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벳 골든 소닉카지노 아크 업카지노 판도라 나루토카지노 텐카지노 보스 볼트카지노 히어로 네임드 라바카지노 프라그카지 코어카지노

9화

본문

쿵푸벳

9

하루미가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작은 우연 때문이었다. 새로 바꾼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보는데 언뜻 ‘나미야 잡화점, 단 하룻밤의 부활’이라는 문장이 눈에 띈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 하루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 그 즉시 좀 더 자세히 검색해보니 공식 블로그가 있었다. 올해 9월 13일이 나미야 잡화점 점주의 서른세 번째 기일인데 이 날을 기념하여 작은 이벤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상담을 받았던 이들에게 보내는 공고문으로, 그때 받았던 답장이 인생에 도움이 되었는지 알려주었으면 한다,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 셔터 문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면 된다, 라는 내용이었다.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설마 이런 시대에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이름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단 하룻밤의 부활’이라는 건 무슨 말일까. 블로그 운영자는 점주의 자손인 모양인데 서른세 번째 기일을 기념하는 이벤트라고만 적혀 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단순한 장난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장난을 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짓으로 사람들을 속여봤자 무슨 이득이 있다는 것인가. 애초에 이런 블로그를 접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하루미의 마음을 움직인 건 점주의 기일이 9월 13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와 편지 교환이 가능했던 날짜가 바로 삼십이 년 전의 9월 13일이었다.

이건 장난 같은 게 아니다, 진짜다, 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야말로 꼭 편지를 올려야 할 사람이다. 물론 감사의 편지를.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이 아직도 있을까. 그 자리에 그대로? 고향 집에는 일 년에 몇 번씩 다녀오곤 했지만 나미야 잡화점 쪽까지 가본 적은 없었다. 마침 환광원에도 볼일이 있었다. 시설의 양도에 관한 논의였다. 그 일을 처리하고 오는 길에 나미야 잡화점 쪽도 잠깐 둘러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자리에 나온 사람은 부관장 가리야였다.

“이 건에 관해서는 내가 미나즈키 씨 부부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았어요. 지금까지 두 분 모두 시설 운영에는 관여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가느다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가리야는 말했다.

“그렇다면 시설의 재정 상황을 정확히 전달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두 분의 생각도 바뀌실 것 같은데요.”

“당연히 지금껏 정확히 보고해왔지요. 다 아시면서도 내게 전권을 위임하신 거예요.”

“그럼 그 내용을 제게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안 되지요. 당신은 이 시설과는 관계없는 분이잖습니까.”

“가리야 씨, 냉정하게 생각해주세요. 지금 이대로 가면 환광원은 문을 닫아야 해요.”

“당신이 걱정하실 일이 아니에요.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꾸려나갈 겁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가리야는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루미는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물론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든 미나즈키 부부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누군가 던진 진흙덩이로 차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루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광원 아이들이 담장 너머로 그녀를 지켜보다가 고개가 쑥 들어갔다.

이게 무슨 꼴인가. 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못된 악당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리야 부관장이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주입시킨 게 틀림없었다.

진흙이 묻은 채로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를 보니 아이들이 담장 앞으로 뛰어나와 뭔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오지 마라, 그런 얘기인 것 같았다.

불쾌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나미야 잡화점을 둘러보는 용건만은 잊지 않았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하루미는 옛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이윽고 그리운 추억의 마을이 저만치에 보이기 시작했다. 삼십 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나미야 잡화점도 삼십여 년 전에 그녀가 편지를 보냈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간판 글씨는 거의 알아볼 수도 없고 셔터 문은 애처로울 만큼 녹이 슬었지만 손녀딸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같은 따스함이 주위에 감돌았다.

하루미는 차를 세웠다. 운전석 창을 열고 한참이나 나미야 잡화점을 바라본 뒤에 천천히 차를 돌렸다. 내려온 김에 별장에도 잠깐 들렀다 가자고 생각했다.

9월 12일, 회사에서 업무를 마치고 하루미는 일단 맨션에 돌아가 컴퓨터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실은 미리미리 써놓고 싶었다. 하지만 날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도 단골 거래처와 회식이 있었지만 도저히 빠지기 힘든 다른 자리가 있노라고 양해를 구하고 가장 믿음직한 스태프를 대신 보내기로 했다.

