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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본문

쿵푸벳

# 4.

촤르륵.

커튼이 걷히자 희영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머, 신부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직원들의 목소리보다는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남자는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직원들의 호들갑에 고개를 들었다.

“나 어때요?”

“예쁘네.”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간단해서 희영이 잠깐 실망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 잘 어울려.”

“그럼 이걸로 할까요?”

“당신이 좋으면 그렇게 해. 다른 건 안 입어 봐도 돼?”

“저도 이게 좋아요.”

“그래. 잠깐만. 나 전화 좀 받고.”

중요한 전화인지 벨이 울리자마자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통화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다른 드레스는 안 입어 보셔도 되겠어요?”

“네. 이걸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다시 갈아입는 것 도와드릴게요.”

“네…….”

커튼이 다시 닫히고 희영이 직원의 도움으로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바쁘니까…….’

그래. 저 남자가 바쁘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워커홀릭에 가깝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을 결정한 건 자신이다.

“벌써 갈아입었어?”

드레스를 벗고 탈의실에서 나온 희영이 마침 통화를 마치고 숍 안으로 들어온 남자와 마주쳤다.

“아직 갈 곳 많이 남았잖아요. 예물도 봐야 하고…….”

“미안한데.”

남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희영은 그다음 내용을 짐작했다.

“나 지금 들어가 봐야 해.”

“많이 바빠요?”

“지금 클라이언트가 만나자고 하네. 알지? 우리 사무실 VIP 클라이언트.”

“그러면 들어가 봐야죠.”

“미안해. 반지는 다시 날 잡자.”

“전 괜찮아요.”

“택시 타고 들어가. 다시 전화할게.”

“네.”

뭐가 그렇게 급한지 남자가 숍 밖으로 나가자 희영이 천천히 핸드백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하다. 6월 장마 시작 전의 흔한 하늘이다.

‘택시를 잡아야지.’

도로 가까이 나간 희영이 지나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때 손등에 빗물이 떨어졌다.

‘비가…….’

하늘이 어둡더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롯가로 뛰어나왔다. 가뜩이나 잡기 힘들던 택시를 더 잡기 어려워지자 희영이 손가락으로 [따블]을 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따블]을 줘야만 택시가 잡힐 거다.

“형신동이요.”

간신히 택시를 잡아탄 희영이 젖은 어깨에서 빗물을 털어냈다. 달리는 차의 유리창에 빗방울이 뿌옇게 물들었다.

택시는 20분 정도를 달려서 희영이 살고 있는 작은 원룸 아파트에 내려줬다. 이 아파트의 12층에 희영의 작은 원룸이 있다. 전세이긴 하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이다. 집 안으로 들어선 희영이 핸드백을 소파에 던지고 옷부터 벗었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오는 사이에 옷이 젖었다.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젖은 머리에 수건을 얹고 희영이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소파에 앉았다. 소파 테이블 위에는 예물 카탈로그와 예식장 카탈로그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결혼식은 한 달 뒤인 7월 20일.

지금 확정 지어 놓은 건 예식장, 그리고 오늘 드레스를 확정 지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신혼여행지도 결정하지 못했고 결혼 예물은 원래 오늘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신혼집의 가구는 지난주부터 보러 가려고 했지만 결국 다음 주로 미뤄질 것 같다. 워낙 바쁜 남자니까 어쩔 수가 없다는 걸 희영도 안다.

‘그래도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희영이 맥주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결혼…….’

남들은 왜 이렇게 빨리 결혼을 서두르냐고 하지만 희영은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이 제 인생의 완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지애. 그게 지금 희영의 이름이다.

한지애의 이름으로 대학에 갔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지애가 아니라 윤희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불안에 떨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대학에 다니며 친구도 사귀고 남들처럼 살았다. 여행도 가고 옷도 사고 근사한 카페에도 갔다. 졸업과 동시에 기숙사에서 나오며 이 작은 원룸을 얻었다.

돈은 한지애의 통장에 있던 것으로 해결했다. 한지애는 통장의 뒷면에 비밀번호까지 적어 놓았었다. 덕분에 편하게 대학 생활을 했고 이 원룸까지 얻을 수 있었다.

