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본문
# 5.
이종우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 날 그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현관 밖에 서 있는 이종우를 확인한 희영이 안절부절못하며 문 앞에서 긴장했다.
저 남자를 집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벨을 눌렀는데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
‘어쩔 수 없어.’
결국 체념한 희영이 현관을 열었다.
“왜 이렇게 굼떠? 전에는 빠릿빠릿하더니.”
현관으로 들어서며 남자가 어깨에 묻은 빗물을 툭툭 털었다. 문밖에는 그를 따라온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 몇 명이 서 있다.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그냥 따라다니는 놈들이니까.”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렇게 서 있어?”
소파에 앉은 남자가 희영에게 손짓했다.
“내가 어제 곰곰이 생각이라는 걸 해 봤는데 말이야.”
남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그게 무섭다.
“이제 159번 남았는데, 하루에 한 번씩 해도 반년이나 걸리잖아?”
“돈은 갚을게요. 갚을 수 있어요.”
“그냥 결혼 취소해.”
“네?”
“결혼, 포기하라고. 그러면 간단해져.”
결혼을 포기하라고?
그럴 수는 없다.
이 결혼이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걸 포기하라고?
겨우 더 위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아줄을 잡았는데 그걸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포기 못 하면 포기하게 해 줄 수 있어.”
남자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지만 희영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네가 한지애가 아니라 윤희영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려줘도 그놈은 너와 파혼 할걸?”
“160번이든 200번이든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결혼은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은 희영이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결혼은 해야 한다. 이건 희영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왜? 그놈이 그렇게 좋아? 아니면 그놈하고 결혼하면 네 과거가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래?”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그 지긋지긋한 시궁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그래서 제발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도와준다고 했잖아. 돈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도망친 건 너야.”
“시, 싫었어요.”
희영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남자에게 동정표라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남자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과연 존재할까.
“같이 살자는 말이 싫었어요.”
“그래서, 도망쳤어?”
“같이 살면 평생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때 돈이 보였어요.”
“왜? 내가 널 그 구질구질한 곳에서 살게 할 것 같았어?”
“그,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래서, 평범하게 살려고 내 돈을 가지고 도망쳐서 남의 이름을 훔쳐서 여기까지 왔어? 온통 거짓말을 해대며?”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아저씨.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200번이 아니라 평생 다리 벌리라고 해도 벌릴게요. 그냥 그 사람 모르게 결혼만 하게 해주세요.”
“결혼하고, 그놈 모르게 나한테 다리를 벌려 주겠다고? 그게 더 나쁜 짓이라는 거 알아?”
“알아요. 아는데…….”
“결국 그놈이 좋아서가 아니라 결혼이 하고 싶은 거지?”
“남들처럼 살고 싶어요…….”
“걸레가 빤다고 수건 될 것 같아? 걸레는 그냥 걸레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넌 그 구질구질한 곳에서 나한테 니 몸 사달라고 빌던 윤희영이야.”
“아저씨가 원하는 게 뭐예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희영이 남자를 쳐다봤다.
“너.”
눈앞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난 돈 필요 없어.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이 있으니까. 난 너 하나면 돼.”
“저한테 왜 이러세요…….”
자신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이 남자는 제게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렇게 제게 집착하는 걸까.
다른 여자도 얼마든지 있는데.
“왜 그러냐고?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시작은 네가 했고 네가 날 가지고 놀았으니까 이제 내가 널 가지고 놀 차례야.”
이 남자에게 눈길도 주지 말았어야 했을까.
심부름도 해 주지 말고, 라면도 끓여주지 말고, 이 남자에게 도와달라는 행동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결혼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하고 하면 돼. 내가 그 결혼 해 줄 테니까 오늘이라도 그놈에게 전화해서 파혼하자고 해. 네가 못하면 내가 대신 해 줄 테니까 힘들면 부탁하고.”
희영이 고개를 떨궜다.
이젠 방법이 없다. 이 남자는 기어이 저를 끌어내릴 작정이다.
‘도망쳐도 소용없다면…….’
고개를 떨군 채로 희영이 제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을 쳐다봤다.
‘죽일까…….’
어디로 도망쳐도 쫓아온다면 방법은 죽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죽여…….’
이 남자는 몇 명이 덤벼들어도 끄떡도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제가 감히 죽일 수 있겠는가. 상처도 내지 못할 거다.
“내가 설마 널 고생시키겠어? 호강시켜줄게. 네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호강하며 살게 해줄 테니까 뚝 그치고 옷이나 벗어.”
호강.
화려한 삶.
그것도 좋다. 그런 것을 바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사람과 함께일 때 바라는 것이지 이 남자에게서 그걸 바라지 않는다.
이 남자는 절대로 평범하지 못하다. 이 남자의 옆에 있으면 분명 몸은 호강을 해도 마음은 매일 시달릴 것이 뻔하다.
전신에서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아직은 잘 모른다.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마약이나 그런 쪽의 사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큰돈]을 맡기는 거물 손님이 된 게 아닐까.
