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외전 If 그녀가 있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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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8화 〉 외전 If 그녀가 있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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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으로 식칼이 도마 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또각또각 조용히 울려 퍼진다.
진청색의 암막 커튼 사이로 새하얀 빛이 새어들어오고, 잠에 빠져 멍한 정신을 누군가의 조그마한 펀치가 단박에 깨우자. 나는 커다란 하품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구, 나이도 어린 게 주먹은 맵네. 누굴 닮은 건지 원……."
자고 있던 얼굴에 펀치를 날린 범인이자, 더없이 사랑스러운 내 딸.
뭐 그리 재밌는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세상 해맑은 얼굴로 내 잠자리까지 날라온 하윤이를 피해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아! 일어났어~? 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밥 차려줄게~!"
배시시 지어진 사랑스러운 미소와 부드러운 눈웃음.
아침 햇살보다 아름다운 황금색의 머리칼을 한데 묶고,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아이보리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우리 와이프는 정말 언제 봐도 아름다운 여신님 그 자체였다.
"역시 우리 와이프는 언제 봐도 예쁘다니까~?"
"정말 또 그런다~ 그것보다 오늘 좀 일찍 일어났네?"
"하윤이가 꿈에서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아빠 얼굴에 초강력 펀치를 빡~! 넣더라고~"
"또 그랬어~? 으음~ 역시 하윤이, 이제 슬슬 혼자 자게 해야 할까?"
"옆에 파우더라도 던져두면 무서워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아, 또 우리 윤이 없이 잔다고 생각하니 이번엔 내가 외롭네~~"
"당신 옆엔 내가 있는데도 외로운 거야~? 나, 조금 상처받을지도~~"
우후후 사랑스럽게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얘기하는 우리 와이프가 귀엽다.
파우더가 보면 아침부터 염장 지르고 있다고 할 테지만, 아침 밥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아 웃고 있는 그 뺨에 키스했다.
"우리 딸도 사랑하지만, 난 우리 와이프를 제일 사랑하거든~?"
"정말~ 이렇게 안고 있으면 요리하기 힘들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대신 아침 준비해 줄까? 결혼 전에는 내가 당신한테 요리해 줬잖아~"
"안돼~! 모처럼의 주말인데 쉬어야지! 그러니까 빨리 자리 가서 앉아있어~!"
역시 일과 역할의 구분에 대해서는 빡빡한 우리 여왕님.
모처럼 좋은 무드가 나와서 알콩달콩 아침 데이트나 할까 했는데, 무드는 무드고 일은 일이라 우리 와이프님은 아주 철저하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순순히 그녀를 안고 있던 두 팔을 풀고, 식탁 앞 의자에 앉아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젠 아주 오래된 기억같이 느껴지는 허름한 원룸 집에서의 생활.
툭하면 조리 도구를 부숴먹고, '앗!' 하는 순간 무언가가 터져나갔던 얼빵한 귀염둥이는 없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족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내 눈앞에 있다.
집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고, 생활 또한 논할 가치 없이 좋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 부족할 것 없는 삶. 그리고……다소 시끄러운 똥강아지까지.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이 좋아진 지금의 생활이 그저 거짓말 같게만 느껴졌다.
"압, 빠아……."
깊은 졸음이 담긴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야 겨우겨우 닫을 수 있을 방문을 용케도 열고 나온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
하윤이가 공처럼 몸을 돌돌 만 채 잠을 자고 있는 파우더를 인형처럼 꼬옥 안아들고서 내 앞까지 오종종 걸어 나왔다.
"아이구, 우리 하윤이 일어났어~? 근데 파우더는 또 왜 들고 나왔어~"
"웅……. 하윤이 나가면, 파우더 혼자니까아……."
"으응~ 그랬구나아~ 그래, 그래~ 파우더는 아빠한테 주고, 윤이는 여기서 엄마 요리하는 거 구경하고 있어~~"
"우, 웅……."
졸린 눈을 부비며 고개를 끄덕인 윤이를 번쩍 들어 올려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혔다.
품 안에 안고 있는 파우더를 대신해 곰인형을 끼워주고, 공처럼 말려있는 파우더를 받아들자. 파우더는 기다렸다는 듯,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내게 으르렁거렸다.
"복수할 거예요……. 당신이 숨겨둔 하윤이 간식들 제가 다 먹어버릴 거예요……."
"어허, 이대로 창밖에 내던져 버린다?"
"제 달콤한 잠을 방해한 대가는……. 달콤한 간식들 뿐이라고요!"
"어차피 일어날 시간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 우리 사랑스러운 윤이가 직접 깨워주기까지 했는데 말이야~"
"당신, 언제 화장실 들어갔을 때 휴지 없으면 저인 줄 아세요. 아주 필요할 때마다 기가 막히게 다 없애줄 테니까요."
오늘은 밖의 날씨가 좋다. 그러니까 아침 환기라도 할까?
힘차게 열어젖힌 창문 밖으로 손에 쥔 공을 냅다 집어던지며, 상쾌한 아침 공기를 크게 들이켰다!
"아침 준비 끝~! 다들 와서 밥 먹어~!"
정말이지 완벽하기 그지없는 타이밍.
이젠 완전히 말끔해진 정신으로 아침 식탁으로 돌아와 사랑스러운 우리 와이프가 준비한 아침상 앞에 바로 앉았다.
* * *
"그래서……. 걜 진짜로 창밖으로 내던졌다고?"
