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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본문

쿵푸벳

11

“야, 쇼타.” 아쓰야가 말했다. “너, 이 폐가는 어떻게 찾아냈어? 우연히 지나가다 봤다고 했는데, 이쪽은 평소에 우리가 놀던 구역도 아니잖아.”

“실은 우연히 지나가다 본 게 아니야.” 쇼타는 겸연쩍은 얼굴이었다.

“역시 그렇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노려볼 거 없어. 별거 아니야. 여사장을 미행해서 별장을 찾아냈다는 얘기는 전에 했었지? 근데 그 여사장이 별장에 가는 길에 이 잡화점 앞에서 잠깐 차를 세웠었어."

“차를 세우다니, 왜?”

“그건 나도 모르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잡화점 앞에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간판을 쳐다보고 있더라고. 나도 뭔가 궁금해서 별장을 알아낸 다음에 다시 이 잡화점에 와봤지.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슬쩍 이용하기에 딱 좋은 곳인 거 같아서 기억해둔 거야.”

“근데 그 폐가가 엄청난 타임머신이었다?”

쇼타는 어깨를 으쓱 치켜들었다. “뭐, 그런 셈이지.”

아쓰야는 팔짱을 끼고 흐흠 하는 신음 소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이 벽 쪽에 놓인 가방으로 향했다.

“그 여사장, 대체 누구냐. 이름이 뭐였지?”

“무토 씨라고 했던 거 같은데…….” 쇼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쓰야는 가방을 끌어왔다. 지퍼를 열고 안에서 핸드백을 꺼냈다.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자동차 키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깜빡 놓쳐버렸을 핸드백이다. 집 앞에 세워둔 자동차 문을 열어 보니 조수석에 이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냉큼 가방 속에 처넣고 도망쳐왔다.

그 핸드백을 열어 보았다. 가장 먼저 감색 장지갑이 눈에 띄었다. 아쓰야는 그것부터 꺼내 안을 살펴보았다. 현금만 최소한 이십만 엔이다. 이 정도라면 힘들게 별장에 침입한 보람이 있다. 체크카드나 신용카드에는 관심이 없었다.

운전면허증도 있었다. 이름은 ‘무토 하루미’였다. 사진으로 봐서는 상당한 미인이다. 쇼타 얘기로는 오십이 넘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보다는 훨씬 젊게 보이는 동안이다.

문득 돌아보니 쇼타가 멍한 눈빛으로 아쓰야를 보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선 것은 밤새 잠을 못 잤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래?” 아쓰야가 물었다.

“핸드백에 이, 이런 게 들어 있어.” 쇼타가 내민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뭔데 그래?”

아쓰야의 물음에 쇼타는 말없이 봉투 앞면을 내보였다. 거기에 적힌 글씨를 보고 아쓰야는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나미야 잡화점 님께, 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미야 잡화점 님께

인터넷 블로그에 ‘나미야 잡화점, 딱 하룻밤의 부활’이라고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하지만 저는 사실이라고 믿고 이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1980년 여름에 상담 편지를 보냈던 ‘길 잃은 강아지’라는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여자애였지요. 참으로 모든 면에서 미숙한 아이였어요. 그때 제가 보낸 상담 편지는, 호스티스 일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면 되겠느냐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요. 물론 나미야 님은 그런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그야말로 사정없이 나무라셨어요.

하지만 아직 어렸던 저는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의 성장 과정이며 처지를 설명하면서 그간 신세졌던 분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고집도 센 아가씨라고 내심 화도 나셨을 거예요.

하지만 나미야 님은,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하라고 저를 내치지 않으셨어요. 그 대신 귀중한 조언을 해주셨지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귀중한 지표를 건네주신 거예요. 게다가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공부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어떤 분야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끝까지 붙들고 있고 어떤 것은 때맞춰 놓아버려야 하는지, 아주 상세히 알려주셨어요. 그것은 마치 예언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나미야 님이 해주신 말씀을 따랐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윽고 세상이 나미야 님의 예언대로 흘러간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그 의심조차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어떻게 거품 경기와 그 붕괴를 예측하셨을까요. 어떻게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그토록 정확히 예측하셨을까요. 하지만 지금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일이겠지요. 그 답을 알아낸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나미야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일 나미야 님의 조언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자칫 잘못했으면 세상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졌을 테지요. 당신은 영원히 저의 은인입니다. 그 은혜를 어떻게도 갚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지만, 이렇게 편지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의하면 오늘 밤은 나미야 님의 서른세 번째 기일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상담 편지를 드렸던 것이 마침 삼십이 년 전 지금 이 무렵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마지막 상담자였을 거예요. 이것도 뭔가 큰 인연이라는 생각에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예전에 길을 잃었던 강아지 드림