선오가 회사에 있을 때도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고객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이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합법적으로 세탁을 해 주는 것이 선오의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큰 손, 거물 고객이라는 건 그만큼 불법적인 일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는 뜻이고 이 남자가 정말 위험한 남자라는 뜻이다.
위험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다.
그냥 평범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화려한 집에 살아도 불안에 떨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그 시궁창 같았던 과거, 윤희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다.
윤희영이 아니라 한지애로 살고 싶다. 그러니까 자신이 윤희영이라는 걸 아는 이 남자와는 어떻게 살아도 행복할 수가 없을 거다.
‘도망칠 수 없다면 죽여야 해. 방법을 찾아서라도…….’
무서운 생각을 하며 희영이 옷을 벗었다.
오늘은 오후에 예물을 보러 가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이 없어서 느긋하게 일어나 편하게 입고 있었다.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은 희영이 브래지어를 풀고 팬티를 잡고 망설였다.
“이제 와서 부끄러워? 니가 내 자지 빨고 내가 니 보지 빨던 건 잊어버렸어? 새삼 빤스 벗는 게 부끄러워?”
저를 조롱하듯 빈정거리는 남자의 웃음에 희영이 망설이던 팬티를 내렸다.
“어디서 할래?”
바닥에서 할 건지 침대에서 할 건지 고르라는 것이다.
희영이 말없이 걸어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가는 사이에 남자는 옷을 벗었다. 빗물에 젖은 양복 재킷을 벗고 셔츠를 벗은 남자가 바지에 손을 올리고 침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침대로 올라오기 전에 바지와 브리프를 벗었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남자만 시간이 멎은 것처럼 그대로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 예전과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윤희영이 아니라 한지애다.
우울하고 항상 그늘져있던 윤희영이 아니라 화사하게 웃을 수 있는 한지애.
비록 고아이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작은 회사의 사장 비서로 일하다가 거래처 사람의 청혼을 받은 행복한 한지애.
그러나 시간이 멈춘 거울에서 걸어 나온 듯한 남자가 지금 제 앞에 있다.
“벌려.”
희영이 순순히 다리를 벌렸다.
체념한 건 아니다. 이 남자가 바라는 대로 해 주는 척을 하기로 했다.
그래. 도망을 치든 죽이든 뭘 하든 간에 지금은 이 남자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생긴다.
“하읏.”
다리를 벌리자 곧장 그 사이로 머리를 처박은 남자가 질구를 빨기 시작하자 희영이 머리를 젖히며 허리를 들썩였다. 남자의 혀가 겹겹이 접힌 주름을 헤집는다. 굵은 손가락이 소음순을 벌리고 안쪽의 질주름을 빨자 허리를 비틀며 희영이 학학 숨을 내뱉었다.
도망치거나 벗어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제 몸은 이 남자의 애무에 이렇게 무방비하게 녹아내린다.
이 남자와의 섹스가 지독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알고 있다.
그건 전에도 그랬었다.
섹스는 좋았다.
아니, 섹스 할 때만 좋았다.
그러나 섹스만으로 살 수는 없다.
아니, 섹스만을 위해 살고 싶지 않다.
정상적으로 사랑하고, 정상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바램이고 과한 욕심일까.
“하응! 으, 응, 응!”
굵은 손가락이 질주름 안으로 쑥 들어와 안쪽을 긁어댄다. 갈고리처럼 휜 손가락의 끝으로 질벽을 긁다가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문질러댄다.
“아응, 응, 하으응. 하, 웃!”
다리를 벌린 채로 희영이 허리를 들썩였다.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며 구멍을 푹푹 찌르는 세 개의 손가락에 벌어진 보지가 찔꺽찔꺽 물을 토해낸다.
희영의 숨이 점점 더 가쁘게 차올랐다. 머릿속이 쾌감에 절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제 몸뚱이는 이렇게 쾌감에 약하다.
아니, 이 남자가 주는 이 난잡한 쾌감에 이미 길들여진 몸뚱이다.
예전에 들은 것이 생각났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전에 땅속에서 잠들어 있었던 개구리인가 뭔가를 찾아내서 물에 넣어주었더니 깨어났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게 개구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몸뚱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도망쳐버려도 몸뚱이는 이 빌어먹을 섹스를 기억해서 이런 짓을 할 때마다 제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미쳐 날뛴다.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 좁고 눅눅하고 더러운 방에서 몸을 팔았던 건 고작 며칠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며칠만으로 그새 제 몸뚱이는 이 남자를 확실하게 각인해버린 거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어제 이 남자에게 박힐 때 그때의 희열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 남자가 지긋지긋하고 역겨우면서도 제 몸뚱이는 더 바라고 있다. 더 빨아 주고, 더 만져 주고, 그리고 빨리 박아 주기를 바라고 있는 제 몸뚱이가 역겨울 정도다.
“응, 응, 하, 읏, 하으응, 아, 아, 아아아!”
