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내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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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내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너야
세정은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멍한 표정으로 한강을 바라보았다. 지훈과 비상계단에서 섹스한 후, 바로 회사를 뜨고 싶었지만 그래도 업무를 끝까지 마치고 퇴근했다. 지훈은 엉망이 된 그녀의 음부를 손수건으로 닦아 준 후, 그녀의 뺨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나랑 다시 시작하는 거, 아직도 고민 중이야?”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뚝뚝 흘러넘쳤다. 감히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는 뜻이 내포된 말투였다.
“하아….”
지훈은 예전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한층 더 완벽하게 그녀를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막무가내로 다가와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던 스무 살의 도지훈은 훨씬 더 철저해진 채로 나타나 그녀가 도망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에게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진심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정을 대하는데 부정을 해 봤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도로 위에 차들이 줄지어 지나다니며 오렌지색 불빛을 내뿜었다. 녹음이 우거지고 매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어지러웠고 아찔했던 여름이 생각이 났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은 잊고 싶어 하는 그녀의 바람일 뿐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그와 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지훈은 태풍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누구를 만나도 그가 생각이 났다. 세정의 첫 연애 상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 지훈만큼 충격적이고 강렬한 기억을 주지는 못했다.
“네가… 네가 나 말고 다른 새끼한테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이 되는 소릴 해.”
지훈의 분노하던 눈빛이 지금도 생생히 생각이 났다. 그런 그에게 맞서며 울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던 어린 자신의 모습까지도 마치 어제처럼 선명했다.
“도경물산 막내아들. 그 잘난 타이틀 말고 너, 도지훈이라는 인간이 가진 게 대체 뭐야? 네 배경 다 빼면 네가 뭘 할 수 있어? 결혼을 혼자 하니? 너랑 나랑 둘이 하는 거야. 근데 내가 너의 뭘 보고 어떻게 가정을 꾸려?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지훈을 밀어내기 위해 세정은 뾰족한 말로 그를 상처 냈다. 그의 가족에게 그녀가 받은 수모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모질게 굴지 않으면 그가 도저히 세정을 놓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녀를 자신이 속한 세계에 끌고 들어갈 것 같았고, 그 끝이 불행할 것이 자명했기에 두려웠다.
일그러진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생생했다. 돌아서던 뒷모습을 보는 그녀의 마음은 얼음 가시에 찔린 듯 시리고 아팠다.
세정은 그런 감정을 되풀이해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훈은 여전히 그녀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했다. 그리고 세정은 두 번 상처 입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할 때 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넘어져 버리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제발 날 다시 뒤흔들지 마.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내 삶에 너라는 소용돌이를 몰고 오지 말아 줘.
그녀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
「집에 먼저 가서 기다려. 이따 밤에 영화 보자.」
세정은 지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과외가 취소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지훈은 그녀에게 그의 아파트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을 했다. 지훈은 가족 모임에 불려 나가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니 생일만 아니면 당장 빠져나가고 싶다고 전화로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떠올라 세정은 그의 말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근에는 과외 학생들의 시험 기간이 겹쳐서 그와 데이트를 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초여름이었는데 어느덧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날짜를 헤아리던 세정은 퍼뜩 놀라며 다시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캘린더를 열고 확인해 보니 설마 했던 예상이 맞았다. 학교에서 지훈이 수표를 찢은 날로부터 오늘이 정확히 100일째였다.
‘와. 벌써 이렇게 됐네. 진짜.’
세정은 왠지 뿌듯한 감정에 차올라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비슷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대와 석 달이 넘게 연애 중이었다. 그동안 작은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나름대로 잘 사귀고 있는 건가?’
예상외로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그와의 관계를 인지하자 세정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호기심으로 지훈과 사귀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서로 전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정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훈과 함께 있으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즐거웠고, 무엇보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갔다.
거칠고 막무가내인 지훈의 성격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정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 줄은 알았다. 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스킨십 같은 것도 그러했다. 지훈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섹스하고 싶지 않다는 세정의 말을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가끔씩 키스가 진해지고 애무까지 발전할 때면 지훈이 미치도록 괴로워하는 것이 빤히 보였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세정이 무섭다고 하는 바람에 끝까지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섹스하자고 그녀를 붙들던 때를 돌이켜 보면 지난 100일 동안 세정을 위한 그의 노력은 가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세정은 문득 그에게 조금 고마워졌다. 지훈이 사귄 날짜를 세어 가며 기념일을 챙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녀만이라도 그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그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세정은 뛰듯이 버스에 올라탔다. 가슴이 두근두근 기쁘게 뛰었다.
