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카지노 볼트카지노 업카지노 골든 쿵푸벳 아크 텐카지노 보스 네임드 라바카지노 히어로 소닉카지노 판도라 나루토카지노

3화

본문

쿵푸벳

# 3.

“아흣! 아, 앗, 응! 하응!”

눅눅한 요 위에 엎드린 희영이 얇은 요를 꽉 쥐고 숨을 헐떡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달라붙어 엉망진창이었다. 엉덩이를 치켜든 채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눅눅한 요에 붙이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이미 남자의 좆물로 범벅이 된 구멍에 아직도 팽팽한 자지가 쉬지 않고 푹, 푹, 찔러 들어오고 있다. 사나운 자지가 저를 푹 찌를 때마다 벌어지는 제 구멍은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욕정받이에 불과하다.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며 희영은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자신은 여기서 몸 파는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믿어 왔었다. 언젠가는 여기서 도망칠 것이고, 자신은 만 원짜리 한 장을 위해 몸을 파는 저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 여자들과 제가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돈 때문에 다리를 벌리는 것도 똑같고, 무엇보다 제 몸뚱이가 이 남자의 자지 앞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무너지고 만다.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 남자를 보고 있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고 팬티 안의 보지가 근질거린다. 귀두가 제 허벅지를 슬슬 문지르면 그때부터는 벌름거리는 구멍이 알아서 젖어 들었다.

“하루 종일 씹질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

희영의 허리를 잡고 자지를 처박던 남자가 허리를 구부리며 귓가에 속삭여온다.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앙! 흐아앙!”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뭐라고 항변하려고 하던 희영이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교성을 질렀다.

“하응! 아! 아!”

뒤에서 퍽, 퍽, 쑤셔 박을 때마다 희영의 앞으로 흔들리며 출렁이는 젖꼭지가 요에 쓸린다. 더운 숨이 희영의 어깨와 목 뒤를 덮었다. 지독한 담배 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자지 맛을 보니 환장을 하지?”

이 남자의 말이 맞다. 지금 자신은 환장을 하고 있는 거다.

“너 이러고 아무 데서나 다리 벌리지 마라.”

“응, 하응!”

남자가 뭐라고 하든 희영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아니다.

“네 보지는 내 거니까 내가 질려서 버릴 때까지는 나만 쓸 거야. 딴 새끼 좆을 박으면 그 새끼 좆을 잘라서 네 목에 걸어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알아들었어?”

희영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난 딴 놈하고 구멍 동서하는 취미 없으니까 내가 쓸 동안에는 딴 놈은 보지 구경도 못 하게 해라. 네 보지 본 놈들 눈알을 다 뽑아 버릴 수도 있으니까.”

다른 남자와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자신은 여기저기 몸을 파는 그런 창녀가 아니다.

그래. 창녀가 아니다.

곧 죽어도 자신은 창녀가 아니라는 생각 하나만이 지금 희영을 버티게 해 주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자기가 창녀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때였다.

띠리리-. 띠리리-.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남자가 거친 움직임을 멈췄다.

“어떤 새끼가 전화질이야?”

짜증을 내며 남자가 몸을 뒤로 빼자 희영의 몸이 철퍽 쓰러졌다. 구멍을 막고 있던 성기가 뽑히자 마개가 뽑힌 병에서 물이 흐르듯이 희영의 다리 사이로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새끼 찾았다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받은 남자의 목소리가 험악해졌다.

“잘 잡고 있어. 지금 갈 테니까.”

전화를 끊은 남자가 희영을 힐끗 쳐다봤다.

“옷 입고 밥이나 먹고 있어. 나갔다 올 테니까.”

“갑자기 어디 가세요?”

아니. 이러다 말고 어딜 간다고? 당황한 희영이 엉거주춤 일어나 앉았다.

“급한 일이 생겼어. 두어 시간 걸리니까 그때까지 밥 먹고 있어. 밤새 떡 치려면 밥 많이 먹어 둬야 할 거다, 꼬맹아.”

옷을 입은 남자가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희영의 앞에 슬쩍 앉고는 희영의 뺨을 툭툭 만진다.

“너,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했지?”

“네?”

“여기 지긋지긋하다고 했었지.”

“네…….”

“벗어나게 해 줄까?”

“네? 어, 어떻게요?”

