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은 다정한 원수와-55화
본문
55화
“아……!”
이번에 그는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키르타가 렌티아의 허벅지를 잡아 벌리며 혀로 미끈미끈한 속살을 파고들자 촉촉한 교성이 흘렀다.
“아, 흐, 아앙, 읏……!”
렌티아는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였다.
키르타가 아까 한 약속을 지켜 이번에는 훨씬 느긋하고 자상하게 움직이는데도 그녀는 목이 졸린 듯 숨이 막혔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육체에 원색적인 쾌락이 파도처럼 내리치자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희열 앞에서 힘없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녀의 양손은 여전히 묶여 있었다.
키르타가 워낙 헐겁게 묶어 준 덕분에 원한다면 포박을 떨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아, 흥, 읏, 좋아, 거기……!”
그런데도 자꾸만 교성이 터져 나왔다. 이러다간 내일 아침 목이 다 쉬어 버릴 것 같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흐르는 바람에 얼굴이 다 부어 버릴지도 모른다.
키르타는 오늘도 그가 생각하는 남편의 역할에 충실했다.
아내의 비밀스러운 부위를 능란하게 빨고 핥으며 몇 번이고 그녀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순전한 쾌락, 완벽한 만족이었다.
키르타는 이제 렌티아의 음핵을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질구를 휘저으며 반대쪽 손으로는 남근을 스스로 애무했다.
그새 팽팽해진 기둥은 돌처럼 딱딱했다. 지칠 줄 모르는 육체였다.
“아아!”
“흣.”
각자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액체가 왈칵 터지는 순간, 렌티아는 가냘픈 비명을 질렀고 키르타는 거친 신음을 뱉었다.
둘 다 헉헉대며 늘어졌다.
렌티아는 이제 정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솜이불처럼 침대에 가라앉았고, 키르타는 그녀 옆에 얌전히 누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후우, 어떻습니까? 묶이신 소감은.”
폐에 숨이 모자라 목소리가 색색 갈라지는 와중에도 아내를 놀릴 힘은 남아 있었다.
키르타가 눈꼬리를 예쁘게 휘자 렌티아는 겨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그냥… 힘들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렌티아. 이렇게 무리한 덕분에 오늘 밤은 푹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평소에도, 하아… 평소에도 잘만 잤거든요?”
“글쎄요, 그것도 전부 제 공로는 아닌지.”
키르타가 뻔뻔하게 받아치자 렌티아는 기가 막혔다.
어느덧 거의 결혼 2년째, 그와 몸을 섞어 아이까지 가졌는데도 아직도 가끔은 그라는 존재가 매우 생소하고 신기했다.
“그대는, 대체… 나랑 같은 인간이기는 한 건가요?”
“그리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성별과 고향은 달라도 넓게 봤을 때 같은 인류에 속한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만.”
“성별이랑 고향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 체력이… 아예 나랑 다른 종족인 것 같은데.”
“설마요. 아예 종족이 갈릴 만큼 큰 차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동의할 수 없군요.”
“차이가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시시콜콜한 순간마저 결국에는 소중했다.
만약 그들이 오직 군신이나 거래 관계로 만났다면, 각자 뚜렷한 계산적인 목적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했다면 이런 사소하고 유치한 실랑이는 참 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라서, 서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사이라서 이런 순간마저 의미가 있었다.
별거 아닌 듯해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저는 당신과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키르타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토록 긴밀한 사이에는 사소한 침묵조차 아까워서 기쁘고 사랑스러운 게 있다면 바로바로 말해야 했다.
“사랑해요, 렌티아.”
그가 덧붙였다. 지금껏 수백 번은 넘게 말했고 앞으로 수천 번을 넘길 고백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욱 귀해지며 빛나는 진심을 기꺼이 나누었다.
“나도 사랑해요, 키르타.”
렌티아가 화답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부부 생활이라는 게 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르쳐 준 남자에게.
두 사람은 다시 키스했고, 몸이 지친 와중에도 입맞춤은 달았다.
이들에게도 남은 건 행복뿐이었다.
【 에필로그 】
봄꽃이 아름답게 만개한 정원에 한 소년이 숨어 있었다.
값비싼 옷이 더러워지는 것에 대한 자각 없이 흙바닥에 웅크려 앉은 소년은 아까부터 내리 훌쩍이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자그마한 코와 말랑말랑한 눈시울이 발갛게 부은 채로 훌쩍거리던 소년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 어깨를 더욱 움츠렸다.
“여기 있었구나.”
수풀을 헤치고 소년에게 다가온 사내가 안도로 한숨지었다. 키르타는 남자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다섯 살배기 아들과 시선을 맞췄다.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아까부터 계속 찾고 있었어.”
“흐윽, 훌쩍.”
“쉬이, 뚝. 뭐 때문에 우리 사랑스러운 아드님이 이렇게 속이 상하셨을까?”
