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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발정기의 짐승들

본문

쿵푸벳

한적한 오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대청에 앉아 도휘가 끓여 주고 간 인삼대추차를 호로록 마시고 있던 소화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응?”

헐벗은 과실나무만 있는 고즈넉한 마당에 하얀 먼지가 흩날렸다. 처마 밖으로 손을 뻗으니 살포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이른 첫눈이었다. 요즘 계속 비가 내리더니 날이 추워지긴 한 모양이었다.

“도…!”

신나서 도휘를 부르려던 소화가 멈칫했다. 그는 만날 이가 있다고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펑, 펑 꽃가루 날리듯 사뿐히 내려앉는 눈이 혼자 보기는 참으로 아까웠다.

도휘가 같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소화는 오랜만에 홀로 외출을 준비했다.

착호군이 왔던 뒤로 아랫마을에 살던 인간들은 모두 떠났고, 이황산은 따분할 정도로 고요했다.

“조용하구나, 조용해.”

홀로 산길을 걷는 걸음이 그녀답지 않게 여유로웠다.

날은 추워지는데 요즘 아침마다 열꽃이 피는 것처럼 몸이 덥고 땀이 나서 곤욕스러웠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더한 것 같았다.

소화의 발길은 자연스레 산사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열매가 있으려나.’

도휘를 만나기 전에는 여우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며 간신히 목숨을 연명했다.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세 끼를 다 챙겨 먹어야 하지만 여우의 모습을 하면 한 끼만 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겨울에는 개울도 꽝꽝 얼어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고 개구리며 뱀이며 다 동면에 들어가 사냥감이랄 게 없었다. 집에서 혼자 밥을 지어 먹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도휘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지.’

내심 웃으며 산사나무를 찾던 그때였다.

“누구시오!”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수풀을 젖히고 슬쩍 보니 웬 젊고 호리호리한 사내였다. 소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곳은 산군마마께서 기거하시는 신령한 산이오! 마을 입구에서 금줄을 보지 못한 것이오? 사람은 발길을 하지 말라는 금령이 내렸소!”

귀가 얼얼할 정도로 호된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이쿠. 놀란 소화가 귀를 틀어막으며 부스럭, 나뭇가지를 젖히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는 귀하께선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습니까? 소녀는 객이 아니라 이 이황산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거주민입니다.”

소화를 마주한 남자의 눈이 확 커졌다. 연한 갈색빛 눈동자에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청초한 젊은 사내였다.

그가 주춤하더니 놀란 얼굴로 산사나무의 위를 가리켰다.

“호, 혹시 이 발톱 자국의 주인 되시오?”

발톱 자국?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니 그곳엔 무시무시한 호랑이 발톱 자국이 가득했다.

도휘의 짓이 분명했다. 소화는 퍽 놀랐지만 애써 의연한 척 고개를 쳐들었다. 저건 내가 아니라고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몰라뵈어 송구합니다. 이 미천한 놈을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

남자가 넙죽 엎드려 소화의 앞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훌륭한 발톱 자국을 보고 이는 필시 수컷 호랑이가 틀림없다, 소인이 멍청하고 아둔한 생각을 하였사옵니다.”

소화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 멍청한 자가 제 몸에서 나는 도휘 냄새를 맡고는 발톱 자국을 오해하여 저를 천하를 호령하는 암호랑이라고 착각한 게 분명했다.

“아량을 베푸시어 제발 소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산군마마.”

‘아니오, 아니오! 난 그저 붉은 여우요!’ 하고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다. 말을… 말을 해야 하는데… 소화는 고민하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사내가 제 눈치를 살피듯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고는 다시 넙죽 엎드렸다.

제게 잔뜩 겁을 집어먹고 눈도 못 마주치는 그 얼굴이 가슴이 떨리도록 짜릿했다.

‘이게 바로 호랑이 노릇이구나.’

산을 다스리는 금수들의 왕! 바람을 가르며 산맥을 넘나드는 폭풍 질주! 포효하는 암호랑이!

“…고개를 드시게.”

소화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 내가 바로 저 발톱 자국의 주인일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산군마마!”

사내가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다 쭈뼛쭈뼛 제 눈치를 보며 일어섰다. 그 모습에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태어나 제가 언제 한번 이런 대우를 받아 보나 싶었다.

‘그래, 호랑이랑 한 이불 덮고 사는데 나라고 호가호위 한번 못 해 볼 게 무어냐. 허풍 좀 떨다 조용히 저치를 보내면 되지.’

모든 여우들의 소망이 아닌가. 호가호위!

“내 그런 오해를 종종 받는다네. 이 발톱이 워낙 수컷 못지않게 뛰어나고 몸이 집채만 해서 말이야.”

소화는 자랑하듯 고사리보다 조금 큰 제 손을 내보이며 쥐었다 펴 보였다.

“이 발톱 자국을 본 이들은 다들 내가 수컷인 줄 알더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평생 여러 호랑이를 만났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발톱 자국은 정말 처음 봅니다요.”

소화는 움찔했다. 호랑이를 여러 번 마주쳤는데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는 건 그 역시 호랑이라는 뜻이었다.

“자네도 호랑이인가?”

“그렇습니다요. 이 산이 마마님의 영토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요.”

코를 킁킁거렸지만 사내에게서 맡아지는 냄새는 없었다. 소화의 코가 문제였다.

도휘와 한 이불 덮고 같이 자면서 밤마다 하도 이불을 적시고 실금을 하는 바람에 소화는 극한 처방으로 아재비꽃을 방에 두었다. 도휘가 풍기는 맹수의 냄새를 맡지 못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였다.

한데 빤히 쳐다보는 제 시선을 오해하였는지, 지레 놀란 그가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안 됩니다. 안 됩니다요! 소인은 얼굴만 반반하지 한참 부족하여 마마처럼 훌륭하신 분을 모실 만한 놈이 못 됩니다요….”

겨울은 호랑이의 발정 기간이기도 했다.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뒤늦게 이해한 소화는 도휘가 하듯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지금 나를 어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앙칼진 일갈에 놀란 그가 털썩 다시 무릎을 꿇었다.

“요, 용서하십시오! 이 못난 놈이 마마의 뜻을 곡해하였습니다! 제발 용서하십시오!”

쿵, 쿵. 땅에 이마를 박으며 제게 용서를 비는 사내의 모습에 소화는 금세 마음이 풀렸다. 제법 비위를 맞추는 놈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대체 얼마나 모자란 호랑이기에 제게 이렇게 쩔쩔매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대범이라 합니다.”

대범. 참으로 호랑이 도령 같은 이름이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일어나시게, 대범 도령.”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화는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일어선 대범의 뒤편을 향해 거만하게 눈짓했다.

“저 봇짐에 든 게 무엇인가?”

“예? 아, 저것은… 초행길에 입이 심심할까 하여 간식을 좀 챙겨 왔사온데.”

“내놔 보게.”

대범이 고개를 조아리며 힐끔 소화의 눈치를 살폈다.

“마마님 입에는 맞지 않을 것입니다요. 소인은 입맛이 별난 놈이라….”

“어허, 두 번 말해야겠나!”

식겁한 대범은 냉큼 제 봇짐을 가져다 바쳤다. 낚아채듯 봇짐을 받은 소화는 슬쩍 안을 열어 살폈다.

말린 개구리와 알밤, 삶은 계란과 수수부꾸미 그리고 방금 딴 것처럼 싱싱한 산사나무 열매가 가득 들어 있었다. 화색이 된 소화는 대범이 볼세라 얼른 표정을 굳혔다.

“아니 이게 다 뭔가? 대범 도령, 자존심도 없나? 우리는 긍지 높은 맹수 호랑일세.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잡것들이나 먹을 것을…. 쯧쯧.”

“소, 송구합니다, 마마.”

“품위가 상하니 이건 압수일세. 마침 내가 잘 아는 여우가 있으니 갖다주면 좋아하겠군.”

그러자 대범이 탄식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실은 소인이 불가에 귀의할 생각으로 살생을 금하고 있습니다. 먼 길을 떠나오게 되어 식량을 챙긴다는 게 하는 수 없이….”

그에게도 다 사정이 있었다. 대범이 살생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소화는 그가 친밀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제가 여우란 걸 알아채도 이 호랑이에겐 먹힐 일이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흠흠, 그렇다면 돌려주지. 자,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마!”

“채신머리가 상하지 않게 그런 건 숨어서 먹게. 어디서 오는 길인가?”

“저는 천문산에서 왔습니다요.”

“정말 먼 길을 왔군. 그래, 예까지는 무슨 일인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 대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겠습니까. 쫓겨서 왔지요.”

“쫓기다니? 누구에게?”