“돈 받고 이러는 거 그만하고, 그냥 나하고 살림 차리자.”

“네?”

뜻밖의 말에 희영의 눈이 커졌다. 살림을 차리자고? 그 말은 이 남자의 여자가 되라는 뜻이다.

“나 조만간 여기 뜰 건데, 그때 나하고 같이 가자. 어때? 괜찮지 않아?”

“새, 생각을 좀 해 볼게요.”

“생각은 무슨. 지금 당장 나가는 사무실 그만둔다고 말해. 슬슬 정리하고 뜨자.”

“그걸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갔다 온다.”

희영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남자는 밖으로 나갔다.

‘뭐야. 제멋대로…….’

희영이 구석으로 기어가 대야에 떠 놓은 물에 수건을 적신 후 가랑이를 닦았다. 밖에 나가서 제대로 씻고 싶지만 그러려면 [이모]들의 온갖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희영은 그게 싫었다.

이 방의 남자와 자기 시작하면서 저를 쳐다보는 이모들의 눈빛이 달라진 건 이미 알고 있다. 이모들은 이종우라는 이름의 이 남자에게 항상 추파를 던졌지만 그래도 이 남자가 넘어가지 않자 고자니 뭐니 자기들끼리 떠들었는데, 매일같이 저녁마다 이 남자와 제가 섹스하는 소리가 들리니 이모들의 심기가 불편한 거다. 그래서 제가 뭐만 하면 그 불편하고 꼬인 심기를 담아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느니, 고상한 척하더니 결국에는 똑같은 년이라느니, 다른 손님 소개해 준다느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퍼부어 대서 희영은 이제 이모들이 볼 때 방에서 나가는 게 불편하다.

지금은 찝찝해도 대충 이렇게 닦고 나중에 새벽에 모두가 잠들고 조용해지면 그때 씻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무슨 연락이기에 하다 말고 나가?’

확실히 그 남자는 뭔가 숨기는 게 있다.

‘내 알 바 아니지만. 그건 그렇고 살림이라니…….’

그 남자가 설마 제게 같이 살자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름만 알 뿐, 뭐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

이 시궁창을 벗어나는 것이 소원인데 잘못하다가는 이보다 더한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싫다고 하자. 난 돈만 받아서 여기서 떠나면 돼. 괜히 그런 사람과 살다가 더 심한 일을 겪게 되는 건 싫어.’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도 희영은 남자가 제게 한 말을 떨칠 수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데도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남자의 도움을 받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그때 저 남자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술 취한 손님에게 당해 버렸을 거다.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던 그때 그 남자만 자신을 도와줬다.

섹스도 나쁘지 않고 돈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입은 험하지만 제게 잘해 주는 남자다. 굳이 깊이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저런 남자와 살림을 차리는 것이 여기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을 안다. 하지만 원래 달콤해 보이는 것에 함정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숨어 사는 남자라. 자신도 함께 숨어 살아야 한다면, 그 삶과 지금의 삶이 다른 것이 뭐가 있는가.

옷을 다 입고 밖으로 나가려던 희영이 구석에 놓인 가방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가방이 보란 듯이 구석에 놓여 있다.

희영은 그동안 매일 이 방에 왔다. 퇴근하면 곧장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섹스를 시작하면 한밤중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을 한다. 그래서 이 방에 뭐가 있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가방은 어제까지는 못 보던 가방이다.

‘저게 뭐지?’

희영이 구석으로 가서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돈이다……!’

가방의 지퍼를 연 희영이 깜짝 놀랐다.

가방 안에는 돈이 가득했다.

만 원짜리 지폐뭉치들이 꽉꽉 채워진 가방 안을 본 희영이 얼른 뒤돌아봤다.

‘그 사람이 돌아오려면 두 시간은 남았으니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이 정도의 돈이라면 얼마나 될까. 돈 앞에서 눈이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가방에 손을 넣어 지폐 한 뭉치를 꺼내 든 희영의 손이 덜덜 떨린다. 누가 뒤에서 [도둑년!]이라고 소리칠까 봐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이 돈만 있으면…….’

그 남자와 한 번씩 자고 받는 백만 원으로 이만한 돈을 모으려면 몇 번이나 자야 하는 걸까. 자신이 받는 월급으로 이만한 돈을 모으려면 얼마나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이건 감히 자신이 모을 수도 없는 돈이다.

