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몸으로 때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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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몸으로 때우면 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정은 피로에 무겁고 딱딱해진 어깨를 꽉 잡아 문지르며 스튜디오를 나섰다. 중간에 콘티가 바뀌는 바람에 광고 촬영이 모두 끝난 시각은 새벽 2시였다.
중간에 광고주 측 마케팅 팀장이 얼굴을 비쳐 분위기가 안 좋긴 했지만 촬영 결과물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 차장님, 출출한데 뭐라도 드시고 가실래요? 근처에 설렁탕 먹으러 갈 건데.”
팀원 중 하나가 그녀를 보며 물었지만 세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피곤해서 먼저 집에 갈게요.”
상사와 식사하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부하 직원들 역시 자연스레 자리를 피해 주려는 세정을 애써 붙잡지 않았다.
“그러세요. 택시 불러 드리겠습니다, 차장님.”
“그래 줄래요? 고마워요.”
김 대리가 세정을 위해 콜택시를 부르려고 하는 순간, 길 끝에서 검은색 세단이 소리 없이 다가와 멈추었다.
지잉.
운전석의 창문이 여유 있게 내려가고 그 안에서 불쑥 나타난 얼굴에 세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갓 샤워한 듯 축축한 머리카락을 이마 아래로 늘어뜨린 지훈이 싱긋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까딱였다.
“안녕?”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한 명이 그를 알아봤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다른 이들도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숙였다.
“다들 지금 끝난 겁니까? 이번 광고 촬영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한 걸로 아는데.”
“네, 그렇습니다.”
“10초짜리 촬영치고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네요?”
“아…. 그게….”
“이런 경우는 대부분 둘 중 하나죠. 결과물이 별로였거나, 결과물이 쓰레기였거나.”
새로 온 이사의 갑작스러운 출연에 직원들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말을 흐렸다.
“팀장을 보내는 게 아니라 임원급이 직접 갔어야 했나 보군요. 10초짜리 옥외 광고가 이 정도면 30초짜리 TV 광고는 촬영 기간을 한 일주일은 잡아야 하나요?”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세정이 하이힐을 신은 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아찔한 구두 굽이 후들거렸다.
“…촬영은 잘 끝났습니다. 중간에 콘티가 바뀌어서 좀 늦어졌을 뿐입니다. 결과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문제가 없는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데.”
느긋하게 내뱉는 지훈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속에는 뼈가 있었다. 직원들은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익숙해질 틈도 없이 눈만 껌뻑였다. 세정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오픈되면 사람들이 전광판에서 눈을 못 뗄 겁니다. 그 정도로 잘 나왔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지훈이 마침내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괜찮습니다.”
“저녁은 먹고 일한 건가?”
염려가 묻어나는 얼굴로 그가 살짝 인상을 쓰자 저도 모르게 세정의 심장이 크게 뛰며 반응했다. 작게 속삭이는 말투와 표정에 예전의 지훈의 모습이 겹쳐졌던 탓이었다. 세정은 난감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촬영 진행 사항 확인하러 오신 거면,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졌다. 세정은 이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다. 갑자기 나타난 지훈에게 저도 모르게 동요하는 것이 불안했다. 그와 상대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대로 더 흔들릴까 봐 두려워 도망치고 싶었다.
“안녕히 가세요.”
세정은 최대한 자연스레 대응하려 했지만 날카로운 말끝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안 차장님.”
도망치듯 돌아서려는 그녀를 지훈이 불러 세웠다. 세정은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 애원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
제발. 그냥 가.
눈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가 활짝 웃었다.
“이리 좀 가까이.”
그가 그녀를 손짓하며 불렀다. 세정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한 발짝 그에게 다가섰다.
“내가 아까 안 차장님한테 보고를 덜 받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부족한 보고가 있다면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해서 드리도록….”
최대한 정상적으로 그를 떼어 내려는 세정의 노력을 무시하고 지훈이 말을 중간에 잘랐다.
“내가 좀 급해서요. 일단 타서 이야기하시죠.”
이제는 직원들이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세정은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그녀를 본 지훈이 열린 차창을 통해 차 밖으로 상체를 완전히 내밀었다. 가로등에 비친 그의 완벽한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제발.
세정이 정체 모를 불안감에 다시 휩싸였을 때였다.
“세정아.”
“…이사님….”
그녀가 그의 말을 끊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할 이야기가 많지 않나?”
세정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주변 직원들이 긴장하며 그들을 주시하는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숨을 몰아쉬는 세정을 보며 지훈이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면, 그냥 여기서 해?”
길가에 잠시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숨 막히는 침묵을 깬 것은 세정이었다. 그녀가 애써 얼굴에 만들어진 미소를 올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이사님이랑 나, 대학 동기인 거 다들 알죠?”
어색함이 흘러넘치는 말투였지만 긴장한 직원들은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일할 때는 파트너 관계지만 업무 외에는 동창이기도 하니까. 할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요.”
“아. 네…. 당연히 그렇겠죠.”
직원들이 그녀와 지훈의 눈치를 보며 로봇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광고주 임원과 그들의 상사가 학연으로 얽힌 사이라는데 나쁠 것은 없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지만 지훈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들이 원수지간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봐요. 난 오늘 결과 보고하고 들어갈 테니까 월요일에 회사에서 보는 걸로 하죠.”
차창에 양팔을 올리고 얼굴을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지훈의 얼굴에 피식, 소리 없는 미소가 스쳤다. 고군분투하는 세정의 모습에서 예전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다.
세정은 예전부터 늘 열심이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예뻤고, 그 결과에 숨김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보는 사람까지 즐겁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의 모든 표정을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 저리도 냉철하고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화가 날 때 목덜미가 얼마나 붉게 달아오르는지, 억울해서 입술을 꽉 깨무는 모습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눈을 살짝 흘기며 배시시 웃는 얼굴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를 실제로 눈앞에 마주한 지금, 지훈은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속이 뜨거워지는데,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세정은 직원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저런 면들이.
세정이 늘 최선을 다해 애쓰는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더욱 그녀가 이뤄 낸 것들을 지켜 주고 싶었다.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당장 끌어당겨 품에 안았을 것이다.
지훈은 소리 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며 평정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던 길고 긴 시간들을 순간의 충동적인 선택으로 날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네? 아, 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직원들이 세정과 차 안의 지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뒤를 돌아 확인하는 시선을 느끼며 세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야 했다.