몇 번을 고쳐가면서 편지글을 마무리한 것은 오후 9시쯤이었다. 하루미는 그 내용을 편지지에 깨끗이 옮겨 썼다. 중요한 상대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반드시 손 글씨, 라는 것은 그녀에게는 상식이었다. 잘못 쓴 부분이 없는지 재차 확인한 뒤에 봉투에 넣었다. 편지지와 봉투는 오늘을 위해 미리 사놓은 것이었다.

준비하느라 이래저래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차로 집을 나섰을 때는 오후 10시가 다 되었다. 속도위반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액셀을 밟았다.

한 시간 사십여 분 만에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곧장 나미야 잡화점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오전 0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먼저 별장에 짐을 놓고 오기로 했다. 오늘 밤은 그쪽 집에서 묵을 예정이다.

하루미가 집을 사들인 뒤에도 처음 약속대로 할머니는 내내 그 집에서 사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21세기의 개막을 지켜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뒤, 하루미는 집을 약간 수리해서 자신의 별장으로 쓰기로 했다. 주위에 자연 풍경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두어 달에 한 번쯤이나 겨우 와봤다. 냉장고에는 통조림과 냉동식품 몇 가지가 들어 있을 뿐이다.

집 주위에 가로등이 적어서 평소에는 이 시간이면 유난히 어두웠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달빛 덕분에 멀리서도 집이 보였다.

주위에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집 바로 옆에 차고가 있지만 일단 차는 길에 세워두었다. 갈아입을 옷이며 화장품이 든 가방을 들고 차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대문을 지나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방향제 냄새가 났다. 신발장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전에 왔을 때 그녀가 직접 챙긴 방향제다. 그 옆에 자동차 키를 나란히 놓았다.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켰다. 슬리퍼가 있지만 번거로워서 신어본 일은 거의 없다. 복도를 걸어 들어가면 거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문을 열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 손이 흠칫 멈췄다. 뭔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기척이 아니다. 냄새였다. 자신과는 무관한, 이 방에서는 풍길 리 없는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위험을 감지하고 얼른 돌아서려고 했다. 그 순간 스위치를 향해 내민 손을 누군가 움켜잡았다. 강한 손힘이 덮쳐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조용히 해. 얌전히 굴면 해치지 않아.” 귀에 들려온 건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등 뒤에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루미는 머릿속이 하얘져버렸다.

왜 내 별장에 낯선 사람이 있는가.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수많은 의문이 순간적으로 밀려들었다.

저항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경이 마비된 것만 같았다.

“야, 목욕실에 수건 있지? 몇 개 가져와.”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남자가 답답한 듯 재촉했다. “빨리 수건 가져오란 말이야, 어물어물하지 말고!”

어둠 속에서 당황한 듯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 남자 말고도 또 한 명이 더 있는 것이다.

하루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지만 조금씩 판단력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손이 흰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때였다.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대각선으로 뒤쪽이었다. “야, 이러면 안 되잖아”라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던 것이다.

그 말에 하루미의 입을 틀어막은 남자가 대꾸했다. “별수 없잖아. 그보다 가방 좀 뒤져봐. 지갑이 있을지도 몰라.”

뒤쪽에서 하루미의 가방을 잡아챘다. 그 가방을 뒤져보는 기척이 들렸다. 이윽고 남자가 작게 부르짖었다.

“여기 지갑이 있어!”

“돈은?”

“이삼만 엔쯤. 그리고 이상한 카드만 잔뜩 들었어.”

하루미의 귓가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겨우 그거야? 야야, 됐다, 현금만 챙겨. 카드는 아무 데도 못 써.”

“지갑은? 명품인데.”

“쓰던 물건은 소용없어. 가방은 새것 같으니까 가져가.”

잠시 뒤에 발소리가 돌아왔다. “이거면 돼?”라고 묻고 있다. 이 남자도 목소리가 젊다.

“좋아, 그걸로 눈을 가려. 풀리지 않게 뒤에서 단단히 묶어.”

잠시 머뭇거리는 기척이었지만 다음 순간 하루미의 눈이 수건으로 가려졌다. 살짝 세제 향이 났다. 항상 쓰는 세제다.

누군가 수건을 머리 뒤쪽에서 세게 묶었다. 웬만해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눈이 가려진 하루미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양손을 등받이 뒤로 당겨서 묶었다. 이어서 양쪽 발목까지 의자 다리에 꽁꽁 묶었다. 그 사이에도 흰 장갑을 낀 손이 계속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지금부터 당신과 얘기를 좀 해야겠어.” 하루미의 입을 틀어막은 리더인 듯한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입을 풀어줄 거야. 하지만 소리 지르면 안 돼. 우리는 흉기를 소지하고 있어. 소리쳤다가는 죽일 거야. 우리도 그런 건 원하지 않아. 조용히 하면 해치지 않을 테니까. 약속한다면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저항할 이유는 없었다. 하루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입을 막은 흰 장갑이 사라졌다.