키르타는 단단한 팔로 아이를 부드럽게 안았다. 아세르는 토끼 같은 자세로 아빠의 품을 꼼지락꼼지락 파고들었다.
아빠가 아들을 어르는 사이 아이가 울먹울먹 이야기를 시작했다.
“흑, 유모가 그랬어요. 저 때문에 어머니가 옛날에 편찮으셨다고.”
“그래? 유모가 그랬구나.”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동생 때문에 편찮으시대요. 어머니가 편찮으신 거 싫은데…….”
“그래, 나도 폐하가 아프신 걸 보는 게 힘들단다.”
레케온 제국의 황제 렌티아 레케온은 두 번째로 임신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젊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그저 체질 때문인지 아세르를 회임했을 때보다 훨씬 고생하고 있었다.
입덧도 예전보다 심했고 살도 많이 빠졌다.
원래 임신이란 게 힘든 과정이고 황제께서 평소에 건강하시니 크게 걱정하실 건 없다고 의사들은 말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조마조마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키르타도 속이 탔다. 차라리 제게 자궁이 생겨서 둘째 아이는 자기가 품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부부가 차례로 아이를 한 명씩 품었다면 훨씬 공평했을 텐데.
아세르도 엄마를 걱정했다. 의젓하지만 아직 어린 황태자는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는 과정에 대해 전혀 몰랐고, 임부를 보는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그러니 소년의 순진무구한 눈에는 어느 날부터 서서히 부풀기 시작한 엄마의 배가 기형적으로 보일 만도 했다.
‘아세르, 지금 이 안에는 네 동생이 있어. 나중에 달수를 채우고 나면 만날 수 있을 거야.’
혼란에 빠진 아이에게 렌티아는 에둘러 말하는 선에서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했다. 아세르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앙증맞은 머리를 갸웃거리는 아들을 보고 렌티아는 피식 웃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 자세한 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란다.’
아이의 깜찍한 머리를 쓰다듬고 귀여운 이마에 뽀뽀하는 동작은 평소처럼 다정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한결같이 자상한 태도에도 아세르는 안심하지 못했다.
‘유모, 어머니는 왜 저렇게 힘들어하시는 거예요? 요즘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잖아요. 어머니 배 속에 아기가 들어 있어서 그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황태자 전하. 원래 아기를 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황제 폐하는 건강하신 분이니 잘 이겨 내실 겁니다.’
‘…내 동생 때문에 어머니가 저렇게 힘들어하시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전하께서도 한때 황제 폐하의 배 속에 계셨는걸요. 그때도 폐하가 잘 이겨 내신 덕분에 전하께서 지금 이렇게 여기 계시잖아요?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전하.’
‘나도 저랬어요? 지금 내 동생이 하듯이 배 속에서 어머니를 괴롭혔다고요?’
나름대로 아이를 달래기 위해 우회적으로 털어놓은 진실은 엄청난 역효과를 낳았다.
아세르는 충격에 빠졌고, 자책감과 동생을 향한 미움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어머니를 괴롭히는 동생은 필요 없어요. 그런데 나도 옛날에 똑같았다니……!’
다섯 살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더니 휙 돌아서서 쪼르르 달아났고, 당황한 유모가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황태자가 사라지자 궁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애초에 다섯 살 어린아이가 갈 만한 장소는 꽤 한정적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키르타는 황태자궁의 정원에서 금방 아들을 찾아냈다.
“저는, 흑, 저 때문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던 줄은 몰랐어요. 어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워요.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너무 미워요…….”
아빠의 품에 아기처럼 웅크린 아세르가 울먹거렸다. 키르타는 아이를 정성스레 다독였다.
“아세르, 네가 죄송할 필요 없어. 네가 배 속에 있을 때 폐하가 조금 힘드셨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 그 일로 폐하가 너를 원망하신 적은 없단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훌쩍! 정말인가요?”
“그럼, 정말이야. 나와 폐하가 너한테 거짓말한 적이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을 믿어. 그리고 폐하께 가서 직접 여쭤보자. 폐하는 너도, 네 동생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 가서 여쭤보면 분명 그렇게 말씀하실 거야.”
“하지만, 저 때문에 힘드셨던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요즘도 그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아세르, 이 세상에는 조금 힘든 걸 감내해서라도 반드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폐하께 너는 그런 사람이야. 내게도 너는 그런 사람이고. 네 동생도 마찬가지란다.”
본인은 한 번도 아홉 달간 임신으로 고생해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이렇게 말하는 게 살짝 양심에 찔렸지만, 키르타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렌티아는 임신으로 고생했다는 이유로 아세르를 미워하지 않았고, 한 번도 그를 낳은 걸 후회한 적 없었다.
그녀를 한 몸처럼 여기는 배우자로서 키르타는 그 사실을 당당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들을 낳은 걸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가 그저 적법한 후계자를 생산한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입을 친히 찢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