해된다.

내가 칼릭스를 살피는 동안, 나를 살피는 리온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나를 위해서도, 나를 향한 마음을 접어야 하는 리온을 위해서도 빨리 잘라주는 게 좋았다.

그때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고, 연회장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마침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파티의 주요 인사가 온 모양이었다.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들어선 이가 이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사람들의 무리를 서서히 지나치며 홀 중앙으로 들어오는 이든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그의 은발이었다.

그리고 점점 멀리 있던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머리카락만 눈에 띄던 상태에서, 그의 얼굴 윤곽도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뭐야 저 말도 안 되는 미모는!

여주를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로 쓰려고 은발 벽안으로 설정하느라 그녀의 오빠도 은발 벽안으로 설정해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매니까 닮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나 내 단순한 설정의 결과, 지금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 은발 벽안의 이든은 어느 한 군데도 낭만적이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은발 벽안……이 문제인 건가?

나는 그냥 ‘잘생긴’이라고만 썼는데, 은발 벽안의 ‘잘생김’이 실제로 구현되면 저렇게 예술이 돼버리는 모양이었다!

원래 이든은 그저, 남주와 여주의 만남을 위한 주변 인물로 설정돼 있을 뿐이었는데….

그런데 저런 외모면, 또 설정 오류네.

쟤는 주변 인물 따위가 될 수 없는 미모인데.

난 이든의 인물을 보며 내 글을 반성하고 있었다.

이든은 황제 내외에서부터 시작하더니 내 아버지를 포함한 귀족가의 가주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든의 외모를 구경하느라 어느새 넋을 놓고 멍해져 있었다.

아!!

그러다 문득 경각심이 돌아오며 잠시 잊고 있던 내 목표가 생각이 났다.

정신 차려, 린!

생존을 위해, 지금 네가 집중할 남자는 칼릭스잖아.

나는 얼른 칼릭스가 서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든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칼릭스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아이참!

동선을 항상 파악해두려고 했는데.

감히 내 옆에서 숨쉬기조차 부담스럽고 벅차서 어디 숨어서 나를 관찰하려고 하는 건가?

나는 여기저기로 시선을 옮겨가며 칼릭스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의외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이든 다커스 황태자였다.

심지어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우, 미소가 참… 눈이 부시군요.

그렇긴 한데…. 쟤, 나보고 미소 지은 거, 맞지?

왜?

원래 내 소설에서 이든과 케일린은 접점이 없었다.

파티에서 마주친 적은 있었어도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작가인 나조차도 그에 대해 아는 건 여주의 잘생긴 바람둥이 오빠라는 것밖에 없을 정도로 주요 인물도 아니었고.

웃으니 더 잘생기긴 했네.

눈이 즐거워 하마터면 나도 그에게 미소를 지어줄 뻔했다.

아니, 아니지, 린! 정신 차리자. 지금 인물 감상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내가 바람둥이 낭만 미남과 마주 보며 미소나 짓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요.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남주를 찾아야 할 때지.

내 눈은 다시 칼릭스를 찾아 연회 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칼릭스 얘는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사라지기까지 하냐. 나는 사랑을 받고, 줄 준비가 돼 있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

‘이 여자는 왜 아까부터 자꾸 내 옆에서 얼쩡거리는 거지?’

칼릭스는 자신의 옆에 자꾸만 달라붙어 서서 흘금흘금 자신을 살피는 여자가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귀족가 영애인 것 같기에 의례적인 인사를 하려다가 어느 가문의 아가씨인지 기억에 없기에 말을 얼버무려야만 했다.

‘누구기에 이렇게까지 나한테 졸졸 붙어 다녀? 신경 쓰이는군.’

유독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의 부담스런 시선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그는, 루크포드 공과 그 여자의 대화를 듣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누군지 알게 됐다.

루크포드 공의 여동생인 모양이니 브록버크 공작가의 공녀인 모양이었다.

칼릭스는 공작가의 동향은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기에 공녀가 시골에서 요양하다 몇 년 전에 에버렌에 돌아온 이후 리온과 가까이 지낸다는 보고도 이미 받고는 있었다.

시기적으로 계산하면, 자신이 소년 시절 공작저를 드나들 때 그 집에 있었을 터였고 에버렌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몇 번인가 연회에서 마주쳤을 법했다.

그러나 항상 멀리서나 봤을 뿐, 이렇게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이 없는 여자라 얼굴을 보고도 공작가 공녀임을 알아보지 못했었다.

‘왜 이렇게 사람을 따라다녀?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해줘야 하나?’

대화를 들어보니, 이름은 케일린인 모양이었다.

풀네임은 케일린 브록버크일 테고.

케일린이라는 여자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데다, 별 관심도 없는 얘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까지 물어보았다.

경직되려는 얼굴을 풀어보려 와인을 예상보다 더 많이 마셨는데,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눈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그는 곧 여자에게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

이 여자는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이 틀림없었다.

집요하고 집착하는 사랑이 좋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데다, 심지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하게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집요하고 집착하는 사랑이 좋다는 희한한 얘기를 하면서 왜 나를 저런 눈빛으로 보지?’

칼릭스는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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