“젊은 호랑이 놈입니다. 아주 포악하기로는 저승사자도 피해 갈 악귀 나찰 같은 놈입지요.”

그 무서운 호랑이! 소화의 눈이 커졌다. 그 천하 명산에는 난다 긴다 하는 온갖 것들이 있어 애초에 발도 디뎌 본 적 없지만, 소화도 천문산 호랑이에 관한 소문은 알았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반신이었다.

“소인이 알기로는 20년 전에 승천하는 이무기를 괴롭히다 절벽에서 같이 떨어져 죽었는데, 떡하니 다시 나타났지 뭡니까요. 분명 저승에서도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안 받아 줬을 겁니다.”

“그, 그럼 죽었다가 살아났단 말인가? 그 호랑이가 정말 선신이 되었다던가?”

“모릅지요. 아무튼 그놈이 지금 천문산에 살던 곰이며 여우를 죄다 내쫓으면서 지랄 염병을 하지 뭡니까.”

“아니, 여우는 왜!”

“모르겠습니다. 그놈은 말도 안 통하고…. 아주 자기가 임금이고 신령입니다요.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면 그냥 물어 죽입니다. 먹지도 않으면서 갈가리 찢어다 온 산에 가죽이며 살점을 걸어 놓습죠.”

“히익! 그런 몹쓸!”

“잠깐 머물던 호랑이들도 다 도망치고 지금은 그놈을 대적할 상대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애초에 싸울 마음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떠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대범이 힐긋 소화를 훔쳐보며 그러는 것이다.

“젊은 놈이 그리 포악한 게 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마마님은 짝이 있으시지요?”

“그렇네.”

“냄새가 하도 요란하여서 바로 알았습니다요. 그래도 시간 나실 때 천문산에 한번 가 보십시오. 그런 어마어마한 놈은 아마 처음 보실 것입니다. 가서 구경만 해도 아깝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요.”

대범은 이를 구실로 해서 소화를 내쫓고 제가 이황산에 자리를 잡으려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가리켰다.

“이 산도 오래 머물 곳이 못 됩니다. 보십시오. 여기만 날이 이렇게 궂은 걸 보니 필시 신령님이 잔뜩 노하여 계십니다. 더 있다간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무슨 수작인지 모를 줄 알고? 소화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됐네. 나는 누가 내쫓는데도 절대 이 산을 떠나지 않을 걸세. 그리고 나는 잘생기고 다정한 사내를 좋아한다네. 눈이 저 하늘 꼭대기에 달려서 누구든 쉽게 마음에 들 리가 없어.”

“그놈은 풍채가 기와집만 한 데다, 앞발은 또 어찌나 크고 단단한지 발톱도 무시무시해서 웬만한 것들은 물지도 않고 때려죽인다 합니다. 그 앞발에 맞으면 단번에 그냥 콱!”

대범이 손짓 발짓 하며 포악한 그 호랑이를 설명했다. 실감 나는 묘사에 소화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안광은 또 어찌나 부리부리한지 야밤에 보면 등불이 따로 필요가 없다더군요.”

“호들갑은! 자네 사실 호랑이가 아니라 너구리 아닌가?”

“예에? 아이쿠, 아닙니다요.”

하하, 성격 좋은 웃음을 터뜨린 대범은 은근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게다가 그놈이 무척 반반하게 잘생겼습니다.”

“그래?”

“예, 제 벗이 그놈이 인간으로 변한 걸 봤는데, 이 눈매가 그윽하고, 콧대는 곤륜산 산맥처럼 시원하게 뻗은 것이 입술에는 색기가 돌아서 아주 야살스럽기 짝이 없답니다.”

“자네 벗이 그를 마음에 둔 것 아닌가?”

“아이쿠, 무슨 안 될 말씀을. 그놈이 암컷이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포악한 놈이 쓸데없이 참으로 잘생겼다고 감탄을 하지 않겠습니까. 아, 저기 꼭 저 사내처럼….”

대범은 커다란 산사나무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그곳엔 참으로 잘난 사내가 그림처럼 기대어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휘였다. 그가 천천히 몸을 떼어 내며 소화를 향해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왔어요, 소화.”

반가운 나머지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휘야!”

소리치는 동시에 옆에 있던 대범이 크게 놀란 듯 펄쩍 뛰어올랐다. 그가 들고 있던 봇짐의 주전부리가 죄다 쏟아졌다.

알밤이며 계란이며 먹을 것에 한눈이 팔린 소화는 그가 튀어 오르며 짐승의 모습으로 바꾸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으응…?”

순식간에 호리호리한 젊은 사내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대범은 걸음아 나 살려라 나무 뒤로 숨어 도망쳤다.

얼핏 살랑거리는 통통한 갈색 꼬리를 본 소화는 뒤늦게 그의 정체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호랑이라더니! 호랑이라더니!’

대범은 붉은 여우였다. 어찌나 감쪽같이 자신을 속였는지 정말 식성이 별난 점잖은 호랑이인 줄로만 알았다.

기가 막혀 입만 떡 벌리고 있는데 별안간 목덜미에 커다란 손이 와 닿았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도휘가 유려한 손길로 소화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나 왔다니까.”

“그래, 도휘야. 첫눈이 내린 걸 보았니?”

소화는 반가움을 표시하며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도휘는 그녀의 이마와 콧방울, 양 볼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아주 어여뻤단다.”

“당신만큼 예쁠까요.”

마지막으로 입술에 그가 닿자 가벼운 입맞춤일 거라 짐작했던 소화는 제 뒷머리를 움켜쥐는 손길에 당황했다.

턱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편한 대로 고개를 돌린 도휘가 밖에서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음탕한 입맞춤을 시도했다. 혀를 빨고, 침을 삼키고, 입 안을 헤집는… 지독한 정사의 시작을 알리던 애무나 다름없는 그 입맞춤이었다.

놀란 소화가 그를 밀어 내자 도휘는 너무나 손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발이 땅에서 멀어지자 겁먹은 소화가 자연스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대로 그녀를 나무에 밀어붙인 도휘는 제 하체를 들이밀었다. 벌써 딱딱하게 발기한 그의 흉기가 소화의 아랫배를 묵직하게 눌러 왔다.

“으응…!”

그녀가 그만하란 듯이 어깨를 때렸지만 바위 같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다른 손이 그녀의 치맛자락 안으로 들어와 단번에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벼락 맞은 듯 놀란 그녀가 움찔했지만 거친 손길은 거둬지지 않았다. 오늘따라 도휘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순간 속곳을 젖히고 그의 손가락이 닿았다.

“읍읍!”

음핵부터 질구까지, 물기 없이 건조한 음부를 훑듯이 매만진 도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숨에 그녀를 내려 주었다. 마침내 땅에 다리가 닿자 안심한 소화가 급한 숨을 내쉬었다.

“흡, 하아…. 하아.”

“싫어하니까 그만할게요.”

소화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여기서 하려고 했다고?”

“응, 그런데 당신이 싫어하니까 안 해요.”

저를 보곤 좋아서 막 달려들었다가, 제가 싫은 티를 내니까 멈췄구나. 그러자 소화는 도휘가 그래도 옳고 그름을 알고, 제법 착하여 제 말을 잘 듣는 녀석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붉은 여우가 사라진 방향을 눈짓했다.

“방금 만난 건가, 저놈은.”

혼잣말하듯 묻는 말에, 불현듯 소화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대범 도령과 서로 잘난 호랑이입네 온갖 허풍을 떨었는데 도휘가 들었다면 얼마나 우스웠을까! 창피스러웠다.

“우리가 떠드는 걸… 전부 들었니?”

조심스레 묻자 도휘의 한쪽 입가가 삐딱하게 치켜 올라갔다.

“우리?”

“그게, 저치가 먼저 나를 대단한 암호랑이라고 오해한 바람에 미처 바로잡아 줄 틈이 없었단다.”

도휘의 시선이 붉은 여우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빈 수풀 더미를 그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도 저치가 호랑이인 척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어찌나 감쪽같은지 깜빡 속았지 뭐니.”

“여우한테 속았구나.”

“완전히 속았단다.”

“무슨 담소를 그렇게 재밌게 나누었나 했어요.”

마침내 수풀 더미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린 도휘가 다정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집으로 갈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무서운 얘기를 들었더니 더는 밖에 있고 싶지가 않아.”

“내 여우가 무슨 무서운 얘기를 들었을까.”

도휘는 소화의 느린 걸음에 발을 맞추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거닐었다. 흩날리던 눈송이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휘야, 너도 천문산에는 얼씬도 말거라. 거기 글쎄 말도 못 하게 흉악한 호랑이가 산다지 뭐니.”