찌르르.
오븐에서 소리가 울리자마자 세정은 부리나케 안을 확인했다. 안전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내용물을 꺼내어 대리석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후우, 다행이다.”
다행히 모양은 나쁘지 않았다. 겨우 쿠키를 구웠을 뿐이지만 생전 처음 해 보는 베이킹이라 잔뜩 긴장한 탓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훈에게 선물을 주자고 결정하고 막상 생각해 보았지만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가지고 싶은 물건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지훈에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정성을 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선물이 바로 직접 만든 쿠키였다.
마카다미아와 화이트초콜릿이 박힌 쿠키와 다크초콜릿 쿠키가 열을 맞추어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어려운 과제를 끝냈을 때와 비등한 보람이 밀려왔다.
「오기 전에 전화해. 나 이제 너희 집이야.」
지훈이 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늦어질 것 같아. 가지 말고 기다려.」
그에게서 온 답장을 확인하며 그녀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커다란 쇼핑백에서 박스와 리본을 찾았다. 이제 쿠키가 식기만을 기다린 후 예쁘게 포장만 하면 끝이었다. 아무래도 날이 날이다 보니 지훈의 가족 모임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 전, 돌아가신 지훈의 아버지의 제사 때문에 모인 날에도 작은 일에 시비가 붙어 집안이 난장판이 되도록 형제와 자매가 다투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집안에 돈이 너무 많아도 피곤한 일이었다.
“아… 더워.”
세정은 익숙한 손길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며 땀을 식혔다. 반질한 은빛 냉장고에 그녀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다.
재료를 빠짐없이 챙기느라 오후에는 큰 마트와 문구점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그의 집에 도착해서는 서둘러 쿠키 반죽을 하고 굽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세정은 매무새를 대충이라도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욕실로 발을 돌렸다.
“…….”
화장실로 가서 거울에 제대로 비춰 본 모습은 생각보다 더 심했다. 화장이 땀에 번져 있고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몰라도 까만 머리카락에는 박력분이 여기저기 달라붙어 지저분하게 희끗거렸다.
세정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어차피 쿠키의 포장을 하려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재빨리 샤워를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훈의 집에서 예전에도 샤워한 적이 있었다. 둘이 같이 산책을 하다가 소낙비를 쫄딱 맞고 뛰어 들어왔을 때였다. 물론 따로따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없었다.
‘괜찮겠지?’
세정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지훈은 조금 늦어진다고 했으니 금방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지훈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오늘은 그들의 100일이었고, 적어도 선물을 건네면서 엉망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날이 날인 만큼 어쩌면 그와 스킨십의 진도를 나가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녀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결심을 한 세정은 빠르게 옷을 벗었다.
솨아.
따뜻한 물줄기가 기분 좋은 수압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넓고 쾌적한 욕실이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녀의 집에서는 세탁기와 변기 사이에 위치한 조그마한 공간에서 쪼그리고 씻어야 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세정은 땀에 젖은 몸을 씻어 내고 머리카락을 공들여 샴푸했다. 지훈은 특히나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하는 것을 좋아했다.
늘 깔끔하고 기분 좋은 향을 풍기는 그였으므로 세정은 특히나 그녀의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늘 신경을 썼다. 샤워기로 거품을 다 씻어 내고 얼굴까지 매끌매끌하게 닦아 낸 후, 물을 잠그려 했을 때였다.
달칵.
욕실 문이 열리고 동그란 욕조 안에서 세정은 얼어붙었다. 문을 열고 선 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샤워한 지 고작 15분 정도 됐을까. 그가 이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것은 세정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
그대로 굳어서 인상을 쓴 채로 서 있는 그를 향해 세정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야… 안 나가?”
그녀는 몸의 어디를 어떻게 가려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샤워 커튼도 없이 넓은 욕실 안이었다. 세정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야, 너 늦게 온다며!”
욕조 위로 얼굴만 내놓은 채 빨개진 얼굴로 소리치는 그녀를 향해 지훈이 그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왜, 왜 와. 나가. 나가라고 했어!”
가족 모임 때문에 신경을 쓴 건지, 푸른색 격자무늬 슈트를 위아래로 걸쳐 입은 그는 평소보다 더욱 근사해 보였다.
머리카락을 새로 자르고 헤어 제품을 발라 완벽하게 스타일링된 모습이었다. 그런 지훈의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정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내 집인데 내가 어딜 나가, 세정아.”
