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발정 난 수컷 호랑이 냄새
본문
이황산 중턱, 깎아 내린 듯한 절벽에는 오계암이라는 절이 하나 있었다. 인간들이 불공을 드리는 그런 절은 아니고, 오가는 스님 한 명이 있는 작은 암자였다.
소화가 이황산에 자리를 틀기 전부터 존재한 그 암자에는 기이하게도 해마다 한 번씩 으리으리한 제물상이 차려졌다. 향을 피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죽은 이를 위한 제사는 아니었다.
나라에 기근이 와도 소, 돼지, 염소를 번갈아 올리는 게 높으신 하늘님을 위한 공양인 듯했다. 물론 제물상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온전히 소화를 위한 밥상이었다.
도휘가 정성껏 차려 주는 집밥도 맛나지만 가끔은 남의 집 밥상이 그리운 법이었다. 그럴 때면 소화는 이 암자에 가선 슬그머니 제물상에 손을 대곤 했다.
그렇게 절을 오가면서 오계암의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하늘님을 위한 공양을 제 것처럼 탐하는 못된 여우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고, 곧잘 소화의 말동무가 되어 주곤 했다.
도휘는 땡중이라 부르지만 틀린 말을 하는 이는 아니었다.
“스님,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귀신이 씌었는지 밤마다 호랑이 놈한테 물려 가는 꿈을 꾸고, 이놈의 코가 말썽이라 갈수록 냄새도 안 맡아져요.”
누각에 앉은 소화가 울상이 되어선 제 코를 두드렸다.
“사냥은 더디기만 하여 데리고 사는 녀석이 출가하면 혼자 어떻게 먹고 살지 앞날이 첩첩산중이어요. 어쩌면 좋습니까?”
목탁을 두드리던 스님이 밖에 서 있는 이 들으란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게 다, 양기가 허해져 그렇지.”
“양기가 허해져서요?”
스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끔뻑하는 소화의 뒤에 장승처럼 서 있는 도휘를 흘끔 쳐다보곤 다시 목탁을 두드렸다.
“음양이 합일하고 오행이 합치하여 무위자연의 뜻을 따르는 게 순리이거늘.”
“또 어려운 말씀을 하시려걸랑 차라리 입도 떼지 마셔요.”
소화가 어릴 때 무리에서 떨어져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단 사실을 잘 아는 스님은 쯧쯧 혀를 찼다.
“자네, 발정이 뭔지는 아는가?”
“발정이요? 그럼요, 당연히 알지요.”
“어찌해야 하는지도 아는가?”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자야지요. 호영이 그러던걸요?”
해맑은 소화의 대답에 스님은 아미타불을 외며 염주를 돌렸다. 뒤에서 도휘가 이만 가자며 소화의 장옷을 챙겨 들었다.
“다음에 뵈어요. 안녕히 계세요, 스님.”
멀찍이 앞서서 오계암 문턱을 넘는 도휘를 흘끔 쳐다본 스님이 막 돌아서려는 소화의 팔을 턱 붙들었다.
“자네 코가 문제가 아닐세.”
“네?”
“잘 들으시게. 이 산에는 호랑이가 있어!”
“네에?”
“쉿!”
스님이 나무라듯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도휘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스님은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속삭였다.
“그 호랑이가 자네를 뼈 한 점 남기지 않고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네. 하루빨리 이황산을 떠나야 자네도 여우 구실을 하고 살 수 있을 게야.”
머루알 같은 소화의 두 눈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이 동산에 호랑이가 있다고?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소화가 희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젓자 스님이 티 내지 말라며 엄한 눈빛을 쏘았다.
“사랑방 앞에 앵두나무 한 그루 있잖은가?”
“그걸 어떻게….”
“그 아래를 잘 파 보게. 자네가 맹추같이 뒤에 달고 다니는 저 삿된 것이 무엇인지 조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야.”
엄한 스님의 눈빛이 널따란 도휘의 등짝을 향했다.
‘저것?’
지금 도휘를 저것이라 부른 건가? 설마… 설마 도휘가 호랑이라고?
“업보야, 업보. 지독한 업보가 들러붙었어.”
스님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소화는 갸웃하면서도 내심 치미는 의심에 두려움이 차올라 온몸이 오싹해졌다.
***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말을 들었길래.”
“…….”
“얼굴이 창백하잖아. 응?”
스님이 무슨 헛소리를 했냐며 도휘가 채근했지만 소화는 오계암을 나와 내내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나를… 뼈 한 점 남기지 않고…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터벅터벅 걷는 걸음에 매가리가 하나도 없었다. 작은 어깨를 끌어안다시피 한 도휘가 상체를 숙였다.
“이 산에, 호랑이가 산다던가요?”
갑작스레 귓가에 박힌 음성에 소화가 흠칫 놀랐다. 곧바로 눈앞에 보인 건 도휘의 붉은 입술이었다. 요사스럽게 씩 올라간 그 입술이 소화를 홀리듯 움직였다.
“그런 맹수는 없어요, 소화. 적어도 당신 앞에 나타나진 않을 거예요.”
힐긋 도휘를 올려다본 소화는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하게 그 말이 안심이 되면서도,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하고 캐물어 보고 싶었다.
“여차하면 여우로 변해 버리면 되지. 그럼 작은 털 뭉치인 줄 알고 그냥 지나갈 거예요.”