‘이 돈만 있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희영이 얼른 돈을 다시 집어넣고 가방의 지퍼를 닫고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밤의 여인숙은 언제나 시끄럽고 난잡하다.

“희영아. 그게 뭐니?”

아직 손님을 받지 않은 건너편 방 이모가 저를 아는 척하자 희영이 얼른 대답했다.

“빨래요. 아저씨가 빨래가 많다고 좀 빨아 달라고 해서요.”

“무슨 빨래가 가방 하나니? 그건 그렇고, 희영아. 그놈 좆은 쓸만하니?”

“모, 몰라요.”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온 희영이 물건을 챙기려다 말고 멈췄다.

‘전부 버리고 가자.’

이 방에서 가져갈 건 없다. 전부 다 쓰레기뿐이었다. 이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면 여기 있는 건 다 버리고 가야 한다. 희영이 엄마의 수첩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놓았다. 이것도 버리고 갈 생각이다. 엄마의 흔적을 가지고 가지는 않을 거다.

신분증과 지갑, 그리고 통장만 챙긴 희영이 다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시끄러운 여인숙의 녹슨 초록색 철문을 열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을 벗어났다.

남자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였다.

* * *

달칵.

힘없이 방문을 열고 좁은 방으로 들어간 희영이 지친 몸으로 맨바닥에 누웠다. 2평 남짓한 좁은 이 방은 그나마 희영이 몸을 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힘들어…….’

차가운 공기에 희영이 몸을 웅크렸다. 이 좁은 방은 여름에는 죽고 싶을 만큼 덥고 겨울에는 이보다 더 추운 곳이 없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춥다.

희영이 사는 이 고시원은 그나마 이 근방에서 가장 방세가 싸다. 보증금이 없고 한 달에 15만 원만 내면 밥과 김치는 무제한 제공된다. 이런 곳은 아마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공동 샤워실과 화장실만 참아내면 된다. 사실 그런 건 희영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에 살던 여인숙도 이와 비슷했었기 때문이다.

‘배고파…….’

쓰러진 것처럼 누워있던 희영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뭐라도 먹어야만 한다. 돌아올 때 사 가지고 온 컵라면 하나를 가방에서 꺼낸 희영이 방에서 나가 공동 부엌으로 갔다. 공동 부엌에는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그리고 물을 끓일 수 있는 전기포트와 밥솥,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건 달랑 김치 하나지만 김치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희영이 작은 공기에 밥을 넉넉히 펐다. 그때 뒤에서 누가 들어왔다.

“라면 먹어요?”

옆방에 살고 있는 여자다. 나이는 희영의 또래고 이름은 한지애. 입시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작년에 대학에 떨어지고 고시원에 들어와서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이 여자는 가족이 없다는 점에서 희영 자신과 닮았다.

“이거 먹을래요?”

지애가 희영에게 내민 것은 참치 캔이다.

“두 개 샀어요.”

“…….”

희영이 제 앞으로 내민 참치 캔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쉽게 받지 못했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이걸 받는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줄 만한 것이 없었다.

“한 턱 쏘는 거예요.”

지애가 활짝 웃었다.

“네?”

“나 오늘 합격했거든요. 대학.”

“아……추, 축하해요.”

희영이 얼떨떨하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지애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꼭 가고 싶었던 대학인데 붙었어요. 그리고 기숙사에 들어갈 거라서, 그러면 여기도 이젠 안녕이네요.”

“잘 됐어요.”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도 나온대요. 장학금도 나오고 기숙사도 공짜고, 정말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거 같아요.”

지애의 말을 들으며 희영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 가고 싶었다. 사실 서울로 올 때는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멍청했다. 부동산 중개인을 덜컥 믿어 버린 것이 어리석었고 집주인이라는 사람을 믿어 버린 것이 가장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집이라는 걸 계약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정식으로 사무실을 차려놓은 부동산 중개인은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좋은 집이 싸게 나왔다]며 부동산 중개인은 희영에게 빌라 하나를 소개했었고 그 빌라는 희영이 보기에는 완벽할 정도로 좋았다.

지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넓었고 깨끗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돈으로 덜컥 계약을 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돈은 모두 1억 6천만 원이었고 빌라는 딱 1억 6천만 원이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주고 그 빌라를 계약했다.