지훈이 욕조를 사이에 두고 다리를 굽혀 그녀를 마주한 채 쭈그려 앉았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세정은 더욱 부끄러워져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맨어깨와 팔뚝으로 물방울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옷 입고 나갈 테니까 거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밖에, 과자 구운 거 뭐야? 나 주려고 만든 거야?”
간절하게까지 들리는 세정의 말을 무시하고 지훈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꽉 잠겨 낮아진 목소리를 내뱉는 그의 입술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세정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설마 벌써 먹은 건 아니지?”
“당연히 먹었지. 진짜 달더라.”
“야! 너 죽을래?”
세정은 그를 보며 울상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지훈이 인상을 슬쩍 쓰며 화를 내는 세정을 보았다.
“나 주려고 만든 거, 아니었나?”
본인 성격만큼 예쁘게 만든 쿠키에서는 미치도록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지훈은 여태껏 그가 받은 어떤 선물보다도 세정이 자신을 위해 처음 만들어 준 무언가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걸 지금 먹으면 어떡해… 진짜….”
세정이 억울한 얼굴로 그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를 보고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는 세정을 보자 지훈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그녀에게 캐물었다.
“그거, 내 거 아니었어? 내가 먹으면 안 되는 거였나?”
“…뭐?”
“씨발, 누구 다른 새끼 주려고 만든 거냐고 물었잖아.”
지훈은 질투에 확 눈이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그의 배 속을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세정이 그의 어깨를 손으로 탁, 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보야! 그 옆에 있는 상자랑 리본 못 봤어? 다 식으면 예쁘게 포장해서 주려고 했단 말이야!”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지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세정은 입매를 굳히며 어디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쫑알쫑알 열심히 말을 이었다.
“100일 선물이니까 근사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단 말이야, 근데 그걸 다 먹어 버리면 어떻게 해. 이 돼지야…. 흡….”
지훈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세정의 맨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흘러 그의 슈트와 팔목에 걸린 시계까지 적셨지만 지훈은 상관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얼굴을 붙잡은 커다란 손에 핏줄이 툭툭 일어났다. 혀를 섞어 오는 지훈에게서는 달콤한 초콜릿 맛이 났다.
“흐읏….”
타액을 빨며 혀끝을 돌려 그녀의 혀를 자극하는 키스가 평소보다 더욱 자극적인 까닭은 무릎으로 일어선 지훈이 세정의 맨살을 쓰다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굴에서 내려온 양손이 그녀의 젖은 목덜미와 쏙 들어간 척추 주변을 매만지며 엉덩이까지 내려가자, 세정이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떼어 냈다.
“지… 지훈아.”
“세정아.”
그의 가느다란 눈매 안에서 소리 없는 불꽃이 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까만 눈동자에 온통 그녀가 가득했다. 세정은 욕조를 방패 삼아 그 앞에 딱 달라붙은 채, 이유 모를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다 씻었지?”
지훈의 목소리에 진득한 욕망이 뚝뚝 떨어졌다. 높다란 콧날에 주름이 졌다. 세정은 뭔가 불안한 예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만 보았다.
세정이 젖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지훈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대칭이 완벽한 그의 입술에서 잔뜩 긁힌 목소리가 흘렀다.
“섹스하자. 오늘.”
놀라서 눈이 커다래진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그의 손이 쑥 들어왔다. 지훈이 바닥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세정 역시 따라 일으켜 세워졌다. 알몸이 그대로 보여 부끄러울 새도 없이 그가 그녀를 신부를 안듯 번쩍 들어 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내려 줘.”
욕실을 빠져나가는 그의 걸음에 다급함이 섞였다. 세정은 거실로 나오자마자 숨을 훅, 하고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욕실로 들어가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실 침대 주변에 도대체 몇 송이인지 모를 장미 다발이 쌓여 있었다.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고 해도 믿을 만한 붉은 꽃 더미 속에 마치 침대가 묻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훈이 세정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자신도 올라오며 그녀에게 중얼거렸다.
“날이 날인 만큼 신사답게 청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나 안 돼. 도저히.”
널찍한 테이블에 놓인 최고급 샴페인이 세정의 눈에 들어왔다.
“…섹스하자. 세정아.”
시트를 끌어 몸을 감추며 세정이 대답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며.”
“거짓말이지, 물론. 한 달 전부터 준비했어.”
“…뭘?”
