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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처음에는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본문

쿵푸벳

이황산은 도휘의 달음박질 몇 번이면 산 중턱에 오를 만큼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이런 곳에서 수여우 한 마리 잡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여우나 토끼나 뒷발이 발달한 작은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산꼭대기를 향해 도망친다. 여우 사냥을 즐기진 않지만 도휘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듯, 여우도 본능적으로 포식자를 피해 도망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구렁이나 들개가 아니라 밤마다 거대한 산맥을 넘나들던 맹수 호랑이였다.

“캐갱갱!”

기어코 붙잡힌 수여우가 마지막 발악처럼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 댔다. 풍류의 현을 뜯어내듯 귀 따가운 비명에 도휘는 계획을 바꿔 단숨에 놈을 물었다. 뒷덜미에 이빨을 콱 박아 넣은 채, 확실히 명줄을 끊기 위해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리저리 버둥대던 수여우의 네 다리가 축 늘어졌다. 입 안에 남은 비릿한 피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도휘는 퉤, 하곤 놈을 뱉어 냈다.

감히 제 암컷을 넘보고 유혹하려 한 건방진 놈. 원래는 잘근잘근 뼈째 씹어 먹으려 했지만… 영 맛이 없어서 안 되겠다.

사체를 툭, 툭 성의 없이 발로 굴리던 도휘는 이내 고개를 쳐들고 소화의 냄새를 맡았다.

제 암컷이라서가 아니라 소화의 냄새는 사뭇 특별했다. 작고 귀여운 암여우의 보송보송한 냄새도 있고, 고소한 메추리 육포 냄새도 있고, 또 제 냄새도 질퍽하게 묻어 있다.

그 모든 게 합쳐지면 바로 소화였다.

대체 어디서 그런 귀여운 요물단지가 떨어졌을까.

첫 만남을 수백 번 다시 되뇌어도 그 귀여운 여우는 분명 제 운명이었다.

***

기억을 잃은 척하고 소화에게 눌어붙었지만 도휘는 이미 일천 년을 산 영묘한 호랑이였다.

십이 척이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천하 명산 중 하나인 천문산을 제 것처럼 호령하던 산군님. 천문산의 아들이란 뜻의 ‘천문덕호’가 바로 도휘의 소싯적 이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제 산에서 승천하는 구렁이와 싸움이 붙었다. 자릿세도 내지 않고 천문산에 오랫동안 비비고 앉아 있던 놈이 신령입네 하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심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놈의 꼬리를 콱 물어 버렸다.

결국 구렁이는 승천하지 못하여 이무기가 되었고, 속세를 떠난다며 천문산 깊은 곳에 숨어 제자들을 거느렸다.

그는 덕을 쌓은 구렁이를 괴롭힌 벌로, 철 갑옷 같은 거죽과 숭상받던 옛 이름을 버리고 새로이 태어나라는 상제님의 불호령을 받았다.

상제께선 늘 하시던 말씀대로 그에게 새 이름을 내렸다.

“참으로 아름답고 포악한 호랑이로다.”

그렇게 곤륜산 호랑이 부부에게 점지된 넷째 아들이 바로 도휘(菟徽)였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화복은 도휘에게도 함께 왔다. 금슬 좋고 건강한 호랑이 부부에게 점지되어 태어난 게 복(福)이요, 질투 많은 형님들을 둔 게 화(禍)였다.

귀하지 않은 목숨 세상 어디 있겠냐만 이미 ‘곤륜산 호랑이’라 불리는 도휘의 형님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비범함을 알아보고는 탯줄도 다 떨어지지 않은 걸 검독수리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

하지만 그 검독수리는 도휘를 끝내 잡아먹지 못하고 곤륜산에서 수천 리 떨어진 외진 곳에 놓고 가 버렸다.

눈도 뜨지 못한 채 부모 없는 곳에 홀로 버려졌지만, 제 형님이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먼 곳이었다는 게 어찌 보면 다행일까.

아니, 그것은 소화와 만나기 위한 제 운명이었다.

도휘는 처음 그녀에게 주워지던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아니 이게 뭐지? 귀엽게 생겼는데.”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짐승을 냄새도 맡지 않고 냉큼 주워 들고선 하는 말이 그랬다.

“이놈은 살쾡이야. 분명해.”

