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본문
‘혹시 제이아나가 당신한테 잘못한 게 있나요? 갑자기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에요…?’
‘…….’
‘제이아나가 당신을 찾는데…. 그래도 당신 딸이잖아요….’
대공비의 말에 키르한은 설핏 웃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 뒤에서 두 사람을 몰래 보고 있는 작은 아이가 보였다.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 아내와 꼭 닮은 얼굴. 하지만 저 검은 머리칼이 원래는, 어떤 색인지를 안다. 자신도, 대공비의 머리 색과도 닮지 않은 금발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그는 조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신 아이지.’
그 말을 하고서, 뒤돌았다.
내 딸이 아니다. 당신의 딸이지. 대공성에 돌아올 때마다 아이가 보였다.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도 다가오려 한다. 언제나 자신의 관심 한 조각을 바라던 아이. 잊고 지내다가 보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었다. 기억 한구석에 밀어놓은 존재를 떠올렸다가, 다시 치워버리기를 반복한다
제이아나는 언제나 그에게 사랑을 바라는, 순진한 작은 아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사내를 태운 사두마차는 성문을 통과하자 속도가 빨라졌다. 말은 진흙으로 질퍽해진 땅을 힘차게 내디디며 달렸다. 우중충한 분위기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힘찬 움직임이다. 대공령은 영지민들이 흰색 국화꽃을 문에 걸어두어,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사내는 ‘소론테’에서 막 전보를 받고 대공령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미처 갈아입지 못한 제복에는 여러 훈장들이 달려있어 그의 직위를 짐작케 했다.
키르한 레뎀토어. 황실로부터 ‘제국의 검’이란 칭호를 하사받은 그는 레뎀토어 대공 가의 주인이었고, 전쟁터에서는 영웅이었다.
‘소론테’는 제국과 로이드 왕국의 접점 지대에 위치한 우거진 숲으로, 마물들의 주거지였다. 조약에 따라 제국은 소론테의 마물들을 소탕하고 있었고 그 선두에 선 자가 키르한 레뎀토어 대공이었다.
마기가 존재하는 한, 마물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 없이 늘어나는 개체 수를 줄여가는 것밖에 없었다. 사내를 포함한 기사단이 주기적으로 마물들을 소탕하고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마을 인근까지 마물들이 내려오는 바람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공령으로 돌아오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소론테에서 보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는 그의 손에는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사내는 마차 안에서 부고의 주인을 떠올렸다.
대공비. 그의 아내, 셀비아 레뎀토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다. 선황은 그를 구슬려 셀비아와 짝을 짓게 했다.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으나 그로서는 딱히 여자에게 큰 관심도 없었거니와, 다른 후보군도 마땅치 않았으니 결혼은 쉽게 성사되었다.
적당히 괜찮은 결혼 생활이었다. 대공비는 그를 귀찮게 하지도 않았으며, 대공령의 살림을 제법 괜찮게 관리했다. 그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으니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장부를 검사하고 나면 걸리는 점이 없었다. 장부는 깨끗했고, 비리도 없었다. 대공령은 그가 자리를 비워도 평소처럼 유지되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대공성에는 그 아이가 있을 것인데.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지난번에 보았을 땐 그의 어깨 즈음까지 자라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검은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 언제나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고 싶어 하던 그 눈빛을 기억한다.
“…….”
답답한 마음과 상관없이 마차는 앞으로 달렸다. 조금 전에 정문을 통과했으니, 곧 도착일 것이다. 전보를 받자마자 출발하긴 했으나, 소론테와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다. 시체가 부패한다는 이유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장례식은 셀비아가 죽은 날 바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첫날에 다녀갔을 거다. 지금까지 남은 자들은 가까운 친지 정도일까.
사내는 ‘그날’ 이후로 매몰차게도 아이에게 따듯한 눈빛 한 번 주지 않았다. 일부러 본 체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장례식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전하,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안쪽에 덧댄 창을 두드리며 말했다. 사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밖에 서 있던 집사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비는 여전히 계속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내는 우산을 집사에게 돌려주었다.
“우산은 되었다. 따라오지 말거라.”
그리고 홀로 묘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공가의 사람을 묻는, 가묘와 같은 곳이다. 그는 대공비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갈색 머리에 푸른색 눈이라는 특징 정도만 생각날 뿐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 무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검은 상복을 입고 우산도 없이 비를 그대로 맞는 여자. 하녀도 물린 채 홀로 무덤 앞에서, 고요하게 묘비를 보고 있다. 그는 단번에 그 아이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보자 눈이 살짝 커진다.
“아, 아버지….”
그리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내내 울었던 건지 눈가는 잔뜩 발갛게 부어 있다. 주변에는 아직 돌아가지 않은 조문객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아이를 냉대한다면 단숨에 귀찮은 소문이 퍼질 것을 아는 사내가 아이를위한 척 가까이 다가갔다. 반면 아이는 그가 다가가자 눈치를 보며 꾸물거렸다.
사내는 어찌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마차에서도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답은 없었다. 그는 적당히 일반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할 법한 행동을.
“…제이아나.”
오래도록 부르지 않았던 이름이 목에 걸리듯 나왔다. 단단한 팔로는 아이를 품으로 살짝 당겼다. 조금 놀란 듯 보였던 아이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이기 때문일까.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 날 이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거늘.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곧이어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아이의 반응이 못내 당황스러웠다. 그에게 대공비의 죽음은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보게 된 탓인지, 그는 죽음에 무덤덤했다. 마음을 준 적도 없었다. 의무적으로 부부의 밤을 보냈고, 언제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전보를 받았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슬픈 것인가? 알기 힘든 감정이었다. 작은 아이가 초라하게 비를 맞고 있다. 밖에서는 ‘대공녀’라고 불리는 고귀한 신분의 아이는 오늘따라 참 보잘것없어 보였다.
사내는 누군가에게 살갑게 대할 성격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쪽을 아직 지켜보는 눈들이 있기에 그저 안아줄 뿐이었다. 아이는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여태 겨우 참던 울음이 봇물이 터진 듯이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제복 상의가 비와 함께 눈물에 젖어갔다. 그는 그런 아이의 등을 의무적으로 다독여줄 뿐이었다.
아이는 반항 없이 그의 토닥임을 받았다. 오히려 그의 품에서 안심된다는 듯 고개를 묻고 엉엉 울었다. 겨우 참던 눈물샘을 그가 툭 건드린 듯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괜한 짓을 했나 싶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적당한 연극을 하려 했더니…. 그를 붙잡고 우는 눈물이 성가셨다. 먼발치에서 부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을 예상한 그는 아이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보고 천천히 등을 다독였다. 그만 울라고.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그의 낯빛은 어두워 보였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참 후에 고개를 비실비실 든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사내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하얀 얼굴에 눈가가 붉게 부은 아이가 그를 오롯이 보고 있다.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가 공중에서 얽혔다. 비에 젖은 머리가 얼굴에 붙어있다.
“…비가 오니 들어가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뒤에서 사용인들이 뒤따랐다. 아이와 옆에서 걸으며 시선을 비스듬하게 내렸다. 이제 보니 코도 빨갛다. 검은 상복에서는 물이 뚝뚝 흘렀다. 두 사람이 걸어간 자리마다 물이 떨어져 물길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아직 어렸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본 아이는 금세 자라있었다. 이래서 아이들은 빨리 큰다고 하는 건가. 그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인데.
그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성인식을 한두 해 정도 남겨두었던 때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비에 젖은 상복은 몸에 달라붙어, 아이가 그간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보이는 변화가 어릴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가슴이었다. 여린 체구와는 달리 꽤 큰 가슴은 그의 손바닥 안에도 가득 찰 것 같았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치맛자락은 발목 언저리에서 흔들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느다란 발목이 언뜻 보였다.
그리고 애써 울음을 참는 표정은… 생각보다 그의 취향이었던 것 같다. 창백한 피부와는 달리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코끝. 흰 뺨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 뺨과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저 물줄기엔 눈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문득 아이가 다른 이유로 우는 것이라면 어떠할지 생각한다. 눈은 그를 향하고 콧잔등을 가끔 찡그린다. 발간 눈가에 고인 눈물이 떨어지는 걸 핥으면, 작은 입술에서는 더운 숨을 뱉는다. 그리고 울음 같은 신음을….
“…….”
아랫배가 뻐근해져 오는 것에, 그는 조소했다.
그의 앞에서 제이아나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뺨에 흐르는 물기를 사내가 닦아주었다.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도 떼어주었다. 그런 그의 손에 제이아나가 얼굴을 살짝 기대었다.
“아버지가… 오셔서 다행이에요.”
긴 속눈썹에 물기가 어려 있다. 사내는 그것을 건드려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그녀를 살짝 안았다가 놓아주었다. 팔 하나로도 가볍게 안을 만큼 허리가 가느다랬다. 그리고 그의 상체에 맞붙었다가 떨어진 가슴은 제법 큰 편이었다.
“저기….”
“언제부터 나와 있었지?”
“…새벽에요.”
지금은 해가 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밖에 있었다는 말처럼 피부가 차가웠다.
“쉬거라.”
“전 괜찮은…!”
“비가 온다고 그대로 맞지 말고.”
냉정하게도 사내는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네…. 피곤하실 텐데 저는 올라가 있을게요.”
그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한 제이아나는 뒤돌아 걸었다. 사내의 시선이 그 뒷모습에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계단을 올라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그는 시선을 내렸다. 자기주장을 하는 하체가 아까부터 심상치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품에 안았을 때? 그 울던 얼굴을 보았을 때부터?
집무실로 들어선 그가 의자에 소리 나게 앉았다. 그는 이런 순간에도 발정한 자신이 우스웠다. 연이은 전투에 쉬지 않고 영지로 내려와 피로가 쌓였다. 대공비의 장례식은 끝나지도 않았다. 죽음을 애도할 만큼 정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도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 조금은 있을 것인데. 비에 젖은 제복을 대충 벗은 그는 뻣뻣한 좆이 다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방을 비추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 지가 벌써 몇 시간째였지만 제이아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번씩이나 뒤척인 탓에 입고 있던 상복에 자잘한 주름이 졌다. 상복은 검은색이어서, 마치 제이아나가 어둠에 묻힌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어머니가 눈을 감고부터, 제이아나는 슬픔에 겨워 매일 울다가 지치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어찌나 울었는지 탈수 증상이 왔을 정도였다. 사흘 정도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으며 그 후부터는 멍하게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오셨던 날부터.
제이아나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그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참 바쁜 사람이었다. 아마 살면서 그를 본 날을 전부 합쳐도 일 년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가끔 기사단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때도 쉬지 않고 밀린 서류를 결재하기 바빴다. 그렇게 며칠 지낸 후에는 소론테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어린 시절 만났던 아버지는 살갑기도 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까마득하게 큰 키에, 칠흑 같은 머리, 붉은 눈은 꽤 강렬했다. 첫인상은 조금 무서웠지만 어머니가 시킨 대로 인사를 했던 걸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제이아나 레뎀토어예요….’
조금 짧은 혀로 또박또박 이름을 말하면서. 팔을 슬쩍 내밀었더니 아버지는 잠시 멈칫하다가 안아주었다. 많은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그의 애정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예닐곱 살 때까지는 아버지가 오시면 집무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서 제복에 달린 훈장들을 만지다가 졸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자신을 본체만체했고 더 이상 안아주지도 않았다. 어머니께 말해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론테의 일로 바쁘다고 들었을 뿐.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울고 떼쓰기도 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정상적인 형태의 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 그분은 제이아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거대한 대공성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사람이었고 안식처였다. 가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할 때는 있었지만 괜찮았다.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아.’
참고 참았던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제이아나는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지금은 밤이니까, 혼자 있으니까 굳이 참을 필요가 없었다.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홀로 조용히 감정을 토해냈다.
내일은 아버지께 조금 살갑게 굴어볼 생각이다. 두 분 사이가 그리 가깝진 않았으나, 그래도 부부였으니까. 아버지도 조금은 슬프지 않으실까. 잘 말린 허브잎을 차에 우려서 함께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제이아나가 마음을 가다듬으며 외로운 새벽을 보내던 그 시각, 대공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허리춤을 방만하게 풀어헤친 채로.
“큿…….”
검붉은 좆이 그의 손안에서 위아래로 흔들렸다. 언제부터인지 쿠퍼 액이 귀두에서 기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 아래로, 손등으로 함께 흐른다. 사내는 그것을 윤활유 삼아 더욱 매끄럽게 좆을 흔들었다.
동굴 같은 좁다란 길을 파고들어, 마구 쑤시는 상상을 했다. 외지에서 오랜 시간 구른 만큼, 성욕을 해소하는 일에는 거리낌이 없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대공비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공성의 사용인들은 대공비를 기리며 아직 상복을 입었다. 위층에서 자고 있을 그의 딸, 제이아나도.
제이아나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기계처럼 붙잡고 있던 좆이 한층 커졌다. 흐리게 웃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눈물 젖은 얼굴로 그에게 안겼다가, 애써 웃으려던 그 모습. 비에 젖은 상복이 미처 숨기지 못한 몸 선까지도.
제 아래에 깔린 채, 그 얼굴로 울면 볼만 할 것이다. 칙칙한 상복을 젖히고서 둥근 엉덩이를 그에게 내밀면….
“…제기랄.”
한순간 몰렸던 정액이 사출된다. 허연 액체가 튄 곳은 다름 아닌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제이아나의 얼굴이나 배 위가 아닌.
손안에서 느껴지는 하얀 점액질. 그것을 보자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온다. 그제야 방에서 홀로 위로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사내는 그것을 자각하자마자 자괴감에 휩싸였다. 무기질적으로 수건에 손을 닦고는 옷가지를 정리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말아야 할 존재에게이렇게 발이 묶인 게 벌써 며칠째인지. 분명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뻣뻣한 꼬맹이에 불과했거늘. 언제 저렇게 바람직하게 자랐는지.
그는 제이아나를 품에 안았던 때를 떠올렸다. 닿았던 순간은 잠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 그에게 맨살이 닿은 것도 아니었다. 천을 두고 맞닿은 가슴의 감촉은 빌어먹게 좋았다. 그리고 큰 가슴 때문에 팽팽하게 벌어진 앞섶이라던가. 그때의 사내는, 스스로가 추잡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마물의 숲에서 지내면서 인간성도 사라져버렸나. 마물만 상대하다 보니 그것에 동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피가 흐르지 않아도, 제이아나는 딸이었다. 한때는 친딸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아직도 자신을 아버지라 여기고 있었고.
‘…누가 마물인 건지.’
그러나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아니면 저 아이가 마물일 지도 모르고.’
이렇게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그 빌어먹게 야한 몸뚱이. 대공성에 숨어서 그를 기다린 마물.
그의 딸, 제이아나.
대공비의 장례식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밀린 일을 해결했다. 대공성의 살림을 도맡았던 대공비가 시들시들 아픈 후로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하나씩 빠르게 쳐내다 보니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참이다.
황실에서는 대공성으로 위로의 선물을 보내왔다. 보나 마나 황금 몇 덩이와 모피 몇 벌일 터이다. 그러나 그런 재물들은 대공성에도 차고 넘쳤으니, 사내의 눈에 찰만한 물품들은 아니었다. 그는 슬슬 황성에 와서 소론테에 관한 보고를 하라는 황제의 명을 미루고 있었다. 아내의 죽음을 이유로 들면서.
대공비의 죽음은 대외적으로 좋은 핑계였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를 위로한답시고 편지를 보내며 추모를 했으니. 그러나 황제는 아니었다. 참을성이 다소 부족한 황제는 몇 번이고 서신을 보내 재촉했다. 벌써 일주일 넘게 미루었으니 내일은 출발해야 했다. 침대에 누운 사내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보라색눈동자를 애써 지워내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황성으로 가야 했으니 사내는 간만에 예장 차림을 했다. 검은 제복엔 화려한 견장과 훈장이 여럿 붙어있다. 황실로부터 인정받은 공로들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 소리가 났다.
집사는 밖에서 일찍이 시종들을 시켜 마차를 꾸리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별 것 없지만 마차 여행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어차피 수도에서는 타운 하우스에서 지낼 테니 그마저도 가벼운 편이지만.
대공성에 올 때에 타고 왔던 마차는 바퀴까지 깔끔하게 닦아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흑색 말들은 오랜만에 달릴 생각에 푸르릉거리며 조금 흥분을 한 상태였다. 그가 방을 나서자 뒤로 사용인들이 따라 나왔다. 주인을 배웅하려는 충실한 자들….
‘남은 자는 저 하녀 한 명 뿐인가.’
대공비가 가문에서 데려왔던 몸종들은 장례식이 끝나자, 하나둘 대공성을 나갔다. 주인의 임종까지 곁을 지켰으니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홀로 제이아나의 곁에 남아있는 하녀가 단 한 명. 평범한 외양이지만 항상 제이아나의 주변에 있었으므로 눈에 익었다.
“아버지!”
가느다란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멀리서, 제이아나가 급하게 달려온다. 헥헥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깜짝 놀란 사용인들이 황급히 길을 터주었다.
제이아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황성으로 간다는 말을 미리 듣지 못했다. 밖이 소란스럽기에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아버지가 있었다. 이곳에 올 때 타고 왔던 커다란 마차도. 옷차림을 점검할 새도 없이 달려왔다. 이번에도 말없이 그가 떠날까 봐.
“아가씨, 조심하세요…!”