“…….”
은인을 떠받들고 살지는 못할지언정, 감히 털 뭉치 따위로 격하하는 도휘의 발언에 소화는 내심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 녀석은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흥, 소화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자 저 때문에 기분이 상한 줄도 모르고 도휘는 오계암 스님을 탓했다.
“그러게 만나지 말라니까. 저런 땡중의 말은 믿을 게 못 돼요.”
“스님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단다, 도휘야.”
소화가 애써 점잖게 타이르자 손을 잡고 있던 그가 일순 걸음을 멈췄다.
“기억 안 나요? 전에 뭘 봤는지.”
도휘의 목소리가 음산하리만치 낮아졌다.
“7년 전에, 저 아래 있는 동굴 안에서… 떠올려 봐요.”
말간 소화의 눈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잊어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었다.
“당신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요.”
“…….”
“거대한 구렁이 모양이었지, 아마?”
저절로 지난 일을 떠올린 소화는 겁먹고 놀란 숨을 들이켰다. 고개를 흔들며, 귀를 틀어막으려고 손을 뿌리치려 하자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도휘는 작은 손을 억세게 끌어당겼다. 지이익, 흙바닥에 발자국이 그어졌다. 순식간에 코앞으로 끌려온 소화에게 도휘가 속삭였다.
“당신이 기겁하면서 소리를 질렀잖아요.”
마치 그 허물이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허연 거죽에 다닥다닥 붙은 비늘 자국이 어찌나 징그럽던지….”
혐오감이 짙게 밴 목소리에 소화가 숨을 할딱였다. 어느새 이가 딱딱 부딪칠 만큼 달달 떨고 있었다.
그 일은 예기치 못한 사고처럼 벌어졌다. 7년 전이었다. 소화는 그때 더더욱 스님을 의지하여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오계암을 찾아갔다. 한데 스님은 겨울이면 자주 자리를 비웠다. 세 번을 찾아가면 그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마침 도휘가 스님이 동굴에서 기도를 올리는 걸 봤다고 했다. 소화도 스님이 저 산자락 아래 있는 동굴에서 나오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거길 왜 찾아가선.’
소화는 이 이황산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산 주인 된 자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스님과 산의 앞날을 좀 의논하고자 했다.
“스님! 스님! 너구리가 자꾸만 산딸기를 빼앗아 먹어요! 이러다 제가 심은 산딸기 씨가 다 마르겠어요!”
하지만 스님은 그곳에 없었다. 동굴은 엄청나게 크고 깊었기에 소화는 조금 겁이 났지만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제 옆에 손을 꼭 붙든 도휘가 있어서 그런 용기가 샘솟았다.
“안에 계신가 봐요, 소화. 더 들어가 봐요.”
“스님…? 스님, 정말 이 안에 계세요?”
그렇게 몇 발자국씩 들어가다 ‘그것’을 보게 되었다.
“히익! 저, 저저저, 저게 뭐지?”
흉측하게 생긴 허연 걸 보고 소화는 기절할 듯 놀라선 납작 엎드렸다.
“아이쿠, 살려만 주십쇼! 살려만 주십쇼, 나리!”
처음에는 구렁이인 줄 알았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동굴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정 잡아 잡수시려걸랑 저만 드십쇼! 이 어린 녀석은 살려 주시고 저만 드십쇼!”
손까지 모으고 싹싹 빌고 있는 소화의 옆에서 도휘가 픽 웃으며 낭랑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소화. 이건 탈피한 구렁이의 허물이에요.”
소화는 구렁이가 껍질을 입는지 벗는지조차 몰랐기에 당연히 허물이 뭔지도 몰랐다. 도휘는 오래 묵은 구렁이가 더 커지려고 백 년마다 이런 어마어마한 껍질을 벗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참 어릴 때부터 제 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잡다한 지식은 많아서 곧잘 선생 흉내를 내곤 했다.
“참 이상한 일이네… 스님이 이 동굴에 들락거리는 걸 분명히 봤는데. 소화도 봤죠?”
“으응, 그, 그래. 어서 나가자꾸나….”
도휘는 스님이 구렁이라고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아무리 맹추 같은 소화라도 그 정도 추리는 해낼 수 있었다. 어쩐지 강산도 변하는 10년 세월이 스님만 비껴가는 게 참 이상하다 싶었다.
말투도 그렇고 성품도 너그러워 저 멀리 물 맑은 황산강에서 온 자라 선생이 아닌가 했지만… 스님의 정체는 수백 년 묵은 구렁이인 게 분명했다.
소화는 그 후부터 스님께 다섯 번 걸음 할 걸 한 번만 찾아갔다. 그리고 그 한 번조차 도휘 없이는 절대 혼자 가지 않았다.
“앞으로 저 땡중은 만나지 말아요. 별로 도움도 안 되고 당신을 불안하게만 하잖아.”
“하지만… 하지만 그럴 분이 아닌걸.”
“아직도 저 구렁이를 믿겠다고?”
“도휘야! 스님을 그렇게 말하면 못써. 그리고… 어쩌면 스님은 구렁이가 아닐지도 몰라.”
확실하지도 않은 걸 미리 단정 지으면 안 된다며, 엄하게 눈썹을 찡긋하자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도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돼서 그러지. 언제 당신을 먹어 치울지 모르니까.”