천하를 호령하던 이 몸을 감히 그딴 것에 비유해? 괘씸하여 반드시 물어 죽이리라 하고 그 얼굴을 확인하려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무리 신령에 가까운 불로불사의 요괴라 한들 도휘는 갓 태어난 몸이었다. 눈을 뜨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보니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낮이었다. 해님을 등진 채, 저를 안고 있던 소화가 꺄르르 웃으며 목덜미를 간질여 주었다.

“금색 눈동자네. 귀여워라.”

다 익어 흐무러진 산딸기보다도 붉은 입술, 명주 천만큼이나 하얀 얼굴에 머루알 같은 두 눈동자 그리고 새까만 머리칼을 한데 묶은 댕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정체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조막만 한 그 입술을 벌렸다 오므렸다 꺄르르 혼자 웃었다가.

왜 이렇게 작니, 눈은 왜 금색이니, 넌 살쾡이니? 근데 왜 이렇게 검은 줄무늬가 많니. 내가 보이니? 온갖 것을 혼자 묻고 대답하고 궁금해하는 게 퍽 어린애다 싶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로 금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 호기심 많은 요망한 여우를.

“너 왜 자꾸 커지는 거니? 이미 다 큰 게 아니었어?”

다자라기는, 이몸을 어떻게 보고 저런 헛소리를 해 댈까. 바보 같은 게 내 발만 봐도 너보다는 큰데 말이다.

금수와 인간의 모습, 둘 다를 가진 수인 요괴들은 대개 본신의 힘으로 사람의 모습을 갖춘다.

저처럼 거죽이 두껍고 건강하면 사람의 모습도 그러하고, 저것처럼 비실비실하고 자라다 만 것 같으면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저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조그만 게 저를 우습게 여기는가 싶었다.

날렵하고 방정맞은 데다 기껏 오디, 다래 같은 나무 열매나 따 먹는 게 암만 봐도 너구리인데.

한데 변모한 모습을 보니 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보들보들한 몸통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꼬리와 발은 까맣다. 귀에는 끝에만 살짝 검은 물이 들었다.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게 하얀 담비인가 하였는데, 알고 보니 여우였다. 그만큼 크기가 작고 오두방정을 잘 떨었다. 잘 놀라고, 잘 삐치고, 잘 웃었다.

첫인상 그대로 소화는 미련하고, 영 바보 천치 같았다.

‘그러니 나를 주워다가 키웠겠지.’

먹여 주고 재워 준 은인을 언제 잡아먹을까 노리는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귀엽다고 옆에 두는 녀석이 또 있을까? 멍청이같이.

다행히 이 여우는 무리에서 도태된 상태라 깨우쳐 줄 이가 곁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도태된 것들이 대개 그렇듯, 소화는 여러모로 어리숙했다. 여우라기엔 몸집도 족제비와 너나들이할 정도로 작고, 헛발질도 잦은 데다 이빨은 나오다가 말았는지 물려도 영 아프지가 않았다. 당연히 사냥 실력도 형편없었다.

저런 것은 곧 죽는다.

어차피 죽을 거 기왕이면 저처럼 위대한 호랑이에게 먹혀 죽는 게 저 멍청한 여우한테도 영광이지 않을까.

도휘는 정말로 소화를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돌보아 준 은혜 같은 것은 모르는 배은망덕하고 포악한 호랑이였기에 하루빨리 몸이 자라서 저 여우를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이빨이 커지기만을 기다렸다.

한데 암만 보아도 이 멍청한 여우의 하는 짓거리가 제가 다 자라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먹힐 게 분명해 보였다.

몸에 꿀이라도 발라 놨는지 단내는 솔솔 풍기고, 살은 아직 아기인 제 것보다도 말랑말랑해서 쳐다만 보아도 군침이 돌았다.

천문산 산군님 노릇 하던 체면이 있지, 점찍어 놓은 먹이를 놓칠 순 없는 노릇이라. 도휘는 채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열심히 소화를 쫓아다녔다.

한데 제가 점차 무거워지자 이 가녀린 여우가 자꾸만 저를 떼어 놓고 다니려는 게 아닌가?

“안 돼. 무거워서 이제 널 못 데리고 다닌다구.”