“너한테 기념일 핑계 대면서 섹스하자고 유혹하는 거.”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입술을 씹는 지훈의 모습이 지독하게 관능적으로 보였다. 세정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훈이 그녀의 손에 쥔 시트를 가볍게 풀어내며 세정을 안아 왔다.
“그런데 네가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쿠키를 어떻게 하트로 만들 생각을 했어? 그걸 보고 어떻게 손이 안 가?”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가슴을 뭉근히 잡아 오자 세정의 몸이 떨렸다. 지훈이 그동안 마르고 닳도록 만져 대는 바람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무겁고 자극적이었다.
“하아… 지훈아….”
“먹은 건 세 개고 아직 일곱 개 남아있으니까 섹스하고 나한테 선물해 줘. 예쁘게 포장해서, 나한테 줘.”
그가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워 자극하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세정은 두려움과 긴장, 흥분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온통 장미 향이 가득했다.
“…네 선물은 뭐야?”
세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너무도 당연한 듯 대답하는 그의 말투에 세정은 긴장이 조금 풀려 하, 하고 웃고 말았다.
“맘에 안 들어?”
“…아니.”
“맘에 든다는 소리야?”
지훈이 헷갈린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응. 맘에 들어. 너 되게 멋있다. 오늘따라.”
세정의 대답에 지훈이 간질거리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콧잔등을 찌푸렸다. 세정은 선물로 그를 준다는 말에 담긴 무거운 의미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말갛게 웃고 있었다.
“꽃 사 줘서 고마워…. 나 이렇게 꽃 많이 받아 본 거 처음이야. 아니, 남자한테 꽃 받아 본 것 난생처음… 어, 어!”
그녀의 입에서 뒤이어진 말에 지훈은 더욱 흥분했다. 곧바로 세정을 침대 위로 쓰러뜨리고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을 쭉, 강하게 빨아들이자 그녀는 아찔하게 신음했다.
“흣!”
지훈이 그녀의 목을 애무하는 동시에 거칠게 자신의 슈트 재킷을 벗어 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세정을 눈앞에서 본 순간부터 지훈은 참을 수가 없었다. 빨리 그 역시 나체가 되어 세정의 체온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그녀의 깊숙한 살 속에 자신을 비비고 싶었다.
“오늘, 나랑 섹스할 거지? 제발, 나 더 이상 괴롭히지 마.”
“잠… 잠깐만, 지훈아.”
세정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욕망에 달아오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지훈을 더 이상 거부할 핑계도, 여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 주변을 가득 채운 장미에서마저 농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제껏 준비가 될 때까지 그녀를 기다려 주었던 지훈의 배려심이 고마웠고, 이제껏 키스와 애무를 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기분의 실체를 더 자세히 느껴 보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그의 시선을 보는데, 예전처럼 불안하지가 않았다.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훈이 그녀를 거칠게 몰아붙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응. 하… 하자. 그거.”
세정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동시에 비장함이 떠올랐다.
“잘 생각했어.”
탄식 같은 한숨을 터뜨리며 그녀를 덮치려고 하는 지훈을 향해 그녀가 크게 소리를 냈다.
“잠깐만 기다려!”
세정은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쳐 내고는 침대를 빠져나와 가방에서 후들거리는 손으로 지갑을 찾았다. 그리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콘돔 하나를 꺼내 든 후, 뭐 하고 있느냐는 눈길로 침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지훈에게로 다가갔다.
“그게 뭐야?”
“코… 콘돔이잖아. 보… 보면 몰라?”
지훈과 사귀기 시작한 후,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녀가 미리 챙겨 놓은 콘돔이었다. 지훈이 그녀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저리 치우고 이리 와.”
“너, 이거 안 하면 내 몸에 손도 댈 생각 하지 마. 나 진심이야.”
세정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지훈이 셔츠의 단추를 끌러 내며 중얼거렸다.
“나 수술했으니까,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뭐… 뭐?”
지훈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세정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섰다. 옷을 다 벗고 있었지만 부끄러움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당황했다.
“이제껏 딴 여자랑 섹스한 적도 없으니까 STD(성병)도 없어.”
지훈이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세정은 탄탄한 복근 아래에 속옷을 단단히 들추고 일어난 그의 페니스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놀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언제? 왜, 왜 수술했어?”
“왜긴 왜야. 너 애 생길까 봐 무서워서 나랑 섹스 못 하겠다며.”