곧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희영은 [근저당]이라는 것이 뭔지 몰랐다. 집주인이 그 빌라를 저당 잡혀서 몇억에 가까운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도 몰랐고 자신이 계약한 그 빌라의 우선 소유권이 은행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돈을 전부 날렸다. 부동산 중개인은 자기도 몰랐다며 발뺌을 했고 집주인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찾아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찰은 무서웠다.

가진 돈을 다 날리고 한 달 정도를 찜질방을 전전한 끝에 찾은 곳이 이 고시원이다. 이 고시원에서 먹고 자면서 낮에는 청소 일을 다닌다.

그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려고 그 남자의 돈까지 훔쳐서 도망쳤는데 결국은 다시 이런 곳이다.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라면 먹지 말고, 우리 나가서 짜장면이라도 먹을래요? 제가 살게요.”

지애의 말에 희영이 당황했다.

“괜찮아요. 물도 끓고 있고…….”

“그러지 말고 나가서 먹어요. 오늘 같은 날은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혼자 가서 먹는 건 좀 그렇잖아요. 같이 먹어요.”

“그러면 제건 제가 낼게요.”

“제가 살게요. 오늘 한 턱 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도 없고…… 제가 사게 해 줄 거죠?”

지애의 웃는 얼굴이 눈부시다.

자신은 이렇게 웃어 본 적이 없다.

* * *

[작년에 집에 불이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시험 앞두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시험도 망치고, 그런데 엄마 아빠는 내가 대학에 가기를 바랐을 거예요. 독한 마음 먹고 고시원 들어와서 공부만 했어요.]

희영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지애가 한 말이 귀에 맴돌았다.

[친척도 없고, 이제 나 혼자 남았으니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해요. 처음에는 막막하기도 했지만 대학도 붙었으니까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러웠다. 대학. 자신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다. 벗어나려고 해도 운명이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모든 일이 엉망진창일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사망보험금도 조금 있고, 대학만 졸업하면 바로 취직할 거니까요. 언니는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지애는 희영을 [언니]라고 불렀다. 사실 언니도 아닌 동갑인데 제가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걸까.

[그런데 언니. 우리 둘이 비슷하게 닮았나 봐요. 사람들이 자꾸 언니하고 날 착각해요. 오늘만 해도 203호 아줌마가 날 언니로 착각하더라고요.]

닮았을 리가 없다. 지애는 그렇게 환하게 웃는데 자신은 그렇게 웃지 못한다. 자신의 얼굴에는 그늘만 가득한데 무엇이 닮았겠는가.

‘나도 대학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갈 수 있을까…….’

1월의 겨울은 춥다.

난방이 되지 않는 고시원은 더 춥다. 이 고시원은 싼 대신에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희영처럼 두꺼운 솜이불을 둘둘 감고 추위를 이기거나 아니면 전기장판이나 전열기를 따로 방에 들여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희영도 전기장판을 하나 사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겨울은 잠깐이면 지나가니까 참고 버티면 된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더 춥게 느껴졌다.

‘안 되겠다. 뜨거운 물을 담아서 오자.’

아주 추울 때는 뜨거운 물을 페트병에 담아 꼭 끌어안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방에서 나온 희영이 공동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전기포트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뭔가 타는 냄새다.

‘뭐가 타고 있는데…….’

희영이 부엌에서 나가 살펴봤지만 복도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냄새가 계속 심해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잠들었는지 고시원의 복도는 조용했다. 그때 희영이 복도 끝의 계단에서 스며들어오는 흰 연기를 발견했다.

‘연기가…….’

그리고 연기와 함께 탄 냄새가 순식간에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 희영은 불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불이야! 불이야!”

희영이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갔다. 어느 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불이 난 거다.

“불났어요! 불이 났다구요!”

방으로 뛰어가며 지나는 방마다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친 희영이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가 가방부터 끌어안았다. 이 작은 가방 안에는 희영의 전 재산이 들어있다.

다시 복도로 나왔을 때는 이미 자다 깬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도망치려던 희영이 옆방을 쳐다봤다. 옆방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도망쳤겠지?’

혹시 몰라 옆방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안에 있어요?!”

복도의 방들은 다들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다 문이 열려있는데 이 방만 문이 닫혀 있다.

“안에 있어요?! 불났어요!”

