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126.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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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화 〉 126. 죽였어?
* * *
“채아 네가 왜 이런 짓을?”
후드를 벗어 맨얼굴을 보이자 강서연이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
그런 강서연의 반응에 일단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일단 반응을 슬쩍 살펴보았다.
나를 아직 신뢰하고 있다면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내가 오빠를 데리고 도망가는 모습으로 신뢰를 잃었다면...
일단 지금은 긴장하고 있는 편이...
“설마 태양이가 시켰어..?”
“......”
다행히 그때 내가 오빠를 데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오빠를 가장 먼저 의심하는 거지?
어째서? 왜? 뭐 때문에?
강서연 당신의 오빠에 대한 신뢰는 고작 그정도야?
하긴...
강서연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확실히 그럴만하긴 했다.
이건 머릿속으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진 않았다.
씨발년이 지가 뭔데?
뭔데 오빠를 그따위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이따위 신뢰를 가진 년이 얀데레..?
“.......”
“왜 아까부터 대답이 없어?”
“.......”
강서연의 계속되는 질문을 무시한 채 지그시 강서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래.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년인데 마음에 들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래. 완전히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년이었다.
“태양이한테 입막음까지 당한 거야?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돼버렸을 줄은 몰랐는데.”
“......오빠를.”
“음?”
“.....오빠를, 쓰레기, 처럼, 취급하지, 마세요”
“음? 설마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애초에 금태양이란 것부터 쓰레기고, 물론. 그런 금태양에게 빠져서 납치한 나도 할 말은 아니지만.”
오빠를 모욕하는 강서연에게 반박하자 코웃음을 치며 강서연이 내게 말한다.
그래. 솔직히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결국은 바람, 아니. 그것보다 더한 쓰레기 짓을 하는 금태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 식으로 욕할거면 오빠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는걸 알려주고 그런 말을 지껄이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빠의 일에는 훼방만 놓는 미친년이 그딴 소리를 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처음부터... 계속, 계속.
“채아야?”
“.......”
2.
“진짜 안 도망갈 거지?”
“왠지 또 도망갈 것 같은데...”
“안 도망간다고 했잖아.”
그 말과 함께 나는 당장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아... 거 의심은 더럽게 많아요.
근처 벽에 기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는 둘에게 전혀 도망갈 의사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겉으로만 그런 거지만.
언젠가 기회가 될 때는 무조건 도망가야지.
내가 진심으로 달린다고 하면 과연 얘네들이 쫓아올 능력은 안 될테니까.
문제는 도망을 간다고 한들 원래 있던 호텔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점이겠지.
“후.....”
아직 제대로 결제 안 했던 것 같은데.
이거 그냥 돈 안내고 이렇게 도망치면 나중에 돈 떼먹었다고 신고들어와서 찾아오는거 아냐?
이러든 저러든 귀찮아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 시발. 이래서 그냥 채아가 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거였는데.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둘을 바라보았다.
“......”
죽일까...?
불에 타들어 가는 담배처럼, 내 속 역시 타들어 가기 때문이었을까.
아까부터 자꾸만 이런 극단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에 점점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진짜 그 방법밖에 없을지도..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솔직히 죽인다고 하는 점에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맞았다.
아무리 원래 세계가 아니고, 시작부터 막장으로 시작했다고 한들..
사람을 무작정 죽일 만큼 막장으로 미쳐버리진 않았다.
“.........”
아직까진.
그리고 그냥 감정적인 부분은 다 내치고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과연 내가 이 년들을 죽여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가 가장 문제다.
일단, 그나마 지금의 상황에서보단 편해질 순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해본들.
결국, 나에게 남는 건 살인자라는 딱지와 감방에 들어가는 전개뿐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의도완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란 소리다.
사람을 죽이면 과연 몇 년을 썩으려나.
그리고 그렇게 감방에서 썩은 뒤 나오면, 제대로 공략을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전혀.
그렇게 좋은 전개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후우...”
마지막으로 머금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도대체 이 빌어먹을 전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해본다.
그러고 보니 채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서 막 나를 찾아다니고 있을까?
계속해서 드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감.
