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130 과거(3）

〈 133화 〉 130 과거(3）

* * *

“하아...”

“뭘 그렇게 한숨을 쉬는데요!”

오빠를 만난 이후엔 정해진 수순대로였다.

계속해서 이런 전개는 아니라는 오빠를 무시한 채 내가 끈덕지게 달라붙어 오빠네 집에 왔다.

“그런데 오빠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무슨 기억? 전생에 네가 내 여자친구라도 됐냐?”

“........”

큰일이었다.

아까 전까진 오빠를 만난 기쁨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오빠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아무런 기억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째서?

만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오빠라면, 오빠의 기억이 남아있고 내가 사라져야 하는거 아냐?

왜 이런 전개로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만큼 지금 오빠의 도움이 될 수 있다.

“나 같은 금태양이랑 만난다는건 너무 이상한 전개인데.”

“오빠. 이야기할게 있어요.”

“응?”

혼자 중얼거리는 오빠를 부르며 나는 당장 그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무조건 강서연을 조심해라.

그 미친 년과는 엮여서도 엮일 필요도 전혀 없었다.

“강서연과 엮이ㅁ....”

이야기를 하려던 내 말이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누군가 내 뒤에서 입을 막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이 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대체 왜??

드디어 오빠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

왜. 왜 말할 수 없는 건데?

“네가 강서연을 어떻게 알아...?”

“벌써 만났어요?”

“아니. 어떻게 아냐니까?”

“......”

이미 강서연과 엮여버린 모양이었다.

분명 지난번 만났을 땐 지금보다 더 이후에 엮인거 아니었어?

어째서 벌써 강서연이랑?

“그.. 강서연이랑 어디까지 갔는데요?”

“어디까지 갔냐니...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네가 강서연을 어떻게 아냐니까?”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오빠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냐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잖아.

오히려 오빠가 그 강서연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 지금 말이 안되는 일이다.

“말 안 할 거야?”

“....”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전개.

거기에 계속 그런것에 의문만 가지고 있으면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아니. 역으로 오빠의 의심만 늘어 도움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옛날에.. 조금 아는 사이었어요.”

그렇기에 우선은 그렇게 돌려 말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우선 오빠의 의심을 먼저 푸는 것이 중요했다.

“강서연이랑 아는 사이라고?”

“....네.”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그럼 지금 나한테 달라붙은게 강서연한테 이야기를 듣고 이러는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딴 년과 나를 엮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뭔데?”

“그냥.. 강서연은 조금 아는 사이일 뿐이고..”

“......”

오빠의 의심이 전혀 꺼지지 않는 상태였다.

왜 날 그런 눈초리로 보는거야.

난 그저 오빠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갑자기 길가에 버려진 여자애가 달라붙어 자신이 공략하던 여자애 이야기를 하다니.

스스로도 의심할만하다 여겨졌다.

하지만 정말 아니라고..!

대체 어떡하면 오빠의 이 의심을..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데.”

“그렇..지 않아요. 그저 강서연을 알 뿐인거고 전 그런 오빠가 강서연이랑 엮이지 안ㅎ...”

또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왜 자꾸 이 이야기를 하려고만 하면 말문이...

이해할 수 없는 전개.

지금 이 세상이 강서연과 오빠가 엮이지 않게 만드는 걸 원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왜?

그렇게 강서연과 오빠가 엮이는 순간 오빠는 죽게 된다.

그럴 순 없어. 다시 오빠가 죽는 모습따위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그냥 애초부터 오빠가 강서연이랑 엮이지 않으면 그럴 일은 전혀 없잖아.

“아까부터 왜 자꾸 말을 하다 마는 거야?”

오빠의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오빠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

나도 이유를 제대로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말을 그만하라는 듯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이게.

이럴 순 없잖아.

“.....말이 제대로, 안, 나와요.”

억지로 입을 열어 말해보려 했으나 말이 조금씩 끊겨 나오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반응은 누가봐도 수상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진짜로 그렇단 말이야.

“쓰읍...”

여전히 오빠가 나를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노려본다.

그만둬.. 날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란 말이야.

수상한 건 강서연이지 내가 아니야.

난.. 난 그저 오빠의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란 말이야!

그러나 지금 이 마음을 증명할 수단이 전혀 없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지.

누가봐도 지금 상황은 수상하지.

도무지...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어쩌면 내 이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거야?

빌어먹을 상황.

쾅!!