지훈이 하아, 하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가 온통 아래로 쏠려 페니스가 터질 것 같았다. 눈앞에서 나체로 아른거리는 세정을 보자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인데, 세정은 쓸데없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세정은 섹스를 원하는 그에게 그녀의 부모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했다. 지훈은 세정의 마음을 이해했고 따라서 그 염려의 싹을 아예 뿌리 뽑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피임을 잘한다 해도 세정이 혹시나 모를 가능성 때문에 매번 불안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 것 같았다.
“3개월 동안 내가 괜히 참은 줄 아나 본데, 내가 무슨 고자인 줄 알아? 아, 이제 씨 없는 수박 됐으니까 뭐 그거랑 비슷한 건가?”
“야…. 야… 도지훈…. 이 싸이코가 진짜… 하아….”
그녀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지훈의 모습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감동이 느껴졌다.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직진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지훈의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오만하고 버릇없는 도지훈에게 순정이라는 단어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그가 하는 행동들을 설명할 대체어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디까지 그녀를 놀라게 만들 생각인 걸까. 몹시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세정은 가슴이 뻐근해지고 눈물이 절로 샘솟았다.
세정이 말간 얼굴을 엉망으로 찌푸렸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드리웠다. 그 끝이 봉긋한 가슴 끝을 스치듯 가리는 모습이 지훈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시선을 내리자 귀여운 배꼽이 보였고, 더욱 아래로 내려가자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까맣고 은밀한 음부가 자리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보며 울먹이는 그녀를 향해 지훈은 양팔을 벌리고 웃었다.
“내가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데. 네 안에 터지도록 싸 줄게.”
“진짜, 너…. 너 정말….”
“이리 와, 세정아. 일단 키스부터 하자.”
세정은 장미 다발을 헤치고 그에게 걸어간 후, 두 팔을 벌린 지훈을 끌어안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마주 안은 지훈이 뜨거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첫 섹스의 장소는 장미 향 가득한 그의 집이었다.
“흣….”
지훈에게 양다리를 단단히 잡힌 채, 세정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약한 조명 빛 아래였다. 지훈은 그녀의 팬티를 벗긴 후, 벌써 몇 분째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뜨거운 숨결을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지… 지훈아. 제발….”
무엇을 애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세정은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다리 사이를 훤히 내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지훈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견딜 수 없이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하아… 네 여기, 너무 야해. 진짜.”
지훈이 꽉 막힌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둔덕에 차마 손을 대지도 못하고 그녀의 허벅지를 잡아 벌리며 은밀한 부분을 마음껏 눈으로 감상했다.
붉은 속살이 여러 겹 감싸고 있는 자그마한 내부에서 아주 자그마한 샘처럼 은밀한 애액이 샘솟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사정감이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부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세정아, 여기서 흐르는 거, 빨아도 돼?”
지훈의 물음은 그녀의 의사를 묻기보다 예고에 가까웠다. 세정이 안 된다고 거절할 새도 없었다. 성격 급한 어린애처럼 지훈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지훈은 그녀의 비부를 정신없이 핥았다.
얼마 전 세정을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맛보았던 그녀의 가슴도 부드러웠지만 점막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세정의 음부는 미치도록 연하고 부드러웠다. 그 안에서 흐르는 애액의 원천을 알고 싶은 마음에 지훈은 기다란 혀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아…. 안 돼… 흐읏!”
흐느끼는 세정의 발가락이 움찔거렸다. 그녀의 가슴이 엉망으로 들썩였다. 다리 사이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훈의 부드러운 살덩이가 그녀의 질을 핥고 쭉쭉 빨았다.
그의 코끝에서 내뿜는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쿡쿡 찌르던 지훈이 그녀의 음핵을 건드리자 세정이 마침내 자지러지는 교성을 내뱉었다.
“흐응!”
잠시 멈추었다가 지훈이 다시 혀를 내밀어 천천히 그녀의 음핵을 혀끝으로 굴렸다. 꿀렁, 하고 그녀의 내부에서 애액이 울컥 치밀었다.
“여기, 좋아?”
“아흣! 으응! 지훈아… 흣!”
지훈이 본격적으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애무하기 시작하자 세정의 신음이 점점 높아져 갔다.
“질질 흘러, 세정아. 이거, 좋은 거지? 대답해.”
그의 드로어즈 안에 갇힌 페니스의 사정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선단에서 쿠퍼액이 흘러나와 엉망으로 속옷을 적신 지 오래였다.
“몰라, 흣. 아아!”