진짜 지금의 나는 뭘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3.
“..........”
멍하니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바라본다.
“....후우.”
그런 한숨과 함께 격한 몸싸움으로 이곳저곳 상처 입은 몸을 바라봤다.
“....쓰읍.”
갑작스럽게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칼에 이곳저곳 베이고 쓸린 자국들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온몸은 멍투성이에 이곳저곳 베여 흘러내린 피들로 옷이 엉망진창.
온몸에 몰려오는 고통과 피로감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으.”
하지만, 아직 쓰러지면 안 됐다.
아직. 할 일이….
4.
“병신들.”
담배를 피우며 둘을 바라보다 기회를 노리던 나는 결국 그 둘에게 도망쳤다.
가만히 둘을 보고 있자니 알아서들 말싸움이 격해져 도망갈 틈은 충분했다.
솔직히 이렇게 그냥 도망가는게 맞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멍하니 둘을 바라보고 있을 바에 차라리 이게 나은 편이었다.
진짜, 차라리 다음에 마음이라도 제대로 먹고 그 둘을 죽이든 뭐든...
시발. 계속해서 자꾸 죽이느니 마느니 이런 생각으로만 빠지게 된다.
하... 나도 진짜 이런 생각하기 정말 싫은데.
진짜로 자꾸만 일이 이렇게 되니 생각이 그쪽으로밖에 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게 진짜 맞는 방법인걸까?
계속해서 생각이 자꾸 이쪽으로 가니 역으로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생각해보면, 이 빌어먹을 세상은 나를 자꾸만 구렁텅이로 빨아들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한지아도 계속 공략하느니 마느니 고민할 때 자꾸 내 생각을 유도해 결국 공략하게 만들었고.
뭔가 자꾸만 이렇게 해보는게 어때?
이런 생각을 하기 쉽도록 유도한다.
결국, 그 유도에 이기지 못한 내가 그대로 행동하게 되면 항상 전개는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
그렇게 지금까지 왔고 말이야.
“쫓아오나?”
최대한 속도를 내 달리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았다.
“안 보이네.”
역시나 내가 진심으로 달릴 때 그 년들의 신체능력으로 나를 쫓아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 결국 이렇다니까.
괜히 이런저런 고민을 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 근데 이 상태로 그냥 돌아가도 괜찮은 걸까?
이미 이 근처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
그러면 다시 숙소로 돌아가 있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다.
하지만, 채아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혼자 도망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좋을까.
지금 이 근처로 도망 다니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채아가 어디로 갔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 혹시 채아가 갔을 만한 곳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돌아다닌다면야 학교 아니면 다시 집으로 갔을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혹여나 그냥 돌아다닐 건 다 돌고 이제 돌아오는 중일 수도 있고.
“에이. 시발 생각을 많이 해봐야 뭐하냐.”
어차피 생각대로 돌아가는 전개 따위 있지도 않았다.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뭐가 가장 나은 선택인지 생각해봐야 아무 의미 없다.
이렇게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내가 좀 더 돌아다니는 편이 낫지.
그렇게 고민을 끝낸 나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만약 채아가 없다면 다시 학교로 가볼 수도 있는 거고.
만약 있다면, 같이 집에서 좀 쉬다가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우선은 원래 있던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후... 며칠 안 지났는데 되게 오랜만에 돌아가는 느낌이네.”
그런 생각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또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시발. 이렇게 주기가 짧게 많이 펴도 괜찮은 거냐?
이거 나중에 니코틴 과다로 죽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집으로 돌아온 나는..
“....!!”
말 그대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여자 한 명.
그리고 그런 여자와 격한 싸움이 있었는지 비틀거리며 옆에 서 있는 여자 한 명.
“시발. 이게 무슨...”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지거리.
설마 지금 저기 쓰러져 있는거.. 죽은 거야? 죽어버린 거냐고?
믿고 싶지 않은 광경.
지금 당장 쓰러져 있을 뿐 죽지 않았다 믿고 싶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일까 생각하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눈앞에 사람이 죽은 모습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계속..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니 결국은 이런 전개까지 와버린다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자, 조금 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비틀거리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