세정은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그의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훈의 향기가 훅, 하고 밀려들었다. 상쾌한 동시에 농밀한 향이었다. 지훈은 예전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었다.
“벨트 해.”
지훈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그의 운전 습관을 익히 알고 있는 세정이 군말 없이 안전벨트를 채웠다.
달칵, 소리가 나자마자 승용차가 부드러운 엔진 소음을 내며 출발했다. 지훈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얌전하게 차를 몰았다. 차에 타기만 하면 속력을 내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에 세정은 조금 의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직원들 앞에서도 나름대로 완화된 모습이었다. 여전히 날카로움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이전의 지훈이었다면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녀를 더욱 당황시켰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의 한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지분거렸다. 운전 습관은 바뀌었지만 차에 타기만 하면 그녀를 만지작거리는 손버릇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 같은 상황에 세정은 살짝 떨리기 시작한 입술을 꽉 붙였다.
“피곤하지는 않아? 팀장이 그러던데. 중간에 콘티가 갑자기 바뀌어서 메인 모델이 난리였다고. 힘들게 한 건가?”
다정한 목소리지만 낮게 드러나는 뾰족함에 세정은 말을 아꼈다. 침묵을 지키는 그녀를 힐끗 보며 그가 다시 물었다.
“속이라도 시원하게 속력 내 줘? 잘할 자신 있는데.”
“그냥 계속 안전 운전 해 줬으면 좋겠어.”
세정이 얼른 대답하자 지훈이 가볍게 웃으며 중얼댔다.
“넌 내 옆에만 있으면 항상 안전해. 너만 그걸 몰라.”
지훈의 대꾸에 그녀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서울 시내는 새벽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세정의 어깨에 드리운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없이 운전 중이었다. 정처 없이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세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직 안 정했는데.”
“장난하지 말고.”
세정의 딱딱한 말투에 지훈이 교차로에서 좁은 골목으로 핸들을 가볍게 돌렸다.
“1번 호텔, 2번 내 집, 3번 네 집. 어디가 좋아? 네가 선택해.”
세정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를 불렀다.
“지훈아.”
“결정했어?”
입은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지훈아,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세정은 몸을 완전히 틀어 그를 보았다. 그녀는 어차피 지금 집에 돌아가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을 위해서라도 지훈과의 과거를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했다.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굴어? 이야기는 천천히 해도 되잖아. 앞으로 시간 많은데.”
“질질 끌고 싶지 않으니까.”
세정이 대답하자 지훈이 신호를 받고 차를 세웠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깜빡였다. 그가 차창에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받친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평범하게 잘 살고 싶어.”
지훈이 이미 오래전, 들어 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그윽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지훈을 향해 세정은 무겁게 말을 이었다.
“일은 열심히 할게. 최선을 다하는 걸로는 모자랄 테니까 최고의 결과를 보여 줄게.”
열심히 설명하는 그녀를 보는 지훈의 눈이 부드럽게 가늘어졌다. 세정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자그마한 입술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동안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상상만 해도 몸이 들끓었다. 그녀를 향해 지그시 웃고 있는 그를 보며 세정이 머뭇거리다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너도 사적인 감정 배제하고 날 대해 주면 좋겠어.”
지훈의 입술에서 기다란 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너한테 사적인 감정이 남아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거야?”
“나한테 사과가 받고 싶은 거면 정식으로 사과할게. 네 자존심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그땐 나도 어렸어.”
세정의 말에 지훈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세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 줬으면 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저 거래처 사람을 대하듯 그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세정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훈은 그동안 그를 잊으려고 바쁘게 살았던 그녀의 노력을 보란 듯이 반나절 만에 날려 버렸다.
밀폐된 공간에 그와 함께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다시 끝이 정해진 연애를 하기에 세정은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과거 고통스러웠던 이별을 떠올리면 그와 다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게 맞았다.
그리고 지훈 역시, 그녀가 왜 그를 떠나야 했는지 모르는 게 옳았다. 그것은 세정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세상에 서로 둘뿐인 것처럼 사랑했던 그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예의였다.
“응. 네 절절한 진심은 나한테 충분히 전달됐어. 사과 받아 줄게.”
그의 말에 세정의 커다란 눈동자가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조금 흐려졌다. 지훈이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만 않는다면, 그녀 역시 죽을힘을 다해 벽 뒤에 숨어 있을 자신이 있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지훈이 그런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 선택해.”
“…뭘?”
“1번, 2번, 3번 중. 어디가 좋아?”
눈물 맺힌 세정의 얼굴이 한꺼번에 구겨졌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가 눈만 깜빡이고 있는 사이, 그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지훈이 그녀 쪽으로 상체를 숙이자 그의 체취가 더욱 강해졌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세정의 이마에 삐져나온 잔 머리칼을 슥, 쓸어 넘겼다. 눈썹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 세정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나는 신사답게 너한테 선택의 기회를 줬어.”
“…이러지 마.”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이가 없게도 지훈의 손이 느리게 얼굴을 쓰는 감촉에 이상한 긴장감이 온몸에 차올랐다.
“그런데 네가 대답을 안 하니 어쩔 수가 없네.”
달칵.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안전벨트까지 풀렸다. 지훈의 날카로운 콧날이 그녀의 뺨에 다가와 부딪쳤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꽉 잠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착 달라붙었다.
“4번. 차로 하자. 우리 재회 섹스.”
***
“너 미쳤니?”
지훈의 뺨을 세게 때리고 난 후, 세정이 간신히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하얀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났지만 그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섹스 한 번만 해. 나 지금 너랑 하고 싶어 돌아 버리겠으니까.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 기다려 줄 테니까.”
“야, 이 미친놈아. 이 변태 새끼야!”
세정이 소리치며 꽉 쥔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세게 몇 번이나 퍽, 퍽, 두드렸다.
다짜고짜 섹스를 한 번 하자니.
21년 인생에 그녀에게 그토록 모욕적인 말은 난생처음이었다. 세정은 놀란 나머지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오른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너, 당장 사과해.”
“뭘. 섹스하자고 한 거, 사과하라고? 뺨 때린 거로도 모자라? 난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야. 네 타입이 그거라며.”
“너 입 안 다물래? 진짜!”
세정은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억울하고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비켜! 나갈 거야!”
“가더라도 대답은 해 주고 가.”