그녀가 넘어질까 걱정 어린 타박이 들려도 멈추지 않고 뛰었다.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와 제이아나를 받아주었다. 품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언제, 돌아오세요…?”
“바쁜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오마.”
“…제게 말씀도 하지 않으시구요.”
숨차하면서도 할 말은 한다. 그러면서 그의 눈치를 보았다. 사내는 충동적으로 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시선을 가슴골로 내렸다. 얇은 슈미즈로는 숨겨지지 않는 봉긋한 가슴이 그의 혁혁한 공로들 위로 뭉개져 있다. 이 장식들이 이토록 쓸데없게 여겨진 건 처음이었다.
*
“키르한 레뎀토어 대공. 수도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군.”
“예.”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 사내를 보고 황제가 설핏 웃었다. 그는 일찍이 키르한의 인성을 알고 있었다. 대공은 정치적으로 황실의 편이었으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는 아니었다.
“대공비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어.”
“…….”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지금도 저렇게 불충한 태도를 보라. 위로해준답시고 대공비의 이야기를 꺼내도 묵묵히 차를 마실 뿐이다. 그러나 황제는 그러려니 했다. 키르한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했다. 보나 마나 급하게 떠나온 소론테를 생각하고 있겠지. 대공비 같은 건 이미 그의 머리를 떠난 지 오래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 딸도 이제 혼기가 찬 걸로 아는데.”
그 말에 키르한이 눈만 들어 그를 응시했다. 언뜻 스치는 서늘한 눈빛에 황제는 비실 웃음이 나왔다.
‘뭔가 있구나.’
“그 아이에게 아직까지 약혼자도 없는 건, 자네 뜻이겠지. 황실 연회 때 짝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군.”
“…제이아나는, 아직 어립니다.”
“성인식도 치른 아이가 무얼.”
황제가 놀리듯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약혼자가 있는 자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약 3개월 전 성인식을 치른 제이아나는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됐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대공비가 죽었으니 자네가 굳이 소론테에 남을 필요는 없지.”
“그렇지 않아도 이제 영지로 돌아갈까 합니다.”
“후임으로 생각해둔 자는 있고?”
“오르테 후작 가의 차남은 어떠십니까.”
“음. 검술이 제법이라고 듣긴 했지.”
“예. 지켜본 결과, 전략도 잘 짜고 적당히 인망도 있어 통솔력이 좋습니다. 단장 역할을 잘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벌써 거기까지 생각을 해두었나.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화제는 소론테에서 다른 것으로 쉽게 넘어갔다. 애초에 안부를 묻는 가벼운 자리였으니 자유롭게 이야기가 오고 간다.
“대공비 자리가 공석이 되었군.”
“…당분간은 내부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오. 내부라 함은, 자네 딸을 말하는 건가?”
의외라는 눈빛이다. 황제가 아는 키르한은, 쉴 줄을 몰랐고 인간미라는 게 없었다. 소론테에서 복귀하라는 말에도 사실 계속 남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부에 충실하고 싶다니. 대공가를 말하는 건 아니겠고 가정을 돌보고 싶다는 뜻일 텐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더군다나 제이아나 그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눈빛에 키르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도 소론테에서 10년 이상 굴러먹었으니 쉴 때가 됐지요. 10년이 뭡니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을.”
“하하, 알지. 그래도 자네는….”
“폐하. 헤델 공작이 방문했습니다.”
그때, 시종장이 황제에게 손님의 방문 소식을 알렸다.
가정 따윈 관심이 없었잖아. 황제가 뒷말을 삼키며 문가를 쳐다보았다. 들라 하게. 간단한 허가가 나자, 문 뒤로 멀쑥한 사내가 나타났다. 로이드 왕국의 헤델 공작. 키르한은 빠르게 그를 훑었다. 화려한 금발과 보라색 눈동자. 대공성에서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가 떠오르는 외양에 미간이 좁아졌다.
분위기는 무난했다. 황제와 헤델 공작 둘이서 만나는 자리였지만, 단순한 티타임이었으니 키르한이 있어도 무관했다. 키르한은 타국의 공작 앞이라고 제법 체면을 차리려는 황제와 넉살 좋은 헤델 공작 사이에서 묵묵히 차를 마셨다.
헤델 공작은 사교성이 좋은 인물로 웃음이 헤펐다. 그러나 몸에 밴 교양 있는 행동으로 어설픈 귀족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말이 많지 않은 키르한에게 공작이 말을 건넸다.
“대공비 전하의 일은 유감입니다.”
“신경 써주어 고맙군.”
“셀비아와는… 아, 그분과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서 말입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하필이면 출항 후에 들어서… 도착했을 땐 너무 늦은 후였습니다.”
아내는 로이드 왕국 출신의 귀족이었다. 결혼은 국가 간 이익을 두고 한 거래에 가까웠다. 군사협정의 안정성을 위해 이루어진 결혼이다. 셀비아와는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 부부관계를 가졌고, 제이아나를 낳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린 시절이나 친우 관계 따위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헤델 공작이 추억을 회상하듯 잔잔하게 건네는 말들을 그저 들었다. 일방적인 대화는 지루했다. 어차피 죽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서 무얼 하나. 시간이 지루하게 흘렀다.
*
오랜만에 수도에 왔으니 할 일을 전부 끝내고 갈 작정이었다. 소론테에서의 전투를 보고하고 회의도 끝나니 벌써 해질녘이었다. 타운 하우스로 돌아가 쉬려는 그에게 멀리서 귀족들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전하. 아, 이쪽은 제 딸입니다.”
“안녕하세요, 전하. 시나 오르테입니다.”
날씨가 아직 덥지도 않은데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언뜻 보이는 가슴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오르테 후작.”
키르한이 입궁했다는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허둥지둥 자신의 딸이나 조카를 데리고 입궁했다. 방금 인사한 시나 오르테뿐만이 아니다. 정원을 산책하는 척 이쪽을 향해 눈을 빛내는 치들이 그득했다. 후작의 인사가 끝나면 바로 줄지어 그에게 달라붙을 기세였다.
‘그래도 대공비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두어선 안 돼. 후계 문제도 있고 하니, 빠른 시일 내에 채우는 게 좋겠어.’
키르한은 티타임을 끝내고 나올 때,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물건을 채우듯 공석을 오래 둬서는 안 된다는 말. 그리고 주변을 서성이는 자들은, 그 빈자리에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다.
“예, 전하. 황실엔 어쩐 일로…?”
“자네 차남을… 소론테 토벌 차기 기사단장으로 추천하고 오는 길이지.”
그 말에 후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역 날만 기다리던 아들을 도리어 기사단장으로 추천했다는 말에 낯빛이 파리해졌다.
더 발을 붙이고 있다간 귀찮아질 것을 예상한 키르한은 간단한 손짓만 한 채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더 발을 붙이고 있다간 귀찮아질 것을 예상한 키르한은 간단한 손짓만 한 채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 전, 그를 훔쳐보던 여자들을 보자 대공성에 남아있을 누군가가 떠올랐다. 맹목적인 눈빛을 보내는 보랏빛 눈동자 한 쌍. 순간 짜증이 치밀어 타운 하우스로 가려던 경로를 충동적으로 바꾸었다. 그가 향한 곳은 지하 살롱이었다.
향락의 밤이 이어지는 곳, 그는 이곳에서 오늘 밤을 지낼 생각이었다.
지하 살롱의 주 고객은 귀족들. 간혹 돈 많은 평민들도 있었으나 극소수였다. 이곳에서의 일은 발설 금지였다. 고급 창부들이 있었고, 귀족들 간의 일회성 만남도 허다하다. 주로 성적 취향이 맞는 상대를 구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았다.
키르한이 지하 살롱으로 향하는 일은 드물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친우 몇과 함께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이후로 다시 찾은 일은 거의 없었다. 적당히 성욕을 해소하며 살았으나, 문란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도 소론테에서 오래 굴렀으니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방에는 정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알몸으로 몸을 겹치는 자들, 술을 들이부으며 노는 자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수치가 아니었다. 이곳을 나가는 순간 모든 일은 없었던 일이 될 테니까.
그리고 왜 저자는 여기에도 있는가. 맞은편에는 이미 판을 벌린 헤델 공작이 있었다.
“아앙, 아, 아!”
꼴에 창부 두엇을 안고서.
*
키르한은 반복적으로 허리 짓을 했다. 아래에 깔린 여자는 교성을 지르며 그에게 안겼다. 흐린 푸른색의 눈은 언뜻 보면 보라색을 띠는 것 같기도 하다. 머리 색은 짙은 잿빛이었다.
“아, 하응, 앙, 아…!”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자, 교성이 더욱 커진다. 이런 자리는 오랜만이었으나, 딱히 감회가 새롭진 않았다.
왜 이 여자를 골랐을까….
그에게 접근한 여자는 많았다.
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권력을 쥔 자. 유부남이지만, 아내가 죽었다. 딸이 하나 있긴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를 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와 ‘결혼’으로 맺어지고 싶어하는 자들.
그뿐만은 아니었다. 결혼에 관심이 없는 여자들도 한 번쯤은 그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다른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나, 옷을 입어도 도드라지는 근육. 검을 휘두르는 기사임에도 그는 항상 깔끔했고 단정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그의 외모를 한층 더 빛나게 했다. 검은 머리와 붉은 눈의 조합은 신비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섬뜩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어려워했다.
하지만 이곳은 지하 살롱이었다. 밤놀이에 몸이 달은 자들. 술이나 약에 진탕 취해서 놀고 싶은 자들. 비밀스러운 취향을 즐기고 싶은 자들. 그를 본 몇몇의 여자들이 서슴없이 다가왔다. 그 중에선 혹시 짧은 만남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방적인 기대감을 가진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죄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먼저 다가온 이 여자를 안기 시작했다. 무슨 자작 가 영애였던가.
여자의 아래에서 좆이 빠르게 들락날락한다. 하응, 앙, 아! 안쪽을 탁탁 때리는 자극에 여자의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렸다.
“으응, 아, 좋, 좋아…!”
제 아래에 깔린 여자의 외적인 특징만 보자면 제이아나와 비슷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여자를 뒤집더니 엉덩이를 잡고 뒤에서 쑤셔 넣었다.
“…씨발, 하….”
“아, 앙!”
술과 약에 취해 자신이 무슨 취급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키르한이 허리 짓을 할 때마다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이.”
참으려 했던 말이 기어코 기어 나온다. 여자를 보면서 떠올린 다른 누군가를.
며칠 전, 수도로 떠나는 그가 마차에 오르기 직전 그에게 안겨서 배웅을 하던 그의 딸, 제이아나. 마차에 올라탄 이후로도 흥분한 좆이 가라앉지 않아, 홀로 좆을 흔들었더랬다.
언뜻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문란한 밤을 보내는 헤델 공작이 보인다. 키르한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보면, 왜인지 대공성에 남아있을 제이아나가 떠올랐다. 비슷한 보라색 눈동자….
사정 직전 여자의 안에서 빠져나온 그는, 여자의 입에 좆을 물렸다. 크게 부푼 좆을 목구멍까지 쑤셔 넣고는, 깊게 사정했다.
“흡, 으읍….”
여자의 얼굴에는 숨 막혀 하면서도 황홀해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기가 막혔다. 약에 취하면 다 저런 꼴이 되는가. 그러면서도 다시 좆이 섰다. 여자를 제이아나라고 생각하니 밤새도록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 이… 윽….”
여자의 입안에 좆을 물리고선 다시 반복적으로 허리 짓을 한다. 한 번도 딸에게 살갑게 애칭으로 불러준 적도 없으면서. 열 번도 불러보지 않았을 그 이름이 잇새로 샜다.
몽롱한 의식 너머로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소론테에서 대공성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였다. 아내의 출산 소식은 들었지만 몇 해 동안 발이 묶여 올 수 없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조금 창백한 낯의 아내가 보였다. 허벅지 위를 조금 웃도는 작은 꼬마의 손을 잡고서. 그가 돌아와서인지 대공성은 묘하게 어수선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신기한지 그를 보는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검은 머리, 보라색 눈동자. 셀비아의 눈은 푸른빛을 띠었으나, 어릴 때의 모습은 성장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레뎀토어 대공 가의 특유의 흑발을 타고 났으니 의심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
아이는 조금 혀가 짧았지만 또박또박 발음하려 노력했다.
“제이아나 레뎀토어예요.”
사내는 어색하게 아이의 머리를 토닥였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눈치를 보다가 슥 양팔을 내밀었다. 사내는 눈치껏 아이를 안아주었다. 부인과 아이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그로서는 처음으로 기묘한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렇게 약 3년이 흘렀다. 아이도 점점 자랐고, 키르한은 시간이 나면 대공성으로 돌아오려 했다. 그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아이를 먼저 안아줄 수 있는 정도로 변했다.
“아버지!”
그를 보며 웃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았던 그는 그대로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품에 안긴 아이는 제복에 달린 훈장들이 신기한지 만지기도 했다.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하고 묻는 게 많았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그는 짧게나마 대답해주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보고를 듣던 그는 아이의 보드라운 머릿결을 만져보았다. 그를 닮아 검은 머리가 손가락에 감겼다. 그때였다. 아이의 목덜미에 검은 점들이 서너 개 보인 것은.
자세히 보니 점이 아니었다. 물감 같은 색소였다. 이를테면 머리를 물들이는 염색약 같은. 찻물을 묻힌 손끝으로 아이의 목덜미를 쓸어 보니 그의 지문으로 검은 물이 스며들었다. 웃음이 났다.
“아버지, 사탕 주세요!”
아이는 눈을 빛내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행동이 아주 스스럼없었다. 사내는 아이의 목덜미를 만지다가 아이의 손에 사탕을 하나 올려놓았다. 아이는 포장지를 금세 뜯어 입안에 넣고는 굴렸다. 달달한 맛이 나는지 배시시 웃자 사내가 말했다.
“제이아나, 머리 색이 예쁘구나.”
“아버지랑 같은 색이에요.”
웃는 얼굴에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그런 감정을 모를 나이이긴 했지만.
“셀비아가 네 머리를 단장해준 건가?”
“엄마가… 응… 머리 만져줬어요.”
“어제는 무슨 색이었지?”
“어제는, 음….”
눈을 굴리며 대답을 피하려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투명했다. 사내는 검은 물이 스며든 손끝을 아이의 볼 위로 문질렀다.
“그래, 어제는? 사탕 더 먹고 싶진 않나?”
“우웅… 어제는… 이거랑 비슷했어요.”
그의 제복에 달린 훈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황제에게서 받은 금색 훈장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대답을 했으니 사탕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아이에게 한 움큼 쥐어 주었다.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에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뭣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아이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다. 대공비에게 정절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아이는 그의 씨여야 했다. 가족이나 후계 문제 따위는 귀찮았고 군사협정 때문에 함부로 내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마음 한편 내어주지 않은 채, 밀어낼 준비는 되어있었다.
레뎀토어 대공가의 피는 진하다. 웬만한 후손들은 그처럼 검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제이아나는 아니다. 성장하면 눈이 점점 푸른색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보랏빛을 띠었다. 원래 머리 색은 아내를 닮지 않은 금색이고.
그럼, 이 아이는 누구의 씨인가.
이후 사내는 아이를 보며 해답 없는 의문을 던져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의문이 하나 더 늘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제이아나. 왜. 어떻게, 어째서, 무슨 이유로. 출구 없는 의문은 도돌이표처럼 다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거친 몸짓에도 좋아 죽는 여자의 얼굴 위로 제이아나를 겹쳐보았다. 허리 짓이 멈추지 않았다.
*
첨벙—
욕조에 머리끝까지 담그고 있던 제이아나가 몸을 일으켰다. 검고 긴 머리칼 아래로 맑은 물이 흘렀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서늘한 걸 보니,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불어왔나 보다. 여름이 다가와, 부쩍 진해진 잎사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욕조에 기대 창밖을 보는 제이아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밤이 된 정원은 조용하다.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들릴 뿐이었다.
언젠가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어머니가 머리를 씻겨주던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이아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로이드 왕국의 출신이었지만 존경받는 대공비였다. 아름다운 외모는 제이아나가 보아도 화려했고 반짝거렸다.
가정교사는, 메이첸 제국과 로이드 왕국이 골칫거리였던 소론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협정을 맺었다고 했다. 소론테는 제국과 왕국의 접점 지대로, 정확히 말하면 왕국에 더 크게 걸려있다. 그곳은 우거진 숲이 있는데, 마물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물의 숲’이라는 뜻의 고대어를 사용해서 ‘소론테’라고 불렀다.
그러나 로이드 왕국은 그 정도 규모의 마물과 대항할 만한 군사력이 없어, 양국의 평화를 위해 제국은 왕국과 협정을 맺었다. 왕국은 후작 가의 영애였던 어머니를 제국에 특산물인 마정석과 함께 바쳤다.
그 대가로 제국은 부족한 왕국의 군사력을 대신하여 소론테에서 마물을 소탕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항상 그곳에 계시는 거라고.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으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이아나, 사랑하는 내 딸. 넌 엄마 곁에 있을 거지?]
며칠 전, 세상을 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제이아나가 눈을 뜨고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까지, 그녀의 세상엔 어머니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사랑해주었지만, 간혹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다혈질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예상되는 이유는 있었다.
[왕국에 있을 땐 그저 세상이 아름다운 줄만 알았지. 청혼도 많이 받았고.]
추억을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는 마치 어딘가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행복했던 시절을 보는 것일 거다. 다정하고, 정말로 기분이 좋은 듯이. 하지만 그 음성이 거칠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망할 군사협정 때문에 그자와 결혼을 해서….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심지어 약혼 직전이었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어머니의 손은….