졸업하고 나서는 직장을 얻었다. 전공을 살려 중소기업의 사장 비서실에 취직했고 거기에 1년 넘게 다니다가 두 달 전에 결혼 때문에 그만두었다. 남편이 될 남자가 계속 일하는 건 원치 않아서다.

윤선오, 그와는 회사에서 만났다. 그는 회계사였고 일 때문에 희영이 일하던 회사에 자주 왔었다. 몇 달 정도는 얼굴만 알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해서 한 달 만에 청혼받았고 일주일가량 고민한 끝에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결혼 준비 중이다.

윤선오는 자신보다 나이가 일곱 살 많고, 한 번 결혼한 적이 있다. 전 부인과는 이혼했다고 들었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는 없고 시댁에는 어머님만 계신다. 시어머니 될 분은 며느리가 고아라는 사실을 그리 탐탁잖게 여겨 여전히 결혼을 반대하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윤선오는 집안이 좋다.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의 형은 대기업의 부장이고, 누나는 갤러리를 운영한다고 했다.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변호사다. 그리고 윤선오는 능력 있는 회계사로 평판이 좋았다. 원래는 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였지만 석 달 전에 그만두고 자기 사무실을 차렸다. 원래는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남자였는데. 요즘은 많이 바빠서 제게 소홀한 것뿐이다.

윤선오가 한눈에 반할 만큼 엄청나게 잘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조건이, 배경이 이 결혼을 결정지었다. 그녀가 앞으로 그렇게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50평대의 자기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연봉도 엄청나다. 거기에 나중에 물려받을 시댁의 재산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그녀의 시궁창 같은 인생이 달라질 거다.

물론 한지애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올라설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늘 체감했다. 그런데 윤선오와 결혼하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이혼한 것도, 재혼이라는 사실도 상관없었다. 시어머니가 될 분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이 결혼, 독하게 마음먹고 기어이 할 생각이니까. 기회는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다.

희영에게는 지금까지 두 번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첫 번째 기회는 이종우의 돈이었고, 두 번째 기회는 한지애의 신분증이었다.

그리고 이건 세 번째 기회다. 두 번의 기회를 잡았었고 이 기회도 당연히 잡을 거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선오 씨에게 전화하자. 저녁 같이 먹자고.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놓는다고 할까…….’

희영이 맥주 캔을 내려놓고 소파에 누웠다. 선오는 도시락을 싸 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지금 요리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희영은 사무실에 가면 직원들이 자신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았다. [사모님]이라고 불리면 꼭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피곤해…….’

희영이 눈을 감았다. 오늘 입어 본 드레스는 무척이나 예뻤다. 그런 드레스를 입는 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일이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 *

[천천히 빨아. 너무 빨리 빨면 금방 싸 버리니까.]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린 채로 커다란 성기를 물고 쭉쭉 빠는 사이에 입 안에 시큼한 맛이 가득 찬다. 조금 전까지 제 구멍에 박혀 있던 살덩이를 빨고 있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차라리 빨리 싸 버리면 좋겠는데 이 남자는 좀처럼 쌀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턱이 아파 왔다.

[힘들어? 도와줄까?]

그 말과 함께 남자의 손이 제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읍!]

제 머리채를 잡고 우악스럽게 좆을 처박기 시작하자 눈앞이 흔들린다. 귀두가 목구멍 끝에 닿을 때마다 생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빨 세우지 말고, 혀 굴려 가면서 빨아야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목소리가 웃고 있다.

[그런데 윤희영.]

그때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 순간 희영이 눈을 번쩍 떴다.

“꾸, 꿈…….”

가쁜 숨을 헐떡이며 희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는 제 작은 원룸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다 마신 맥주 캔이 놓여 있다. 잠깐 잠든 사이에 꿈을 꾼 것이다.

‘꿈이었어…….’

그 남자의 꿈을 꾸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처음 도망쳤을 때는 거의 매일 그 남자의 꿈을 꿨었지만 마지막으로 그런 꿈을 꾼 것은 아마 일 년 정도 지났을 거다.

‘몸이 안 좋은가? 그래서 그런 꿈을 꿨나…….’

소파에서 일어난 희영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와 있다.

‘선오 씨네.’