침대 위에서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들썩이던 희영이 등을 뻣뻣하게 휘며 몸을 덜덜 떨었다. 구멍을 쑤시고 클리토리스를 문질러대는 애무만으로 절정이 찾아왔다.
“으으응…….”
허리를 휜 채로 덜덜 떠는 가랑이 사이에서 물줄기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좋냐? 씹물이 줄줄 흐른다.”
가랑이 사이에서 얼굴을 든 남자가 픽 웃는다.
얼굴이 뜨겁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그거 아냐? 내가 원래 떡치는 걸 좋아하는 놈이 아닌데 니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빤스도 안 입고 찾아와서 치마 걷어 올리고 박아달라고 하는데 돌아버렸지. 넌 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난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나거든? 그때 아마 생리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을 거다. 그렇지? 보지를 빠는데 피 맛이 나더라고. 그래서 야마가 확 돌았지.”
그런 건 기억 못 한다.
그때가 생리 후였는지 그런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이상하다.
“내가 술도 끓을 수 있고 담배도 끊을 수 있는데 하나는 못 끊겠더라. 그게 너라고, 윤희영. 너는 도저히 씨발, 안 끓어지더라. 그래서 미친놈처럼 찾아다녔지.”
남자의 손이 희영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내가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 다 정리하고 새 인생 살려고 했는데 네가 다 망쳤어. 남의 인생을 망쳐놓고 도망을 쳐? 윤희영. 책임을 져야지? 남자 인생 망가뜨린 책임을 이제라도 져야지.”
‘내가 무슨… 내가 뭘 했다고…….’
자신이 뭘 했다고 이 남자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걸까.
그 돈 때문에?
“너 아니었으면 지금은 어느 외국에서 술이나 마시며 늘어져 있을 텐데, 너 때문에 내가 아직도 이 바닥을 벗어나질 못해.”
오늘 이 남자는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이 남자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던가? 전에 알던 남자는 하루에 몇 마디 하지 않는 그런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는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제게 쏟아내고 있다.
“아흐응!”
질척하게 젖은 보지를 벌리고 남자의 좆이 푹 쑤셔 박혔다.
“아응! 응!”
남자의 좆이 거칠게 구멍을 들락날락거렸다. 사납게 퍽퍽 쑤셔 박을 때마다 희영의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미 한 번 절정에 올랐던 몸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굵고 사나운 자지가 제 안으로 푹 밀고 들어올 때마다 전신이 비명을 지른다.
“하으응! 하으! 아, 아!”
희영이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어제는 화장실이라 지르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소리를 목이 터져라 지르며 희영이 제 허리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목을 꽉 쥐고 매달렸다.
“하응! 응! 흐으응!”
희영은 삼키지 못한 침까지 흘려가며 쾌감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정말 숨이 넘어갈 것만 같다.
“흐아아아앙!”
절정에 오른 희영이 침대 위에서 부들부들 떨며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다. 그런 희영의 구멍에서 남자의 자지가 뽑혔다.
“하아… 하아…….”
새우처럼 옆으로 웅크린 희영의 허벅지를 타고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젖은 건 허벅지만이 아니다. 엊그제 세탁해서 깨끗했던 이불이 엉망진창으로 젖었다. 제가 싼 것과 이 남자의 정액이 이불을 적셔 얼룩덜룩하다.
“오늘 천만 원 까자. 열 번만 하면 되잖아?”
숨을 헐떡이는 희영의 몸을 뒤집은 남자가 그녀의 엉덩이를 확 벌린다. 엉덩이와 함께 벌어진 새빨간 구멍이 허연 정액을 뚝뚝 흘린다. 온통 정액으로 범벅이 된 구멍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던 남자가 여전히 사납게 꿈틀거리는 자지를 그 눅진한 구멍에 쑤셔 넣었다.
“하으응!”
눈이 풀어져 있던 희영의 눈이 번쩍 트였다. 얼굴을 이불에 처박은 채로 엉덩이만 쳐든 희영이 소리를 질렀다.
하루에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를 수 있을까.
“하응! 응! 흐아앙! 아아앙!”
이불을 꽉 쥐고 희영이 몸을 흔들었다.
제가 흔드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거다. 뒤에서 남자가 좆을 박을 때마다 몸이 앞으로 흔들린다. 퍽퍽! 엉덩이에 남자의 하체가 부딪치며 몸 안 깊숙하게 살덩이가 찔러 들어온다. 이 무지막지한 쾌감 앞에서 희영은 사정없이 무너졌다. 벌어진 허벅지를 타고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하으응!”
고개를 든 희영이 침대 머리맡의 거울을 쳐다봤다. 벌거벗은 채로 울면서 엉덩이를 쳐든 제 뒤에 저를 꽉 붙잡은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사납게 숨을 헐떡이는 남자와 그 아래에서 개처럼 엎드려 뒤로 박히며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 작은 거울에 고스란히 담겼다.
“자지가 박히는 거 보여 줄까?”
