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본문
10
새벽이 머지않은 것 같다. 아쓰야는 빈 편지지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정말 있을까?”
“그런 일이라니?” 쇼타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쓰야는 말했다. “이 집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서 과거의 편지가 우리한테 오고 거꾸로 우리가 우유 상자에 넣은 편지는 과거 쪽으로 간다는 거 말이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쇼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실제로 그게 이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여태 편지를 주고받았지.”
“그거야 뭐, 나도 알지만…….”
“진짜 신기하긴 해.” 그렇게 말한 것은 고헤이였다. “아마 ‘나미야 잡화점 딱 하룻밤의 부활’이라는 거하고 관계가 있나 봐.”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아쓰야가 빈 편지지를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려고?” 쇼타가 물었다.
“확인이야. 한번 시도해보자.”
아쓰야는 뒷문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다. 좁은 골목을 지나 가게 앞쪽으로 돌아와 셔터 우편함에 백지 편지지를 넣었다. 그리고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와 셔터 문 안쪽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편함 밑에 놓인 상자 속에는 방금 밖에서 자신이 넣은 편지지는 없었다.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어.” 쇼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이 가게 밖에서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으면 틀림없이 삼십이 년 전의 과거로 날아가는 거야. 그게 딱 하룻밤의 부활이라는 말의 의미야. 지금까지 우리는 그 뒤편의 현상을 체험한 셈이야.”
“이쪽 세계가 새벽이 될 때 삼십이 년 전의 세계에서는…….”
아쓰야의 말을 쇼타가 냉큼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미야 잡화점에서 고민을 상담해주시던 할아버지가.”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 아쓰야는 후우 긴 한숨을 토해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 아가씨는 어떻게 됐을까.” 고헤이가 멀거니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아쓰야와 쇼타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자 고헤이는 턱을 끄덕이며 말했다. “그 여자 있잖아, ‘길 잃은 강아지’라는 아가씨. 우리가 보내준 편지가 그 여자한테 도움이 되었을까?”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아쓰야는 내뱉듯이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편지는 믿지도 않겠지.”
“하긴 누가 보건 수상쩍은 내용이니까 그 말대로 했을 리가 없지.” 쇼타는 머리를 긁적였다.
‘길 잃은 강아지’가 보내준 세 번째 편지를 읽고 아쓰야 일행은 속이 탔다. 아무래도 이 철없는 아가씨가 웬 수상한 놈에게 속아 넘어가 실컷 이용만 당하게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환광원 출신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구해주어야 한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이 아가씨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셋이서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미래에 대해 살짝 알려주자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의 거품 경기에 대해서는 세 사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세 사람은 휴대폰으로 80년대 후반의 거품 경기에 대해 자세히 검색해본 뒤에 길 잃은 강아지에게 예언 비슷한 편지를 썼다. 덧붙여 거품이 꺼진 다음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특히 자연재해에 대해 알려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몇 번을 망설였다. 1995년의 고베 지진,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까지 모두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생선 가게 뮤지션에게 화재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목숨과 관련된 것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상한 건 환광원이야.” 쇼타가 말했다. “이번 일에 환광원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잖아. 대체 왜 그렇지? 그냥 단순한 우연인가?”
그 점은 아쓰야도 마음에 걸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잘 맞아떨어진다. 애초에 오늘 밤 그들이 이 집으로 피신하게 된 것 자체가 바로 그 환광원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자란 시설이 궁지에 몰렸다는 소문을 물어온 것은 쇼타였다. 지난달 초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고헤이를 포함해 셋이서 술추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술추렴이라고 해봐야 번듯한 술집에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도매로 파는 가게에서 맥주며 탄산소주 캔을 사다가 공원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다.
“야, 도쿄의 어떤 회사 여사장이 환광원을 통째로 사려고 한단다. 새로 짓네 어쩌네 하는 모양인데 그건 거짓말이래."
쇼타는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일하다 해고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고 있었다. 환광원이 그 편의점과 가까워서 원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따금 들러본 모양이었다. 참고로 쇼타가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해고된 것은 단순한 인원 감축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난 갈 데 없으면 거기 가서 빌붙으려고 했는데.” 고헤이가 처량한 소리를 했다. 고헤이도 요즘 실업자 신세였다. 자동차 수리 공장에서 일했는데 올해 5월에 돌연 회사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지금은 공장 기숙사에서 뭉개고 있지만 머지않아 쫓겨날 처지였다.
아쓰야 역시 백수였다. 두 달 전까지는 근처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 날, 대기업에서 신형 부품의 주문이 들어왔다. 평소의 것과는 설계도 치수가 너무 달라서 아쓰야는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하지만 틀림없다고 하는지라 그 설계도대로 만들어서 보냈다. 그런데 역시 설계도가 잘못된 것이었다. 연락 담당자였던 대기업 신입사원이 숫자 단위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대량의 불량품이 발생한 것인데 재수 없게도 그 책임을 아쓰야가 모두 뒤집어쓰게 되었다. 확인이 부족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태까지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하청 업체는 대기업 쪽에 무조건 쩔쩔매는 수밖에 없다. 공장의 상사는 아쓰야를 지켜주지 않았다. 뭔가 일이 터지면 항상 아쓰야 같은 말단 직원 탓으로 돌렸다. 아쓰야는 인내심이 바닥나버렸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내뱉고 공장을 나와버렸다.
