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본문
8
잠이 깨자마자 하루미는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오싹 한기가 들어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에어컨 찬 바람이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간밤에 날이 더워서 설정을 강으로 해뒀는데 잠들기 전에 원래대로 낮추는 것을 깜빡 잊었다. 베갯머리에는 자기 전에 읽던 문고판 책이 뒹굴고 있고 전기스탠드도 켜놓은 채였다.
자명종 시계는 오전 7시 조금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7시에 알람이 울리도록 맞춰두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매번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눈이 뜨여서 미리 스위치를 끄기 때문이다.
팔을 뻗어 스위치를 끄고 그 기세를 몰아 침대에서 내려섰다. 커튼 틈새로 여름 햇살이 비쳐 들었다. 오늘도 무더운 날씨가 될 것 같다. 화장실에 다녀와 세면대 앞에 섰다.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어쩐지 이십 대 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오십 대 중년 여인의 얼굴이다.
거울을 보면서 하루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가만 생각해보니 분명 간밤의 꿈 때문이다.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시절의 꿈을 꾼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환광원의 미나즈키 관장님도 얼핏 보였다. 그런 꿈을 꾼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에 딱히 뜻밖의 꿈은 아니었다. 오히려 꿈의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
자신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가 살짝 처진 것이나 잔주름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증거일 뿐, 전혀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얼굴을 씻은 뒤, 화장을 하면서 태블릿 단말기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고 그 참에 아침도 먹었다. 전날 저녁에 샌드위치와 야채 주스를 미리 사둔 것이다. 내 손으로 요리를 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은 대부분 회식이었다.
준비를 마치자 평소의 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요즘은 좁은 곳에서도 자유자재로 방향 전환이 가능한 국산 하이브리드 차를 탄다. 덩치만 큰 고급 외제 차에는 싫증이 났다. 손수 운전해서 롯폰기에 도착했을 때는 8시 반이었다.
회사가 있는 십 층짜리 빌딩 지하주차장에 차를 넣고 엘리베이터 홀로 향하려던 때였다.
“사장님, 무토 사장님!” 어디선가 다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 끝에서 회색 폴로셔츠를 입은 뚱뚱한 남자가 짤막한 다리로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누구인지 얼핏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토 사장님, 제발 부탁입니다. ‘스위트 파빌리온’ 건은 다시 한 번 검토해주세요.”
“스위트 파빌리온? 아, 거기…….”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 남자는 화과자 가게 사장이다.
“한 달만, 앞으로 딱 한 달만 기회를 주세요. 반드시 다시 일어설 테니까요. 부탁합니다.” 사장은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헤싱헤싱한 머리칼을 깨끗하게 뒤로 빗어 넘겼다. 그 모습이 그의 가게의 주요 상품인 ‘밤 만주’를 연상시켰다.
“인기투표에서 두 달 연속 최하위일 경우에는 철수할 수 있다, 라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잖아요. 잊으셨어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면서도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앞으로 딱 한 달만 기다려주세요.”
“그건 어렵죠. 이미 다음에 들어올 점포가 정해졌어요.” 하루미는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한 번만 좀 봐주십시오.” 화과자 가게 사장이 포기하지 않고 뒤를 따라왔다.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 자신 있어요.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지금 여기서 철수하면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요. 앞으로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소란한 기척을 들었는지 경비원이 달려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사람, 외부인이에요. 내보내주세요.”
경비원의 얼굴빛이 변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 잠깐, 잠깐만요. 외부인이 아니에요. 관계자라니까요. 사장님, 무토 사장님!”
화과자 가게 사장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미는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빌딩 오 층과 육 층이 ‘주식회사 리틀 독’의 사무실이다. 구 년 전에 신주쿠에서 이곳으로 이전했다.
사장실은 육 층에 있었다. 여기서는 개인 컴퓨터를 사용한다. 다시 한 번 정보 확인과 정리에 들어갔다. 줄줄이 들어온 메일이 거의 별 볼일 없는 것들이어서 짜증이 났다. 스팸 메일은 미리 분류가 되어 걸러지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알맹이 없는 메일이라도 모두 들어온다.
메일 몇 개에 답장을 하다 보니 9시가 훌쩍 넘었다. 내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단축 번호를 누르자 즉시 연결되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전무이사의 목소리였다.