[저녁에 같이 밥 먹자. 당신 좋아하는 세일렌에서 만나. 저녁 7시.]

문자를 확인한 희영이 살짝 웃었다. 세일렌은 선오와 첫 데이트를 한 곳이다.

‘뭘 입고 나가지?’

조금 전의 악몽은 잊고 희영이 방으로 들어갔다. 땀으로 흠뻑 젖었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다.

지금이 5시니 7시까지 가려면 서둘러 준비를 해야만 했다.

* * *

희영은 세일렌에 6시 30분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이 7시니 조금 일찍 도착한 것이다.

‘너무 일찍 왔나?’

선오는 보통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오는 성격이다.

‘예약을 했을 테니까 들어가서 기다리자.’

택시에서 내려 우산을 막 펼치려고 할 때 희영의 머리 위로 누가 우산을 내밀었다.

‘선오 씨? 벌써 왔나?’

당연히 저를 기다리던 선오가 우산을 씌워준 것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들던 희영의 눈동자가 상대방을 확인한 순간 얼어붙었다.

툭.

희영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마, 말도 안 돼……어떻게…….’

너무 놀란 나머지 핏기가 사라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덜덜 떨리며 이가 딱딱 부딪친다.

“오랜만이다, 그렇지?”

우산을 씌워준 남자가 피식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입술에 흉터가 있는 남자. 단추를 끝까지 채운 흰 셔츠의 위로 드러난 문신.

그 남자였다. 이종우.

“어, 어, 어떻게…….”

“그러게 말이야. 세상에 이런 우연도 다 있네? 여기서 마주치다니.”

우연?

그럴 리가 없다.

‘날 어떻게 찾아낸 거지? 난 죽은 걸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누구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봐?

“사,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제대로 본 것 같은데, 한지애 씨.”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이름을 어떻게…….’

“내가 어떤 년을 알고 있는데 그년이 내 돈을 가지고 도망쳤거든? 그런데 그년이 몇 년 전에 고시원 화재로 죽었다지 뭐야. 참 재수도 없는 년이지. 내 돈 가지고 튀었으면 잘살 것이지 불에 타죽기나 하고.”

‘전부 알고 있어. 이제 어떡하지?’

“그런데 말이야.”

우산을 손에 든 남자가 허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희영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년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죽어서도 나한테서 도망치지 못한다는 걸 그년은 몰랐을 거야. 난 한 번 찍은 년은 죽었다고 놔주고 그런 놈이 아니거든.”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희영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금방이라도 다리에서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다.

“들어갈 거지?”

남자가 레스토랑의 입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걸음을 옮겼다. 희영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남자와 함께 걸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여기 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입 안이 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 갔다.

‘어떡하지? 도망칠까? 하지만 어디로? 이미 한지애라는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내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을지 몰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남자와 함께 우산을 쓰고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선 희영의 얼굴은 창백했다.

“결혼한다며?”

역시, 이 남자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걸까? 다 알고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안간힘을 다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이대로 무너져 내리는 걸까. 도망친다고 도망쳐왔는데, 결국 도망치지 못했다.

결국 도망칠 수 없었던 걸까. 이 남자는 벗어날 수 없는 늪인 걸까.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 있는 걸까.’

“머리 굴리지 마라. 머릿속에 짱돌 굴리는 거 다 보인다.”

제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의 말에 희영이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때 내가 무슨 기분이었을 것 같냐?”

“그, 그건…….”

“돌아왔더니 애가 없네? 내 돈을 들고 튀었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겠지? 처음에는 그저 웃기더라고. 처음에는 웃기고 그다음에는 좀 화가 나고, 또 시간이 지나니까 짜증이 나더라. 그까짓 돈, 그냥 다 써 버린 걸로 쳐도 되는데. 난 누가 내 뒤통수치는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라.”

“죄, 죄송해요. 그때는 그 돈밖에 보이지 않아서…….”

“돈 가지고 도망친 년이 고시원에는 왜 들어갔냐? 돈은 어디다 쓰고?”

“사, 사기를 당해서…….”

그때 남자가 웃었다.

“그러게 사람이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아. 내 뒤통수 치더니 너도 뒤통수 맞았냐?”