“그래요?”

“그래! 어찌나 성질머리가 더러운지 저승사자도 피해 간다더라.”

“무서워라…. 희한한 놈이 다 있네.”

그가 맞장구를 제법 잘 쳐 주자, 신이 난 소화는 대범에게 들은 천문산 호랑이에 관한 묘사를 허풍을 조금 덧대어 설명했다.

“몸집은 태산만 하고 앞발은 거북 등딱지보다도 거대한데, 발톱은 또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인간들이 쓰는 낫보다 날카롭다더라. 참을성이 없고 흉악하여서 천문산 폭군 흉내를 내며 죄 없는 금수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죽인다지 뭐니!”

“성격이 좋지 못한가 봐요. 왜 그럴까.”

문득 소화가 자리에 우뚝 멈췄다.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가 도휘를 올려다보며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도휘야, 네가 나 몰래 새벽마다 사냥을 나가는 걸 알고 있단다. 하지만 천문산에는 얼씬도 말아야 해.”

그간 도휘의 ‘사냥’은 둘 사이에 금기나 다름없는 주제였다. 한데 소화가 먼저 사냥 얘기를 입에 올리자 도휘는 내심 놀라웠다.

“알겠니?”

심각하게 눈썹을 늘어뜨린 소화가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하듯 그의 팔을 흔들었다.

“응? 알았니?”

자신을 걱정하는 이 귀여운 여우 때문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 이렇게나 착하고 순진한 여우를 자꾸만 놀려 먹고 싶으니 남들 말대로 저는 흉악한 몹쓸 놈이 분명했다.

“어떡하죠. 천문산으로 이사 가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무어? 왜? 아니 왜!”

눈이 휘둥그레진 소화가 숨넘어갈 것처럼 황당해했다. 도휘는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여긴 더 이상 내가 먹을 게 없어요, 소화. 당신밖에는….”

큰 충격을 받은 소화가 비틀거렸다. 먹을 게 저밖에 없다는 말은 그의 짓궂은 농담이란 걸 이제는 안다.

“아이쿠, 어떡하니. 어쩌면 좋니. 그 무서운 맹수가 있는 곳에 내 발로 걸어가야 한다니….”

그래도 소화는 너만 가라고 매정하게 그를 내치지 않았다. 도휘는 그게 고맙고 기특하고 예뻐서 소화를 꼬옥 끌어안았다. 두근두근, 많이 놀란 여우의 심장 소리가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내가 못 산다. 내가 내 명에 못 살아. 아이쿠….”

이렇게 가여운 여우를 자꾸 놀리고만 싶으니, 정말 제 심보가 비틀어져도 단단히 비틀어진 게 틀림없었다.

“큰일이네요. 그 호랑이의 영역을 침범하면 날 쫓아와서 죽이려고 할 텐데.”

히익, 질겁한 소화가 숨을 들이마셨다. 도휘가 믿음직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당신이 있으니까 안심이 돼요, 소화.”

“으응?”

“이번에도, 지켜 줄 거죠?”

놀란 소화의 동공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귀로 들은 걸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누, 누가? 내가? 내가 널?”

“저번에도 날 지켜 줬잖아요. 열일곱 명이나 되는 호랑이 사냥꾼한테서, 용맹하게.”

아니다, 그게 사실은 직접 해치운 건 일곱 명이었다! 나머지는 저들끼리 그냥 떨어져 죽은 거야!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 소화가 구순만 달싹였다.

“열일곱이나 되는 사냥꾼한테도 맞섰는데 그깟 호랑이 하나가 무서울까.”

“그깟 호랑이가 아니고 신령님이라던데….”

소화가 중얼거렸으나 도휘는 못 들은 척 제 할 말만 했다.

“난 당신만 믿어요, 소화. 그러니까 무서울 게 없어.”

신뢰가 가득한 그의 옅은 갈색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소화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사실 나는 완전히 겁쟁이고 그때는 그냥 잠깐 정신이 나가서 사냥꾼에게 달려들었을 뿐, 또 하라고 하면 못 할지도 몰라!’

솔직하게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호랑이라지만 저보다 한참은 어린 녀석이 기댈 곳은 또 저밖에 없다는데. 그 면전에 대고 ‘내가 먼저 도망갈 거야.’ 할 수는 없었다.

도휘를 주웠던 그 옛날.

핏물이 덕지덕지 묻은 조그만 것이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는데, 매한테 물려 가면 어떡하나 덥석 주워 들고 보았다. 냄새를 맡은 매가 자신을 쫓아올 것을 알면서도.

이 가여운 것, 어린 것.

“그래.”

저도 모르게 소화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켜 주마.”

내뱉고 보니 정말 용기가 치솟았다. 총을 든 사냥꾼도 여럿 때려잡았는데 그깟 호랑이 하나 어려울까? 도휘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데.

“나만 믿으렴!”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도휘는 제 눈앞의 이 여우를 깨물어 먹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 했다.

하나 이글거리는 눈빛은 숨겨지질 않아 소화는 흠흠 헛기침을 하곤 금세 여우로 모습을 바꾸어 미꾸라지처럼 그의 품을 쏙 빠져나갔다.

“춥지 않니?”

눈높이가 한참 위에 있는 도휘를 올려다보며 소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앞발을 숙이며 도약하려고 발돋움질하는 그녀를 보고 도휘가 씩 웃으며 되물었다.

“춥다고 하면?”

“그럼 목도리를 해 줘야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타다닷 무릎과 팔뚝을 딛고 몸을 타고 오른 소화가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도휘의 어깨 위에 섰다.

그러곤 부드럽게 그의 목덜미를 감싸듯 대롱대롱 매달려 제 꼬리를 잡았다.

“여우 목도리란다. 따뜻하지?”

“응, 따뜻해요.”

도휘는 애교를 부리는 소화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문산으로 거처를 옮기려는 건 제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은 소화 때문이다. 소화는 여우로 변해서 배를 채우는 것보다 인간들이 먹는 미식을 훨씬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떠나 마을이 없어진 지금은 더 이상 찬거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천문산에는 인간들과 잘 어울리는 재주 많은 요괴들이 많아서 그들을 부리면 찬거리를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오늘 저녁상은 뭘 차려 줘야 이 까탈스러운 여우가 잘 먹을까. 고민하는 도휘에게 소화가 은근슬쩍 당부했다.

“대범 도령은 죽이면 안 된다, 도휘야.”

“응.”

“정말정말 안 된다.”

“안 그래요.”

망설임 없이 나온 너무도 쉬운 대답에 소화는 의심이 가면서도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제 앞발을 만지작거리는 손을 할짝대며 도휘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근데 네 모습은 대체 언제 보여 줄 거니? 대범 도령이 발톱 자국만 보고도 절을 하던데.”

소화는 제가 주운 그 자그만 흑묘가 얼마나 늠름한 호랑이로 자랐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가 새벽에 집을 나갈 때마다 기다렸다. 호랑이로 변한 모습을 꼭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번번이 기회를 놓쳐 버렸다.

“나도 멋진 호랑이가 보고 싶단다.”

“…….”

설마설마했는데, 도휘는 의도적으로 제게 본모습을 감추는 게 분명했다. 이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설마 널 보고 내가 기절이라도 할까 봐 그러니?”

“…….”

“곤란하면 이렇게 입을 다무는 게야? 응?”

앙앙앙! 대답하라고 손을 마구 깨물어 댔지만 끝내 도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역시 고민은 깊어만 갔다. 발정이 오면 함께 밤을 보내고 온전한 반려가 되고자 했다. 그럼 그때 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화의 발정이 오질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이러다 저 몰래 집을 나가 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요즘 소화가 제 본모습을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게 아닌가? 도휘는 더더욱 고민이었다. 제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새벽에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도 알지만….

꿈에 나온 호랑이를 보고도 질겁하여 하루 종일 식은땀을 흘리는 이 겁쟁이 여우가 저를 실제로 보면 마음을 바꿔 먹고 홀랑 달아나 버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도휘는 지금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하루빨리 소화의 발정이 시작되어 그리도 소원하는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싶을 뿐이었다.

***

“끄아아악!”

대범의 등을 짓밟은 도휘가 인상을 찌푸리며 사납게 뇌까렸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사내답지 않은 약골의 몸이라 힘을 주면 그대로 척추가 부러질 것 같았다. 가지고 놀듯 지그시 등을 내리누르자 대범이 기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 사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닥쳐. 누가 죽인대?”

“어흐흑…. 나리…. 나리.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는 국무당을 지내신 고모님의 뒤를 이어 구미호가 되려고 도를 닦고 있습니다요.”

