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129. 과거(2)
본문
〈 132화 〉 129. 과거(2)
* * *
“어째서...”
너무나도 화창한 하늘.
그런 푸른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피가 흥건히 쏟아진 채 오빠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럴 순 없어.
이래선 안 돼.
싸늘하게 식은 오빠의 시체를 보며 현실을 부정한다.
왜? 어째서? 뭔데 오빠가 이런 일을?
얼마 전까지 나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오빠였다.
“........”
그런 오빠가 지금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던 모습 그대로 숨이 거둬진 상태다.
“이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해보아도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저 오빠의 시체뿐이었다.
“오..빠.”
부들거리는 몸. 흘러내리는 눈물.
너무도 강한 충격에 목이 메 오빠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떤 새끼야….
오빠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대체 어떤 새끼가 이딴 짓을 한 거냐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숨을 가다듬자 오빠의 시체만 보이던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오빠의 시체에서 눈을 돌리자 그곳엔 ‘제가 죽였습니다’ 광고라도 하듯 피로 얼룩진 칼을 든 채 미소를 짓는..
서연 언니가 있었다.
“너는?”
시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서연 언니 역시 나를 발견하여 눈썹을 씰룩인다.
“서연... 언니?”
“채아구나.”
서연 언니와는 몇 차례 집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서연 언니와 계속해서 거절하는 태양오빠.
대체 이런 오빠가 뭐가 그리 좋다고 싫다는 데도 쫓아다니는 건지.
그 예쁜 미모가 아깝다는 싶은 이미지였다.
“언니...”
나름 친해져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언니가 대체 왜..!”
그런 믿기지 않는 광경에 악에 받친 목소리로 언니에게 소리쳤다.
“......”
“왜 말이 없어요!”
“.....”
“뭐라고 말이나 좀 해봐요!”
“사랑하니까.”
“네....?”
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하니 있던 서연 언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대답.
죽여버린 이유가 사랑하니까?
전혀 이유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채아 네가 이해하지 못해고 상관 없어.”
“상관없지 않아요! 저는 오빠의 사촌동생이라구요!”
지난번 서연 언니를 만났을 때 급하게 만들었던 설정을 들이밀며 다그친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러나 이런 반박에 태연한 태도로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역으로 묻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건데. 사촌동생이면 뭐든 이해가 가게 설명을 해야 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사촌동생이건 뭐건 상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지금..
전혀 납득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언니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응.”
“.....”
내 질문에 너무나도 상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뭐하는 거지 지금?
내 화가 언제 터질지 시험해보는 것일까?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다뇨...”
“계속해서 내가 좋다고 그렇게 그렇게 말하는데. 끝내 태양이는 날 져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했는걸.”
“처음부터 오빠는 싫다고 거절했을텐데요.”
“알아. 하지만 그건 상관 없었어. 어차피 거절해도 끝에가선 결국 날 선택하게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
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이 미친년은.
“하지만 결국 태양인 단순 거절만이 아닌 날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도망가버리고 말았어. 거절은 괜찮지만 다른 여자 품에 도망가는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도망이 아니잖아!”
“아니. 도망이지.”
병신같은 논리를 펼치는 말에 이제 존대로 져버리고 소리쳤으나 여전히 태연한 말투로 반박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채아야, 나에겐 사랑에 관한 신념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그딴 거 알고 싶지 않아.”
“가질 수 없으면 부숴라.”
꺄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되지도 않는 소릴 지껄였다.
“그래서 죽였다고...?”
“그런거지.”
“......”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서연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또 다른 감정인 후회로 몸이 떨렸다.
그거...
다시말해 결국 오빠는 나 때문에....
얼마 전 오빠와 이야기하던 내용이 떠올랐다.
내 그런 제안 때문에 오빠가 이런 미친년한테...
온 몸의 떨림이 멎질 않았다.
멎긴커녕 이젠 다리의 힘조차 풀리려는 지경이었다.