[넌 내 편이지?]
아팠지만 따뜻했다.
[넌 내가 그 사람과 유일하게 이어진 증거야. 제이아나. 엄마 마음 알지? 내가, 낯선 제국에 홀로 와서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잖아. 응?]
[내가 로이드 왕국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제국민들한테 밉보이지 않으려고 어떻게 몸부림쳤는지, 넌 알지? 아무렇지 않은 척, 관심 없는 척, 당당한 척하려고 했어.]
[키르한, 그자가 있을 땐 고개를 숙이다가 나 혼자 남겨지면 비웃는 모습이란…!]
목소리는 점점 절박함을 담았다.
[넌 모르면 안 돼. 내가 널 낳으려고 여기까지 어떻게 눈을 피해서 왔는데….]
제이아나도 처음엔 절박했다. 자신의 목을 쥔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을 땐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제이아나, 넌 내 딸이니까….]
숨 막히는 사랑은 해로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달콤하기도 했다.
[내 딸, 제이아나. 네 머리 색은 그 사람을 닮아 금발이야. 아아, 보고 싶어… 널 보면 그 사람 생각이 나. 네 보랏빛 눈도… 그 사람을 닮은 것 같구나.]
[그게 누군데요?]
[그 사람의 이름은….]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거울 속 제이아나는 귀 아래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곧 털실 모자를 씌워주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대공성에 돌아가기 전에 네 머리 색을 물들여야겠구나.]
[머리 색이요?]
제이아나는 싫었다. 금발이 좋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머리를 보며 좋아했으니까.
[그래. 검은색으로.]
나중에야 어머니와 머물던 곳이 대공성과 멀리 떨어진 별장이란 사실을 알았다. 휴양 차 머물던 별장에서 제이아나를 낳은 어머니는, 그곳에서 약 5년을 더 머물렀다.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대공성으로 출발하기 전날, 어머니는 가게에서 사온 염색약을 물에 풀어 제이아나의 머리를 물들였다. 금색 머리카락이 금세 꺼멓게 어두워졌다.
[그곳에 가서, 네 아버지를 만나는 거야.]
[어머니가 사랑하셨다는 분이요? 약혼자였던….]
[아니…! 그 사람은 잊어. 네 아버지에게 들키면 안 돼.]
설명은 짧았고 불친절했다. 제이아나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는 것뿐.
검은 머리카락은 어색했다.
대공성은 매우 컸다. 어머니와 하녀 두어 명과 지내던 별장도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새로운 환경은 좋았고 설렜다. 그녀가 부서질까 고이 모시는 하녀들과 매 끼니마다 정성스레 음식을 올리는 주방장….
그들은 제이아나가 무얼 할라치면 먼저 나서서 하려고 했다. 귀한 몸이니 자신들이 하겠다면서…. 그럼에도 어머니는 딸을 손수 씻기고 싶다며 욕실에 하녀들이 들어오는 것을 금했다.
검은 머리의 뿌리에서 금색이 조금 올라올 기미가 보이면, 어머니는 염색약을 풀어 다시 머리를 물들이게 했다. 이 행위는 언제 해도 어색했으나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어머니는 불안하고, 조급해했으며, 잠긴 문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엄마가 없어도 너 혼자 염색할 줄 알아야 해. 기억하렴. 금발이 올라오기 전에 미리 까맣게 물들이는 거야.]
[왜요?]
[그야 넌 레뎀토어 대공의 딸이니까. 그 사람의 머리는 까맣거든. 초상화로 봤잖니?]
[하지만 저번엔 아버지의 머리 색이 금발이라고-.]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제이아나!]
[흡…!]
또다시 목이 붙잡혔다. 어머니의 아름다운 푸른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네 아버지는 키르한 레뎀토어 대공이야. 넌 하나뿐인 레뎀토어 대공녀이고! 말조심하렴. 그렇지 않으면 그땐 이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까.]
귓가에 소리를 낮춘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목이 막혀 대답을 할 수 없어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 사람이 온다는 구나. 처신 잘해.]
어떤 처신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럼에도 목을 죄는 힘이 점점 약해지자 대답할 수 있었다.
[…네.]
[그래, 사랑하는 내 딸. 아… 어, 엄마가 미안해. 많이 아팠어…? 사실은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알고 있지? 응? 날 이해해주는 건 너밖에 없어….]
손에서 힘이 빠졌고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다. 그녀를 안아주는 팔만은 따뜻했다.
제이아나는 벽에 달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어머니와 이목구비가 닮았다고 했다. 거울을 보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던 제이아나는 검은 머리의 뿌리에 조그맣게 금색이 돋아난 것을 발견했다.
금색, 금색, 금색…. 이젠 이 금색이 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내일… 물들여야겠어.’
잠시라도 어머니와의 추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아버지가 대공성에 계시지 않으니까… 당장 머리를 물들이지 않아도 될 거란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제이아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아버지도 돌아왔다. 잠시 수도로 떠났지만. 혼자 욕조에서 씻고 가끔 의미 없는 노래를 부르는 일상도 평소와 같다. 단 하나, 어머니의 손길만 빼면.
목을 더듬어 보지만 겁 많은 손은 자꾸만 미끄러질 뿐이다. 어머니….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져 욕조 안으로 몸을 숨겼다. 머리끝까지 물에 잠긴다.
적당한 온기가 있는 물은 따뜻했고, 숨이 막혔다.
어머니를 마주한 것 같았다.
- 뿌우우우
주인의 귀환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대공성을 울렸다. 멀리서 사두마차가 속도를 줄이며 다가온다. 사용인들이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발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마부가 능숙하게 힘찬 말들을 세우자, 이내 마차에서 사내가 내린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대공성의 착실한 집사가 한 발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사내는 간단히 고개만 끄덕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눈이 느릿하게 관중을 훑었다.
“제이아나는?”
“어제 침소에 늦게 드셨는지,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이아나의 담당 하녀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내딛었다. 아니, 내딛기 전에 멀리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검은 상복을 입고서, 그에게로 달려오는 제이아나. 사내의 시선이 달리느라 흔들리는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이내 흔들리는 축축한 머리칼로 시선이 이동했다.
“오셨어요, 헉, 헉….”
머리끝에서 물이 흐른다. 물은 곧 상복에 스며들어 아무도 검은 물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키르한, 그를 제외하고는.
“아, 아가씨! 머리도 덜 말리시구요!”
뒤늦게 기겁한 하녀가 황망하게 손짓을 하다가 수건을 가지러 뛰어갔다. 검은 머리가 제이아나의 얼굴에 달라붙어, 물기가 있음을 증명했다. 사내의 시선은 빠르게, 그리고 진득하게 그녀의 가슴 주변을 훑었으나 찰나의 순간이어서인지 알아차리는 이는 없었다.
“…….”
고요한 침묵만이 오고 갔다. 주인이 어디서 갑자기 물을 끼얹고 나타난 건지, 놀란 하녀들만이 분주했다. 다른 사용인들은 감히 그들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였다. 제이아나는 가까스로 입술 끝을 올려보았다.
“…아버지?”
사내는 그녀의 머리끝이 닿아 젖은 상복을 보고 있었다. 이미 까맣지만, 물기를 더해 더 까맣게 보인다. 제이아나의 가슴 위 그리고 옆구리 쪽이 비스듬하게 젖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바닥으로 떨어지는 농도 낮은 검은 물방울도.
“아버지… 오셨어요…?”
대답 없는 상대에게 재차 인사를 하는 제이아나의 물음이 가엾게까지 느껴진다. 사용인들은 눈만 들어 그들을 조용히 훔쳐보았다.
“그래.”
늦은 대답이지만 제이아나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리고 제 모습이 그제야 부끄러운지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눈을 살짝 깔았다. 정말 아무런 사사로운 뜻도 없는 행동이었건만, 우습게도 사내는 아래로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별… 개 같은….’
하다 하다 이런 상황에서 발기하다니. 그래, 이건 우습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될 말이 없었다. 그는 제이아나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발목이 부었군. 뛰어 내려왔나?”
그러면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 동작이 매우 자연스러워서 가만히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던 사용인들이 전부 속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제이아나의 여린 발목이 조금 부어 보였기도 했으니까. 자다가 뿔피리 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나온 건지 발에 걸린 신발도 침실에서나 신는 실내화였다.
“괜…!”
괜찮다고 하려던 제이아나의 말은 그대로 끊겼다.
“조심해야지.”
제이아나는 허리를 감싼 동작에 이어서 무릎 뒤를 받쳐 올리는 그에게 깜짝 놀랐다. 갑자기 높게 들어 올려지니 본능적으로 사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자 제이아나는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남자의 몸을 이렇게 가까이서 만져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내의 손은 제이아나를 고쳐 안으며 허리를 몇 번 앞뒤로 쓸었다. 무릎 뒤를 받친 손도 허벅지 아래를 손가락이 쓸다가 고정된다. 덕분에 상복 치맛자락이 무릎 위에 걸려 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네.”
부끄러움이 가득한 대답이 귓가에 들리자 사내는 움직였다. 보폭이 넓은 그가 걸을 때마다 제이아나의 다리가 그의 팔 위에서 흔들렸다. 그녀의 하얀 발에 걸린 실내화도 마찬가지.
어머니가 보았다면 정숙하지 않다며 혼쭐낼 것이 분명했음에도 제이아나는 올라간 치맛자락을 내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이렇게 가까이 닿은 적은 없었으니까. 제이아나는 조금 설렜다.
“별일은 없었나.”
“…….”
“제이아나.”
“네, 네?”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던 제이아나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별다른 표정 없는 그의 얼굴은 언제 보아도 잘생겼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잠시 멍하니 보다가 대답했다.
“없었어요.”
“그렇군.”
그의 입가에 웃음이 잠깐 걸렸다가 사라졌다. 가까이서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제이아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었다.
“아버지는요?”
“…마찬가지로.”
그가 대답하기 전에 짧은 침묵이 있었으나, 제이아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가 둥둥 울렸다.
키르한은 그대로 집무실로 향하더니 소파에 앉았다. 그때까지 얌전히 안겨있던 제이아나가 내려오려 몸을 꿈틀거리기에 그는 팔을 풀지 않았다. 뒤따라온 집사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하녀가 문 앞에 가져다 둔 트레이를 밀며 다가왔다.
“별일은.”
제이아나에게 했던 대답과 같은 질문이 집사에게도 떨어진다. 일이야 항상 있지만은, 당장 보고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집사가 간단한 대답을 하며 찻잔을 따뜻한 차로 채웠다. 간단한 간식거리도 앞에 내놓는 걸 보아, 제이아나를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손을 휘휘 저어 집사를 내보내고는 앞에 놓인 쿠키를 제이아나에게 내밀었다.
“자.”
제이아나는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손에 쿠키를 올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아 해.”
“…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은 입안으로 쿠키가 들이닥쳤다. 아. 메마른 입안으로 버석한 쿠키가 들어와, 제이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물었다.
“어릴 땐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닌가.
짧은 중얼거림에 제이아나가 쿠키를 얼른 삼키려 입을 오물거렸다. 쿠키가 너무 커서 한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의 눈이 어쩐지 자신의 입을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곧이어 사내는 그녀의 이에 물린 쿠키를 반으로 나누어 가져갔다. 손끝으로 가볍게 부수니, 쿠키의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진다. 제이아나가 무얼 하려고 하기도 전에, 검은 상복 위로 그의 손이 올라오더니 갈색 부스러기를 쓸어내렸다. 그녀의 가슴 위로 손바닥이 스치고 지나간다. 제이아나는 먹고 있던 쿠키를 삼키지도 못하고 숨을 참았다.
“옷이 젖어서, 부스러기가 잘 떨어지지 않는군.”
손바닥이 다시 가슴 위로 올라온다. 만지는 것도 아니고 주무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모르겠다. 그의 손은 진득한 것 같으면서도 부스러기가 다 떨어져 보이지 않자, 담백하게 거두어졌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뻣뻣하게 굳은 제이아나를 보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삼켜.”
*
“첫째,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거라.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사랑받는 딸이 되렴, 제이아나. 둘째, 널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거라. 네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렴. 대공성은 걱정 말고 네 남편의 가문에게 후계를 안겨주렴. 내가 생각해둔 상대는 로체 후작 가의 장남, 타이클 소공작, 볼트 백작 가의 차남, 바알 백작….”
비서의 명확한 발음이 집무실을 울렸다. 제이아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안긴 상태였다. 쿠키를 먹을 때마다 부스러기는 아래로 흘렀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의 가슴 위를 손바닥으로 손수 쓸어주었다. 옷은 머리의 물기에 젖어 여전히 부스러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종국에는 그가 손끝으로 떼어주기까지 했다. 그때를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진 제이아나는 집사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기에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꽤 엄숙한 자리였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니까 대공비의 친필 유서를 읽는 자리였다. 장례식 후에는 아버지가 바로 수도에 올라가야 했으니 지금으로 미루었던 것이다. 유서를 쓸 때 함께 참관했던 집사와 그것을 보관했던 비서가 함께 모여 유서를 읽고 있었다. 고작해야 열흘에서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안일해서야…. 제이아나는 짧은 자책을 한 후 귀를 기울였다.
“전 대공비 전하께서 대공녀님께 크게 당부하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아버지인 대공님께 사랑을 받고, 좋은 남편을 만나 사랑받는 것.”
비서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제이아나를 안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잠시 움찔했으나 그뿐이었다. 꽤 별거 아닌 내용이다. 그 외에도 대공비의 개인 재산 처리 문제로 비서가 몇 가지를 더 읊었다. 사내의 메마른 시선이 다시 비서를 향했다.
“그리고 처가인 로이드 왕국의 코튼 후작 가에 남기신 말은….”
사내는 내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제 품에 안겨있는 작은 생물체에 신경이 쏠린 상태였다. 작고 부드러운 몸 하며, 조금 전에 쿠키 부스러기를 쓸어줄 때 느낀 가슴….
보기만 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직접 닿아보니 그 이상이었다. 부드럽고, 제법 살집이 있는 젖가슴은 벗겨 놓으면 더 보기 좋을 테지. 일부러 쿠키를 자꾸 내어준 것도 그 이유였다. 당장이라도 저 상복을 찢어발겨 안쪽을 맘껏 주무르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비서가 찾아왔다. 일정을 수도에서 돌아왔을 때로 잡아둔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얌전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제이아나가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어렸을 때 말고는 이런 적이 없었음에도 꼴에 자신을 아버지랍시고 안심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퍽 우습다. 제 아비가 지금도 이렇게 좆을 세우고 발정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쿠키를 오물거리던 입에 대신 무엇을 넣고 싶었는지도 모를 거고, 은근하게 허리를 쓸고 있는 손가락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바로 겁을 주기보다는, 천천히 맛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죽은 대공비가 남긴 유서는 영양가가 없다. 제 딸이라고 제법 어머니다운 말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을 두려워한 탓인지 몇 가지 암시가 있긴 했다. 대공성은 걱정 말고 결혼을 하라고? 그까짓 것을 자신이 알아채지 못할 거라 여긴 건가. 아내는 자신을 보며 항상 떨고 눈치를 보았지만 그에 비해 전반적으로 허술한 점이 많았다. 그녀가 남긴 유서 또한 허점투성이다.
‘멍청한 여자.’
그가 비웃듯 조소를 삼켰다. 비서는 여전히 재미없는유서를 읽고 있다. 그래도 전 남편이었으니 나름대로 귀담아듣는 척도 했지만 갈수록 따분했다. 그깟 유서, 조작하면 끝이기도 했고. 사내는 제이아나를 고쳐 안으며 그녀의 엉덩이에 뻣뻣한 좆을 은근히 문질렀다. 그것을 느꼈는지 움찔하는 행동이 느껴진다. 사내는 제이아나를 더 바짝 안았다.
잠시 후, 비서와 집사가 집무실을 나갔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사내는 편하게 자세를 누그러뜨렸다. 그에 반해 제이아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자꾸만, 아래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았다. 아버지가 입은 제복에 붙은 견장 중 하나일까 하고 처음엔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가슴 주변에 달려 있는 것이고 그렇게까지 아래에 있는 것은 없었다.
그 딱딱한 것은 엉덩이에 닿았다가, 비벼지기도 했으며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 들어올 듯이 쿡쿡 찌르는 기세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제이아나.”
“…네, 네?”
멍하니 그것을 느끼다가 또다시 뒤늦게 대답을 했다. 제이아나는 멍청한 실수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버지의 붉은 눈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장부 보는 방법, 알려줄까.”
“장부요…?”
어리둥절해진 제이아나가 되물었다. 아버지가 소론테에 계시는 동안, 대공성의 살림은 어머니께서 담당해오셨다. 안살림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관리하며 장부를 작성했고, 간혹 아버지께서 오셔서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긴데도, 장부로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꼼꼼하고 정직하게 관리를 하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대공성의 안살림을 맡을 이유가 있을까.
‘결혼을 하면 떠날 텐데….’
그럼에도 어머니가 하셨던 일들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손때가 탄 장부를 제 손으로 만져보고 싶기도 했으며, 이렇게 아버지가 제게 제안을 한 일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부 쓰는 법은 배워두는 쪽이 좋겠지. 결혼을 해도, 안살림을 담당하게 될 테니. 기본 틀만 익혀두면 그 이후는 가문의 사정에 따라 변형하면 될 거다.‘
별다른 명분이 없었던 제이아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걸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가 원하기도 했고.”