대범이 손을 싹싹 비비며 애원하자 도휘는 고민하듯 그의 엎어진 등짝을 내려다보았다.

“득도하여 불자가 될 몸이라 그 아리따운 아가씨께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이 수여우는 제가 소화를 쳐다보던 그 짧은 시선만으로 그녀를 애지중지 여기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물론, 소화에게 풍기는 진득한 제 냄새도 한몫했겠지만.

“두 분이 이미 맺어진 걸 잘 압니다요. 저는, 저는 절대 그분을…!”

“알면 진작 떠났어야지.”

“끄아악!”

“곧 발정이 시작될 내 암컷 주위에 다른 수컷이 얼쩡거리는 걸 용납하는 병신도 있나?”

“사사, 사,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나으리!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는 끝마쳐야 할 심부름이 있습니다…. 으흐흑.”

“심부름?”

“예에…. 천문산 큰스님이 제 스승님이신데, 이황산 암자를 관리하는 불제자가 곧 동면에 들어간다며 저더러 한 계절만 맡아 달라 하셨습니다.”

천문산의 큰스님이라면 도휘도 안면이 있었다. 아니, 안면만 있다 뿐인가? 그에게는 진 빚이 있었다.

도휘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매달렸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분의 앞에는 얼씬도 않겠습니다요! 맹세합니다! 스승님의 심부름만 끝내고 다른 산으로 갈 것입니다…. 으흑.”

대범이 계속 큰스님을 운운하자 등을 짓밟던 도휘의 발이 느슨해졌다.

이 수여우는 확실히 영악한 놈이었다. 나무 위에 숨어 있던 것도 그렇고, 호랑이 도휘를 마주치자마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인정을 호소하는 것도 그랬다.

보통 수인들은 저를 만나면 도망가기 유리한 짐승의 모습으로 바꾸는데 말이다. 사냥 본능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고.

웬만큼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감히 제게서 소화를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 수여우가 불가에 귀의하여 이황산 암자에 남는다면 견제할 상대는 못 되었다.

“내 암컷에게 발정 향이 맡아지더냐?”

도휘는 소화 때문에 선생을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온 길이었다. 차라리 같은 여우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지 몰라 그를 찾아왔다.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는데 올해는 예년과 달라 묻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소화의 발정기가 시작됐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별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매일 밤을 함께 보내고 있긴 하지만 도휘는 부족했다.

“글쎄요, 저는 호랑이가 아니라 여우라서… 암호랑이의 발정 향까지 세세하게 맡지는 못했습니다.”

“내 암컷은 여우다.”

“예에?”

대범은 대경실색했다. 호랑이와 여우가 붙어먹는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본다. 하지만 종이 다른 수인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발정기를 같이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기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대범이 진짜 놀란 이유는 제 앞에선 천하를 누비는 암호랑이인 척하던 소화가 실은 저와 같은 붉은 여우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 믿을 여우 하나 없다더니…. 어억!”

대범이 중얼거리자 도휘가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고 다시 등을 짓눌렀다.

“그, 여우들이 워낙 예민하다 보니 주위 여건에 따라 발정이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하고 그럽니다. 왔는지도 모르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계절도 있고요.”

여우의 발정기가 짧다는 건 도휘도 알고 있었다.

“그분께는 나리 냄새만 가득했고… 발정 향은 전혀 맡질 못했습니다요.”

이유가 무엇일까. 고심하던 도휘는 대범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재빨리 일어선 그가 다급히 안주머니를 뒤졌다.

“저어, 이것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눈앞에 작은 약병이 내밀어졌다. 도휘는 이를 받진 않고 의아한 듯 내려다보았다.

“개박하 풀입니다. 여우에게는 환각제나 다름없는 물건입지요.”

“내 암컷에게 환각제를 먹이란 말인가?”

“아이쿠, 아닙니다. 인간들이 적적하면 곰방대를 물듯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풀입니다요. 갖고만 있어도 기분이 붕 뜨고 몸을 비비고 싶어지지요.”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우울하고 식욕이 부진한 여우에게 즉효가 있어 갖고 다니던 것입니다. 정력 보강에도 쓰이고요.”

“먹는 건가?”

“아닙니다. 그냥 뚜껑만 열었다가 닫으시면 됩니다.”

신기한 물건이었다. 무슨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여 도휘는 약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었다.

“그것만 있으면 어떤 여우라도 단번에…. 캬앙!”

괴상한 신음을 터뜨린 대범은 갑자기 약병을 든 도휘의 손에 달려들었다.

“좋다…. 좋아…! 개박하 좋아!”

눈이 풀린 채 얼굴과 목덜미를 마구 비벼 대는 꼴이 금수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병을 코에 가까이 들이대자 대범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여우로 변해 버렸다.

“캐갱…. 개박하 최고! 개박하가 좋아!”

대범은 도휘의 손목에 뱀처럼 매달려 온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 꼴이 가련하기도 하고 어쩐지 어이가 없어서 도휘는 환각에 빠진 여우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득도하여 구미호가 되겠다더니. 한참 먼 얘기 같았다.

개박하 풀이라, 어쨌든 좋은 물건을 얻었다.

도휘는 여전히 몽롱한 대범을 들고는 암자로 찾아갔다.

마침 암자에는 스님이 있었다. 얼마 전 이황산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사냥꾼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었다.

그가 언짢은 눈으로 도휘를 힐끔댔다. 날벼락을 맞아도 모자란 저 호랑이는 극악무도한 놈이었다. 평소에는 알은체도 않는 안하무인이기에 이번에도 어떤 목적이 있어 제게 찾아온 게 분명했다.

“에헴, 어쩐 일이십니까. 필요한 건 이미 드렸을 텐데요. 더는 제게서 빼앗아 가실 게 없습니다.”

또 무엇을 강탈해 가려고 왔느냐 묻자, 도휘가 들고 있던 붉은 여우를 법당에 휙 던졌다.

“네놈 입가심이나 해라.”

캐갱! 도르르 몸을 굴린 여우는 제정신이 아닌 듯 ‘개박하 좋아…. 개박하 최고야….’ 하며 채신머리도 없이 바닥에 몸을 비벼 댔다.

“알아서 해. 삶아 먹든지, 구워 먹든지.”

발칙한 그 여우의 행태를 눈으로 좇던 스님이 황당무계하여 돌아보았다.

“이것이 무엇….”

하나 제 할 말만 끝낸 도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

구운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으며 뒹굴뒹굴 서책을 읽던 소화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킁킁…. 킁.”

뭐지, 이 좋은 냄새는? 말초를 자극하는 신묘한 향에 그만 여우 귀가 튀어나왔다. 목을 쭉 뺀 소화는 사방을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문밖이었다. 침을 꼴깍 삼킨 소화는 벌떡 일어나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확 밀어젖히려는 그 순간, 먼저 문이 열렸다.

“에구머니!”

문고리를 쥐고 있던 그녀가 덥석 끌려가 도휘의 품에 안겼다. 동시에 코로 들이닥친 엄청난 향기가 소화의 머릿속을 꿰뚫듯이 잠식했다.

향긋한 냄새! 이 향기의 근원이 바로 도휘였다.

“으흥.”

그만 꼬리가 튀어나온 소화는 몽롱한 눈으로 도휘를 올려다보았다. 제 이상한 반응에도 그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저 눈썹만 으쓱할 뿐이었다.

“좋은 냄새….”

도휘의 좋은 냄새! 나한테 다 묻히고 싶어!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소화가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퉁퉁하고 풍성한 검은 꼬리가 그의 눈앞에서 살랑살랑 움직였다.

제 것과는 전혀 다른 그 예쁜 꼬리를 쳐다보던 도휘가 이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떡은 다 먹었어요?”

“으흥….”

소화는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 안을 둘러보자 튀기듯 구운 가래떡은 반이 없어졌고, 어렵게 구해 온 석청은 이미 동이 나 있었다. 피식 웃은 그가 떡과 꿀, 소화가 뒤적거린 서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리저리 움직이자 소화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허리에 꼭 붙어 있다가 주섬주섬 등짝에 가 붙었다. 그러곤 도휘의 뒷덜미에 제 볼을 비비며 그러는 것이다.

“도휘 너무 좋아…. 도휘 최고야….”

도휘가 움찔하며 손을 멈췄다. 나른한 그녀의 목소리에 고막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실제로 겪으니 온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내 거…. 도휘 다 내 거야….”

온 얼굴을 비벼 대던 소화가 그의 귀와 목을 핥기 시작했다. 끈적한 몸짓은 아니지만 그를 흥분시키기엔 충분했다.

“이리 와요.”

뒤에 붙은 그녀를 한 팔로 휘감아 온 순간이었다. 소화의 형체가 스르르 사라지더니, 그의 손아귀에 남은 건 하얀 여우뿐이었다.