“미안하게 됐어.” 리더가 말했다. “이미 알겠지만 우린 도둑이야. 오늘 밤 이 집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들어왔어. 당신이 나타난 건 예상 밖의 일이야. 이런 식으로 당신을 꽁꽁 묶어둘 계획도 없었어. 그러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쇼.”

하루미는 말없이 헉헉 숨을 내쉬었다. 이런 꼴을 당했는데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니, 그건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조금쯤 여유가 생겼다. 이들이 본성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만 찾으면 금방 나갈 거야. 우리가 원하는 건 돈이 될 만한 물건이야. 근데 지금 이대로는 나갈 수가 없어. 아직 돈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얘기해봐, 돈 될 만한 물건, 어디 있지?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욕심낼 생각은 없어. 뭐든 괜찮으니까 말해봐.”

하루미는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여,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있나. 당신에 대해서는 다 조사해봤어. 우릴 속이려고 해도 소용없다고.”

“정말이야.” 하루미는 고개를 저었다.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잘 알 텐데? 나는 여기서 살지 않아. 돈은 물론이고 값나갈 만한 물건은 거의 없어.”

“그래도 뭐든 있을 거 아니야?” 남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생각 좀 해보라고. 물건 찾기 전에는 우리도 못 나가. 그러면 당신도 힘들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집에는 정말 그럴싸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할머니의 유품까지 모두 도쿄 맨션으로 옮겨놨기 때문이다.

“옆방에 도코노마(방의 상좌 바닥을 한 단 높여 꽃병이나 족자 등으로 꾸미는 곳—옮긴이)가 있어. 거기 놓인 찻잔이 유명한 도예가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벌써 챙겼지. 그 참에 족자도 챙겼고. 그거 말고 또 없어?”

찻잔은 진품이지만 족자는 인쇄한 것이라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밝히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층에도 가봤어?”

“아까 둘러봤는데 별거 없었어.”

“경대 서랍은? 위에서 두 번째 서랍 바닥에 비밀 칸이 있어. 거기에 액세서리가 들어 있는데, 그것도 찾았어?”

리더가 침묵했다. 다른 도둑들과 서로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가서 보고 오라고 리더가 말했다. 누군가 자리를 뜨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경대는 할머니의 것이다. 앤티크풍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서랍에 액세서리가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루미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딸이 결혼 전에 사 모은 것이라고 들었다. 자세히 살펴본 적도 없지만 아마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닐 터였다. 비싼 것이라면 딸이 결혼하면서 가져갔을 것이다.

“당신들, 왜 나를, 왜 이 집을 노렸지?” 하루미가 물었다.

잠시 조용하더니 이윽고 리더가 대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어쩌다 보니.”

“하지만 나에 대해 미리 조사까지 했다면서?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조용히 하쇼.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잖아.”

“상관없진 않은데…… 무슨 일인지 좀 궁금해서…….”

“됐어요, 신경 쓸 거 없다니까. 자꾸 물어보지 말라고.”

리더의 강한 말투에 하루미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상대를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리더가 아닌 딴 남자가 말했다. 도둑이 조심스럽게 존댓말을 쓰는 건 의외였다.

그러자 리더가 나무라듯이 말했다. “야, 뭔 소리를 하려고?”

“뭐, 어때? 난 이 사람에게 꼭 확인해보고 싶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뭐가 궁금한데?” 하루미가 나서서 말했다. “뭐든 물어봐요.”

크게 혀를 차는 소리가 났다. 아마 리더일 것이다.

“호텔로 새로 짓는다는 거, 정말이에요?” 리더가 아닌 또 다른 남자가 물었다.

“호텔?”

“환광원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러브호텔을 짓는다면서요?”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하루미는 허를 찔린 듯한 심정이었다. 그럼 이자들은 가리야 부관장과 관련된 사람들인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환광원을 새로 지어주려고 매입하는 건데.”

“그건 그냥 거짓말이랍디다.” 리더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당신네 회사는 망해가는 점포들만 골라서 싸게 사들이고 대충 리모델링해서 비싸게 팔아먹는다던데? 비즈니스호텔을 러브호텔로 싹 바꿨다는 얘기도 들었어.”