“어머니께서요…? 정말요?”
유서에는 그런 말이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 네가 배웠으면 좋겠다고 내게 말했었지.”
“언, 언제요?”
처음 듣는 것처럼 제이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토끼처럼 눈을 떠서 그를 보는 모습에, 그는 목이 조금 탔다. 저 놀란 얼굴이 잔뜩 흐려지는 걸 보고 싶다면 자신이 이상한 걸까.
“…지난번. 내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
대공비는 그런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죽은 아내는 자신의 눈치를 보며 언제나 피하기 급급했고, 어쩌다 얼굴을 맞대고 식사라도 하는 자리에서는 비위를 맞추려 알랑거렸다. 그녀가 제이아나를 입에 올렸을 리가.
그러나 아내의 딸은, 그 거짓부렁에도 기쁜지 얼굴이 밝아졌다. 네, 배울래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청명했고 어떠한 의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생각했다. 저 목소리로 울면 듣기 좋을 거라고. 자신의 아래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걸 보고 싶다고. 제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그녀를 안으며 그가 인자한 척 웃었다.
교육이 시작됐다. 장부를 읽는 방법부터 알려주어야 했으니 그 기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읽는 법뿐만 아니라 기록하고 변형하고, 누락된 부분은 어떻게 대조해야 하는 지까지. 제이아나가 배워야 할 것은 많았다. 그저 방에서 조용히 수를 놓고 가끔 연애소설이나 읽었던 제이아나로서는 조금 벅찬 일과였다.
시간이 더 지체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제이아나.”
“…….”
“제이아나, 자니?”
이렇게 잠들고 말았던 것이다.
사내는 제 품에서 잠든 제이아나의 얼굴 위로 손바닥을 몇 번 흔들었다. 깊게 잠든 것인지 확인하려는 행동이다.
“벌써 이게 며칠째인지.”
제이아나는 장부를 읽다 보면 잠이 들기 일쑤였다. 이게 며칠씩 지속되니, 처음에는 일주일로 짧게 잡았던 교육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는 제이아나를 책상 위에 눕혔다. 따끈한 온기가 멀어지니 조금 아쉽기도 했으나 괜찮았다. 애초에 그녀를 잠들게 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찻잔에 숨어있던 하얀 가루는 흔적도 없이 녹아 맑은 차인 척하고 있었다. 그는 찻잔을 멀리 치운 후 상복의 치맛자락을 배가 보일 때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위아래가 바뀐 모래가 아래로 조금씩 떨어진다.
해답 없는 의문. 출구 없는 미로.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내는 그것들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동시에 애써 억누르던 음심에 불이 붙었다.
제이아나는 여태 상복을 입었다. 대공비가 죽은 지 이제 한 달이 되어 가는데도. 키르한이야, 항상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고 다녔으니 차치하더라도 그녀가 상복을 벗지 않으니, 사용인들도 함부로 벗을 수 없었다. 덕분에 대공성은 온통 거무죽죽했다.
상복이란 무슨 옷인가. 제국에서는 상복을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입었다. 검은색으로 일괄되어 입은 사람이 누구든,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은 같다는 뜻에서 모양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이다. 그 특징 없는 상복을 입은 딸에게서 발정한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이 상복을 벗기는 순간에 단전에서 피어올라오는 만족감을 지워낼 수 없었다. 제 어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상복을 입은 딸의 행동은 참으로 지극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비틀린 성정으로는 그녀가 깜찍하기 그지없었다.
거칠한 손이 하얀 허벅다리를 타고 올라가 속옷을 내린다. 흰 속옷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이아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는 내심 이 순간을 즐겼다. 백지. 무력. 그 단어들을 그대로 담은 듯한 속옷이 그대로 벗겨졌다. 깨끗한 음부가 드러났다.
태생적으로 털이 많지 않은 편인지, 제이아나의 아래는 잔털만 조금 있을 뿐이다. 그래서 뽀얀 살덩이가 여실 없이 보여, 그는 만족스러웠다. 손가락이 이젠 자연스럽게 살덩이 사이에 파묻힌 음핵으로 향한다. 이 작은 살점은 처음엔 자신이 성감대인 것도 모르는 듯 굴었다가 그의 반복되는 손놀림에 결국 흥분하여 부풀어 올랐다. 이젠 그가 몇 번 만져주지 않아도 금세 부풀었다.
“매일 잠드는 걸 알면서도 차를 마시는 건, 밑구멍을 만져달란 뜻이지?”
아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는 좋을 대로 해석했다.
그의 손가락이 내려가더니 조그마한 질구 주변을 더듬었다. 음핵을 굴렸더니 이내 젖어 축축한 애액이 나오고 있었다. 착실한 반응은 그를 만족스럽게 한다. 그는 중지를 천천히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좁디좁은 구멍은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탄력이 좋은 질 근육이 그를 밀어내다가, 빨아들이다가를 반복한다. 중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서는, 크게 휘젓는다. 뻑뻑하지만 조금 축축한 내벽이 그를 오물오물 물어댔다.
역시, 기대되는 맛이다. 언제 이 안에 좆을 넣어볼까. 당장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좆이 바지춤에서 크게 부풀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림의 미덕을 알았다. 이런 짓을 하는 것치곤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천천히 잠든 아이의 아래를 풀어주고 극상의 쾌락을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러면 첫날에도 덜 아파할 테니. 그는 진심으로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겼다.
손가락 한 개가 적응이 되었는지 안쪽이 점점 젖어 든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마저 밀어 넣었다. 그 두 개만으로도 좁은 구멍은 꽉 찼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벽을 천천히 긁으며 좆을 넣었을 때의 기분을 상상했다. 미친 듯이 좋겠지, 씨발…. 분쟁 지역에서 굴러먹으며 입에 붙은 욕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다가도 내밀한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날 때는 더했다.
“제이아나, 너도 좋은 게지. 이렇게 손가락으로 쑤셔주니, 자면서도 보지를 오물거리는 꼴 하고는.”
손가락이 나오며 애액을 긁어냈다. 미끈한 액체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는 손등으로 흐르는 애액을 핥다가 질구에 혀를 갖다 댔다. 뽀송한 비누와 꽃을 첨가한 향유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제이아나의 음부를 핥아 올렸다. 그의 혀가 닿자 움찔하는 살결은 부드럽고 여렸다.
그는 혀를 뾰족하게 세우더니 질구 안으로 쑤셔 넣었다. 따끈한 체온이 혀에서 퍼진다. 혀가 내벽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체액이 왈칵쏟아졌지만 그에게는 달기만 했다.
“으… 으음….”
착하지. 자면서 옅은 신음을 낼 줄도 알고.
그는 손으로 제이아나의 허벅지를 잡고 끌어당겼다. 잠결에 힘없이 벌어지는 다리는 그에게 지극히 순종적이다. 그는 혀로 제이아나의 음액을 핥으며 대충 만져주었던 음핵까지 짓뭉갰다. 엉덩이를 움찔거리는 걸 보면 그녀가 확실히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곁눈질로 모래시계를 보니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저 모래시계의 시간은 약 30분 정도. 처음의 제이아나는 30분이 지나도 깨지 않았으나, 수면제의 내성 때문에 수면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그는 질구 위를 길게 핥아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비밀스러운 시간을 끝냈다. 옆으로 치워둔 속옷을 다시 입히고, 옷을 정돈해준다. 그리고는 다시 제이아나를 품에 안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따끈한 체온이 그에게 닿았다.
잠시 후, 제이아나가 눈을 떴을 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눈을 끔뻑이며 느릿하게 뜨니 반듯한 아버지의 옆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아래가 축축한 느낌….
“아….”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낸 제이아나는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에 펼쳐진 장부를 보니 오늘도 중간에 잠든 모양이었고.
“일어났구나.”
“죄, 죄송해요. 제가 또 잠이 들었나 봐요. 죄송해요….”
횡설수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씩 반복한다. 제이아나는 그에게 이런 실책을 몇 번이고 저지른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장부를 보고 쓰는 법도 자신을 위해 아버지께서 일부러 시간을 내신 것인데….
“슬픈 일이 생기면 잠이 많아질 때가 있다고 하지.”
“…네?”
“실제로 내가 있던 곳에서도 그런 이들이 많았고.”
그가 있던 곳이라 함은, ‘소론테’를 뜻한다. 그곳에서는 항시 전시 상태에 가까우니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 자가 많았을 터.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니까.
“네게 셀비아의 죽음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는 알지 못하지만….”
셀비아. 어머니의 이름이 들리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 어머니는 그녀가 아버지에게 사랑받길 원하셨다. 미래의 남편에게도. 그래서 이렇게 안살림을 하는 방법을 친히 알려주시는 건데…. 제이아나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녀의 검은색 상복이 조금 구겨져 있다. 아버지는 편한 셔츠 차림인 것이 보인다. 제이아나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던 순간을 떠올렸다.
‘너와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이렇게라도 널 안고 있으면 안 될까.’
‘…….’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워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제이아나.’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이고. 그녀가 며칠째 그의 무릎 위에서 잠이 들어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다시 무릎 위에 앉혔다.
“내게 의지해 주면 안 되겠니. 제이아나.”
그 말에 제이아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는 하나, 어머니를 완전히 잊지 못했으며 슬픔을 전부 토해내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는 반가웠으나 어색했고, 함께 있으면 긴장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먼저 저렇게 다가오려 노력을 하시는데, 자신이 그렇게 뻣뻣하게 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울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는 생각보다 믿음직했고… 든든했다.
제이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며칠째 차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쏟아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혼몽했지만 괜찮았다. 그녀가 ‘제이아나 레뎀토어’인 이상 그는 그녀의 가족이며 아버지이니까. 따뜻한 팔이 그녀를 더욱 그러안았다.
*
길고도 짧았던 교육이 끝났다. 제이아나는 잠시 동안이지만, 매일 졸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 나쁘게 생각되진 않았다. 아버지의 말 그대로, 슬픔을 극복하는 중인 것일 테니까. 오히려 어머니를 빨리 잊으려 하지 말라던 말씀도 와닿았다. 그래서 슬슬 눈치가 보이던 상복도 계속 입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나와 욕실에 도착한 제이아나는 천천히 상복을 벗었다. 단추를 풀고 아래로 스르륵 내려가는 옷을 곱게 접어 한쪽 끝에 두고, 속옷도 끌어 내렸다.
“하…….”
오늘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아버지와 교육을 하고 나면 이렇게 속옷이 잔뜩 젖어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자고 일어나서도 비슷했다. 가끔씩 정체 모를 하얀 것이 묻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제이아나는 요즘, 하루에 두 번씩 씻었다. 평민이라면 생각도 못 할 호사지만, 애초에 그걸 걱정할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하녀가 미리 따뜻한 물을 준비해둔 욕조에 발을 담그며 들어간다. 아버지의 체온과는 다른, 온도가 발에서 퍼졌다. 그 안에 들어가 앉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귀찮을 만도 한데, 손수 공부를 시켜주는 아버지….
그를 차가운 성정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최근의 아버지는 친절했다. 그 점이 더없이 좋았으나,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여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딸을 가엾게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내게 의지해주면 안되겠니. 제이아나.’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더랬다. 그는 그런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셨고….
제이아나가 천천히 몸을 낮추며 물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만 내놓은 채로 잠시 숨을 쉬다가, 그마저도 물 안에 담근다. 검은 머리카락이 수면 위로 둥둥 떴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하는 그녀만의 행동이다.
이제 두 달이 되어가는 장례식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버지만은 달랐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기분을 물어봐주고, 가끔 어머니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셀비아는 이런 걸 좋아했는데, 넌 어떤 걸 좋아하지?’
사소한 것도 물어보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그가 섬세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숨을 참으며 아름다웠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서가 딱딱하게 읊었던 어머니의 유서도.
‘전 대공비 전하께서 대공녀님께 당부하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아버지인 대공님께 사랑을 받고, 좋은 남편을 만나 사랑받는 것.’
아버지와는 생각보다 조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기대하지 못했던 사랑도 조금 받는 것 같고
남편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청혼서가 많이 들어올 거라고 했지만 자신이 아는 한 아직은 없었다. 이목구비만큼은 어머니를 닮아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은 아버지와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했고, 더 좋았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숨이 점점 막혀오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머니는 걱정 한 줌도 할 필요가 없으시다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사내의 무릎 위에 앉은 제이아나가 다리를 움츠렸다. 자꾸만 엉덩이를 찌르는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여자와 신체가 다르다고 배웠다. 간단한 그림으로나마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 항상 단단한 상태라고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으면 그것을 여실 없이 느낄 수 있어 부끄러웠다. 조금, 아니 많이. 그리고 어쩐지 다리 사이가 가려운 건 착각일까.
“제이아나, 듣고 있니.”
“네, 네!”
다른 길로 빠진 생각을 억지로 잡아채며 제이아나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이 아랫배로 향했다. 아버지의 손이 그녀의 납작한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까닭이다.
“집중해야지.”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그의 손이 부드럽게 배 위를 쓸었다. 금방이라도 위 혹은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긴장이 된 것은 물론이다. 제이아나는 긴장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갈무리했다.
제이아나가 긴장한 것과 다르게 사내는 교육에 충실했다. 처음엔 일주일로 잡았던 교육 일정이 보름을 넘어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이아나가 중간에 잠든 게 가장 컸다. 수면제를 몰래 탄 지 열흘이 넘어가자, 사내는 그 짓을 그만두었다. 그가 사용한 부작용이 없는 약은 내성이 금방 생기며, 양을 늘릴 경우 쓴맛이 가중되어 금방 알아챌 것이 분명했다.
어서 저 작은 보지를 빨아주고 쑤시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몸이 달았다. 그는 대신 제이아나의 아랫배를 만지며 그 음심을 조금이나마 풀고 있었다. 이대로 손을 올려 젖가슴을 손에 가득 넘치게 쥔다던가, 조신하게 오므린 삼각지를 맘껏 들쑤시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보랏빛을 띠는 눈동자는 청명하게 그를 담았다. 눈가가 살짝 휘어진 걸 보면, 며칠 새에 그를 아버지라며 웃으며 따르기까지 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한다.
“제가 많이 부족한데…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감사는 무슨.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해야 하는데.
사내는 비웃음을 삼키며 제이아나의 배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뻣뻣한 좆이 엉덩이골 사이를 누르자 작은 몸이 움찔거린다.
“제이아나. 가족이란 그런 거지. 서로가 부족하면 채워주는 것. 그게 바로 가족의 역할이란다.”
“가족의 역할….”
“그래. 난 네 가족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먼저 말하거라.”
진심도 아닌 말들이 번지르르하게 나온다. 누군가 보았다면 레뎀토어 대공은 저런 말을 할 만한 자가 아니라며 의심했겠지만, 제이아나는 다르다.
“넌 내 딸이니까.”
딸. 어느 날을 기점으로 딸이라 여기지 않았음에도 사내는 혀를 굴렸다. 듣기 좋은 말이 낮은 음성을 통해 전달된다.
“그럼, 아버지… 소론테는 다시, 가셔야 하나요…?”
그의 옷깃을 슬며시 잡고 묻는 제이아나의 눈빛에는 걱정이 깃들어있다.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채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 소론테….”
사실 셀비아의 죽음으로 군사협정은 끝이 났다. 결혼을 통한 단발성 협정이었으니까. 그러나 왕국은 여전히 마물의 침략을 이겨낼 힘이 없다. 그 혼란을 예상한 황제는 결국 비공식적으로 협정을 연장하기로 했다. 헤델 공작이 제국을 방문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협정 연장의 이유는 왕국의 체면을 고려해 암묵적으로 비밀이었으나,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공식적 협정이 끝나, 전역한 키르한을 대신할 기사단장이 선정된 것까지.
“가지 않아도 돼. 폐하께 간청을 드렸거든.”
“폐하께요…? 어떤 간청이요?”
“이제 가족에게 정성을 쏟고 싶다고.”
“아아….”
제이아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그를 향해 웃었다. 사내는 아버지답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는 등허리를 끌어당겼다.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이런 가족을 원했어요. 작게 속삭인 아이의 말이 귓가를 간질였다.
대공성에서 조용히, 밖에 나오지 않고 자란 아이는 의심을 모른다. 아둔하고 순진한 아이를 속여 먹는 건 이렇게도 쉬운 일이었다.
“저 혼자 남겨질 줄 알고….”
혼자 남겨두다니, 안 될 말이다. 위에서 탐스러운 몸을 샅샅이 살펴보며 그가 입술을 당겨 웃었다.
*
평화로운 날이다. 아버지와는 생각보다 많이 가까워진 제이아나는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오늘로서 장부 교육도 끝이 났다. 생각보다 길어지긴 했으나,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도.
예전만큼 어머니가 생각나진 않는다. 시간은 조금씩 흐르는 만큼 슬픔도 조금씩 지워졌다. 어머니를 잃고 슬픔, 고독, 절망만 가득했던 제이아나의 마음속에 다른 존재가 서서히 채워졌다.
“제이. 이리로 오렴.”
“네!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제이아나를 애칭으로 불렀다. 짧게 ‘제이’라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아나’ 혹은 ‘제나’라고 부르셨지만, ‘제이’라는 애칭도 좋았다.