아직 콩알만 한데 뭐가 무거워? 하긴 저 밤톨만 한 몸으로 나를 안고 다니려면 무거울지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도휘는 기를 쓰고 소화의 옆에 딱 붙어 다녔다. 그러려면 뛰어야 했다.

“그 보송보송한 네발로 어디까지 따라오려는 거니? 길이 험하단 말이야.”

너나 잘 챙기시지 그래.

제때 못 먹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이 여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호랑이보다도 연약했다. 한번은 산등성이까지 경쟁하듯 뛰어갔다가 며칠이나 호되게 앓아누웠다.

거의 황천길 구경을 하고 와선 홀쭉해진 얼굴이 조금 안쓰러웠다.

‘여우는 원래 육식을 하지 않던가?’

앵두, 능금, 대추 같은 거나 주워 먹으니 저렇게 비실대지. 하긴 달걀이나 겨우 훔쳐 먹는 주제에 사냥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차라리 마을에 내려가서 사람 행세 하며 살 것이지. 한데 그런 주변머리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죽겠구나.

이 건방진 여우는 내가 점찍어 놓았으니 꼭 잡아먹어야 하는데. 다른 놈한테 먼저 잡아먹힐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그 전에 비실대다 혼자 죽어 버리겠구나.

앓아누운 소화의 꼴을 볼 때마다 아주 한걱정이었다.

며칠이 지나 쾌차하고 좀 일어나나 싶었는데, 설상가상 누린내 나는 웬 너구리 놈이 대뜸 나타나서 이 여우에게 친한 척을 하며 저를 갖다 버리라고 종용했다.

“만약 네가 정말 호랑이라면 그때 내다 버리면 되지, 뭐.”

호랑이라면 버리겠다고?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이 여우를 한입에 삼켜 버리기도 전에 먼저 버려질 순 없었다.

어떻게 하면 여우의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먹을 것도 좀 챙겨 주고 싶고, 저 야들한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것도 대신 해 주고 싶고, 먼지 구덩이 속에 얼굴을 박고 비질하는 것도 대신 해 주고 싶은데.

고민하던 도휘는 젖 먹을 힘을 다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러자 멍청한 여우는 크게 안심했다.

“우리는 종이 다르니 서로에게 발정할 일도 없고, 너는 온순하고 착하니 함께 지내도 될 것 같아. 어떠니?”

다 크면 이 여우를 먹어 버리자. 조금만 더 크면 이 바보 같은 여우를 흔적도 없이 뼈째로 삼켜 버리자.

그렇게 마음먹은 지 벌써 20년째였다.

도휘는 끝내 저 여우를 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제가 그 여우에게 흔적도 없이 삼켜져 무시무시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는 무해하고 온순한 집짐승이 되어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돌이켜 보면 세월은 무색하게 흘렀다. 언제부터인지 비몽사몽 갓 일어난 소화의 멍한 얼굴을 보지 않으면 닭이 울어도 아침 같지 않았고, 잠든 소화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에는 밤이 와도 눈이 감겨지질 않았다.

하늘에 뜬 별이 예쁘다 하면 동아줄을 타고 가서 따다 주고 싶었고, 배가 고프다 하면 제 입 안에 든 것까지 모조리 게워 주고 싶었다.

저것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하는 생각은 들질 않고, 온통 먹여 주고 싶은 것들만 늘어 갔다.

“다 크면 보낼 거여요, 스님. 걱정 마셔요.”

소화는 언젠가는 저와 이별할 거라고 공연히 말해 왔다. 하지만 도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못 했다.

그래도 불안감이 커 가는 건 사실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애정이 깊어질수록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은 더 절절히 느껴졌다.

우선 먹는 게 문제였다. 소화처럼 삼시 세끼 인간들 먹는 밥을 먹어도 되지만 도휘는 호랑이로 변해서 직접 사냥하는 걸 선호했다.

먹잇감을 정해서 그놈이 지칠 때까지 데리고 놀다가, 궁지에 몰아넣고 반항하는 걸 제압하여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어 죽이는 맛이 일품이었다. 고기를 뜯어 먹는 것보다 도휘는 사냥 자체를 무척 즐겼다.

“나는 아까 참새 한 마리를 홀랑 다 먹었잖니. 벌써 배가 이렇게나 부르구나. 정 출출하거든 저기 앵두라도 따 먹으렴.”