그때 남자의 손이 희영의 아랫배를 끌어안고 그녀를 일으켰다. 자지가 박힌 채로 거울을 마주하며 일어나 앉은 꼴이 된 희영이 무릎을 꿇은 채로 남자의 팔에 붙들렸다.
남자는 두 팔로 희영의 허벅지를 받쳐 올렸다. 그리고 무릎을 세우더니 허리를 퍽, 퍽, 쳐올린다.
“아흣! 아! 아! 아흐응!”
남자의 팔에 떠받친 채로 희영의 몸이 붕 떴다. 벌어진 제 가랑이 사이로 남자의 자지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거울을 통해 보였다. 검붉은 자지가 허연 정액을 덕지덕지 묻힌 제 보지를 쩍쩍 벌리고 안으로 쑤걱쑤걱 밀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희영이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새빨갛게 익은 제 젖꼭지와 제 거무스름한 보지털. 그리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벌어진 구멍에 박혀 있는 검붉은 살덩이.
무엇보다 반쯤 미쳐있는 제 얼굴.
“이제 어떻게 해 줄까?”
남자의 속삭임에 희영이 정신을 놓았다. 다시 남자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을 때 희영은 그의 어깨에 매달린 채로 그의 입술을 정신없이 찾았다. 그 혀에 매달리고 빨아대며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남자의 위로 올라타 그 살덩이를 제 구멍에 박은 채로 엉덩이를 찧었다.
두 손으로 남자의 복부를 짚고 엉덩이를 흔들며 희영이 남자의 위에서 날뛰었다. 그야말로 발정이 난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 * *
[미안해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예물 보러 가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보낸 문자는 1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다음 주에 가지. 나도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미룰까 했었는데 잘 됐네.]
답장을 확인한 희영이 욕실에서 나오는 남자를 쳐다봤다.
수건 한 장 걸치지 않고 나온 남자는 벌거벗은 채로 희영의 집안을 활보했다.
“맥주 밖에 없어?”
냉장고를 열어 안에 맥주 밖에 없는 걸 확인한 남자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현관을 연다.
현관 밖에는 아직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이 한 시간도 넘게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를 다 들었을 것이다.
“술 좀 사와. 먹을 것도 같이. 여긴 먹을 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렇지 않게 명령을 내던진 남자가 다시 문을 닫고 희영에게로 걸어왔다.
조금 전에 씻은 희영의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다.
“이, 이불 갈아야 해요.”
희영이 남자의 시선을 피해 얼른 이불을 바꾸는 척 했다.
실제로 이불을 갈아야 하기도 했다.
엉망진창으로 젖어서 이대로는 쓰지 못한다.
“이사부터 하자.”
“네?”
이불을 끌어내리던 희영이 당황해서 남자를 쳐다봤다.
“너 좋아할 만한 집 하나 사 놨어. 인테리어 끝냈고 가구도 다 들였으니까 몸만 들어가면 돼.”
“하, 하지만…….”
“왜? 결혼식도 올려줘? 결혼식이 하고 싶으면 식장 알아보라고 할 테니까 말만 해.”
“그게 아니라…….”
이 남자는 자신과 선오의 파혼을 아예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제 선오와의 결혼은 끝났다는 걸 희영도 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찾아낸 순간부터 결혼은 끝났다. 이 남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남자다. 이런 남자를 곁에 두고 결혼생활을 이어 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자신이 사정하고 애원해서 이 남자가 결혼은 하게 해 준다 하더라도 그건 희영이 바라던 삶이 아니다.
희영은 선오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선오가 가진 평범하면서도 안정적인 삶에 끼어들어 가고 싶어 선택한 결혼이다. 그러나 이 남자가 나타난 이상 더 이상의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은 없다.
“원하는 건 다 해 준다니까.”
희영의 손에서 이불을 빼앗은 남자가 그걸 툭툭 접는다.
“뭐든지 다 해 줄 테니까, 그냥 얌전하게 내 여자 해라.”
이불을 벗긴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가 희영을 빤히 쳐다봤다. 아는 얼굴이다. 제가 도와달라며 뛰어들었던 그날 밤의 남자다.
벗어나고 싶다던 제게 [여기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거다]라고 말해 줬던 그 남자의 얼굴이다. 그가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의 돈을 가지고 도망친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 어제는 화가 나 있었지만 지금은 어제처럼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곁에 있고 싶지는 않다. 이 남자의 옆에 있으면 계속 불안하다. 바라는 건 안정인데 이 남자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자꾸만 코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그때 그 여인숙 그 작은 방의 눅눅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싫은 거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 비참했던 그때를 생각나게 해서, 이 남자가 제게 뭘 해 준다고 해도 싫었다.
“결혼, 못 한다고 할게요.”
희영이 이불장에서 새 이불을 꺼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결혼, 안 할게요.”
결혼을 못 한다고 하면 윤선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눈에 보인다.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설득하려 들 것이고 나중에는 저를 혐오하며 바라볼 것이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선오는 왜 자신과 결혼하려고 한 걸까. 고아에 가진 것도 없는 여자. 그 정도의 잘난 집안의 아들이 왜 자신과 결혼하려고 한 걸까. 그걸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도 물론 알고 있다.