멀리서 손짓을 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간 제이아나는 바짝 안겼다. 아버지의 습관인지, 그는 유독 그녀를 품에 안는 것을 좋아했다. 제이아나도 좋았다. 이런 접촉은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허리가 안긴 채로 함께 정원을 걷기도 하고, 그가 앉을 땐 그녀를 무릎에 앉힌다. 아버지는 제이아나를 얼마 전에 성인식을 치른, 다 큰딸이라는 것을 잊은 듯했다. 그러나 이것도 나쁘지 않아서 제이아나는 얌전히 굴었다.
가족.
이보다 좋은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
두 사람은 천천히 가까워졌다. 교육은 끝났지만 제이아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찾았고, 그는 일하다가도 딸을 반겼다. 그는 자연스럽게 딸을 무릎에 앉혔다. 다 큰딸이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는, 다소 요상한 모습이 연출되었으나, 사내의 체격이 워낙 커서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제이.”
“…네?”
타르트를 우물거리느라 대답이 늦은 제이아나가 그를 올려보았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상복은… 언제까지 입을 거지?”
“아…….”
생각지 못한 질문에 제이아나는 말문이 막혔다.
“응?”
목에서 가슴까지 이어진 검은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간지럽다. 앞섶을 여미는 끈과 레이스를 그가 손가락으로 빙빙 돌릴 때마다 드러나는 피부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다.
“혹시 보기 싫으세요…?”
“그런 건 아니지만.”
순간 목 아래에 살짝 드러난 맨살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닿은 까닭이다.
“네가 아직 셀비아를 잊지 못한 것 같아서.”
손가락은 다시 끈을 만지작거린다. 어쩐지 다시 피부에 닿을 것 같아서 신경이 몰렸다. 리본 모양으로 묶은 끈은 손가락의 움직임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건….”
“네게 더 신경 쓰려 하지만… 아직 부족하게 여겨질 수 있지. 이해한다.”
“그건 아니에요….”
정말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리워 여전히 상복을 입긴 했지만, 아버지의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가 계실 때보다 더….
“그래도 내게 더 마음을 열어주었으면 하는데.”
레이스로 다시 옮겨가는 손가락과 함께 아버지의 시선도 함께 이동했다. 이채가 서린 붉은 눈은 더 안쪽, 깊은 곳을 보는 듯하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아버지에게까지 들릴 것 같다. 가슴 가까이에 얹은 손 아래로 심장이 빠르게 뛴다. 신경이 쓰여 아래를 힐끔 보려 할 때, 손이 담백하게 떨어졌다.
“아버지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네가 마음을 더 열길 원해.”
어디까지? 아버지께서 원하는 건 어디까지일까. 지금도 예전에 비하면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꺼낼 수 없는 질문이 목에서 걸렸다. 그러나.
“우린 유일한 가족이니까.”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
“셀비아는 어떻게 했지? 이렇게 먹여줬나?”
사내가 제이아나의 입 앞으로 슈를 내밀며 물었다. 겉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지만 안에는 하얀 생크림이 가득 든 디저트이다.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던 그는 제이아나에게 더 다가가는 방법을 택했다. 소심하고 수동적인 아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만큼 기다리기 힘들었다.
어린아이가 쉽게 마음을 여는 수단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한 그는 제이아나를 자주 불러 간식을 내주었다. 달콤한 초콜릿 시럽, 부드러운 생크림, 짭짤한 치즈는 그녀의 입맛에 쏙 맞아, 간식을 먹을 때만큼은 마음이 쉽게 열렸다.
“어, 어머니는 그렇게까진 하지 않으셨어요….”
손이 있으면 스스로 먹기 마련이니까. 더군다나 제이아나는 얼마 전에 성인이 되었으니 누군가가 음식을 먹여줄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래? 그렇군….”
빵을 쥔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제이아나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해서 얼떨결에 아버지의 손을 잡아버렸다.
“먹, 먹을게요… 먹여주세요….”
입을 조그맣게 벌리며 말한다.
“억지로 할 필요 없어.”
그녀를 배려한 말이겠지만, 오히려 선을 긋는 말 같다. 제이아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고 도리어 입가로 올렸다. 손마디가 굵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슈가 들려있다.
“억지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물려 다시 입을 벌렸다. 슈를 베어 먹으려던 순간, 부드러운 빵 조직이 찢어지며 안에 들어있는 크림이 밖으로 나왔다. 크림이 입가에 잔뜩 묻는 건 순식간이었다.
“읏… 손수건이….”
급한 대로 입가를 닦으려 손수건을 찾으려는데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입가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그대로 그를 올려다보자 눈이 마주친다.
“아.”
그는 탄식 같은 말을 뱉더니 손에 들린 나머지 슈를 가져갔다. 그리고 손수건 대신이라며 손가락 끝으로 입가를 쓸고는….
“아 해.”
제이아나의 입을 벌리게 했다.
“손수건이 없어서, 지금은.”
품에 안긴 그녀를 놓지 않고서. 하녀를 부르거나, 제이아나를 두고 직접 손수건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읏…….”
엉겁결에 벌린 입안으로 손가락이 쑥 밀고 들어온다. 크림이 묻은 손가락 두 개가 작은 혀 위로 문질러진다. 손마디가 굵어 두 개밖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입안이 가득 찬 것 같다.
달달한 크림이 입안에서 녹는다. 제이아나의 허리를 잡은 팔로 더 가까이 그에게로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무릎에서 마주 보고 앉아있는 자세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다리 사이가 가렵고, 무언가 닿는 것 같았다.
“핥아야지.”
“흐으…….”
핥으라는 말과는 달리 손가락이 움직였다. 손가락은 혀를 꾹 눌렀다가, 혀 아래를 문질렀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윽고 볼 안쪽을 누르기까지 하기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맺혔다.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보내던 눈빛도 조금은 무서웠다. 타는 듯한 붉은 눈이 그녀의 입에 고정되어있다. 크림은 다 핥아 진작 없어졌다. 그럼에도 손가락은 오래도록 빠져나오지 않았다.
날은 조금씩 더워졌다. 정원은 녹음이 우거졌고 해가 높이 떠오르면 조금 더운 바람이 불기도 했다. 제이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느끼며 눈을 떴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얇은 이불을 덮고 잔 제이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멈칫했다.
다리 사이가 축축했다. 혹시 자면서 실례라도 한 게 아닐까. 당황한 제이는 그뿐만이 아니란 걸 느꼈다. 네글리제에 쓸린 젖꼭지가 따끔했다.
‘뭐지….’
방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치마를 걷어 살펴보려던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 똑똑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하녀, 애나였다. 제이는 치마를 도로 내리고 이불까지 끌어당겨 다리를 덮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응, 들어와.”
문을 열리고 애나가 들어온다. 그녀의 한쪽 팔에는 예쁜 꽃들이 꽂힌 화병이 들려있었다.
“어? 웬 꽃이야?”
“아, 대공님께서 아가씨 방에 가져다 놓으라 하셨어요. 예쁘죠?”
“아버지께서?”
몸이 어딘지 불편했던 것도 잊은 제이가 침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애나가 테이블 위에 화병을 내려놓자 그것을 들여다본다.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고 화색이 밝아졌다.
애나는 제이가 누웠던 침대를 정리하며 물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응, 너무 좋아….”
꽃향기를 맡으려 고개를 숙이자 화려한 향기가 훅 끼쳐온다. 그것이 마치 아버지 같았다. 강렬한 붉은색도 그를 닮았다.
제이에게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익숙했다. 그녀를 보지 않으려 했고, 언제나 떠나는 뒷모습만 봐야 했다. 하지만 최근의 아버지는, 꽤 자주 눈을 맞추어 주었고 드물게 웃는 모습도 보였다.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가까워진 것이 조금 이상할 법도 했으나 그 사실이 너무 좋아, 생각 저편으로 치워버렸다.
“아가씨, 대공님께 뱃놀이라도 가자고 하시는 건 어떠세요?”
그것이 애나에게도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뱃놀이?”
“네, 제가 지난주에 호수 주변을 지나가면서 보니 뱃놀이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날씨가 좋아서 이젠 강가에 가도 춥지 않아요.”
“으음….”
‘뱃놀이’라는 흥미로운 단어에 제이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함께 가주실까. 소심한 성격에 맞게 금세 고민한다.
“아버지께서 귀찮아하시진 않을까?”
“에이, 대공님께서 요즘 아가씨께 이렇게 잘 해주시는데요? 좋아하실 거예요.”
“그럴까? 한 번 여쭤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그럼요.”
애나는 제 아가씨의 얼굴 위로 기대감이 떠오른 걸 보고 웃음 지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아가씨는 제 의사 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하며 짓는 표정이, 조금 불손하지만 귀엽다고 느꼈다. 그리고 제가 모셨던 마님, 셀비아와 무척 닮아 보여 조금 슬퍼졌다.
아가씨는 마님께 가끔 일방적으로 의지하던 구석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달콤했으며, 증오는 너무 거칠었다. 그 사이 어딘가 보이지 않는 중간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던 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아가씨는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아직도 마님의 장례식 날, 상복을 입은 채 울음을 터뜨리던 아가씨를 기억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대공이 돌아온 이후였다. 두 사람은 자주 시간을 가졌다. 아가씨는 언젠가부터 잘 웃게 되었다. 분명히 예전엔 아가씨를 소 닭 보듯 했던 것을 아는데도, 그 변화가 반가웠다. 집사를 통해 전달하긴 했지만 대공이 보낸 꽃 선물에 저렇게도 좋아하시는 걸 보면, 확실히 좋은 변화였다.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자신은 저 꽃잎이 대공의 눈처럼 보이는지. 금방이라도 꽃이 아가리를 벌리고 아가씨를 집어삼킬 것 같은, 그런 느낌.
*
“제이, 좋으니?”
“네! 저 뱃놀이는 처음인걸요.”
제이가 기분 좋게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들뜬 상태였다. 처음으로 뱃놀이를 왔다. 아버지가 귀찮아하실까 걱정도 했으나 그는 생각보다 쉽게 수락했다.
제이는 오늘 가벼운 아이보리 색 드레스를 입었다. 나들이를 가면서 상복을 입는 건 이상했다. 이제 슬슬 상복을 벗을 때가 오긴 했다. 아버지가 하셨던 말도 있었고…. 그에 반해 사내는 오늘도 제복 차림이다. 오래도록 소론테에서 지낸 만큼 제복이 편했다. 화려한 견장은 붙이지 않았지만 깔끔한 차림이 그와 어울렸다.
그들이 온 시아르 강은 대공성에서 세 시간 정도 마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숲에 있는 강으로, 물이 맑기로 유명했다. 제이는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사람이 없었다. 저 멀리, 그들을 태워온 마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는 마부밖에 없다. 뱃놀이라 하기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배도 두 사람이 타니 여유 공간 없이 꽉 차버렸다.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처음이라 잘 모르니 그냥 넘겼다. 무엇보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놀이 삼아 타는 건 나도 처음이군.”
“그럼 언제 타셨어요?”
“소론테에서. 거긴 바다와 붙어있으니까.”
담담하게 얘기하는 아버지의 말에 제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뱃놀이를 한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그전에 배를 타본 적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언제인지 궁금했고. 하지만 그게 마물이 득시글한 소론테에서일 줄은 몰랐다.
그는 표정 변화 없이 노를 천천히 저었다. 노가 물살을 가를 때마다 물이 튀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숲은 조용했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그 물소리에 집중할 때 즈음, 그가 말했다.
“다음엔 뭘 하고 싶지?”
“다음이요?”
“우린 앞으로 많은 걸 함께 할 테지.”
지금까지도 많은 걸 함께 했다. 여기서 더 바라도 되는 걸까?
제이는 작은 배에 아버지와 마주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구둣발이 아버지께 닿을 것 같아 다리를 끌어당겼다.
“네게 처음인 것들도 말이지.”
처음인 것들. 오늘의 뱃놀이가 그렇다. 입꼬리가 절로 당겨졌다.
“다음엔, 음….”
뭘 해볼까. 하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다. 대공성 안에 있으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은 전부 그녀의 앞에 주어졌다. 생각해보니 정작 뭘 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오고 싶었던 뱃놀이는 지금 하고 있으니….
“그럼 배를 타고 있으니… 노 젓는 것도 해볼까.”
“노를, 제가요?”
나무로 된 노는 언뜻 보기에도 자신이 젓기에 무겁게 생겼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 경험이니까.”
아버지가 손을 까닥이며 가까이 오라기에 제이는 머뭇거리다 일어났다. 순간 일어나자 휘청하며 배가 흔들렸다.
“흐잇…!”
균형을 미처 잡지 못해 넘어질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품에 안겼다. 눈을 떴을 땐, 아버지의 다리 사이에 앉아있었다.
“조심해야지.”
흐트러진 옆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에 흠칫했다. 등 뒤로 단단한 아버지의 품이 느껴졌다. 그녀의 손에 노를 쥐여주는 행동이 자연스럽다.
“노를 각각 잡아서.”
제이는 엉겁결에 노를 잡았다. 처음으로 잡아 본 노는 생각보다 더 딱딱하고 무거웠다. 놓치지 않게 손에 힘을 주어야 했다. 노를 잡은 손 위로 아버지의 손이 겹쳐져 온다.
“처음에 밀 때는 조금 힘을 주고.”
아버지가 노를 밀 때에, 제이는 그의 근육이 움직이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등 뒤로, 맞닿은 팔 위로, 그녀를 감싼 다리에도. 겹쳐진 손에도 힘이 가볍게 들어갔다. 사방으로 그에게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물살을 역행해서 가는 게 아니라면, 당길 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지.”
시아르 강은 잔잔했다. 맑은 만큼 물은 끊임없이 흘렀으나 물살이 센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힘을 크게 요하진 않았으나…
“몸은 뒤로 젖히고….”
제이의 가슴 위로 한쪽 손을 올리더니 그에게로 당긴다. 한순간에 그에게 기대게 되었다. 그가 마치 심장을 움킨 것 같다.
“다시 해볼까.”
노를 밀어보라는 뜻이다. 제이가 노를 천천히 밀고, 당겼다. 당기는 순간, 가슴 위에 여전히 얹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움켜쥐는 것처럼 손가락이 살짝 둥글게 굽어지기도 한다. 힘은 빼야지, 라는 말이 귓가에서 들렸다.
허벅지에 맞닿은 아버지의 다리는 그녀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무릎에 앉은 게 아닌, 다리 사이에 앉아있는 것뿐인데 느낌이 이상했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발가벗은 기분이다. 더워진 날씨 탓인지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놓치면 안 돼.”
집에 돌아가기 힘들어질 테니. 귓가에서 아버지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뜨거운 입김이 닿은 것 같아 움찔한다. 노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서 계속 보고 있었던 걸까. 고개를 비스듬하게 아래로 기울이고, 가슴 위를 손가락이 배회한다. 만지는 것도 아닌, 그저 손가락을 단순히 움직이는 정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제이의 신경은 그쪽으로만 쏠렸다.
“대답은.”
“네, 네….”
바보 같은 대답에 그가 입가를 당겨 가볍게 웃는다. 그 와중에도 손가락은 가슴 위로 움직였다. 손장난을 치듯이 지분거리다가 정점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행동에 다리 사이가 가려웠다.
어느새 노를 젓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손은 가슴에서 배로 천천히 내려갔다. 배를 뭉근하게 쓸더니 은근하게 당긴다. 길쭉한 손가락은 배가 아닌, 더 아래에 닿을 것 같았다. 가렵기만 하던 다리 사이가 어쩐지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여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래서 그의 체온이 다리 사이에 닿았을 때, 깜짝 놀라 일어서고 말았다. 애초에 아버지가 꽉 안고 있었던 건 아닌지 쉽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면서 손에 힘도 풀렸다. 때마침 갑작스런 물살에 배가 흔들린다. 미처 균형을 잡기도 전에 몸이 기울었다.
“제이…!”
호수에 빠졌다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차가운 물이 몸을 덮쳤다.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노가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물속은 소름 끼치게 차가운데 아버지의 손이 닿은 곳들은 여전히 홧홧했다.
제법 더워졌던 날씨와는 다르게 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살을 에는 듯한 물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땐, 아버지의 품 안에 있었다.
“제이! 정신이 드니?”
둘이 함께 앉아있던 배가 아닌, 마차 안. 마차는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는 저물고 있다. 저녁이 다가오는 숲의 공기는 싸늘하다. 물에 흠뻑 젖은 옷은 보온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몸이 떨려왔다.
아버지는 드레스의 끈을 풀더니 옷을 급하게 벗기려 했다. 제이는 이가 따닥따닥 부딪치며 떨면서도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아, 아버지… 이게 무슨….”
“옷이 젖어서 계속 입고 있으면 감기에 걸릴 거다. 벗어야 해.”
“전 괜찮은, 데… 아버지…!”
“제이.”
낮고 근엄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평소의 다정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눈만 들어 그를 보자, 걱정스럽지만 단호한 표정이었다.
“네가 나와 처음으로 간 뱃놀이에서 아프게 된다면 난 평생 괴로울 거다. 네 처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겠지.”
“그래도 이건….”
그래도, 드레스를 벗으면 속옷밖에 없는데…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께 안겨있는 것은 힘들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제이, 내가 못 미더운 건 이해해.”
“네?”
“네게 노 젓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가 결국 물에 빠뜨리게 하고…. 결국 이렇게 전부 젖어 버렸으니.”
물에 빠진 건 그녀의 실수였다. 아버지가 빠뜨리게 했다는 건 틀린 말이었다. 그것을 정정할 새도 없이 그가 이어 말했다.