저금해둔 돈은 거의 없었다. 통장을 들여다보고는 이거, 야단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세도 두 달이나 내지 못했다.
그런 세 사람이 둘러앉아 환광원을 걱정해봤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통째로 매입하려고 한다는 그 여사장을 성토하는 게 고작이었다.
누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는지 분명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주먹을 움켜쥐고 이렇게 소리쳤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좋아, 까짓것 해치우자. 그런 여자한테서는 왕창 뜯어내도 마리아 님이 용서해주신다더라.”
쇼타와 고헤이도 주먹을 치켜들었다. 의욕 충전이었다.
셋이 나이도 똑같고 중고등학교도 함께 다녔다. 몰려다니면서 못된 짓도 많이 했다. 날치기, 소매치기, 자판기 털기까지 폭력을 쓰지 않는 절도 행위라면 대부분 다 해봤다. 지금도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그러면서도 한 번도 잡혀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장소에서 하지 않는다, 비슷한 수법은 쓰지 않는다. 나름대로 그런 규칙을 세워놓고 금기를 범하지 않은 게 그 이유일 것이다.
빈집 털이도 딱 한 번 해봤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취직을 앞두고 어떻게든 새 옷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장 부자로 통하던 녀석의 집을 노렸다.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을 알아내, 방범 설비 등을 세심하게 점검한 뒤에 실행에 옮겼다. 혹시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현금 삼만 엔 정도를 훔쳐냈다. 우연히 열어본 서랍에 돈이 들어 있었다. 그 정도로 만족하고 냅다 도망쳐 나왔다. 걸작인 것은 그 집 사람들은 도둑이 들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참으로 즐거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그런 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세 사람 모두 성인이 되어 있었다. 자칫 체포되면 신문에 이름이 나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지 말자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그 울분을 어딘가에 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본심을 말하자면 아쓰야는 환광원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었다. 이전 관장님께는 큰 신세를 졌지만 새로 온 가리야 부관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사람이 운영을 도맡은 뒤부터 환광원의 분위기가 어쩐지 흉흉해졌다.
여사장에 관한 정보 수집은 쇼타가 했다. 그다음에 셋이서 다시 모였을 때 쇼타는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그 여사장의 별장을 알아냈어. 환광원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스쿠터 하나 빌려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지. 미행을 해서 그 여자의 별장을 알아냈어. 환광원에서 이십여 분 거리야. 자그마한 집인데 그런 건물이라면 완전 식은 죽 먹기야. 눈 감고도 들어갈 수 있어. 이웃에 물어보니까 그 여사장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정도래. 아, 물론 그 이웃 사람한테 내 얼굴을 드러내는 얼치기 짓은 안 했으니까 걱정 마.”
쇼타의 말이 사실이라면 물론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별장에 돈 될 만한 물건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야 물론 있겠지.” 쇼타는 단언했다. “그 여사장, 몸에 지닌 게 온통 명품 브랜드야. 별장에 틀림없이 보석도 있을 거고 값비싼 항아리며 그림 같은 걸로 잔뜩 꾸며놨을 거야.”
그건 그렇겠다고 아쓰야와 고헤이도 동의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자들이 집 안에 어떤 것을 들여놓고 사는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본 리얼리티 떨어지는 호화 저택의 모습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을 뿐이다.
날짜는 9월 12일 밤으로 정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날 쇼타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쉬는 날이라면 그날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그저 우연히 정해진 날짜일 뿐이었다.
차는 고헤이가 마련해왔다. 정비공이던 시절의 솜씨를 살려 슬쩍 훔쳐온 것인데 오래된 차종밖에는 다루지 못하는 게 그의 약점이었다.
12일 밤, 오후 11시가 지났을 무렵에 세 사람은 여사장의 별장에 침입했다. 정원 쪽 유리창을 깨고 잠금 고리를 여는 지극히 고전적인 방법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유리창에 비닐 테이프를 붙였기 때문에 유리 파편이 산산이 흩어지는 일도 없었다.
예상대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 세상인 듯 여기저기 뒤졌다. 손에 집히는 대로 몽땅 털어 가자고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신바람이 난 건 거기까지, 완전 허탕이었다.
집 안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그럴싸한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다닌다는 여사장의 별장이 어떻게 이토록 서민적인가. 쇼타가 이상하네, 이상하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물건이 없고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집 바로 옆에 차를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들고 있던 손전등을 껐다. 그러자 누군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아쓰야는 사타구니가 오그라들었다. 이걸 어쩌나, 여사장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하고 속이 타서 투덜거렸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현관과 복도의 불이 켜졌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아쓰야는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