“질문 같은 질문을 해야 대답을 할 거 아냐, 이 싸이코야!”
세정의 울음 섞인 외침에 지훈이 짙어진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엉망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내가 어떻게 해야 돼?”
지훈이 그녀를 보며 높은 콧날을 괴롭게 일그러뜨렸다.
“씨발, 너랑 자고 싶어서 돌아 버릴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밥도 싫다, 돈도 싫다, 데이트도 싫다고 해서 쪽팔리는 거 무릅쓰고 내 속내 다 까발렸는데 그걸로 부족해?”
지훈에게도 성욕은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확실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눈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여자들은 저속하고 천박하게 느껴졌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보이는데 겉으로는 무신경한 척하는 여자들 역시도 그러했다. 지훈은 결벽적인 성격 탓에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와 스킨십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주변에는 딸뻘인 애인들이 너무나 많았고, 어린 소년이었던 지훈의 눈에는 그것이 몹시도 한심하고 경멸스러웠다.
다가오는 여자들을 모조리 쳐 낸 것은 여자에 빠져 어머니에게 평생 무시당하며 멍청하게 살았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정은 그에게 독보적인 존재였다. 뺨을 맞은 치욕적인 상황에도 눈앞의 상대를 향해 치밀어 오르는 욕구 때문에 지훈은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정은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쏘아볼 뿐이었다.
“너 그따위로 행동해서는 평생 가도 여자 못 만나, 멍청아.”
“씨발…. 누가 여자 만나고 싶대? 난 너 만나고 싶다고 했어. 멍청한 건 너야.”
지훈은 말간 얼굴로 강의를 듣고 있던 세정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와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세정은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학과 행사에 하나도 참여를 하지 않았다. 등신처럼 뒤를 쫓아가도 봤고 사람을 시켜서 뒷조사도 해 보았다.
세정은 어쩌면 저렇게 미련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늘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 있었다. 지훈이 친구들의 비웃음을 사 가며 도서관을 출입하게 된 것도 그녀 때문이다.
세정이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녀가 펜 끝을 물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져 공중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말았을 때, 지훈은 자신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러 같은 강의를 신청하고 늘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늘 하나뿐이었다.
세정은 지훈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지훈은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와중에 태환이 슬쩍 꺼낸 말은 학점을 미끼로 그녀를 유혹해 보라는 말이었다. 안세정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세정이 그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 바빠. 난 너처럼 한가하지 않아. 장학금도 받아야 하고 알바도 해야 해. 제발 내가 하는 일 좀 방해하지 마.”
커다란 라운지에 오후의 햇살이 들어찼다. 지훈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괴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한테 돈을 주면 나한테 시간 내 줄 수 있어?”
“흐윽….”
또다시 제자리였다. 꽉 막힌 벽에다 대고 소리치는 것같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정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터져 아래로 흘러내렸다.
“울지 마.”
“흐으윽….”
“울지 말고 대답을 해.”
그가 커다란 두 손으로 세정의 자그마한 얼굴을 꽉 붙잡았다. 세정은 서러운 한숨을 토해 내고 지훈을 향해 울먹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넌…. 넌 대체 왜 자꾸 그따위 더러운 말만 해?”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 보석 알갱이보다 예쁜 눈물방울이 햇살에 반짝이며 투두둑 흘러내렸다. 세정의 눈물은 한번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이 주룩주룩 흘렀다. 서러움과 억울함, 분노와 긴장감이 혼합된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지훈이 정말 그녀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게 자괴감마저 들었다. 돈으로 뭐든지 해결하려 드는 이런 또라이에게 마음을 쓰고 이해해 주려고 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
“그럼 키스만 한 번 하자.”
“흑…. 너 진짜 또라이야?”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며 흐느끼자 지훈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울지 말라고 했다.”
“너 때문에 열받아서 우는 거잖아…!”
그녀의 자그마한 턱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그가 핥는 것은 세정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훈은 놀라서 얼어붙은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그녀의 뺨에서 턱 끝을 타고 공중으로 낙하하는 눈물방울로 입술을 축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놀라서 당황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그녀의 얼굴을 붙잡은 지훈의 커다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세정은 남자의 몸이 흥분으로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차마 그녀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입술을 대지 못했다. 눈물이 떨어져 젖은 그의 입술이 긴장에 떨리는 모습이 세정의 눈앞에서 바로 보였다.
세정은 눈도 감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굴던 거친 말과는 달리 그녀에게 입술도 대지 못하고 벌벌 떠는 그의 행동이 지독한 괴리감을 주었다.
세정의 가슴속에 단단히 얼어붙어 있던 확신에 작은 소음이 들리더니 삐죽 틈새가 벌어졌다. 그 비좁은 틈을 타고 기묘한 감정이 고개를 불쑥 쳐들었다.
얘는 도대체 뭐 하는 애일까.
겉모습은 최고 바람둥이처럼 생겨서는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섹스하자고 큰소리를 쳐 놓고서는 벌벌 떨며 그녀에게 입술도 대지 못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검은 시선에서 뜨거운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그녀의 뺨에 닿는 손길은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못해 엉망진창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서 오히려 솔직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게 아이러니했다. 세정은 울음과 헛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키스면 되니?”
지훈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정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도 틀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고 살아온 그녀지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진심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더욱 컸다.
거칠고 비열한 그의 말투와 손을 벌벌 떨며 긴장하는 행동에 차이가 너무 커서,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그인지 알고 싶었다.
“…키스하면, 나 보내 줄 거냐고.”
흥분해서 차마 말도 내뱉지 못하는 지훈의 떨리는 고개가 천천히 끄덕였다. 그는 마치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어린아이 같았다.
혼이 날까 봐 움츠리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이 딱 그러했다. 돈을 주고 그녀와의 시간을 사겠다는 둥, 화대를 주고 섹스를 요구하는 듯했던 말과는 달리 긴장한 그의 모습이 순진하게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세정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시커먼 암전이었다.
주르륵.
그녀의 감긴 속눈썹을 타고 굵다란 눈물이 길게 흘러내렸다.
춥.
세정은 그가 입술을 냅다 부딪쳐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처음 온기가 느껴진 곳은 그녀의 뺨이었다. 지훈의 떨리는 입술이 마치 점을 찍듯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춥. 춥.
그는 입술로 세정의 눈물 자국을 느리게 지우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그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세정의 호흡이 저도 모르게 슬쩍 달아올랐다. 그 와중에 그녀의 턱과 목덜미를 감싼 커다란 손의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하아….”