“어머.뭐가 소름돋는다고 그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고 그러니~”
지금 이게 별거 아닌 듯 넘기는 그 빌어먹을 뻔뻔함이 소름 돋는다.
지금 이따위 짓을 해놓고 아무런 자책, 자괴감도 없이 웃음이 나와?
서서히 분노로 머릿속이 새하얘지기 시작한다.
눈앞에 보이는 건 저 뻔뻔한 년의 미소.
생각이 드는 건 저 빌어먹을 년을 죽인다.
분노로 이성을 잃기 시작한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죽인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강서연..
죽여버린다.
***
“.....오빠.”
그렇게 분노에 이성을 잃었던 내가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것은 바닥에 쓰러진 오빠의 시체.
“내가... 내가 미안해..”
그래...
아무리 분노로 이성을 잃어봐야 결국 무기를 든 상대를 이길 순 없었다.
소설이나 만화처럼 분노로 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 무식하게 달려들어 상대가 더 쉬웠을 수 있었다.
“커헉...”
복부에 찔린 상처가 아려 나온 기침에 그대로 피가 묻어 나왔다.
“괜히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분함과 억울함. 자책감 등에 대한 여러 감정이 섞이며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 자책.
끝내 복수를 하지 못한 분노. 분함.
여러 감정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내게 더 기회를 준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제발 부탁이니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오빠가 다신 이런 일을 당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죽어도 내가 대신 죽고.
어떻게든 오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돕겠다.
아무도 관심 없던 날 봐준 오빠.
그런 오빠에게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
내가 미안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어떻게든...
나에게 다시 기회를..
2.
“.....!!”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것은 원래 있던 상자 속 그리고 무심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이게...
느닷없는 원상복귀에 나는 아까 찔렸던 복부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말끔해.”
그렇게 깊게 찔렸던 상처가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멀쩡한 모습이었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일이...”
머리가 상황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까 입었던 상처는 어디 갔으며, 나는 왜 다시 이 상자 속에 있는 것일까.
마치 게임의 재시작과도 같은 광경.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아직도 머리가 띵하다.
“그럼 내가 이렇게 됐다는 건?”
오빠 역시 나처럼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렇게 이어진다.
오빠도 나도 다시 살아난 거야?
그런 기대감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오빠. 살아있는 거지? 그런 거 맞지?
지금 당장 오빠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지금 오빠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른다.
‘집으로 찾아가 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가면 오빠가 날 수상하게 볼 것이다.
시작부터 밉보이고 시작하는 건….
그리고 차라리 그런 전개라면 다행이다.
날 수상하게 봐도 오빠가 살아있다는 말이니까.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난 스스로 생각을 멈췄다.
그럴 리 없다.
말이 안 된다.
자기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좋은 전개를 생각한다.
“애초에 말이 안 돼.”
소설, 만화, 게임. 어떤 매체에서든 보통 이런 전개를 가면 모든 시간이 초기화된 전개로 간다.
갑자기 나만이 초기화되고 시작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오빠는 살아있다.
오빠 역시 다시 살아나 나를 찾으러 와줄 것이다.
길을 걷다 나를 발견하고는 또 그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래. 무조건...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길거리를 바라본다.
역시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런 황당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짐에도 그 누구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역시 난 오빠가 아니면..
이 세계에서 취급조차 되지 않는 존재.
그렇기에 오빠를 만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런 내가, 오빠를 전혀 돕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
난 그저 오빠를 돕기 위한 존재.
그것이야말로 내 존재의의.
생각을 정리하며 멍하니 오빠를 기다린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렸었나?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지금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타나지 않는 오빠의 모습에 불안감이 느껴졌다.
설마 진짜 그런 전개인 건 아니지..?
다시 솟아오르는 불안감.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온몸을 지배하며 갑자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그런 전개는….
“....이건 무슨.”
그런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자니 눈앞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