지훈이 그녀의 음핵을 아예 입술로 쪽쪽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통렬한 자극에 세정이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흠뻑 취한 지훈은 세정을 맛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안 돼, 너무… 으흣! 지훈아. 너무 세… 아응!”
세정의 성대에서 평소와는 다른 새된 교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가 그녀를 애무하는 것을 쉽게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세정은 끔찍하게 부끄러운 상황에서도 오르가슴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묶어 놓고 눈물이 터질 때까지 간질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응! 으흐윽!”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리적인 자극에 자동으로 경련하는 비부를 입술로 느끼며 지훈이 애액을 끈덕지게 핥았다. 그의 양팔에 감긴 세정의 미끈한 허벅지 근육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아….”
그녀가 끝까지 가는 모습을 보자 지훈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드로어즈를 내렸다. 왜 이제까지 가둬 두었냐고 화를 내듯 발기한 페니스가 튕겨 나오며 위용을 자랑했다.
“세정아….”
지훈이 그녀에게 뜨거운 몸을 겹쳤다. 절정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 그녀의 눈 주위가 붉었다. 지훈은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꽉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넣고 싶어.”
“으… 응?”
세정이 그의 뜻을 알고도 되물었다. 지훈이 그녀의 무릎 사이를 다리로 벌리며 터질 듯한 흥분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영상으로 봤던 것들, 책으로 보고 공부했던 것들, 씨발, 하나도 다 소용없어….”
“무… 그게 무슨 말이야… 흣…. 지훈아… 아아….”
그의 성기가 그녀의 비부에 닿았다. 딱딱한 살덩이가 절정의 쾌락을 느끼고 통통히 부풀어 오른 음핵과 애액으로 점철된 질구 주변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네 여기가 너무 작고 너무 약해서 나는 차마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겠어. 입술로 해도 조심스러운데…. 씨발, 손가락을 이 안에 어떻게 집어넣으라는 건데, 대체.”
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지훈의 검은 눈동자에 그조차도 어쩔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일었다. 세정은 그런 그를 보며 숨을 할딱였다.
“손은… 싫어.”
그녀는 왠지 무서웠다. 손 아니라 그 무엇도 그녀의 질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지훈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다, 내 좆을 여기다 박으면 너 분명히 찢어지겠지?”
“지훈아….”
“아무리 젖었어도, 이렇게 미끄러워도 너 아플 것 같은데….”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그의 성기 끄트머리가 결국 그녀의 속살 안에 감춰진 틈새에 정확히 걸렸다. 세정이 숨을 훅, 들이쉬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단단한 근육을 감싼 피부에서 느껴지는 떨림에서 그녀는 지훈 역시 그녀만큼, 아니 어쩌면 그녀보다 더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그녀의 머리를 양팔 사이에 가둔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씨발…. 짐승처럼 허리가 그냥… 그냥, 움직여. 어떻게 하지?”
왜였을까. 그렇게 섹스를 부르짖던 지훈이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주저하는 모습에 세정의 마음에 벅찬 무언가가 차올랐던 이유는.
“지훈아….”
세정은 그의 목에 조심스레 양팔을 감았다. 아플 정도로 정확하게 느껴지는 그의 남근을 다리 사이에서 느끼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넣어도 돼.”
“진짜, 한다.”
“응. 섹스하자, 지훈아…. 아흑!”
지훈의 인내심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세정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를 꽉 끌어안았고 그의 말대로 짐승처럼 신음하며 허리를 들이밀었다. 살이 억지로 벌어지는 감각에 세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흐읏…!”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았지만 신음이 저절로 샜다. 굵은 귀두가 그녀의 살점을 벌리고 안으로 진입하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음핵을 자극받았을 때의 쾌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살갗이 찢어지는 듯이 날카로운 고통만이 온몸에 번지고 있었다.
“세정아, 미안… 씨발…. 내가 너무 커서, 미안….”
그녀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보며 지훈이 괴로운 얼굴로 중얼댔다. 그녀의 내벽이 그를 빨아들이는 느낌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황홀했다. 끄트머리만 간신히 물고 있는데도 엄청난 압력이었다.
미쳐 날뛰는 짐승 같은 그의 남근은 어서 자신을 세정의 내벽 안에 처넣으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지훈은 안간힘을 쓰며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진입했다.
“아흑…!”
세정이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녀가 견딜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지훈이 쓰게 내뱉었다.
