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말고 어머님R-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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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화 〉 177화. 해결(6)
* * *
평소답지 않은 실수를 한 그녀를 바라보는 어머니. 그날 이후로 어색해진 사이를, 아직 회복하지 못했었는데. 그녀를 부드럽게 내려다보던 베라가 다 이해한다는듯, 자애로운 목소리와 눈빛으로 말했다.
“…네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그녀가 그런 걱정을 할 것처럼 보이는가? 에드워드가 전장에 선 게 몇 번이고, 거기서 베어넘긴 적장이 몇 명인데.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그녀의 남편을 그녀가 왜 걱정한단 말인가. 그의 실력을 잘 몰랐거나, 처음 전투에 나갔던 때라면 불안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에드워드의 출전이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데… 한 번 실수했다고 이게 뭔지.
하지만 위니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니기는. 남편 걱정에 잠이 안온다고 하던 애가.”
“내, 내가 언제 그랬어.”
요새 밤에 같이 잔다고 얘가 없는 말을 다 지어내네. 요새 자는 시간이 조금, 아주 조금 늦어진 건 맞는데. 그건 다 원래 늦게 자는 위니에게 맞춰 주느라 그런 거다. 저번 일 이후로 아예 매일매일 그녀의 방에서 같이 자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 얘기 중에 에드워드 얘기가 좀 있긴 했는데. 그녀가 딱히 에드워드를 걱정해서 그렇다거나, 그거 때문에 잠이 안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진짜로.
사실 그녀가 에드워드에게 했던 모진 말들. 죽는다는 말. 이런 말들 때문에 살짝 찔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안 졌는데, 그런 것 때문에 에드워드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계속 그녀를 놀리는 위니와 다 안다는 듯 쳐다보는 어머니 때문에, 살짝 덜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다른 여자를 또 데려올까봐, 그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그, 그건….”
날카로운 지적에 다른 두 명의 여성의 말문이 막혔다. 확신을 가지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워낙 전적이 화려해서…. 그래도 베라와는 달리 마운트베른에서의 일은 모르는 위니가, 수습하듯 말했다.
“에이, 그래도 에드워드의 그런 욕구가 이 성 바깥을 향한 적은 없잖아? 아마 안 그럴 거야…. 절대 안 그러겠다고 모니카 너랑 약속까지 하고 갔다며?”
“…약속으로 될 거였으면 이렇게 걱정 안 했지.”
“그건… 그렇긴 하지.”
에휴, 그녀가 이런 걸 걱정해서 뭐하겠는가. 결국 전부 에드워드에게 달려 있는 것을. 다시 정신을 집중한 모니카가 서류 결재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만약 여자가 하나 더 늘어나면, 정말 물리적으로 어떻게 조치를 취하던, 어떻게든 한 번 손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흡… 후우….”
이렇게 격렬하게 싸워본 게 얼마만일까. 잡졸들을 상대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손수 검을 휘두를 일이 얼마나 있겠어. 말에 올라탄 채 적들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전사 계급의 놈들을 상대할 때는 제대로 싸우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이게 더 힘들지도…?
낙마하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왼팔이 욱신거린다. 완전 나간 건 아닌 거 같으면서도, 멀쩡하다 물으면 그건 절대 아니고. 그래도 모니카가 준 검을 한손으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왼팔은 방패를 걸치기만 한 채, 오른팔로 적들을 하나씩 베어넘기고 있었다. 난이도는 낮아졌는데, 부상 때문에… 으음.
아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적들도 내가 잘 보이지는 않는지, 멀리서 어렴풋이 보고 덤볐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등을 보이다 죽는 놈들도 많았다. 적들도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그러면 왜 쳐들어온거야?