대놓고 하는 말에 소화의 눈이 확 커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계암 스님을 향한 소화의 신뢰는 깊고도 진했다.
“우리 스님은 저어기 천하 명산인 천문산 큰스님의 제자란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소화는 하필이면 도휘가 잘 아는 이를 들먹였다. 그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다행히 금방 표정을 갈무리하여, 그의 돼먹지 못한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한 소화가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스님은 좋은 분이야. 너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렴.”
이후로 도휘는 더 이상 오계암 스님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거의 충성심에 가까운 소화의 신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옆에 없었던 시절, 스님과 소화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혀 모르기에 그 충성심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천문산 큰스님이라….”
도휘는 그저 조용히 읊조렸다.
“한번 뵙고 싶네요. 만나 줄지는 모르겠지만.”
***
야심한 밤이었다. 언제나처럼 도휘는 거한 저녁상을 차려 주고, 소화가 먹는 것을 지켜보다 상을 물려 가고는 안방에 금침을 차려 주었다.
이부자리를 다 펴고 정돈하고도 녀석은 나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옆에 앉아 한참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 머리를 다 덮을 정도로 커다란 도휘의 손이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라 소화는 굳이 내쫓지 않았다. 이러고 눈을 감고 있으면 솔솔 잠이 몰려왔다.
“잘 자요, 소화.”
“으응.”
상체를 깊숙이 숙여 볼에 쪽 입을 맞추는 그의 행동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묻어났다.
도휘는 잠시 소화가 눈을 감는 것을 지켜보고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자 초를 꺼 주고는 방을 나갔다.
도휘가 제 잠자리까지 봐준 지도 벌써 꽤 오래되었다.
그간 소화는 제가 거둬 준 은혜를 갚으려고 도휘가 온갖 수발을 자처하며 살뜰하게 자신을 모신다고 생각했지만, 낮에 들은 스님의 언질 때문인지 오늘은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밤마다 어딜 가는 거지?’
새벽에 요의가 차올라 방을 나서는 길에 몇 번 도휘를 목격했다. 밖을 나갔다가 급하게 집에 돌아오는 모양새였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바지저고리에 뭔가가 묻어 있었고 산에서 뛰놀다 온 사람처럼 이마와 목덜미에도 땀이 흠뻑이었다.
‘내가 자는 걸 확인하려고 이부자리를 봐준 걸까? 밖에 몰래 나가려고?’
본신으로 돌아가는 법을 잊어버렸다더니, 다 거짓말 같았다. 혼자 밤마다 사냥을 나가는 게 분명했다. 도휘는 인간들이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조용히 목화솜 이불을 거둬 낸 소화는 무릎걸음으로 문 앞까지 가선 창호지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자 아니나 다를까, 얇은 속바지만 걸친 도휘가 성큼성큼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정말 사냥을 가는 걸까?’
따라가 볼까 하던 소화는 제 걸음으로 도휘를 뒤쫓는 건 무리란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냄새도 잘 맡지 못하는데 산속에서 뒤를 놓쳤다간 큰일이었다. 이황산이 아무리 동산이래도 산은 산이었다.
도휘가 정리해 주고 간 비단 금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화는 낮에 스님이 해 준 말을 떠올렸다.
‘앵두나무 아래를 파 보라고 했었지.’
도휘는 축(丑)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늘 제 옆에 딱 붙어 있는 녀석이 자리를 비운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결심한 소화가 재빨리 문을 열고 사랑방으로 달려갔다. 이 야밤에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한번 치솟은 호기심은 잠재울 수 없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앵두나무 아래를 열심히 파 보니 놀랍게도 거기엔 커다란 짐승의 머리뼈가 묻혀 있었다.
에구머니. 놀라 내팽개친 소화가 옆을 파 보니 또 같은 게 나왔다. 대체 무엇의 뼈일까 고민하던 소화는 뼈에 붙은 뿔을 보고 그 정체를 짐작했다.
‘노루?’
사슴과 노루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소화는 대체 이 많은 뼈들이 왜 제집 마당에 묻혀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설마 도휘가 정말 호랑이인 걸까? 밤새 사냥을 해서 먹고 남은 뼈를 여기에 묻어 두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여태 냄새를 못 맡았을까….’
아무리 제 후각이 다른 여우에 비해 둔감하다 하여도 호랑이의 체취와 초식 동물의 뼈 냄새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뭔가 이상했다. 맹수의 냄새는 본능이 가장 먼저 알아채는 법이거늘.
아무리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같이 살았더라도 청년기에 들어선 늠름한 포식자의 냄새를 모를 순 없었다.
게다가 소화는 도휘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것은 꼭 동솔나무 껍질처럼 알싸한 풀 향기와 비슷했다. 도휘에게선 어릴 때부터 그런 청량한 내음이 났다.
소화와 같은 갯과 짐승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코로 들어오는 정보를 중요시했다.
‘도휘는 호랑이가 아니야.’
물 갖고 오라면 물 갖고 오고, 배고프다면 밥 차려 오고, 피곤하다 하면 어깨를 주물러 주고, 발 씻겨 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고.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다정한 호랑이가 있을까?
그야말로 제 수족처럼 부리는 마당쇠 같은 녀석이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일 리 없지 않은가? 이 산 저 산 제 것처럼 호령하며 다닐 호랑이가 왜 제 밑에서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고 있단 말인가?