마침내 그의 입술이 세정의 젖은 속눈썹을 차례로 훔치고 지나갔을 때, 그녀가 눈을 떴다. 지훈의 뜨거운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서 그녀를 향해 있었다.
시커멓게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오만할 정도로 높고 날카로운 지훈의 콧날이 그녀의 작고 동그란 콧등을 꾹, 눌러 왔다. 세정이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얼굴이 그의 손에 잡힌 탓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 누르지 마. 코 아파.”
코끝을 짓누르며 입술을 그대로 부딪치려던 지훈이 흠칫 놀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가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서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이렇게 생긴 걸 어쩌라고.”
깎아 놓은 것 같은 높은 콧대를 탓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세정은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그에게 속삭이듯 내뱉었다.
“…넌 영화도 안 봤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고개를 기울이면 되잖아, 이 멍청아.”
지훈이 마른침을 삼키자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꿀꺽. 그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훈이 턱을 천천히 기울였고 마침내 떨리는 두 입술이 닿았다.
세정은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것이 신호였다.
지훈은 덜덜 떨며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짐을 느꼈다. 그는 탁한 숨을 터뜨리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핥으며 거세게 죽죽 빨았다.
“흡… 흐읍!”
세정이 놀라 떨어지려 했지만 기회는 없었다. 닿기도 두려워하는 듯 눈물 자국을 지워 내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입술을 마주한 지훈은 마치 사막에서 목이 타 죽기 직전에 오아시스를 간신히 발견한 여행자처럼 굴었다. 뜨거운 숨결을 뱉어 내며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고 세정의 입 안에서 달콤한 타액을 퍼 올리며 허겁지겁 빨아 삼켰다.
치아가 덜그럭거리며 부딪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툼한 혀로 세정의 입 안을 비집고 숨겨진 작은 혀를 찾아내 거칠게 얽어 댔다. 그의 머릿속에 이성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하아, 씨발…. 하아….”
제 흥분을 이기지 못해 욕설을 내뱉으며 그가 세정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꽉 집어넣었다.
세정은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에게 타액이 쭉쭉 빨릴 때마다 암전되었던 머릿속에 시뻘건 불꽃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것 같았다. 오금에 힘이 풀리고 누가 코를 틀어막은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혀 와 헐떡여야 했다.
“흐음… 흐읏!”
세정의 온몸에 열이 오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꿈꿨던 인생 최초의 키스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키스였다. 이렇게 동물적으로 혀를 뒤섞고 타액이 빨리며 몸이 강제로 달아오르는 입맞춤이 절대 아니었다.
지훈 역시 거친 호흡을 내뿜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릎에 힘이 풀린 그녀를 꽉 안아 지탱한 손에 힘이 더해 갔다. 한번 붙은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녀의 입 안을 마구잡이로 침범하며 게걸스레 빨아들이는 지훈의 움직임에 세정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도지훈과 현관에 선 채로 키스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네 침, 맛있어. 달아.”
간신히 떨어진 입술 새로 지훈이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중얼거렸다.
“내 입에 침 뱉어 봐.”
“하으… 그게 무슨 미친 소리…. 흡….”
다시 그녀의 타액이 게걸스레 빨렸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것은 세정 혼자만이 아니었다. 지훈이 그녀를 끌어안고 헉헉거리며 꽉 잠긴 목소리로 내뱉었다.
“혓바닥도 너무 부드러워. 깨물어서 삼키고 싶어.”
“하지 마!”
“그럼 내 혀 좀 빨아 봐. 세게.”
지훈이 탁한 음성을 뱉었다. 엉망으로 빨리고 씹힌 그녀의 붉은 입술이 가늘게 진동했다. 커다란 창 너머로 붉은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타액이 가는 실처럼 길게 늘어나고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드리웠다. 세정은 난생처음 느끼는 어질어질한 흥분감에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성질이 급한 도지훈이 그녀를 재촉했다.
“혀 빨아 보라고. 얼른.”
“네가 그럴 기회를 줘야…. 흡….”
다시 그의 입술이 그녀에게 붙었다. 이번에는 야무지게 턱을 돌려 각도를 맞추고 지훈이 그녀의 입 안으로 제 혀를 쑥 집어넣었다. 세정이 잠시 머뭇거리자 그가 그녀의 혀뿌리를 쿡쿡 쑤셔 자그마한 입 안에서 타액이 다시 샘솟게 했다.
“흐으… 흐읏….”
“빨리.”
엉망으로 뭉개진 발음으로 지훈이 중얼거렸다. 세정의 혀가 머뭇거림 끝에 지훈의 것을 건드리며 미약하게 빨았다. 지훈의 성대에서 허스키한 신음이 터졌다. 그가 그녀를 꽉 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으음… 흐읏…?”
그와 키스하며 뒷걸음질 치던 세정은 어딘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뒤는 널찍한 침대였다.
“지금 뭐 하는 거… 흡….”
다시 혀를 섞었다가 떼며 지훈이 그녀의 몸 위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속삭였다.
“키스만 할 거야. 키스만.”
“지금까지 한 건, 대체 뭐라고 생각해?”
세정이 헐떡이며 그를 저지했지만 지훈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건 연습이었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훈의 궤변에 세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그녀의 이마와 뺨에 엉망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커다란 손으로 쓸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세정은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유 없이 안도하고 있었다. 지훈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아? 네가 원하는 걸 자세하게 말해 봐. 혀 세게 빨면 아파?”
“당연한 거 아냐…? 흡….”
그가 다시 다가왔다.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빨았다가 혀를 달콤하게 뒤섞었다.
“…하아….”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지자 그의 코끝에 닿는 세정의 숨결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달뜬 신음이 섞였다. 세정의 혀뿌리에서 타액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지훈이 그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이번엔 좋았어?”
세정은 새까만 시선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지훈을 보았다.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 키스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그녀의 입술에서 떨리는 음성이 샜다.
“…그렇다고 쳐.”
“얼마만큼 좋았어?”
“그걸 어떻게 표현해?”
당황해서 얼굴에 피가 몰린 세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지훈이 다시 물었다.
“나랑 섹스하고 싶을 만큼 좋았어?”
“야!”
“억지로 섹스 안 해.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 여자들도 흥분하면 남자처럼 아래가 젖는다던데. 너도 그래? 난 지금 그런 것 같아. 어쩌면 이미 싼 건지도 모르겠어.”