윤선오는 좋게 말해 돌싱남이고 그냥 말하면 이혼남이다. 이혼의 이유는 성격 차이라고 했지만 그 남자가 제게 데이트 신청을 하던 때 근무하고 있던 회사 비서실에서 그 남자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떠돌았다. 그리고 선오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가 제게 건넸던 말에서도 이혼의 이유는 충분히 찾아낼 수가 있다.
[난 일하는 여자보다는 가정적인 여자가 좋아요.]
[우리 어머니가 가정적인 분이라서요. 지금은 나 혼자 독립해서 나온 바람에 아침 밥을 굶지만 결혼하면 아침밥 먹을 수 있겠지?]
가정적인 여자, 순종적인 여자,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는 여자. 그런 것이 윤선오가 바라는 아내의 모습이다. 전 부인과 이혼한 것도 부인이 [밖으로 나돌아서]였다고 했다. 그의 전부인인은 같은 회계사였는데 결혼하고 나서도 일을 계속하길 원했고 선오는 그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혼한 거라고 들었다.
아이 문제도 있다고 들었다. 선오는 바로 아이를 갖길 원했지만 전 부인은 아이를 낳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원했고 집안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만 아는 여자]
선오는 전 부인을 항상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나 시댁을 무시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여자.]
그리고 제게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가정적인 여자라서 다행이야. 지금은 어머니가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이 노력하면 진심을 알아주실 거야. 결혼하고 나면 집안일 하면서 매일 어머니 찾아뵙고 어머니께 요리도 배우고, 어머니 모시고 쇼핑도 가고 그래.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서 찾아뵙고 또 그러다 손자 생기면 어머니도 당신을 받아줄 거야. 형님이 딸만 있어서 어머니가 손자 타령이 대단하시거든. 손자만 낳아 주면 어머니는 당신 떠받들 걸?]
솔직히 듣는 것만으로 답답하긴 했었다. 자신이 그런 가정적인 여자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면 할 수 있었다. 남의 이름을 사용하고 남의 돈을 훔쳐 도망까지 쳤는데 고작 그런 것을 못 할까.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 줄 자신은 있었다. 시어머니가 될 분을 매일 찾아뵙고 집안일을 다 도맡아서 하고 온갖 구박을 해도 견딜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이 제 것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에 두 번 요리학원도 등록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여인숙에서는 고작해야 라면, 잡탕찌개를 끓여 먹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와서 고시원에 살 때도, 대학 기숙사에서 살 때도 음식이라는 걸 거의 해 먹지 않았었다. 그런 자신이 마치 오래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온 사람처럼 구는 건 어려웠다.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들이 낯설었다. 딱 한 번 초대받은 선오의 본가에서 먹었던 음식도, 그 집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도 다 낯설었다.
자신만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보통 사람의 집]은 낯설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 먹고 난 다음의 다과까지. 그런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라는 것이 신기했고 또 부러웠다. 그리고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윤선오와의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는 우습게도, 그게 전부였다.
“그래야지. 이사 언제 할까?”
“집 정리되면 바로 해요.”
“오늘이라도 가서 살아도 돼. 가구도 다 들여왔고 여기 정리는 애들에게 맡기면 되니까.”
애들이라는 건 밖에 있는 남자들일 것이다.
“그건 너무 갑작스러워요.”
“그래? 그러면 내일로 할까? 내일 데리러 올까?”
“네…… 내일.”
숨이 막혀온다.
“잘 생각한 거야. 진즉 이랬어야지.”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새 이불을 침대에 펼치는 희영의 어깨를 붙잡는다.
“이불도 새로 깔았는데, 한 번 더 할까?”
“아, 아래가 쓰려서…….”
“왜? 짓물렀어? 어디 보자.”
“읏…….”
방금 막 깐 이불 위로 희영의 몸이 쓰러졌다. 침대 위에 쓰러진 희영의 슬립을 걷어 올린 남자가 그녀의 가랑이를 벌렸다. 슬립은 입었지만 아직 팬티는 입지 못했다. 젖은 손가락이 대음순을 벌리자 가까워진 얼굴에서 더운 숨이 제 살갗에 훅 닿는 것이 느껴져 희영이 어깨를 움츠렸다.
“멀쩡한데?”
남자가 웃는다. 그가 웃을 때마다 입술의 흉터가 꿈틀거린다. 희영이 팔꿈치로 침대를 받치고 상체만 일으킨 채로 제 가랑이 사이를 들여다보는 남자를 쳐다봤다.
“아저씨.”
희영이 제 구멍을 만지작거리는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던졌던가?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도 궁금했었고 지금도 궁금하다.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그때는 왜 거기 살았어요?”
“들으면 무서울 거다.”
“지금도 충분히 무서워요.”
이 남자 앞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 무슨 거짓말을 해도 이 남자를 속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바에야 차라리 솔직한 것이 낫다.
“무서워하지 말고, 좋아해 봐.”