“하….”

그의 입에서 탄식 같은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개박하 풀을 온몸에 묻히려다가, 소화가 단숨에 여우로 변해 버릴까 봐 욕조에 조금만 풀고 그 물에 몸을 담갔다. 아주 극소량이었다. 전혀 반응이 없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갸앙…. 도휘 좋아…. 도휘 내 거야!”

숯처럼 새까만 네발이 버둥거렸다. 손에 힘을 풀자 소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르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 위에 서서는 그의 얼굴에 주둥이를 비볐다.

“도휘 너무 좋아…!”

그의 입술과 턱을 할짝대는 생생한 촉감에 도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텄다. 오늘은 글렀다.

도휘는 얌전히 이부자리를 폈다. 베개는 당연히 하나였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도휘가 금침에 눕자, 한참 그의 얼굴을 할짝대던 여우는 이제는 목덜미를 킁킁대다 그의 옷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널찍한 가슴팍에서 팽이처럼 뒹굴뒹굴 몸을 굴리기 시작했다.

발톱이 사뭇 따가웠지만 도휘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전부 다 제 업보였다.

제 냄새를 묻히는 소화가 불편할까 봐 상의를 벗어 주자 소화는 신이 난 듯 컁컁거리며 복근 위에서 날뛰었다.

“도휘 너무 좋아! 도휘 냄새! 좋은 냄새!”

가느다란 네 다리로 사뿐히 뛰어올랐다가 가볍게 착지하며 검은 꼬리를 살랑댄다. 새하얀 몸통에 검은 물이 든 귀. 쫑긋쫑긋 움직여 대는 그 커다란 귀가 무척 귀여웠다.

도휘의 얼굴에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인간의 모습인 소화도 정말 예쁘고 귀엽지만 여우 소화도 만만치 않았다.

조심스레 손을 가져간 도휘가 그녀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천천히 몸을 쓸어 주었다. 비단보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은 황홀할 정도였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여우가 나타났을까?

어느덧 흥분이 가신 소화가 잠잠해졌다. 그의 가슴팍을 왔다 갔다 하더니 앉아서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난리를 피웠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주둥이를 깊게 처박고 있으니 완전히 털 뭉치 같았다. 하얗고 까만 털 뭉치. 그 촉감이 너무 부드러워 도휘는 손을 뗄 수 없었다.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

가만히 만져 주고 있으니 어느새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소화가 잠들었다.

어쩐지 이런 겨울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도휘는 눈을 감았다.

***

이른 새벽. 도휘의 가슴팍에 누워 까무룩 잠들어 있던 소화는 등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번쩍 눈을 떴다.

“좋은 꿈 꿔라, 좋은 꿈 꿔라.”

“…….”

한눈에 들어온 풍경이 가관이었다. 죄 풀어 헤쳐진 도휘의 상의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고, 매끄럽던 그의 피부에는 제 발톱 자국인 게 분명한 상처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그걸 보자 지난밤의 기억들이 선명해졌다. 한눈에 사태를 파악한 소화는 질끈 다시 눈을 감곤 잠든 척했다.

‘아이쿠, 이게 무슨 일이람!’

지난밤, 이성을 잃은 소화는 그만 여우로 변해 버렸고 그 사랑스러운 냄새를 제 몸에 묻히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미쳤어, 미쳤어! 채신머리없이!’

가뜩이나 도휘 앞에서 온갖 창피를 당하여 위엄을 잃은 마당에 그런 못 볼 꼴을 보였으니 이제 저 녀석이 저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 것인가!

낯짝이 뜨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살이 뻗친 게야. 틀림없어!’

망신살! 망신살이 분명하다! 접시 물에 코 박고 딱 죽고 싶었다.

“우리 강아지가 벌써 깼나 보네.”

움찔한 소화는 갓 일어난 척 하품을 하며 실눈을 떴다.

“하암….”

“좋은 꿈 꿨어요?”

“그래. 넌 잘 잤니, 도휘야. 일찍 일어났구나.”

창피한 마음에 소화는 지난밤 일은 시침을 떼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악몽은 안 꾸나 봐요. 다행이네.”

눈곱을 떼어 주고 침 자국을 닦아 주고 머리를 살살 만져 주는 손길이 무척 다정했다. 하지만 소화는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창피스러워서 그런지 몸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우리 여우가 더운가. 왜 이렇게 열이 나지?”

도휘도 이를 느낀 듯 그녀의 앞발과 주둥이, 코를 조몰락거리는 그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소피가 마렵구나. 뒷간에 좀 다녀와야겠다.”

“같이 가 줄까요.”

“괜찮단다.”

“그럼 얼른 갔다 와요.”

더 붙잡을까 무서워 스르르 도휘의 손을 빠져나온 소화는 그길로 밖을 뛰쳐나갔다.

발길이 닿은 곳은 뒷간이 아니라 암자였다. 더는 망신당하지 않게 살을 거두는 기도를 올려 달라고 스님께 부탁드릴 생각이었다.

“스님! 스님!”

마침 마당을 쓸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에 소화가 부리나케 그 앞으로 달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자네가 무슨 일인가?”

“스님, 부탁이 있어서 왔사와요.”

“부탁?”

여우 소화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귀여운 자태에 스님은 내심 웃고 말았다.

“무슨 부탁인가?”

“제 팔자에 망신살이 크게 뻗친 것 같습니다, 스님. 창피해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 제발 도와주시어요.”

기도를 해 달라는 부탁에 스님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기력이 쇠하여 그럴 수 없네. 이번 겨울에는 자리를 비울 것이야.”

“네에? 어디 다치셨어요, 스님?”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는 그녀의 머리 위에 거대한 호랑이가 덧입혀졌다. 도휘를 떠올리니 어쩐지 발칙하여, 스님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자네 낭군에게 물어보게!”

갑작스러운 노기에 화들짝 놀란 소화가 뒷걸음질 쳤다.

“스, 스님. 눈이…. 눈이!”

스님의 동공이 냉혈 동물의 그것처럼 세로로 길게 변했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못 볼 것을 보았다. 소화는 깨갱하며 줄행랑을 쳤다.

순식간에 저 멀리 도망친 여우의 뒷모습을 보고 스님은 입 안이 씁쓸했다.

저 겁 많은 여우는 이제 이 암자에 두 번 다신 발을 들이지 않겠구나.

충성스럽게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는 꼴 보기 싫은 그 호랑이를 더는 안 봐도 된다. 스님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왠지 섭섭했다.

그때,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다녀갔습니까?”

대범이었다. 스님이 차려 준 절밥을 얻어먹고 곤히 잠들었던 대범은 공기 중에 흩어진 야릇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호랑이 각시가 다녀갔다네.”

“그렇다면….”

전에 본 그 앙큼한 여우였다. 그녀에게 얼굴도 보이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기에 대범은 급히 몸을 낮추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소화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킁킁…. 저절로 코를 벌름대던 대범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니, 이건!’

예년과 달리 제 암컷의 발정이 늦는다며 걱정하더니, 개박하 풀의 효력이 있었나 보다!

“쯧, 나도 수행이 더 필요하구만….”

스님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불당으로 향했다. 대범은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야릇한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불공을 드리기 위해 스님의 뒤를 따랐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천둥 번개가 내리칠 것처럼 검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암탉과 그 뒤를 따르는 병아리들이 쪼르르 걸어가는 걸 보고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나도 예쁜 아기들을 갖고 싶어.’

평소엔 별생각이 없다가도 겨울만 되면 습관처럼 외로워졌다. 혼자보다는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에 소심하게 집 앞에 영역 표시를 하고 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도휘와 아무리 운우지정을 나눈다 해도 황새는 아기를 물어 오지 않을 것이다.

“도휘야, 우리도 아기를 갖는 방법이 있다고 저번에 그러지 않았니?”

아궁이 앞에서 정성껏 자라탕을 끓이고 있던 도휘가 부엌 문간을 돌아보았다. 소화가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며 쭈뼛쭈뼛 물었다.

“우리 같은 불임 부부에게 꼭 맞는 영험한 보주가 있다고 네가 그랬는데…. 그거 언제 구할 수 있니?”

“여의주?”

“그게 여의주였니?”

다 알면서도 소화는 시침 떼며 되물었다.

“에구머니, 분명 이무기가 애지중지할 터인데 그걸 어디서 빌려 올 수 있담….”

“이미 당신이 먹었어요, 소화.”

“무어? 내가? 언제?”

사경을 헤맬 때 먹였노라 알려 주자 소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휘의 옆에 가선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은 그녀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나도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게야?”