편지를 읽고 아쓰야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뇌가 지잉 하고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속을 말로 표현해보려고 했지만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쇼타와 고헤이도 마찬가지인지 둘 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쇼타의 시선은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클럽 호스티스가 되겠다는 아가씨를 설득하기 위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알려주는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 그녀는 그 편지를 보고 무사히 성공을 거머쥔 것이다. 그런데 삼십이 년 뒤에 아쓰야 일행이 다름 아닌 그 아가씨의 별장에 도둑질을 하러 갔다니…….

“이건 분명 뭔가 사연이 있어.” 아쓰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쇼타가 고개를 들어 아쓰야를 바라보았다. “사연이라니?”

“그, 그게…… 아니, 설명은 못하겠어. 하지만 분명 나미야 잡화점과 환광원을 연결하는 뭔가가 있을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 같은 것이라고 할까. 누군가 하늘 위에서 그 끈을 조종하고 있는 거 같아.”

쇼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앗 하고 고헤이가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의 시선은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곳으로 아침 해가 비쳐 들었다. 날이 밝은 것이다.

“결국 이 편지는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보낼 수 없게 됐다.” 고헤이가 말했다.

“아니, 그게 맞아. 이 편지는 나미야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한테 보낸 거잖아. 그렇지, 아쓰야?” 쇼타가 말했다. “이 사람이 감사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야. 우리한테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준 거야. 우리 같은 놈들한테, 쭉정이 백수인 우리한테…….”

아쓰야는 쇼타의 눈을 보았다. 불그레한 그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난 그 사람 말 믿어. 러브호텔 지을 거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대답했잖아. 그거 거짓말 아니야. 길 잃은 강아지라는 이름으로 상담 편지를 보냈던 그 아가씨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

동감이었다. 아쓰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어쩌지?” 고헤이가 물었다.

“그야 뻔하지.” 아쓰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별장으로 가자. 우리가 훔쳐온 거, 다시 돌려주자.”

“그래, 손이랑 다리 꽁꽁 묶은 거, 풀어줘야지.” 쇼타가 말했다. “눈 가린 것도, 입에 붙인 테이프도.”

“응, 그래.”

“그리고 그다음은? 또 도망치는 거야?”

고헤이의 물음에 아쓰야는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지 않아. 경찰이 오기를 기다린다.”

쇼타도 고헤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고헤이가 “교도소행이네”라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툭 떨구었을 뿐이다.

“자수하는 거니까 집행유예로 해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쇼타는 아쓰야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야. 점점 더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질 텐데 어쩌지?”

아쓰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내가 어찌 알겠냐.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이제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

쇼타와 고헤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챙겨 들고 뒷문으로 나왔다. 햇빛이 눈부셨다. 어딘가에서 참새가 짹짹거렸다.

아쓰야는 우유 상자에 시선을 던졌다. 하룻밤 사이에 이 상자를 몇 번이나 열어 봤는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쯤 섭섭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열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 안에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쇼타와 고헤이는 앞서서 걸어가는 참이었다. 야, 하고 두 사람을 불렀다. “여기에 이런 게 들어 있어!” 편지를 높직이 쳐들었다.

봉투 앞면에 만년필로 ‘이름 없는 분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상당한 달필이다.

봉투 안에서 편지지를 빼냈다.

이 편지는 백지를 보내주신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해당되지 않는 분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아쓰야는 헉하고 숨을 삼켰다. 조금 전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편지지를 가게 앞 셔터 우편함에 넣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에 대한 답장이다. 그리고 답장을 써준 사람은 진짜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다.

편지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地圖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問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편지를 다 읽고 아쓰야는 고개를 들었다. 두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눈빛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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