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Prologue
본문
〈 1화 〉Prologue
큰일 났다.
나는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사랑해요.”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침대 위 눈앞의 그녀는 당황하는 나의 반응은 무시한 채 자신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둘 풀며 나를 유혹하듯 암 표범 자세를 취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그러니까! 나는 아직 그럴 생각이....”
“생각 같은 건 전부 저 멀리 던져버리세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머리가 새하얘져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테니까.”
“아니, 아니! 그런 대사는 그쪽이 아니라 내 쪽에서 쳐야 할... 아무튼! 지금은 단계가 아니에요!”
“단계라는 걸 누가 정하는 거죠?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지금 상식이라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누가 정해놨냐고 물어놓고는 상식이라고 하는 뉘앙스인데?!”
“사소한건 신경 쓰지 말아요.”
“아니아니! 그러니까 잠깐만 멈춰보라고.,,,!!”
필사적인 나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그녀는 이미 내 말을 들을 생각은 없는지 이젠 완전히 풀어헤친 와이셔츠를 흔들거리며 내 와이셔츠 단추에 손을 대었다.
아니아니, 그러니까 지금 이런 단계는 아니라니까안!!
내 와이셔츠 단추에 손을 대는 그녀의 손을 저지하기 위해 내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올리자 그녀는 한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노려보았다.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치 완전 유혹에 빠져든 에로 동인지의 하트 눈 같은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날 죽이기 직전의 표적을 노리는 킬러 같은 눈이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 와이셔츠 단추 좀 못 풀게 했다고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 보는 건 좀 어떨까 싶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거부가 심하신 거죠? 제가 싫으신 건가요? 생긴 건 금방이라도 지나가던 커플의 여자를 빼앗을 것처럼 생기셨으면서.”
“지금 당장 덮치려는 상대에게 그런 독설은 좀 어떨까 싶은데!?”
물론. 확실히 생긴 거야 그녀가 말한 것처럼 생기긴 했다.
금발로 물들인 머리칼, 구릿빛으로 태닝한 피부, 다부진 체격에 살짝 날카로운 눈매는 흔히들 말하는 금태양.
일명 금발 태닝 양아치로 흔히 NTR물에 나오는 여자를 빼앗는 그런 자식으로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실제로 난 그게 맞다!
그 흔히들 NTR물에 나오는 금태양이란 존재가 바로 나다.
다른 커플들의 여자를 낚아채서 범해버리는 쓰레기.
솔직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도 안 되는 취향에 발을 들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인간.
그런 현실이 너무 괴로워 NTR을 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세계로 가고 싶다 생각해 이런 이상한 게임 속세계로 떨어진 존재가 나란 점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그 덕에 평범했던 내 외모가 은근한 훈남에 금발 태닝 양아치의 외모가 되었으며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10명의 여자를 NTR해야 한다는 당위성 역시 얻었다.
그리고 그 당위성을 이용해 그녀에게 접근한 사실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말이지....
“역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지금 눈앞의 이 상황만은 부정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너!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었잖아!”
지금 눈앞에 나를 덮치려는 그녀에게는 이미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음? 이건 NTR러 금태양에게는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냐고?
확실히 지금까지의 설명만 듣는다면 나는 지금 금태양으로서 아주 정당하고도 고귀한(?) 상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녀석 아직 제대로 커플이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커플 계획은 내가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당신이 좋아져버렸는걸요?”
“그럴 리가 없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았잖아! 뭔가 트러블이 있던 거지? 그런 문제가 있다면 뭐든 고민상담해 줄 테니까..!!”
나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매혹적인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달래며 사정을 물었다.
어차피 나중에 커플이 되면 박살낼 거면서 왜 이리 필사적으로 구느냐고?
결국에 썸타는 사이에 낚아채도 NTR은 성립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취향이란 여러 가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단순히 커플이나 썸남썸녀를 박살내고 싶은게 아니다.
그 연애의 풋풋하면서도 애절한 사랑.
그런 사랑을 하는 여성들이 이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금태양에게 서서히 길들여지는...
이른바 ‘배덕감’이란 녀석을 즐기는 것이기에 이딴 식으로 다가오는 시추에이션 따위 전혀 끌리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항상 그와의 연애를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 옆에서 바라봤던 당신의 그런 모습에 어느 샌가 이젠 그보다 당신이 더 좋아져버렸는걸요.”
제기랄! 이어주려고 너무 노력했던게 이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진심인 듯 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쉬며 이 여자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목에 두른 그녀의 팔을 풀어냈다.
내가 팔을 풀어내자 그녀는 거절하는 나의 행동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사실은 너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
진지한 표정의 나의 말에 그녀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큿.....
그런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아무리 쓰레기라도 양심이란게 있으니까...
그렇게 그녀의 돌진을 저지한 나는 자신이 NTR을 좋아하는 저질 금태양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으로 처음 그녀를 만나려했던 이유, 그녀의 연애를 도와주었던 계기 등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알겠지? 그러니까 이런 쓰레기랑은 엮이면 안 되는 거야.”
“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자 그녀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확실히 놀랐겠지. 자신을 도와주던 남자가 이런 쓰레기 같은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걸 알았....
“그러니까 제 몸이 목적이었단 말이죠?”
“으.... 응?”
“취향이건 배덕감이건 제 얼굴과 몸이 목적이었으니 저희가 지금 섹스 하는 것엔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아니! 여자가 상스럽게 섹스란 말 함부로 입에 담지 마!”:
“그건 남녀차별이에요!”
“그래! 미안하다! 그런데 말이지! 까놓고 말할게! 그 배덕감이 꼴림 포인트라서 그런 게 없으면 안 서! 그래서 이렇게 네가 마구잡이로 덮치면 내 똘똘이가 똑바로 힘을 못 낸다! 이거야! 알아듣겠어?”
콰앙!
“히잇!”
내 말에도 여전한 그녀의 반응에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하자 벽을 쾅 치며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그녀.
역시... 너로는 안서! 같은 느낌의 발언은 너무 심했나?
나 말을 잘못해서 이제 뚜드려 맞는 걸까.....?
“그렇다면 그 배덕감이란게 생긴다면 절 받아줄 의향이 있다는 말인 거죠?”
“에...? 네... 네..”
고압적인 그녀의 태도에 기가 눌린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뒤로 한 채 그녀의 말에 답했고 그녀는 그런 내 대답에 입 꼬리를 슬쩍 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그럼 그 녀석과 제대로 사귀도록 할게요. 당신이 그런 취향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저 사랑하는 사람에겐 헌신적인 타입이거든요.”
씨익.
그렇게 말하며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싹거리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하여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고 말았다.
“아시겠죠?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 테니. 제가 그 녀석과 제대로 사귀고 돌아오면 저랑 그 배덕감인지 뭔지를 느끼며 질펀하게 놀아보자구요.”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살짝 정신을 놓아버린 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거 첫 번째 여자공략부터 제대로 이상한 수렁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