남자는 입구에 서서 실내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희영도 그 옆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묶인 것도 아닌데 꽁꽁 묶인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좀 있으면 7시인데…… 선오 씨가 이 사람을 보기라도 하면…….’

이 결혼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결혼만큼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죽일까? 죽일 수 있을까?’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국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뿐일지도 모른다. 이 남자가 죽으면, 이 남자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두려움의 근원, 악몽의 근본인 이 남자만 사라지면 자신의 발목을 잡는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하지만 어떻게 죽이지?’

사람을 죽인다는 무서운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자신이 소름 끼친다. 하지만 더는 그 시궁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앞이 보이지 않던 매일, 눅눅한 습기, 찌들어 있는 냄새, 사방에서 들려오던 쌍욕과 저질스런 대화들, 방문을 꽁꽁 닫아걸고 잠을 청해야만 했던 그때로 되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

“전화할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도 받아.”

“네?”

“전화, 받으라고. 안 받으면 화날 거야.”

자신의 전화번호도 알고 있는 걸까.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때였다. 레스토랑 앞에 멈춘 차에서 내린 남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희영이 발견했다.

윤선오다. 정확히 7시 5분 전에 도착한 것이다.

‘어, 어쩌지?’

이 남자와 같이 서 있는 자신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 들키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둘러대야 하지?’

그때 선오의 얼굴이 확 펴지더니 다가오는 걸음이 빨라졌다.

“이 대표님. 여긴 어떻게…….”

선오가 먼저 아는 척을 한 건 자신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남자였다.

“여기서 뵙네요. 윤 대표님.”

이종우가 선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선오의 표정은 약간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이쪽은 저와 결혼할 사람입니다.”

선오가 희영을 이종우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이종우의 눈이 웃는다.

“미인이네요.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나도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만…….”

이종우가 순순히 물러나자 희영은 그게 더 두려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종우가 먼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선오가 그제야 긴장을 풀며 숨을 내쉬었다.

“누구예요?”

희영이 모르는 척 물었다. 저 남자와 선오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걸까.

“우리 사무실 고객.”

“고객이요?”

“그것도 큰 손. 전에 있던 회사에서 내가 담당이었는데 독립하면 내 고객이 되어 준다고 해서 독립한 거야. 저 고객 없으면 난 망해.”

기가 막힌다.

이건 전부 다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남자는 의도적으로 윤선오에게 접근하고 또 윤선오의 목줄을 쥐고 있다. 그게 전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자의식 과잉일까? 하지만 저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는 사람인데요?”

“사업하는 사람이지. 큰돈을 굴리니까 나 같은 회계사가 필요한 거고.”

“무슨 사업이요?”

“당신, 관심 많네? 내가 하는 일에 별로 관심 없었잖아.”

“그, 그냥이요. 중요한 고객이라고 하니까…….”

“큰돈 굴리는 사업가인데,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더 조심스러워.”

“꼭 저런 사람하고 일을 해야 해요?”

“이 대표가 우리 사무실에서 일을 빼가면 나 망해.”

이건 덫이다.

그 남자가 윤선오를 통해서 제게 덫을 놓은 거다. 덫인 동시에 경고인 거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경고.

* * *

“맛있어?”

“네…….”

하지만 희영은 지금 뭘 씹고 있는 건지 맛을 알 수가 없다.

“반지는 내일 볼까?”

“내일이요?”

“그래. 결혼식에 맞춰서 반지가 나오려면 내일은 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시간이 괜찮겠어요?”

“오늘 일이 잘 해결됐어. 내일은 시간 낼 수 있어.”

“네. 그래요.”

지금 레스토랑 안에 그 남자는 없다. 분명 안으로 들어오는 걸 봤는데 어딜 간 걸까. 먼저 간 걸까? 머릿속이 온통 그 남자 생각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악몽이 이런 식으로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때 핸드백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야?”

꺼내 보니 문자가 와 있다.

“오늘 낮에 갔던 드레스숍이네요. 가봉 날짜 알려왔어요.”

희영이 대충 둘러댔짐나 문자는 드레스숍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희영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화장실로 와.]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짧은 문자. 그러나 그 문자를 보낸 것이 누군지 알고 있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왜? 속이 안 좋아?”

“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미안해요.”

“아니야, 다녀와. 체했나?”