‘설마 나를 통통하게 살찌워서 잡아먹을 생각일까?’
더 먹어라 더 먹어라 귀찮게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 대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갸웃대던 순간, 저 안개 너머에서 문득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캐갱 깽깽!
숨어 있던 여우 귀가 불쑥 나타나 쫑긋댔다. 고요한 산중에 나 죽어라 하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우야. 틀림없어!’
이황산에 저 말고 또 여우가 있었단 말인가? 음의 높낮이로 보아 저치는 수컷이 분명했다. 반가운 마음 반, 의아한 마음이 반이었다.
깨갱 깨갱 캥캥캥!
짧은 비명이 또다시 이어졌다. 이번엔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소리였다. 죽었는지 이후로 더 이상 여우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황산은 다시 평소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여우가 죽었다. 흠칫 놀란 소화의 손끝이 달달 떨렸다. 그나마 노루 정도 뛰놀던 이 평화로운 동산에서 대체 무엇에게 쫓기다 죽었기에 저렇게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 걸까….
상념에 젖어 있던 소화는 산 중턱에 걸린 밤안개가 달무리를 뒤덮는 걸 보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도휘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다시 묻어 놔야 해.’
노루의 뼈를 묻는 소화의 손길이 빨라졌다. 파헤친 티가 나지 않게 다시 땅을 잘 다져 놓아야 했다. 소화가 황급히 흙을 밟던 그때였다.
멀리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미세하지만 여우 귀가 나온 소화에겐 분명히 들렸다.
덩치 큰 맹수의 커다란 네발이, 둔탁하게 땅을 치고 달려오는 소리였다. 날렵하기도 어찌나 날렵한지 바람 소리도 함께였다.
도휘가 사다 준 꽃당혜가 엉망이 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화는 열심히 땅을 다지다가 소리가 가까워지자 후다닥 제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끼이익. 네발짐승이 제 집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문을 등지고 앉은 소화의 가슴이 쿵쿵 널뛰었다. 밖에까지 이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걱정이었다.
‘우리 집에 들어왔어.’
고심하던 소화는 창호지 구멍에 조심스레 눈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보이는 건 온몸이 흠뻑 젖은 도휘였다. 손에는 축 늘어진 뭔가를 들고 있었다.
이 새벽에 혼자 물놀이라도 하고 온 걸까? 그의 새카만 머리카락까지 담뿍 젖어 있었다. 하얀 속적삼마저 찰싹 달라붙어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가 거칠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물을 털어 냈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 가득한 근육들이 야성적으로 꿈틀거렸다.
‘저 애가 언제 저렇게 컸지?’
얼굴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자칫 소녀로 착각할 만큼 하얗고 고운 얼굴에 눈썹만 더 짙어졌다.
그렇게 사랑방으로 들어가던 도휘가 문득 앵두나무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흡. 소화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혹시 제가 한 짓을 알아차린 건 아닐까?
늦여름, 이미 열매가 다 떨어진 앵두나무 앞에서 도휘는 한참을 서 있다가 비스듬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마치 그녀의 행적을 쫓듯 노루 뼈가 묻힌 땅을 들여다보고는 갑자기 휙 몸을 돌렸다.
까무러칠 듯 놀란 소화는 재빨리 문 앞에서 벗어나 금침으로 기어 들어갔다.
저벅저벅. 안채로 다가오는 소리에 소화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놀란 숨을 들이켰다.
“소화, 자요?”
대답이 없자 잠시 서 있던 도휘가 들고 있던 뭔가를 내려놓고는 드르륵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옆으로 누워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긴장한 소화의 얼굴에 땀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이 흘렀다.
절대 눈을 뜨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제 볼을 슬슬 어루만지는 차가운 감촉에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귀여워라….”
도휘는 저보다 훨씬 체온이 낮았다. 볼에 닿은 건 분명 부드러운 사람의 손등이건만 소화는 저절로 커다란 앞발과 무시무시한 발톱을 떠올렸다.
“오늘은 악몽을 꾸지 말아야 할 텐데.”
소화의 귀밑머리를 매만지던 그가 퍽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다정한 음성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깨갱 깨갱 캥캥캥!
아까 들었던 수컷 여우의 끔찍한 비명이 이명처럼 울려 댔다. 제 뺨을 만지는 자상한 손길이 자꾸만 호랑이 앞발로 치환되어 감은 눈 앞에 어른거렸다.
대체 언제 나가는 걸까. 도휘가 제 옆에 앉아 있는 짧은 시간이 억겁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아쉬운 사람처럼 한참이나 그녀의 귓불이며 머리를 쓰다듬던 도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천천히 안방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소화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전에 없던 불안감이 엄습했다. 언제나 안락하다 여겼던 제 보금자리가 더 이상은 안전하지 않았다.
도휘가 호랑이로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노루 뼈는 물론이고 이 새벽에 혼자 뭘 하고 돌아온 건지도 의심스러웠다.
가장 끔찍한 건 그 여우의 비명 소리였다. 비참하게 죽었을 여우의 신세가 꼭 제 미래 같았다.
사랑방 문 열리는 소리가 없어 슬금슬금 창호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니 도휘가 앵두나무 아래서 뭔가를 묻고 있었다.