사람 하나는 거뜬히 잡아먹을 듯, 매섭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지금은 다소 당혹에 물들어 기가 막힌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지만, 레모나──아니, 셀리아는 하윤이에게 읽어주던 동화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다 말았다.
"걱정 마, 어차피 그 똥강아지는 던진 순간 집으로 돌아오니까. 그리고 그 뒤에 진짜 식탁 앞에 바로 앉아있기도 했고."
"아니, 그거야 당연히 요정이니까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 앞에서 그러면 교육에 안 좋잖아, 인마!"
"그 말은 즉, 안 보면 괜찮다는 거 아닌가?"
"언니!!! 이 자식한테만큼은 하윤이 절대 맡기지 마!!! 분명 같은 꼴 된다 이거!!!!!"
섭섭하다. 내가 뭐 어디가 나쁘단 걸까?
우리 딸이 아빠 닮으면 참~~ 좋진 않겠다만, 그래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인간한테 들으니 좀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왜~? 그러면 좋은 거 아냐~?"
"좋긴 뭐가 좋아! 이렇게 귀여운 우리 하윤이가 저딴 식으로 타락하면 난 절대 못 받아들──."
"이모! 다음! 다음!"
"어, 아! 응! 다음은 어디 보자~"
늘 괴인 여럿 족치는 것만 생각하던 그 맹수 같은 여자가 맞는 걸까?
품 안에 쏙 안긴 하윤이한테 방실방실 웃어주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그 사람──하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저 흐릿하기만 한 하츠가 내게 보여준『기억(??)』속 그녀들.
분명 지금의 우리 가족만큼이나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었을 둘이지만……. 나는 끝내 그녀에게『절망(??)』의 정체가 하츠라는 걸 얘기해 주지 못했다.
그건 단지 그녀의 마음을 두 번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
겨우겨우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 그녀의 마음을 억지로 다시 끌어내 절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아휴, 잘 됐다, 잘 됐어~~"
"어휴, 무슨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말이 저렇게 구수해서는……. 나이도 이제 슬슬 아슬아슬한테 시집은 갈 수 있을는지~~"
"자~ 하윤아~? 이모가 동화책 더 읽어줄 테니까, 저~기서 책 많이 들고 와 알았지~?"
"응, 응! 아라써! 하윤이 책 갖꼬 올께요!"
하윤이가 품 안에서 떨어지자마자 날아오는 강렬한 스파이크 펀치!
변신한 상태로 때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손이 제법 매운 탓에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크으……. 것보다 니들 일은 괜찮아? 정세 때문에 죽어나간다고 미주가 맨날 곡소릴 읊던데."
"아, 진짜 말도 마! 호프, 그년이 지금껏 뭔 짓거리를 했던 건진 모르지만. 그년이 은퇴했다는 얘길 듣자마자 다들 슬금슬금 눈치 보는데, 그거 뉴스에도 나왔지? 몇몇 나라들이 국내에 있던 마법소녀 전부 내쫓고, 남아있는 괴인들로 멋대로 마법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엉, 그것 때문에 니들 난리라며. 마법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고."
"그래!!! 이제야 괴인 걱정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했더니, 이제 우리들의 보호는 필요 없다면서 싸그리 쫓아내고선 지랄 염병을 한다고~!!!"
"물리력 행사해버려~! 네가 그럴 힘이 없는 건 아니잖아~~"
"마음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그러면 그냥 우리가 침략자잖아~! 일이 터지기 전엔 개입도 못한다고! 그것 때문에 블라섬 걔랑 머리 쥐어 싸매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곤 있는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전부 호프 언니랑 레인 언니가 도맡아와서……."
문득 그녀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아무렴 세상 개 같은 일을 벌였다곤 하나, 오랫동안 '생·?', '사·死'의 고비를 함께 넘겨왔던 소중한 언니들이다.
그날, 자신이 가장 증오해오던『절망(??)』에게 구해지고, 또 그에게 두 언니를 잃게 된 그녀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워했다.
"아무튼 우리가 어떻게든 해오고 있어. 걱정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위험에 빠지게 하진 않을 테니까."
씨익 피어오른 웃음에 힘이 없다.
그날부터 줄곧 마음속에 든 자신의 감정을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마 그 방황을 해결해 줄 답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앞서 얘기했듯 나는 그녀에게'그 사실'을 얘기해 줄 수 없다. 그러니 그저 평소와 같이 뻔뻔스럽게 웃어──.
"뭐, 때려 부술 일 있으면 나 불러! 뭐가 막아서던 다 때려 부숴줄 테니까!"
참으로 당당히 얘기했다.
"진짜……. 넌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똑같아."
"그게 제 장점 아니겠습니까?"
"이모~! 책! 가져왔써!"
작은 품에 한가득 짊어들고 온 동화책 더미들.
가지고 오는 것에만 열중했는지, 오는 도중 책 몇 권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긴 했지만, 하윤이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들고 있던 책 전부를 우리의 앞에 전부 던져놨다.
"이모! 이거 읽어줘!"
"윽, '마법소녀 이야기'라니……. 진짜로?"
"응, 응!!!"
마법소녀에게 마법소녀 이야기를 읽게 하다니, 역시 우리 딸. 상대를 골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귀엽지 않은 마법소녀가 읽어주는 귀여운 마법소녀의 이야기.
듣는 중에 웃음 밖에 안 나오는 그 상황을 즐겁게 지켜보며, 하윤이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동화책 리퀘스트는 하윤이가 도중에 잠에 드는 걸로 겨우겨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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