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외전 잊혀진 그녀들의 이야기. 마법소녀 비망록·?忘? 『살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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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7화 〉 외전 잊혀진 그녀들의 이야기. 마법소녀 비망록·?忘? 『살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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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과 머리 위로 기분 좋게 내리쬐는 아침햇살.
푸르른 잔디 위에 대·大자로 드러누워있던 그.『살의(??)』가 지그시 감고 있던 호박색 눈동자를 찬찬히 치켜뜨며 배 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작은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정말 좋은 날이네요.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야오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들려오는 것은 새액새액 작디작게 흘러나오는 숨소리뿐.
그럼에도 충분한 답을 얻었다는 듯, 쓰다듬던 손을 다시 잔디밭 위에 얹은 그는 멍하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푸르군요. 집에서 보던 하늘도 이토록 아름다웠는데……."
푸르고 푸르렀던 맑은 하늘.
모두가 시골이라 얘기하더라도, 나는 그곳의 맑은 풍경을 좋아했다.
아침해가 막 떠오른 새파란 하늘도, 저녁놀이 막 내려앉기 시작할 때의 주홍빛 하늘도, 반짝반짝 눈부신 별들이 떠오른 새카만 밤하늘도, 그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보니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제 집은 이곳이 아닐 텐데……."
풍족하다곤 할 순 없지만, 부족한 것은 없었던 평범한 가정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디작은 강아지가 나를 맞이해주고, 뒤이어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와 아빠가 뒤이어 내 앞에 나타나──.
"무슨 얘길 하는 겁니까? 제게 돌아갈 고향과 집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머릿속의 혼란에 답을 토해냈다.
자신은 이 세상에『재앙(災?)』을 초래하기 위해 나타난 존재. 그것도『살의(??)』라는 흉흉한 감정을 퍼뜨리기 위한 존재가 감히 돌아갈 고향과 집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당연한 얘기였다.
"이상한 소리를 하다니, 잠이 부족했던 걸까요……. 하지만 저는 잠 같은 게 필요 없는 몸인데 어째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늘이 이토록 맑고 아름다운데, 가슴을 옥죄는 무거운 감각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제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가면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시끄럽게 울리자, 참지 못해 결국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을 그대로 벗어──.
"가면? 제가 언제 가면을 썼다는 겁니까? 이건 얼굴입니다! 제 얼굴입니다! 틀림없는 제 얼굴이란 말입니다!!!"
덜그럭 거리는 가면이 얼굴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억세게 눌러 막았다.
떨어질 것만 같다. 무언가가 가면과 함께 내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얼굴이 너무 딱딱했다. 마치 가면 같다. 얼굴을 움직이려 해도, 가면 안의 얼굴만이 꿈지락 거릴 뿐, 내 가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 나는─!!!!!"
"앙!!!"
언제부터였을까,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괴성을 지르고 있던 그 발밑엔 자그마한 강아지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걱정이 한가득 담긴 마음으로 애처롭게 짖다, 이윽고 평소처럼 해맑게 다시 짖기 시작한 애견.
거친 숨을 내몰며 흥분한 기색이 가득한 자신을 앞두고도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멀뚱멀뚱 시선을 보내오고 있는 그 모습에, 살의는 덜그럭 거리는 가면으로부터 두 손을 떼어 그를 안아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당신을 단잠으로부터 깨워버리고 말았군요……."
"앙!"
"그렇네요. 가면이고 얼굴이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제 자신은 결국 바뀌지 않는 법이잖아요? 그래요. 좋습니다! 오늘도 평소처럼 린이 찾아오길 기다리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곧 이곳에 찾아올 한 소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그녀와 약속을 나눈 이후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던가……. 분명 강아지의 밥 대신 다른 사람들을 헤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거래를 한지 벌써 2주째였을거다.
『살의(??)』라는 이름이 이젠 애석해지기 시작했지만……. 왠지 이제 와서는 어떻게든 상관없게 생각 들기 시작했다.
누굴 죽이는 건 즐겁지만, 죽이고 나면 피 냄새 때문인가 야오시가 화를 내온다.