소리를 지르던 희영이 방문을 걷어찼다. 고시원의 방문은 낡고 허술해 몇 번 걷어차자 방문의 걸쇠가 부서지며 문이 열렸다.

좁은 방 안에는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방 안에는 책이 잔뜩 쌓여 있고 지애는 가방을 품에 안고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빠져나오려다 말고 쓰러진 것이 분명했다. 방 안에는 연기가 가득했다. 연기에 질식한 걸까.

‘살아 있나?’

희영이 쓰러진 지애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숨이 느껴졌다.

‘어떡하지?’

이러는 시간에도 복도는 점점 연기로 가득 들어차고 있다.

‘데리고 나가야 해.’

희영이 쓰러진 지애를 둘러업었다. 지애가 품에 꽉 끌어안고 있던 가방도 제 어깨에 멨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계단으로 있는 힘을 다해 걸어갔다.

“으아아악!”

그때 계단에서 몸에 불이 붙은 남자가 뛰쳐나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이미 불길이 번진 뒤였다.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다. 그리고 복도는 연기로 가득 찼다.

‘수, 숨 막혀…….’

지애를 등에 업은 채로 희영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욱한 연기가 입과 코로 들어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머리가 몽롱해지고 점점 의식이 아득해졌다.

‘이렇게 죽긴 싫어…….’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연기가 자욱한 복도의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쓰러진 것이 보였다.

‘차, 창문…….’

그제야 희영이 복도 반대편의 창문을 기억해냈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여긴 5층이다. 뛰어내린다고 해도 살지 죽을지 그건 미지수지만 적어도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나, 나가야 해…….’

희영이 가물거리는 의식을 애써 붙잡고 복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어가다 말고 힐끗 뒤돌아봤을 때 복도에 쓰러진 지애가 보였다. 데려갈 수는 없다. 지금은 제 한 몸 가누기도 버겁다.

도중에 몇 번이나 정신을 잃을 뻔하면서도 희영이 기어이 복도 끝까지 기어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벽을 붙잡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나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제발…… 제발 열려라…….’

희영이 울며 간절히 애원했다. 지금까지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적은 없지만 오늘은 제발 들어주면 안 될까. 그러니까 제발, 이런 때 한 번만이라도 제 애원을 들어주면 안 될까.

‘열려! 제발 열려!’

희영이 울면서 창문을 손으로 내리쳤다.

쩌억- 그때 유리창에 금이 갔다.

“으윽!”

유리창에 금이 가는 걸 본 희영이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

쫘악-!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는 순간 희영이 정신을 잃었다.

몸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 * *

‘목이 아파…….’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제일 먼저 통증을 느낀 곳은 목이다. 목이 쓰라리고 아프다. 그리고 온 몸이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며 아팠다.

“정신이 좀 들어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 희영이 애써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흰 천정이었다.

“응급실이에요. 정신이 들어요, 한지애 씨?”

‘뭐? 한지애? 난 지애가 아닌데…….’

간호사는 왜 자신을 한지애라고 부르는 걸까. 자신의 이름은 윤희영이다.

“조금 있으면 선생님 오셔서 봐 주실 테니까 그때까지 좀 기다리셔야 해요.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이네요.”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자 희영이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 노력했다. 고시원에 불이 났다. 쓰러진 지애를 데리고 도망치려다 같이 쓰러지고 혼자서 창문까지 기어와 유리창을 깨고 몸을 날린 것만 기억이 난다.

‘살았네…….’

5층에서 뛰어내렸는데 용케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지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이건…….’

정신이 좀 맑아지자 희영이 제 옆에 놓인 가방을 발견했다. 제 가방이 아니다. 지애의 가방이다.

‘왜 이게…….’

자신의 가방과 지애의 가방, 두 개를 어깨에 들쳐 멨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제 가방은 어디 가고 지애의 가방만 남아 있었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 지갑과 통장, 그리고 대학 접수증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갑 안에는 한지애의 신분증이 들어 있다. 언뜻 봐서는 저와 닮았다.

신분증의 사진이 다 그렇다. 실제 얼굴과는 조금 다른 그런 사진. 그래서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얼굴형의 여자라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게 만드는 그런 사진.

‘설마…….’

이 신분증 때문에 간호사가 저를 한지애라고 부른 걸까?

‘다들 날 지애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희영이 응급실 복도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대기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쳐다봤다. 뉴스에는 한참 고시원의 화재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현재까지 사망 25명, 부상 3명, 실종 8명.

