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본문
# 1.
7월로 접어들었는데도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장마철이 되면 희영의 2평짜리 방은 지옥처럼 변한다. 작은 선풍기 하나로 습기 가득한 여름을 나는 것은 더없는 고통이다. 차라리 겨울이 견디기 편하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좀 낫지만 희영은 방문을 열어 놓기가 싫었다. 모르는 남자들이 제 방 안을 힐끗거리는 것도 싫고 이 방도 창녀가 있는 줄 알고 들어오려는 남자들도 싫다.
“얘, 희영아. 가서 소주 한 병하고 담배 한 갑 사 올래?”
방문을 벌컥 열고 옆방의 여자가 대뜸 만 원을 내밀었다. 조금 전에 퇴근해서 이제 막 옷을 갈아입은 희영이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뭘 보니?”
“책이요.”
“책인 건 아는데 무슨 책?”
“문제집이요.”
“너 학교 안 다니잖아.”
여자의 말에 희영이 미간을 퍽 구겼다.
“학교 안 다니면 문제집 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요?”
“계집애, 성질머리 하고는. 소주나 사 와.”
여자는 만 원짜리 지폐를 휙 던지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던진 만 원짜리 지폐를 집어 든 희영이 습관처럼 계산을 했다.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사고 남는 잔돈을 재빠르게 계산한 희영이 밖으로 나와 신발을 신었다. 우산을 펼치려다 말고 희영이 끝방 쪽을 쳐다봤다.
이 여인숙에는 꽤 많은 방이 있는데 그중에서 희영의 방은 마당 끄트머리에 있고 그 옆에 [끝방]이라고 부르는 방이 하나 붙어 있다. 원래 그 [끝방]은 비어 있었다. 2년 전에 그 방에서 여자가 면도날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희영도 그때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대야에 철철 흘러넘치던 새빨간 피. 그리고 창백한 여자의 주검. 그 장면은 2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여자가 왜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신변을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 여자가 죽은 후에 아무도 그 [끝방]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죽은 여자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옆방인 희영은 죽은 여자의 귀신을 본 적이 없지만 그 여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에 들어가서 살던 다른 여자가 이틀 만에 귀신을 봤다며 혼비백산한 채 한밤중에 울며 뛰쳐나오는 일이 있었고 그 후로는 누구도 그 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비어 있던 방에 지난달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다.
[오래 살 사람은 아니야. 세 달만 있다 가겠다고 달세를 선불로 냈다는데?]
여자들이 그 끝방을 얻은 사람에 대해 수군거리는 걸 희영도 들었다. 끝방을 얻은 사람은 이름은 모르지만 꽤 험악해 보이는 느낌의 남자였다.
키는 190 정도에 체격이 다부지고 한여름에도 긴 팔을 입고 다니는데 그 긴팔 밖으로 드러나는 문신을 보면 깡패나 그런 부류의 인간이 분명하다. 윗입술에 찢어진 채로 남은 흉터가 있고 오른쪽 눈썹과 눈꺼풀 위쪽에도 칼자국처럼 보이는 흉터가 있다.
나이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희영 자신보다는 많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희영은 그 남자를 그저 [아저씨]라고 불렀다. 바로 옆방이라 얼굴 마주칠 일도 많고 그 [아저씨]도 희영에게 잔심부름을 꽤 자주 시키는 편이다.
이 여인숙의 여자들과 그 [아저씨]의 다른 점이라면 여자들이 주는 심부름 값과 그가 주는 심부름 값의 차이다. 여자들은 기껏해야 천 원에서 3천 원 정도의 심부름값을 주지만 [아저씨]는 담배 심부름 한 번에도 만 원짜리 두 장을 준다.
그리고 그는 하루에 꼭 한 번씩 담배 심부름을 시킨다.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두 갑. 몇천 원이면 되지만 늘 만 원짜리 두 장을 주고 남는 건 전부 희영의 차지다.
게다가 그 남자는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고 살다가 담배를 피울 때만 방문을 연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누굴 만나러 밖으로 외출하는 경우는 더 없다. 끼니도 희영이 심부름으로 사다 주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이고 가끔 만 원씩 받고 희영이 라면을 끓여 줄 때도 있긴 했다.
세 달을 계약하고 들어왔다고 하지만 희영은 저 남자가 일 년은 살아 줬으면 했다. 그 남자가 들어온 덕분에 부수입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배자 아니야? 꽁꽁 숨어 사는 게 이상하잖아.]