더운 숨이 그의 목가에 닿았다. 소화의 체온이 평소보다 훨씬 높아서인지 눈가가 불그스름했다.

“그럼요. 어쩌면 이미 아기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정말이니? 그걸 어떻게 알아?”

짙어진 도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부터 목덜미를 훑고 내려갔다. 멈춘 곳은 소담히 부푼 소화의 젖가슴이었다.

“아기를 가지면 젖이 나온대요.”

어찌나 집요하게 쳐다보는지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도 제 나신이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아 부끄러워진 소화는 슬그머니 두 손으로 제 앞을 가렸다.

“보여 줘요. 젖이 나오는지.”

나지막한 그 목소리는 명령을 하듯 단호했다. 소화가 우물쭈물하자 그가 ‘어서.’ 하고 재촉했다.

그녀를 직시하는 샛노란 안광과 시선이 얽히자 저절로 두 무릎이 조여들고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다.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울림이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소화는 꾹 눈을 감았다. 잠자리에서 버릇이 들었는지 그의 말을 어기기가 어려웠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앞섶을 풀어 헤쳤다. 그의 눈앞에 젖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니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몸이 떨려 왔다.

“아!”

차가운 손이 가슴을 받치듯 움켜쥐었다.

“젖꼭지가 발딱 섰어요.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검지가 유륜을 덧그리듯 움직였다. 앵두알 같은 젖꼭지를 입에 물고 싶은 욕망을 뒤로하고 도휘는 느리게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평소보다 훨씬 빨리 달아오른 소화가 벌써 숨을 할딱이는 게 들렸다.

“정말 여기서 젖이 나오려나.”

눈송이처럼 차가운 손가락이 마침내 유두에 닿았다. 소화가 작은 동물처럼 앓기 시작했다.

“으응…. 도휘야, 도휘야….”

쥐어짜듯 젖꼭지를 비틀자 소화가 고개를 젖히며 신음했다. 드러난 젖가슴을 유린하듯 양쪽을 번갈아 꼬집어 주자 소화가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아직 아이를 갖지 못했나 봐요.”

이윽고 도휘가 아무 일 없단 듯이 손을 거두고 저고리를 여며 주자 소화가 그 손을 턱 붙잡았다.

“도휘야. 나, 나….”

흐릿하게 풀린 동공 아래 붉은 입술이 재잘대듯 움직였다.

“나, 아기를 갖고 싶어. 얼른, 얼른….”

제 입으로 원하는 걸 말하지 않으면 이 짓궂은 호랑이는 절대 그것을 주지 않는다. 농탕한 정사에서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이었다. 귀가 빨개진 소화는 어렵게 다시 입술을 열었다.

“씨물을… 내게 씨물을 뿌려 주겠니.”

소화가 큰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지만 도휘는 심보가 못됐기로 유명한 호랑이였다. 평소 소화가 하듯이 모른 척 놀란 듯이 눈썹을 올렸다.

“어디다가.”

소화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촉촉해진 눈망울로 간절히 그를 응시했다.

“저번처럼 얼굴에 싸 주면 되나. 예뻤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색기 어린 얼굴이 오늘따라 더 잘난 사내 같아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어디에 싸 줬으면 좋겠어요.”

“…….”

꾹 다물린 소화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원망 어린 눈으로 그를 째려보던 그녀가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됐다! 됐어! 나가서 참한 수여우나 찾으련다!”

서러운 그 목소리에 도휘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문간을 나가려는 그녀를 채 가듯이 뒤에서 안아 들었다.

“꺄악!”

“가긴 어딜 가.”

“이거 놔아!”

그녀가 발버둥치자 도휘가 웃으며 엉덩이를 도닥였다. 성큼성큼 안방으로 향하는 걸음이 다급했다.

“나 있잖아요. 당신 거.”

“흥!”

“놀려서 미안해요, 소화. 기분 좋게 해 줄게요. 나 용서해 줘, 응?”

살살 달래는 목소리에 소화는 입술을 삐죽댔다. 한참 어린 것이 이따금 저를 놀리듯이 손 위에서 굴리는 게 얄미웠다.

“기대해요. 다시는 딴 놈 찾으러 간단 소리 못 하게 해 줄 테니까.”

그의 입가에 즐거운 웃음이 걸렸다. 여유로운 척했지만 실상 조금도 그렇지 못했다.

드디어, 도휘가 애타게 기다렸던 소화의 발정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온몸에서 황홀한 단내가 풀풀 풍겼다. 얼른 옷을 벗기고 코를 박고 싶었다. 저 부드러운 몸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도휘는 살결을 잘근잘근 깨물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

잡아먹을 듯 입을 맞추고, 한참이나 젖꼭지를 유린하던 그가 배 밑으로 손을 넣곤 단번에 소화를 뒤집었다.

“꺅!”

놀란 숨을 삼키는 그녀의 위를 타고 오른 도휘가 목뒤를 핥으며 낮게 신음했다.

“확실히 냄새가 달라. 내 여우가 진짜 발정이 났나 보네.”

아랫배를 더듬던 커다란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가 음핵을 살짝 굴리다가 톡톡 두드렸다. 그 손길에 맞춰 소화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도휘는 손끝에 힘을 준 상태로 압박을 가하며 천천히 내려가 질구를 문질렀다.

“여기도 벌써 홍수가 났고.”

그 말대로 흥건할 정도로 찐득한 꿀물이 손에 묻어났다. 도휘는 그 액을 펴 바르듯 요도구와 음핵까지 위아래로 문질렀다.

“계속 흘러나오는데… 내가 만져 주니까 좋아요?”

창피해진 소화는 대답을 피하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 너는 언제 발정기가 오는 거니?”

웅얼거리듯 묻자 도휘가 즉각 대답했다.

“난 당신 때문에 계속 그 상태예요, 소화.”

‘저번에 봤잖아.’ 하고 속삭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매일 밤 당신을 범하는 상상을 하면서 쌌어요. 예쁜 이 얼굴에도 싸고, 음탕한 이 보지에도 싸고.”

여기라고 가리키듯, 꽉 다물린 질구를 매만진 도휘가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몰랐구나. 나 발정 난 거.”

“으응, 근데 왜….”

안 넣어 주니?

혼자 애가 단 소화가 발끝을 세워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었다. 이미 배꼽에 올라붙은 그의 흉기가 엉덩이 사이에 닿았다. 평소라면 쳐다보기도 민망하고 남사스러워 꺼려 했을 텐데. 그의 말대로 오늘은 뭔가 달랐다.

“빨리 박아 달라는 건가, 이거.”

“으응….”

“음탕한 여우였네. 보지를 이렇게 다 적시고.”

도휘가 만지기만 하고 넣어 줄 생각이 없자 소화는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옥문에 비벼 댔다. 미약한 쾌감이지만 그마저도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좋았다.

이를 저지하듯 도휘가 무릎으로 그녀의 가랑이를 넓게 벌렸다. 그러곤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뒤로 붙잡았다. 자연스레 그녀의 양어깨가 바닥에 닿았다. 엉덩이만 치켜세운 자세였다.

“잘 벌리고 있어요.”

손으로 볼기짝을 붙잡게 한 도휘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곧장 고개를 파묻었다.

“아, 안 돼…!”

뭉클한 촉감이 질구에 닿자 소화는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아래를 내주었다. 오늘도 곧바로 안 넣어 줄 줄 알았다. 도휘는 삽입만큼이나 이 과정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즐겁게 빨아 댈 리가 없었다.

“아! 아응!”

엉덩이를 벌린 것으로 모자라 음부의 살을 완전히 열어젖힌 그가 질구에 대고 혀끝을 세워 푹푹 찔러 댔다. 애액이 잔뜩 흘러 척척한 소리가 울렸다.

“음, 맛도 좀 다른 것 같아요. 더 달아.”

평소보다 집요하게 안으로 파고드는 혀 때문에 소화의 몸이 굽어졌다. 도휘는 그런 그녀의 허리를 내리누르며 엉덩이를 더 들게 하고 뒤에서 구멍을 벌리고 안을 탐하길 계속했다.

“빨리…. 흐응…. 빨리 넣어 줘… .넣어 줘….”

소화가 애원했지만 도휘는 손가락 하나 넣어 주지 않았다. 그저 질척한 애액이 바닥으로 한 방울씩 궤적을 그리며 떨어질 때까지, 한참이나 혀로 음부를 희롱했다.

“아응…! 그만…. 이건 그만해!”

넣어 달라 안달하던 그녀가 마침내 몸을 뒤집으려 했다. 누워서든 앉아서든 서로 마주 보며 삽입하는 체위만 해 왔기에 당연한 몸짓이었다.