“나 때려. 아프면 그냥 나 할퀴어도 되니까…. 흣…!”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하는 순간 지훈의 이성이 완벽하게 날아갔다. 쑥, 하고 그의 성기가 그녀의 몸 안에 뿌리내리듯 박혔다. 날카로운 신음이 붙은 두 입술을 타고 사라졌다.
그녀의 몸속에 완전히 함락된 순간은 지훈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선사했다. 마치 온몸이 독주에 절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혀를 뒤섞으며 지훈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흐으… 흐으으….”
몸을 덜덜 떠는 그녀의 가슴을 부여잡고, 입술과 목을 빨며 지훈은 그녀와 섹스를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은지는 직접 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고통스러울 만큼 쾌감을 느끼는 그만큼이나 그녀 역시 느끼게 하고 싶었다.
“세정아, 세정아….”
아프다는 소리 하나 없이 숨만 몰아쉬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그녀의 음핵을 찾아 어루만지며 지훈이 중얼거렸다.
“이제 나는 네 거야. 영원히…. 네 거야.”
“하아…. 너같이 골치 아픈 남자 달라고 한 적, 흣, 없거든?”
세정이 그 와중에 숨을 뱉어 내며 흐리게 웃는 모습조차 너무 예뻤다.
“흣, 아아…!”
지훈이 허리를 치받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그의 남근이 세정의 내벽 깊은 곳 어딘가를 툭, 하고 문지르고 스륵 빠져나가자 세정이 작은 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신음했다.
“하읏!”
“여기? 이렇게 박으면 돼?”
지훈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몸을 붙였다. 그는 방금 전의 느낌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세정이 반응했던 부분에 닿으려 집요하게 같은 곳으로 계속 허리를 박아 올렸다. 손으로는 계속 그녀의 부푼 음핵을 자극하며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힘 풀어, 세정아. 긴장 풀어, 제발….”
“아… 흣, 으응! 지… 지훈아….”
그녀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며 그를 불렀다.
“아파? 아직도… 많이 아파?”
“안아, 안아 줘. 나.”
세정의 말에 지훈은 곧장 그녀에게 몸을 완전히 겹쳐 누웠다.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는 그의 성기에 그녀의 분홍빛 속살이 꽉꽉 조이며 애액을 뿜어 댔다.
손을 뻗어 느끼기 시작한 세정을 확인하며 지훈이 흥분에 몸을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그는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의 귓가에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세정아, 하아…. 우리 지금, 흣, 진짜 섹스하고, 있는 거… 맞지?”
“그래, 바보야… 으흣!”
세정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 아, 흣…!”
지훈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가는 것을 제지하지 못했다. 세정의 안에 뜨겁게 쏟아 내며 지훈이 신음했다. 세정은 벅차게 들어오는 그를 꽉 안으며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던 세정이 눈을 뜬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블라인드를 치지 않은 커다란 창문에서 푸른 새벽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깼어?”
그녀의 곁에서 팔로 머리를 받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지훈이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정은 저도 모르게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달고 그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너 안 잤어?”
“응.”
“체력도 좋네.”
밤새도록 그와 몇 번이나 몸을 섞었을까.
스스로의 의지로 멈추지도 못하고 그녀의 안에 아찔하게 사정한 후, 지훈은 그녀를 샅샅이 핥아 주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키스했다는 말이 옳았다.
손가락부터 겨드랑이, 발가락까지 세정의 온몸에 그의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 입술은 그의 페니스가 마구 침범해 잔뜩 예민해진 음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음핵을 빨며 다시 그녀를 흥분시킨 후, 지훈은 세정의 몸을 자신의 위로 올렸다. 두 번째도 그를 받아들이기 벅찬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훈의 학습력은 빨랐다. 세정이 그의 위에 올라탄 자세에서는, 삽입한 채로 그녀의 음핵을 자극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세정은 그를 끝까지 받아들인 상태로 몸을 조금씩 흔들거리기만 하면 됐다. 그의 손가락에 의해 음핵이 마찰되어 몸이 움찔거렸다.
몸 안을 가득 채운 이물감은 여전했지만 처음보다 거부감은 덜했다. 세정은 일부러 마주 닿아 있는 아랫도리 쪽으로 시선을 내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니 다른 것들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흥분을 견디지 못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지훈의 탄탄한 가슴 근육과 팔뚝에 툭툭 불거진 힘줄, 그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같은 것들이었다.