당연한 소리지만 도휘는 메추리, 참새 같은 걸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특히 소화가 쪼아 먹는 나무 열매 같은 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맛을 떠나서 호랑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넌 참 이상하구나, 도휘야. 이 맛있는 홍시가 왜 싫으니?”

결국 도휘는 밤마다 이황산에서 뛰노는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었고 그것들이 씨가 마르자 새벽에 천문산까지 뛰어가 사슴이며 산양이며 멧돼지를 잡아먹었다. 새벽에 온 산맥을 넘어 다니니 체력은 소싯적보다 더 좋았다.

그래, 먹는 건 제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될 일이었다. 식생활은 그렇다 치지만, 소화의 발정이 다가오는 동절기에는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여우의 발정기는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이었다. 이때는 소화의 체온이 무척 올라가고 냄새가 진해져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인간의 모습을 좋아하는 소화가 이 시기에는 항상 여우로 변해 돌아다녔다. 사람이 발길을 않는 이 산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짝을 찾을 수 없으니 수여우를 찾기 위함인 듯했다.

저러다 이 귀염둥이가 저 몰래 집을 나가서 수컷을 만나면 어떡하나, 떡갈나무에 오줌을 지리고 간 이 수여우 냄새를 맡으면 어떡하나.

“하루빨리 단란한 가정을 꾸려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이구나. 너는 안 그러니, 도휘야?”

버릇처럼, 발정기가 다가올 때마다 거르지 않고 ‘단란한 가족’을 염불 외듯 중얼거리는 소화 때문에 더더욱 조바심이 일었다.

다행히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니 저희처럼 종이 달라도 아기를 갖는 방법이 다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겁보 중의 겁보인 저 작은 여우와 제가 어떻게 맺어진단 말인가?

번뇌가 깊어지자 소화의 발정기가 시작되는 겨울만 되면 도휘는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누린내 나는 여우 놈들이 밖에서 캥캥거릴 때마다 나가서 쳐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소화의 발정에만 예민하게 곤두서 있던 도휘가 처음으로 ‘그 냄새’를 인지한 건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소화는 대청마루에 누워 포도를 집어 먹고 있었다. 끈적한 단물을 하얀 손가락과 붉은 입가에 죄 묻히고서.

뒹굴뒹굴 서책을 넘기며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먹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별일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도휘는 소화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제 가슴팍에 닿을락 말락 하는 조그마한 저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제가 천년을 산 호랑이인 줄도 모르고 까마득한 어른인 척 맹랑한 소리를 해 대는 멍청한 여우라 더더욱 귀여웠다.

저것 귀여운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그날따라 미치게 더 귀여웠다.

온몸을 싹싹 핥아서, 이것은 내 것이다 냄새를 죄 묻혀 놓고 싶을 정도로.

혀가 아릿할 정도로 신 내를 솔솔 풍기는 저 포도 향이 가시면 좀 나을까.

아무리 날이 더워도 찬물에 들어갔다가 내 여우 고뿔 걸릴라, 기껏 물까지 데워 잘 씻겼는데도 이상하게 아릿한 그 냄새가 소화에게서 가시질 않았다.

빌어먹을 저 신 내 때문에 제 몸이 난리였다. 아랫배는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고 몸에서는 열이 나고.

소화가 잠든 안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이 여우를 어떻게 처리할까 밤새 소화 얼굴만 그리다가 뜬눈으로 해님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제가 발정한다는 것을.

그것도 여우에게.

‘아무리 암컷이라도 엄연히 종이 다른데’ 같은 건 그리 큰 고민도 아니었다.

다른 호랑이들 하듯 동절기도 아닌, 한여름에 오직 한 명의 상대에게 발정이 왔을 정도로 강렬한 자극이었다. 도휘에겐 옳고 그름을 따질, 고뇌할 여유조차 없었다.

당장 저 암컷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죽을 것 같은 충동이 매일매일 지속되었다.

그래, 사절기 내내 발정이 온 건 바로 저였다. 소화가 아니라. 수여우를 신경 쓰는 그녀를 놀려 주려고 짓궂은 마음에 한 거짓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화가 옆에만 와도 발기하는 제 몸 상태도 미치겠는데, 도휘는 제 냄새까지 신경 써야 했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킁킁…. 아이쿠, 도휘야! 너 어디서 이런 냄새를 묻혀 왔니? 무서운 맹수라도 만난 게야?”