“...!!”

그런 상황에 나는 조금 정신이라도 차리기 위해 벽에 머리를 박았다.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내는 거야.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내라고!

“야..! 너 무슨..!”

나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빠가 놀란 모양이었다.

“....아, 아. 아.”

다시 말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더듬거리고 확실하게 나오지 않는 모양.

쾅!!

다시 한번 벽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돌아와.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도록 돌아오란 말이야.

강서연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까진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래. 다시 돌아온 대가로 강서연의 일은 알아서 처리하라는 거잖아.

그것까진 전부.. 전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더듬거리기 시작해 오빠의 의심을사는건 대체 뭔데?

벌써 오해를 사서 오빠의 도움이 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야..! 그만해!”

다시 한 번 머리를 찍으려 하자 오빠가 그런 내 행동을 막는다.

역시 상냥하다.

“...오빠.”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그래. 확실히 내가 수상하게 봐서 미안해.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하라고.”

“......”

나를 말리며 바라보는 오빠의 눈을 보자..

확실히 이런 내 행동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보였다.

아무리 봐도 나를 수상하게 보고 있는 저 눈빛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어째서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거야.

이렇게 되면 오빠는 결국 내 말을 믿지 못한 채 다시 강서연을 공략하려 하겠지.

그렇게 되면 결국 또 그 일의 반복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일이 적당히 늦춰질 순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죽는 전개밖에 더 돼?

그 미친년의 얼굴을 떠올리자 오빠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으웁!”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런 전개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렇게 돌아왔을 텐데..

다시 그런 전개로 만들 순 없었다.

“.....오빠.”

그런 생각을 하며 구역질을 참고 오빠를 불렀다.

“너.. 상태가..”

“....괜, 찮아요. 오빠.”

그래. 어차피 지금 이런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오빠를 죽이지 않는 것.

단지 그것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

쏴아아아아...

이번엔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오, 빠.”

결국..

결국, 다시 일이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오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빠는 그 미친년에게 살해당했다.

게다가 이번엔 그 미친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이건 그 미친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왜. 왜. 또. 이렇, 게.”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입을 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결국. 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첫 만남에 의심을 사서?

강서연과 만나지도 못하게 일을 비틀어버려서?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이번에도 결국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싫어. 나한테 이러지 마!!

오빠의 시체를 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퍽!

시발.

주저앉은 자리에 그대로 머리를 찧으며 욕을 내뱉는다.

왜 일이 또 이렇게 된 거야.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눈물을 흘려도 아무리 울부짖어도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싫어... 싫다고오!!

어질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다시 머리를 바닥에 찍었다.

그래..

죽자. 어차피 오빠도 이렇게 다시 죽어버린 마당에 죽자.

그냥 죽어버리자.

그런 생각에 나는 계속해서 머리를 바닥에 찍어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정신을 차리자 이번에도 역시 저번과 같은 상황에 와 있었다.

“...이, 이건.”

매만져보는 머리.

역시나 상처나 흉터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완전한 원상복구였다.

“.....그, 런데. 왜?”

하지만 어째서인지 여전히 말문이 살짝 막히는 것은 그대로였다.

뭐야 이게..

왜 말을 똑바로 할 수 없는 거지?

지난번 내가 오빠에게 강서연에 대해 주의를 주려던 것 때문에?

하지만 결국, 그때도 말이 막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

하지만 그럴 거라면 나를 그냥 부활시키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어째서 날 이렇게 부활시키는 건데?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전개.

“......그래도.”

그래도 다시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야말로 지킬 수 있어. 오빠를 다시 만나서 오빠를 지킬 수 있다고!

＊＊＊

“.......”

하지만 결국 또 지키지 못했다.

내 도움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 한 번 오빠의 시체 옆에서 죽을 때까지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

“....커헉.”

이번엔 차라리 도움이 되기보단 철저히 강서연을 먼저 죽여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실패.

제대로 틈을 노리지 못해 반격당하고 말았다.

다음엔.. 꼭.

＊＊＊

“....하아. 하아.”

이번엔 확실히 틈을 노려 강서연을 죽여버렸다.

이제 이걸로 오빠는 평온하게 공략을 이어나갈 수 있어.

기뻤다.

나야 어차피 살인자가 되겠지만.

오빠는 제대로 공략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런 기쁜 마음을 가진 채 집으로 돌아오자.

“.....오, 빠.”

오빠가 자살을 한 뒤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