그렇게 몇이나 베어넘겼을까. 별안간 내 쪽으로 오는 적의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쪽으로 오면 죽는다는 걸 깨달은 건가? 아니면 다른 쪽에 아군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잘 됐다 싶은 순간. 내 예상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발소리만 들어도 묵직하게. 정말로 쿵 소리가 난다. 다른 잡졸들이 전부 물러서고, 둘만의 암묵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나보다 조금 높은 키의 실루엣. 저벅 저벅 걸어오는 그 얼굴이 가까워지고, 거센 눈바람 속에서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그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역시, 이름을 몰라서 긴가민가했는데. 네놈이 맞았군, 하얀 전사.”
“….”
어떻게 저놈을 잊겠는가. 내 목숨을 앗아간 저 자식을. 아직도 저놈이 궁금하지도 않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피처럼 붉은 돌로 내 머리를 내리쳤었는데. 이십 년이나 지나기 전인데 하나도 다르지 않은 놈의 모습이다. 여전히 유창한 우리말로 그놈이 말했다.
“주술쟁이 할멈이 어지간해서는 별일 없을거라 했는데, 하필이면 네놈이 주술의 핏줄이었다니… 네놈 덕에 별 희한한 일도 다 겪는군. 아, 이해 못 하겠지만 괜찮다. 여기로 온 뒤로 혼잣말이 늘어서 말이지. 그것도 공용어로.”
정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놈.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이지만, 이마저도 나를 방심시키려는 수작일 수 있다.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야만족 놈은 신경쓰는 기색도 아니었지만.
“온갖 영지를 돌아다니며 보이는 족족 전사들을 쳐죽이는 놈이 있다 들었는데, 역시 네놈이었어. 그 때는 전성기가 지난 늙은 네놈이었지. 젊을 때 다시 만나서 좋군.”
야만족을 감히 어떤 놈이 통합하고. 통제할까 했는데. 이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과거와 똑같이 강력해 보이는 그 강인한 육체.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진 전사인데…. 권모술수에도 능한 건지.
곰 같은 덩치의 그 전사가
“네놈은 잘 모르겠지만… 다시 싸우게 돼서 반갑다.”
“…아니, 알 것 같은데.”
두 번의 실패는 없다. 이번에 죽는다고 다시 살아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꺾는다. 멍청하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놈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사이 짓쳐 들어갔다.
“큭, 크윽… 알 거 같다고? 그게 무슨?”
챙, 챙.
날카롭게 벼린 쇳덩어리들이 하나는 검날의 형태로. 하나는 도끼날의 형태로 화해 서로 부딫힌다. 좋아, 예전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때보다 몸상태가 나아서 그런지, 확실히 힘이 덜 밀린다. 특히 놈이 묵직한 양손 무기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두 팔의 힘은 받아내지도 못하고 부러졌을 텐데.
양 팔에 한 자루씩, 빠르게 휘두르는 도끼를 막아낸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건 검을 갖다대 경로를 비틀어 버리고, 옆으로 빗겨 들어오는 건 방패를 옆으로 들어 해결한다.
“아하하, 이거 단순히 몸만 강해진 게 아니었구만!”
기쁘다는 듯 파안대소한 놈이 양팔로 강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묵직한 공격을 받아낼 수 없는 내가 회피하고 뒤로 물러서자, 여유를 되찾은 놈이 말했다.
“처음이 아니라면, 다시 소개하지. 내 이름은 우잘, 북쪽에서 온 바람이다.”
“…율스타인.”
“하얀것들 치고도 이름이 좀 짧군.”
“나는 율스타인의 검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하얀 전사여, 이번에는 네 입에서 먼저 이름이 나오도록 해주마.”
완전히 주도권을 되찾은 우잘이 자기 도끼를 고쳐 쥐며, 나를 따라하듯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나와 우잘의, 처음이자 두 번째이자, 그리고 동시에 마지막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백작님, 급보입니다. 에드워드 경… 율스타인 부군께서 전장 한복판에서 낙마하시는 바람에, 행방을 알기가 힘든 상태라는 소식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모니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편을 찾기 위해, 위니를 제외한위니는 아이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다는 이유로. 율스타인의 여성진, 모니카와 베라가 다니엘 남작령으로 향했다.