열심히 숨기는 건 아니었고 대충 손으로 흙을 파서 툭 뭔가를 던져 놓고 설렁설렁 다시 흙을 덮어 놓는 몸짓이었다.
그새 일을 다 마친 도휘가 스르르 일어나 묻은 흙을 털었다. 탁, 탁. 커다란 손을 부딪치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깨웠다.
무릎걸음으로 금침으로 돌아간 소화는 이불을 덮은 채 싱숭생숭 번뇌에 빠졌다.
‘또 노루 뼈일까?’
하지만 그 소리나 어스름한 형체가 뼈 같지는 않았다. 먹고 남은 살점이면 몰라도.
‘궁금해하지 말자.’
호기심이 여우를 죽인다.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하며 소화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이리저리 뒤척대다 불현듯, 제 다리 사이가 축축이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닭이 울기도 전에 냉큼 일어난 소화는 오줌을 지린 이불을 들고 목간으로 향했다. 이 나이에 이불보에 오줌을 싸다니.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들키면 웬 망신인가.
도휘가 알아채기 전에 얼른 이불을 빨아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급해졌다. 쭈그려 앉아 바가지로 열심히 찬물을 긷던 소화의 등 뒤에서 긴 손이 뻗어졌다.
“또 그 흉측한 꿈을 꿨어요?”
“에구머니!”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뻔한 소화를 가뿐히 감싸 준 도휘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조심해요.”
바로 제 머리 위에서 들린 그 목소리에 소화가 움찔 눈을 감았다. 낮고 그윽한 도휘의 음성은 오늘따라 더 여운이 길었다.
소화는 행여 들킬까 젖은 이불을 움켜쥐고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도휘는 이미 무슨 사정인지 다 아는 눈치였다.
“속곳은요.”
“내, 내가 알아서 하마.”
“그 손을 어떻게 이 찬물에 담그려고.”
안쓰러운 낯빛으로 목화솜 이불과 그녀를 번갈아 본 도휘가 낮게 혀를 찼다.
“속곳도 갖고 와요.”
“미쳤니? 싫어!”
도휘가 빨래를 전담하고 있으므로 속곳도 그가 빨아다 준 걸 입긴 하지만 오줌 싼 속곳은 얘기가 달랐다. 치욕도 치욕이지만 이불이 급하여 아직 갈아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휘가 부드럽게 이불을 빼앗아 들며 그녀를 타일렀다.
“벗기기 전에 어서.”
화들짝 놀란 소화는 그길로 안방에 달려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젖은 속곳을 의걸이장 깊숙이 숨겼다. 아무리 녀석이 제 빨래를 도맡아 한다 하여도 오줌을 지린 속곳까지 내보일 순 없었다.
어느새 이불을 마당에 널어놓은 도휘가 아침상을 갖고 들어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그녀의 배 속을 울렸다.
얇게 부친 호박전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메추리구이에 들깨를 넣고 무친 고구마순과 새하얀 쌀밥, 냉이가 들어간 재첩 된장국이었다.
풍족한 초가을 밥상에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특히 메추리구이는 고기가 달고 부드러워 소화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메추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수저까지 쥐여 준 도휘가 걱정스레 물었다.
“내가 옆에 있어 주면 좀 나으려나.”
“으응?”
그가 먹음직스럽게 익은 메추리의 살코기만 발라 그녀의 쌀밥 위에 올려 주며 태연하게 답을 이어 갔다.
“밤에. 악몽을 꾸지 않게 옆에 있어 줄까요.”
“괜찮단다. 너도 피곤할 텐데 어떻게 밤새 내 옆을 지켜 준단 거니.”
“여기서 같이 자면 되지.”
“무어?”
소화는 말간 도휘의 갈색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웠다.
가을이 지날 무렵이면 저나 녀석이나 발정이 시작될 텐데 그게 무슨 말인가? 물론 도휘의 발정기는 저만큼 유별나지 않아서 매번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도휘야, 종이 달라도 남녀가 유별하단다. 아무리 금수지간이라도 안 될 소리야.”
소화가 내심 혀를 차며 녀석을 타일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휘는 차분히 눈을 내리깔고 메추리의 날갯죽지를 쭉 찢어 그녀의 숟가락에 올려 줄 뿐이었다.
“내 팔을 베고 자면 무서운 악몽을 꿔도 깨워 줄 수 있을 텐데.”
긴 속눈썹이 음영을 이뤄 지금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름 메추리를 받아먹은 소화가 그래도 안 된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헛소리란 걸 알았는지 다행히 더는 언급이 없었다.
정성껏 차린 밥상에서 홀랑 메추리만 먹고 수저를 놔 버린 소화에게 더 먹으라고 실랑이를 하던 도휘가 결국 상을 들고 일어섰다.
“그러는 너도 안 먹으면서.”
“어제 저녁을 든든히 먹어서 그래요.”
“왜 그렇게 많이 먹이려고 성화인 게야? 나를 살찌워야 할 이유라도… 있어?”
마른침을 꼴깍 삼킨 소화가 두려움이 깃든 얼굴로 물었다. 도휘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다 피식 한쪽 입가를 올렸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몸이니까 그렇지. 통통하면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잖아요.”
‘씹어 먹기도 좋고.’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소화가 갸웃하는 사이 그가 안방의 문지방을 넘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엔 소화의 귀에도 똑똑히 들린 경고였다.