남자가 희영의 보지 털에 입술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얇은 털을 씹다가 혀로 길게 핥는다.
“네 보지가 날 좋아하는 절반만 날 좋아하면 이 사달이 나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안 그래?”
“다른 여자도 많잖아요.”
“다른 년 누구? 난 여자 없어.”
“내가 처음은 아니잖아요.”
“왜? 총각이었으면 했어?”
“다른 여자도 많은데 왜 나한테 이러나 해서요.”
“꼴리는 데 이유 있냐?”
남자가 몸을 일으켜 희영의 위로 올라왔다. 그가 제 몸 위로 올라오자 희영이 몸을 버티고 있던 팔꿈치를 내리고 누웠다.
“지금도 엄청 꼴리는데, 이유가 없어. 그냥 꼴려. 너만 보면.”
“언제까지 꼴릴 건데요?”
“그런 거 없어.”
“아저씨. 뭐든지 다,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어요.”
불안감의 정체를 하나 더 깨달았다.
유통기한.
그래. 그런 것이 있다. 뭐든지 끝나는 때가 있다.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해야 맞을 거다. 파는 음식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고 사용하는 물건은 언젠가는 망가진다. 사람의 감정도 그럴 거다. 이 남자는 유독 제게 집착하지만 이 집착에도 결국에는 끝이 있을 거라는 게 이 불안의 원인이다.
“그런 게 있어요, 아저씨.”
이 남자가 제게 잘해 준다고 해도, 제게 집착하고 절 원한다고 해도 끝이 있을 거다. 이 불안과 두려움의 원천은 그게 아닐까. 언젠가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 이 남자는 언젠가는 저를 버릴 거다. 제게서 더 이상 단물을 빨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 때, 저는 제가 달게 느껴지지 않을 때 이 남자는 저를 가차 없이 버릴 거다.
화려하게 살 수도 있다. 정말 온갖 것들을 제게 다 안겨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버려지는 날이 오게 되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비참해질 것을 안다. 옛날 그 파란 철문의 여인숙에 살았던 여자들 중에는 손님과 살림을 차렸다가 다시 버려져 되돌아온 여자들도 많았다. 단맛을 알고 난 후에 버려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는 충분히 경험했다.
이 남자가 살던 그 끝방에서 죽었던 여자도 그랬었다. 화려한 새 삶을 꿈꿨다가 결국 버림받고 죽었다. 그 피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자신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일수록, 안정적이지 못한 남자일수록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제가 도망치는 바람에 이 집착의 끝이 연기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과연 몇 년을 더 갈까. 십 년? 십오 년? 끝은 찾아온다.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면 죽을 때까지 그 평범한 행복이 유지될 수 있겠지만 이 남자에게서는 그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는 버림받을 거다. 그게 무섭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거다. 버림받기 전에 도망쳐서 자신을 버리지 않을 남자를, 아니 버림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리 말해도 이 남자는 그런 자신의 심정을 모르겠지만.
“유통 기한 같은 건 모르겠고, 하나만 말해 줄까? 난 벌써 상한 놈이야. 유통 기한? 그딴 게 있다면 옛날에 지난 놈이야. 심하게 상해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걸 네가 건드린 거야. 알아들어?”
쩌억.
젖은 소리가 나며 남자의 페니스가 희영의 보지를 벌리고 들어왔다.
“하읏!”
기다렸다는 듯 찌걱찌걱 소리를 내 가며 남자의 자지를 삼키는 제 몸뚱이는 쾌락밖에 모르는 살덩이다.
“하으응! 응, 응!”
벌어진 구멍 안으로 커다란 자지가 푹 박히며 남자의 손이 희영의 허벅지를 위로 밀어붙였다.
“아흥! 아! 아!”
묵직한 남자의 몸뚱이가 저를 짓눌러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젖가슴이 짓눌리며 달아오른 젖꼭지가 아프다. 젖꼭지를 빨고 씹어 주면 좋겠다. 물어뜯기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응! 흐응! 흐앗, 앙! 앙!”
엉덩이를 흔들며 희영이 제 안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살덩이를 삼켰다. 박히는 구멍이 뜨겁게 녹는다. 조금 전에 씻은 몸이 다시 달아오르고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지금 막 새로 깐 이불이 땀 때문에 눅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희영이 제 몸을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푹푹 박힐 때마다 머릿속이 흔들린다.
“혀 내밀어.”
남자가 속삭이자 희영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내민 혀를 휘감은 남자가 쩍쩍 빨아 대자 희영이 남자의 목을 더 바짝 끌어안았다. 혀를 타고 흘러내린 타액이 입 안에 고였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남자의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희영이 제 아랫도리를 남자에게 더 바짝 밀어붙였다. 퍽, 퍽, 살덩이가 사납게 파고들 때마다 애액이 잔뜩 발린 털이 엉겨 붙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조금 전에 거울에 비쳤던 자신과 남자의 모습이 그대로 머릿속에 생생했다. 검붉은 살덩이가 제 시뻘건 살점을 열어젖히고 안에 박아 대는 걸 상상하자 몸이 더 달아오른다.