항상 옆에 있어서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화가 제일 먼저 그의 냄새가 바뀐 걸 알아챘다.

게다가 늠름하고 강인한 호랑이의 발정 향에 어디서 암컷 호랑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제집 앞마당까지 찾아온 암호랑이를 보고 소화가 기절초풍하여 사흘 밤낮을 앓았다.

원체 둔하여 꿈이었다는 말을 다행히 믿었지만, 그 후로는 호랑이의 ‘호’ 자만 들어도 경기를 하는 바람에 도휘의 가슴앓이는 깊어만 갔다.

앵두나무 아래에 사슴 뼈를 묻어 놓고, 온 집 안에 아재비꽃 향낭을 놔두고, 소화의 코를 멀게 한 것도 다 그래서였다. 제 발정 향을 숨기기 위하여. 또, 소화의 냄새를 제게 숨기기 위하여.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천년을 살았지만 포악한 성격 탓에 도휘는 아직도 숫총각이었다. 발정이 오면 사냥을 나가서 먹잇감을 도륙했다. 감히 제 영역에, 암컷이든 수컷이든 다른 호랑이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도휘가 가슴에 들인 건 소화가 유일했다.

그런 그녀에게 발정이 났으니, 아무리 냄새를 감춘들 이제는 보고만 있어도 이 짓 저 짓 온갖 못 할 짓을 저지르고 싶으니 큰일이었다.

결국 집까지 찾아오는 빌어먹을 수여우들을 아무리 잡아 죽여도 타는 갈증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은 그녀를 가져야만, 끝날 일이었다.

***

그사이 어디까지 도망갔을까?

소화의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져 도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저를 피해서 집을 나갔다는 사실은 가슴이 아프지만 수여우를 쳐 죽이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직감한 일이었다.

동장군이 오고, 소화의 발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얼음이 다 녹기 전까지 매일 밤 수여우가 그녀를 찾아올 테니까.

이젠 가져야겠다.

제 암컷의 마음이 준비가 될 때까지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서 이리 나와요, 소화.”

오소리 굴 앞까지 점점이 찍힌 작은 발자국을 보고 도휘가 즐겁게 웃었다. 귀엽기는.

알고나 있을까? 이 작고 예쁜 발자국의 행적을 뒤쫓는 일이 제겐 술래잡기하듯 즐겁기만 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경사스러운 밤을 산에서 잡기 놀이나 하며 지새울 수는 없었다.

드디어 서로가 서로의 본신을 마주한다. 본래 몸으로 돌아가는 법을 잊은 척하고, 양순한 집고양이처럼 굴던 도휘는 이제 없었다.

영 눈치가 없어 코앞에서 호랑이로 변화하여 포효라도 한번 해 주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제는 알아챈 듯했다. 비 내린 산길을 이렇게 꽁지가 빠져라 내달린 걸 보면 말이다.

“도망치면 내가 못 잡을 줄 알았어요?”

그녀가 쏙 들어가 숨은 오소리 굴을 도휘가 부술 듯이 파헤쳤다.

“이리 나와, 어서. 날 책임져야지.”

작은 몸을 끄집어내려고 앞발을 들이밀자, 소화는 앙 하고 저를 물어 버렸다. 간지러운 감촉에 웃음만 나왔다. 물어 놓고 저렇게 귀여운 얼굴로 떨고 있으면 대체 어쩌란 건지.

“아프잖아요. 날 물어 버리면 어떡해요?”

도휘는 사람인 소화의 모습도 좋지만 여우인 그녀의 모습도 좋았다. 특히 이렇게 제게 뒷덜미가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 버둥거리는 발이 너무 귀여워 입에 쏙 넣고 싶었다.

흐뭇하게 내려다보다 핥아 보려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한 순간이었다.

“이런… 또.”

주르르, 토독토독.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다시 비가 오나 했더니 소화가 오줌을 지린 것이었다. 처음도 아니었다.

수여우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 어느 새벽.

앞마당에 묻어 둔 사슴 뼈를 혼자 파 보고는, 놀라서 끙끙거리는 소화가 걱정되어 안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한데 공포에 질린 수여우의 피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사냥 때문에 말단까지 흥분해서 짙어진 제 체취가 안 가셨는지 소화가 실금을 한 적이 있었다.