***
야심한 밤. 저녁도 거르고 일찍이 잠자리에 든 소화는 또 염병할 흉몽을 꾸고 있었다.
“흐으….”
그야말로 집채만 한 호랑이였다. 앞발은 제 몸통보다 거대했고 언뜻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는 염소 뿔처럼 단단해 못 뚫을 가죽이 없어 보였다.
그 호랑이가, 앞발 사이에 소화를 척 끼고 앉아선 느긋하게 한 입 거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으으…. 사, 살려….”
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잡아먹으려면 빨리나 잡아먹을 것이지, 자린고비 밥상머리에 굴비 매달아 놓듯 코앞에 두고는 먹을 듯 말 듯 자꾸 날름날름 핥아만 대는 것이다.
“사, 사사사, 살, 살려 주오….”
제 머리통만 한 혓바닥이 날름 얼굴을 스쳐 갔다. 이번에는 몸통, 고개를 틀어 또 몸통. 이리 핥았다가 저리 핥았다가.
유일한 자랑거리인 이 부들부들한 털이 죄 호랑이 침으로 젖어 들었다. 납작 엎드려 파들파들 떨고만 있던 소화가 힐끔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제 반응을 기다리듯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황금색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쳤다.
새카만 먹물을 휘감은 붓으로 콕 찍어 놓은 듯한 검은 동공. 그것이 정확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어 소화는 펄쩍 뛰어올랐다.
저 무시무시한 호랑이 안광은 쳐다만 봐도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했다. 제 두 발 밑에 열심히 머리를 숨겨 보았지만 망할 호랑이의 시선은 거둬지질 않았다. 정수리가 뚫릴 듯했다.
할짝, 할짝. 끝에만 살짝 검은 물이 든 제 귀를 번갈아 핥고, 목덜미를 핥고, 또 핥고.
앞발로 콱 저 코를 치고 달아나 버릴까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서늘한 송곳니가 한 번씩 스쳤다.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송곳니가 목을 스칠 때면 소화는 얌전히 몸을 내맡겨야 했다.
“아이고… 아이고.”
거대한 앞발이 빙글 제 몸을 굴려 홀라당 배를 보이게 만들었다. 복종하듯 ‘나 잡수쇼’ 하고 네 다리를 굽히고 있자 호랑이가 복슬복슬한 배를 핥기 시작했다.
겨드랑이, 배, 그리고 그 아래까지 샅샅이 핥아 내려가는 느낌이 과히 생생했다.
“거… 거긴.”
꼬리를 앞으로 말아 가리려 했지만 호랑이의 축축한 코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예민한 부위에 닿는 소름 끼치는 감촉에 소화는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러자 호랑이가 제지하듯 앞발로 턱 소화의 아랫배를 눌렀다. 으윽, 방광이 짓눌려 요의가 급하게 차올랐다.
“아… 안 돼. 그만, 그만….”
소화가 발버둥 치거나 말거나 호랑이의 혀는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꾸욱 아랫배를 짓누르는 감각도 선연해졌다.
“그, 그만! 그만…! 싸, 쌀 것 같….”
나온다, 나온다! 이러다 저 호랑이 얼굴에 싸게 생겼다! 급해 죽겠는데 망할 호랑이 놈은 비킬 생각은 않고 집요하게 달라붙어 더 세게 핥아 댔다.
“그만! 그만해!”
한참 몸부림을 치던 소화가 번쩍 눈을 떴다.
쌕쌕 숨을 내쉬는 그녀의 눈앞에 황토가 발라진 천장이 먼저 들어왔다. 보송보송한 목화솜 이불은 옆으로 죄 젖혀진 채였다.
호랑이 품속이 아니라, 안락한 제 방이었다.
소화는 당장 버선발로 밖을 뛰어나갔다. 끼이익, 경첩이 여닫히는 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고요한 새벽이었다.
소피가 마려웠다. 요의가 극에 달해 금방이라도 쌀 것처럼 아랫배가 팽팽했다.
급하게 마당을 가로지르던 그때였다.
“하아….”
건넛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여우 귀까지 튀어나온 소화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설마 도휘 이 녀석도 그 흉몽을 꾸는 걸까?’
그렇다면 깨워 주어야 마땅한 도리다. 요의도 참고 급히 방향을 선회한 소화는 사랑방에 불이 훤히 밝혀진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은 불을 다 켜고 자나?’
방문 앞까지 다가간 소화는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주춤 발을 멈췄다. 도휘는 한쪽 팔로 기댄 채 반쯤 누워 있었다.
“후우… 소화….”
제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그 목소리가 사뭇 간절했다. 한데 간간이 섞인 앓는 신음 소리가 영 범상치 않았다.
‘어디가 아픈가?’
들어가서 상태를 봐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선 소화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자 도휘의 음성이 점차 커져 갔다.
“아아… 소화, 이리 와요.”
귀신이라도 보는 걸까? 제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으음.”
동굴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가 신음하자 음색에 색기가 돌았다.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괜히 얼굴이 벌게진 소화는 주춤 걸음을 물렸다.
‘아무래도 내가 듣고 있어선 안 될 것 같아.’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도휘가 급한 손길로 바지춤을 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빨랫방망이 같은 것이 휙 튕겨져 나왔다.