아무것도 모르는 선오를 두고 희영이 서둘러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이러다가 가슴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왜 날 부르는 거지? 이러다가 선오 씨가 알아차리면…….’

별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스친다.

‘칼을 가지고 나올 걸…….’

조금 전에 고기를 썰던 칼이라도 가지고 나왔다면 그 칼로 찔러 버리면 될 텐데.

‘내가 무슨 생각을…….’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자신이 어떻게 된 거다. 그런데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려는 그 남자를 죽여 버리고 싶다.

화장실 문 앞에는 [수리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수리 중이 아니라는 걸 희영도 안다. 화장실 바로 앞에 양복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 문을 열어 줬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 희영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멈춰 섰다.

“입맛 없어 보이더라?”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씻더니 종이 타월을 뽑아 손을 닦고 구긴 타월을 휙 던졌다. 그리고 희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자석에 끌리듯 희영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긴, 그런 고기보다는 좆 빠는 걸 더 좋아하지?”

희영의 얼굴이 화락 달아오른다.

“희영아.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니까 선택지를 줄게.”

빈정거리듯 웃는 남자의 눈동자가 사나운 뱀처럼 번뜩거린다.

“그 새끼 보는 앞에서 박아 줄까 아니면 네가 알아서 빤스 내릴래?”

“이, 이러지 말아요. 돈이라면 갚을게요.”

“돈?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나 돈 많아. 윤선오가 말 안 해 줬나? 내가 돈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거.”

“나한테 이러지 말아요, 제발. 제발요.”

“너 그때 나한테 그랬었지? 돈 달라고. 네 몸 사 달라고. 몸 대주는 대신에 돈 달라고. 그거 아직 안 끝났어.”

희영이 입술을 꽉 물었다.

“네가 그때 가지고 튄 돈이 전부 1억 6천이야. 한 번에 백만 원씩으로 쳐 주기로 했었지? 계산해보자. 백만 원씩 1억 6천이면 몇 번 대 줘야 하는 거냐?”

“도, 돈은 제가 꼭 갚을 테니까…….”

“160번이네?”

“아, 아저씨…….”

“뭐해? 160번 채우려면 빨리 시작해야지. 들어가서 빤스 내려.”

이종우가 가리킨 곳은 열려 있는 칸막이 안이다.

“확인해 봐야지. 아직도 보지 빨아 주면 씹물 줄줄 싸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덜덜 떨며 망설였다.

“아니면 밖에서 너 기다리고 있는 새끼 불러다가 그 새끼 보는 앞에서 네 보지에 쑤셔 줘? 난 조용히 처리하려는 거야. 네 결혼 방해할 생각도 없고. 그래, 결혼해. 결혼해서 잘살아. 하지만 빚은 갚으라는 거야. 내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거야? 이자는 받지도 않겠다는데. 1억 6천의 이자가 얼만지 알아? 왜? 이자까지 다 받아 볼까?”

“아, 아니요…….”

어쩔 수 없다. 이 남자의 말대로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런데요, 저, 정말 결혼은 하게 해 주는 거죠?”

“해. 결혼.”

지금은 이 남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칸막이 안으로 들어선 희영이 치마를 걷고 팬티를 내렸다. 팬티를 내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빠, 빨리 끝내 주세요. 늦게 돌아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내가 그 새끼 걱정까지 해 줘야 해? 둘러대는 건 네 몫이야.”

희영의 손에서 남자가 팬티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팬티를 얼굴에 가져가더니 냄새를 맡는다.

“냄새는 그대로네?”

희영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잘 볼 수 있게 보지 벌려.”

덮개를 덮은 변기에 앉은 희영이 다리를 벌리고 양손으로 제 구멍을 벌렸다. 무서워서 그런 건지 긴장해서 그런 건지 벌린 보지가 눅눅하게 젖었다. 그런 희영의 가랑이 사이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던 남자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찌익.

바지의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천둥 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열린 지퍼 안에서 남자가 뻣뻣한 페니스를 쥐고 꺼냈다. 검붉은 귀두를 본 순간 희영이 움찔거렸다.

“왜? 보니까 옛날 생각나?”

남자가 이죽거리며 희영에게 다가왔다.