“너, 너…. 진짜 입 안 다물어?!”
세정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손가락도 못 들어 올릴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그의 황당한 말에 이상하게 다리 사이가 간질거리는 자신이 지독히도 낯설었다.
“다시 해 보자. 이로 입술 깨무는 건 싫어?”
“절대 싫어.”
“그럼 입술로 빠는 건?”
“…차라리 그게 나아.”
“그래, 혀랑 입술로만 할게, 그럼.”
지훈의 입술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세정을 다시 덮쳤다. 짐승처럼 거칠기만 했던 키스는 세정의 반응에 따라 점차 달콤하고 농밀하게 변해 갔다.
“흐읍… 하아….”
낙조가 떨어지는 커다란 거실 안에서 지훈은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또 탐했다.
“이… 이제 가야 해.”
“난 아직 안 끝났어.”
“발표 수업 파일 만들어야 된다고. 제발!”
그녀가 헐떡이며 그의 어깨를 밀어내자 지훈이 손을 뻗어 자신의 노트북을 침대로 떨어뜨렸다.
“이거?”
대기 상태인 노트북을 깨우고 바탕 화면 중앙에 덩그러니 있는 파일을 클릭하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레젠테이션용 파워포인트 화면이 주르륵 슬라이드로 떴다. 딱 봐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깔끔한 정리였다.
“이… 이게 뭐야?”
세정이 커진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
“보면 몰라?”
지훈이 붉어진 입술을 씹으며 씩 웃었다.
“야, 너…. 진짜….”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팔목을 휙, 잡아당겨 제 팔 안에 가둔 후, 지훈이 제 바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플라스틱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파일이 담긴 USB 스틱이었다.
“자. 선물.”
지훈이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야 이…. 이, 싸이코야… 이걸 왜 이제 줘!”
세정은 말을 더듬다가 결국 크게 소리를 치고야 말았다. 지훈이 씩씩거리는 그녀에게 이마를 맞대며 속삭였다.
“내 말 잘 들으면 네 인생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좀 느껴 보라는 뜻이야.”
기가 차서 세정은 입이 딱 벌어졌다. 억울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내가 네 시간 벌어 줬으니까, 넌 그 시간을 나한테 바칠 의무가 있어.”
“뭐라고?”
“키스까지만 할 테니까. 너도 기분 좋게 해 줄게.”
지훈의 입술이 다시 다가왔다.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정은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키스가 길어질수록 더욱 그러했다. 지훈은 그녀가 숨이 막혀 하면 다정하게 틈을 주고, 반응을 보인다 싶으면 더욱 농밀하게 그녀를 핥으며 빨아 기어코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거칠고 더러운 말과는 달리 그녀의 입 안을 훑는 혀의 움직임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녀의 얼굴을 꼭 감싼 손바닥에 슬며시 솟아오르는 열기와 식은땀은 그 역시 그녀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세정은 한 달 전, 태환이 대신 전해 주었던 도지훈의 진심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서툴렀지만 몹시도 뜨거웠고 밀어낼 수 없을 만큼 절박하게 그녀를 붙들었다. 지훈이 건네준 USB 스틱을 꽉 쥔 그녀의 손안에 진땀이 배어났다.
세정의 첫 키스는 길고도 길었다. 결국에는 지훈의 말대로 다리 사이가 완전히 축축해질 정도로.
***
“오랜만에 카섹스도 나쁘지 않잖아.”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확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지훈아, 나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없어. 우린 끝난 사이야. 제발 이러지 말자. 응?”
세정이 애처롭게 내뱉었지만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재회 후 첫 관계를 차 안에서 나눌 의도는 없었지만 이 순간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성급하게 그녀를 밀어붙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도 모르고 단칼에 그를 밀어내려고 하는 세정을 보는 지훈의 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녀를 코앞에 두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와는 달리 세정은 어떻게 하면 지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세정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알려 줄 셈이었다. 그녀 역시 그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 증명해 주면 될 일이었다.
지훈은 짐승처럼 들끓는 욕망의 고삐를 꽉 그러쥐었다. 그녀가 절대로 도망칠 수 없도록 깊고 아득한 늪처럼 까만 시선에 세정을 가두고 지훈이 나른히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장소 불문하고 제대로 젖게 해 줄 테니까.”
미처 거부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이 그에게 바로 먹혀 들어갔다.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몇 번이나 빨며 그녀를 달구는 아찔한 감촉에 세정이 몸을 떨었다.
헤어진 지 6년이 지났어도 지훈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떠한 키스에 그녀가 흥분하는지, 두 다리 사이가 부끄럽게 젖어 드는지를 말이다.
꽁꽁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순서를 가리지 않고 두둥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성적으로는 그를 밀어내야 마땅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는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지훈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멈춰야 한다는 다짐은 단 한 번의 키스로 아스라이 물거품이 되었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잡혔다. 지훈은 예전과 같이 숨 막히는 키스로 그녀를 함락시키고, 그녀가 한 발짝 물러서면 두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하아….”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지훈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세정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시선을 맞추며 피하려는 그녀를 달래듯 따라 붙고, 달아오른 체온을 전해 주듯 부드럽게 그녀를 쓰다듬었다.
지훈은 지독히도 똑같은 패턴이었지만, 그 고집스러운 입맞춤에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은 그녀 역시 똑같았다. 세정은 두려웠다. 마음을 주는 일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지훈에게 항복하게 되어 버렸던 예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불안했다.
지훈은 그러한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했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할짝거리다 벌어진 틈새를 거침없이 파고들며 뜨겁게 혀를 뒤섞었다. 그는 마치 우아한 뱀처럼 움직였다.
오톨도톨한 입천장을 스르륵 부드럽게 건드리자 세정의 혀뿌리에서 달콤한 타액이 샘솟았다. 그가 더욱 깊숙이 그녀를 빨아들였다. 코끝에 서로의 뜨거운 호흡이 뒤엉키고 그녀의 성대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샜다.
“흐읏….”
몸에 불길이 일어난 것처럼 체온이 올라가는데 살갗에는 소름이 일었다. 너무도 오랜만의 접촉에 세정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온몸이 마비되었는데 오직 지훈의 혀가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입술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의 타액에서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도지훈의 맛이 났다.
촉.
그가 입술을 떼더니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을 웃음으로 감추며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다.