[좆 병신인가 봐. 안 그러면 벌써 어느 년 방이든 기어 들어가서 씹질을 했을 텐데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 걸 보면 좆 병신이 틀림없어. 여기 저 정도 얼굴에 만 원만 줘도 다리 벌려 줄 미친년들 많은데 말이야.]
[이모들]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은 그 남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하지만 희영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수배자든 뭐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아저씨. 자요?”
희영이 옆방 문 앞에서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나 지금 슈퍼 가는데 뭐 시킬 거 없어요?”
‘자나?’
신발은 밖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어디 나간 건 아닐 거다. 가뜩이나 어디 나가지도 않는 남자다.
‘이렇게 더운데 문 닫고 잠이 오나?’
“아저씨, 나 지금 슈퍼 가는……”
그때 방문이 열렸다.
“소주 한 병하고 라면 사 와서 끓여 봐라.”
얼굴만 내민 남자가 희영에게 만 원짜리 두 장을 던졌다.
“담배는요?”
“됐고, 배고프다. 라면이나 끓여 봐라.”
“네.”
희영이 얼른 땅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밥 먹었냐?”
“아직이요.”
“그럼 세 개 사서 네 것도 끓여.”
“전 괜찮은데요.”
“끓이라면 끓여. 여깄다, 라면 값.”
남자가 다시 만 원짜리 두 장을 더 던졌다.
‘오늘따라 많이 주네.’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는 남자가 돈이 어디서 나서 이렇게 펑펑 쓰는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희영의 생각에 저 남자는 저 방 안에 돈 가방이라도 숨겨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말이다.
* * *
이 파란 철문의 여인숙에서는 부엌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냉장고도 공동 사용이고 세탁기는 다 낡아서 탈수만 겨우 되는 수준이다. 부엌의 절반은 천으로 가려 놓고 씻는 곳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부엌이 좁아져 설거지나 세수, 빨래는 마당의 수돗가에서 해야 한다.
냉장고를 열어 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반찬통에 전부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좁은 곳에서 얼굴을 보며 몇 년이나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자기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법이 없다. 얼마 전에는 먹다 남은 소주 반 병을 누가 마셨냐고 싸우다가 머리채까지 잡은 일도 있었다.
그런 곳이다. 사람이 살지만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곳.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사람을 볼 수 없는 곳. 전부 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짐승들만 사는 곳이 바로 여기다.
‘다 됐다.’
쟁반에 라면 냄비 하나와 그릇 두 개, 그리고 소주병과 작은 잔을 얹은 희영이 부엌에서 나와 끝방으로 걸어갔다.
“희영아. 이모도 라면 하나만 끓여 주라.”
중간 방의 여자가 하는 말은 무시한다. 요즘 손님이 없어서 소주 값, 담배 값도 없는 여자다. 라면 값을 줄 리가 없다.
“너 지금 내 말 씹는 거야? 쟤가 이젠 날 막 무시하네?”
여자가 뭐라고 해도 무시한 희영이 끝방의 문을 열었다.
“라면이요.”
남자는 구석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희영은 핸드폰이 없다. 요즘은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희영은 그런 데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핸드폰이 있어 봐야 전화를 걸 사람도, 걸어올 사람도 없으니까 무용지물이다. 전화를 해야 하면 사무실에서 하든가 아니면 골목 입구의 슈퍼 집 공중전화를 쓰면 된다.
남자는 전화를 받으며 들어오라고 손짓만 했다.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희영이 방문은 열어 놓았다. 가뜩이나 덥고 습한데 방문까지 닫고 라면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먼저 먹어.”
남자가 담배를 끼운 손으로 라면을 가리켰다.
“아직 그 새끼 못 찾았어?”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통화했다.
‘누굴 찾나?’
자신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냄비에서 라면을 그릇에 덜어 호로록 먹는 희영의 시선과 귀는 계속 남자를 향해 있다.
“그 새끼 찾아야 너네가 산다. 나야 이제 상관없지만.”
라면의 맛을 모를 정도로 희영이 남자의 통화에 집중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심각한 대화라는 건 느낄 수 있다.
“나는 나대로 살 거니까 늬들 살길이나 찾아. 그래. 그 새끼 찾았다는 용건 아니면 전화하지 마라, 이제.”
그게 통화의 끝이었다.
“면 다 불었어요.”
상 앞으로 다가앉는 남자에게 희영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투로 말했다.
“배만 부르면 돼.”