“단추 풀어.”

명령에 가까운 강압적인 목소리에 희영이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단추를 전부 다 풀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희영의 벌어진 블라우스 안으로 밀고 들어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소리 내면 다 들려. 알지? 여기 벽 얇은 거.”

희영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브래지어가 내려가며 불룩 튀어나온 젖가슴을 꽉 움겨쥔 남자의 손이 천천히 잡은 살덩이를 주물러댄다.

“꼭지가 섰네? 하긴, 너도 어지간히 밝히는 년이었지. 돈 때문에 몸 대준다고 하면서 떡 칠 때마다 씹물 줄줄 싸면서 더 박아 달라고 난리를 쳤었지. 기억나?”

“기, 기억 안 나요.”

“기억 안 나면 확실하게 기억나게 해 줄게.”

희영이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지금도 그때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 남자가 어떤 식으로 제 몸을 만지고 제가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도 전부 기억을 하고 있다.

“읏.”

희영이 짧게 신음했다.

“만져 주니까 좋냐?”

남자가 빈정거린다. 빈정거리며 웃고 있지만 화가 잔뜩 났다는 것 역시 희영도 느끼고 있다. 전에 이 남자는 제게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정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여전히 입이 험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목소리에서 풍기는 뉘앙스에 저를 향한 화가 묻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너 지금 너무 좋아한다?”

젖통을 주무르던 손으로 젖꼭지를 비틀며 남자가 낄낄 웃는다.

웃음마저도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아니면 원래 이런 남자였을까? 그때는 본성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비열하고 섬뜩하고 사나운 남자.

“말해 봐. 보지가 근질근질하지?”

젖통을 주무르던 손을 아래로 내린 남자가 희영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손을 밀어 넣는다. 손가락이 제 소음순을 벌리자 희영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응, 응, 응.”

덮개를 덮은 변기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희영이 허리를 움찔거렸다.

찔꺽찔꺽, 찔꺽찔꺽. 손가락이 구멍 안을 쑤시고 들어가 안을 긁기 시작하자 가랑이 사이에서 젖은 소리가 새기 시작했다. 물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 아래가 축축하다.

“응, 흐응.”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술을 꽉 물어도 소리가 새는 걸 멈출 수가 없다. 허리를 숙인 남자는 느긋하게 희영의 구멍을 쑤셔댔다. 허리가 저절로 흔들리며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젖가슴이 함께 출렁거렸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윤선오와는 아직 섹스까지는 가지 않았다. 고작해야 키스와 약간의 스킨십이 전부다. 그렇다고 해서 저 남자가 금욕적인 스타일인 건 아니지만 몇 번의 데이트 이후에 퇴사하며 사무실을 새로 시작하느라 너무 바빴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이 남자에게서 도망친 이후에 섹스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위는 한 적이 있다. 가끔은 아래가 근질거려 제 손으로 자위를 한 적이 있다. 자위도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걸 돈 주고 사지는 않았다. 자위라고 해 봤자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손가락의 절반을 넣고 쑤시며 제 젖가슴을 주무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것이 진짜 섹스와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깊이 손가락이 박히는 건 몇 년 만이다. 몇 년 만인데도 몸이 그때의 쾌감을 금방 기억해냈다. 굵은 손가락이 들어올 때마다 벌어지는 질구가 눅진눅진 녹아내린다.

“가랑이 더 벌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희영이 잔뜩 벌린 다리를 더 벌렸다.

“오줌 싸냐? 왜 이렇게 질질 흘려?”

남자는 아예 희영에게 수치를 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이러는 것 자체가 이미 수치스러운 일이다.

“응, 하응. 응.”

손가락이 깊이 박히자 희영이 등줄기를 관통하는 저릿한 쾌감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남자의 엄지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문질러댔다.

이건 참을 수 없는 자극이다.

“응, 흐으응, 응, 으응…….”

희영이 고개를 숙인 채로 간드러진 교성만 내뱉는다. 이미 얼굴과 귀, 목은 시뻘겋게 물들었다. 출렁이는 젖꼭지가 아플 정도로 꼿꼿해졌다. 게다가 자꾸만 문질러지는 클리토리스에서 번진 쾌감이 배꼽 아래를 자극해서 금방이라도 쌀 것처럼 요의가 지독하게 밀려 올라왔다. 손가락이 깊숙하게 찔러 들어올 때마다 질구가 벌어지며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는다.