25명이나 죽었고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여덟 명이고 그리고 무사히 구출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건 겨우 세 명이다. 그 세 명 안에 자신이 들어있는 것이다.

경찰이 희영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 * *

‘정말 다 타 버렸네…….’

시커먼 잿더미만 흉물스럽게 남은 고시원 앞에 서서 희영이 멍하니 철근만 남은 건물을 쳐다봤다. 철근, 그리고 콘크리트의 일부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로 남은 고시원 건물은 무척이나 흉측했다.

화재의 원인은 전기장판의 합선 때문이라고 했다. 6층의 어느 방에서 전기장판이 합선되어 불이 났고 그게 고시원 전체로 번진 거다. 고시원에는 계단이 하나밖에 없다. 당연히 비상 계단, 그런 것따위는 없다. 각 방에도 창문이 없고 복도 끝에 하나씩 있는 창문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희영이 있던 5층에는 창문이 보였지만 다른 층의 창문은 전부 쌓아 놓은 물건들로 가로막혀 창문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불은 6층에서 시작되어 연기는 순식간에 고시원 전체를 뒤덮었고 사람들은 연기에 질식해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구조된 사람은 전부 여섯 명.

수십 명이 죽었다. 이 고시원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좁고 주차된 차들이 많아서 소방차가 진입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소방차가 들어와서 불을 끄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건물의 절반 이상이 불탄 후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식해서 죽은 후였을 거라고 뉴스는 계속 떠들어댔다.

어딜 가나 그 뉴스가 나와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다. 이 고시원에 묵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무연고자들이었다고 한다. 하긴, 희영 자신도 어떻게 보면 무연고자였다. 그리고 사망자 명단에는 윤희영도 있었다. 한지애가 아니라 윤희영이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5층에서 뛰어내릴 때 두 개의 가방 중에서 하필이면 제 가방이 아닌 지애의 가방을 품에 안고 있었고 그 가방 안의 신분증으로 경찰은 희영을 한지애로 착각한 거다.

그 오류를 바로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지애도, 그리고 희영 자신도 가족이 없다. 철저하게 무연고자다.

한지애와 제가 다른 것이 있다면 한지애를 찾을 사람은 없지만 저를 찾을 사람은 있다는 것 정도다.

희영은 지금도 악몽을 꾼다. 이종우, 그 남자가 저를 찾아내는 그런 악몽이다.

고시원으로 들어설 때면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자기 전에는 몇 번이나 문의 잠금을 확인하는 것도 언제 이종우가 저를 찾아낼지 몰라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윤희영이 죽고 한지애인 채로 살아간다면 앞으로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이종우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여기서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저는 완벽하게 자유를 얻게 된다. 죽은 여자를 그 남자가 왜 쫓겠는가.

‘한지애…….’

희영이 가방을 꽉 쥐었다. 이 가방 안에는 지애의 신분증과 대학 입학 관련 서류, 그리고 얼마의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이 들어 있다. 이것만 있으면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신분, 새 이름, 새 인생.

윤희영이 아니라 한지애.

진짜 한지애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탄 채로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고시원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불에 타서 발견되어서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희영이 증언했다.

[옆방 여자예요. 윤희영이라고.]

그렇게 증언을 했다. 죽은 여자는 윤희영이라고. 결국 제 스스로 윤희영을 죽인 거다.

‘추워…….’

머리 위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1월도 이제 거의 끝났다. 곧 2월, 그리고 3월에는 자신은 대학생이 되어 있을 거다.

장학생 한지애.

그게 앞으로 제가 사용할 이름이고, 제가 평생 들을 이름이다.

‘잘 해낼 거야. 난 행복해질 거야.’

고시원을 등지고 돌아선 희영이 가방을 고쳐 매고 걷기 시작했다.

지금 내리는 눈이 반갑다. 힐끗 뒤돌아본 희영의 눈에 제가 걸어온 발자국 위로 덮이기 시작하는 흰 눈이 보였다. 이렇게 전부 다 덮어 버리고 새하얀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 새하얀 세상에 다시 한지애라는 이름으로 제 인생을 그려 나가면, 그러면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윤희영이라는 이름 대신 한지애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붐플러스

관련자료

꼭짓점 3화
  
그누보드5



Copyright © FUNB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