“흑…. 넣어 줘…. 넣어 달란 말이야!”

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그를 떼어 내려 엉덩이를 흔든 그녀가 반항하듯 금침에 축 늘어졌다. 그러곤 훈련받은 짐승처럼 몸을 바로 돌리려 하자 그가 소화의 등을 내리눌렀다.

“엄청 보채네, 내 여우가.”

“배 속이 간지러워서 미치겠다구…. 더는 못 참겠다, 도휘야. 제발….”

금방이라도 몸을 돌리려고 다리를 뒤튼 소화가 애원하듯 뒤로 그를 올려다봤다.

“제발, 제발 빨리… 빨리 넣어 줘.”

한껏 볼이 달아오른 그녀가 달뜬 숨을 헐떡였다. 나직한 웃음을 흘린 도휘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매만졌다. 그러다 다소 거칠게 그녀의 음부를 움켜쥐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아!”

“내가 뭐랬어.”

그가 으르렁거리듯 목을 울리며 잘근잘근 소화의 귀를 씹었다.

“발정 나면 뒤에서 박아 준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뒤에서 박혀 들어왔다. 퍽! 깊이 짓쳐들어온 흉기에 소화가 비명을 내질렀다.

“후….”

그대로 멈춰 선 도휘가 고개를 젖히며 억지로 사정감을 참아 냈다. 흥분한 그녀의 내부가 잔뜩 부풀어서 조임이 상상 이상이었다.

무릎으로 가느다란 다리를 툭툭 쳐 최대한 벌리고 선 그가 엉덩이를 쥐고 찢을 듯 당겼다. 뒷문의 꽃주름이 오물대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조이지 마요. 당신이 갈 때까지 안 쌀 거니까.”

“아, 안, 안 그래…. 흐읏!”

천천히 뒤로 물렸다가 다시 퍽! 들이박는 몸짓에 소화는 엎어지듯 흔들렸다.

“아…. 너무 조여. 씨발, 이게 누굴 잡아먹으려고.”

저도 모르게 거친 욕설을 내뱉은 도휘가 손자국이 날 정도로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곤 기어코 뿌리까지 퍽! 박아 넣자 소화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아! 아흐…. 깊어, 도휘야, 너무 깊어…!”

우유처럼 뽀얗고 매끈한 그녀의 팔이 뒤를 휘적거리며 그의 허벅지를 밀어 냈다. 하지만 이미 흥분의 정점에 달한 도휘는 그 팔마저 움켜쥐곤 거친 방아질을 시작했다.

“아! 아읏! 아! 너, 너무 깊어! 도…. 아!”

딱딱한 장골이 그녀의 엉덩이에 부딪치며 쿵, 쿵, 쿵 속을 찧어 댔다. 뭉툭한 귀두가 좁은 내부를 가르고 들어와 자궁 입구를 들이박고 다시 질벽을 긁으며 빠져나갔다.

비명 같던 신음은 어느새 참을 수 없는 교성으로 바뀌었다. 깊은 질 주름이 그의 울퉁불퉁한 성기를 쥐었다가 뱉어 내길 반복했다.

퍽퍽퍽, 강한 허릿짓에 금방 절정에 오른 소화가 얼굴을 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질구가 그의 양물을 터뜨릴 듯 죄어 댔다.

“하….”

인상을 찌푸린 도휘가 긴 한숨을 터뜨렸다. 좁은 길을 사정없이 짓쳐들어오며 그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엎어진 상체를 일으켰다.

힘없이 들려진 가느다란 몸은 어린 사슴을 연상시켰다. 제게 목을 물리고 바르르 떠는 사냥감. 그가 오소소 솜털이 일어난 가냘픈 목덜미에 다정히 입을 맞추며 읊조렸다.

“구멍이 환장을 한다. 진작 뒤에서 박아 줄 걸 그랬지.”

샛노란 눈동자가 흉흉한 안광을 번뜩였다. 머리끝까지 흥분한 도휘가 허리를 쳐올리며 저급한 말을 마구 지껄였다.

“지금 네 보지가 얼마나 벌렁대면서 조이는지 알아?”

“흐윽…. 아! 아아! 흐으…!”

“내 거 터지겠어.”

그녀의 뒷머리를 쥔 도휘가 손에 힘을 주곤 사납게 고개를 뒤로 젖혀 벌어진 입술을 삼켰다. 까칠하게 가시가 올라온 혀가 그녀의 입 안을 누볐다. 점막을 핥고, 빨아 대며 소화의 보드라운 혀에 계속 비볐다.

“으응! 아앙…. 흐으…!”

거친 촉감에 놀란 소화가 움찔대자 도휘는 더 흥분했다. 한참을 쫓아다니던 사냥감이 그의 앞에서 겁에 질려 달달 떠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읍!”

쾅! 귀두까지 뽑아냈다 단숨에 뿌리까지 깊게 박아 대자 소화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또 한 번의 절정이었다.

위로는 달콤한 그녀의 타액을 빨아들이고, 아래로는 쾅, 쾅 쉴 새 없이 성기를 박아 대던 도휘가 그녀의 목구멍이 할딱대는 걸 보곤 마침내 입술을 떼어 냈다. 안쓰러울 정도로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숨 쉬어요.”

볼에 입을 맞추며 머리채를 놓아주자 그녀가 쓰러지듯 엎어졌다. 긴 머리카락이 수묵화처럼 등에 흐트러졌다. 어깨뼈가 드러난 가녀린 등짝은 가파르게 위아래로 헐떡였다.

이가 가렵다. 저 매끈한 피부를 물고 싶었다. 저 팔뚝을, 어깨를, 목덜미를, 귀, 입술….

가슴을 터뜨릴 듯 움켜쥔 도휘는 얕은 추삽질을 반복하며 그녀의 목덜미와 등까지 쪽, 쪽, 입을 맞추며 내려왔다. 다른 손으로는 음핵을 둥글리자 쾌락에 울고 있던 소화가 자지러지며 몸을 비틀었다.

“엉덩이 들어야지. 아직 안 끝났어요.”

“으흑…. 흑….”

“금방 끝낼 수 있나. 이렇게 환장하고 좋아하는데.”

손쉽게 그녀의 엉덩이를 들어 올린 도휘가 예민한 음핵을 짓누른 채 문지르며 깊숙이 귀두를 박고 구멍을 넓히듯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러다 빠르게 뽑아내곤 다시 박았다가 허리를 둥글리길 반복했다.

그게 어떤 신호인지 모를 수 없었다. 엉덩이만 치켜든 채 그를 받고 있던 소화가 도리질 치며 도망치려고 바닥을 기었다.

“아!”

엉덩이를 단단히 붙든 그가 벌주듯 쾅! 박은 채로 허리를 흔들었다.

“싸 달라며.”

“아아! 아흣!”

“어딜, 가려고.”

민감해진 내부가 쿵쿵 울려 댔다. 소화는 떠밀려 오듯 찾아온 세 번째 절정에 허우적거렸다. 그가 쉬지 않고 잔인하게 박아 댈 때마다 질벽이 울려 얕은 자극이 계속됐다. 누군가 머리를 휘젓는 듯한 강렬한 쾌락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질 입구가 벌름댔다. 그의 것을 문 채로 샘이 터졌다. 소화의 허벅지를 타고 끊길 듯 가는 물줄기가 흘렀다.

동시에 자궁 깊숙이 귀두를 박은 그의 흉기가 부풀기 시작했다. 내부가 꽉 차는 느낌에 소화가 그의 팔을 내려쳤다. 도휘는 멈추지 않고 잔인한 허릿짓을 계속했다.

“아아아!”

끝내 버티지 못한 소화의 다리가 무너졌다. 풀썩 엎어져 누워 버린 그녀의 위에서 도휘가 엉덩이를 벌려 잡곤 아래로 무게를 실어 쿵, 쿵 안을 찍어 내렸다.

“아! 아! 아아!”

몸을 꿰뚫는 벼락같은 쾌감이 전신을 강타했다. 갓이 부풀어 더는 빠지지 않는 귀두가 난폭하게 내부를 찧어 댔다.

지나친 쾌락에 발버둥 치던 소화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엄청난 절정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앞이 하얗게 질린 소화는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쾌감에 질식했다.

“후우…!”

질벽이 파정을 조르듯 꽉꽉 물어 댔다. 마침내 도휘가 씨물을 내뿜었다. 오래 참았던 만큼 폭발하듯 강한 사정이었다.

“빼, 빼 줘! 빼 줘, 도휘야…! 제발… 으흣!”

내벽을 찌르는 세찬 물줄기에 소화가 경련하듯 엉덩이를 비틀었다.

“그만! 제, 제발…. 아응! 빼 줘…!”