“세정아.”
“…….”
“세정아.”
“…말해.”
입을 열자 헐떡이는 것 같은 자신의 목소리가 튀어나와 세정은 흠칫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애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가끔 만나서 섹스하는 사람은 있어?”
세정은 그의 말도 안 되는 질문보다 지훈이 회사 내에서 그녀의 사생활을 묻고 다닌 것은 아닌지가 더욱 걱정이 되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가 곤란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아…. 네가 알 필요 없잖아.”
“있으면 정리해. 내가 나서기 전에.”
“왜, 내가 그래야 되는데?”
“몰라서 물어?”
그가 그녀의 젖은 입술을 길게 핥더니 작게 속삭였다.
“안세정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지훈 거니까. 주인 돌아왔으니 개새끼들은 꺼져야지.”
오랜만에 들으니 더욱 적응이 안 되는 그의 말버릇에 세정은 뭐라고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자 지훈이 그녀의 찌푸린 미간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네가 인상 쓰고 째려보면 난 정말 그대로 네 안에 박고 싶어져. 언제, 어디서든 예외 없이 백 프로야.”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더러운 소리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다른 때는 몰라도 섹스할 땐,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네 반응이 더 생생했으니까.”
지훈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혀로 귀 뒤 여린 살갗을 쓸었다.
“예전엔 이런 말 하면 기겁을 하면서도 네 팬티가 축축해졌잖아. 기억 안 나?”
“아, 아니야!”
고개를 휙 돌려 그의 입술을 피하는 세정을 보며 지훈이 피식 웃었다.
“확인해 볼게.”
말릴 새도 없이 그의 손이 그녀의 스커트 사이로 쑥 들어오더니 여린 스타킹을 죽 잡아당겨 구멍을 냈다. 애액으로 축축해진 팬티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지훈에게서 만족스러운 웃음이 터졌다.
“하하, 왜 뻔한 거짓말을 하지?”
그가 부푼 클리토리스를 엄지로 꾹 누르며 돌리자 세정은 아찔한 흥분에 몸을 떨었다. 내벽에서 뜨거운 것이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그녀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세정은 걷어 올린 셔츠 아래 힘줄이 돋은 그의 팔뚝을 잡고 작게 속삭였다.
“흣… 지훈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호텔로 가자. 응?”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지훈은 어떻게든 그녀를 흥분시킬 것이고, 그 뒤는 안 봐도 뻔했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차 안에서 몸을 섞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정이 애원하듯 부탁했지만 지훈은 단호했다.
“아까 내가 물어봤을 때 진작 그러면 좋았잖아.”
작게 혀를 차는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세정아.”
툭.
세정이 앉아 있는 조수석의 의자가 뒤로 젖혀졌다. 지훈이 그녀의 위로 날렵한 몸을 겹쳤다. 깨끗한 이를 드러내며 욕망에 차올라 마치 짐승처럼 입맛을 다시는 그를 보며 세정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호소했다.
“너 정말, 여기서 이럴 거야?”
“처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놀라. 나랑 너랑 차 안에서 섹스한 게 한두 번이야? 내 시트가 엉망이 됐던 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이냐고.”
그것은 철이 없었던 어렸을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였다. 세정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러지 마.”
“다리 사이에 얼굴 박고 빨아 주고 싶은데 여긴 너무 좁다, 세정아.”
그의 입술이 대신 그녀의 가녀린 목을 쭉, 빨았다. 동시에 블라우스의 단추 두 개가 연달아 풀렸고, 그 틈새를 지훈의 커다란 손이 비집었다.
브래지어 와이어 안으로 들어와 보드라운 살점을 주무르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자극하는 손놀림에 그녀는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하읏!”
“아직도 젖꼭지가 제일 민감하네, 우리 세정이.”
그녀의 턱을 길게 핥으며 지훈이 허스키하게 속삭였다. 다른 손으로는 버클을 풀고 파스너를 내리자 속옷 아래 툭 불거진 커다란 페니스가 드러났다.
뭉툭한 선단은 이미 젖어 반들거렸다. 그녀가 그의 차에 탔을 때부터였다. 아니. 사실은 회의실에 들어오는 그녀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부터였나.
지훈이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을 주무르며 자조하듯 쿡쿡 웃었다.
“기억나? 네 가슴 처음 빨았을 때, 나 옷 입은 채로 그대로 팬티에 쌌던 거. 씨발, 등신같이.”
세정은 지훈의 손길에 반응하지 않으려 몸을 뒤틀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손가락 안에 짓이겨진 유두가 단단해지며 더욱 예민해졌다.
오랫동안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던 곳에 떨어지는 감각은 몸이 떨릴 정도로 그녀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 확인해 볼까? 6년 만에 처음 안세정 젖을 빠는데, 내 좆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응? 세정아.”
“하아… 지훈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대체.”
“내 차 선팅 끝내주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
“그래도… 제발….”
“아직까지 그딴 게 신경 쓰여? 안 되겠다. 젖꼭지 빨아 줄게.”
지훈의 손길에 블라우스 단추가 두 개 더 풀렸다. 그가 그녀의 속옷을 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브래지어 예쁘다. 그새 가슴 더 커진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아…!”
지훈의 입술이 그녀의 자그마한 유두에 내려앉았다. 성질 나쁜 아이가 젖병을 빨듯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며 쭉쭉 거침없이 빨아들이자 세정의 입술에서 결국 커다란 신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 아아…!”
그녀의 작고 봉긋한 가슴을 손으로 끌어 모으며 그가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아? 나도 미치겠어. 여전히 부드럽고 맛있다, 너.”
지훈이 그녀의 유륜을 넓게 핥으며 유두를 아프지 않게 씹었다. 손으로는 가슴을 쥐어짜듯 주무르며 입으로는 쭙쭙거리는 거북한 소리가 날 때까지 젖무덤을 빨아 댔다. 혀로 유두를 꾹꾹 누르며 희롱하자 그녀의 가슴이 더욱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 지훈아, 아아!”
세정은 결국 그의 목덜미를 감싸며 신음했다. 욕심 많게 두 가슴을 번갈아 애무하던 지훈이 마침내 쪽, 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젖꼭지를 입 안에서 풀어 주었다. 세정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몸을 겹치며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을 두 손에 감쌌다.
“확인 끝.”