“그런 일도 했지만 이번 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어. 환광원은 회사와 상관없이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야.”

“거짓말도 잘하시네.”

“아니, 거짓말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그런 곳에 러브호텔 지어봤자 찾아올 손님도 없어. 그런 바보짓을 왜 하겠어? 내 말 믿어요, 나는 약한 사람들 편이야.”

“정말이에요?”

“야야, 뻔히 거짓말이지. 믿지 마. 흥, 약한 사람 편이라고? 돈벌이 안되는 건 가차 없이 잘라내 버리면서!”

그 직후,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꾸물거려, 대체 뭐했어?” 리더가 나무랐다.

“비밀 칸을 어떻게 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열긴 열었어. 굉장해, 이거 좀 봐.”

잘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랍을 통째로 빼온 모양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골동품 같은 그 액세서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됐어.” 리더가 말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거 챙겨 갖고 그만 튀자.”

옷이 스치는 소리, 가방의 지퍼를 열고 닫는 소리 등이 하루미의 귀에 들어왔다. 훔친 물건을 가방에 넣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 환광원에 대해 물어봤던 남자가 말했다.

잠시 조용하다가 이윽고 리더가 말했다. “비닐 테이프 꺼내봐. 괜히 소리라도 지르면 큰일이니까.”

비닐 테이프를 떼어내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하루미의 입은 비닐 테이프로 막혀버렸다.

“이렇게 두고 가면 안 되잖아. 이 집에 누가 오지 않으면 이 사람, 굶어죽을지도 몰라.”

다시 잠깐의 침묵. 대부분의 결정권은 리더에게 있는 모양이었다.

“무사히 도망치면 나중에 회사에 전화해주자. 당신네 회사 사장이 어디어디에 묶여 있다고 알려주면 돼. 그러면 아무 문제없어.”

“그럼 화장실은?”

“그런 것쯤은 좀 참으라고 해야지.”

“저기요, 참으실 수 있어요?” 하루미에게 하는 질문인 모양이다.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오줌이 마렵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화장실에 데려간다고 해도 그건 싫었다. 아무튼 일 초라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줬으면 싶었다.

“좋아, 그럼 나가자. 너희들, 잊어버린 거 없지?” 리더의 목소리가들리고 뒤이어 세 명의 도둑이 떠나는 기척이 들렸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현관문을 통해 나가는 것 같았다.

잠시 뒤에 남자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자동차 키, 라는 말이 섞여 있었다.

하루미는 흠칫했다. 자동차 키를 신발장 위에 놓고 온 게 생각났다.

아차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길에 세워둔 차의 조수석에 핸드백이 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가방에서 핸드백을 따로 꺼내놓았다.

그들이 조금 전에 찾아낸 것은 예비 지갑이다. 실제로 쓰는 지갑은 차 안의 핸드백에 있었다. 현금만 해도 이십만 엔이 넘게 들어 있을 터였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도 모두 그 지갑에 있다.

하지만 하루미가 안타까운 것은 지갑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갑만 가져가준다면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그렇게 하지 않을 터였다.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쳐야 하니까 지갑 안을 일일이 확인해볼 것도 없이 핸드백째로 가져갈 게 틀림없다.

그 핸드백 안에는 나미야 잡화점에 보낼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것만은 제발 남겨두었으면 하고 혼자 애를 태웠다. 하긴 남겨두고 간다고 해도 이제 다 틀린 일이다. 이렇게 꽁꽁 묶여 있으니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아침까지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의 딱 하룻밤의 부활은 날이 밝는 것과 함께 끝나버린다.

한마디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당신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편지에 그렇게 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인가.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성실하게, 그저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왔을 뿐이다.

그 순간, 도둑의 리더가 내뱉은 말이 퍼뜩 떠올랐다.

흥, 약한 사람 편이라고? 돈벌이 안되는 건 가차 없이 잘라내 버리면서!

그건 천만뜻밖의 말이었다.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다음 순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화과자 가게 사장의 울먹이던 얼굴이었다.

하루미는 짙은 한숨을 토해냈다. 수건에 눈이 가려지고 팔다리가 꽁꽁 묶인 상태에서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너무 앞만 바라보며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이건 천벌 같은 게 아니라 그런 급한 발길을 멈추고 잠깐 쉬었다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까.

그래, 구해주자, 밤 만주 아저씨…….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붐플러스

관련자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9화
  
그누보드5



Copyright © FUNB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