지훈이 느끼는 모습을 보며 세정은 점점 흥분했다. 자연스레 세정의 긴장이 풀리자 거의 움직이지 않던 지훈이 그녀를 아래에서 툭, 툭, 올려 치듯 박아 대기 시작했다.
지훈은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고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그녀의 몸을 탐했다. 결국 지훈은 살이 턱, 턱,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세게 그녀를 박아 올렸다. 애액이 엉망으로 튀고 세정의 신음이 높아졌다. 두 번째 섹스에서 그들은 함께 절정에 올랐다.
“좀 더 자. 아프잖아.”
지훈이 새벽빛을 받아 푸른 얼굴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세정이 입을 삐죽거렸다.
“아프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욕실에서 했을 땐 안 아팠다며.”
몇 시간 전 땀과 정액, 애액으로 엉망이 된 몸으로 그들은 껴안고 욕실로 향했다. 섹스를 처음 배운 연인들은 서로의 몸을 닦아 주다 다시 불이 붙었다.
쏟아지는 물속에서 지훈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는 그녀의 가슴을 맘껏 어루만지고 목덜미에 키스하며 세정의 안을 박아 댔고 그녀는 샤워기의 지지대를 잡고 아찔하게 교성을 질렀다.
“춥지 않아?”
지훈이 그녀의 드러난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 덮어 주었다. 그 손길이 부드러워서 세정은 괜히 눈물이 났다.
이불 안의 그녀는 속옷도 걸치지 않은 나체였고, 그녀의 옆에 있는 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깜깜한 밤이 사라지고 아침이 밝아 오자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아. 나는 결국 이 애와 섹스를 한 거구나.
세정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도르르 흘러내렸다. 사귀는 사이에 섹스를 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데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정아.”
그녀의 동요에 지훈이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앞머리가 이마 밑으로 내려와 자연스레 흐트러진 얼굴이었다. 세정이 그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 하는 외박도 처음이다.
“울지 마. 왜 그래, 아파? 아직도 너무 아파서 그래?”
가까이서 보니 눈이 빨간 것은 지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핏줄이 터져 벌게진 눈동자가 물기에 반짝였다.
“그냥. 눈물이 나.”
그녀가 작게 속삭이자 지훈이 그녀의 얼굴을 손 안에 가두었다.
“평생 내가 너 책임져. 뭐가 무서워서 울어. 대체 뭐가.”
그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며 세정은 작게 한숨을 뱉어 내며 웃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지훈은 그녀가 그를 믿지 못하는 거라고 여기고 인상을 썼다. 당장 그녀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세정은 그의 진심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섹스했으면 무조건 결혼이야.”
지훈이 정확하게 내뱉는 말에 세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엷게 웃었다.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니?”
“그럼 넌 섹스는 나랑 하고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하려고 그랬어?”
지훈이 그녀를 보며 나란히 옆으로 누운 채 인상을 찌푸렸다. 세정은 기가 차서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사귄 지 이제 겨우 100일이거든요?”
“속궁합도 확인해 봤으니까 된 거잖아. 그리고 누가 당장 결혼하자고 했어? 나중에 때 되면 내가 너 책임질 거니까 울고 그러지 말라는 소리야.”
속상하니까.
지훈이 속엣말을 감추고 있는 사이 세정이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시트가 내려가고 그가 밤새 물고 빨았던 그녀의 가슴이 드러나자 지훈의 눈매가 또다시 길게 가늘어졌다.
“너한테 책임져 달라고 말한 적 없어. 대신….”
“대신, 뭐.”
세정이 고개를 휙 돌려 그의 책상을 눈으로 더듬었다. 그의 휴대폰이 손에 닿을 거리에 있었다. 세정은 지훈의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킨 지훈이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세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냥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네가. 지금. 오늘을.”
휴대폰을 양손으로 든 그녀가 정면을 보고 미소 지었다.
찰칵.
“자. 네가 바라던 거.”
사진 속의 그녀는 목과 어깨 주변에 온통 지훈에게 깨물린 자국을 달고서 눈물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휴대폰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지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세정이 달콤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원해서 너랑 섹스한 거야. 우리는 서로한테 처음을 준 거니까, 나는 하나도 안 억울해. 내 처음을 근사하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훈이 세정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뜨겁게 속삭였다.
“내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너야. 내 인생에 여자는 너 하나야. 맹세해. 나는 신은 안 믿어. 그러니까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할게. 나한테는 너뿐이야.”
어제와는 여러 의미로 다른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세정은 그의 품 안에서 눈물 젖은 얼굴로 살포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