“잠깐 들어오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일 분쯤 뒤에 전무이사가 나타났다. 반소매 셔츠 차림이다. 사무실의 냉방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약하게 하기로 했다.
하루미는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전무이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아저씨가 또 왔었군요. 담당자에게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울면서 통사정을 했다던데요. 근데 설마 사장님과 직접 담판을 지으러 오다니,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죠? 알아듣게 잘 얘기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려고 했는데 화과자 가게 아저씨로서는 역시 포기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본점 쪽에도 손님이 끊겨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되죠. 우린 사업을 하는 건데.”
“맞는 말씀이십니다.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전무이사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 년 전, 도쿄 만을 마주 보는 대형 쇼핑몰이 리뉴얼 공사에 들어갔을 때, 하루미의 회사에 한 가지 의뢰가 들어왔다. 이벤트 회장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원래는 소규모 콘서트 등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모양인데, 아닌 게 아니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즉시 리서치와 분석에 들어갔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이른바 ‘스위트의 성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쇼핑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케이크 카페, 화과자 가게 등을 한곳에 모으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의 전문점에 연락해서 출점할 곳을 모집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스위트 파빌리온’이다. 서른 개가 넘는 각종 케이크 카페, 화과자 점포가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텔레비전과 여성지 등에서 언급해준 덕분에 이 기획은 대성공이었다. 스위트 파빌리온에서 호평을 얻은 가게는 예외 없이 본점 매출도 급증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계속 똑같은 기획으로는 고객들이 금세 싫증을 내게 마련이다. 성패는 재방문 고객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점포를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이른바 인기투표였다. 매장을 찾은 고객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실시해서 최하위의 불명예를 기록한 점포에는 다달이 그 사실을 전달한다. 때로는 철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각 점포는 인기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뛸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점포가 라이벌인 것이다.
조금 전의 화과자 가게는 지방에 본점이 있었다. 이 기획을 시작했을 때 우선은 지방을 중시하자는 의미에서 연락을 취했다. 해당 화과자 가게에서는 흔쾌히 출점에 응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품목이 수더분한 전통 밤 만주여서는 역시 힘들다. 몇 달째 인기투표에서 최하위를 도맡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른 점포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 정에 이끌려 계속 사정을 봐줄 수만은 없다는 것이 사업의 힘든 부분이다.
“아, 3D 애니메이션 건은 어떻게 됐죠?” 하루미가 물었다. “실용 단계인가요?”
전무이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데모 영상을 봤는데 기술적으로 아직 한참 부족해요.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작아서 일단 보기가 힘들어요. 다음에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든다니까 그때 한번 직접 보시는 게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하죠. 괜찮아요, 잠깐 궁금했던 것뿐이니까.” 하루미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내 쪽에서 할 말은 이상입니다. 전무님 쪽에서는 다른 일 없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메일로 모두 전해드렸고요. 다만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요.” 전무이사가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지난번의 그 아동복지시설에 관한 것인데요.”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에요. 회사와는 관계없어요.”
“네, 잘 알고 있죠. 저야 회사 내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리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전무이사의 입가가 삐뚜름해졌다. “문의가 들어오는 모양이에요. 당신네 회사는 환광원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따지고 든대요.”
하루미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끝으로 이마를 긁었다. “참 내,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지?”
“사장님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평범한 일을 하나 하려고 해도 평범하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선 그런 점을 자각하시는 게 좋겠어요.”
“그거, 비꼬는 소리인가요?”
“비꼬는 건 아니고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전무이사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요. 그만 됐습니다.”
전무이사가 인사를 건네고 사장실을 나갔다.
하루미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육 층이라서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실은 좀 더 고층짜리 건물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단념했다. 스스로를 과신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이렇게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웬만한 곳까지는 치고 올라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문득 지난 이십여 년의 일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시류를 타는 것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 시간이었다.