“하읏!”

구멍에 박혀 있던 손가락이 쑥 뽑히며 남자의 손이 희영을 잡아당겼다. 그 손에 이끌려 변기에서 벌떡 일어선 것도 잠시 희영이 이내 남자의 무릎 위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희영이 앉아 있던 변기 위에 앉은 남자가 그녀를 무릎 위에 앉힌 것이다.

양쪽으로 벌린 다리를 걸치고 희영이 숨을 헐떡였다. 이종우의 손가락은 다시 희영의 구멍을 푹푹 쑤셨다.

“슬슬 박아 줄까?”

젖은 손이 희영의 엉덩이를 쫙 벌린다. 그리고 잔뜩 젖은 아랫구멍으로 묵직한 자지가 슬슬 귀두를 들이민다.

“하으응!”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막지 못한 소리가 터졌다.

“쉿. 조용해야지, 윤희영.”

오랜만에 불리는 제 진짜 이름,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느끼는 이 남자의 좆.

한 번에 백만 원씩 받으며 밤마다 그 좁고 눅눅한 방에서 수도 없이 받아들였던 그 좆이 지금 제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고 있다.

“하으응! 아, 아응!”

굵은 것이 꾸역꾸역 제 질 안으로 밀고 올라오자 희영이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배 속 가득 들어찬 것이 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응! 아! 아! 아으응!”

성난 살덩이가 쑤걱거리며 안을 쑤실 때마다 희영의 허리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씨발년아. 좋냐?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도망치더니 처박아주는 건 좋냐?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넌 내 좆 없으면 안 된다고.”

희영이 벌게진 얼굴로 정신없이 숨을 헐떡였다. 남자의 손은 희영의 클리토리스와 젖꼭지를 거침없이 애무했다.

“하응! 응! 아, 아흥! 아앙!”

발정 난 암컷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희영이 울어댔다.

화장이 번지는 것도 몰랐다. 아래에서 남자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철벅철벅 젖은 소리가 난잡하게 칸막이와 화장실 안을 울렸다.

열린 칸막이의 문 너머 커다란 화장실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친다. 단추를 전부 풀어 헤친 블라우스는 어깨에서 흘러내리기 직전이고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린 채 가랑이를 벌리고 시뻘게진 얼굴로 난잡한 소리를 지르는 거울 속의 제 모습에 희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도망쳐 봐. 얼마든지 도망쳐. 내가 잡을 수 있나 없나 보여 줄 테니까.”

섬뜩하게 속삭이며 남자가 그녀의 귓불을 씹었다.

“하윽!”

허리를 젖히며 희영이 전신을 떨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배 속에 흩뿌려지는 쾌감에 정수리가 오싹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 구멍이 가늘고 긴 물줄기를 뿜어내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 * *

“괜찮아?”

꽤 오래 화장실에 있다 돌아온 희영을 쳐다보며 선오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젠 좀 괜찮아졌어요.”

“체했어?”

“그런가 봐요.”

“그러면 밥 먹을 수 있나?”

“미안해요.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내가 괜히 불러냈네.”

“아니에요. 내가 미안하죠.”

희영은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최대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정돈하고 번진 화장도 다시 했다. 블라우스가 구겨진 곳은 없나 확인했지만 지금 치마 속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뚱이다. 그 남자가 제 팬티를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노팬티다. 팬티도 입지 않았는데 자꾸만 허벅지로 젖은 것이 새고 있다. 몸 안에 고여 있던 그 남자의 정액이 조금씩 계속 새는 것이다.

“일어날까?”

“네…….”

일어서는 선오를 따라 일어난 희영이 불편한 걸음걸이로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그리고 선오의 차를 타고 원룸으로 돌아올 때까지 희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창백하고 불편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선오를 돌려보내고 곧장 집으로 올라온 희영은 욕실에 들어가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 서서야 비로소 온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물줄기와 함께 흘러내리는 허벅지 안쪽의 정사의 흔적을 보며 희영은 다시 한번 그 남자가 자신을 찾아냈다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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