새까맣고 어두운 지훈의 시선이 쾌락과 불안에 뒤섞인 세정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좆이 터질 듯이 꼴리긴 했는데…. 삽입도 하기 전에 등신처럼 싸지는 않았어. 나 잘했어?”
“…섹스할 때 더러운 말 좀 제발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세정이 흥분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자 지훈이 눈을 휘며 웃었다. 유백색 치아가 드러나는 깨끗한 미소였다.
“넌 그런 나를 사랑했잖아.”
세정의 커다란 눈동자에 당황함이 스쳐 갔다. 언젠가 그가 그녀의 인생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던가.
“아니야.”
세정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고, 지훈이 그런 그녀를 부정했다.
“아니. 넌 날 사랑했어. 아주 많이.”
지훈이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속옷을 다리 사이로 벗겨 내렸다. 애액이 흘러 흠뻑 젖은 팬티를 넓은 뒷좌석에 던진 후 답답해서 터질 지경인 그의 남근 역시 드로어즈 밖으로 해방시켜 주었다.
“세정아.”
지훈이 그녀의 눈을 보고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속삭였다.
“…날 다시 사랑해. 가능하면 빨리.”
부드럽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는데 세정의 심장이 의지를 배반하고 거칠게 뛰었다. 세정은 입술을 아프도록 꽉 깨물었다.
“거부해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시간 낭비 하지 말자. 나한테 여자는 세상에 너 하나뿐이듯이 너한테도 남자는 나뿐이라는 걸 인정해. 그럼 모든 게 편해지니까.”
그의 무릎이 그녀의 다리를 벌리더니 잔뜩 발기한 딱딱한 성기가 그녀의 음부에 닿았다. 흥분을 드러내듯 잔뜩 부푼 살덩이가 그녀의 입구를 짓누르자 그녀의 이성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널 원했어. 죽도록 가지고 싶어서 가졌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어. 아직도 널 보면 스무 살 애송이처럼 입에 침이 말라. 널 원하고, 가지고 싶고, 내 걸로 만들고 싶어서.”
세정이 과거에 끊임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지훈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늘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널 원해. 널 가지고 싶어.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달콤히 속삭이는 말을 들을 때면 심장이 아릿하게 떨리며 저절로 반응했다.
그녀의 몸은 늘 그렇듯 심장과 같은 속도로 반응했다. 세정은 지훈을 원하고 있었다. 깊은 곳에 숨겨진 근육이 욱신거릴 만큼 그의 몸을 환영하는 기분은 그녀에게 불안감과 동시에 아찔한 흥분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었다.
“넌 그때도 지금도 내 거야. 알잖아.”
“흑…!”
비좁은 그녀의 살결은 푹 젖어 있었다. 오래간만에 받아들이는 페니스의 뭉툭한 선단이 좁은 입구를 벌려 오자 아릿한 통증이 번졌지만 그 느낌마저도 그녀에게 성적인 쾌락을 주었다.
“지… 지훈아….”
세정은 바짝 마른 입술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훈이 그녀를 끌어안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힘 빼.”
“아, 지훈아. 천천히… 흣….”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지훈의 성기가 붉은 속살을 비집고 안으로 느리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세정이 그의 몸 아래서 바들바들 떨었다. 지훈이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떼어 내며 입술에 춥, 춥, 젖은 키스를 이어 나갔다.
“다리 벌리고 힘 빼.”
그녀는 반사적으로 떨리기 시작하는 허벅지를 간신히 벌렸다. 지훈이 허리를 살짝 뒤로 빼더니 얕은 피스톤 운동을 반복하며 그녀의 음부에 길을 내듯 움직였다.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그의 페니스가 그녀의 살결에 깊숙이 박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 안에서 뜨거운 게 줄줄 흐르는데, 왜 이렇게 긴장했어? 응?”
그와 거의 6년 만에 섹스를 하는데 긴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일이었다. 세정은 빠듯하게 들어오는 그를 받아 내며 이를 꽉 물었다.
“네가 여전히 막무가내인가 보지….”
“안 되겠다. 긴장 풀릴 때까지 밑에 빨아 줄게. 벌려 봐.”
세정은 쑥, 페니스를 빼내려는 그에게 매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빨아 주면 좀 나을 거야, 세정아.”
“할 거면 빨리, 그냥 넣어 달라고…!”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그녀의 몸이 굳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세정은 지금 당장 깊은 삽입을 원하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떠올라 버린 감각이었다. 당장 그녀의 몸 안에 꽉 차는 충족감과 그 후에 이어질 쾌락적 자극을 원하며 그녀의 질구가 경련했다.
“씨발….”
흥분을 참지 못한 지훈의 입에서 나직한 욕설이 터졌다.
“진짜 그냥 박는다.”
“마음대로 해.”
지훈이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안을 쑥, 거세게 비집었다. 세정이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키자 그녀의 질이 페니스를 엉망으로 조여 댔다. 끝까지 들어온 지훈이 잠시 그 상태로 멈춘 채 그녀의 입술에 대고 괴로운 신음을 토했다.
“아아, 미칠 것 같아.”
“흣….”
“내 혀 좀 빨아 줘, 세정아.”
세정은 더 이상 그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세정이 그가 원하는 대로 자그마한 혀를 움직여 그의 타액을 빨았다. 지훈의 허리가 뒤로 빠졌다가 세게 앞으로 움직였다. 무섭도록 발기한 성기가 쿡, 쿡, 그녀의 내벽을 쳐 대며 깊숙하게 들어갔다 빠지기 시작했다.
검붉은 페니스는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꿈틀거리며 그녀의 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가 드러내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붉은 속살이 페니스에 달라붙으며 함께 움직였다.
“아흣… 하앗, 으응!”
“좋다, 씨발… 세정아….”
지훈이 뿌리 끝까지 박았다가 귀두 끄트머리까지 잡아 빼기를 이어 나갔다. 부드럽게 그녀의 애액을 바깥으로 퍼 올렸다가 안으로 도로 쑤셔 넣었다.
세정은 온몸을 간질이며 찌릿거리는 감각에 무언가를 꽉 붙잡고 싶었지만 차 안에서 딱히 그러쥘 것이 없었다.
“흣! 아응!”
지훈이 그런 그녀를 눈치채고 그녀의 양팔을 제 목에 감았다. 세정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꽉 안으며 매달려 오자 지훈이 그녀에게 키스하며 후후 웃었다.