제 엉덩이와 허리를 더듬는 커다란 손이 차갑게 젖어서 흥분을 부추긴다. 여전히 이 남자에게서는 지독한 담배 냄새가 난다. 엉덩이를 꽉 움키고 추삽질을 거칠게 해 대는 남자의 아래에서 희영이 숨이 넘어가게 소리를 질렀다.
희영의 혀를 놓아준 남자의 입술이 젖꼭지를 물어뜯었다. 잔뜩 달아오른 젖꼭지가 단단한 이에 씹히자마자 등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흣, 응, 으응, 응!”
고개를 젖힌 희영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다. 이 남자의 말처럼 정말 오늘 천만 원을 깔 기세로,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깔 기세로 계속 이런 짓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말했잖아. 건드리지 말라고. 후회한다고. 그런데 그런 놈을 네가 먼저 꼬셨으니까 대가를 치르는 거 아냐. 희영아. 맛 간 놈을 함부로 건드리면 좆 되는 거야. 이렇게.”
“하으응!”
철벅거리며 구멍 안을 드나들던 성기가 기어이 정액을 뿜어냈다. 성기를 뽑아내자 벌어진 채로 다물어지지 않는 구멍이 정액을 꿀렁꿀렁 흘렸다. 가랑이를 벌린 채로 희영이 아랫배를 들썩거리며 숨을 헐떡였다. 그런 희영의 옆으로 남자가 누웠다. 붉은 잇자국이 남은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남자가 옆으로 손을 더듬었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며 픽 웃었다.
“필래?”
“안 펴요.”
“떡 치고 피는 담배 맛이 죽이는데. 배워 볼래?”
“안 펴요.”
“그래. 끝까지 피지 마라. 안 좋은 건 배우지 말아야지.”
정말 유해한 남자다. 담배처럼, 소주처럼 유해해서 가까이해 봤자 좋을 것이 없는 그런 남자다. 그런데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는 불량식품 같은 남자이기도 하다. 상한 건지 불량식품인 건지. 건드려서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건드리게 되고, 건드리고 나면 무서워서 도망치게 하는 그런 남자다.
똑똑똑. 그때 밖에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심부름을 간 사람이 돌아온 것이리라. 술과 먹을 걸 사 오라고 한 것이 삼십 분 정도 지났나? 아마 그럴 거다.
“누워 있어.”
침대에 희영을 남겨 두고 남자가 하체도 가리지 않은 채 현관으로 걸어갔다. 만족하고 늘어진 남자의 자지 위로 정액과 애액이 들러붙은 털이 축축하게 엉겼다. 그런 것을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남자가 현관을 열었다. 현관 밖에 서 있는 건 심부름을 다녀온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이, 이대표님?”
시뻘건 얼굴을 하고 현관 밖에 서 있는 건 윤선오였다.
“윤대표님, 여기서 다 뵙네요.”
당황한 선오와는 달리 이종우는 느긋했다.
“저, 저, 대표님께서 왜 여기에…….”
윤선오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아, 떡 치는 중이었는데. 들어오겠습니까?”
종우가 현관 문을 활짝 열고 안쪽을 보여 줬다. 현관에서는 침대가 곧장 시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희영의 모습도 선오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그, 그, 그러니까 이대표님이 왜 여기서……. 지애는 또 왜……?”
“아, 종알종알 시끄럽네. 왜는 왜야? 떡 치고 있었다는 말 안 들려? 귓구멍이 막혔어?”
사나운 목소리에 선오가 어깨를 움츠렸다.
“씨발. 들어올 거야, 말 거야?”
“드, 들어가는 건 좀…….”
“왜? 기분 나빠? 니 여자를 내가 건드렸다고 기분 나쁜 거야?”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냐? 배알도 없는 놈이네. 너하고 결혼할 여자가 조금 전까지 씹물을 흘리면서 내 자지를 꽉꽉 물어 댔는데 그게 기분이 안 나빠?”
“그, 그게…….”
“그래도 할 거야?”
“네?”
“그래도 결혼할 거냐고. 저런 년인데 결혼 할 수 있어?”
“그, 그건…….”
“저년하고 내가 좀 오래 알던 사이라서. 나하고 구멍 동서 하고 싶냐?”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럼 다시는 찾아오지 마. 저 여자 이제 니 여자 아니니까.”
“저, 그, 그러면…….”
“그러면 뭐?”
“저, 저희 사무실과의 거래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꺼낸 윤선오의 말에 남자가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너 하는 거 봐서.”
“자, 자, 잘 부탁드립니다!”
윤선오가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한 다음 쫓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도망치는 걸 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침대 위의 희영을 쳐다봤다. 희영은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야, 저 새끼가 잘 부탁한단다.”
그때 현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양복 입은 남자 한 명이 종이봉투를 슬그머니 내민다.
“좀 있다 갈 거니까 차 대기시켜.”
“네.”