야오시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고, 또 최근에 사이좋게 시작한 여자애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니까 내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걸 알아챈다면 그 아이도 날 미워하게 될 거다.
"그렇네요……. 애초에 저는 무얼 그리 미워하여 이 세상에 재앙을 일으키고 싶었던 걸까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가올 약속을 기다렸다.
"……살의."
"아, 린! 오늘은 늦으셨네요!"
바닥을 기어갈 듯, 자그맣게 이 자리에 울려 퍼진 상냥한 목소리.
평소라면 뻣뻣하지만 그래도 밝았을 그 목소리에 의아함을 들었지만, 나만이라도 최대한 밝게 인사를──.
"그래, 우리가 좀 늦었네. 그동안 즐겁게 잘 지냈어?"
부드러운 봄바람에 살랑이며 흩날리는, 붉은색과 주황색이 적절히 섞인 레드 오렌지색 단발머리.
황금빛 장창을 한 손에 가볍게 말아 쥔, 주홍색의 마법소녀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그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또 다른 마법소녀의 모습에. 단번에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린, 당신은 마법소녀였던 거군요."
"그게……."
"리엔, 대답할 필요 없어. 어차피 저 녀석은 괴인. 인간을 죽이고, 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올 꺼림칙한 괴물이니까."
신랄하게 얘기하는 레드 오렌지색의 소녀.
마법소녀, 호프 브라이트니스의 얘기에 반박할 얘기는 없었다.
인간을 죽여왔던 것도 사실이며, 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오려고 했던 것도 사실. 이제 그만두자고 마음먹은 건 방금 전이니까, 그녀들의 비난은 당연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우선 대화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이제『재앙(災?)』같은 것에 관심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야?"
"여러분들이 제 얘길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지금부터 제 고향……. 예, 어딘지는 아직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곳으로부터 아주 먼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지금껏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비꼬듯 얘기해왔지만, 이 얘기만큼은 진심이다.
내 고향으로……. 내 고향에 있을 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째서 내 마음이 이렇게 나한테 내 고향과 집이 있을 거라 확신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과 집에서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얼굴 위로 뒤집어쓴 가면이 덜그럭거렸다.
이제는 쓰고 있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지는 그것. 이제는 웃고 있는 표정만 딱딱하게 짓고 있는 그것을 벗기 위해 한 손으로 쥐어잡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전 이만……."
"바보 같네. 저기 있잖아 너, 얼마나 멍청한 거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이미 마음을 굳──."
"명색에『살의(??)』라는, 서로를 죽고 죽이기 위해만 존재하는 녀석이……. 왜 지금까지 그 작디작은 녀석을 살려두고 있었냔 말이야."
두 귀를 의심했다. 지금 그녀가 내게 무어라 얘기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언제나 얘기했잖아?'살의(??)'는 그저 서로 죽고 죽이는 것. 죽이는 것은 즐겁고, 죽는 것은 늘 아름답다 얘기해오던 네가 갑자기 그러기야?"
"흐, 흥미가 식었을 뿐입니다……. 단순한 변덕! 네, 그래요! 단순한 변덕일 뿐입니다!"
"아니? 아닐걸? 지금 네 모습을 보고도 모르겠어?"
"지금 제 모습요?! 도대체 제 무얼 보고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지금 터무니없이 진지한 마음으로──!!!!!!!"
"시시덕거리면서 웃고 있잖아.이 살의(??)에 미친 광대야."
웃고 있었다. 죽고 죽이자는 얘길 듣자마자 가면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치솟았다.
아니다. 아니었다. 이럴 생각은 없었다. 이러고 싶진 않았다.
이젠 그만두려고 했단 말이야──.
"끼, 끼잉……."
손아귀 안으로부터 작디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야오시였다. 방금 전까지 손에 안아들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흥분에 젖어서 이 아이를 그대로 짓뭉갤 뻔했다.
"죄, 죄송합니다 야오시! 제가 금방 풀어드리겠습니다!!!"
"어머? 그냥 풀어주게? 그 강아지, 죽이려고 데리고 다니던 거 아니었어?"
"헛소리 집어치우십쇼!!! 제가 어째서 야오시를 죽일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야오시는 제──."