그의 섹스는 모조리 세정과 같이 탐구하고 알아낸 것들이었다. 그는 공중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녀의 다리 역시 자신의 허리에 감아 주었다. 그녀가 그에게 매달린 채 벅찬 신음을 내지르며 바르작거렸다.
“흠… 흐음…!”
지훈은 그녀의 안을 더욱 깊숙하게 비집었다. 세정이 가장 잘 느끼는 지점을 본격적으로 쿡쿡 쑤시며 속도를 올리자 그의 혀를 빨던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쾌락을 이기지 못해 가쁜 숨결을 헉헉거리며 내뱉는 그녀가 그의 눈에는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세정은 그에게 성녀인 동시에 요부였고 폭우처럼 퍼붓는 쾌락인 동시에 타는 것 같은 갈증이었다. 이제 다시는 그녀를 손아귀에서 놓치는 일이 없을 거라 맹세하며 지훈은 타액으로 붉어진 세정의 입술을 개처럼 핥으며 허리를 처댔다.
“여기, 이렇게 툭툭 계속 박아 주면 안세정이 온통 얼굴 빨개지면서 좋아했었는데. 응?”
“하아, 아아, 지훈아 그만, 흣!”
“여전히 똑같구나. 완전히 젖어서 찰박거리는 소리 난다 이제.”
그녀의 애액을 뒤집어써 번들거리는 그의 성기가 고집스럽게 한 지점을 괴롭히며 세정에게 숨 막히는 쾌감을 선사했다.
라이트를 켠 승용차들이 몇 대쯤 그들의 곁을 지나쳐 갔지만 그녀는 이제 외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그녀의 몸을 탐하고 있는 지훈이 선사하는 쾌감만이 그녀의 몸과 정신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흣!… 아흣!”
지훈이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어루만지다가 쑥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와 자신의 접합 지점을 느끼며 그녀의 회음부를 뭉근히 쓸었다.
“지금 내가 네 안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네 안에서 이게 줄줄 흘러나와, 세정아. 이게 과연 뭘까?”
그의 속삭임에 세정이 붉어진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그녀의 내부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그의 손가락에 묻었다.
“이거, 보여?”
지훈이 손을 들더니 그녀의 눈앞에서 끈끈한 애액으로 젖은 두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벌렸다 오므렸다. 그가 후후 웃었다.
“하지 마, 하지 마…!”
세정이 악을 쓰며 손을 뻗어 그의 손가락을 붙잡으려 했지만 지훈이 더 빨랐다. 그가 세정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긴 혀를 내밀어 그녀의 애액으로 젖은 제 두 손가락을 핥았다.
“더 맛있어졌다. 세정아. 그동안 왜 이렇게 맛이 야해졌어? 응?”
그의 허릿짓에 속도가 붙었다. 페니스가 그녀의 내벽을 쉴 새 없이 들락이며 길을 내자 더 젖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세정의 음부는 완벽하게 젖어 들어 풀어졌다. 턱턱거리는 음란한 소음이 차 내부를 가득 채웠다.
“흑! 으흣! 싫어… 너 진짜 싫어…. 아흣!”
“거짓말하지 마, 세정아.”
지훈이 그녀의 허벅다리를 팔에 끼워 자신의 어깨에 올려붙이더니 본격적으로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을 주어 끝까지 세게 치받기를 반복하자 젖은 소리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들이받을 때마다 세정은 몸이 반으로 접힌 채 아찔하게 신음했다. 차 내부의 공기의 밀도가 모두 혼탁한 섹스의 냄새를 띠고 있었다.
“너랑 섹스할 때 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좆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 네 안에다가 쌀 때 머릿속이 뻐근하게 녹아서 흘러내리는 기분, 난 단 하루도 잊은 적 없어.”
“흣, 아흣! 아아!”
“이걸 어떻게 잊어, 씨발… 응? 이걸 어떻게, 세정아… 하아….”
높아지는 그녀의 신음에 지훈의 거친 숨결이 뒤섞였다. 가느다란 허벅지가 경련하고 종아리가 탄력적으로 움직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의 발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하이힐은 이미 지훈의 손에 의해 어딘가로 날아가 차 내부에서 뒹굴고 있었다. 지훈이 그녀를 밀어붙이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넌 내 거였어, 세정아.”
“그만… 하아, 지훈아, 너무… 너무 세…!”
“그동안 바깥세상 실컷 구경하게 해 줬으면, 이제 나한테 돌아와.”
“아, 아아…. 아아!”
음부에서 시작된 자극이 아랫배를 통렬하게 자극했다. 거센 오르가슴에 그녀의 접힌 허리가 파들거렸다. 지훈이 그녀의 목을 베어 물자 찌릿한 아픔이 더해지며 오르가슴에 정점을 찍었다.
“아흐윽!”
그녀의 감은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지훈은 그녀에게 나른한 절정의 여운을 느낄 여유 따위는 주지 않았다. 그 언젠가처럼 그녀의 눈물을 모조리 핥아 먹으며 체중을 실어 퍽퍽 소리가 나게 그녀의 내부를 몰아치듯 박아 댔다.
“내 처음을 몽땅 가져가 놓고서, 날 배신한 건 너야.”
“흣, 그땐 나도… 그럴 수밖에, 흣!”
“세정아. 변명은 집어치우고 그냥 몸으로 때우면 돼. 응?”
“아, 아흑!”
“이제라도 세상을 좀 쉽게 살아 봐. 이제껏 계속 너만 바라보는데 나 그렇게 어려운 남자 아닌 거 알잖아. 안세정 앞에서 머저리 등신 되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엉망으로 흔들리며 세정은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만… 지훈아, 하읏!”
“아니. 안 돼. 나 그만 못 해.”
지훈이 철벅거리는 아랫도리를 거칠게 내려찍으며 그녀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그의 고환이 세정의 엉덩이에 세게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세정은 바짝 마른 입술로 연신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지훈이 스퍼트를 내며 빠르게 허리를 털었다.
세정은 그에게 안긴 채 평생 잊을 수 없는 그와의 처음을 떠올렸다.
말을 잇지 못하고 가쁜 숨만 헐떡이는 그녀에게 지훈이 소중하게 키스했다. 그녀의 입술에 그의 짐승 같은 신음이 진동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흐읏…!”
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콧등을 찌푸리는 표정이 얼마나 섹시한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세정은 오싹한 쾌감에 다시금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