“그래도 네가 아프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아버지가 못 미덥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저 부끄러운 것뿐인데. 그의 죄책감 서린 눈빛이 제이의 양심을 콕콕 찔렀다. 게다가 머리도 점점 아픈 걸 보니 확실히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지쳐서 몸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제이는 천천히 아버지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이 완전히 빠져나는 걸 기다린 사내는, 앞가슴의 끈을 당겼다. 리본이 풀리자 가슴을 가리고 있던 하늘하늘한 레이스들이 아래로 늘어져 맨살이 보인다. 그는 제이의 소매를 당겨 팔을 빼내더니 빠르게 옷을 벗겼다. 허물처럼 벗겨진 드레스에서는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중을 드는 하녀 외에는 이렇게 몸을 보인 적이 없어 부끄러워진 제이가 몸을 웅크렸다.
“제이. 속옷도 벗어야겠어.”
“소, 속옷은 괜찮아요. 옷은 벗었으니까….”
“속옷까지 전부 젖었잖니. 부끄러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란다.”
이번에는 대답도 듣지 않고 슬립을 잡아 위로 벗겨낸다. 그의 행동에 정신이 없어진 제이가 딱딱하게 굳었다. 맨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손으로 가려보았지만, 풍만한 가슴은 전부 가려지지도 않았다. 그는 아래로 손을 내려, 제이의 팬티까지 끌어 내렸다.
“그, 만…! 아버지…!”
가슴을 가리느라 미처 막지 못한 손길은 매우 빨라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제이가 입고 있었던 옷가지 전부를 벗겨내 옆자리에 두었다. 제이는 한순간에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사내는 제 셔츠도 단추를 풀어냈다. 제이가 망설이던 것과는 상이한 행동이다. 그는 근육이 탄탄하게 붙은 상체로 제이를 끌어당겼다.
“읏……!”
“내 체온이 높으니까, 안고 있으면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제이의 등 위로 제복을 덮었다. 한순간에 아버지에게 감싸였다. 제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갑자기 아버지와 서로 맨가슴을 맞닿고 있는, 이건 무슨 상황일까. 옆으로 방금까지 입고 있던 속옷들이 보여 부끄러웠다.
옷감 따위 없이 닿은 아버지는 따뜻했다. 차갑게 식은 제 피부와 비교가 되어서인지 뜨겁게까지 느껴진다. 여전히 몸은 떨렸지만 처음보다는 덜 추웠다. 조금 노곤했고, 머리가 아팠다. 제이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아버지의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댔다. 정신이 몽롱했다.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든 제이를 잠시 말없이 보던 사내가 제복 안으로 손을 넣었다. 제이에게 걸친 제 옷을 살짝 걷으니 투명할 정도로 하얀 맨몸이 드러난다. 여린 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안쪽이 만족스러웠다. 제이는 어느새 팔을 무릎 위로 편안하게 올려두어, 가슴을 가리는 방해물도 없다. 그는 거리낌 없이 제이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제이의 가슴을 천천히 주물렀다. 부드러운 살결이 그의 손에 감겨온다. 여전히 피부는 차갑지만 말랑말랑하다.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뱃놀이를 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조금 접촉을 한 것만으로 지레 놀라 물에 빠질 줄은. 제이는 여전히 겁이 많았고 소심했다. 그리고 순진해 빠졌고. 그러니 제 그럴듯한 말에 넘어간 게 아닌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꾹꾹 눌렀다. 함몰된 유두는 그가 여러 번 만져주어야 밖으로 나왔다. 잠든 제이를 수도 없이 만져본 그가 알게 된 사실이다. 가슴을 주무르면서 유두는 손끝으로 빙글빙글 돌린다. 그의 손길을 받은 유두가 조금씩 딱딱해졌다.
아마 제이는 저택으로 돌아가면 감기를 앓을 것이다. 증상이 심하다면 열이 날 수도 있겠지. 모두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제이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구했다면 이렇게 떨고 있지도 않을 거고.
사내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제이가 물속에 빠지는 순간, 그는 계산했다. 제이를 조금 늦게 구했을 때 제게 생길 손익을. 제복 겉옷을 벗고, 조금 늦게 건져냈다. 바로 정신을 차리진 못했지만,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지 않아 금방 깨어났다. 몸을 많이 떨긴 했지만 그 결과 이렇게 알몸으로 제게 안겨있다. 그것도 본인의 동의하에. 사내는 제가 반쯤은 밀어붙였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겼다.
사내는 마차 안에 덧댄 창을 두드렸다.
“조금 천천히 가지.”
“예, 주인님.”
마부의 대답과 함께 마차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는 느긋하게 제이의 가슴을 주물렀다. 큼직하니 주무르는 맛도 있다. 제 손도 보통 사내들보다 큰 편인데도 제이의 가슴은 꽉 들어찼다. 요즘 자주 만져주었더니, 조금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셀비아가 딸 하나는 잘 낳아놨군.’
그는 드물게 죽은 아내를 높게 평가했다. 처음엔 뜬금없는 혼외자가 생겨 골치만 아팠는데 이제 보니 제일 잘한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제이를 처음부터 길들일 것 그랬다. 제 손에 하나하나 반응하도록 몸을 길들이고, 자신이 없으면 살지 못하도록.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얌전히 포개어져 있는 두 다리 사이, 삼각지로 손이 파고 들어갔다. 몸은 차가워도 은밀한 곳만은 조금 온기가 남아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살덩이 사이에 파묻힌 작은 음핵을 찾아냈다. 음핵을 천천히 돌리면서, 반응을 유도한다. 중지를 질구 안에 살짝 넣었다 빼는 걸 반복했다. 최근에 자주 만져주어서인지 안쪽은 이내 축축해졌다.
“기분 좋은가 보구나.”
자느라 대답 없는 아이에게 속삭인다. 손가락이 질 안으로 천천히 밀고 들어갔다. 질은 빠듯하게 손가락을 조여 물었다. 엄지로는 여전히 음핵을 만져주니 애액이 손가락에 감겨왔다.
좁기만 하던 내벽이 조금 편안해지자, 그는 중지를 좀 더 빨리 움직였다. 제이가 잘 느끼는 부위를 손끝으로 긁으며 쑥 밀어 넣는다. 딸아이의 성감대를 찾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어디를 만져주면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차가 울퉁불퉁한 길을 달린다. 조금 느리게 달리라는 그의 지시에 마차는 숲속을 아직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내리막길이나 돌부리를 바퀴가 치고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의 손가락이 질 안으로 푹푹 박혔다. 그 탓에 그의 바지가 흥건해질 정도로 애액이 흘렀다.
“내 바지까지 적실 정도로 좋아하는구나, 제이.”
저택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으니 마음껏 즐기렴. 그가 귓바퀴를 입술로 물며 속삭였다. 예민한 살을 감쳐 물었더니 질이 손가락을 꽉 조인다. 그는 중지를 빼냈다가 다시 빠르게 쑤셨다. 안쪽을 찌르는 자극에 제이는 옅은 신음을 냈다.
“으음….”
“제이, 일어났니.”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깊이 잠들었나 보다.
“아버지가 네 보지를 쑤시고 있는데도 잘 자는구나. 싫은 척해도, 너도 좋은 거지. 아닌 척해도, 옷을 벗을 때 내심 기대한 거지, 응?”
안쪽을 꾹 누르니 질이 경련한다. 손가락을 조였다가 푸는 걸 반복했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애액이 주르륵 흐른다. 길쭉한 손가락은 번들번들했다.
“이렇게 흘린 걸 보고 누가 보짓물이라 생각할까. 네 옷에서 흐른 물인 줄 알 테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렴. 그가 속삭이며 옆에 대충 던져둔 제이의 속옷에 손가락을 닦아냈다. 미끈한 액이 묻었지만 이미 젖은 속옷은 티가 나지 않았다. 제이의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젖어 있었으니 육안으로 보면 애액인지, 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사내는 다른 손으로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한참 전부터 좆이 서 있었다. 제이의 옷이 전부 젖어, 흰 옷감 너머로 피부가 비쳤을 때에도. 함께 배를 타고 제이를 안았을 때에도. 사실 제이와 마차를 타고 시아르 강으로 올 때부터 그랬다. 사내는 언젠가부터 제이를 보면 발정하고 있었으니. 드로어즈에서 빠져나온 페니스가 퉁, 하고 올라왔다.
제이의 손을 가져와 그의 좆을 감싸게 하더니 제 손을 덧댄다. 손이 닿은 것만으로도 벌써 사정할 것 같다.
“아버지도, 기분 좋게 해주렴.”
그는 제이의 손을 잡은 채로 페니스를 흔들기 시작했다. 프리컴이 흘러 제이의 손을 물들인다. 항상 제이를 생각하며 혼자 흔들던 좆이었다. 비록 잠든 상태이긴 하나, 제이가 제 좆을 잡고 흔들고 있으니 성욕이 더욱 치솟았다.
좆을 흔들 때마다 피가 아래로 몰리는 것 같다. 제이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내며 그는 가볍게 사정했다. 제이의 손안으로 하얀 체액이 쏟아졌다. 손이 작으니 정액이 흘러내릴 것 같다. 그는 살짝 벌어진 제이의 입안으로 정액을 대충 밀어 넣었다. 제이는 입안에 무언가 들어오니 입술을 우물거렸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정액이 입술에 묻은 모습은 퍽 만족스러웠다. 언젠간 스스로 아이가 좆을 빨아주는 날이 오겠지. 그는 그 날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의 체온이 조금 높아졌다. 그는 여러 체액이 뒤섞인 손을 제이의 이마에 올렸다. 열이 조금 있었다. 약한 몸이 차가운 물을 극복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택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정도는 더 걸린다. 마차를 더 빨리 달리면 그 전에 도착하겠지만, 제이를 맛보려면 느리게 가는 편이 나았다. 막말로 가벼운 열로 앓아 죽는 것도 아니고.
사내는 제이를 마주 보는 자세로 고쳐 안았다. 잠에 빠져 그가 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마치 인형 같다. 그는 이대로 좆을 제이의 안에 쑤셔 박을까 하다가 생각을 고쳤다. 이왕이면 처음은, 제이의 의식이 있을 때 하는 편이 좋았다.
우는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좆질에 좋아서 스스로 허리를 흔드는 것도 보고 싶었고. 그가 괜히 귀찮게 공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미끈해진 음부 위로 좆을 문지른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귀두가 질구 안으로 틀어박힐 것 같았다. 그의 좆이 음부와 마찰하도록 제이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부드러운 가슴은 그의 상체에 짓눌렸다. 그는 위에서 가슴골을 꿰뚫을 듯 보며 제이의 엉덩이를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여린 보짓살은 닿기만 해도 좋았다. 마차가 흔들리면 귀두가 여린 살을 쿡 찔렀다. 그러면 제이는 자면서도 그것에 반응했다. 애액이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것을 전부 빨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사내는 등을 벽에 기대었다. 말들은 여전히 가볍게 달린다. 도착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아픈 아이를 두고 할 만한 행동들은 아니었으나, 사내는 그것을 신경 쓸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애초에 아이를 보고 좆을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말랑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그는 그 날을 기대했다. 이렇게 겉으로 문지르는 게 아닌, 제이의 안으로 제 좆을 쑤셔 박는 날을.
저택에 돌아온 제이는 열감기를 앓았다. 마차에서 키르한이 안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녀린 몸으로 차가운 물에 빠진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준비도, 예고도 없었으니 더욱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마차에서 사내가 제이를 안고 내렸을 때 사용인들은 깜짝 놀랐었다. 그녀는 사내의 품에 안겨 몸에 그의 제복을 두르고 있었다. 입고 나갔던 옷은 어디 갔는지 맨다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
“아가씨! 이게 무슨….”
제이의 환복을 도와주었던 하녀, 애나가 놀라 달려왔다. 제이는 여전히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으나 어쩐지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의원을 불러라.”
집사는 빠르게 의원을 부르러 갔다. 애나는 대공의 뒤를 따라가며 제이를 걱정스레 보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기대감에 부풀어 웃었던 아가씨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렇게….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 아니,괜히 그런 걱정을 하는 바람에 아가씨가 이렇게 되신 것 같아 오히려 죄책감이 들었다. 애나가 따라오든 말든, 사내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애나가 주춤했다. 당연히 아가씨의 방으로 향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공의 침실이다.
애나는 다른 하녀들이 준비해온 수건을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아가씨를 내려놓는 대공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왜, 알몸이지. 아, 옷이 전부 젖어서…. 그럼 왜 아가씨의 방이 아니라 여기로…?
그러나 의구심을 입 밖으로 낼 순 없어, 옆으로 다가가 제이의 물기를 닦았다.
제이의 몸은 물기가 거의 사라졌지만 머리는 여전히 축축했다. 그리고 손이나 다리 사이에도 물기가 있었다. 애나는 그것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으으…….”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아파서 나온 신음인가 보다. 제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애나는 함께 가져온 잠옷을 입히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뒤에는 대공이 서 있기까지 하니 아가씨의 벗은 몸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일단 이불을 목까지 덮어드리고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그 모습을 사내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집사가 데려온 의원이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부 나가 있으라는 사내의 말에 애나는 수건을 내려두고 집사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문을 닫고 나오면서도 그저 하녀일 뿐인 자신까지 내보내는 것이 이상했다. 아가씨가 옷을 벗고 있으니 집사님을 내보내는 거야 그렇다 해도…. 그녀는 그저 복도에서 의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공성에서 항시 대기 중인 의원은 식사를 하다 끌려왔다. 한 손에는 문진 가방이, 다른 손에는 포크를 들고 있었다. 제이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사내의 행동에 청진기 대신 포크를 갖다 댈 뻔했다.
“물에 빠져서.”
불친절한 설명이다.
물에 빠졌으니 저 상태가 되었다. 상태는 심한지, 열은 금방 내릴 수 있는지 따라붙어야 할 기본적인 말조차 없다. 의원은 청진기를 제이의 심장 위로 갖다 대기 위해 이불을 내리려 했다.
“잠깐.”
왜지? 이번엔 포크가 아닌데. 제 손에 들린 것이 청진기인지 다시 확인한 의원이 사내를 쳐다보았다.
“예?”
“내가 하지.”
뭘요…? 멍청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가 황급히 청진판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제 여자의 몸을 의원에게도 보이지 않으려는, 소유욕 있는 남자들이. 귀족들은 사용인이나 의원들을 그저 수족처럼 여겨 몸을 보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러 있긴 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애처가였군.’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바늘이 아니라 칼로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대공, 주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대공은 이불을 살짝 들추어 자신에게 여자의 가슴이 보이지 않게 청진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의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대공비의 장례식이.
그럼 저 여자는 누구지…? 어색하게 눈알을 굴려 얼굴을 살폈다.
‘…맙소사.’
대공녀였다. 조금 불안정한 박동이 호스를 타고 들렸다.
“어떻지.”
“조, 조금 더 들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대공녀가 이 방에 누워있는 거지. 그것도 나체로. 의원은 그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전하, 청진판을 오른쪽으로… 조금만 이동해주십시오.”
사내가 그 말을 그대로 따른다. 조금 달라진 각도에서 들리는 심음은 느리고 약했다. 그 뒤로도 의원은 계속 주문했다. 직접 청진판을 움직일 수 없게 하니, 대공에게 세세하게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움직일지 말했다. 귀찮고 번거로워서 그만하고 돌려줄 만도 한데 대공은 끝까지 의원의 말을 따랐다. 그것이 새로워 보였다면 사실이다. 그러나 시선이 대공의 다리 사이에 향했을 때 앞섶이 부풀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절대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으나 자꾸 신경이 쓰였던 탓이다. 시선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을.
의원은 청진기를 내려놓고 제이의 손을 잡았다. 그 움직임에 대공이 눈만 돌려 그를 본다. 둘만 남아서인지 붉은 눈이 오늘따라 더 무서웠다.
“그건 왜.”
“진맥을 해야 합니다….”
대답을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의원은 제이의 손목 위로 제 손가락을 올리며 진맥했다. 그가 잡은 손목으로 따가운 시선이 박히는 것 같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대공녀의 심박은 느리고 약했다.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타고나길 장골 체질인 대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약해진 이유는 몸살 때문도 있겠지만 스트레스성일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대공비의 장례식이 아닐까, 의원은 생각했다.
“열이 꽤 높습니다. 그리고… 기력도 약합니다. 해열제에 약을 별도로 지어드리겠습니다.”
“상태는 나쁜 편인가?”
“일반적이면 이틀 정도 앓으면 괜찮아지겠지만… 아가씨의 전체적인 상태가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어서….”
조금 오래간다는 뜻이다. 의원은 ‘아가씨’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해열제를 꾸준히 복용하시면 닷새 정도 후엔 괜찮아지실 겁니다. 약재가 많이 들어가 쓴 편이니 우유나 꿀을 섞으면 한결 낫습니다.”
“음.”
대공은 무릎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제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공이 손에 쥔 청진판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의원은 여태 제 직장에 만족하고 있었다. 봉급이 밀린 적도 없고, 대공이 그간 소론테에 오래 있었으니 마주한 적이 거의 없었다. 간혹 부상을 달고 왔을 때 상처 치료를 하고 드레싱을 하는 정도. 대공성의 몇 안 되는 주인 중에서 가장 불편한 자를 마주하는 일이 드물었으니 멋대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찾는 사람은 드물어 가끔은 출근을 늦게 한 적도 있다. 식사 중 스테이크를 두 접시나 더 주문한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의원은 여태까지 허비했던 나태한 시간들의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더럽게도 안 갔다.
“수면제는 같이 먹어도 되나?”
“예….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그럼 세이드린은?”