고개를 흔드는 소화의 턱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어 올린 도휘가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크르르르…. 한결 진해진 소화의 향기를 맡으며 절정을 음미하는 그의 신음이었지만 소화에겐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아흑.”

살을 잘근거릴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느껴졌다.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아 올리는 까칠한 혓바닥 때문에 그가 호랑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손끝까지 바짝 얼어붙은 소화는 고스란히 도휘의 끝나지 않는 방아질을 받아 내야 했다.

파정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소화의 위에서 그가 천천히 흉기를 잡아 뺐다. 갓이 입구에서 턱 걸리는 느낌에 소화가 화들짝 허리를 튕겼다.

그가 완전히 빠져나가고, 뻥 뚫린 느낌에 구멍이 움찔거렸다. 뭔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질척한 정액이, 음핵을 타고 앞으로 흘렀다.

돌연 도휘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왜… 왜 그러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화가 호기심이 일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이 없어 무슨 일인지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은 도휘가 단번에 소화를 일으켜 제 무릎에 앉혔다.

“꺄앗.”

거칠게 시야가 돌려진 그녀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는 경대가 있었다. 뒤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도휘의 위에 제가 올라앉아 있었다.

단단한 팔뚝이 그녀의 오금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엉망이 된 다리 사이가 훤히 보였다.

“아까운 걸 다 흘리고 있잖아요.”

그의 말대로 입구에서 허연 씨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휘가 한참이나 들락거렸던 작은 구멍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처럼 벌어져 힘겹게 뻐끔거렸다. 그때마다 울컥, 멍울진 정액이 안에서 토해졌다. 붉게 달아오른 음부가 정액으로 온통 범벅이었다.

충격적인 광경에 소화의 눈이 벌어졌다. 세상 더없이 음탕한 모습이었다.

“기껏 싸 줬더니 잘 물고 있지 않고.”

쯧, 짧게 혀를 찬 도휘가 그녀의 두 다리를 한 팔로 모아 안고 다른 손으로 기둥을 맞췄다.

드문드문 씨물을 묻힌 그의 양물이 여전히 딱딱하게 발기한 채 서 있는 모습이 퍽 흉물스러웠다.

“아…. 안 돼…!”

몸을 뒤틀었지만 두 다리가 도휘의 손에 잡혀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회음부에 흘러내린 정액을 귀두로 퍼 올린 그가 다시 질구에 퍽! 기둥을 처박았다.

“아!”

“잘 봐요. 나한테 박힐 때 당신이 얼마나 예쁜지.”

“으응! 아! 흐으…!”

“진짜, 후, 잡아먹고 싶어.”

소화는 몸이 반으로 접혀진 채 그의 품에서 박히기 시작했다. 전보다 깊은 삽입에 기절할 것 같았지만 도휘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신음하는 바람에 바짝 긴장해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하, 귀여운 내 여우.”

“아흐…!”

경대에 비친 제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접합부는 하얀 거품이 일어 미끈거렸고,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은 죄 풀어 헤쳐져서 들썩일 때마다 함께 나풀거렸다.

“당신이 매일 발정기였으면 좋겠어요, 소화. 이 짓은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으니까.”

즐거운 듯 입술을 치켜올리며 색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도휘가 낮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

꿈속이었다. 도휘의 손을 잡고, 함께 이황산을 오르던 소화는 순간 물컹한 걸 밟았다.

‘이게 뭐지?’

발밑을 살펴보려는데, 마침 땅이 갈라졌다. 도휘는 저쪽으로 멀어지고, 소화는 그에게 간절히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때 갈라진 땅속에서 어마어마한 구렁이가 튀어나왔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을 가진 검은 구렁이였다. 어찌나 거대한지 굵기가 사람 몸통만 했다.

“여의주 내놓아라…. 내 여의주…!”

놀라서 나자빠진 소화의 코앞에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구렁이가 휙 몸을 돌렸다.

“이 천벌받을 몹쓸 호랑이 놈!”

구렁이가 노여워하며 소리치자 천지가 울렸다. 동시에 도휘는 그 자리에서 날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안 돼! 안 돼애애애!”

호랑이의 사체를 보고 비명을 내지른 소화가 구렁이에게 달려들었다. 구렁이는 껄껄 웃으며 여유롭게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소화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제 허물을 벗었다.

희끄무레한 껍질이 스르르 땅에 쏟아졌다. 정확히 구렁이 모양의, 비늘이 있던 자국까지 선명한 끔찍한 허물이었다.

예전에 제가 스님을 찾다가 동굴 안에서 본 바로 그것.

이무기가 탈피한 몸 껍질!

“꺄아악!”

비명과 함께 번쩍 눈을 뜬 소화는 황톳빛 천장을 보고 놀란 숨을 내쉬었다. 제 방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집이에요, 소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소화가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밖에서는 또 비가 내리는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우르르 쾅쾅 번개가 내리쳐 어두운 방 안을 하얗게 물들었다. 도휘의 금색 안광이 함께 번쩍였다.

“호랑이 꿈을 꿨어요? 많이 무서웠어요?”

“…….”

소화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하늘에서 내린 날벼락을 맞고 죽은 도휘의 모습이 도무지 잊히질 않았다. 잔인한 죽음이었다.

‘우리 도휘…. 우리 도휘가….’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도휘가 가끔 짓궂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벼락 맞아 죽을 만큼 나쁜 호랑이는 아니었다.

“…또 내가 나왔나.”

자책하듯 읊조린 그가 소화를 꼭 끌어안고는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아직도 흉몽을 꿔서 큰일이네, 우리 여우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소화가 휙 옆을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네가 나오는 게 왜 흉몽이니? 네가 아니야!”

순간 말문이 막힌 도휘가 일렁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휘야, 여의주를 대체 어떻게 구해 온 게야.”

추운 듯이 웅크린 채 떨고 있던 소화가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무기한테 언제 돌려준다고 했니?”

“돌려준다고 한 적 없어요.”

“뭐어? 그럼 이무기가 그 귀한 것을 그냥 줬다는 거야?”

하지만 꿈속의 이무기는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의 원한이 꽤나 깊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받아 온 게야. 그 이무기가 정말 순순히 네게 넘겨줬단 말이야?”

도휘는 집요한 소화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눈썹을 으쓱했다. 태연히 딴청을 부리는 그의 배라먹을 태도에 소화는 내심 깜짝 놀랐다.

‘어릴 땐 저렇지 않았는데.’

얼마나 귀여웠던가? 그 보송한 발이며… 갈색, 검은색 줄무늬에 동그란 눈. 바구니에 넣어 다닐 정도로 예쁘기만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저 녀석이 사람 모습만 고집하더니 그 후부터 묘하게 달라졌다.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해요.”

뱀 같은 손길이 속적삼 안으로 들어왔다. 봉긋한 가슴을 움켜쥐고, 젖꼭지를 유린하듯 툭 튕기는 손길에 화들짝 놀란 소화가 얼굴을 굳혔다.

“안 돼…. 난 못 한다, 도휘야. 정말 더는 못 해.”

꼬박 하루를 그의 것을 꽂은 채 씨물을 받고, 쏟아 내길 반복했다. 소화는 하얗게 질려선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잡아먹으렴. 차라리 나를 잡아먹어, 응?”

“이렇게 귀여운 여우를 어떻게 잡아먹어.”

그가 붉게 멍든 소화의 목덜미를 핥으며 말했다. 고개를 움츠리며 피하는 걸 쫓아가서 잘근 깨물자 소화가 펄쩍 뛰듯이 놀랐다.

“아, 안 돼! 정말 더 못 해. 못 한다, 못 해….”

울먹이는 그녀의 눈가를 핥아 올린 도휘가 ‘알았어요.’ 하고 속삭였다. 달래듯이 엉덩이를 토닥이자 소화가 경기하듯 몸을 굳혔다.

지난밤이 좀 과했나 싶지만… 마음 같아선 일주일도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휘의 즐거움은 하루로 끝이었다. 더는 소화에게서 발정 향이 맡아지지 않았다.

“닦아 줄게요.”

더운물을 받아 온 도휘가 명주 수건으로 그녀의 아래를 닦았다. 속곳이 벌써 제 씨물로 흥건했다. 많이도 쌌다. 게다가 얼마나 깊이 쌌는지 닦아도, 닦아도 정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소화가 긴장한 기색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예민한 곳에 닿는 손길이 지금은 점잖지만 언제 다시 제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지 모른다. 그러다 또 난폭한 정사를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또 한 번만 다른 놈을 운운하면 이렇게 안 끝낼 거야. 정말 가만 안 둬요.”

“…….”

설마 더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소화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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