"먹잇감이지, 안 그래? 한없이 작고 연약한……. 네가 그저 쥐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죽을 약해빠진 먹잇감이잖아."
"닥……. 쳐……."
"자, 한 번으로 끝이야! 가볍게 쥐어 터뜨리면 그만이잖아? 죽이고 나면 분명 기분 좋을 거라고~?"
"닥쳐어어어!!!!!!!!!!!!!!!!!!!!!!!!!!"
뿌각.검붉은 핏줄기가 새하얀 가면 위로 질척이며 튀어 올랐다.
굳게 쥐어진 왼손.
지금껏 한 번도……. 단 한 번도떨어본 적 없는 그 왼손을 하염없이 덜덜 떨다 이윽고 시야가 일그러져 그걸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가면은 더 이상 덜그럭거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 대신 두 눈덩이 너머로 넘실넘실 투명한 물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검붉은 피에 뒤섞여 터무니없이 더러운 물줄기가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지만,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왼 손아귀의 안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되물음뿐, 언어조차 형성되지 않았다.
한없이 울음을 터뜨려 감정을 토해내려던 찰나, 등 뒤를 찔러들어온 긴 검날이 그대로 내 가슴마저 관통해 그 새하얀 칼날을 내 눈앞으로 드러냈다.
"이 무슨……. 정의를 추구하는 당신들이……. 이런 짓거리까지 해서 제 등을 찌르다니……. 당신들은……. 실로 추악한 자들입니다……."
"알고 있어……. 이런 방법밖엔 우리한텐 남지 않았단 것도."
"이런 죽임……. 즐겁지도, 아름답지도……않단……말……입니다……."
가면 밖으로 피가 터져 나온다. 꿰뚫린 심장 너머로도 피가 넘실넘실 쏟아내지고 있다.
죽는다.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이제 죽는 것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다.
"호프─!!!!!!!!!!!!!!!!!!!!!"
죽인다. 죽기 전에 죽인다. 어떻게든 죽인다.
죽이고 또 죽여서 죽어서라도 죽도록 죽여버릴 것이다.
자리에 흘러넘치는 호박색의 마력 잔향. 닿는 것만으로 베여버릴 것만 같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마력 잔향을 터뜨리며, 눈앞의 저 가증스러운 마법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리엔, 방패!!!"
한순간에 수십 겹으로 들어차는 방패의 진.
아, 저것은 단단할 것이다.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피를 너무많이 흘려버렸다.
그래도 죽여버릴 거야.
"뒤져어어어어어어─!!!!!!!!!!!!!!!!!!!!!"
휘둘러 친 주먹. 수십 겹의 방패를 때림과 동시에 그 한참 뒤에서 검붉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터져 올랐다.
"어, 어떻게! 방패는 깨지지도 않았는데…!!!"
"다음은 너──그극──."
심장에 박힌 검이 궤적을 그려 그대로 몸뚱이의 반을 갈라낸다.
몸이 무너진다. 아직 다 처 죽이지 못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죽여야 된다. 반드시 다 처 죽여만 한다. 저 가증스러운 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증오한다!!!!! 난 가증스러운 네놈들 마법소녀들을 저주한다!!!!!!!!! 그 앞길 무엇이 있든 최악의 일만 일어날 것이다!!!!!!!!! 이 짐승 이하의 쓰레기들아!!!!!!!!!!!"
가증스럽다. 저주받아야 마땅하다.
지금껏 날 속이며 안심시켜왔던 저 여자도, 날 베어 죽였음에도 죄책감 없이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여자도, 그리고 방금 쳐 죽인 저 여자도 저주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한다.
"네놈들을……. 난……. 절대로 용서 못 해……."
눈앞의 시야가 꺼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마음속의 증오는 꺼지지 않았다.
굳게 말아 쥐고 있던 왼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저들을 저주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얘들아~ 나, 이제 나가봐도 돼~?!"
"어…….이제 완전히 숨을 거뒀어."
그 마음속에 결코 잊지 않을 깊은 증오를 담은 채,『살의(??)』는 그렇게 토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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