“……!”
그림자로만 보여서 그런지 그 크기가 상당했다. 주먹 쥔 제 팔뚝만 한 것이, 뱃가죽까지 올라붙어 꺼덕꺼덕 움직이는 모양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 수말에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 흉물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도휘의 몸통이 부풀었다 꺼지길 반복했다.
‘세상에나, 저게 뭐람.’
도휘는 그 요상한 것을 움켜쥐고 천천히 위아래로 손을 움직였다.
“아….”
도휘가 고개를 뒤로 젖히자 이마부터 콧날, 입술과 턱, 불거진 목젖까지 검은 먹으로 일필휘지하여 그려 낸 듯한 옆얼굴이 드러났다. 그림자로만 비치는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퍽 고왔지만 신음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소화, 이리 와요…. 내 얼굴에 앉아요.”
도휘가 한참이나 그것을 쥐고 흔들 동안 소화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다리가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도휘가 왜 저러는 거지?’
왜 저 보란 듯이 호롱불까지 밝히고 문 앞에서 저러는 걸까. 요즘 제가 오줌소태가 걸린 것처럼 새벽녘에 뒷간을 왔다 갔다 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남사스럽게 밖에서 보면 훤히 보이게 저게 무슨 짓인지!
소화는 천천히 발을 뒤로 물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나던 순간 도휘가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실수인지 창호지를 부욱 찢고 말았다.
“허업.”
소화는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필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살색 빨랫방망이 그 날것이 훤히 보였다.
보지 말아야 하는데. 눈을 돌려야 하는데, 너무 놀라서인지 소화는 멍하니 그것을 응시했다.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온 흉악스러운 기둥. 그 위에 커다란 버섯의 갓이 잘 익은 자두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올라앉아 있었다. 가운데 작은 구멍이 뻐끔대며 한 방울씩 물을 흘리는 모습이, 꼭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화….”
생전 처음 보는 그 기괴한 방망이에 놀라서, 또다시 제 이름을 부르는 도휘에게 놀라서 히끅, 딸꾹질이 나왔다.
“거기, 있어요?”
언제 제 존재를 알아챘는지 나른하게 밖을 향하는 목소리에 소화는 기절초풍할 듯이 놀랐다. 그도 모자라 도휘가 당장 문을 열어젖힐 것처럼 경첩에 손을 갖다 댔다.
“안으로 들어오질 않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화는 그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그 밤, 이황산 기슭에는 발정 난 여우들의 우짖음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
“오늘은 꿩이구나.”
거하게 아침상을 내온 도휘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면구하여 소화는 일부러 요리에만 시선을 두었다. 무를 넣고 끓인 시원한 육수에 팔 색 채소와 버섯을 곁들인 꿩 전골이었다. 임금님이 드신다는 신선로가 부럽지 않은 거한 아침상이었다.
요리를 소화의 앞으로 놔 주던 도휘가 그녀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물었다.
“어제, 내 방에 왔었죠.”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에 시선을 맞추고 있던 소화가 지레 찔린 나머지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아, 아니?”
그런 반응에도 도휘는 태연히 채소를 건져 주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여우 소리를 들었는데.”
“나도 들었단다.”
소화의 어깨가 꼿꼿해졌다.
어제, 밤새도록 여우들이 울어 댔다. 이황산에 언제 이렇게 여우들이 나타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얼른 가서 내쫓아야겠어.”
호기로운 소화의 눈빛을 읽곤 도휘가 귀엽다는 듯이 픽 웃었다. 영역 다툼은 해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누가 누굴 내쫓겠다는 건지,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눈빛이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여긴 여우가 살 곳이 못 되니까, 알아서 떠날 거예요.”
“나는 잘만 살고 있지 않니?”
여우가 살 곳이 못 된다니, 이황산은 인간 마을과 가까운 것 말고는 여우의 서식지로 모자람이 없었다. 먹이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맹수가 없어 잡아먹힐 위협도 전무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소화가 퍽 귀여워서 도휘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볼을 한번 쥐었다가 놓았다.
“너는 먹질 않구.”
“저녁을 많이 먹었나 봐요. 아직도 배가 불러.”
혼자 뭘 그렇게 먹었길래? 물어보려던 소화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황산에 살던 노루를 몽땅 잡아먹었지요.’ 하고 저를 놀릴까 봐 무서웠다.
도휘는 저와 입맛이 달랐다. 고기를 좋아하는 건 같지만 도휘는 다른 고기를 좋아했다.
‘마을을 오가며 끼니를 채웠겠지.’
오직 저만을 위해 차려진 거한 아침 밥상이 괜히 면구스러웠다.
“왜 이렇게 많이 차렸니.”
꿩고기만 골라 먹고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는 게 미안해서 하는 소리였다.
더 먹으라는 도휘와 밥상머리에서 대거리를 하다가 소화가 대청에 누워 버리자 결국 상을 내가는 것까지, 어젯밤에 본 건 아예 없었던 일처럼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도휘는 찬거리를 사러 인간 마을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어쩐지 아침상을 거하게 차려 온 이유가 다 있었다.
산자락 아래까지 내려가야 했기에 반나절은 족히 걸릴 터. 입이 짧은 소화를 위해서였지만 도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야.’
소화는 새벽녘 여우 소리를 떠올리곤 집을 나섰다.