도휘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제 존재가 오줌까지 지릴 정도로 공포스러웠단 말인가.

겁먹은 소화 때문에라도 더 이상 여우 사냥은 그만하고 싶었기에 부러 보란 듯이 수여우를 묻어 두었다. 저 말고 다른 수컷이랑 맺어질 일은 평생 없을 거란 뜻이었다.

겁을 집어먹고 달달 떠는 소화가 안쓰러웠지만 포악한 성정을 건드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게, 나더러 나가란 말은 말았어야지. 가라고 하면 쉽게 버려질 줄 알고.

“알았어요, 알았어. 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요. 응?”

다른 암컷을 찾아서 아기 낳고 단란한 가족을 꾸리란 말은 왜 해선.

날 이렇게 화나게 만들었어?

“가만있어요.”

부드럽게 대해 주려고 했는데. 목화솜처럼 살살 만지고, 연한 홍시 먹듯이 핥아 주려고 했다고.

“그러게 처음부터 얌전히 있었으면 좋았잖아요. 꼴이 이게 뭐야.”

제게 겁먹고 움츠러드는 게 보기 싫었다. 그래서 더 온몸 구석구석 싹싹 핥아 주었다.

주로 인간의 모습으로만 있겠지만, 소화는 호랑이인 제 본신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내 새끼를 품고 그 아이들을 잘 키워 낼 때까지. 그리고 함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 길고 긴 시간 제 옆에 붙어 있으려면 말이다.

제가 이 여우를 퍽 귀여워하듯이 그녀도 저를 귀여워하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이렇게 앞에 두고 발발 떨고 겁먹지는 말아야 했다.

“이러려고… 처음부터 이러려고 새장을 사 온 거지?”

“그럴 리가요.”

원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예쁜 새를 키우려고 했다. 워낙 새고기를 좋아하니, 저처럼 작고 귀여운 새 한 마리를 갖다주면 즐거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저 목줄을 사면서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는 나 버리고 도망칠 생각 말아요. 괜한 수고 해 봤자 당신만 손해라는 거. 이제 알겠죠?”

새장에 갇혀 납작 엎드린 모습도 썩 귀여웠다.

인간으로 변한 도휘가 철창을 툭툭 두드리자 소화는 당장 물어 버릴 것처럼 이를 세우고 캬르릉거렸다.

화내는 모습도 귀여운 내 여우.

“걱정할 것 없어요. 당신은 날 데리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아직은 실금을 할 정도로 제게 기겁하지만 도휘는 장담할 수 있었다. 반드시 소화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고. 세상 그 어떤 여우보다도.

“이무기한테 신령한 보주가 있어요. 그 보주만 있으면 우리처럼 종이 다른 요괴들도 아기를 가질 수가 있대요.”

곤륜산을 오가는 검독수리에게 물어보니 여의주는 신묘한 힘이 깃든 물건이라 저희 같은 불임 부부에게 효과적이라 했다. 정순한 몸과 마음으로 공덕을 쌓아야만 완성되는 그 영험한 보주는 오래 수련한 선신들조차 탐낼 정도라고.

그것만 있으면 소화는 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도휘가 즐겁게 웃었다. 마침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다 떨어진 이무기를 안다. 그놈이 제게 도움이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지만.

“내가 가서 구해 올게. 당신 소원이 아기 갖는 거잖아. 그렇죠?”

“…….”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왼쪽 귀가 삐쭉 올라갔다.

“정말 관심 있나 보네. 나 설레게.”

도휘는 한쪽 입술을 끌어 올리며 야릇하게 웃었다.

“우리 집으로 가요, 소화. 다음번 발정기가 오기 전에 내가 꼭 보주를 구해 올게요. 약속해요.”

이번에는 보주가 없는 게 안타깝지만 어차피 소화는 시간이 필요했다.

저 가녀린 인간의 몸으로 자신을 받아 내고, 익숙해지려면 마음의 준비는 물론 연습도 해야 한다는 걸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연약한 그녀가 까무러치지 않도록 실컷 핥아 주고 만져 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직 해 본 적 없지만 그 상대가 소화라면, 도휘는 자신 있었다.

붐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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