젓가락을 든 남자가 크게 면을 덜어서 후루룩 먹는다. 희영은 가끔 이 남자와 이렇게 라면을 함께 먹는다. 딱히 주고받는 대화가 많이 없어서 이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다.
“아저씨.”
“왜.”
“아저씨는 왜 여기서 이러고 살아요?”
“그러는 넌 왜 여기서 이러고 사는데.”
“전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죠.”
“나도 갈 곳 없어. 됐지?”
“아저씨는 돈 많잖아요. 나도 아저씨처럼 돈이 많으면 여기 아니라 다른 데 가서 살 거예요.”
“다른 데 가 봤자 다 똑같아.”
“다른 데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가 본 놈이 말하는 거니까 새겨들어. 다른 곳 가 봤자 달라질 거 없어. 그냥 여기서 살아.”
웃기는 남자다. 여기서 살라고? 이렇게 불결한 곳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곳에서 살라는 말이 우습다.
“아저씨도 여기서 평생 살 것 아니면서……”
그 말에 남자가 픽 웃는다. 봐라. 자기도 여기서 평생 살 것 아니면서 왜 남에게 여기서 평생 살라고 하는 걸까. 정말 웃기는 인간 아닌가.
“전요, 돈만 모이면 여기서 떠날 거예요.”
“떠나서 뭐 하게?”
“공부할 거예요. 공부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집 사고 잘 살 거예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도 세상은 안 만만해요.”
지금까지 세상이 만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실래?”
소주를 잔에 따르며 남자가 희영을 힐끗 쳐다봤다.
“됐어요.”
저 쓴 걸 왜 마시는 걸까.
라면을 몇 젓가락 먹고 소주 반 병을 비운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담배를 문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입술의 흉터가 꿈틀거린다. 입술 위쪽에서 턱까지, 입술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칼에 베인 것처럼 보인다. 담배를 끼우고 있는 손가락 마디에도 흉터들이 자잘하게 있다.
눅눅한 방. 그리고 지독하게 매캐한 담배 연기. 하도 먹어서 이젠 질리는 라면의 맛. 이 방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 희영은 남아 있는 라면을 억지로 먹어 치웠다. 빨리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 * *
끼이익-.
철문을 열고 들어선 희영이 옆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퇴근이 늦었다. 평소보다 2시간이나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여인숙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방마다 손님들이 가득 찬 후였다. 완전히 닫히지 않는 방문의 허술한 틈으로 새어 나오는 더러운 신음에 귀를 막아 버리고 싶었다.
더워서 그런 건지 몇 개의 방은 아예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그 짓을 하고 있다. 남들에게 저런 걸 다 보여 주고 싶은 걸까.
끼이익.
뒤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희영이 뒤를 힐끗 돌아봤다. 손님인지 이미 잔뜩 취한 남자가 철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다.
‘지겨워.’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희영이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요 토실토실한 궁둥이 좀 보게.”
뒤에서 느닷없이 제 엉덩이를 철썩 치자 놀란 희영이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조금 전 철문으로 들어온 술 취한 남자가 어느새 제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다른 데 가 보세요. 전 몸 안 팔아요.”
희영이 질색하며 남자를 노려봤다. 이런 경우가 가끔씩 있다. 이 여인숙에 있는 여자는 다 몸 파는 여자인 줄 알고 희영에게 수작을 부리는 놈들이 가끔 있어서 희영이 평소처럼 퉁명스럽게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이러면 다른 때는 다 실실 웃으며 물러났었다.
“씨발. 쌍년이 몸 안 팔기는. 여기 있는 년들 다 똑같은 년들 아냐?”
“아악!”
남자가 희영을 방 안으로 떠밀었다.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방문을 쾅 닫고는 그 육중한 몸으로 희영을 덮쳤다.
“비켜! 비키라고, 이 미친놈아!”
희영이 저를 덮친 남자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희영이 공포에 질렸다. 지금까지는 어떤 일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공포가 희영을 뒤덮었다.
‘다, 당할 거야……!’
여기서 자신이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질러 봤자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다. 누구 하나 저를 위해 뛰어들어 이 남자를 막아 줄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결국 자신은 지금 이 방에서 이 더러운 남자에게 무자비하게 강간당할 거다.
‘안 돼!’
희영이 제 옷을 벗기려는 남자의 손등을 물어뜯었다.
“쌍년이!”
“아악!”
손등을 물어뜯긴 남자가 희영의 뺨을 후려쳤다.