“……예?”
‘세이드린’은 성적 흥분제였다. 뒷골목에서 거래되곤 하는 약물로, 부작용이 없어 흔히 사용했다. 귀족들은 은밀한 밤 생활을 위해 몰래 구비하긴 했으나 직접 말하진 않았다. 암묵적으로 비밀이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세이드린을?
“함께 복용해도 되는가.”
“그, 그것도 딱히 부작용은 없습니다….”
의원이 순간 흠칫하며 대답했다. 평소엔 놀고 먹었지만 괜히 대공 가에 고용된 의원이 아니다. 순식간에 약물들의 조합을 해본 후 결론지어 말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청진판을 그에게 휙 넘겼다. 겨우 그것을 받은 의원이 진단서에 병명을 적고 문진 가방을 정리했다. 가방 옆에 놓아둔 포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단속 잘 하게.”
“예? 예.”
등골이 쭈뼛했다. 의원은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허겁지겁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날 때 하녀가 따라오며 무어라 하는 것도 같았으나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의 생에 이렇게 빨리 걸은 적은 처음이었다.
*
제이는 그대로 사내의 침실에 있었다. 옷을 얇게 입고 갔었던 것도 한몫했는지 열은 쉽게 내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끙끙 앓았다. 열이 더 오르면 안 된다고 옷을 입히지도 않았다.
검은 커튼을 쳐, 방 안이 어둡다. 다른 사용인들의 출입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침실에는 오직 대공 혼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편안한 가운 차림으로 제이에게 다가갔다.
“제이.”
뜨거운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여전히 열이 높다. 사내는 제이의 머리맡에 앉았다.
“약 먹어야지.”
손은 얼굴선을 따라 내려왔다가 힘겹게 숨을 내쉬는 입술 위에 안착했다. 건조해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벌린다. 힘없는 입술은 쉽게 벌어졌다. 사내는 약을 입에 머금더니 제이의 입술 위로 겹쳤다. 작고 부드럽다. 건조해서 조금 메마르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제이의 입안으로 약을 천천히 넘겨주었다. 의원이 말했던 대로 많이 썼다. 그럼에도 제이의 혀를 빨아 당기니 쓴맛이 덜했다. 오히려 단맛이 나는 것 같다.
의원이 지어 준 약의 1회분은 찻잔 하나를 채운다. 그러나 사내는 이 쓴 약을 많이 머금을 생각이 없었다. 입술이 물기 있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약이 많이 써서 한 번에 다 마시진 못하겠구나.”
나누어 마셔야지. 찻잔에는 여전히 약이 반 정도 남아있다. 그는 그것을 옆으로 치워버린 후 다시 제이에게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녀의 입안에도 여전히 쓴맛이 남아있다. 그는 제이의 혀를 찾아 핥듯이 빨아댔다. 작고 얇은 혀가 그에게 쪽쪽 빨린다. 그러다가 혀 아래, 치열, 입천장 등을 쓸었다. 제이의 입안을 전부 핥을 기세였다.
입술이 턱 아래로 내려와 가느다란 목을 깨물고 핥는다. 금세 잇자국이 생겼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방이 어두우니 어차피 제이도 모를 것이다. 제이의 목은 가늘어서 마치 그가 물어뜯는 것 같았다. 벌건 자국 위로 타액이 언뜻 묻는다. 그는 놀던 손으로 제이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 커다란 가슴은 언제 만져도 부드러웠다.
어느새 서버린 좆을 제이의 다리 사이에 문지르며 손을 멈추지 않는다. 손바닥 아래로 가슴이 짓 뭉개지고 발간 손자국이 생겼다. 목을 깨물던 입술도 점점 내려와 가슴에 닿았다. 그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손으로 살덩이들을 모았다. 자연스레 가슴에 파묻힌 형상이 되었다. 체취를 들이마시듯 숨을 크게 쉬었다가 하얀 살갗 위로 뜨거움 숨을 뱉었다. 성인이라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 같은 냄새가 났다. 그는 그것이 좋았다. 한 번 맡으면 죄 뜯고 싶을 정도로 제이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고 하얀 피부가 좋았다. 그는 도저히 못 참고 가슴을 베어 물었다.
그는 가슴을 입에 물고 함몰된 유두를 혀로 쑤셨다. 말랑한 피부가 그의 혀를 따라 눌렸다가, 나오길 반복한다. 다른 곳보다 분홍색이 짙은 유두는 그가 몇 번 자극해주어야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제이의 그런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제이에게 흔적을 남겼다는 증거 같았다. 그가 느른하게 유두를 핥으며 말했다.
“좋다고 젖꼭지를 이리도 세우는데… 네 기분을 좋게 해주지 않으면 딸을 사랑하는 아비로서 예의가 아니겠지.”
사내는 제이의 왼쪽 가슴을 핥아 올렸다. 그에 가슴이 함께 흔들린다. 크기가 큰 만큼 움직임도 크다고 생각하며 젖꽃판을 혀로 꾹꾹 눌렀다. 위로 시선을 향하니, 제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다.
제이에게 해열제의 적정 복용량의 반 정도만 먹였다. 열은 언젠가 내려가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그는 제이를 빨리 낫게 할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큼 먹기 좋은 건 없다. 천천히 씹고 맛볼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유두를 혀로 문지르니 숨어있던 정점이 나타난다. 그는 그것을 이로 느릿하게 깨물었다. 자그마한 살점이 이 사이에서 짓뭉개진다.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듯이 그는 끊임없이 괴롭혔다.
“으으…….”
“…제이?”
잠결에 웅얼거린 소리였는지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서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보라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병의 뚜껑을 열더니 제이의 입안으로 흘려 넣는다. 병의 겉면에는 암호 같은 글자가 적혀있었다. 해석하면 ‘세이드린’이라는 글자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성적 흥분제다.
그는 액체를 전부 넣지 않고 반 정도는 남겨두었다. 적당히 기분 좋게 해줄 생각이었으니까. 아플 때 약도 직접 먹여주고, 기분도 좋게 할 테니 이보다 더한 봉사는 없었다.
반응은 조금 기다리면 올 것이다. 그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부작용이 없다는 것도 알았고 해열제도 정량을 주지 않았으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핥아댔던 제이의 가슴을 손으로 주물렀다.
“언제 이렇게 자라서….”
조금 만져주었다고 이렇게 젖꼭지를 세우는 꼴이라니. 그것도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는 손가락으로 유두를 튕겼다. 퉁퉁 부어 그의 손이 튕길 때마다 작게 으읏, 소리가 났다. 그는 제이의 가슴이 마음에 들었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고, 그는 매일 눈으로 제이를 희롱했다. 그 시선을 알지 못한 제이는 멍청하게 그에게 몸을 기대왔고, 그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싼 손으로 가슴을 스치듯 만졌다. 손가락을 가슴 밑으로 넣으면 느껴지는 무게감으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흐…….”
반응이 서서히 오는지 제이가 조금씩 뒤척이기 시작했다. 두 다리를 붙이고, 비비적거린다. 힘이 없으니 크게 움직이진 못하지만 조금씩 더운 숨을 내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 어디가 불편하니.”
“흐으…….”
“여기?”
가슴을 꽉 쥐며, 그가 묻는다. 흣, 으으…. 작은 신음이 들리자 그가 손을 움직였다. 손에 가슴을 가득 쥐고 검지로는 유두 위를 문지른다. 유두는 부어서 발갛다.
그는 제이의 반대편 가슴도 함께 주물렀다. 양손에 가득 차는 살덩이들이 부드럽다. 그가 손을 크게 움직일수록 제이의 신음도 잦아졌다.
“읏…….”
한참을 주무르니 양쪽의 유두가 빳빳하게 솟아있다. 언젠가 이곳에서 젖이 흐르는 것도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는 아예 제이의 위로 올라갔다. 두 가슴이 만들어낸 가슴골에 그의 좆을 내렸다. 좆을 감싸는 부드러운 살결과 부피가 그를 더욱 흥분하게 한다. 제이의 아래가 젖었었는지, 기둥에 물기가 있다. 가뜩이나 열이 올라 뜨거운 기둥이 하얀 피부에 닿자 더 단단해졌다. 그는 양손으로 가슴을 모으더니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의 가슴은 큰 편이어서 페니스의 절반 이상을 가렸지만, 그가 허리를 앞으로 내밀 때마다 두툼한 귀두가 위에서 드러났다.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에 조금씩 속도를 가한다. 애액과 뭉쳐진 쿠퍼 액이 미끈미끈하게 제이의 쇄골 위로 흘렀다.
하얀 턱과 살짝 벌어진 입까지, 뭉뚝한 선단이 닿는다. 이미 흐르기 시작한 액도 함께 묻기 시작했다. 그는 이내 가볍게 한 번 사정했다. 선단에서 쏘아진 정액이 제이의 턱 아래를 맞춘다. 저 얼굴에 제 흔적이 묻으니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사내는 더욱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저가 제 딸이라고 거짓으로 안겨들던 그 얼굴을 지우고 싶었다. 그래서 넌 내 딸이 아니라고, 그저 아내였던 자가 불륜으로 낳은 여자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제이, 아버지가 만져주니 좋니.”
그는 정액이 남은 선단을 제이의 가슴 위로 문질렀다. 발갛던 유두에 하얀 점액질이 묻는다. 제이는 그런 접촉만으로도 좋아서 몸이 달았다. 열 때문에 체온이 높아진 상태다. 그런데 흥분제까지 더하니 몸이 뜨거웠다. 잠에서 깰 듯 말 듯 하고 몽롱한데 몸이 민감했다
힘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제 손으로 무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도, 만져줄까.”
사내의 손가락이 제이의 다리 사이로 들어온다. 작은 진주 같은 클리토리스를 찾아내더니 문지르며 다른 손가락으로는 입구를 매만졌다. 벌써 젖어 있었던 덕에 손가락이 미끄덩하고 잘 들어갔다.
“흣, 으으….”
손가락을 감싸는 내벽이 뻑뻑하면서도 한없이 좁다. 그는 주름을 긁듯이 손끝으로 비볐다. 그럴 때마다 질이 손가락을 잡아먹을 것처럼 좁아졌다. 몸이 달긴 했는지 조금만 만져주었는데도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이자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이의 아래를 만지게 된 지는 좀 되었다. 그녀의 몸은 그 기간 동안 적응을 한 건지 빠르게 젖었고, 쉽게 느꼈다. 이렇게 잘 느끼게 된 게 흥분제인 세이드린 때문만은 아니란 뜻이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갔는데도 구멍이 꽉 차버렸다. 그는 후일, 이 안에 넣을 제 좆을 생각하며 안쪽을 더 넓히려 했다. 손가락 하나를 더 넣을 수 있을까…. 빠듯한 안쪽에 자그마한 틈이 생기자, 그는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읏…….”
제이는 힘든지 투정 같은 신음을 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으면서. 혹시 잠에서 깬 상태는 아닌지 생각도 했으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움직이지 못할 테고, 자신을 원망하기엔 이미 그녀는 너무 많이 느껴버렸다. 손가락을 타고, 손목까지 흐르는 보짓물을 보면 그렇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투명한 물이 핏-핏- 하고 튀어나왔다.
물이 흘러 침대 위의 시트가 난잡하게 젖어 든다. 다리를 안쓰럽게 벌리고 그의 손을 삼키고 있는 제이의 모습에 그가 다시 좆을 세웠다. 언젠가 좆이 들어갈 구멍을 그는 넓히고, 안쪽을 긁으며 개발했다. 손가락의 왕복이 빨라진다. 그는 제이가 유독 느끼던 부분을 마구 찌르며 흥분을 유도했다. 그가 계속 문지른 탓에 음핵이 크게 부풀었다. 이내 제이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안쪽에서 맑은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흐으… 응….”
손가락을 천천히 빼자, 안쪽에 뭉쳐있던 애액이 함께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내려 음부를 핥았다. 혀로 흐르는 애액을 맛보고, 구멍 안쪽으로 쑤셔 넣는다. 남은 보짓물을 전부 핥아 먹을 기세로 힘 있게 빨아들이는 소리가 추잡했다. 방 안에 온통 야한 냄새가 진동했다.
“흐, 으으….”
그가 혀를 놀릴 때마다 벌어진 살덩이들이 움찔거렸다. 그는 양 날개를 벌려 핥다가, 입술로 여린 살을 빨았다. 약하고 예민한 곳이라, 금세 말랑해지고 붉어진다. 그는 물을 전부 핥을 것처럼 굴었으나, 끊임없는 자극에 물은 계속 나왔다. 그의 입가로 제이의 물이 선을 그리며 흘렀다.
“제이.”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래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제이를 내려다보니 새삼스레 작아 보였다. 키도, 체격도 작다. 태생적으로 마른 편인지 허리는 가늘었다. 그런데도 가슴만은 커서 절로 눈이 갔다. 야한 몸뚱이였다. 그를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자랐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실상은 가만히 있는 제이에게 그가 유혹당하고 있는 꼴이었지만.
“너도 날 만족시켜 주어야지.”
그는 제이의 머리맡으로 갔다. 풀어헤친 가운 중간으로 좆이 고고하게 서 있다. 그는 제이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다. 마주하게 된 제이의 얼굴을 보다가 그는 좆을 그대로 문질렀다.
“후…….”
열감기를 앓는 제이의 얼굴에는 붉은 기가 있었다. 그 위로, 정액이 묻은 좆을 문지르고 비볐다. 선단을 제이의 볼 위로 꾹꾹 누르다가 입술 위에 비볐다. 작은 입술 위로 하얀 정액이 묻어난다.
“예쁘군.”
방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제 정액을 묻힌 딸의 얼굴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손가락으로 제이의 입술을 벌리더니 좆을 천천히 넣었다. 작은 입술이 좆을 감싼다. 제이의 입안은 따듯했다. 열 때문인지 좆을 따뜻하게 감싸기에 그는 더 흥분해버렸다. 제이의 뒷머리를 잡고 허리 짓을 시작했다.
“읏, 흐…….”
좆을 밀어 넣을 때마다 입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치열과 작은 혀와 타액 등을 지나치며 허리를 움직였다. 목구멍에 좆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제이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입술을 우물거리거나 목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을 조이는 정도였다.
뒷머리를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는 목구멍 안으로 좆을 더 밀어 넣었다. 좁은 구멍이 아늑했다. 그는 여차하면 제이의 입안에 사정할 생각이었다. 좆 뿌리가 제이의 입안에서 사라졌다가 나오길 반복했다.
“으읍…….”
그때 제이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버지의 앞모습이었다. 방안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입안에 가득 들어와 있었고, 목이 아팠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눈을 더 뜨고 싶었지만 열 때문인지 쉽지 않았다.
“제이, 일어났구나.”
흐릿한 청각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이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막혀 그러지 못했다. 입에 들어온 길쭉한 것은 앞뒤로 움직였고 목을 계속해서 찔렀다.
“의원이, 약이 쓰니까….”
“읍, 흐으…….”
뭉툭한 것이 다시 목 안쪽을 찌른다. 괴로웠다. 그럼에도 많이 느껴본 듯한 감각에 몽롱해졌다.
“우유를, 마시면, 좋다고 해서.”
네게 주고 있었단다. 그 말을 끝으로 입안에 알 수 없는 액체가 쏟아졌다. 묽은 것 같기도, 점액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액체. 약간 비릿한 냄새도 났다. 언젠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옷에 묻어있던 것과 비슷한 것의….
그러나 생각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 다리 사이가 가렵고, 뜨거웠다. 안에 무언가를 넣고 싶어서 허리를 들썩였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 마구 들어 몽롱한 가운데에도 수치스러웠다.
“혀로 핥아보렴, 제이.”
입안을 가득 메우던 것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제이는 저도 모르게 고여 있던 액체를 삼켰다. 옳지, 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손길이 좋았다. 머리를 만져주고, 약을 먹으라고 챙겨주는 아버지. 자신이 아픈데도 홀로 곁에 있다니. 제이는 굳은 혀를 움직여 뭉툭한 것을 건드렸다. 미끈하고, 뜨거웠다. 아버지의 한숨 같은 소리도 들린 것 같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걸까. 그 소리에 덜컥 겁이 나서 혀를 더 크게 움직였다.
“잘 하는구나. 이번엔, 빨아볼까. 우유가 나올 거야.”
머리를 토닥이는 손이 부드러웠다. 말투도 자상하기 그지없다. 조금 용기를 얻은 제이가 입술을 모아서 빨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젖병을 빨던 것처럼, 혀를 움직였다. 이것도 비슷한 게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우유에서도 가끔 비린 맛이 나긴 했으니까….
“으으, 웅…….”
제이는 혀를 자꾸 찌르는 커다란 것을 핥았다. 거기선 끊임없이 액체가 나왔다. 아버지가 말한 우유 같은, 조금 비릿한 것이 나오기도 했다.
약은 언제 먹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입 한쪽에서 조금 쓴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아버지는 자꾸 젖병을 밀어 넣었다. 아버지가 ‘젖병’이라고 한 적은 없으나 제이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라 여겼다. 드물지만 일어날 힘도 없이 아플 때, 이렇게 젖병 같은 것에 약을 넣고, 누워서 먹은 적도 있어서였다.
매끈한 입구는 중간이 조금 갈라져 있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우유가 나왔다. 그래서 자꾸 혀로 들쑤셨더니 젖병이 움찔하다가 더 커지기도 했다. 그리고 우유가 쏟아졌다.