현관을 닫은 남자가 희영에게로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런 걸 사 왔네. 이게 입맛에 맞나?”
종이봉투 안에서 꺼내 희영에게 내민 건 초밥 도시락이다.
“회가 더 낫지 않나?”
“이것도 좋아해요.”
희영이 도시락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하나 집은 초밥을 입에 넣었다. 기분이 이상하게 담담하다.
‘전화할 필요도 없어졌네.’
윤선오에게 왜 결혼을 못 하는지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걸 다 보고 갔으니 이 결혼은 그냥 벌써 끝이 났다. 정말 우습게 끝이 나 버렸다. 열린 현관 너머에서 힐끔힐끔 훔쳐보는 그 꼴이라니. 자기와 결혼할 여자가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한 걸 봤으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죄지은 사람마냥 도망치는 꼴이라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대로 화를 내며 들어와서 제게 소리라도 쳐 주길 바랐었다. 그런데 싸워 보지도 않고 싸움에서 진 개처럼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 고작 그런 남자였다. 고작 그런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 놈의 평범한 일상을 동경한 나머지 장님처럼 눈 감고 그 남자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끝이 너무 허탈해서 허기가 진다. 그리고 허기가 진 끝에 먹는 초밥은 너무도 달았다.
“맛있냐?”
“네…….”
“그럼 나중에 초밥집 가자.”
“그러지 않아도 돼요.”
“맛있는 거 사 준다니까. 생각해보니까 같이 먹은 게 라면밖에 없잖아.”
“그렇긴 하네요.”
이 남자와는 그 좁은 방, 라면, 소주, 담배 냄새, 그리고 시끄러운 여인숙 밖에는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없다. 생각해 보니 이 남자와 몇 년을 산 것이 아니다. 고작해야 한 달하고도 며칠뿐이다. 그런데 그 한 달 며칠의 인연이 지금까지 질기게 끊어지지도 않고 이어지고 있다. 참 우스운 거다. 살려 달라고, 구해 달라고 뛰어 들어갔더니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거 다 먹고 반지나 보러 가자.”
“…….”
반지. 원래는 선오와 함께 보러 가기로 했던 반지다. 그런데 이 남자와 반지를 보러 가다니.
“그냥 집에서 쉬면 안 돼요?”
“그러고 싶어?”
“많이 했잖아요.”
“많이 하긴 했지.”
남자가 소주를 들이켜며 웃는다. 웃을 때마다 입술의 흉터가 꿈틀거린다.
“거긴 왜 그래요?”
“어디? 입술?”
“네.”
“왜? 보기 싫어?”
“아니요. 어쩌다 그랬나 싶어서요.”
“나에 대해 궁금해?”
“그냥…….”
“유리 씹다가 이렇게 됐는데.”
듣기만 해도 뼈가 저리다. 유리를 씹다니, 미친 거다.
“이젠 안 씹어.”
“누, 누가 뭐라 했나요.”
“유리 대신에 다른 걸 씹으면 되니까.”
희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아저씨 아니다.”
“네?”
“그렇게 늙지 않았다고. 너보다 다섯 살 더 많다. 아저씨는 아니지?”
“…….”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가 이 남자를 처음 만났던 스무 살에도 이 남자는 스물 몇 살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이십대 후반인 지금 이 남자는 서른을 갓 넘긴 나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냥 아저씨가 입에 붙어 버렸다. 아저씨라는 말 대신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를 뿐이다.
“이름 불러.”
“그냥 편한 대로 부를게요.”
“그러든가.”
남자가 손을 뻗어 희영의 입가를 만졌다. 입술 옆에 붙은 밥알을 떼 주는 남자를 희영이 쳐다봤다.
“넌 어째 변하지 않냐.”
그건 희영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 남자는 왜 변하지 않는 걸까.
“나 가고 나면 한숨 자라.”
그 말과 함께 남자가 벗어 놨던 옷을 입는다. 옷을 다 입은 남자가 현관으로 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넌 한지애보다는 윤희영이 더 잘 어울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그냥 윤희영 해.”
그 말을 남긴 남자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희영이 제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삼분의 일쯤 먹은 도시락을 내려다봤다. 사실 희영은 초밥이 처음이다. 회는 먹어 본 적도 없다. 날것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선오가 여러 번 먹으러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얼떨결에 먹은 초밥은 맛있었다. 입에 맞는다. 왜 진즉 먹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 정도다.
저 남자도 그럴까? 날것의 저 남자도 언젠가는 입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올까. 그렇지만,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도망칠 거다. 이번에는 절대로 찾을 수 없게, 진짜로. 왜냐하면, 초밥이 맛있는 것처럼 저 남자가 좋다는 생각이 들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몸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줘 버린 후에 버림받는 건, 최악이다.
호강을 누리다가 버려지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다시 호강을 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을 줬다가 버려지면, 그 버려진 마음을 어떻게 다시 채울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 전에 도망칠 거다. 이러나저러나, 도망치는 길 밖에는 없다.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희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와중에도 입 안의 초밥이 맛있어서 지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