“한 번만 더 물어 봐라. 그때는 아주 상판대기를 뭉개 줄 테니까.”
남자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악취처럼 진동했다. 그 손에 맞아 찢어진 입술에서 흐른 피가 입 안으로 스며들어 피 맛이 났다.
“몸 파는 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씨발년.”
쌍욕을 퍼부으며 남자가 희영의 남방을 우악스럽게 찢자 단추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며 상체가 드러났다. 남자가 제 바지를 벗기려고 허리를 숙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희영이 있는 힘껏 발로 남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으악!”
남자의 몸이 옆으로 뒹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희영이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도망쳤다.
“씨발년아!”
뒤에서 남자가 쫓아온다.
‘어, 어디로……!’
방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던 희영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옆방이었다. 어차피 골목으로 도망쳐 봤자 다시 끌려올 거다. 이판사판이다.
“아저씨!”
옆방 문을 열고 뛰어든 희영이 전화를 하고 있던 남자의 옆에 얼른 달라붙었다. 지금 제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남방과 바지가 벗겨진 채로 브래지어와 팬티 한 장만 몸에 걸친 꼴로 남자의 옆에 달라붙자 남자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희영을 쳐다봤다.
“너 지금 뭐…….”
“쌍년아! 당장 안 나와?!”
그때 술 취한 남자가 씩씩 성을 내며 방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건 또 뭐야?”
난데없는 소동에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구긴다.
“야, 나중에 통화하자.”
통화를 끝낸 남자가 핸드폰을 툭 던지고 제 팔에 매달린 희영을 밀어냈다. 그가 자신을 밀어내자 희영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 남자마저 저를 버리면 이제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오늘은 공짜지만 다음부터는 공짜 아니다, 꼬맹아.”
남자는 그리 말하며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야.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얘는 몸 파는 애 아니다.”
“씨발. 이 새끼는 또 뭐 하는 새끼야? 기둥서방이냐?”
그러나 술 취한 남자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몇 장을 휙 던졌다.
“자, 돈 냈다. 됐지? 돈 냈으니까 저년더러 당장 기어 와서 좆 빨 준비 하라고 해.”
“좆?”
남자가 천천히 방문으로 걸어가더니 문 앞에 서 있는 술 취한 남자의 배를 뻥 걷어찼다.
“으악!”
술 취한 남자가 돼지 멱 따는 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마당에 철퍼덕 넘어졌다. 마당으로 내려온 남자가 천천히 신발을 신고 넘어진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간 남자가 넘어진 놈의 아랫도리에 구둣발을 콱 내렸다.
“으아아악!”
단단한 구두의 뒤꿈치로 바지 중심을 짓이기자 쓰러진 남자의 얼굴이 흙색으로 질려 가며 비명이 터진다.
“이것도 좆이라고 달고 있는 모양인데, 빨 좆도 없게 만들어 줄까?”
남자의 목소리는 낮지만 위협적이었다. 사람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술 취한 남자의 아랫도리를 구두 뒤꿈치로 짓밟은 채로 남자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허리를 숙인 후 쓰러진 남자의 입 안에 틀어박았다.
“돈 냈다. 돈 냈으니까 내 좆 정도는 빨아 줄 수 있지?”
돈이 입에 쑤셔 박힌 남자는 그걸 뱉지도 못하고 공포에 질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왜? 돈 냈잖아. 돈 내면 좆도 빨아 주고 그런 거 아냐?”
쓰러진 남자는 이제 완전히 얼굴이 시뻘겋게 질렸다. 구둣발에 짓눌린 바지 중심에는 얼룩이 번져 갔다. 무서운 나머지 오줌을 싼 거다.
“씨발 새끼야. 누가 내 구두에 오줌 묻히래. 니 오줌이니까 니가 닦아, 이 새끼야.”
남자가 구두를 겁에 질린 남자의 얼굴에 갖다 대고 문질렀다.
“오줌 냄새 안 나게 깨끗하게 빨아, 안 그러면 정말 좆을 잘라 버릴 거니까.”
좆을 자른다는 말에 겁먹은 남자가 얼굴에 갖다 댄 구두의 밑창을 빨기 시작했다. 희영은 그 꼴을 방에서 얼굴만 내밀고 훔쳐봤다. 어느새 다른 방에서 하나둘 얼굴을 내민 여자들과 손님들도 그 꼴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를 들으며 구두 밑창을 빨던 남자는 결국 오줌 자국이 흥건하게 얼룩진 바지를 입은 채로 네 발로 기어서 철문을 나갔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남자가 방에 떨어진 만 원짜리를 줍더니 희영에게 내밀었다.