젖병은 너무 커서, 사실 조금 버거웠다. 아버지는 가끔 목구멍에 닿을 만큼 깊게 넣기도 했다. 숨이 막힐 정도였는데 목구멍에 우유를 쏟아내면, 그곳에 비비다가 밖으로 조금 빼주기도 했다. 젖병을 물리는 게 아마 처음이니 그럴 것이다.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아버지는 늘 검과 함께 했고 소론테의 전사였다. 손힘이 강한 건 당연했다. 그러니 지금 머리를 고정하느라 뒷머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거겠지. 조금 아프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아버지는 다른 손으로 얼굴이나, 이마를 쓸어주기도 했으니까. 그 손길에 기대면 괜찮았다.
*
열이 여전히 내리지 않은 제이는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 가까이가 지났지만,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볼 수 없어 담당 하녀였던 애나가 초조하게 침실 앞을 서성였다. 사내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육중한 문을 걸어 잠갔다. 의원이 처음에 말했던 닷새는 벌써 지났다. 약을 정량도 주지 않으니 열이 내리지 않는다. 더구나 그가 매일 제이에게 하는 짓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흐, 으읍…….”
제이는 입안을 왕복하는 좆을 맛있게도 빨아댔다. 처음엔 제이의 입에 좆만 물리던 사내는 좆에 꿀을 발라 주기도 했다. 의원이 꿀도 좋다고 했었다. 순서가 틀려도 한참 틀렸지만 그는 오직 제이의 구멍을 탐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많이 먹어야, 빨리 낫지.”
고개를 그에게로 향한 채로 좆을 문 제이의 입가로 타액이 흐른다. 그것은 시트로 주르륵 미끄러져 짙은 흔적을 남겼다. 사내는 허리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며 욕망을 풀어냈다. 열 때문에 좀 더 뜨거운 제이의 입안은 극상이었다. 말랑하고 부드러웠고, 좁아서 쫀득하다. 아랫구멍도 이러할까. 왜 이곳을 입 보지라고 상스럽게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엔 집무실에서 입에 물려줄까. 자신은 업무를 보고 제이는 책상 밑에서 좆을 빨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제든지 박을 수 있게 대기시키는 것처럼. 그때가 되면 저 아랫구멍도 개발한 후겠지. 그럼 지루한 일을 하다가도 저 몸을 취할 수 있으니 능률도 오를 거고….
제이가 혀로 방금 사정한 정액을 빨아들였다. 그는 제이의 옆머리를 넘겨주며 속삭였다. 잘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하면 금방 낫겠다고.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는 걸 보며 그는 목 안쪽으로 좆을 더 밀어 넣었다.
*
사내는 침실에만 있지 않았다. 대공령은 넓었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루에도 보좌관들이 몇 번씩이나 들락날락했다. 수면제를 먹은 제이가 자고 있을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전하. 황실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한창 서류를 들여다보던 그에게 집사가 다가왔다. 고개만 들어보니 황금색 사자 인장이 찍힌 봉투가 있다. 집사는 그것을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두고 몇 걸음 물러났다.
무슨 일이지. 사내가 소론테에서 돌아온 후로, 황제는 가끔 그를 소환하곤 했다. 수도에 와서 말 상대나 되어 달라는 쓸데없는 전언이 대부분이어서, 그는 모조리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 그의 성미를 알고 있으니 황제도 심심할 때면 그렇게 전언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문서를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빠르게 페이퍼 나이프로 봉투를 개봉했다.
“…….”
내용 확인을 한 그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치면서 생각에 빠졌다. 집사는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상태의 주인을 긁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의원을 불러.”
“의원… 말씀이십니까?”
황실에서 온 편지인데, 의원?
집사는 머리를 빨리 굴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제이아나의 약을 지어오라고 해. 바로 나을 수 있는 걸로.”
“알겠습니다.”
“아니지. 일단 데려와서 약을 짓게 하지. 상태를 봐야 하니까.”
며칠 동안 해열제, 흥분제에 수면제를 섞어 투약한 제이의 상태는 말이 아닐 거다. 빨리 낫게 하려면 다시 진단하고 처방을 하는 편이 맞았다.
“그리고.”
사내는 며칠 내내 복도를 서성이던 이를 떠올렸다. 아마도 제이의 시중을 드는 하녀일 것이다. 제이를 볼 때마다 항상 옆에 붙어있던.
“휴가를 줘야겠군.”
“누구…에게 말씀이십니까?”
“제이아나 옆에 붙어있는 하녀. 열흘 정도면 충분하겠지.”
잠시 후, 숨을 헥헥거리며 끌려온 의원은 눈치를 보며 침실로 들어갔다. 다신 오기 싫었는데…. 그는 대공의 싸늘했던 눈초리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주인들의 무병 무탈을 빌기도 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방안은 온통 정액 냄새가 난무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가씨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입술이 헐었고, 입안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여전히 이불로 가려져 있었으나 방 안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의원은 제이의 손목을 잡고 빠르게 진맥을 시작했다. 그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진료만 할 생각이었다.
“내일 바로 나을 수 있게 해.”
“그건, 무리입니다….”
억지로 쥐어 짜낸 목소리가 형편없다. 의원은 사내의 눈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설명했다. 열이 아직 있는 상태이고, 빠르게 나아도 사흘은 걸린다고.
“오래 걸리는군.”
약 먹고 자면 바로 낫는 줄 알았는데. 이어진 사내의 말에 ‘그건 주인님이 워낙 건강하셔서 그렇다.’ 고 속으로만 대꾸했다.
“대공 가 분들이 체질적으로 건강하긴 했지만… 아가씨는 조금 약하신 편입니다.”
그 말에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그의 눈치를 보던 의원은 서둘러 진료를 한 후 약을 보내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
애나는 휴가를 받고 잠시 고향인 로이드 왕국에 가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휴가에 당황했지만, 마님의 결혼으로 제국에 따라온 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에 갈 수 있게 되어 들떴다. 아픈 아가씨를 두고 다녀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괜찮을 것이다. 최근 대공은 예전과 달리 눈에 띄게 아가씨께 잘해주셨으니 말이다.
의원이 다녀간 후, 제이는 그녀의 방으로 옮겨졌다. 그의 침실에 계속 두었다간 자꾸만 손을 대고 싶어지는 그의 본능 때문이었다.
간호는 애나 대신 다른 하녀가 맡았다. 제이는 제대로 된 처방으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자 몸이 한결 가벼워진 제이는 말끔해진 정신으로 눈을 떴다.
자신이 아프던 며칠간 아버지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두운 방에서 손수 약을 먹여주셨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잠을 푹 잔 덕에 일찍 눈을 뜬 제이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하녀들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눈을 깜빡였다.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아침이었다. 대공성은 묘하게 부산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후로 함께 식사를 들었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분주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녀 몇이 붙어 옷을 갈아입은 제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하녀들이 가져온 얇고 하늘거리는 옷은 몸 선을 잘 드러냈다. 이런 옷은 처음이었지만 제이는 그러려니 했다. 이제 성인이니까, 이런 옷을 입어도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옷차림에 아버지가 눈을 못뗀 것은 좀 부끄러웠다. 제이는 어색하게 팔을 매만졌다.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하녀들이 마사지를 해주었다. 고급 향유를 발라주며 정성스레 안마해주는 모습에 의문을 느꼈었다. 파티에 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러냐는 물음에 그들은 침묵했다. 이상함을 느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아버지의 명이라며 그들은 말을 아꼈다. 열감기로 아팠으니 그동안 뭉친 근육을 풀어주려 하나보다, 생각하며 제이는 혼자 핑거 푸드를 집어먹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저녁, 하녀들은 몸치장을 해주었다. 간단한 화장을 해주며 은은한 향이 나는 향수도 뿌려주었다. 머리는 굵은 컬을 느슨하게 말아주었다. 그렇게 온종일 야단법석을 떨더니 입히는 옷은 속이 다 비치는 얇은 흰색의 슈미즈였다. 속옷은 입지도 않았다.
영문을 몰라 그저 집사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익숙한 방, 아버지의 침실로.
“아버지…?”
“어서 와라, 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이트가운을 걸친 모습으로 제이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그의 눈은 제이를 감상하는 듯했다.
“아름답구나. 상상 이상이야.”
“아버지, 이게 무슨….”
“그 시커먼 상복을 볼 때마다 벗겨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깨에 올라온 아버지의 손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제이. 오늘부터 내 밤 시중을 들어야 한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
“흐으… 흣….”
제이는 흐느낌 같은 신음을 뱉었다. 사내는 제이의 다리 사이를 핥고 있었다.
“아버지… 읏, 제발 그만….”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에게 왜 이렇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고 있던 얇은 슈미즈는 찢겨 나체가 된 지 오래였다. 아무리 성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제이라도 이런 행위가 아버지가 하기에는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이, 네가 아프면 안 되잖니.”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입가에는 그녀의 애액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것을 본 제이는 수치스러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한 번도 아래에서 저런 물을 흐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래를 혀로 핥기 시작하자 처음엔 주춤하던 그곳에서 미끈미끈한 액을 뿜어냈다.
“으읏….”
수치스러움과 별개로 알 수 없는 흥분감이 조금씩 밀려온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발버둥을 치고 싶어도 양쪽 다리 모두 아버지의 손에 잡혀 단단히 고정되어 불가능했다.
“네 보지는 여전히 물이 많구나.”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상체를 들더니 아래에 손가락을 넣었다.
‘여전히?’
그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생각이 날아갔다.
“하윽…! 손, 손은…!”
“앞으로 먹을 맛이 나겠어.”
손가락은 좁은 질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몇 번이고 쑤셨던 덕에 질은 손가락을 쫀득하게 물었다.
“으읏…!”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내벽을 건드린다. 조금이나마 젖었지만, 아직 사내의 손가락이 들어오기엔 너무 좁았다. 내벽은 손가락을 조이며 축축하게 적셨고, 사내는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좆이 들어갈 구멍은 조임이 남달랐다.
나이트가운을 벗어던진 그는 잔뜩 흥분한 하체를 들이밀었다. 검붉은 성기가 들어가기엔 구멍이 너무도 좁았다. 그는 귀두를 구멍에 맞추더니 허리에 힘을 주었다. 자꾸 미끄러지던 좆이 이내 제이의 여린 속살을 가르고 들어왔다.
“아아…! 하윽, 아…!”
사내의 침입을 거부하며 제이는 온몸을 뒤틀었다. 허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사내의 분신은 아직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이의 아래가 받아내기에 거대했고, 힘겨웠다.
이런 고통은 제이에게 처음이었다. 숨을 쉬지 못해 눈물이 차올랐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제이가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아무나 도와달라는 신음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방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사내는 그녀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제이.”
“아흐… 아, 아버지….”
“힘을 빼야지.”
그는 울먹거리는 딸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울먹이던 제이는 아직 이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한밤중에 아버지에게 겁간당하는 딸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의 물기 어린 소리는 바깥에서도 들렸을 텐데도. 온종일 있었던 이상한 일과가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막혔던 숨이 천천히 돌아왔다. 제이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그녀가 입고 왔던 슈미즈가 찢긴 채 널브러져 있다. 시녀가 입혀주었던 옷이다.
그녀가 조금씩 진정되자 사내는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좁은 질은 사내의 성기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다. 처음이라 많이 힘들어하는 딸을 보며 나름 배려랍시고 얕은 곳에서 쑤셨다.
“윽… 아… 아흑….”
여전히 버거워 보이는 제이를 내려다보던 그는 상체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작고 붉은 입술이 그에게 삼켜진다. 놀란 제이는 팔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역부족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단 한 틈도 밀리지 않은 사내는 허리를 움직이며 딸에게 키스했다.
제이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키스도, 애무도, 그리고 섹스도. 자신이 자면서 아버지께 범해졌다는 것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사실들이었다.
잠시 후, 입술이 떨어졌을 땐, 아래가 조금이나마 풀려있었다. 그는 허리를 더 밀어 넣었다. 반도 들어가 있지 않던 좆이 깊은 곳까지 쑥 들어갔다.
“으, 으흑…!”
페니스를 잡아먹을 듯이 조이는 감각에 그는 탄식했다. 손가락으로 조금이나마 맛보던 그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단번에 속도를 가했다. 허벅지가 제이의 엉덩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하읏…! 힉, 아아…!”
제이는 저도 모르게 나온 신음에 놀라 입을 턱 막았다. 사내는 제이가 신음을 낸 부분을 놓치지 않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쑤셨다. 입을 가린 손은 그의 손에 쉽게 치워졌다.
“흐앙! 으읏…!”
“잘 우는군.”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제이는 고통과 동시에 흥분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아팠지만, 지금은 아프지만은 않았다. 고통 반, 쾌락 반….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는 반항했다. 아버지에게 이런 짓을 당하면서 흥분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좁디좁은 구멍을 쑤시던 사내는 그녀의 안에 가볍게 사정했다. 뜨거운 정액이 질 깊숙한 곳에 분출되었다. 제이는 아버지의 정액이 안에들어차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아, 아버지…! 어떻게, 안에….”
“제이아나 레뎀토어.”
그녀의 내벽은 아직 요동치며 그의 성기를 놓지 않았다. 그의 하체로 다시 열기가 몰렸다. 딸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 씨를 품고 아이를 낳는 것이, 앞으로 네가 할 일이다.”
제이의 골반을 잡으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조금 전보다 미끈해진 질을 거칠게 드나들었다. 딸의 구멍은 진작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만큼 좋았다.
“아, 아! 안 돼…! 아아…!”
제이는 그의 아래에서 다시 흔들렸다. 골반을 단단하게 붙잡은 그의 손은 크고 뜨거웠다. 아래를 치받는 그의 물건은 너무 커서 숨쉬기 힘들 정도였다. 아버지의 씨를 품어야 한다니. 레뎀토어 가문의 사람으로서 살아온 근간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자신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왔으며, 거칠게 숨을 쉬는 아버지에게서도 들렸다.
“아, 아버지…! 흐윽, 제발, 그만, 그만 해요….”
그는 허리 짓에 따라 흔들리는 딸의 젖가슴을 손으로 주물렀다. 커다란 가슴은 그를 유혹하듯이 큰 궤적을 그리며 흔들렸다.
“흣, 아, 아앙…!”
“씹, 젖통 흔들리는 것하고는….”
아버지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나오자 눈물이 맺히던 제이의 눈이 커졌다. 한 번도 저런 말을 사용하는 걸 들은 적이 없었는데…. 더불어 자신의 몸을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로부터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든 아버지에게 더 놀라움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그만, 그, 흣, 아, 아버, 지….”
제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거부했다.
“제이.”
“서로가, 부족하면, 채워주는 것. …그게, 가족의 역할이라고, 알려주었을 텐데.”
허리 짓을 하는 그의 말이 뚝뚝 끊겼다. 그가 차올릴 때마다 제이의 입에서 아아, 하고 신음이 끊임없이 터졌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라며, 사내가 제이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부부의 의무는, 무엇인지 아느냐.”
“하읏! 으…! 아, 아앙!”
후계를 위해 밤에 교합하는 일. 가정교사는 그렇게 말했었다.
제이의 눈이 마구 떨린다. 왜, 아버지는 부부의 의무 따위를 제게 말하는 것인지.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여전해서. 하지만 제이의 표정으로 ‘부부의 의무’를 알고 있다고 확신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셀비아가 죽었으니, 네가 대신 해야지 않겠나.”
“무, 무슨…! 아, 앙! 흐아앙!”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이 야속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고통과 흥분의 경계는 허물어져 제이도 느끼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액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에게는 이 상황을 멈출 힘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여전히 상황파악이 덜 된 제이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도 이 행위가 끝이 나면 아버지가 제게 사과하지 않을까. 그는 자상한 아버지니까.
“우린, 가족이잖아.”
하지만 정사는 끝이 나지 않았다. 한 차례가 끝나면 그는 다시 몸을 겹쳤다. 그는 끝장을 보겠다는 것처럼 제이를 안았다.
가족.
그것이 무엇이길래.
아버지의 아래에서 흔들리던 제이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가족을 원했던 적은 있었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자상함에 기대어 이게 가족이라고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제이였다.
귓가로 아버지가 속삭이는 말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평소 아버지가 자신을 안아주던 손은 허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위에 앉아서 놀던 아버지의 무릎은 눕혀진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있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있을 때 항상 느껴지던 단단한 것은, 지금 아랫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일까….
다리가 활짝 벌어져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건 치욕스러웠다. 다시 안쪽으로 뿌려지는 뜨끈한 체액이 느껴진다. 이젠 거부할 힘도 없었다. 그녀는 밤새 그의 아래에서 울다 결국 지쳐 잠이 들었다.
*
제이는 다음 날,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 움직일 수 없었다. 방은 익숙한 아버지의 침실이었다. 일어나려다 멈칫한 제이는 그대로 누운 채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입고 있던 옷을 찢고 자신을 안은 아버지싫다고, 놓아달라고 몇 번이나 빌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네 보지는 물이 많구나.’
다리 사이를 핥으며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그런 수치스러운 말을 제게 잘도 뱉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딸로 생각하신 게 아니었던 걸까.
하녀들이 몸단장을 해주며 입힌 슈미즈는?
‘오늘부터 내 밤 시중을 들어야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초야를 치르는 새색시처럼 들어가지 않았던가.
‘내 씨를 품고 아이를 낳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아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방 차오른 눈물은 후드득 떨어졌다. 아버지는 자신을 딸로 여기지 않았다. 여자로 여긴 것이다. 다정하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은 전부 거짓이었던 걸까.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