그건 때로는 천국과 지옥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1990년 3월,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가라앉히기 위해 당시의 대장성(2001년에 명칭이 바뀌어 현재는 재무성—옮긴이)에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제한하는 행정 조치에 들어갔다. 이른바 대출 총량규제다. 그런 조치가 필요할 만큼 땅값이 급등한 것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내 집 마련을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규제로 과연 땅값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언론에서도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실제로 땅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총량규제가 보디블로처럼 일본 경제에 타격을 안겨주게 된다. 우선 닛케이 평균주가 지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8월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건으로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기 침체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부동산 가격도 드디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아직도 굳건한 부동산 신화가 남아 있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일 뿐 머지않아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이 마침내 축제의 종언을 감지한 것은 1992년을 넘어선 무렵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를 틀림없는 예언으로 받아들인 하루미는 부동산 거래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일찌감치 감지했다. 우선 투자용으로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1989년까지 모조리 처분했다. 주식이며 골프 회원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하루미는 폭탄 돌리기에서 승자 팀에 설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거품 경기로 명명된 이 시기에 수억 엔의 이익을 거둔 것이다.
사회가 가까스로 미몽에서 깨어날 즈음, 하루미는 이미 새로운 안테나를 뻗치고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는 컴퓨터와 휴대폰에 의한 정보망의 발전을 예언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이 휴대폰은 현실이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도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물결을 타고 뛰어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루미는 컴퓨터 통신을 접하면서 분명 그 앞에 꿈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5년, 정보공학과 출신 학생 몇 명을 채용했다. 그들에게 컴퓨터를 한 대씩 내주고 인터넷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안해보게 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이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오피스 리틀 독’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시작한 인터넷 관련 사업은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첫 단계로 자사의 홈페이지를 공개했다. 그것이 몇몇 매스컴에서 다루어지자 반향이 엄청났다.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들에게서까지 홈페이지 제작 문의가 줄을 이었던 것이다. 아직 아무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불황 속에 새로운 광고매체에 거는 기대는 뜨거웠다. 홈페이지 제작 주문은 속속 들어왔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오피스 리틀 독’의 사업으로 어이없을 만큼 돈이 벌렸다.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 사업, 판매 사업, 게임 송신 사업까지 모든 분야가 잘 풀렸다.
2000년에 들어서자 하루미는 다시 새로운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회사 내에 컨설팅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계기는 어느 레스토랑 경영자의 상담 의뢰였다. 그의 레스토랑은 매출이 오르지 않아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하루미는 국가 공인 중소기업 평가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전담 직원을 고용해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단순히 광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제대로 된 콘셉트 아래 메뉴나 가게 인테리어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리뉴얼한 이 레스토랑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 개업한 지 석 달 만에 예약이 어려울 만큼 잘나가는 레스토랑으로 변모한 것이다.
컨설팅은 돈이 된다. 하루미는 확신했다. 하지만 어중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경영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성과를 거두었을 때 비로소 장기적인 사업거리가 된다. 하루미는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때로는 고객의 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때로는 비정할 정도의 인원 삭감을 제안하기도 했다.
IT 부문과 컨설팅 부문,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주식회사 리틀 독’은 성장을 거듭했다. 돌아보면 지나칠 만큼 일이 순조롭게 풀려왔다. 주위에서 “무토 하루미 씨는 선견지명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분명 그런 점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가 없었다면 이만큼까지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반드시 그 은혜를 갚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혼자 힘만으로는 현재의 자신은 없었다.
환광원에서 받은 도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 들어 환광원의 경영이 파탄이 날 것 같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미나즈키 관장이 2003년에 세상을 떠난 뒤로 그의 큰아들이 운송업을 하는 한편으로 환광원을 꾸려왔지만, 정작 그 운송업 쪽에서 엄청난 적자를 내는 바람에 도저히 환광원을 유지해나갈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루미는 즉시 연락을 넣었다. 현재 관장은 미나즈키의 큰아들이지만 그건 명목상일 뿐이고 운영의 실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가리야라는 부관장이었다. 하루미는 그에게 자신이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돕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자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는 왜 그런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가능하면 남의 손은 빌리고 싶지 않다는, 위기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아 하루미는 미나즈키가에 찾아갔다. 환광원을 자신에게 맡겨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쪽 역시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시설에 대한 것은 가리야 씨에게 모두 맡겼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다, 라는 미덥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하루미는 환광원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자 최근 몇 년 동안 정규직 직원 수가 반으로 줄었다는 게 밝혀졌다. 기묘한 직함의 비정규직이 유난히 많았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일을 한 흔적이 없었다.
하루미는 대충 감이 잡혔다. 미나즈키 관장이 세상을 떠난 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누군가 보조금을 부당 청구하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주범은 아마도 가리야 부관장일 터였다. 그런 사실이 드러날까 봐 하루미가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더욱더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환광원을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하루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