“니 거다. 그 새끼가 너한테 준 거니까 너 가져라. 좆은 안 빨았지만. 브라하고 빤스 보여 줬으니까 그 값이다 생각하고 받아 챙겨.”
희영이 얼른 남자의 손에서 돈을 건네받았다. 그래. 이건 속옷 차림을 보여 준 대가다. 자신을 무섭게 한 대가다.
‘내가 가져도 돼. 내 남방도 찢었으니까. 단추를 다시 다는 값이야.’
아직 희영은 떨림이 멎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했다.
“문 잠그고 자라. 안에서 문 잠글 수 있지?”
“그럴 거예요.”
“저런 놈들이 덤비면 좆을 빨아 주는 척하다가 콱 물어뜯어 버려. 저런 놈들은 너 같은 게 힘으로는 못 당해. 그러니까 괜히 어떻게 해 보겠다고 덤비다가 얻어터지지 말고 얌전히 좆 빨아 주는 척하면서 좆을 뜯어 버려. 그러면 당해 낼 놈이 없지.”
“그런 더러운 거 물고 싶지 않아요.”
“살려면 더러운 짓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야.”
남자가 희영에게 눈짓했다. 이제 그만 나가라는 뜻이다.
“다음에는 그냥 안 도와준다.”
“라면 공짜로 끓여 드릴게요.”
“그래. 그래야지.”
남자의 방에서 나온 희영이 제게 쏟아지는 시선에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에 널브러진 남방과 바지, 그리고 발버둥 칠 때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는 걸 멍한 눈으로 쳐다보던 희영이 벽에 기대앉았다.
가슴에 무릎을 붙이고 손을 들어 올린 희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손도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옆방 남자 옆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해 봤지만 도무지 떨림이 멎질 않는다. 유년 시절부터 여기서 자라 이런 일은 이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 제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제게 찝쩍거리는 인간들이 있어도 얼마든지 걷어차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술 취한 남자는 미친 것 같았고 그 힘은 제가 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 곳, 이제 지긋지긋해…….’
구석으로 기어간 희영이 아직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일 아래 서랍의 옷 아래에 숨겨 둔 통장을 꺼냈다. 펼쳐 본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은 460만 원이었다.
‘이걸로는 아무 데도 못 가…….’
제 전 재산을 확인한 희영이 다시 절망했다. 그나마 여기니까 방세가 안 나가는 거다. 다른 곳으로 가면 아무리 못해도 방세를 2-30만 원은 내야 한다. 거기에 공과금, 생활비까지. 받는 월급을 전부 먹고사는 데 써 버리면 영영 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백만 원만 더 있어도……’
하지만 오백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가 없다.
‘오백만 원만 있어도 당장 여기서 도망칠 텐데……’
은행을 터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런 심정이었을까. 칼을 들고 강도 짓이라도 하고 싶다.
‘다 망해 버렸으면 좋겠어.’
희영은 통장을 꽉 쥔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골목을 벗어나면 사람들은 전부 다 행복한 표정만 짓고 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 퇴근 후에 외식을 약속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계획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건 평범한 일상이다.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며 스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다. 가끔 들여다보는 식당이나 카페의 유리창 너머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여기 이모들이 틀어 놓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웃는 화목한 가족.
그런데 자신만 여기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다.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는데 더 나락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서, 벗어날 수는 있는 걸까.
‘벗어날 거야……. 도망칠 거야……. 난 이렇게는 안 살아. 영영 이렇게 살다가 죽지는 않아…….’
희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야. 저렇게 추잡스럽게 살지 않을 거야. 엄마처럼 그렇게 죽지도 않을 거야.’
희영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처럼 죽는 것이다. 끝방 여자처럼 그렇게 죽는 것이다. 아무도 불쌍히 여겨 주지도, 울어 주지도 않고 또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죽음. 그렇게 죽지는 않을 거다.
고개를 든 희영이 방을 둘러봤다. 곰팡이와 물 얼룩이 든 벽과 천장, 그리고 눅눅한 바닥, 냄새가 나는 이불. 이 냄새가 이미 제 몸에도 밴 것 같다. 제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냄새, 이 냄새가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반드시 도망을 치고 말 거다.
각오를 한 순간, 희영이 떠올린 건 옆방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