호랑이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 영역에 다른 여우가 침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발정기를 맞아 제 냄새를 찾아온 수여우라면 몰라도 암여우라면 반드시 내쫓아야 했다.
틈틈이 사냥 연습도 해야 하고, 마땅히 이 산의 주인으로서 아랫것들 사는 것도 둘러보고 해야 하건만 찰거머리 같은 잔소리꾼이 항시 옆에 붙어 있어 도통 시찰을 나갈 틈이 없었다.
도휘는 그녀가 혼자 산기슭을 헤매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흥, 내가 길이라도 잃을까 봐?’
한데 이황산을 혼자 다녀 본 지 하도 오래되어 풀이 무성한 산길이 새삼 낯설었다.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았다.
결국 소화는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가 코를 땅에 박고 걸어야 했다.
“여긴 어디지?”
한참 산속을 헤매던 소화는 커다란 떡갈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킁… 킁킁. 나무 밑동에 한참 킁킁대고 있으니 미약하게나마 낯선 냄새가 맡아졌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 냄새는 분명 여우의 암내였다.
‘정말 다른 암여우가 왔어!’
심장이 벌렁거렸다. 고개를 쳐드는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니?”
처음 듣는 목소리에 소화가 소스라치며 펄쩍 뛰어올랐다. 고양이 묘진처럼 카랑카랑한 낯선 음성에는 특유의 자신감과 우월감이 묻어났다.
“너는 돌연변이 여우로구나.”
소화의 흑단 같은 꼬리와 흰색 몸통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붉은 여우 미호야.”
힐끔 뒤를 돌아본 소화는 생긋 웃는 젊은 처녀와 눈이 마주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아하게 댕기를 땋은 머리카락은 엷은 갈색이고, 눈동자도 단풍처럼 고운 갈색이었다.
지금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온전한 붉은 여우의 자태를 갖춘 훌륭한 암컷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생면부지 우월한 암여우의 등장에 소화의 꼬리가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저와 같은 종을 만난 것도 처음인데 하물며 교미 상대인 수여우도 아니고 영역 다툼을 해야 하는 암여우라니!
‘망했다. 이럴 땐…!’
본능이 저절로 다리를 움직였다. 소화는 냅다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인 채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살랑살랑 꼬리를 돌렸다.
“호호, 귀엽기도 해라.”
입을 가리고 웃던 미호가 돌연 안면을 싹 바꾸고 으르렁거렸다.
“어제 내 남편을 죽인 게 네년이지?”
“아, 아냐! 난 만나지도 못했어!”
“그래?”
미호는 소화를 관찰하듯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여긴 내가 며칠 전부터 영역 표시를 해 놓은 산이야. 넌 코가 없니?”
“이 산이 이제 네 것이라고?”
“그래. 온 사방에 내 냄새를 묻혀 놨는데 그걸 몰라?”
아이고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낭패였다. 아무리 배를 내보여도 이 암여우는 저를 산에서 내쫓을 작정인 것이다.
희멀겋고 덩치도 작은 도태된 붉은 여우의 모습으로는 미호와 대적할 수 없었다. 소화는 급히 인간으로 변하여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미호에게 다가갔다.
“나야말로 이 이황산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주인이시다!’ 하고 소리치려는데 미호가 돌연 코를 틀어막고 인상을 팍 썼다.
“아이쿠 냄새!”
“…으응?”
미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주춤주춤 걸음을 물렸다. 정말 소화에게 해괴한 냄새라도 나는 것처럼 손부채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왜 그러니?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놀란 소화가 제 몸을 킁킁거리며 가까이 다가가자 미호는 욕설을 지껄이며 손톱을 세웠다.
“저리 썩 꺼져!”
순간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 눈앞을 지나갔다.
“아얏!”
팔뚝이 따끔했다. 고운 비단 저고리가 찢어지고, 미호가 할퀸 제 팔뚝에선 피가 철철 났다.
소화는 제대로 사냥조차 성공한 적 없는 소심한 여우였다. 처음으로 당한 상대의 일격에 뒤집어질 듯 놀라고 말았다.
가슴이 벌렁거려서 초면에 경우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질 수조차 없었다.
“너 왜 아재비꽃을 갖고 다니는 거야?”
“아재비꽃?”
그게 뭐지? 눈을 굴리던 소화는 설마 하고 제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향낭을 만지작거렸다. 도휘가 좋은 향이 나는 약초로만 정성껏 골라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거 코를 멀게 하는 독초인 거 몰라?!”
“무어? 이건 그런 게 아니야!”
“됐으니까 꺼져! 당장 이 산을 떠나 버려!”
손톱을 세운 미호의 연이은 공격에 소화는 화들짝 놀라 나무 뒤에 숨었다. 영역 다툼이 원래 살벌한 것을 알지만 미호의 기세가 너무 사나워 감히 말을 붙이지도 못할 정도였다.
“너한테선 끔찍한 냄새가 나!”
“나, 나한테 무슨….”
벌벌 떠는 소화에게 미호가 철천지원수를 보듯 흉악하게 이를 갈며 소리쳤다.
“발정 난 수컷 호랑이 냄새!”
캬악!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위협하는 미호를 보곤 소화는 그길로 줄행랑을 쳤다. 꼬리가 나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그녀의 뒤에 대고 미호가 외쳤다.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